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녠(剪黏) 기술은 대만 사찰과 전통 민가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며, 젠녠기술은 `전화(剪花)', ` 첸츠(嵌瓷)'라고도 한다. 제작 시에는 먼저 회반죽으로 인물, 꽃, 새 등의 거친 형태를 만든 다 음 집게로 그릇 조각이나 유리를 잘라내어 마르지 않은 회반죽에 박아 넣어 완성한다. 작품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으며, 지붕이나 패두(牌頭), 수차도(水車堵), 지두(墀頭), 측 벽 꼭대기 등에서 모두 다 이러한 장식을 볼 수 있다. 대만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사찰과 민 가의 개조 및 보수로 인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초기 젠녠 작품들이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심지 어 문화 기관이 주도하는 유적 복원 분야에서도 젠녠은 급박한 보존의 곤경에 직면하고 있다. 철거 후 모조품을 제작하거나 보존하여 수리하더라도, 현재의 복원 기술로는 초기 젠녠의 예 술적 조예와 독특한 풍격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기 어렵다. 특히 노련한 장인이 점점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아 전통 젠녠 기술이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는 직접 `젠녠 기술'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장인, 도구, 기술을 중심으로 하여 젠녠 기 술의 변천 과정과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보존의 어려움을 검토하고자 한다. 연구 대상은 전통 젠녠 기술을 가진 장인과 젠녠 기술이 사용된 민가와 사찰의 사례를 선택하였으며, 연구 방법 은 현장 조사와 장인 인터뷰에 중점을 두고, 역사 자료와 문헌의 정리 및 비교를 보조 자료로 활용하였다.
2000년 이상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흉노부터 13세기에 칭기스 칸이 창설한 몽골 제국, 그리고 손자 쿠빌라이 칸이 만든 세운 대원 올스(원조, 元朝)를 거쳐 오늘날까지 몽골 고원은 계속 유목사회였다 .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유명한 만리장성은 사실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선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몽골 고원 즉 현재의 몽골과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를 대상지로 하여 유목문명에서 성장한 도시와 건축 및 장인에 대해 설명한다. 몽골 고원의 초원지대에서는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층은 30cm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래는 모래층, 점토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토양층이 얕기 때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파면 풀로 굳어진 토양층이 노출되면서 바람에 날아가고 이듬 해에는 사막화된다. 즉, 농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지인 것이다. 이러한 초원지대의 지리적, 환경적인 조건에 적합한 방목이 생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의 50배, 혹은 100배 이상의 가축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생산방식으로는 계속 한 곳에서 방목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부하가 커지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가면서 생활하는 ‘유목’이라고 하는 생활 양식이 성립했다.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의 토지소유에 관한 결정적인 차이는 유목사회에서는 토지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없다는 것이다. 한 곳에서 일정기간 생활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활 양식에 맞게 이동할 수 있는 건물 게르(중국어로는 '몽고포(蒙古包)'라고 부른다)가 탄생해 수천년의 진화를 거쳐 현대에 계승되었고 계속해서 변용해가고 있다. 즉, 토지를 '공유'하는 사회시스템에 기반해 이동을 전제로 하는 방목에 의한 생산방식과 생활양식의 니즈로 인해 토지에 속박되지 않는 도시, 건축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목사회에는 전통적인 생산기술과 생활양식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기술과 문화는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널리 보급, 응용되어 유목문명을 구성하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농경문명이 해양문명이나 유목문명보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는 해양 문명이 각광을 받고, 최근에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네트워크 사회가 형성되어 주거와 직장 모두 정해진 장소에 고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유목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토지에 속박되지 않고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내는 지혜는 현대사회에서도 유익하다. 또한 유목사회에서는 일상생활을 항상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지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중국 내지, 일본과 한국처럼 근세 이후 장인에게 전문 도구가 계속 늘어나는 것과 달리 유목민의 장인은 어떻게 도구를 늘리지 않아도 제조를 할 수 있는지에 최선을 다했다. 동시에 13세기 이후에는 이동건축양식의 시스템화가 진행되었다.
