본 논문은 명(明)나라 만력(萬曆.1573—1620)년간에 출판된 옛 사람들의 화보(畫譜)를 임화(臨畫)한 것을 연구 대상으로 삼 았다. 이로부터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본 연구를 시작하였 다. 첫째, 옛날 사람들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기 때문에 원본(原 本)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대체로 원작을 수정하거나 가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러므로 그 이유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둘째, 화보와 각첩(刻 帖)은 모두 묵적본(墨跡本)을 다시 새긴 것이다. 그런데 후대에 이런 화보와 각첩에 대한 평가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또한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본 논문은 위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문을 모두 문인(文人) 의 미적 감상에 이중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현상으로 인하여 발 생하였다고 보았다. 즉 화보와 묵적 원본에 대한 문인의 심미 적 판단에는 이중적인 잣대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중국 화조화 역사에 있어 명대(明代)는 중요한 전환기에 속 한다. 이 시기의 화조화는 송·원시대 화조화의 정수를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화조화의 상태와 기법을 보여준다. 려 기(呂紀)는 명나라 원체(院體) 궁정 화조화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화조화 양상은 다양하며 색체가 화려하고, 구도가 교묘하여 당시 궁정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려기 화 조화의 많은 장점 중에서도 구도적 특색이 가장 두드러진다. 중국 화조화 역사에 있어 명대(明代)는 중요한 전환기에 속한 다. 이 시기의 화조화는 송·원시대 화조화의 정수를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화조화의 상태와 기법을 보여준다. 려 기(呂紀)는 명나라 원체(院體) 궁정 화조화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화조화 양상은 다양하며 색체가 화려하고, 구도가 교묘하여 당시 궁정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려기 화 조화의 많은 장점 중에서도 구도적 특색이 가장 두드러진다. 려기 화조화의 구도는 화조(花鳥)를 주체로 하는 전경식 화조 구도와 산수(山水)를 주체로 하는 전경식 화조 구도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화조화 구도는 변경소(邊景昭), 임량(林良)의 화조화 구도의 특징을 계승하여 거폭의 전경식 화조화를 독창적으로 창작해냈다. 또한 이러한 전경식 화조화 구도에는 마원(馬遠)과 하규(夏圭)의 산수화의 변각식(邊角式) 구도 및 ‘삼원법(三遠 法)’의 구도 요소가 녹아 들어 있다. 전체적인 화면은 구성과 점, 선, 면의 처리에 있어, 동시대의 선배들을 뛰어넘어 더욱 풍부한 층차감을 띄고 있다. 이러한 구도적 특색은 이후 화조 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The compositions of ethnic groups in Macau vary with time. Prior to the opening of the port, the majority of the residents in Macau were Chinese people, including those living on land and at sea. After the port was opened, with the increase of Portugal businessmen and missionaries, the population was divided into Chinese people and foreigners (so-called ‘Yiren’ or 夷人in Chinese). Chinese people living on land were mainly of Hakka, Fujian, and Cantonese descent. Those living at sea were referred to as ‘Tanka People’ (named ‘Danmin’ or 蜑民in Chinese). They lived on floating boats for their entire lives and were similar to the ‘drifters’ in Japan. Since modern times, many refugees from mainland China and Southeast Asia flooded into Macau due to warfare. The development of industrialization required a larger number of laborers, and some ‘coolies’ entered Macau in legal or illegal ways, making it a multi-ethnic city. However, the Tanka people were not considered a minority ethnic group under the national ethnic policy of 56 ethnic groups since they did not have an exclusive language and shared dialects in different regions. As the ports inhabited by Tanka people gradually restored foreign trade, the boats and stilt houses used by Tanka people were dismantled to expand the infrastructure area of the ports. Many Tanka people began to live on land and marry people on land, leading to the disappearance of the Tanka group in Macau. The fishing boats and stilt houses used by Tanka people have also disappeared, with only a few remaining in areas such as Pearl River Delta and Hong Kong. This paper examines the natural and social environment of Tanka people in Macau from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o the Republic of China, as well as the adaptive changes they adopted for the aforementioned environment in terms of living space and architectural type, on the basis of summarizing the historical activities of Tanka people. Finally, this study provides a layout plan and interior structure of the most commonly used boat for Tanka people from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o the Republic of China, with the use of CAD and other technical software, along with reference to written historical documentation, and provides a case study for further research on the architectural history of Macau's inner harbor cities, from anthropological and folklore perspectives.
