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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형교회에 대한 진단과 평가는 교회성장과 함께 결과적으로 탄생한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작업이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성장이 어떤 동기와 목적을 지향하며, 어떤 방법과 원리에 의해 수행되며 결과가 신앙과 교회 본질에 부합하는 가를 잘 살펴야 한다. 교회성장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과 원리가 교회의 본질을 바르게 실현하고 있는가를 신학적으로 살펴야 한다. 대형교회를 학문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교회 의 성장제일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러 한 문제가 집약적으로 나타난 것이 대형교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대형교회가 존재하며 교회연합이 어려운 한국교회 현실을 볼 때 건강한 대형교회가 국내선교와 세계선교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형교회를 비판적 관점에서 언급 하는 것은 현재 한국교회에 발생하는 잘못된 현상들이 ‘문제로 등장하 는’ 대형교회들에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상황을 직면하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교회 내부에 존재한다. 한국교회의 현주 소를 생각할 때 본 논문의 목적은 대형교회에 대한 문제진단과 평가를 통해 그것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들을 가려내고, 나아가 유사 한 방식으로 현재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있다. 이런 문제를 통해 한국교회는 자신의 모습을 진단하고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하며, 경계로 삼아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지역교회 중심의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대형교회가 공교회적 역할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며, 한국교회에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교회 들이 건강한 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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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오늘날 한국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대부분은 ‘종교가 사회에 어떤기능을 하는가?’라는 종교기능론으로부터의 비판이라는 특징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살아 있는 예수, 영으로 함께 하는 예수를 잃어버린교회의 모습이다. 만일 기독교가 단지 이 사회의 한 기능이라는 점에집착하게 될 때, 기독교는 자기 본래의 정체성에 관한 종교적 평가가 아닌 여타의 사회기관들과 같은 근거로 자기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하고,그 결과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종교로서 추구하는 순수한 목적에서어긋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위기에 당면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만족하려고 하기 보다는 먼저 종교본연의 정체성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고 해야 한다. 기독교는 종교의 원천적인 기능이 ‘종교의 실체로의 귀환’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여야만 위기를 극복하고, 종교적으로 회복될 수 있고,또 그런 면에서 본연의 임무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는 예수를 통해 배운 것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지금도 역사하는 그 영과 직접 접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의 아볼로와 같이 지혜와 언변에는 뛰어나 사람들을 감화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물세례만 있고 성령의세례가 빠져 있기에 ‘예수의 실체’를 경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가 그들의 건물 크기와 교인 숫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고자 하는 ‘종교적 실체’의 종교에서 바울이 성령세례를 주어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종교의실체’로의 귀환이 이루어진 것과 같은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바로 이것이 예수적인 종교에서 예수의 종교로의 귀환이다. 즉 종교적영성을 회복한 종교로서의 교회의 회복이고, 바로 그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에 관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종교적 실체’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실체’를 상실한 상태이고, 이것은 다른 말로 ‘예수의 실체’를 잃어버린 예수 없는 ‘예수적인 교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바덴부억의 종교 이해에서 그의 종교회복을 위한 이러한 통찰력에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은 구더가 말하는 선교적 교회론이나 콕스가 말하는 영성회복만이 미래의 종교의 가능성이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덴부억의 종교의 실체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차이를 언급해야 한다.그것은 그가 말하는 종교의 실체가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실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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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올해 2015년은 헨리 게어할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의 한국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 그의 활동은 당시 다른 선교사들과 비교해 볼 때(예를 들어 언더우드의 31년 사역, 1885-1916) 비록 17년(1885-1902)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이루어졌지만, 아펜젤러는 한국감리교회의 주춧돌을 놓았을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발전과 한국 근대화를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아펜젤러의 삶과 사역을 주로 다루었는데, 그의생애는 두 개의 특성으로, 그리고 그의 사역은 총 일곱 개의 특성들로설명하였다. 우선 아펜젤러는 중생을 경험한 후 감리교인이 되었고,그의 아버지는 아펜젤러가 장로교 목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감리교선교사가 되었다. 한편, 아펜젤러는 초기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선교 초기 미국과 한국 정부의 조언을 수용했던 착한 사람이었다.아펜젤러는 쌀(rice) 혹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사역했다. 물론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교회를 세운 초기 설립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교육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던교육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을 포함 대부분의 외국인들을 이끌었던 유능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중요한 점은 아펜젤러가 계몽운동가와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근대화,민주화, 그리고 독립을 위해 기여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아펜젤러는 영적인 회심을 경험했던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당시 외국인들, 한국인들과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있었던 착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수용과 저항의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즉 그는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만한 준비가 될 때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미국이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의 한국 점령을 암묵적으로 허락하거나 고종이 근대민주국가로의 변화에 대해 거부했을 때는 미국과 한국정부에 당당히 저항하였다. 그러므로 아펜젤러의 한국선교 130주년을 기념할 때, 한국의 모든 개신교회들은 반드시 그의 열정적인 영성,따뜻한 사회성, 냉철한 분별력에 관해 반드시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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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에든버러 대회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윤치호는 대회에큰 기여를 하였다. 