장인1)은 뛰어난 중국전통건축의 구체적인 창건자이자 실천자이고 기예의 계승자이다. 전통건축공장의 영건기예(營 建技藝)는 중국건축전통의 중요한 부분이다. 중국전통건축공장기예연구중심(中國傳統建築工匠技藝硏究中心, 이하 기 예센터로 약칭함)은 중국전통건축장인의 기예특징과 전승계보, 인재육성의 모델을 심도 있게 발굴하고 과학적인 연구 를 하기 위한 취지를 갖고 설립되었으며, 전통건축장인의 기예를 보존, 전승하는 종합적인 연구를 하는 중국 최초의 플랫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국설계감리협회 소속 전통건축분과위원회의 중요한 연구기구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기예센터의 설치배경과 목적 그리고 업무내용에 대한 소개를 통해 기예센터가 목표로 삼고 있는 전통건축장인기예의 보호와 전승 그리고 발전의 장애요인 등에 해 살펴보고, 전통의 관점에 출발한 하나의 장작기예(匠作技藝)를 전반적 으로 연구하는 플랫홈이 장인의 문화, 역사, 인재 배출, 정책, 기예를 연구하는 출발점으로서 고등건축교육체계 속에 서 전통건축설계언어에 숙달된 설계자의 육성 방안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전통건축설계가 시공과 어떻게 접목되어 야 하고, 전통건축장인의 육성 모델 등을 연구하는 플랫폼으로서 향후 중국건축의 발전을 위한 원점과 거점을 찾아 보고자 한다.
A major performance stage carpenter, Jang Insang led performance stages from the 1719 Sukjong Royal Banquet and was confirmed by historical records to be the first craftsman. Lee Wandeuk led the Hwaseong Fortress performance stages of the Jeongjo period and Gichuk Jinchan performance stages of the Sunjo period. The carpenter techniques he used during the Jeongjo period were succeeded to the Sunjo period. Ahn Sungil was the head craftsman who led the performance stages of Jagyeongjeon Jinjak, Muja Jinjak, and Gichuk Jinchan of the Sujo period, under which the foundation for court palace performances was laid. The progression of major carpenters includes Jang Insang of the Sukjong period, Jeon Yoochu of the Yeongjo period, Ahn Sugil of the Sunjo period, Yoon Seoksin of the Heonjong period, Kim Yoonsik of the Gojong period, Lee Jongyoon, Kim Soongil, Seo Sangmook, and Han Sujoon. In addition, the Major Repair of Injeongjeon Hall (1857) of the Cheoljong period was the most important palace construction project for transferring the carpenters’skills. Through this project, Ahn Sungil of the Sunjo period, Kim Myeonggap, Yoon Seoksin of the Heonjong period, Kwon Deuknyang, and Kim Sungil of the Gojong period were able to interact with each other. That is, this major repair project of Injeongjeon Hall reflected the major carpenters’best techniques through performance stage construction, showing the progression of Ahn Sungil, Yoon Seokshin, and Kim Sungil, who led the constructions of Gichuk Jinchan of the Sunjo period (1829), Mushin Jinchan of the Heonjong period (1848), and Jeonghae Jinchan of the Gojong period (1887), the most impressive performance stages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carpenters of the court performance stages participated in important construction projects of the royal palace, reflecting the superior technical skills of the carpenters in the construction of court palace performance stages. The carpenters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construction of performance stages were able to interact with one another and transfer their excellent technical skills, providing the driving force that allowed court performance stages to blossom into splendid and high-quality court st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comprehend the assignment and the procurement method of wood works’ craftsman through the Salleung-dogamuigwes in royal tombs constructions in the late Joseon period. Following conclusions have been reached through the study. First, Carpenter and other nine craftsmen were introduced in carpentry works. The craftsmen were put in by occupation to maintain the quality of the government building construction by wood processing area. It was distinguished by frame member, Sujangjae, window framing wood, decorative member. Second, sawyer showed a sharp increase in the latter half of the 18th century and declined since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This is closely related to the increase in demand for building materials and the growth of civilian wood products. As a maximum of 300 people have been assigned to the craftsmen in the woodwork, it can be seen that the work has been divided by the process. Third, the national carpenter was difficult to procure from the 17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From the middle 18th century, the system procuring national carpenter was stabilized. In the 19th century, the input ratio of the national craftsmen seems to have decreased significantly and seems to have kept it at the minimum level. Forth, sawyer were procured through Seongonggam from the late 18th century through the mid 19th century. That means that the role of the sawyer had become important. Since Jogakjang is not a necessary manpower, it usually has civilian artisans.
