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70

        41.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2000년대에 들어서 연해주에서 고금속기시대 유적이 많이 조사되었는데, 이 지역에서도 유래가 없는 예이다. 드보랸카-1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석관묘가 조사되었는데, 고고유물을 비교분석한 결과 중국 길림에서 들어온 것으로 기원전 일 천 년기 말에 연해주 서부지역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기시대 석기 제작소인 쉐클라예보-21 유적에서는 석영제의 장신구가 대량 확인되었는데, 그 제작공정을 알 수 있는 석재의 원료 및 여러 공정 중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석영제의 장신구는 옥제장신구와 거의 유사한 형식이지만, 원료가 차이가 있다. 철기시대 제철유적으로 확인된 바라바쉬-3 유적은 얀콥스키 문화의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2기의 철 제작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다. 얀콥스키 문화의 무덤 유적인 소콜롭스키 유적은 적석무덤인데, 출토 유물은 중앙의 수혈에서 고배만이 출토되었다. 상기한 발굴 결과는 연해주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예이며, 모두 한국과 공동조사로 얻어낸 성과이다.
        5,100원
        42.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글은 가락동유형의 중심시기인 청동기시대 전기를 이분 또는 삼분으로 나누는 틀에서 탈피하여 세분된 편년을 기반으로 한 개별취락의 미시적 분석결과를 통해 금강유역 가락동유형 취락의 변천과 정을 검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금강유역 가락동유형 취락의 변천상을 지역적으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 미호천유역의 취락은 초현기의 양상이 타지역에 비해 뚜렷하지만 전반적으로 소규모의 단위취락 중심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갑천유역은 최초 용산동취락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형성을 나타낸 이후 재지화되면서 주변으로 확산되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단위취락과 중위취락으로 발전하게 되며 4단계에 최대 성장기를 나타낸 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장은 대부분 5단계를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지만, 6단계에도 중층의 구조를 갖는 관저동취락에 결집하여 상위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금강 중류역은 2단계부터 상위취락인 송담리를 중심으로 취락의 본격적 성장이 확인되는 점이 타 지역과 비교되는 특징이다. 3단계에는 취락 성장의 균질성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으며 외부로부터 파급된 문화가 금강유역 전역에서 재지화되는 시점으로 파악되는데,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대부분 중위 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각 취락별로 성장의 동력이 분산되지만, 4단계에 이르러 상위취락인 송원리로 다시 집중된다. 송원리취락은 이후 6단계에 이르기까지 상위취락을 유지하는데, 특히 금강유역 일원에서 전기의 취락 대부분이 쇠퇴하는 6단계에서도 송담리와 함께 상위취락을 유지하고 있다. 끝으로 전기 마지막단계에는 취락의 영역이 축소되어 주거밀도가 높아지는데, 상위취락을 유지하는 송원리취락 등의 공간범위가 직경 약 150~200m 정도이며, 갑천유역의 6단계 상위취락인 관저동취락도 직경 150m의 공간범위이다. 이와 같이 취락영역이 줄어드는 점은 대외적 취락 영향력의 감소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취락내 구성원간의 유대감과 동질성의 향상을 통해 효과적이고 집중화된 취락의 운영이 가능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8,300원
        43.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800원
        44.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석제무기에 대하여 영남지역의 취락과 무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에는농경의 발달에 따라 집단 간에 원시전쟁 수준의 싸움을 전제로 전용무기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무기는 專用무기와 用途轉用무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무기의 형태를 띠고 있는것은 석검, 석촉, 석창이 있다. 석검은 상징적인 위신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나 후기의 석검은 실제 무기로서도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촉이나 석창은 생계를 위한 수렵도구이면서 유사시에는 무기로사용되는 즉 수렵구와 무기의 구분이 모호한 병용의 시대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수렵용에서 무기로의기능적 변화를 추정해 보았다. 이외에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석구를 볼라의 가능성으로 추정했으며,생활도구라도 유사시에는 타격무기로 용도전용이 가능한 무기로서 석부, 석겸 등을 들었다. 무기는제작기법에서도 변화가 확인되는데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전기에 사용되던 찰절기법과 타격기법이 효율적인 생산기법인 양극기법으로 전환됨을 알 수 있다. 각 유구에서 확인된 무기의 비율과 조합양상의 차이는 계층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지역별로는 무기류의 부장비율과 주거지 출토비율이 대비되는 서부경남권과 대구권의 해석을 토대로 충적지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농경의 비중이 높아 사회적 긴장이 높았으며, 이로 인해 무기부장이 일부계층에 집중되고, 생활유적에서는 무기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가설을 수립하였다.