낙관주의에 근거한 서구의 일방적인 선교와 추상적철학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서구교회가 토착교회와 함께 논의하며협력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또한, 한국의 선교사를 대표하여마펫은 선교지에서 현지사역자와의 에큐메니컬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한국의 실제적인 성장사례에 근거하여 에든버러 대회에 널리알렸고, 존스는 교육이 선교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자신의한국경험을 통해 에든버러 대회에 소개함으로써 기여하였다. 한편, 에든버러 대회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매우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는 맘몬으로 병들고 있으며, 해외선교지에서 한국선교는 곧 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선교사파송 세계 제2위라는 한국교회가 심각한 분열의 악습을 선교지에서도 답습하며, 현지사역자에 대한 우월적 태도로 에큐메니컬 협력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가난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였고, 교단을 초월하여 그리고 현지사역자와도 긴밀하게 협력한 초기 한국교회의 좋은 전통을 우리는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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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201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선교적 종교(missionary religion)로서 이슬람은 그 신앙 운동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종교 세력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무슬림들이 한국인들과 처음으로 접촉하고, 한국 땅을 밟게 된 시기는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성내 이슬람 사원이 세워질 정도로 무슬림들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무슬림들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지 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선교적 결실은 부진했다. 왜냐하면 당시 무슬림들은 원나라의 사신들로서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들에게 호 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한국 전쟁에 파견된 터키군은 한국 사회에 이슬람의 종교적 호감도를 ‘부정적(Negative)’ 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전화시켜 주었다. 한국의 우방국으로 참여 해 한국인들을 위해 과감히 피를 흘린 터키군들의 신앙 전통은 한국인들 에게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1970-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중동 국가들 역시 한국 사회에 이슬람 이미지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슬람의 이러한 긍정적 호감도와 함께 국내외 무슬림 들의 적극적인 선교(Da’wa)활동을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이슬람이 한국 사회에서 부흥하는 신흥 종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본 논문은 21세기 한국 내 무슬림 신앙공동체의 부흥 원인과 개종자들의 개종 사유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국 무슬림들 49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개종자들의 73%가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종교 정체성 변환했다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계 에 신선한 충격이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 이슬람 사원으로 향하는가? 필자의 연구결과 한국 무슬림들의 주된 개종 요인은 “지적 동기와 실험적 동기”가 강하다. 이슬람에 호기심을 갖고 그 종교를 깊이 연구한 개종자들은 기독교의 복음과 예배 행위보다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 의식에 더 매력을 느껴 교회를 떠나 마스지드 (masjid)로 향하고 있다. 본 논문을 통해 이러한 종교 현상에 대한 우리의 선교 신학적 고찰과 대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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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201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선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목회갱신 방안을 다룬다. 한국교회는 현재 여러 가지 쇠퇴의 증상들을 겪고 있지만 미래세대의 감소와 교회 부적응 현상은 한국교회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이 현상의 저변에 기성세대와 미래세 대의 문화적 충돌이 깔려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는 주로 한국전쟁과 전후 곧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경제적 근대화시기에 젊은 시절 을 보냈던 사람들로서 물질 중심적 사고와 양적 사고, 억압된 일방통행 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해 있는 반면, 미래세대는 90년대 이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서 부모 세대가 이루어 놓은 물적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하고, 탈중심화되 고 다원화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미래세대의 생활양식 과 의식은 기성세대에 의해 주도되는 교회의 모든 조직체계와 활동을 불신하거나 혐오하며, 이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과 문제점을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더 나아가 교회의 미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목회적 방안으로 아홉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교회학교를 교회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전인적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미래세대를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교회에 맡기는 교육에서 가정과 교회가 함께 하는 교육 체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다섯째, 구경하는 예배에서 체험하는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 여섯째, 이벤트 위주의 교육에서 진정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전환 해야 한다. 일곱째, 개인주의 신앙에서부터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교육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덟째, 거쳐 가는 사역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역자를 양성해야 한다. 아홉째,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구현된 목회나 교회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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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2014.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 역사 속에서 종교들은 대체로 평화롭게 공존하였으나 기독교 유입 이후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간 관계는 점차 갈등관계나 다원주의로의 양극화 또는 무관심이라는 양상을 띠어 왔다. 종교다원주의는 교회의 근간인 성경의 진리됨을 일종의 은유와 신화 또는 성경 저자들의 고백이라 주장하고 그리스도가 예수를 포함한 여러 이름이라는 주장으로 복음을 모호하게 한다. 반면 다른 종교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하여 왔다. 본고는 종교간 대립과 갈등의 부분에 관심을 두고 이에 주목한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하나는 인종과 종교 집단, 국적에 따라 나뉘어 곳곳에서 갈등을 넘어 폭력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종교대립이 살인과 테러, 전쟁으로까지 표출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종교적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것에 비하여 정도에 있어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종교적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교회는 배타적 또는 대립적 태도로 인하여 발생하는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본고는 종교간 관계의 문제와 요인들을 분석하고 선교적 교회의 본질에 입각하여 종교관계를 위한 교회의 역할을 고찰한다. 더불어 종교신학적 입장에서 정체성의 신학을 제시하며 이를 중심으로 종교관계의 나아갈 바를 보인다. 이를 위하여 십자가의 배타성 뿐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십자가의 포용성을 강조하며,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도적 사명을 받은 존재임에 주목한다. 