히니는 그의 첫 시 땅파기 에서 “내 검지와 엄지 사이에 뭉뚝한 연필 쉬고 있네/ 나 그것으로 팔 것이요.”라고 선언했다. 그의 시를 읽은 이제까지의 결론 은 그는 산고의 고통으로 새 스타일의 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위의 공언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시집 밭일, 산사나무 등불 그리고 환영보기의 시들만을 다루지만 필자의 결론은 히니는 그의 아버지가 경작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던 장인이었던 것처럼 글쓰기의 장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 문화유산이 녹아있는 서울의 문화적 가치를 재현함에 있어 장인의 기여가 현대에 와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디자인에 장인의 감각과 능력이 눈에 보이지 않게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서울시가 주최한 상암동 평화의 공원에서 개최된 서울정원박람회에서 새로운 정원디자인의 목표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장인들의 작업 속에 나타나는 전통문화의 해석과 공간적인 특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서울 장인정원 설계는 전통적인 서울문화를 장인의 개념을 통해 상징적으로 함축하여 공간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원에서는 사람으로서의 장인, 그들이 사용하였던 도구, 그들이 만든 공예품, 그들의 이미지를 자연으로 드러내는 4개의 장인 문화에 대한 층위개념을 설정하였다. 자연으로서 정원의 그라스와 꽃은 대비효과를 위해 큰 원형의 안과 밖에서 상호 관계 되도록 하였다. 장인의 상징적인 이미지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공예품의 배경으로 그라스를 사용하고 시각적인 오브제로서 관목 파티션의 반복과 꽃을 사용하였다. 이 설계의 메타포는 강한 시각적 호기심을 끌 수 있는 독특한 해법이며 따라서 정원의 방문자에게 서울 장인 정원의 상징적인 의미를 제공하게 된다.
The purpose of the study, approaching from the aspect of the construction technologies, is to determine the architectural techniques of traditional wood architects in existence, through which the systems and techniques that create the inherent characteristics of Korean architecture are clarified. With understanding traditional construction system and focusing on the fact that built environment results from the consistent standards and technologies of architects, this study inquires into the systematic standard and its formation that present in the process of planning for the overall scale and shape of a building from the study determines dimension of structural members. All the members that constitute the structure are trimmed in advance and assembled in a short period of time on the site. Because of that, the dimensions for trimming and assembling are predetermined according to designated standards in the planning process, therefore consistent standard of computation are in necessity to design shapes and sizes of enormous amount of structural members. This study also shows the standards of measurement employed by architects while planning for structural members of a building, and how the size and range of its composition are developed.
본고는 대구 북성로 산업공구골목의 한 철공 기술자의 일상사와 근현대 닥트공업의 실제(realities)를 생애 내러티브 방식으로 기록함으로써 당대 생활사와 특화거리로서의 생활공간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는 근현대 기술자의 생애사 기록 작업으로서 중간 기술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이다. 동시에 특정 공간의 기억을 통한 지역의 생활문화와 미시사의 이해이자 근현대 기술 변천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2대에 걸쳐 80여 년의 닥트공업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구술자 K장인의 생애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북성로 산업공구골목의 지역사와 문화의 측면에서 공간의 재생과 기억의 사회화를 위한 스토리텔링과 교육과정 활용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과 광복, 625전쟁 시기의 기억과 경험의 내러티브 속에는 당대의 역사적 사실들이 녹아들어 있으므로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생생한 근현대사의 교육 자료로 활용 가능하다. 둘째, 북성로의 지역 미시사와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대구읍장과 약령시, 경상감사 도임, 대구읍성, 객사(客舍), 순종 어가(御街) 및 광복과 전(戰)후 생활사의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셋째, 가정 생활용구의 변천사와 관련해서는 플라스틱 제품이 보급되기 이전에 활용되었던 함석으로 만든 용구의 종류와 생김새, 제작기법 등을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다. 넷째, 닥트공업의 주요 재료인 함석의 종류와 닥트 설비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나 기계들의 명칭과 기능 및 사용방법을 설명해주고 닥트 생활용구 제작 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당대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다섯째, K장인의 구술생애사처럼 북성로 산업공구골목의 철공 기술자와 공구상의 삶을 구술 혹은 자술 형식으로 채록하여 문자와 사진, 동영상 등으로 기록함으로써 공간의 재생과 근현대 기억의 사회화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