        6,600원
        45.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경기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여, 유적의 시기별 편년을검토하고, 이에 맞는 주거지의 배치를 통하여 취락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중부지방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구분은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 안과, 전기(전·중·후), 중기(전·중·후), 후기로 나눈안으로 크게 대별될 수 있다. 두 구분 모두 토기문양과 유물의 조합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있어서 큰 차이점은 없지만, 후기를 점토대토기단계로 인정하는 것은 공통점이며, 돌대문토기 단계를 조기로 인정할 것인의 여부, 구순각목공렬토기의 중기여부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는 토기문양의 계기적 변천과정이 잘 나타나는 후자의 안을 기준으로 시기적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시기별 주거지 배치관계도 살펴보았다. 전기취락의 구조는 정상부의 능선을 중심으로 구축하였고, 계획배치 형태보다는 주거지간의 공간확보차원에서 조성되었고, 중기에는 구릉사면에 집중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후기에 들어서서는 외곽으로 배치되고 있는 특징이 확인된다. 이는 중기중반이후에 인구가 줄어드는 양상과도 부합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편, 중기에 분묘가 확인되기 시작하는데, 집단묘보다는 소규모로 조성되는 현상이 간취되는데, 이는 분묘공간의 확대로 정의될 수 있으며, 농경과도 연관된다. 대형 및 중형취락의 기준에 대해 살펴본 결과, 김포 양촌, 소사동,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유적을 대형취락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소사동유적은 전기~중기에 걸쳐 시기별로 고른 분포를 보이면서,마을이 운영된 점이 돋보이며, 양촌리,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4개유적은 중기에 집중된 유적으로,유적 상호간의 거리가 근접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한단위의 취락으로 판단하였다. 경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변천은(물론 지역적 변천은 인정하며), 중기전반에 가장 취락의 규모가 융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전기에 있어서 평택 소사동유적과 같은 규모가 큰 유적도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중기전반에 규모가 최정점을 이루다가 중반이후로 규모가 쇠퇴하기 시작하는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9,000원
        46.
        2013.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발굴의 증가로 돌대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전기 주거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있다. 돌대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기는 돌대문토기 뿐만 아니라 이중구연토기, 거치문토기, 공렬문토기 등이 함께 확인되고 있어, 이를 이른 시기의 양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남강유역에서도 이러한 토기들이 돌대문토기와 공반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돌대문토기와 형태가 유사한 폭이 좁은이중구연토기가 확인되었다. 이 이중구연토기와 돌대문토기는 서로 공반하기도 하고, 단독으로도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남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성립기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이다. 즉, 돌대문토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단독기의 설정이 가능한지, 혹은 돌대문토기를 비롯한 이중구연토기, 거치문토기, 공렬문토기 등을 포함하는 조기의 설정이 가능한지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개별주거의 분석과 함께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토기의 편년을 진행하였다. 주거지와 유물의 편년을 통해 남강유역의 조전기주거지는 4단계 2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ㆍ2단계는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a를 중심으로 하는 남강유역 Ⅰ기로, 기존의 조기와 전기를 포함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1단계에는 돌대문토기가 중심이고, 향후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양상이 확인될것으로 판단한다. 2단계는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a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가 남강유역에 유입되면서 정착해 가는 시기로 보인다. 3-4단계는 이중구연토기bㆍc와 구순각목문, 공렬문을 중심으로 하는 남강유역 Ⅱ기로 설정 할 수 있다. 기존의 전기 전반 일부와 전기 후반을 포함하는 시기이다. 가락동식토기가 출토되는 3단계는 주거지의 수적 열세가 있고, 2단계와 주거지에서 공통되는 점도 있지만, 돌대문토기가 소멸된다는 점에서 1ㆍ2단계와는 구분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4단계는 흔암리식토기가 다수 확인되고, 이중구연이 흔적으로만 남아 공렬문만 시문되거나 단사선문만 시문되는 경우로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거지의 소형화와 함께 나타나는데, 공렬문이나 구순각목문, 구순각목공렬문의 비중 또한 점점 높아진다.
