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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완상적 특성이 특히 강조되는 정선 구미정원림의 입지 및 조형 및 경관 특성 그리고 구미정사 에 전해지는 ‘9미’와 ‘18경’의 경관특성과 의미를 재검토하고 발굴된 「구미구경」한시의 해석과 표제어 용례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또한 구미정원림을 사생한 현대회화가 총 50점의 그림을 중심으로 한 조망 점을 분석을 통해 구미정사 일원에 대한 향후 국가유산인 명승지정의 방향타가 되는데 일조하고자 하 였다. 구미정원림은 별서원림과 누정원림 그리고 구곡원림의 특성을 복합화한 누정으로서의 지위가 확인되었으며 9미 18경을 비롯한 다양한 승경과 시점 그리고 앙시(仰視), 부감시(俯瞰視) 그리고 수평 시(水平視) 등 다채로운 경관구도를 가진 원림으로서의 특성이 부각되었다. 아울러 문화재적 가치 논 란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명승 성락원(城樂園) 사례를 교훈 삼아 조영자에 대한 보다 정 확하고 구체적 조영 및 향유 과정 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유산 지정 명칭은 원형경관으로 보기 어려운 ‘구미정’ 단독으로는 국가유산 명승지정은 다소 부족하며, “정선 구미정원림 일원” 등으로 유산 명칭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른 영문 명칭은 “Garden of Gumi-pavilion and surroundings, Jeongseon” 이 가장 부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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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표정(瓢庭) 송병우(宋炳宇, 1874∼1944)가 조영한 익산 함벽정원림을 대상으로 문헌조사, 현장조사 그리고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원림의 특성과 전환기적 조영 양상을 추적한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정신세계의 소중한 결정체였던 누정문화가 일제강점기라는 정치·문화적 과도기에 어떻게 계승, 변동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전환기적 시대 문화가 지역의 근대 정원문화 담론(談論)에 어떤 역할을 끼쳤는지를 조명하고자 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함벽정의 입지와 규모 그리고 기능과 구조를 보았을 때 함벽정 일대는 별서원림으로 서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함벽정 지붕의 소재인 붉은색 자기와(磁器瓦), 기단·초 석·기둥의 형태, 계단 입구부의 장식성, 공포결구 수법, 사각기둥과 사분합의 문비(門扉) 그리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단청과 지붕 합각부의 ‘쌍희자(雙喜字)’ 길상문 등은 일제강점기 지역의 경제 강자가 보여줄 수 있는 전환기적 의장기법의 양상으로 파악되었다. 공간 및 시각구성 그리고 시설 배치 상의 전환기적 설계양상으로는 정자의 규모 및 암대(巖臺)를 활용하여 이루어진 축산(築山), 적극적인 읍경(挹景)의 조망처리기법 그리고 급경사지역에 형성된 5단의 화계(花階)에 적용된 돌쌓기기법을 들 수 있다. 또한 함벽정원림 조성 이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 아래 일제의 수리사업에 동조와 유지관리 과정에서 행해진 양버즘나무, 왕벚나무 등의 대체식재나 보완식재는 전통식재의 규범 혼란 속에서 나타나는 식재상의 전환기적 양상으로 추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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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9.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중국과 한국에 현존하는 유상곡수 유구의 형태 고찰을 바탕으로 강진 백운동원림 내원에 조성된 유상곡수의 형태 및 기능 그리고 조영에 담긴 의미론적 특성을 비교분석한 것으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백운동원림의 곡수로의 평균 폭은 41㎝, 평균 깊이는 11.5㎝에 이르고 총 연장길이는 48.5m이다. 곡수로의 단면형태는 ‘ ’ 형이며 초정의 유배정을 갖는 형태로 입수구와 출수구를 달리하는 이원형 구조이다. 곡수로의 유형은 수로형에 근접하며 세부디자인 형태는 직선형의 비대칭 형태를 보이지만 대칭형의 변형된 ‘回字’ 형 또는 ‘ㄷ字’ 형에 근접하나 중국이나 국내에서 확인된 곡수로와 일치되는 형태가 없는 매우 독창적 디자인이다. 계류를 이끌어 ‘回’자 모양의 직선형 곡수로를 조성했다는 점에서는 중국 쓰촨성 광안시 사구탄(四九灘) 유배거와 가장 유사하며, 부지관류형의 특징을 보이는 점에서는 아산 외암마을 송화댁 유상곡수와 유사하다. 백운동원림의 곡수로는 상·하 2개의 방지와 통합 연계되는데 원내에서 총 5번 굴절되도록 고안되었다. 