보냄을 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사회로 나아가 문화와 종교와 소통하고 관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좆아 대립과 폭력이 아닌 치유와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교회의 통전적 제자화와 증인됨을 말하며, 또한 교회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상과의 소통과 치유가 있는, 세상이 있는 제자화와 증인됨이다. 본고는 교회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양하고, 정체성의 신학을 통하여 종교관계에 있어 자신의 헌신을 분명히 함으로써 진정하고 의미 있는 대화와 관계를 이룰 것을 촉구한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닌 정체성은 십자가가 드러낸 자신을 내어줌이며 이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타자를 위한 그리고 타자와 함께 하는 정체성이다. 더불어 교회가 자기부인, 약함과 겸손, 사랑에 근거한 성육신적 열림, 사회참여 및 협력을 통하여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강조한다. 교회는 세상과 많은 접촉점, 만남의 자리, 공통점을 지니지만 영적인 타협은 없어야 하며, 종교적 이상과 대치되는 부분들에 관하여 그 다름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함을 주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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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2014.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한국교회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선교적 교회에 대해 북미 교회 위기의 상황에서 복음과 문화와 교회 사이의 삼자 대화를 통해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제기된 문제와 대안을 배우고,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민중교회를 살핌으로써 양쪽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상호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 뿐 아니라 북미 교회에서도 선교적 교회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이기 때문이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고, 목회자들이 결국은 교회중심적 선교관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선교적 교회론이 태동된 배경과 신학적 전제와 정의, 신학적 회심과 신학적 방향을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선교적 교회가 지역교회를 강조하기 때문에 선교적 지역교회에서 신학함을 다루고, 지역교회로서의 선교활동이 갖고 있는 내용이 앞에서 언급했던 신학적 방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선교적 공동체를 육성하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또 선교적 리더십이 선교적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선교적 리더십의 기초와 형태를 다룬다. 그리고 선교적 교회론의 장점과 한계를 지적한다. 이런 선교적 교회론을 민중교회에 적용해 보면 우선 신학적 회심과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다. 북미교회가 복음과 문화와 교회 사이의 대화를 한다면, 민중교회는 시대적 과제와 씨름하려 했기 때문에 삼자 대화가 큰 의미를 갖기보다는 민중교회에 대한 민중의 반응이 초래한 민중에 대한 부정적 이해가 민중교회와 목회자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이전보다 더 확대된 민중선교를 하게 됨을 본다. 그리고 민중교회에서 선교적 교회의 구성요소와 신학함, 그리고 선교활동을 살펴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교적 교회론에서 본 민중교회의 장점과 한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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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2014.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재 한국의 선교학자들에 의하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선교적 교회론은 지역사회에서 지역교회들의 선교적 과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의 선교적 관점은 선교를 주로 해외지역에서의 활동으로 이해하여 왔으나 선교적 교회론은 세계선교의 차원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현재 교회가 속한 지역도 선교현장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길을 연구하고 있다.현재 한국의 지역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저성장, 전도활동의 어려움, 사회로부터의 불신과 같은 지역사회에서의 선교활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역교회들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학자들이 이러한 지역교회에 가깝게 접근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공동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교는 이제 지역선교와 해외선교를 이중적으로 구분하는 옛 패러다임을 넘어가야 한다. 지역사회 선교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 신뢰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며 인정받는 길은 전체 한국교회 차원이 아니라 지역교회 차원에서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필자가 사례연구를 통해서 지역교회가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본 글의 초점은 한국상황에서 현장에서 발견하는 실천적 모델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유형들을 찾아보고 지역교회의 목회자들과 소통하며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선교적 교회의 실천적 원리들을 제시하는데 있다. 실천원리는 필자가 오랫동안 국내의 교회들을 연구한 결과로부터 도출해낸 것이다. 물론 이 원리들이 절대적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발전적 과정을 전망하면서 지역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선교적 교회의 실천원리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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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2014.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한 문화적 상황은 서구교회 못지않게 선교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적 교회 논의는 한국의 문화적 상황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통 문화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 문화가 혼재한 한국사회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류 속에서 더욱 다문화 사회로 그리고 다원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독교에 대한 높은 반감과 무관심은 그들에 대한 전도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상황 속에서 전도와 사회봉사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도적 접근법을 넘어서서 선교적(missional)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선교적 접근법은 먼저 성육신적인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불신자들에게 다가가며 그들과 관계를 맺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선교적 회중들은 자신의 교회문화보다도 불신자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개념으로 복음을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먼저 불신자들과 편안한 만남이 가능한 근접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또한 민간, 정부, 복지기관, 기업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 지역사회의 복지와 유익을 추구하며 협력관계를 개발한다. 더욱이 지역사회에 긴요한 영리사업을 추구함으로 해당 사회의 유익을 구하는 한편, 불신자들과의 접촉점을 개발하는 가운데 선교적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이처럼 선교적 접근법은 다양하게 불신자들과 접촉하며 관계를 개발하는 가운데 자생적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자 한다. 선교적 공동체는 복음과 지역사회 문화와의 선교적 대면을 추구한다. 선교적 회중들은 먼저 지역사회 문화 속에 함께 거주하는 자로서 복음을 접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복음과 문화의 내면적 대화를 통해서 문화에 의해서 형성된 가정들과 전제들을 복음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내면적 대화는 교회 밖의 불신자들과 외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한 전제이며 선결조건이다. 선교적 회중의 내면에서 일어난 복음과 문화의 내적인 대화는 그들로 하여금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이 동일하게 복음을 붙잡고 또 복음에 의해서 붙잡힐 수 있도록 해석학적 렌즈를 제공하거나 불신자들에게 친숙한 용어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복음과 문화의 대면에서 중요한 부분은 상호간에 공통점을 찾는 일이다. 