        6,000원
        47.
        201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서부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의 기둥배치, 노지, 저장공, 출입구와 같은 내부구조를 파악하여문화상의 일면을 살펴보았다. 가락동식과 역삼동식 주거지가 노지형태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것과 같이, 주거 내ㆍ외부 구조도 차별된다. 가락동식 주거지는 ‘주심도리+이열-도리ㆍ보식 구조(Ⅰa)’의 우진각형(또는 팔작형) 지붕이며, 역삼동식 주거지는 ‘주심도리식 구조(Ⅲa)’의 맞배형 지붕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상부구조의 안정성이 장점이지만 증축이 상대적으로 힘들고 목재 사용량이 많은 단점을 가진다. 후자는 증축에 매우 용이하지만 지붕 하중을 견디기에는 다소 불안정하다. 따라서 두 형식의 주거는 장ㆍ단점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취락별로 선택 채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두 구조의단점을 보완하는 점에서 ‘중앙 초석 또는 주열 구조(ⅡㆍⅢcㆍⅢd)’가 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주거의 기둥배치는 선호된 열(도리)×행(보)의 간격이 존재하고 있어, 칸(間)의 개념과 함께 목조건축 기술이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벽체는 주심구조에서 판재형 나무를 사용한 형태로바뀌며, 이는 목재가공과 결구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노는 소형이 주거 안쪽에 설치되고, 중ㆍ대형이 출입구와 인접한 공용공간에 위치한다. 소형은 취사와 난방에 모두 사용되는 노의 기능 가운데 취사에 효율적이며, 난방이 필요하지 않는 시기의 제습과 조명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저장공은 노 반대편인 출입구 주변에 밀집 분포하며, 저장량은 식량자원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겨울과 초봄 정도만 소비할 정도로 여분의 잉여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거 내부구조는 취사공간, 공용공간(작업ㆍ식사ㆍ취침), 저장공간, 출입구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생각된다.청동기시대 전기 대형주거지는 단독 출입구, 집중된 저장공, 노의 사용으로 보아 ‘공동생산ㆍ공동소비’가 이루어진 사회경제 체제로 판단된다. 이후 주거가 소형화되고 내부 저장공이 점차 소멸해 가면서, 생산ㆍ분배ㆍ소비ㆍ잉여 재분배 등과 같은 사회경제 체제가 다각적으로 변화하였다.
        8,100원
        48.
        2012.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각 표본집단(토양시료)이 모집단에 대하여 동일한 대표성을 갖게 산출하고 식물유체의 수량 비교시 통계적 유의성을 갖춘 계측치를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본고는 상대오차와 확률에 기초하여 여러 유적에서 채취된 토양시료 표본의 크기를 표준화하는 통계법을 제시하였다. 표본 크기의 표준화는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식물유체 간 수량의 차이가 단지 표본의 크기 차이에서 비롯됨이 아니라 문화적 원인 즉 식물 자원 이용상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통계적 대표성과 토양시료 채취는 기본적으로 군집표집의 일환이므로 토양시료의 수를 표본의 크기로 각 토양시료에서 추출된 종자의 밀도를 변수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표본 크기 표준화 방법을 남강댐 수몰지구 어은 및 옥방 유적 청동기시대 유구에서 출토된 식물유체에 적용하여 그 실효성을 타진하고자 한다. 또한 여러 표본(예, 유적, 유구)의 변수(종자 밀도)를 비교할 때 상이한 보존율과 복원율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표본간 종별 중복비율을 모식도를 통해 제시하였다.
