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인간의 심층적이고 경험적 특성을 다루는 정신분석학과 타 고난 본성을 다루는 명리학 구조를 비교분석하여 동서양의 심리학적 이 론으로 인간 정신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구조이론과 명리학 명조의 상관 성을 무의식과 천간·지지, 의식과 일간, 전의식과 지장간에서 고찰하였 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의식과 천간·지지는 역동성을 포 함하는데 전의식과 지장간이 교량적 역할을 한다. 둘째, 의식과 일간은 균형을 지향한다. 셋째, 전의식과 지장간은 잠재적 요소가 존재한다. 결 론적으로 정신분석학과 명리학 구조의 역동성, 균형과 잠재성은 인간 정 신과 내면세계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제공하여 이를 통해 심리상담에서 인간이 주체적 삶을 살아가도록 다층적 이해를 강조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난파와 식인이라는 극적인 소재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탄탄한 구성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원전 소설을 최첨단 3D 로 영상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지만, 본 연구에서 는 난파와 표류라는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서사와, 주인공 파이가 겪는 심리적 불안과 절망이라는 정신세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불완전하고 유 한한 존재인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에게 투사되는 야수성과 인간 성, 절망과 희망, 신과 구원의 문제는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로 귀결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파이의 두 가지 이야기를 인 간 존재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나의 아저씨〉를 정신분석학적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이 드라마가 정신분석학적 도덕을 함의 하는 멜로드라마임을 밝힐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나’와 ‘아저씨’의 관계가 정신에서 초자아와 자아가 맺는 성숙한 도덕적 관계를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자아는 인간의 개체와 인류의 계통을 발생시킨 시원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정신에 표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자아는 이들을 발양했던 ‘온기’와, 이들 에게 발휘할 수도 있는 광폭한 금제를 동시에 체현한다. 세계의 도덕적 징후들을 상징들로 보여주다가, 세계의 지고한 도덕을 끝내 부각하는 것이 멜로드라마다. 자아를 발양한 초자아의 온기는 세계에 숨겨진 지고한 도덕일 수 있다. 그러므로 멜로드라마는 이 ‘온기’를 끊임없이 상징함으로써 결국 이 의미를 서사적 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 멜로드라마를 흔히 정신분석학적인 드라마로 간주하고 이의 테마를 소위 ‘도덕적 비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논문은 이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첫째, ‘나’가 인간의 개체를 발양하고 인류의 계통을 발생시킨 초자아를 상징하는 점을 탐색할 것이다. 둘째, ‘아저씨’가 초자아와 근원 적인 동일시를 이루는 자아를 상징하는 점을 탐색할 것이다. 이로써 이 드라마가 초자아의 온기를 향유하 는 성숙한 자아를 재현하는 정신분석학적 멜로드라마임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연구자의 박사논문 중 일 부분에서 발췌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표를 지향한다. 첫째, 헤포코스키와 달시의 소나타 이론을 바탕으로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전 소나타 형식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지 밝힌다. 둘째, 라캉의 ‘오브제 아 (objet petit a)’ 개념을 리스트 소나타에서 나타나는 원조에서의 완전정격종지(Perfect Authentic Cadence, 이하 PAC)부재 현상에 적용한 내러티브를 제안한다. 헤포코스키와 달시의 소나타 이론 에 따르면 소나타는 제시부/재현부의 2주제가 PAC로 만족스럽게 마무리 됨으로써 필수 제시부 종결점(Essential Expositional Closure, EEC)과 필수 구조 종결점 (Essential Structural Closure, ESC) 을 이끌어내고 그로 인해 성공적인 내용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게 된다 (Hepokoski and Darcy 2006, 242). 소나타의 보편적 계약(generic contract)인 원조에서의 PAC가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에는 부재한다. 이 소나타는 원조 (B단조 혹은 B장조)와 제2주제 조성(D장조)에서 PAC를 성취해내지 못하고, 오직 발전부의 C# 장조에서만 PAC가 나타난다. PAC가 나타나는 발전부의 안단테 소스테누토 (Andante Sostenuto)에서는 코랄 형태의 반주 를 바탕으로 차분하고 묵상적인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이는 종교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 낸다. PAC의 등장, 그리고 사색적인 멜로디와 반주 형태는 B단조 소나타에서 이부분을 모든 것이 완벽한 곳, 즉 유토피아로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C#장조에서의 PAC는 소나타의 본질적 목표 점과도 같은 EEC와 ESC를 성취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원조의 PAC (I:PAC)는 B단조 소나타에 있어서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라캉의 개념 ‘오브제 아’ 와 연계될 수 있는데, ‘오브제 아’는 어떠한 주체가 욕망하는 궁극적인 것이나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는 없는 대상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원조의 PAC (I:PAC)는 B단조 소나타에게 있어서 결핍된 열망의 대상으로 ‘오브제 아’ 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대도시의 미적 모더니티 가운데 우울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보들레르와 오장환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 논문 은 우울을 분석하기 위하여 프로이트, 라캉, 크리스테바, 제임슨 등 정신분석학 을 원용하였다. 그리하여, 보들레르와 오장환의 우울을 비교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그들의 시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구원의 불가능성으로서의 우울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둘째, 그들의 시에서는 자 본주의적 세계관에서 가난으로 인한 우울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그 들의 우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보들레르는 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이상의 몰락으로서의 우울을 보여주었다면, 오장환은 식민지 조 선에서 유교적 이상의 몰락으로서의 우울을 보여주었다. 둘째, 보들레르는 우울 의 승화로서의 예술지상주의를 보여주었다면, 오장환은 우울의 극복으로서의 혁명주의를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보들레르와 오장환의 우울은 어머니의 자 신에 대한 증오가 근원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의 우울은 근대 자본 주의화와 대도시화에 따른 사회적 우울로서, 부재 원인으로서의 역사가 정치적 무의식 속에서 영향을 미쳤다.