그러한 공통점은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접촉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사회 속에는 개인주의로 허물어가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대가족중심의 복지체계에서 정부중심의 복지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많은 복지적 욕구가 분출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지역사회 상황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는 선교적 회중들이 그 명령을 따르기에 좋은 토양이다. 지역사회 속에서 봉사와 섬김의 사역을 실천함으로써 공신력을 회복시키며 지역사회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고 있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하지만 복음과 문화의 대면에서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은 양자 간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나타날 경우이다. 그럴 때 돌이키고 회개해서 문화적인 관점과 가치관을 복음적인 것으로 바꾸어 나아가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교회는 대조사회로서 초월의 세계로부터 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는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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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2014.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한국의 교단들이 복음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적한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일단의 평가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적절한 것이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교단주의 혹은 교단들에 대한 평가들이었다. 그래서 먼저 2장에서 밴 겔더의 연구 성과물을 중심으로 북미 교단들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았다. 북미교단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교단들 대부분이 북미로부터 수입되었고, 그 성쇠 패턴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 평가들에 따르면 북미교단들은 역사적으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변화, 발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 각 교단들은 철저히 성서적인 기반 위에 성립되어야 하고, 역사적으로 상황을 중시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들이 복합적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조직적으로는 통전적인 선교적 교단으로 발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 선교적 교단은 교회를 해체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3장에서 우리는 앞서 추출된 기준과 방향성을 잣대로 삼아 한국 교단을 평가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 교단들의 통제시스템, 미래예측, 선교자원 활용이 상당히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적인 선교적 교단들을 추구해야 하고, 여전히 각 교단들의 상호예의가 필요하며,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선교대상들을 접근해야 하고, 각 교단들의 선교적 연계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여 교단들의 교세가 감소되는 위기적 상황에서 복음 속에서 그 극복의 단서를 찾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단의 모습과 선교적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 선교적 교회 마인드로 무장된 교인들이 많이 양육되어 배출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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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201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사회 속에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아지는 오늘날과 같은 때에 한국교회에 새로운 전도법이 강력하게 요청된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전도방법으로서, 선교적 교회론에서 언급되는 성육신적 전도의 한국교회안에서의 적용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복음의 소통을 위한 변화된 전도법을 제시하고자 시작되었다. 선교적 교회론은 유명한 선교학자 네슬레 뉴비긴의 통찰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통찰력이 더 많은 선교학자들의 관심을 받게 됨으로써, 최근 들어와서 가장 유명한 선교학적 주제가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선교적 교회론의 시작과 그 주요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에 근거하여, 선교적 교회론이 제공하는 새로운 전도법에 대하여 논한다. 과거의 전통적 교회들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전도를 “끌어 들이는 모델”로 이해하는 반면, 선교적 교회론은 전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성육신적 모델”로 제시한다. 선교적 교회론의 성육신적 전도는 더이상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모으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전도는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는 행위이다. 이 교회론에서 전도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상에 남아서 소금과 빛이 되는 것 이지,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새로운 전도법이 서구화되어가는 한국사회안에서 진정으로 복음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이 논문은 새로운 전도법을 개발하기 위하여 새로운 전도의 신학이 필요함을 인식한다. 과거 전도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방법과 기술에 집중한 나머지, 신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성육신적 전도법이 근거가 되는 전도의 신학을 제공하고, 선교적 교회론에 기초한 전도법을 제안하였다. 이어서 본 연구는 지역교회에서 실제적으로 성육신적 전도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였다. 부산 근교의 신도시 중 하나인 장유지역에 소재한 장유대성교회는 성육신적 전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교회의 모델이 전적으로 성육신적 모델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일반교회들이 지나치게 끌어모으는 모델로 전도방법에 집중하는 반면 성육신적 전도모델을 적극 실행함으로써, 성육신적 모델과 끌어모으는 모델의 보다 균형적 접근을 보여준다. 그 결과 반기독교적 정서가 날로 높아지는 오늘날의 한국사회 안에서의 보다 효과적인 새로운 전도법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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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outline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in Thailand and its characteristics, tasks and mission theological issues so that the thesis searches for the wa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to contributing to the unity and empowerment of the Church of Thailand. To achieve this aim, the thesis deals with the social characteristics and value systems of Thai society and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Roman Catholics and of Protestants. Through suggesting the contour of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in Thailand, some characteristics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are church plant, church-centered passion, project-centered and materialistic mission, and independent seminaries. Tasks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in Thailand are acceptance of Thai Christians' critiques on Korean missionaries, Korean missionaries' understanding of Thai culture in depth, meagerness and lack of mission strategies, halt in mission, missionary kids' education, partnership in mission, acceptance