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악은 선배 작가였던 앙드레 지드가 보낸 “소설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큰 고민에 빠졌다. 이 고민은 모리악이 자신의 문학관을 총체적으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진실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지드의 주장과는 달리, 모리악은 이 둘 사이의 공존을 선택했다. 모리악은 진실한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진실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리악의 작품에서 기독교적 구원과 세속적 인간 비극의 주제가 함께 공존하고, 은총과 죄가 함께 공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모리악은 작가의 존재론적 위치를 신의 모방자이자 신의 사도와도 같은 것으로 정립한다. 인간 실존과 은총의 개입을 총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카이로스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작가가 하나님과 같이 전능한 창조자는 아니다. 작가의 창작은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다. 작가는 인물이나 독자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도 없다. 작가는 그저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작가는 비극적 실존의 현장과 은총의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위해 그 주어진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구성하고 종합해야 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토니 모리슨의 『파라다이스』와 『홈』 두 작품에 나타난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를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에 나타난 세 가지 인물 유형 중 기버와 테이커 유형으로 분류하여 비교했다. 『파라다이스』에서의 루비 마을의 쌍둥이 지도자 디컨과 스튜어드는 테이커 지도자이다. 루비 마을은 백인과 유색인종들로부터 차단되고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안전한 마을로 천국을 지향하지만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재산증식과 일방적인 지시, 편협한 사고방식과 책임 전가 등으로 수녀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마을은 몰락한다. 이에 반해 『홈』에서 의 로터스 마을의 이웃 여성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 하면서 조건 없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도움을 전달한다. 이들의 치료를 받은 씨는 회복되고 그 과정을 지켜본 프랭크는 고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수정한다. 두 남매는 고향에 정착하여 이웃 여성들과 함께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결국 그랜트가 결론짓듯이 테이커인 루비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기버 인 로터스 마을의 지도자가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개 작가의식은 작가라는 주체의 통일된 의식으로 규정된다. 작가의식이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작가의식의 변화’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는 상호 모순적으로 드러나는 작가의식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김동리의 경우 무녀도 개작 과정이나 기독교 소재 소설들에서 작가의식의 균열이 나타난다. 자아의 모순성이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자아는 하나로 단순화할 수 없는 주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텍스트는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비춰지는데, 그것은 하나로 통일된 작가의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 글은 텍스트 창작 과정을 작가의 정체성을 점유하기 위한 조각 작가들의 경합 과정으로 본다. 조각 작가는 작가의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조각 작가들로 생성되고 작가의 자아 내부에서 먼저 생성된 조각 작가들과 합치되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경험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
본고는 정연희가 기독교를 수용한 7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기독교 윤리가 구조화되는 방식을 해명하였다. 외형적으로 이전의 사회비판 소설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지만 인식과 구조, 미학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이들 작품에서 종교적 윤리성이 구성되는 방식과 내용, 윤리적 실천 양태를 작품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연희 기독교 소설은 그동안의 폐쇄적, 특권적 내면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공감을 회복하면서 사회적 윤리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후 신의 시선을 내면화한 자아가 그 시선으로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는데 신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분노, 질타하면서 질타의 초점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고 있다. 이는 욕망을 문명적 창의의 긍정적 에너지로 추앙했던 이전 소설들과 극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정연희 기독교 소설의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분노, 불안, 공포가 고압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비판 소설의 서사적 객관성을 넘어서는데 이는 현재의 부정성을 통해 미래의 종말을 계시하려는 묵시록적 서사를 취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작을 통해 멸망의 징후를 예고하려는 종교적 실천의 결과인 것으로, 부정성을 부정함으로써 최후의 멸망을 부정하려는, 역설적 긍정을 내재한 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한국문학사에서 프로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문제적 비평가이자 작가인 김남천의 기독교 인식의 특징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김남천 연구에서는 간과되었던 부분으로 식민지 시대 프로문학 계열의 작가, 작품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배제되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프로문학 작가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갖고 기독교를 사회주의 운동이 타개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있는 기독교 인식의 다양한 측면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김남천의 경우 개인적 체험과 삶의 과정 속에서 경험한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어 여타의 프로문학 작가들과는 변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김남천의 소설에서 기독교적 요소와 긍정적 인식이 드러나는 것은 주로 카프 해체 이후 1939년경부터이며 전향소설로 규정되는 작품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기독교를 자아 각성과 민족개화의 매개사상으로 인식하면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작품에 표현하거나, 기독교인을 개화인의 표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종교적 차원의 개인적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행동의 변화와 깊이 있는 종교 인식은 부재한 양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