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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6.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근세 삼척은 대관령을 넘어 한반도 중부 지역과 통하는 도로망과 동해안의 해안 도로를 따로 한반도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망, 그리고 바닷길의 해운 교통을 통해서 삼척 이외의 지역과 인적·물적 교류를 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삼척은 신라가 지증왕 때 동해안을 따라 도로를 만들면서 일찍이 주를 두었고, 이곳에 이사부를 주둔시켜 우산국을 정벌했을 뿐만 아니라 동해안 지역의 물류와 인적 이동의 중심지로 기반을 잡았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수도 신라를 중심으로 도로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삼척이 동해안 도로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 수도가 개경으로 바뀌면서 전국의 도로가 개경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그 과정에서 동해안의 도로상 중심지는 삼척보다는 위쪽에 위치한 강릉이 더 중요해졌다.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개경에서 한성으로 천도되어 역시 전국의 도로망이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동해안의 경우에는 대관령과 직접적으로 통하는 강릉이 대도호부가 되어 동해안의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삼척은 강릉과 평해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의 중앙에서 고대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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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5.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면적 개벌의 대안으로서, 대상 개벌은 생산림지의 생태 조건 보전과 임분 재생을 모두 고려하는 작업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상 벌채 기법의 적용 및 효율성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본 연구는 강원도 삼척에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소나무림 대상 벌채 (10m, 20m 및 40m) 처리 전・후의 하층식생 반응 및 소나무 재생과 임분 환경 변화와의 상관성을 방형구법을 적용하여 조사 및 분석하였다. 하층식생 피도 및 종다양성은 대상 벌채 넓이에 상관없이 교목 종 및 광선호 종의 확장에 의해 증가하는 경향이었고, 신갈나무, 맑은대쑥 및 산딸기 등의 벌채 후 잔존 교목 및 광선호 종들의 활발한 증가가 관찰되었다. 대상 벌채 구역의 소나무 정착은 수관층 환경 (광량 및 수관열림 도) 및 토양나출도와는 정의 상관, 그리고 하층식생 및 임상 목질잔해물의 피도와는 음의 상관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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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15.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periments for catch and cluster analysis on the catch by gillnet for the Pacific herring were conducted using traditional nylon net (PA) and developing biodegradable net (PBS) with different monofilaments of #2 (=0.23 mm) and #3 (=0.28 mm) in diameter between 2011 and 2012, and of #2, #2.5 and #3 in 2013 in the eastern coastal waters of Samcheok, Korea. The total catch during the experiments was 3,337kg in weight and 16,757 individuals in number. Though the catch ratio of the Pacific herring in 2011 and 2012 was 97.4% and 98.7%, respectively, that of the Pacific herring in 2013 was 73.6% as the biggest and followed by goldeye rockfish (8.6%), black edged sculpin (8.4%), atka mackerel (7.2%) and Alaska cod (1.0%). The ANOVA analysis on the total catch in relation to net material showed that there was not statistically significant difference at the 5% level between nylon net (PA) and biodegradable net (PBS) (p=0.91). With the cluster analysis on the catch in relation to net material (PA, PBS) and twine thick (#2, #3), it showed the influence of net material on the catch was greater than that of twine diameter in this experiment. From the test of homogeneity on the catch by the gillnet with PA and PBS in which several species were caught in 2013, there was not statistically significant homogeneity in relation to net material (p<0.005). That meant the traditional gillnet of nylon (PA) was more efficient than the biodegradable (PBS) gillnet to catch several kinds of fish, however the PBS gillnet was better than the PA gillnet to catch the target Pacific her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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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5.