of difference of Thai church culture, understanding of the missionary tasks from the socio-cultural and religious situation of Thai church, and theological issues. The main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re are two kinds of church in Thailand: one belongs to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the other to 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Some Korean missionaries, however, established independent denominations and ran seminaries so that those denominations and seminaries obstructed the unity of Church in Thailand. These activities of Korean Church cannot be regarded as mission. Secondly, Korean missionaries to Thailand should not transplant the culture of the Korean Church to Thailand. Rather with Thai Church leaders, their missionary tasks are looking for the ways of how to communicate and share the Gospel with Buddhist Thais and identifying the appropriate ecclesiology in Buddhist society. Thirdly, the future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to Thailand depends on whether Korean missionaries could expand the model of the partnership in mission done by the missionaries belonged to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 the relation between the Church of Thailand and Korean missionaries. Lastly, such an expansion of the model of the partnership in mission will be possible only when the ecumenical churches and the evangelical churches can reach a common conclusion through coming to an agreement on the theological issues such as human-centered theology, religious pluralism and mission methods and mission theology in the Buddhist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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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early Korean church had experienced rapid growth and revival. What caused this phenomenon? What are its driving forces? Though so far there have been many papers on the quantitative growth of the Korean church, there are almost none which deals with it from the perspective of church planting. Therefore, in this paper, I tried to evaluate the Nevius Plan as a church planting theory that enabled the early Korean church to grow rapidly. As a result of this study, I found that the Nevius Plan as a church planting method has some strengths and weaknesses.The Nevius Plan is positive in that it enhances greatly the spontaneity of believers on the basis of Three-self Principle─self-support, self-governance, and self-propaganda. However, it is not an absolute principle that can unconditionally be applied in every condition. In addition, it is wrong to place the responsibility of evangelism and church planting on only native people. Such interpretation is a distortion of the Nevius Plan. This would be demonstrated by the supportive argument that when considering Adams Evangelistic Fund, the Nevius Plan did not collide with strategic fund supports. When the Nevius Plan based on Three-self Principle was introduced to missionaries in Korea, it was indigenized into a church planting method focused on self-support and self-propaganda. As a church planting theory, it regarded the church as an organic community full of vitality and pursued establishing indigenous churches in their own culture. Three-self Principle functioned as a concrete method for church planting. However, it should not be recognized as an end in itself or an absolute theory, rather it should be applied appropriately in a certain circumstance in which local churches existed. In his writing, John Nevius also agrees that supporting fund should be invested to several ministries such as school, and to hire paid workers in case of need. Therefore, to believe that the Nevius Plan insists on leaving the responsibility of evangelism and church planting to native people without any outer fund, is a distorted interpretation. As the Nevius Plan was applied all over the country, Adams Evangelistic Fund, which had a marked effect on church planting ministry in Taegu area, demonstrates how the Nevius Plan as a indigenous church planting theory could be harmonized with fund support. Three-self Principle is the important foundation for indigenous church planting. The Nevius Plan makes church planting not a humanistic enterprise but a dynamic work led by the Holy Spirit. On the other hand, if funds in the strategic church planting support workers devoted to the Three-self spirit, it will heighten the intensity of effect more than the case of when everything is left to only native people will. It is of course that beneficiaries’ sense of independence is necessary in this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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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researcher in this paper tries to suggest proper indicators of the missional church based on his critical evaluation to Dr. Kookil Han’s study of missional churches in Korea. The researcher describes ‘Missio Dei,’ ‘the Bible-centered evangelicalism,’ ‘the emphasis of indigenous culture,’ ‘practicalism,’ ‘the focus on the essence of the church,’ ‘dynamics of the Holy Spirit,’ ‘ministry of lay people,’ and ‘the pursuit of the dispersive church’ as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missional church. The researcher highly evaluates Dr. Kookil Han’s endeavor to study emerging missional churches in Korea. However, the researcher points out that some cases which Dr. Han introduced, do not reach to the criterion of the missional church in terms of the main characteristics of the missional church. In this paper, Songahk church, Hannam first church, Sungkwang church, Kwangyang-Daekwang church, Sungam church are described as emerging missional churches in Korea. From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se churches, the researcher factors out 12 indicators