        5,200원
        49.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형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토기로 그 생김새와 체적이 다른 토기에 비해 특징적이어서 저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호형토기는 출토량이 많지 않고 완형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드물어 그동안 연구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보조 자료로써 활용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의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호형토기를 주체로 하여 속성을 분석하고 형식을 분류하였다. 그리고 각 형식과 공반유물을 통하여 단계를 설정하였으며, 단계에 따른 변화상을 용량의 변화상과 함께 살펴봄으로써 호형토기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를 알아보았다. 호형토기를 각 크기에 따라 변화양상이 다르다고 판단하여 대·소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각 크기에 따라 속성을 분석하고 형식을 분류하였다. 그 결과, 대형에서는 동체형태에 따른 변화상을 확인하였고, 소형에서는 구연형태에서의 변화상이 시간적 흐름에 더 민감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결과를 용량분석과 종합하여 보았을 때, 소형토기는 단기저장용기로, 대형토기는 장기저장용기로서의 기능을 지녔다고 상정된다. 청동기시대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분화되고 핵가족화 되는 과정에서 장기저장용기는 동체형태의 변화를 통해 용량의 변화를 보이며, 단기저장용기는 구연형태의 변화를 통해 기능적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즉, 호형토기 형태의 변화는 용량의 변화로 연결되며, 이러한 용량의 변화는 곧 사회·경제적 변화를 보여준다.
        7,700원
        50.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아직까지 조사예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자료가 증가하고 있고, 유구의 밀집도는 떨어지지만 호남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호남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미사리유형을 비롯하여 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 등이 모두 확인된다. 이들 각 유형은 분포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데 미사리유형은 현재 순창 원촌과 담양 태목리에서 확인되었으며 미사리유형의 한 요소인 미사리식토기는 익산 영등동, 섬다리에서도 확인된다. 가락동유형은 대체로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동부내륙과 동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호남지역에서 조사된 전기유적은 주거지와 출토유물을 통해 모두 3기로 분류하였다. Ⅰ기는 각목돌대문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미사리유형과 이중구연단사선문을 특징으로 하는 가락동유형으로 미사리유형은 동부내륙의 순창 원촌유적에서 확인되며, 가락동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부내륙지역에서 확인된다. Ⅱ기는 가락동유형이 북서부지역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새롭게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가락동식토기는 이중구연의 요소가 퇴화되지만 아직까지 이중구연의 요소는 남아 있다. Ⅲ기는 (세)장방형 주거지의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방형으로의 평면이 정형화된다. 전기의 특징적인 노지는 설치되지만 Ⅲ기 후반의 가장 늦은 단계에는 일부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원형 송국리형주거지가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방형주거지에 설치된 노지가 사라지고 원형 송국리형주거지의 특징인 타원형구덩이가 설치되는 등 주거지의 변화가 확인되고 토기의 문양은 대부분 사라지고 무문화된다. 그러나 동부내륙지역과 동남해안지역과 같이 일부지역에서는 역삼동식토기의 특징인 공열문 요소가 늦은 시기까지도 지속된다.