인수(引水)된 물은 계곡의 이곡(二曲)과 외원에서의 이곡(二曲) 그리고 내원에서의 오곡(五曲)을 합쳐 구곡(九曲)을 이루며 초정 형태인 유배정을 5곡에 배치함으로써 유상곡수의 풍류뿐만 아니라 구곡 경영의 상징성을 부가한 것으로 보인다. 평지 곡수로 상에는 상·하 두 곳의 지당을 배치한 쌍지형으로 이는 방화수와 연당으로써의 고유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유입수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여과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누정이나 달 또는 백운동 승경의 자연요소를 투영시키는 인경(引景: pulling scenery)의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주역(周易)』 “이택상부(麗澤相附)” 의 개념으로 두 개의 이웃한 연못이 맞닿아 넘치면 나누고 모자라면 채워준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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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6.04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조선후기는 전통문화의 마지막 부흥기이자, 다양한 문화 활동에 따른 주체적 성숙기로 당시 상류 지배계층에 해당하 는 경화세족들은 원림을 통해 자신의 이상향이 내포된 생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특히 원림은 그들의 이상향을 현실세계에 표현하는 매개체로서 조선 후기에는 한양 각지 의 명소를 찾아 원림을 조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나 타났으며 이는 사회적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성종상 (2003)은 대다수의 원림이 산수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 경승이 빼어난 곳을 찾아 조성하였다는 점에서 원림에서 읽을 수 있는 생태미학으로 입지선정을 우선으로 꼽고 있 다. 그러나 오늘날 경화세족의 주 무대였던 한양, 즉 서울의 도시화는 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양 각지에 조성되었던 대부분의 원림들은 소실 되거나 원형이 변질되는 등 당시 원림의 입지환경을 살펴보 는데 어려움을 야기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생태미학의 관점에서 문헌분석과 현 장조사를 통해 원림의 입지환경 특성을 살펴보고자 고문헌 분석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경화세족들이 원림의 입지를 선 정하는데 있어 고려되었던 관념적 요소와 실제로 조성되었 던 환경 요소들을 파악하여 그 특성을 도출하였다. 조선후기 경화세족들의 원림 조영은 단순 미적인 공간의 조성보다는 당시 조영자의 자연관이 대입됨에 따라 상위개 념인 예술적 공간의 창출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원림의 입지 선정에 고려된 관념적 요소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에 따른 조영자의 자연관을 살펴봄으로써 그 양상을 가늠 해볼 수 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후기에는 중세적 지배 체계와 성리학 이론이 붕괴되기 시작한 반면, 문학·예술·생 활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친 실학이 대두되었다. 또한 청대 문물의 수입과 상공업의 발달은 한양으로의 문물집중현상 으로 이어졌는데 이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가 바로 경화세족 이라 할 수 있다. 경화세족의 자연관과 관련하여 당시 저작된 문헌들을 살 펴보면 그들이 조성한 원림은 혼잡하고 시끄러운 세속에서 의 피난처였으며 좋은 주거지의 조건으로 산천이 아름다운 전원뿐만 아니라 번잡한 도회지라도 좋다는 관념. 즉, 성시 산림의 자연관이 대두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관료세계로부 터 이탈하지 않고, 도회지가 제공하는 문화혜택을 유지하려 는 노력이 나타나는 동시에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상식화되 어 있는 산수 전원의 미학이 살아있는 주거를 도회지에 구 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이욱, 2014). 이는 과거 은일·은거를 위해 낙향하거나 지방의 경승지를 취득하는 양상과는 달리 한양 내에 원림을 조성함으로서 그들이 희구하는 산림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를 마 련하고자 하였으며(김동현, 2015), 이에 따라 조선 전기 은 거문화와 함께 형성되었던 별서원림조영의 풍조가 조선 후 기로 들어서면서 한양 내 원림 조성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자연관을 토대로 입지선정과 관련된 요소들을 밝히는 과정으로 종암별서, 연명헌, 옥경 산장, 자연경실, 옥호정, 소귀당, 삼계동정사 등 실제 한양 일대에 조성된 원림의 입지조건에 고려되었던 환경요소들 은 지형, 수계, 식생 등이 고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지형은 원림이 위치한 주변의 산악·구릉을 이용한 사례와 바위나 암반을 원림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유형으로 세분할 수 있 다. 