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신라가 동해안을 따라 영역을 확대한 과정을 지리적 조건이나 육로 ․ 해로와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특히 동해안 해로의 중심으로 삼척의 역사적 위상을 주목하였다. 신라는 소지마립간 9년(487)에 왕경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친 官道를 수리하였 다. 이미 1세기 중반∼2세기 초반에 탈해이사금이 등장하고 음즙벌국을 정복하면서 동로와 북로가 개설되었다. 신라는 당시에 실직곡국을 정복하면서 북로를 신라의 영역을 확대하는 주요 통로로 중시하였다. 지증마립간 6년(505)에 수로와 해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운송과 교역, 군사 활동의 이점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舟楫之利’가 제정되었다. 동시에 삼척과 흥해, 영 천 등지에 12곳의 성을 쌓은 뒤에 실직을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신라는 6세기에 해로의 정비와 관련하여 삼척을 강조하였다. 동해의 해안선은 육로로 통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灣이 잘 형성되지 않 았기에 큰 항구가 발달하기도 어려웠다. 다만 양양, 강릉, 삼척, 흥해, 영일, 포항 등지에는 하천 유역에 제법 넓은 평지에 형성되었다. 삼척은 바닷가에 연접하였으면서도 오십천을 통해 낙동강 상류는 물론 남한강 상류로 가는 육상교통로를 갖추었으며, 넓지는 않지만 오십천의 하구를 군항이나 수군 양성 기지로 쓸 수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따라 지증마립간은 삼척에 주를 두고 이사부를 주둔시 켰다. 지증마립간 13년(512)에 이사부는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그는 지도로왕 때 沿 邊의 관리를 맡아 내륙수로는 물론 해로에도 익숙하였고, 연안 해로는 물론 원양 해로에도 익숙하였다. 그는 왕경과 가까워 기밀을 유지하기에 편리하면서 선박 제 작에 필요한 수림이 울창하였던 흥해 일대에 주목하여 선박의 제조와 수군의 양성을 주도하였다. 나아가 연안 해로를 따라 선박과 수군 등 인적․물적 자원을 운송하여 삼척을 동해안 최대 군항으로 활용하였다. 그런 다음에 원양 해로를 이용 하여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은 신라의 동해안 인식을 확고하게 하였다. 신라 왕실은 삼척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인식을 꾸준히 유지하였다. 삼국통일 전후에 왕실과 緣故된 의상과 원효, 진표 등은 낙산사와 고성군을 찾았다. 그들은 무열왕 5년에 삼척에 설치한 北鎭에서 연안 해로를 따라 북상하였다. 신라 말에 헌강왕은 일본의 사신 파견과 관련하여 울산 일대의 항구와 포구에 관심을 가졌다. 더불어 신라 北邊의 상황과 관련하여 삼척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것은 삼화사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당시 왕실과 결연한 해인사 승려 決言은 860년 쯤에 삼척 삼화사 철불 조성에 깊이 관여하였다. 당시의 해인사 승려들은 헌강 왕은 물론 정강왕이 주관한 선왕의 명복을 기원하는 佛事를 주도하였다. 자연히 신라 왕실은 삼화사를 통해서 삼척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삼척은 동해안 일대의 여러 군현 가운데 신라의 영역 확대는 물론 신라 국가의 안녕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끊임없이 주목되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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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2015.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강원도 삼척은 해양과 육지가 만나는 해안가 지역이다. 해양은 육지와 함께 삼척 역사를 형성해온 어엿한 활동 공간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근대시기 삼척에서의 해상 이동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지역 정체성 형성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근대시기 삼척지역은 2등도로를 중심으로 도로가 수선 정비되었으나 험로여서 자동차 수송이 원활치 않았다. 철도는 1940년대 들어 광물수송 간선 구축 방침에 따라 부설된 탓에 생활 교통과는 거리가 멀어 상대적으로 해상 교통과 해양 이용이 삼척지역에 요긴하였다. 근대시기 신문에 실린 해상 이동 관련 신문기사와 구술자료, 자전적인 글 등을 자료로 삼아 해상을 통한 삼척지역의 인적 교류와 물류 이동 양상을 나누어 살펴 보았다. 해양 활동 공간과 그에 연계된 항포구가 근대 삼척의 정체성 형성에 아래 와 같은 특징이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근대 시기 삼척에 있어서 해양은 일회적 단순한 교류를 넘어 연속적으로 동해안의 연안 도시 및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긴밀하게 접촉이 이루어진 활동 공간이었다. 부산~원산 해로 기항지로서 인적 및 물류는 분명한 목적 아래 이동 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둘째, ‘신흥 삼척’ ‘물화의 집산지 삼척’ ‘공도 삼척’으로 요약되는 일제 말기 삼척의 이미지가 형성된 데는 활발한 해상 이동과 군수물자 집결처로서 정라항1)을 중심으로 한 여러 항포구 기능에서 파급되는 영향이 컸다. 셋째, 근대 시기 삼척의 항포구와 해양은 지역민 생업과 관련된 중요한 터전이었으며, 무동력선 운영과 원근해 어업, 해조류 채취 경험을 축적하였다. 넷째, 삼척의 해상 국방 요충지적 성격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항을 통한 군수물자 반출, 식량 공급 등 강화되었으며 이 같은 군사적 성격은 해방 직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미군정청 국방국은 동해안 최북방 해군기지로 삼척을 설정하였다. 다섯째, 항포구 어촌이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삼척포진성 유적 파괴와 오십천 수로 변경, 집단 이주로 인한 거주 불안, 헐값의 토지판매, 외지인과 노동자 유입으 로 인한 사건사고, 공장 안전사고, 축항설비 미비 해상 사고 등의 문제를 표출하였다. 