본고는 국내 대학 중국 관련 학과의 교육 목표와 교육 현황을 이해하고 향후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자 각 학과의 교과 과정 및 학과명에 관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편성 교과목 비율에 있어서 중국어 언어 교육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뒤로 ‘문화’, ‘문학’, ‘중국학’, ‘어학’의 순으로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 다양한 융합교과목이 편성되어 있으며 대학 소재 지역에 따른 교과목 편성 차이도 존재했다. 2000년에 조 사된 교과목 현황과 비교해 볼 때, ‘중국어실습’, ‘문화’, ‘중국학’ 관련 교과목은 양적 증가를 보인 반면 ‘문학’, ‘어학’ 교과목은 감소한 경향을 보였다. 교과목 성격을 보면 개론성 교과목의 수가 줄어들고 특성화, 전문화된 교과목이 늘어났다. 학과명에 있어 서는 현재까지도 ‘중어중문학과’라는 명칭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전에 비 해 학과명 사용의 편중성이 줄어들고 다양화가 실현되었다. 학과명은 지역에 따른 경향성이 뚜렷하며 교과 과정과도 긴밀한 관련성을 보였다. 이전에 비해 학과명의 균형성, 다양화, 복합화, 특성화의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학과의 교육 목표와 발 전 방향이 다양해지고 특성화를 추구하는 변화의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명청 시기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면서 지식인들 에게 여가란 단순한 노동 이외의 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유와 인격 수양과 더불어 정신적 치유를 위한 방편이 되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심령의 자유와 개성의 해방을 추구하고 전통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산수를 유람하며 일상에서 술 과 차, 놀이문화를 즐기고 독서와 문학 창작, 예술품 감상을 통한 고상한 삶을 추구 하였다. 그들은 풍부한 지식과 품격을 토대로 철학, 문학, 예술, 양생, 심미관, 인격 수양과 연결시켜서 다양한 여가문화를 형성하였다.
본 논문은 17~19세기 명․청대 박고문자기의 제작배경, 유형과 시기별 특징, 그리고 조 선과 일본도자에 미친 영향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삼았다. 박고문자기는 고동기에 대한 완상 및 애호가 일종의 문인취미로서 확산되었던 명․청대 사회상을 반영한 대표적인 시각작품이다. 그 제작배경과 관련하여 당대 문헌사료들을 통해 박고취미가 성행했던 시대적 배경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17~19세기 자기 박고문에서 보이 는 고기물 도상, 문방청완, 팔보 등 기타 길상소재 등의 구성요소로 유형 분류를 시도하고, 유형별 자기 박고문의 편년자료와 양식을 통해 17~19세기 박고문자기의 시기별 특징을 살펴 보았다. 그 결과, 17~19세기 자기 박고문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했으며, 이는 곧 시기별 박고문자기의 변천과 특징으로 이어졌다. 17세기 중후반, 경덕진 민요에서 문인취 향이 적극 반영되어 나타난 박고문자기는 18세기 이후에는 官樣의 내수뿐 아니라 다양한 품종으로 유럽 수출자기로도 크게 성행하였다. 19세기에는 전반적으로 자기의 질이 쇠퇴되며, 민간 잡보를 비롯한 여러 길상적 문양요소로 이전보다 더욱 번잡해지는 구성으로 변모되었다. 한편 박고문자기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었던 조선과 일본도자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현전 하는 작품들의 비교 분석을 통해 그 영향관계를 확인하였다. 조선의 경우, 조선 후기 골동애 완풍조 등 중국의 복고적 취향을 잇는 주요 매개체로 작용하였으며,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19세기 민화적 요소와 결합되어 자기의 문양으로 변용되었다. 일본은 조선과는 달리 17~18세기 유럽시장을 배경으로 한 수출자기에서의 수용과 변용이 이뤄졌으며, 일본식 미 감이 가미된 일본 수출자기의 특색으로 자리하였다. 이처럼 조선과 일본 각국에서 중국 박고 문자기를 수용하는 시기와 경로, 모방과 변용양상이 다르게 나타난 점을 통해 동아시아 도자 문화에서 갖는 박고문자기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고기는 인간과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고 한국어에는 물고기 이름에 대한 단어가 예상보다 많이 존재한다. 많은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해당 범주 구성원이 많이 존 재하여 각 대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더욱 상세한 변별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 석할 수 있다. 그래서 물고기 이름의 연구는 사람의 인지 양상을 밝히는데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어류의 하나인 명태(明太)의 명칭에 주목하 여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명태(明太)를 어떻게 명명하고 있고, 그 명칭의 어원과 유래는 어디에서 왔으며, ‘명태(明太)’라는 물고기 이름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해외로 전파되었는지, 또 명태(明太)의 다양한 명칭의 종류와 유형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중·일 삼국의 명태(明太)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명태(明太)의 기원은 첫째, 명천에 사는 어부의 성씨에서 얻어진 이름으로 산지인 명천(明川)의 ‘명(明)’자와 어획한 어주의 성인 ‘태(太)’자를 따서 명명한 것이고, 둘째, 등 기름으로 명태 간의 기름을 사용하여 밤을 밝게 해주어 ‘밝을 명(明)’, ‘클 태(太)’,‘물고기 어(魚)’자로 ‘밝음이 큰 물고기’란 뜻으로 명명된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명태(明太)의 발음을 살펴보면 중국어로는 ‘míngtàiyú’이고, 일 본어로는 ‘スケトウダラ’, 러시아어로는 ‘минтай(mintai)’로 우리나라 ‘명태’에서 그 이름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명태(明太) 명칭의 의미 및 인식은 한 국가 내에서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명태(明太)의 특징에 따라 나타나는 명태(明 太) 명칭은 파악할 수 있었고, 국가 간의 언어문화 교류 양상에 대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명태(明太) 명칭 체계를 정립하고 추 후 삼국 사이의 언어문화 교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기초연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W. B. 