        6,400원
        51.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폐기라는 행위는 단순히 버린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폐기 양상을 통한 폐기 양식을 분석하여 청동기시대인의 행동 양식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폐기는 故意(의도적) 폐기와 不意폐기로 구분된다. 故意폐기는 주거인의 의도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이동으로 인해 폐기하거나 폐기장ㆍ토기요지ㆍ야외노지ㆍ의례ㆍ무덤 장소로 전용되는 경우 등이 있다. 不意폐기는 주거인이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상황이나 자연 재해로 폐기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失火ㆍ飛火ㆍ放火등의 화재, 홍수, 화산 및 지진 등에 의한 자연 재해 등이 있다. 이러한 폐기 원인에 따라 방치ㆍ해체ㆍ소각 행위가 보이며 유물 위치 및 수량에 따라서도 구분됨을 알 수 있다. 각 유적 내 개별주거지에서 보이는 폐기 양상을 분석한 결과 송국리문화의 폐기 양식은 시기별ㆍ지역별ㆍ규모별로 확인된다. 시기별 폐기 양식은 주거지의 평면 형태 및 중복 관계, 유물 등으로 보아 폐기장으로 전용된 주거지가 유적 내에서 늦은 시기에 해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별 폐기 양식은 서해안지역에서 확인되는데, 특정 위치에 완형 유물을 정치한 폐기 양상이 서해안지역에 집중되어 보이고 있다. 규모별 취락의 폐기 양식은 위에서 세분한 폐기 양상들이 다양하게 보이는 취락을 오랜 기간 존속되어 온 대규모 취락의 폐기 양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계룡 입암리 유적의 경우는 소규모 취락의 폐기 양식으로 이동성이 강한 반복 점유 폐기 양식으로 생각된다.
        10,200원
        52.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금강 중류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일반적으로 가락동유형으로 대표되어왔다. 이 지역에서 가락동유형은 둔산식 주거지와 가락동식토기를 표지로 한다. 둔산식 주거지는 과거 둔산식-용암Ⅰ식-용암Ⅱ식으로 분류하였으나 최근의 조사 자료를 재검토하여 세분된 분류안을 제시할 수 있다. 가락동식 토기와 기타 공반된 토기의 문양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락동식토기 고유의 문양요소는 출현과 소멸의 과정이 진행되는데, 주거지의 변화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최근 이 지역에서 기존의 가락동유형과는 다른 양상의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유적이 조사되었다. 대평리유적은 충적지에서 취락이 조사되었는데 미사리유형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대율리유적은 환호취락으로서 그 성격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외에 일부 유적에서도 가락동유형과 다른 성격의 주거지가 조사되어 금강 중류역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이제 다양한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락동유형의 취락은 지형적으로 구릉의 평탄면에 입지하며. 하천과의 관계속에서 볼 때 주로 2차 하천의 주변에 위치한다. 취락의 형태는 취락지리학의 성과를 참조하여 (단독·분산)점상취락-면상취락으로 구분한 후 각 유적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금강 중류역의 가락동유형 취락은 세대공동체 중심의 소취락을 기본구조로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별 변천상을 통해 중대형 취락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확산되고 시간에 따라 취락의 분포상도 증가함을 알 수 있으며 형태는 점상취락에서 면상취락으로 변화된다.
        8,000원
        53.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들어 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에 관한 연구는 많은 진척을 이루었다. 연구의 주제가 다양해졌을뿐 아니라 최근에 연해주 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연구 대상지역의 범위 역시 넓어졌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는 토기 연구에 집중되어 있으며, 유형을 명확히 정의하고 개별 유적을 해석함에 있어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본고는 기존에 연구자마다 해석을 달리했던 유적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이와 함께 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 유적의 유물복합체 전반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 결과 무문의 홍도 및 외반구연 심발형 토기, 흑요석기와 마제석기의 조합을 특징으로 하는 오동유형을 새롭게 설정하였으며, 또한 기존의 유형 체계를 수정 보완하였다. 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문화는 興城類型이 출현함으로 개시되었으며, 오동유형을 거쳐 유정동유형으로 대체되고, 수북-신광유형을 마지막으로 두만강유역 청동기시대 문화는 종말에 이르게 된다.