여섯째, 삼척의 각 항포구는 육로교통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아 물산의 집산지는 되었으나 배급처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여 거점도시로 확대되지 못하였다. 도시 형성에 필요한 각종 기반시설을 지역민에게 전가시킨 일제의 식민 통치 결과 삼척읍내~정라항간 도로조차 완비되지 못할 정도로 한계를 노정하였다. 삼척을 해항도시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해양은 근대 삼척의 역사 경제 교통 항구 군사 등에 영향을 끼쳤으며, 정라항은 시대성을 대변하는 역사적 현장으로 이해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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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15.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삼척의 불교문화는 선덕여왕 11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에 들어가 관음보살의 聖蹟을 찾던 중 두타산에 이르러 흑련대를 처음으로 창건하여 현재 삼화사의 시초가 되었다는 󰡔삼화사사적󰡕, 이 후 선종이 전국적으로 퍼진 통 일기에 범일국사가 강릉의 굴산사를 세운 이래 삼척지역에도 불적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아 신라 하대에는 유입, 전파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의 불교문화의 전래 이후 고려시대 말까지 호국불교로 크게 발전하였고, 강원도의 사찰의 불교는 더욱 신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강원도에 분포하는 불교유적, 유물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 지 않아 전반적으로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본 글은 강원도 삼척시·동해시·태백시를 중심으로 문헌조사를 통해 폐사지의 현황을 살펴보고, 현지조사를 통해 사지가 유존하거나 출토된 석조물, 와편 등을 함께 검토하였다. 문헌기록과 현지조사를 통해 삼척·동해·태백 내에서 폐사지는 현재 총 61개가 확인되었다. 삼척 34개소, 동해 11개소, 태백 16개소이며, 연구소에서 확인한 폐사지는 삼척 4개소, 동해 3개소, 태백 5개소이다. 현재 삼척지역의 폐사지는 완전히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사지로 추 정되거나 구전되는 곳을 확인한 결과 유구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자연재해 및 현상변경으로 등으로 인하여 명확히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는 곳들이 요소에서 확인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 폐사지 조사를 통하여 시·발굴된 유적은 흥전리사지, 지상사지, 본적사지 등이 있다. 그 중 최근 흥전리사지가 시·발 굴조를 통하여 건물지, 석축, 탑지 등을 확인하였고, ‘국통’명 비편, 청동제 장식, 철제 초두 등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문화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종합정비계획을 수반한 정밀발굴조사가 이루진다면 인근의 폐사지와 비교연구는 물론 강원도의 불 교문화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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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2015.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강원도 영동지방 최남단의 삼척지역은 남쪽으로는 경북 울진군, 봉화군과 접하고 있어 경북 북부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중간 연결지점의 문화전파 경로로서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으며, 석조미술 역시 이와 관련하여 형성·발전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신라석탑은 동해 삼화사 삼층석탑, 태백 본적사지 삼층석탑, 삼척 흥전리사지 삼층석탑, 삼척 대평리사지 석탑 등 4기가 확인되는데, 비교적 적은 수량만 남아 있지만 9세기 신라석탑의 결구구조와 양식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화사 삼층석탑의 별석 탑신받침, 흥전리사지 석탑의 삼중기단, 표면 장엄공 등은 신라석탑의 일반적인 양식 흐름 속에서도 매우 주목되는 특징으로 삼척지역이 9세기 신라석탑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흥전리사지가 위치한 도계 읍은 경북 북부와 강원지역을 연결해주는 곳으로 당시 중요 교통로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다양한 석조미술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 불교문 화 발달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석탑을 통해 본 삼척지역의 불교문화는 경북 북부와 강원지역을 연결해주는 중간적 위치이지만, 불교문화의 발전 양상은 강원 남부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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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2015.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통일신라의 명주와 삼척군에 대하여 󰡔삼국사기󰡕 기사를 토대로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명주의 지명은 고구려의 하슬라에서 신라의 하서아=하서량으로 변해 갔으며, 문무왕부터 경덕왕에 이르는 시기에는 하서(주)의 지명이 사용되었다. 이후 경덕왕대의 지명 개정을 거쳐 명주가 등장하였으며, 신라 하대에 이르기까지 명주와 오랜 지명인 하슬라가 함께 사용되다가 신라말 고려초를 경과하면서 명주가 우세해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주치인 명주의 영현들 가운데 정선현과 속(동)제현의 입지를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지역으로 진출하는 교통로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리지의 명주 군현들의 입지를 검토하면서 지리적인 입지에서 약간의 의문을 남기고 있는 곡성군과 녹무현의 입지적 배경을 검터하였다. 