for the missional church: 1) the missional church is to be on evangelistic ecumenicalism based on theology of Trinity; 2) the missional church should exercise good influence to the local community; 3) the missional church needs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local society; 4) the missional church ought to understand the true value of the church; 5) the missional church should endeavor to be a living community; 6) the missional church must not have any internal conflict among people in the church for more than ten years; 7) the missional church needs to endeavor for the cross-cultural mission; 8) the missional church should support the horizontal structure in which the clergy and the laity lead the faith community together; 9) the missional church is to catch up with the changing trend of the region and the times; 10) the missional church should be financially independent; 11) the missional church ought to be ecumenical in working with others; 12) the missional church must work for the larger community where the local church stands.The researcher lastly argues that Korean church leaders need to dig out more missional churches in Korea and establish a reliable criterion indicating the missional church for developing a biblically faithful and culturally relevant missional ecclesiolog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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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2013.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is to study the missionary reflection of social service mission in Korea church after the 1945 liberation of Korea. When reflecting social service of Korea churches according to the historical features, it could be divided as before and after the 1945 liberation of Korea. The social service before the liberation could be summed up as ‘un-structural service period’ that had been conducted to Korean people in poverty, diseases and ignorance during the beginning of mission by the missionaries. The other could be summarized as ‘structural service period’ that is recognized the ideological conflict and the suffering from the division of Korea into north and south and the Korean war and ‘holistic service period’ that tried to avoid a crisis into social service mission as Korea churches in quantitative growth were experiencing stagnation. The mission before the l945 liberation was an education and a medical service as the approaching method in Korean society. But those services were one method for evangelism because they were based on conservatism theology of early missionaries. So, there was no missio-theological reflection for the extension of God’s Kingdom that Jesus Christ proclaimed in the world. Therefore early Korean churches are ‘un-structural service period’ that emphasizes only individual's spiritual salvation in the absence of socie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ocial service of Korea church was ‘solidarity period’ that tried to find a clue of national problem solution from a rural community movement. Korean churches in the 1920s began to recognize social salvation and the world’s structural problems. The rural community movement also developed actively for about 10 years from the 1920s to the mid of 1930s, but it should be stopped due to the oppression in and out of church in the late 1930s. Even though there were many believers who died of dire persecution, many main religious associations in Korea found the way to live in sympathy with the visit of Japan’s shrine. After the 1945 liberation Koreans experienced both the joy of liberation from Japan and fratricidal war. In this period the duty of Korea churches was to save Clients in want and received financial support from the western churches because of economical poverty and impoverishment. And the April 19 pro-democracy movement in 1960 was happened due to the political corruption, but the democratization retreated because of the May 16 military coup in 1961.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are promoted as focusing on the economic development, and UIM that helps the human rights abuses of workers origins. In this period Korean churches begin to open their eyes about the evil of social structure and illegality and corruption stemming from the huge gap forming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materialism and the negligence of humanity. So this is ‘structural service period,’ for Korean churches that are focusing on the individual’s spiritual salvation become to recognize the evil of social structure and injustice as mission work. Finally, since Korean churches after the 1970s are interested in the church’s growth and expansion, they are not into social service. The economic growth by the military regime caused trouble such as the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environmental disruption and materialism and formed urban slums. And also Korean churches that disregard these problems are contaminated by growth-oriented theology, but they surprisingly growed with the military regime. In this period the large scale gathering and revival are lively held, and churches closely cooperate in turning the concern about human rights and democratization into individual’s spirit salvation and blessing. As a result, Korean churches after the 1990s have been put aside in the society and stagnated constantly. Now Korean churches stand in between temptation of growth and responsibility of social service. The early Korean churches created the way to mission through social service building up many hospitals and schools as a method of evangelism. Therefore, Korean churches should revive a tradition of holistic mission with both evangelism and social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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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201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Peace