「법화경」 불난 집의 비유에서는 탐ㆍ진ㆍ치로 인해 삼계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고통은 현실의 상황을 도피하고싶은 심리적 방어 기제가 쾌락이나 유희로 나타난 것이다. 중생들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알 수 없기에 불안을 지니고 괴롭게 사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들의 고통은 아동이 부모와의 애착관계에서 동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작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을 아동으로 보고 부처님을 훌 륭한 부모와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아동의 심리작용으로 파악한 것이다.
아동은 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 안정된 정서를 형성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로 성장하게 된다. 부모와 동일체에서 분리되어 가는 과정 중에 환경적 요인인 부모의 반응에 따라 아동의 성장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난다. 즉, 부모의 관심과 애정은 불안을 극복하고 독립된 자아로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분리 과정에서 부모의 무반응은 아동을 퇴행시킴으로 내적 성장이 어렵게 됨을 알 수 있다.
부모의 반응정도에 따라 만들어진 불안은 외부의 대상을 상징화시켜 원시적인 심리투사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집착하게 한다. 이 투사가 미분화되면 부정적인 면을 갖게 되고, 분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의식을 통해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면을 이룬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은 무의식과 의식의 대극 합일을 이루는 자기실현이다. 자기실현은 아동이 불안을 통해 정신적 경험을 함으로 두려움이라는 괴로움을 이겨내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아동이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조건은 부모의 안정된 애착 형성을 만들어 주는 조건들이라고 하겠다. 부모의 안정된 애착형성은 아동의 정신적 육체적 안녕을 지켜줌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불안을 극복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 자기의 이상과 자기실현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아동의 자기실현은 부모와 아동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이 작용에는 기질의 유전이나 경험에 의해 결정되고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불난 집의 비유와 상통점이 있다.
본고는 신경숙 소설을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신경숙의 소설은 결핍과 욕망의 존재인 인간의 근본속성에 대해 그려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여주인공의 히스테리적 심리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히스테리자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나 그것은 금지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결여를 메꾸려 한다. 또한 히스테리적 오이디푸스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은 언제까지나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환상을 가진다. <딸기밭>에서 주인공과 인물들의 관계는 프로이트의 연구에서 ‘도라의 사례’와 유사한 욕망의 구조를 보여준다. ‘나’는 정상적인 오이디푸스과정을 거치지 못한 인물로 욕망의 결핍으로 방황하는 도라의 모습과 겹친다. 나의 욕망은 희미하게 존재조차 잊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대신 완벽한 여성성을 향유하는 ‘유’에게로 향한다. ‘유’라는 욕망은 자유롭고 부드러운 여성성이다. 어느 것에도 만족을 구할 수 없고 순수하게 자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욕망을 가질 수 없던 ‘나’는 사랑에 대한 욕망조차 유를 통해서 얻었던 것이다. <바이올렛>에서 주인공 오산이는 아버지의 존재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상실에 대해 슬퍼하거나 애도할 수조차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산이는 동성친구 남애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슬픔이라는 정서를 대신 충족하려고 하지만 그 관계가 깨어지고 성인이 되어서는 금지된 사랑을 꿈꾸는 남애를 동경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딸기밭>의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자 하는 것과 <바이올렛>에서 오산이가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좌절로 자기파괴를 시도하는 것은 히스테리자로서 환상을 유지하는 심리기제가 파국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히스테리적 주체의 상황은 신경숙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소통의 단절, 고독감, 소외된 타자로서의 인물, 주제적 측면에서의 죽음 등과 관계가 있다. 