이들 군현은 경상북도 내륙지방에 위치하였는데, 이를 왕경의 방어라는 시각에서 설명하였다. 신라는 통일 후 왕경을 중심으로 한 지방사회의 재편성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왕경으로 연결되는 주요 간선교통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9주 체제 내에서 운영되었던 10정의 설치가 교통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결과 곡성군과 녹무현의 입지가 결정된 것으로 보았다. 삼척군은 명주와 더불어 통일 이전 동해안 지역의 핵심 거점이었다. 이러한 사 실은 주치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하슬라와 실직(삼척)으로 이치되는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무열왕대 설치된 북진(北鎭)은 하슬라(명주)지역의 해 상 방어를 위한 해군기지로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삼척지방에서는 중고기 북쪽 경계지역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중대의 사해 제사가 열리기도 했지만, 통일 이후 고구려고지 방면으로의 국경의 확장과 주치가 명주로 고정되면서 동해 안의 핵심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잃어 갔다. 이어서 하대의 전란 속에서 읍세가 위축되면서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4개의 영현 가운데 3개의 영현이 미상 지명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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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 동해안 삼척시 갈남 해역의 조간대와 조하대에 생육하는 해조류의 군집구조 변화와 무절산호조류의 분포현황을 2010년 8월부터 2011년 5월까지 계절별로 총 4회 조사하였다. 연구기간에 녹조류 14종, 갈조류 33종, 홍조류 65종이 출현하여 총 112종 채집 및 동정되었다. 이 중 29종은 일 년 내내 출현하였다. 생물량을 근거로 한 우점종은 구멍갈파래(Ulva pertusa), 불레기말류(Colpomenia spp.), 모자반(Sargassum fulvellum), 톳(Sargassum fusiforme), 몽당잎모자반(Sargassum muticum), 지충이(Sargassum thunbergii), 작은구슬산호말(Corallina pilulifera)과 우뭇가사리(Gelidium elegans)였다. 해조류의 연평균 생물량은 건중량으로 66.7 gm-2이었고, 여름에 107.5 gm-2로 최대였고 가을에 36.2 gm-2로 최소값을 기록하였다. 기능형군 분석에서는 성긴분기형(coarsely branched form)이 전체 해조에서 40.0~48.6%를 차지하였다. 엽상형(sheet form), 사상형(filamentous form) 및 성긴분기형을 포함한 기회종인 생태학적 상태그룹 ESG II는 46∼61종으로서 76.7∼82.4%를 차지하였다. 각상형의 무절산호조류는 모든 계절에 출현하였으며, 대표적인 종이 혹쩍(Lithothamnion lemoineae), 혹돌잎(Lithophyllum okamurai), 납작돌잎(Lithophyllum yessoense), 나팔가시돌잎(Hydrolithon gardineri)이었다. 동해안 갈남 해역에서 무절산호조류의 피도는 선행 연구에서 36.8%였으나, 금번에 11%로서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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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2013.10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본 연구는 강원도 삼척시 일대천연갱신 시업 임지의 곤충상을 사전에 조사한 후 향후 시업처리를 실시한 후 일정 기간별 곤충상변화 연구에 대한 기초자료의 수집 을 위해 수행되었다. 본 연구를 위해 강원도 삼척 큰저골 일대의 산림지역 중 간벌강도별로 시업처리 예정지를 대상으로 2012년 8월에 곤충상을 조사하였다. 채집조사방법은 Bucket trap, Light trap, 및 Pitfall trap을 이용하여 곤충류를 채집하였다. 채집된 곤충은 건 조표본으로 제작하여 동정한 후 분포종목록을 작성하였다. 이들 연구결과는 향후 임업시업별로 곤충다양성의 변화를 탐색하는데 활용될 계획이다. 채집조사결과 Bucket trap, Light trap의 경우 53종 543개체가 조사되었고 Pitfall trap 8종 92개체 가 조사되었다. 또한 Funnel trap의 경우 8월에 설치하여 10월에 수거하는 방법을 통해 총 9종 17개체의 곤충상이 조사되었다.
        33.
        2013.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필자는 삼척 관련 지리지와 고지도에 기록된 울릉도ㆍ우산도 관련 기록을 통해 삼척을 비롯한 삼척 주변 지역과 울릉도ㆍ독도와의 친연성과 그 관련 기록을 찾고 정리하여 분석한다면 일본의 주장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울릉도ㆍ독도 지역이 진정 우리의 영토이고, 우리와 함께하는 터전임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삼척지역에서는 15세기 기록에 이미 울진현을 비롯한 삼척지역을 중심으로 울릉도ㆍ독도를 삼척 관할로 여겨 각종 地理誌의 古蹟條와 姓氏條ㆍ島嶼條ㆍ人物 條, 古地圖에 표기하고, 이를 언급하여 이 지역 주민들 삶의 터전이었음을 기록으로 남겼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와 같은 기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정책 변화와 관리 파견, 그리고 다양한 변동 사항을 그 이후에 만들어진 각종 지리지나 고지도에 반영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삼척지역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하여 신라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복속한 이래 지금까지 큰 관심과 애착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신라 이래 울릉도와 독도가 삼척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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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2013.