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먼저 공자의 언행록인 『論語』에 보이는 배움에 관한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크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한다는 내용과 문헌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두 부류의 기록으로 나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른 사람의 장단점을 통해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 다는 생각과 不恥下問의 자세를 언급한다.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들 특히 문왕이나 무왕 그리고 주공과 같은 성인들을 통해 통치의 도를 배우고, 뿐만 아니라 다른 많 은 현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의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에게 돌이켜보고 고쳐나가며 배울 것을 희망했을 것이다. 유가 전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내용은 공자가 『詩』를 통해 말하는 능력 즉 정신적 사유능력을 기를 수 있고, 『禮』를 통해 남과 더불어 원만하게 교류할 수 있는 행동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은 유가전적들의 효용에 대한 언급에 힘입어 전국시기 이후 점차 ‘六經’이라는 유가경전의 틀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그 과정을 논술하였다. 끝으로 유가가 주장하는 이상적 군자의 형상이 어떤 모습인가를 잘 드러내기 위해 군자와 소 인을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군자는 궁극적으로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그 방법에 대한 언급은 맹자에 보이는데, 즉 마음을 다해야 性을 알 수 있다는 언급으로부터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心을 통해 性을 부여해준 천명을 알게 되고, 천명을 앎으로써 인간의 도와 세상에 필요한 가르침 즉 배움을 알 수 있고, 인간은 배움을 통해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유가 사상은 한 인간에게 있어 배움의 궁극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면, 배움을 통해 달성하려는 사회적 이상은 『大學』에서 그려지고 있는 內聖外王의 실현에 있음을 논술하 였다.
Korean dictionary Compilation by Chinese influence, the corresponding terms used in the case of Korea dictionary is worthy of further study. This article focuses on the Korean dictionary usage chirography terms, reflecting the distinctive features of the Korean dictionary compiled:Interpretation of the word selection emphasis on practicality;Annotation more scientific;Using the new term.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9세기 장보고 휘하의 신라인들이 항해에 나침반과 첨저선을 이용하여 동북아 해역을 자유롭게 항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항해에 나침반이 이용된 것은 중국이 11세기이고, 유럽이 12세기이다. 게다가 우리 선조들은 평저선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 논문은 중국 주산군도에서 흑산도를 잇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서해남부 사단항로)의 이용 시점에 관하여 해양기상학적 관점에서 재검토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고대 동중국해 사단항로에 관한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뒤, 동중국해의 해황(海況)을 바람과 해류, 안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뗏목으로 동중국해를 항해함으로써 장보고 선단이 동중국해 사단항로를 이용하였음을 입증하였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분석 결과 6 7월 해황은 동중국해 사단항로의 범주 항해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도 기상 조건이 아주 유리했을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으로 가능했음을 확인하였다. 뗏목 탐사의 경우 제시된 항로도와 실제 선위간 이동경로와는 다소 상이하였고, 속력 또한 1.7 2노트 내외로 빠르게, 그것도 직선에 가깝게 이동한 것으로 분석되어 아주 이례적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명확한 사료와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동중국해 사단항로는 1068년 이후 주항로로 이용되었다는 설이 견지되어야함을 재확인하였다.
중국 불탑은 불교 전래와 함께 인도 불탑이 서북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면서 시작되었지만 인도 불탑과는 전혀 형태를 달리 하는 목조 중층누각형의 모습이어서 그 기원이 주목된다. 중국의 불교 건축은 東漢代불교 전래와 함께 불탑 건축으로 시작되었으며 3세기 이전의 불탑은 3층 이하의 규모로 불사리를 모신 탑묘, 불상을 모신 佛殿, 불교 강연과 행사를 하는 강당, 승려들이 머물 수 있는 승방의 기능을 함께 하는 탑 중심 사찰로 건축 형태와 배치는 전통적인 祠堂과 예제 건축과 닮아 있었다. 탑의 모습도 笮融의 부도사, 四川省昇邡화상전의불탑 형상으로보아 처음부터 중국 전통 목조 건축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도 역시 초기 중국 불교의 격의적인 성격과 불탑의 祠廟적 이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의 불탑은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고 출발하게 되었다. 4세기 이후 중국은 불교 전래가 본격화되고 많은 대, 소승의 경전들이 번역되면서 격의 불교적인 수준을 벗어났으며 불교가 국가에 의해 장려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佛事에도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특히 아육왕경의 번역과 유포에 따라 아육왕탑의 조성과 사리 신앙이 고조된다. 이러한 불교의 질적, 양적 확산에 힘입어 아육왕탑의 등장, 불탑의 고층화라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며 사찰도 강당, 불전, 탑, 대문 그리고 승방 등의 다양한 부속 건물을 갖춘 모습으로 정비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사찰은 규모가 커지고 불탑은 고층화된다. 5-6세기 남북조시대는 서역을 통해 전래된 간다라 탑의 영향으로 목조누각형 다층탑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리부도로 알려진 카니슈카 대탑을 비롯한 간다라, 서역의거대한다층탑과 전통목조 중층누각탑 형식이 결합하여 고층화, 각층 탑신의 상부가 곡선형 尖拱이나 梯形으로 표현되는 감실과 불상장식, 그리스와 페르시아풍 기둥장식 등의 외래적 요소가 나타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간다라 양식이 짙게 반영되었던 북위시대 목조 중층 누각형 불탑은 수, 당대를 거치면서 점차 외래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각 시대의 중국적 건축 요소가 강화되면서 중국 고유의 목조 누각식 다층탑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Our ancestors made the brilliant achievements in studyingCharacter structure in Ancient China, which laying the foundation for today’s research. From Han to Qing dynasty, the achievements of Characterstructure study mainly are: First, realized the importance of Characterstructure; Second, improved the systematical theory about Characterstructure: 1. The theory of grapheme constituting character. 2. Thehierarchical structure theory about Character. 3. The theory of thegrapheme having different functions. Third, made a substantial researchabout Character structure: 1. The research about the character. 2. Theresearch about the grapheme. 3. The systematical research about the whole Chinese Characters. But these researches had some shortcomings: not making concepts distinction between “ radicals ” and “ Chinese character component”; lacking of the character’s formal structure research, and so on. In ancient China, we had already constructed the systematical theory about character structure, this fact is helpful to correct the mistake about the claim that “in ancient china, there was no scientific theoretical system of philology”.