주변의 산악이나 구릉을 이용한 사례로 옥호정은 후면 의 능선을 배경으로 원림공간이 펼쳐지고 있으며, 삼계동정 사 또한 백악산을 배경으로 생활공간과 연결되는 소로의 결절점에 암반지대가 위치하고 있다. 옥경산장의 입지로는 ‘골짜기 안에 비로소 깨끗하고 한가하며 넒은 곳이 있다.’라 는 기록을 통해 청계산을 배경으로 하는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이종묵, 2006), 자연경실의 외원에 해 당하는 거연정은 ‘큰 바위들이 감싸 안은 듯한 정자’라는 기록을 통해 주변의 암반에 위요된 공간임을 확인하였다. 한편 바위나 암반을 원림 내에 유입시킨 사례로 옥호정은 후면 산지 정상부에 ‘일관석(日觀石)’ 각자를 새김으로서 자신의 원림으로 포함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확인되었으며 삼계동정사 내부에도 원림 전면의 ‘소수운렴암(巢水雲簾 庵)’, ‘삼계동(三溪洞)’ 등의 각자가 암반지대에 새겨져 있 다. 종암별서와 옥경산장, 연명헌은 각각 원림 내 바위에 이름을 부여하고 공간구성요소로 포함시킨 사례가 나타나 는데 종암별서 내 간운대는 ‘교묘하여 사람이 만든 듯하지 만 사실은 천연의 것이다.’라고 하여(이종묵, 2006) 바위 그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의도가 확인되며 옥경산장은 거북 형상의 바위를 ‘구암(龜巖)’이라 명명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경관을 기록한 바 있다. 또한 연명헌은 벼락을 등지고 서있는 병풍 형세의 바위에 ‘수옥대(漱玉臺)’라 명명하고 이를 조망 대상에 포함하였다. 원림의 입지선정에 수계가 반영된 사례는 대부분 주변의 계류를 이용하였다. 옥호정은 북악산에서 흘러나오는 시내 가 원림 내부를 거쳐 전면에 흐르는 수계와 합류하는 수체계 를 지니고 있었다. 삼계동정사 또한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 는 기록을 통해 전면에 계류가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 며 오늘날 삼계동정사 내부에도 계류가 포함되어 있다. 연명 헌은 와룡폭포가 이어지는 수계에 경처를 찾아 각각의 건조 물들을 조성하였다. 소귀당은 삼각산 북측 천관암에서 발원 하는 수원을 원림의 경계로 삼았으며, 폭포나 소(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구곡을 설정하고 만경폭(萬景瀑), 옥경대(玉 鏡臺) 등의 명명과 함께 이를 즐겨찾는 등 원림의 입지 선정 에 있어 수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례에 해당한다. 식생의 경우 주로 원림을 둘러싸는 요소로 이용되었다. 옥호정의 경우 후면의 산지에 송림이 표현되어 있으며, 삼 계동정사의 주변 경관을 표현한 기록에도 ‘시내와 산은 깊 숙하고 산은 울창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주변의 수림대가 원림을 위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암별서와 관련된 기 록에는 ‘사계절의 빼어난 경관을 보았으니 산수의 볼거리를 굳이 먼 데서 구할 필요가 없다(김동현, 2015)’는 내용을 통해 계절별로 그 모습을 달리하는 식생이 원림의 주변에 펼쳐져 있음을 짐작하게 할 수 있으며, 연명헌 또한 ‘사방에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천 길 높이로 솟아있고’라는 기록을 통해 주변에 수림대가 형성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상술한 내용을 토대로 조선후기 경화세족 원림의 입지환 경 특성을 살펴본 결과 당시의 원림 입지선정은 한양에 국 한된 경화세족 집단의 자의적 공간제약 속에서 경승지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인식이 반영됨에 따라 성시산림이라는 관념적 이슈를 형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산수경관이 빼어난 장소를 점유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조성된 원림공간에는 지형과 수계, 식 생 등이 고려되었으며 이들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지형을 중심으로 수계와 식생이 수반되는 형태를 보인다. 대부분의 원림이 한양 주변 산지에 조성되어 울창한 식생을 구비할 수 있는 여건이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이에 따라 계절별 다른 풍취를 취하고자 하는 생태적 조영의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지형의 단차에 의해 계류나 폭포, 소 등을 형성하는 공간을 점유함으로서 자신의 원림공간에 동 적인 요소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 조선후기 원림 관련 백과사전으로 평가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기록에도 ‘남쪽 산기슭의 양지, 혹은 동쪽이나 서쪽 산기슭의 바깥에 언덕이 아담히 둘러쳐진 기름지고 물맛이 좋은 샘이 있는 터를 골라, 3칸 집을 짓고 동쪽과 서쪽에는 누대를, 중간에는 방을 둔다.’