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일본에서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근거로,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과 1403년 조선의 울릉도 주민쇄출은 조선에서 독도를 포기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주장대로 울릉도에서 주민을 쇄출하여 울릉도를 무인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인화의 이유는 울릉도가 동해안 왜구침탈의 중간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무인화이후 우산무릉등처안무사 와 순심경차관을 파 견했고, 조선후기에는 수토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했다. 최초의 수토사였던 장한상의 기록은 『울릉도』와 『울릉도사적』에 상세하다. 이 기록들을 통해 울릉도 수토계획 및 목적, 구체적인 수토내용, 수토당시의 독도확인과 왜에 대한 경계 등을 알 수 있다. 수토제의 시작은 안용복 피랍사건이후, 왜인의 울릉도 침탈을 막기 위해,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고, 진을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실시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민의 울릉도 이주가 어렵게 되자, 수토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울릉도』나 『울릉도사적』의 내용 중에 울릉도에서 대관령이 보이고, 동남쪽으로 섬이 보인다는 기록을 통해 그 섬이 독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이 옛날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없다는 기술의 허구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후기 울릉도 수토제가 조선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정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실시했던 제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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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2012.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잉어목(Cypriniformes) 황어아과(Leuciscinae)의 황어(Tribolodon hakonensis)는 회유성 어류로서 일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고 산란기인 3월 중순경부터 물이 맑은 하천으로 소상하여 자갈이나 모랫바닥에 집단으로 알을 낳는다. 본 연구의 목적은 5개의 microsatellite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단편화된 하천에서 황어 집단 간 유전자 흐름과 다양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 오십천은 여러 대형 보에 의해 부분적으로 단편화되어 있는 중형 하천으로, 본 연구에서 하류지역과 대형 보를 여러 번 지나야 다다를 수 있는 상류지역에서 채집한 황어 개체들의 유전자형을 비교, 분석하였다. 유전자 분석 결과 상, 하류 집단들은 많은 대립인자를 공유하지만 그 빈도에 있어 다소 큰 차이를 보였다. 상류와 하류 간 유전적 분화(FST)는 0.083 정도로 두 집단 간에는 제한된 유전적 흐름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상류집단이 유전적으로 고립이 되어 있지만 뚜렷한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나 집단의 크기 감소가 관찰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양상을 개체 수준에서 증명하기 위해 Bayesian 통계를 이용, 집단의 유전적 구조를 파악하였다. 분석 결과 삼척 오십천 개체들은 2개의 유전적 cluster로 구분할 수 있으며, 상류 집단 개체들은 모두 cluster 1에 해당하는 등 단일하게 나타났으나 하류 집단 개체 중 65 % 정도가 cluster 2에 그리고 나머지 개체들은 cluster 1에 해당하는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로 미루어 두 집단은 유전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상류의 집단이 하류에 흘러들어가는 경우는 있지만 하류로부터 유전적 공급은 거의 전무한 형태로 볼 수 있고, 인위적 구조물들이 이러한 집단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본 연구에서 제시된 자료들은 향후 황어 집단의 보전 정책 등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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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2012.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삼척의 이사부 축제는 지역적 연고가 있던 이사부라는 역사인물을 현대의 축제의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임을 부각시켰으며, 대외적으로는 독도를 비롯한 영토수호의 역사인물임을 드러냄으로써 범지역적 축제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창출해 내었다. 이 연구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우륵의 12기에 나타난 사자연행과 이사부의 목사자 전투는 진흥왕 이전 신라사회에 사자문화의 유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신라의 통용된 사자연행예술은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존재했다. 따라서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에서 사용한 목사자는 당대에 신라에 유통된 외래문화였으며, 이후 사자는 여러 연행예술로 발전된 것이다. 둘째,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에서는 사자탈과 같은 이동형 목각양식이 이용되었다. 