        7,800원
        54.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아산만지역은 역삼동·흔암리유형의 취락이 가장 밀집되어 분포하는 지역이다. 또한 금강유역의 가락동유형과는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분포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어 양자의 관계를 조명하기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에 해당한다. 또한 중기의 송국리유형의 기원 및 형성과 관련해서도 다수의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산만지역은 한반도 청동기문화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산만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의 구성은 전기에 해당하는 생활유적이 대부분이다. 일부 중기 단계의 유구들이 전기 단계가 중심인 유적들에서 소수 확인되는 양상을 보이며, 순수하게 중기 단계의 유구로 구성된 유적의 분포는 매우 희박하다. 또한 분묘, 경작유구 등 생활유적 외의 다른 성격의 유적은 거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도 생활유적으로 한정된 취락에 중심을 두고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전기 전엽에는 독립된 생활단위인 개별 주거지가 구릉의 능선을 따라 병렬 배치되는 양상을 보이며, 이후 전기 중엽 단계에 인구증가에 따른 주거지 밀집화가 발생한다. 전기 후엽에는 구릉정상부의 공지를 중심으로 소주거군과 주거군이 형성된다. 전기 전엽과 중엽에 소수의 수혈이 취락 곳곳에 분산되어 분포하였지만, 후엽에는 주거군 내에 군집된 채 확인되고 있다. 이는 주거군에 포함된 구성원들이 공지 인근에 조성된 초·대형주거지를 중심으로 통합된 생활단위를 구성하여 수혈을 경영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러한 양상을 토대로 전기 후엽에 이르러 보다 구조화된 취락의 모습을 갖춰 나가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한편, 전기의 인구밀집지였던 곡교천유역은 중기 단계에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반해서 충청 서북부의 서산지역은 반대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후 이러한 인구이동은 차령산맥 이남의 금강유역으로 확대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8,400원
        55.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서지역은 한국 고고학에 있어서 송국리유형의 발생지로 고고학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현재까지 송국리형주거지와 전기의 대형 취락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그에 반해 후기의 송국리 형주거지가 아닌 노지가 설치되어 있는 방형주거지는 상대적으로 연구성과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방형주거지가 송국리유형의 형성과 함께 호서지역의 후기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토하기 위하여 본고를 작성하였다. 우선 방형주거지의 분포지역을 서해안지역, 아산만지역, 금강 상류지역, 금강 중·하류지역으로 구분하였으며, 주거지의 분류와 출토유물, 절대연대 등을 토대로 3개의 단계를 설정하였고 이를 통해 방형주거지는 전기 후반에 출현하여 후기에 지속적으로 분포포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방형주거지의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송국리유형과의 관계를 통해 호서지역의 청동기시대 후기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방형주거지와 송국리형주거지의 중복관계를 통해 병존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내륙지역에서의 지속적인 전개양상, 주거 자체에 있어서 원형과 방형이라는 근본적인 형태적 차이를 기반으로 청동기시대 후기의 문화흐름에 있어서 송국리유형의 획일적인 문화상 전개가 아닌 송국리유형과 방형주거지 간의 교류를 통한 문화적 병존과 전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100원
        56.