should be approached by inclusivism, consisted of politics, economy, international relationship, social welfare, community health care, education, and culture. For the current government of South Korea has been obsessed with ideology rather than national interests during the last five years, the relationship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is in crisis. Theological foundations for reconciliation are truth, memory, repentance, justice, forgiveness, and love. The presupposition of reconciliation is to know what happened to the victim. The truth of the victim can be recognized through memory, that is the center of one’s identity. Repentance of the perpetrator is necessary for the process of reconciliation. In return the victim should forgive the perpetrator. In the whole process of reconciliation, love is a dominant factor. Theological foundations for peace are justice, reconciliation, nonviolence, just peace, and economic justice. Justice is the precondition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is the way to peace. Nonviolence is the hope for peace. Just peace is suggested by the WCC as an alternative to the just war and pacifism. Economic justice is identified as an essence for peace. Tasks of the peac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for reconciliation and peace reunification of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re such as nonviolent communication, nurturing of the peacebuilders, the peace education for encouraging the culture of peace, the care for the victim of violence and programs for violence prevention, media as a peace messenger, the peace mission in the public area, and strategies of peace mission in the troubled areas. The peace mission should be approached by inclusivism and Christian realism as well. For practicing the peace mission the Korean Church can learn about important lessons from the various examples of the peace mission done by the member churches of the WCC during the Decade to Overcome Violence, from 2001 to 2010. The Korean Church is encouraged to study the precious experiences of the Peace Church (the Mennonites, the Quakers, and the Brethren Church) for enacting the peace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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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201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is to study historical characteristics of social service mission in Korea church before the 1945 liberation of Korea. The classification of an era for historical analysis about social welfare in Korea church is not only necessary, but also is dangerous. Because it could be depended on subjective classification of the researcher, simplified complicated historical processes, and there would be a possibility to classify it individually or selectively. Nevertheless, a missiotheological reflection about christianity society service in the Korea mission history will be meaningful to many people who study social service mission according to the classification of an era and important to Korea church which is in stagnation. In this context, the summingup to social service mission of Korea church before the 1945 liberation of Korea according to period features is necessary. There are two kinds of mission service characteristics in the protestant. One of these is Luther, Calvin and Knox as an ‘ecclesiastical’ type, and the other is sure salvation by individual experience of faith as a ‘nonecclesiastical’ type. Mission movement after Pietism mainly took the 'nonecclesiastical' typ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hich preached the gospel to Korea also was offsprings of the ‘nonecclesiastical’ type. The faith of these people, as a type of pious Puritan, thought a concept of church is the same as an ark separated from the world. It shows at the constitutional law of the separation of religion and politics and the guideline of mission agency. Despite their spiritual salvation separated from the world, nonpolitical actions, and irrational and dualistic faith as what is called an ‘evangelist,’ these people began education and medical works as a starting point of mission at the beginning of Korea mission. These were based on the considerate help and charitable service by each missionary. This type of faith made emotional bond with Koreans in unhappiness as a method for propagating the gospel even though there was not an attempt grasping the underlying and structural problems which were causing miserable lives and political suppression to the pioneer missionaries. So, the local section was set up in ‘Christian Council’ in 1925 and the rural section was set up in 1930, but these were only recognized as ‘something for mission works.’ For example, the local section of ‘Christian Council’ in 1930 was limited only for the dormitory foundation, missionary sending, sewage factory demolition, temperance movement and combined execution of help works. This kind of early mission, which was an unstructural service has the same basis with pious ‘Mitleid’ to the lost souls. Pietism against protestant’s legitimism in the 17th century and illuminism in the 18th century was an important movement that awakened stagnated mission work newly, but focusing on an individual’s complacency and conversion it became the important motivation of mission and the important goal of mission only to save each person from corrupted world. Therefore, the mission of unstructural service has some limitations that restrict missionary works only as a province of converted spirit, given Missio Dei erecting the sovereignty of Jesus Christ and expending the kingdom of God in this world. It was from 1920 that Korea church started to recognize the basic cause of social problems systematically. And