이것은 이사부의 해군부대가 우산국 전투에서 목사자의 전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근거리에 접근하여야 했기 때문에, 고정형 목각양식으로는 우산국 사람들을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부의 목사자는 고정형 목각양식이 아니라, 탈과 같은 이동형 목각양식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사부는 삼척 강릉지방의 지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 강릉단오제에 모셔졌을 뿐만 아니라 현재 삼척 오분동 마을에서도 모셔지고 있다. 이렇듯 1500년 전 역사인물 이사부는 지금까지 삼척 지역에서 신격화 되어 숭앙받는 역사적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사부 축제는 삼척 지역의 지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축제의 이념적기반 위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삼척시는 이사부 축제를 국가의 외교문제와 연관시킴으로써 국가와 연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하였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울릉도를 생활권으로 하고 있는 독도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2005년 일본의 다케시마(독도)의 날 재정으로 고조된 한일 외교문제와 연관된다. 따라서 삼척시는 축제에서 이사부의 소재를 독도 및 해양에 확장시킴으로써 축제향유 계층을 국민으로 확장시켰으며, 더불어 국가차원의 지원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축제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삼척시의 이사부 축제는 기존의 지역 역사인물을 발굴하여 연결시킨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투영된 자치단체의 축제화는 이사부를 포장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취지 아래 다양한 국가사업과 연계함으로써 지역의 문화기반을 마련하게 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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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2011.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삼척군은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신라 파사왕(婆娑王)23년(102)에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 후 지증왕(智證王) 6년(505)에 실직 군주(軍主)를 설치하고 김이사 부(金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16년(757)에 삼척군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成宗)이 척주 단련사(陟州團練使)로 고쳤고, 현종(顯宗)이 현령으로 강등시켰으며, 우왕3년(177)에는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조 2년(1398)에는 목조(穆祖)의 외가 고을이었으므로 삼척부로 승격하였고, 태종 13년(1413)에 삼척 도호부로 고쳤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된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를 시켜 우산국을 병합한 1500년 전부터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13 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귀순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했다. 우산국은 명주(溟州)(현재 강릉)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의 크기는 1백 리인데, 땅이 험준하여 그곳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에 복종하지 않았다. 지증왕은 이찬 이사부를 하슬라주의 군주로 삼아 우산국 사람들을 꾀로써 굴복시키도록 하였다. 이사부는 왕명을 받고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서 배에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거짓으로,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놓아서 너희들을 밟아 죽이겠다.’고 하니 우산국 사람들이 무서워서 곧 항복하였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많은 지도를 통하여 살펴 본 것처럼 512년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한 이래 우산도(于山島)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온 한국의 영토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의 포경선들이 출몰하여 독도를 마치 무주지인 것처럼 오인하고 리앙쿠르 암이나 호넷트 섬 등으로 명명하여 혼란을 가져왔다. 일본은 오랫동안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부르며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릉도를 송도라고 부르고 독도는 리앙코島라고 불렀다. 1905년에는 독도를 불법적으로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고는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독도는 엄연한 한국 땅이다. 일본에서 간행된 공식지도에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으며, 19세기 들어와 제작된 80여종의 일본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으로 인정하였다. 일본이 제국주의 정책을 쓰면서부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억지를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서양에서 제작된 많은 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으로 인정하고 있다. 6세기부터 우산도라고 불러 온 독도는 그 명칭이 어떠하던 간에 변함없는 우리의 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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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2011.