소외되고 타자화되는 인물들의 고통과 방황, 그리고 인물간의 관계들은 정신분석학에서 히스테리자의 전형적인 주체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욕망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신경숙 소설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히스테리자의 공허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인간의 실존적 불완전함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This study set out to compare and analyze the influences Kabbalah, which was Louis I. Kahn's faith as a Jew, on his architecture based on Freud's psychoanalysis that had many exchanges with modernism and contemporary architecture and the analytical psychology of Jung that affected Kahn in examining his architecture and theories. The specific goals of the study were to shed light to Kahn's presence in contemporary architecture anew and establish the methodology of using psychoanalysis in building new theories of architectural planning. When the theories of psychoanalysis were introduced for comparison and analysis purposes, Kahn tried to differentiate his buildings by placing a function or symbolic central space at the heart of a building even though he did adopt a characteristic of modernism architecture, which was placing a core at the centre of plan, for a while. Such a tendency of his was based on Jung's opinions rather than Freud's and affected by Ecole des Beaux-Art. The analysis results also indicate that he conceived "Served Space & Servant Space," "architecture of connection" and "silence and light" that made up the essence of his architectural theory from the relationships between Ayin-Sof, Kabbalah's absolute god, and Sefiroth. It's also very likely that his often use of triangles and circles in his architecture was affected by the Tree of Sefiroth diagram of Kabbalah. His tendency is well reflected in Salk Institute and Philips Exeter Academy Library, where he placed a laboratory or courtyard at the center where a core was supposed to be, created a corridor or courtyard space between those central spaces and the core, and connected them one another with circulation. Thus he succeeded in embodying the concept of Tree of Sefiroth with which to perceive the being of Ayin-Sof into an architectural space, which is well proven with Mikveh Israel Synagogue where he directly applied the Tree of Sefiroth diagram. The synagogue also contained a hollow column that served as an important concept in his late architecture. The hollow column was also the result of him applying the concept of Sefiroth to the place where Ayin-Sof was reduced in Kabbalah.
본 연구는 자크 라캉이 제시한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서 자아가 주체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의 도덕교육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자크 라캉이 제시한 사유의 첫 세계는 상상계이다. 상상계에서 자아는 거울 속의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형성된다. 착각과 오인의 구조에서 형성된 자아는 공격적 성향을 갖게 되고, 나르시시즘의 성향을 갖게 된다. 자아는 오이디푸스 과정을 겪으며 상징계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자아는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며 법과 규범, 언어의 구조로 되어 있는 상징계에 진입하게 되고 주체화된다. 자아가 상징계로 진입하며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외가 일어나고 주체는 분열된다. 분열된 주체는 상징계에 진입하면서 상실된 자신의 존재 일부를 찾으려는 욕망을 갖게 되고 상징계에서 끝없이 이를 추구한다. 주체가 잃어버린 존재의 일부가 상징계에서 나타나는 찰나의 순간, 그 공간을 라캉은 실재계라 칭하며, 욕망은 실재를 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자크 라캉이 제시하는 이론은 욕망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게 하며, 진정한 주체의 형성을 위한 과정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사유를 요구한다. 실재를 향하는 욕망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주체는 끊임없이 실재를 향하는 욕망의 연쇄가 계속됨에도 상징계를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한데 오직 환상 속에서 대상을 ‘물(ding)’의 위치에 고양시키는 체험적 승화가 가능하다. 라캉의 승화는 ‘물’을 지향하는 욕망의 절대성이며, 새로운 것의 창조이다. 새로운 창조를 낳으며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라캉의 승화는 미학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지만, 도덕교육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의미는 더 확실해진다고 할 수 있다. 도덕교육의 영향으로 인간의 내면에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정서가 만들어지며 그로 인해 삶의 한 측면이 아닌 삶 전체가 변화되고 영향을 받게 되는 도덕적인 변화야말로 라캉이 가리키는 승화의 의미에 가장 부합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기존의 교육에서 욕망이나 욕구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두 가지 모두 절제되어야 더 아름다운 인간의 본능적인 면이라 생각되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도덕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주체 형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면서 도덕교육에 시사한 바가 크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