also this is originated from the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missiotheology. As the first World Missionary Conference held in Edinburgh in 1910 predicted the world evangelization hopefully, it was based on mission for a human being’s spirit salvation. Consequently, it did not develop the christianity's influence beyond individual spirit salvation. But after Edinburgh conference the world’s history was changing by contraries because of World War. So the World Missionary Conference after 1910 was not held. In Jerusalem conference in 1928 the recognition about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gospel, secularism and other religions was on the rise strongly. Thus, Korea church in the 1920s was interested in social welfare mission according to the stream of world missionary and the social change of Korea(Chosun). Since this was the creed copy of church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Japan, this social welfare mission had a problem not to include independency and a demand of the times. Many social service movements such as roll back of tuberculosis, medical work, settlement work and moderation movement, and service for women and children’s welfare, therefore, showed the limit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Korea church tried to find a clue of national problem solution from a rural community movement because it was based on a type of national church against Japan. The rural community movement also developed actively for about 10 years from the 1920s to the mid of 1930s. However, it should be stopped due to the oppression in and out of church from 1938, for it should choose either religious martyrdom or a conversion to rural community movement. Korea church have experienced a special period in which it practiced society service jointly with Korean people who were in poverty, diseases,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Nevertheless, Korea church separated from the society due to the limitation of its conservative theology that could not catch fundamental social problems structurally and the faith that salvation is restricted within the individual spirit. This is why Korea church is experiencing its stagnation since the 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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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201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outh Korea is a regional Protestant superpower with a successful mission history. It has the largest Christian congregation in the world: Yoido Full Gospel Church built by Paul Yonggi Cho. As of 2009, it dispatched more than 20,000 missionaries abroad. However since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and the breakdown of the Cold War in 1991, evangelical Protestantism in the country has been steadily declining. Moreover, its social credence is continuously lowering as a result of controversy such as hereditary transmission of pastors, clergy’s sex scandals, financial dishonesty, and privatization of the church. Because of this, Protestant Christianity in South Korea is in some real sense viewed as controversial.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sociocultural change in South Korea in the midst of neoliberal globalization in order to build the socalled ‘missional church,’ a collection of missional believers acting in concert together in fulfillment of the missio dei. The‘missional church’ is faith communities willing and ready to be Christ’s people in their own situation and place. The paper consists of the following sections. The introduction focuses on the emergence of the ‘missional church’ along side with the recent crisis of Korean Protestant Christianity. The first section describes some new cultural trends propelled by globalization. The second section explores sociocultural changes within present South Korea from the sociological perspective of mission: (1) from collectivism to individualism, (2) from ‘regulation society’ via ‘task society’ to ‘fatigue society.’ The third section investigates the outer situation of the ‘missional church’: (1) class disparity, (2) change in demography and family, (3) emergence of ‘N (net) generation.’ The conclusion provides some suggestions including ‘progressive Pentecostalism’ (in Donald Miller’s words) for building the ‘missional church’ with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under the turbulence and division in terms of ideology, region, class and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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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201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석기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인물로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노동이민을 가서 성실한 면을 인정받아 공부를 한 후 북감리교회 목사, Christian Church(그리스도의 교회, 유악기) 목사, Church of Christ(그리스도의 교회, 무악기) 전도자(환원운동가), 독립운동가(민족주의자)로 활동하였던 지도자였다.본 연구는 한국교회에 아직도 생소하게 느끼고 있거나 혹 이단은 아닌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정도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 즉 환원운동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연구이다. 환원운동은 성서로 돌아가자(성서권위회복운동),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원형의 교회 회복운동), 그리스도의 교회로 일치를 이루자(교회일치운동)는 운동을 말한다. 그러나 본 연구가 한 교파를 소개한다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오늘처럼 혼탁한 교파주의와 비성서적 교회들에게는 광야의 외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동석기의 헌신으로 미국 워싱톤교회 장로회의 결정에 의해 한국에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체계적인 선교를 하였다. 또한 미국 오토크릭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대학교 부지구입비, 건물 건축비, 학교운영비를 부담하도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동석기의 환원운동에 매료된 강명석, 강순명, 장성만 같은 인물들이 합류하여 환원운동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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