예이츠의 시는 1920년대 이후 중국에 소개되었는데, 그는 아일랜 드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중국의 시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나인 리브스파 시인들 중 무 단과 연 게이자에 대한 영향이 크다. 비교연구를 통해서, 본 논문은 무 단은 자신의 시 스타일 형성에 예이츠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연 게이자는 자신의 시이론을 형성하는데 많은 자양분을 흡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유교주의 봉건국가’인 조선·명·청은 소설을 배척했던 통치이념과 이를 성문화한 ‘明律’의 ‘造祅書祅言’과 ‘禁止師巫邪術’ 조항이라는 법률적 근거를 공유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분모 에도 불구하고 이들 3왕조는 각기 다른 형태의 소설규제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본 연구는 우선 ‘금지소설’1)의 법적 근원인 ‘挾書律’과 ‘唐律’의 계승관계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唐律’의 ‘造祅書祅言’ 조항이 어떻게 ‘明律’과 ‘淸律’의 ‘造祅書祅言’과 ‘禁止師巫邪術’ 조항으로 계승되었는지, 또 어떤 형태로 조선에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끝으로 전문적인 소설규제법을 제정한 청대 ‘법제화’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 찰 결과 유가적 통치이념을 공유하였지만 ‘淫’에 주목하지 않았던 명과 ‘淫’에 주목했던 청, 그리고 ‘稗’에 주목하였던 조선의 문화적 정서적 차이가 각기 다른 양상의 소설규제라는 정치 적 결과를 야기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밖에도 한중소설 비교연구에 법전과 실록이 공통성 과 객관성을 담보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This study aimed to investigate how two novice teachers in elementary schools conceptualized and developed their practical knowledge about English teaching. They provided their narratives about their teaching six times over the spring semester of 2019. Their narratives were recorded and transcribed. Two researchers examined the transcription to investigate what prior knowledge they had and how they developed their practical knowledge. It was found that their practical knowledge had constantly changed and developed. When they started teaching English, they had their own knowledge on English teaching, which seemed to come from their previous English learning experience and from their study on teaching English. As they applied these knowledge to their own teaching situations, they encountered many problems. The main situations that shaped their practical knowledge were 1) students' level of achievement, 2) level differences among students, 3) teacher status (classroom teacher or English specialist teacher), and 4) colleagues. While coping with those problems, they added new practical knowledge or modified the knowledge they had. The findings provided several implications on pre-service and novice teacher training.
사실, 현대 영미시사에서 예이츠와 엘리엇을 제외한다면 그것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두 시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다르게 보일 것처럼 느껴지지만 유사한 맥락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둘 사이에 창작 방법 또한 유사한 측면이 많다. 이른바 상징을 기점으로 엘리엇은 객관적 상관물을 추구했다면 예이츠는 흔히 정의하는 낭만주의적 기질을 구조했다는 논점이 매우 이채롭다. 예이츠는 결코 단순한 낭만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중국 운남성 라평현 명가촌(中國雲南羅平縣明格村)대상지로 명가촌의 생태보전 및 지역발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운남성 라평현의 독특한 계단식 밭 경관(梯田景觀)은 중국의 중요한 농업문화유산이고 매우 높은 보존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운남성 라평현 면가촌에서 살고 있는 포의족(布依族)은 중국의 소수 민족에 속하며, 그 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습은 중국의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으로 보전가치 크다.