참위의 학문은 동한이 정치와 사회생활 그리고 학술사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가 동한 말년에 쇠미해졌다. 원래 참위 서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의해서 조대가 바뀌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통치자는 그 중의 위험을 점점 의식하게 되었고 위진 이후에는 수차례 금지되다가, 수양제가 정식으로 금지한 후에는 참위의 서적은 대량으로 손실되었다. 참위라는 것은 신학적이고 미신적인 색체를 띄고 있기에 아예 유가 경전과는 장기적으로 병행 되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비교적 빨리 유가 경전과 분리되어 나갔다. 그러나 참위의 서적은 전부다가 완전히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또한 허다한 천문, 역수, 지리학 등의 방면의 고대 자연과학 지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처강”과 같은 수천 년 중국 군주 전제 사회의 최고의 윤리 규범이었던 삼강도 《白虎通義》라고 하는 것에 확실히 기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禮緯 《含文嘉》 중에서 인용해 나온 것이다. 도참은 처음에는 인간과 천지 혹은 자연과의 교류의 차원에서 논의 되던 것으로 시작하여 유가 경전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학문의 폭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역대 제왕들이 그것을 정권 탈취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왜냐하면 도참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스스로 에게 다시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에 그것의 위력을 아는 자는 그것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중국의 금서사상 참위는 후대로 갈수록 배척 되어 왔음에도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 신비스러운 잔영으로 남아 있다.
In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some herbs are used after toasting or roasting. The process is called "Zhi Tan" in Chinese, which means charring, and the herbs after the treatment is called carbon medicine. Carbon medicine is widely used to arrest bleeding in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The paper introduces the records, development and applications of carbon medicine in ancient China. The earliest record found about carbon medicine was in the remains of Han dynasty (BC206-A.D.8). The paper also introduces the process of charring herbs and mechanism of carbon medicine in arresting bleeding. Calcium iron and tan released during the charring are believed as main factors for arresting bleeding, helped with porous surface structure of active carbon.
The Chinese ancient accounts of timing observations of 48 lunar eclipses and the secular variation of the Earth's spin speed are discussed. A series of ΔT expressing the secular deceleration of the Earth's rotation was obtained. The average increase rate of length of the day is about 1.5 milliseconds per century.
There has been a profound tradition of aesthetic cultivation in China since ancienttimes, which has developed with unique characters and styles owing to the special cultural background. This paper tries to analyze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Chinese concept of aesthetic education and evolution of the thoughts of aesthetic cultivation in ancient China, summarize the features of the thoughts of aesthetic cultivation in ancient China, retrospect the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aesthetic education modern China, and analyze the existing problems and influence factions in the current aesthetic education in Chinese schools. At the critical moment of the reform and development of aesthetic education in Chinese schools, a review of the thoughts of aesthetic
cultivation in ancient China is instructive and necessary.
우리나라 고대농업과 기술을 형성하는 데 직접간접으로 기간역할을 해 왔던 고대중국의 도작기술은, 이미 한전농법과 농본관(정신)을 기원전에 완성하였으며, 특히 심경과 정수 및 토양비옥도 유지를 위한 경전법을 중심으로 도작기술이 발전되었고, 따라서 이앙법, 정조식 심종법, 철제농기구 사용, 수리를 위한 피당 축조기술이 앞섰고, 다양한 지역에서 재해를 회피하거나 다양한 용도의 품질공급을 위하여 벼 품종의 분화가 잘이루어져 왔다. 또한 중국농업의 발상지가 화북이었기 때문에 인희지광의 특성에 맞는 조방적 도작기술로서 화경수누법과 세역법이 태동되었고, 한무제와 ‘참위’학자들의 음역오행설이 농업관과 연계되면서 파종이나 작목선택에 대한 기술이 만술적으로 발달한 경향도 있었다. AD 6세기경의 제민요술 부터 14세기의 왕복 농서 에 이르기까지 도작기술은 지속적, 상가적으로 분화발달되어 왔으나 원대 이후에는 정체된 경향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여말 농업과 농사직설 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