        201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청동기시대 석기의 취락 내 제작 양상에 관한 연구이다. 석기의 제작 단계는 대체적으로 타격에 의한 1차 성형의 1단계, 고타와 약마를 통해 거친 면을 다듬고 세부적인 형태를 조정하는 2단계, 세부 마연을 행하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상 설정된 단계별 미제품과 석기 제작 도구의 출토 양상, 그리고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구 내부의 흔적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결과, 유적의 점유시기보다는 입지에 따라 제작상에 차이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락 내 석기 제작의 시기별 변화상은 각 유적에서 출토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 비율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가공 도구 가운데 고석의 주거지 당 출토량이 전기에 비하여 후기에 급감하는데, 고타기법이 합인석부의 제작에 주로 이용되는 점과 합인석부가 화전농경에 관련된 도구임을 감안하여 이러한 농경 방식이 청동기시대 후기에 감소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비 비교 결과 전기 단계에 훨씬 더 많은 미제품과 파손품이 발생하였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후기 단계에 석기의 형태가 제작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한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밖에 입지·시기별 변화와 관계없이 주거지 면적이 넓어질수록 미제품과 완제품의 출토량이 많아지는 경향성도 확인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실시한 석기 제작 실험 결과, 선형석기의 제작에 있어서 양극기법의 유용함과 석도의 천공 작업 시 고타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석부는 강한 암질의 석재를 대상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형태가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작업을 최소화 하였으며, 특정 부분을 마연하는 경우 가공 대상물을 고정시키고 소형의 지석을 움직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6,600원
        57.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김해 율하리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중심으로 시신 매장방법에 관해 검토한 것이다. 유적은 주거+저장+분묘+의례공간으로 구성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이중 무덤은 총 10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종류는 지석묘(개석식 묘역지석묘, 개석식 지석묘), 석관묘(상형석관묘, 석축석관묘), 목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이며, 여기에 채용된 매장주체부의 종류도 상형석관, 석축석관, 石+木棺, 목관, 옹관, 토광 등이다. 특히 지석묘의 매장주체부는 석축석관이 주를 이루지만 옹관을 제외한 모든 형식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것은 지석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상석이나 묘역을 통해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내부적 속성인 매장주체부는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石+木棺이 사용된 무덤은 최근에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데, 목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매장주체부에 수용된 결과라 생각된다. 따라서 목관묘와 토광묘도 다른 묘제들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조성되었던 무덤형식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단위 유적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지만 확인된 무덤의 수가 많고, 다양한 묘제들과 매장주체부가 복합적으로 출토되기 때문에 한국 청동기시대 무덤 매장방법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6,000원
        58.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북한강유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와 석기제작시스템에 관한 연구이다.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돌대문토기문화, 가락동유형문화, 역삼동유형문화, 각형토기문화 등 다양한 문화요소를 받아들인 전기의 문화는 역삼동유형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성이 강한 중기의 문화 로 전개되며 후기에 이르러 주거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점토대토기문화와도 접촉한다. 전기 중·후 엽 역삼동유형의 주거지의 내부구조가 노지중심의 구조에서 작업공간이 분리되면서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되고 취락내에서는 공방지가 성행하게 된다. 즉, 중기에는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된 주거지와 함께 공방지의 수적 증가가 관찰되고 후기에는 규모가 대폭 축소된 방형주거지가 출현하며 공방지 또한 지 속된다. 이러한 전개과정 속에서 주거지의 내부구조변화와 공방지의 출현이 석기의 제작과 밀접한 관 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접한 석재 산지로부터 조달된 석재의 보관·선별·분할·분배는 공방지에 서 공동작업을 통해, 분배된 석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석기의 세부제작공정은 개별주거지에서 행 해지는 병행적인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은 건축기술의 차원에서의 주거구조의 변화와 취락내 독립적인 공방지 출현과 관련이 깊으며, 전문생산 체계로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로서 농경 위주보다는 다양한 생계활동을 기반으로 삼아 계급사회로 이 행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7,800원
        60.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수렵과 채집은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하였던 생계 형태로 농경의 비중이 높아진 청동기시대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청동기시대 수렵의 종류로는 활수렵과 창수렵, 함정수렵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함정수렵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이 신석기시대와 구별되는 청동기시대 수렵의 특징이다. 함정수렵은 수렵에서 손실되는 노동력을 절감함과 동시에 수렵의 시점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을 고려하면 청동기시대에 농경의 비중이 높아짐과 동시에 수렵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의 비율이 감소하였기 때문에 함정수렵을 채택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채집의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수렵처럼 노동력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농경활동을 통해 구축된 협업체계를 통해 단시간에 많은 사람이 채집활동을 실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력을 절감하는 형태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동기시대에 수렵과 채집에서 변화가 발생한 시점은 청동기시대 후기로 판단되는데, 이 시점은 수도작이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렵과 채집에서 확인되는 변화가 노동력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전작보다 수도작의 확산으로 발생한 사회변화가 보다 컸던 것으로 생각한다.
        5,200원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