중국은 고대부터 다민족 국가였다. 수천 년 간 다른 민족문화와 지역문화가 서로 융합되어 상호 영향력이 중국의 전통문화를 형성했다. 소수 민족의 전통문화는 중국 민족의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운남성 포의족(布依族)은 독특한 의상, 음식, 건축, 무용, 공예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문명의 통일화에 따라서 운남 포의족 전통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국 독특한 소수 민족 문화가 시간에 흐르면서 잊혀지고 없어지는 것은 세계 문화사에 커다란 동정이다. 그래서 포의족 문화의 전승과 보전에 대한 내용도 핵심 내용이다.
현재 명가촌의 농촌마을계획은 장기간 단일화 발전 모델로 이 지역의 보전가치가 큰 계단식 밭경관과 포의족(布依族)의 문화에 대한 고려가 미비하여 점차 사라지고 있다. 본 연구는 명가촌의 경관보전 및 지역발전을 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내용은 명가촌의 생태마을설계와 무형문화유산의 보전을 기반으로 지역 발전의 활성화 계획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 명가촌 생태마을설계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기존의 농촌마을계획을 진단하였다. 생태마을설계 방향은 자연생태환경과 포의족 전통건축 복원 및 계단식 밭의 보전이다.
둘째, 마을의 무형문화유산 보전방안이다. 농업문화유산은 현대 농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꾸준히 발전함에 따라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농업은 사라질 위기에 있다. 명가촌 계단식 경작지의 경제적 가치, 생태적 가치, 미학적 가치, 문화적 가치, 과학적 연구 가치 및 사회적 가치와 같은 여러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반면, 면가촌 전통적인 농법은 단지 1차 산업에 국한되어 있고, 계단식 경작지는 경사가 급하고 협소한 폭으로 기계경작이 어려워 농민의 소득과 생활수준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한요소는 오히려 녹색농업, 유기농업 및 생태농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기회요소가 되고 있다. 계단식 경작지와 연계한 생태관광의 개발을 장려하고, 다자간 경제 보상을 통한 유기농업과 특색 있는 농업을 촉진한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셋째, 명가촌 Permaculture 및 생태관광 모행 도입이다.
1). 전통적 단일농업 → 다양한 산업구조 퍼머컬쳐로 전환(유채 재배업, 유채씨 기름 가공업, 양봉업, 유기농산물 판매 산업)
2). 생태관광 개발 (포의족 전통문화 홍보, 지역수익증가, 생태경관보전)
본 연구는 고대의 ‘命’에 대한 운명적⋅도덕적인 관념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건강’으로 규정한 현대의 정의를 비교 및 종합하여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運命論’의 새로운 활용법을 모색해 본 것이다. ‘神’이 관념의 중심인 운명론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태에서의 ‘人’의 선택과 행동이 철저히 제한된다. 반면 ‘人’이 관념의 중심인 도덕적 측면에서는 높은 도덕성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태의 초월을 요구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운명론을 비판한 묵자의 非 命의 구조를 파악하여 인간의 주동적 삶의 자세를 유도하는 운명론의 활용 방안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예언’은 경계하되 ‘예측(해석)’과 길⋅흉(命)의 ‘가변성’ 등을 강조하여 ‘人’의 주동적 역할을 유도하는 새로운 운명론의 활 용방안을 제안해 보았다.
‘다원주의’는 현대 미술을 비롯해 문화 현상의 특성을 지칭하는 용어 이다. 현대 미술이 ‘다원주의’적 특성으로 설명되는 이유는 획일화를 지 양하고, 다양화의 경향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 원주의’ 시대의 미술은 동서 간의 차이를 비롯해 장르들 간의 구분, 그리 고 전문성에 기초한 예술 범주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해체되는 상 황을 나타내는 통합적 성격의 용어라고 하겠다. 이 논의는 현대 미술의 다원화 현상으로 관찰되는 여러 쟁점들과 그 쟁점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들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 고 해서 특정한 결과를 추출하기 위한 시도는 아니며, 미술계나 문화계,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문제의 초점은 국제화로 일컬어지는 요즘의 현대 미술에 서 간취되는 동서 미술 간의 문제,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시대에 미술에 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긍정적 미래에 대한 제안에 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