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사부 테마파크의 기본 구상은 독도라는 우리의 해양영토와 동해(東海)에 대한 범국민적인 교육현장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이 시대 우리는 왜 이사부를 깨워 동해바다에 우뚝 세우고 있는가. 이사부의 영정을 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 장군 이사부의 모습으로 되살렸는가. 그것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와 동해’ 침탈야욕을 분쇄하기 위함이다.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한 이래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다는 역사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이다. 이사부 테마파크도 그러한 시대정신과 국민여망을 반영하여 주제를 ‘이사부 와 동해’로 하고, 소주제를 1)이사부와 고대해양활동 2)울릉도 독도 수호의 역사 3)독도의 생태와 수중자원 4)동해(東海) 자료관 5)한국의 해양영웅 등 5개로 설정했다. 이사부테마파크의 위치는 이사부장군이 우산국 정벌의 출항지로 삼았던 삼척시 오분항 일대로 설정했다. 오분리 고성(古城)과 그 아래의 오분항 지역, 그리고 오 십천 하구와 건너편 부지까지 주 사업대상으로 하고, 인근 맹방 장호 갈남 고포 증산 추암까지 보조사업지로 포함시켜 해양체험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사부테마파크의 공간구성은 진입공간, 주제공간, 체험공간, 놀이공간, 숙박공간, 휴게공간, 주차공간, 다목적공간, 관리공간 등으로 구분했다. 진입공간에는 상징조형물 등 주제부각 및 감동적인 경관을 연출하고, 주제공간에는 이사부의 국가표준 영정을 모시는 사당(祠堂) 주제관(전시공간) 공연장 해양영웅관 야외공연장 등을 배치하며, 체험공간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 실외의 오십천 하구와 바다에서 이사부뱃길체험을 하고, 실내에서는 삼척-울릉도-독도 뱃길 답사 외에 다양한 가상현실체험을 하도록 했다. 놀이공간도 실내외로 구분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숙박공간은 수학여행단 또는 여러 동아리 등 단체관람객들이 사용 하는 공간으로 했으며, 휴게공간에는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등을, 다목적공간은 심포지엄 강의 소규모 그룹활동과 이벤트를 겸할 수 있게 했다. 테마파크는 놀이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요소와 함께 소프트웨어적 부분인 쇼이벤트로 구성되는데, 테마파크는 사실상 ‘이벤트랜드’라고 불릴 만큼 이벤트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이벤트 프로그램이므로 삼척시에서는 이벤트의 소재가 되는 이사부와 동해, 해양영웅 관련한 학술적인 성과물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사부의 해양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의 해양영토주권을 보다 확고히 하고 신 해양시대를 주도하는 국민교육의 장이요 인재양성의 보고(寶庫)가 될 이사부 테마파크는 마땅히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오분항과 산성(山城) 일대의 발굴과 복원, 그리고 이사부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중앙정부에서 직접 주관하고, 건립 후 운영까지 직접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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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e investigated moth communities in Samcheok, Korea, to elucidate the influence of the East Coast Fire in 2000. Moths were collected with UV light traps 4 times a year from 2006 to 2009 at 3 sites: Unburned area (Site 1), Surface fire area (Site 2), and Crown fire area (Site 3) sites, respectively. A total of 3,804 individuals belonging to 727 species from 30 families were captured at the 3 study 1,727 individuals of 505 species (27 families) at Site 1, 1,193 individuals of 353 species (24 families) at Site 2, and 885 individuals of 340 species (25 families) at Site 3. Species richness and individuals of Noctuidae, Pyralidae, Geometridae, and Tortricidae were the highest at all 3 sites. All of species richness, individuals, and species diversity (H’) were the highest in Site 1 for 4 years. The index of similarity (α-Index) was higher between Site 2 and 3 in 2006, while higher between Site 1 and 2 in 2009. Moths were grouped into 16 categories by hosts of the larval stage. Individuals of moths of herbaceous feeding habit continuously decreased at Site 3, but proportion of individuals of tree feeding habits continuously increased. The present results showed that moth communities was relatively recovered according to vegetation change after forest fire and regeneration of moth communities in surface fire area was more faster than in crown fire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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