라 는(조창록, 2003) 일종의 주거모델이 제시되는 점으로 보아 산기슭, 샘, 숲 등으로 나타나는 주변 자연환경은 원림의 입지선정에 있어 구비되어야 할 요소로서의 대표성을 지닌 다. 또한 원림이라는 인위적 공간을 설정함에 있어 주변환 경에 대한 인공적 처리가 최소한으로 나타나고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와 감상, 상징적 의미부여 등 원림에 대한 입지선 정 기법은 생태 미학적 관점에서 형식미를 넘어선 인지지락 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12.
        201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조성한 세 곳의 원림을 대상으로 하여 원림 경관의 특징을 살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첫째, 윤선도의 원림 조영과 관련하여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상과 철학은 유교, 불교와 도교의 습합에 의한것이라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유교와 도교의 사상이었다. 둘째, 연보를 통하여 볼 때원림 조성의 특징이 해전의 개발에서 습득된 지식과 여러 차례의 유배에서 오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과정의 결과라는 점이다. 셋째, 보길도 원림은 풍수지리에 의한 공간구성이 한 특징이다. 낙서재 영역은 자신의 수양과독선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소은병과 귀암 등이 풍수지리에 의한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 곡수당 영역은 자제와제자들의 교육과 거처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는데 원지와 계류 조성에서 볼 수 있었다. 동천석실 원림은 낙서재의안산이라는 풍수지리 측면에서 비보풍수로 사용되기 위해 조성된 원림으로 자연의 암반 조건을 활용하여 수공간과 전망공간을 조성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세연정 원림 또한 풍수지리 측면에서 출수구의 흉격을 비보하기 위해 세연지와물막이 댐을 설치하였는데 이 연못은 수류 조절 기능을 부여하면서 연속적인 경관을 연출하는 독특한 원림으로 파악되었다.넷째, 세연정의 연속적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경관점을 다중으로 설정하고 대경의 미를 연출하였다는 점에서 수경관의극치를 보여주었다.이상의 연구를 통해 볼 때 고산 윤선도는 자연의 지형조건과 풍수지리, 그리고 의경의 미학이 함께 어우러지는독특한 그만의 원림미학을 완성하였던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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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국내 구곡 중 신선사상적 색채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괴산 선유구곡을 중심으로 구곡 경물 제명 및 주변 각자에 깃든 경관상징성을 도교적 관점에서 풀이해 보고자 하였다. 선유구곡을 구성하는 구곡 명칭이나 주변에 각자된 이름 그리고 그 상징적 의미를 해석한 결과, 선유구곡은 비교적 짧은계류구간내 신선과 관련된 경물과 각자 그리고 주변에 펼쳐진 송림(松林)과 옥류(玉流)등 환경지원성 요소에는 불로장생의염원을 담는 신성지향적 모티프가 충만해 있음이 발견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어울려 조화를이루어야 한다는 원융사상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식물류의 불변성과 동물류의 신령성 그리고 그 배경을구성하는 자연물의 항상성(恒常性)을 바탕으로 한 장수길상(長壽吉祥)의 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유구곡은풍류나 도학의 성취수단으로서 보다는 신선사상과 관련된 도교적 발상과 신선 관련 모티프 즉 장생과 불사, 신령성, 신선놀음등의 결속구조로 보다 현세적 관점으로 변형되어 왔다. 또한 사회적 요인으로 조선시대 선비문화와 맞물리면서 기(奇)에대한 관심과 호기심 속에서 구곡원림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풍류문화로 정착되어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여건을가능케 한 심리적 요인으로는 장생불사를 염원하는 장소애(topophillia)를 바탕으로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도교적 사상을 대변하는 장생불사의 신선은 현대 조경의 주요 경관연출 모티프이자 자연의 불변성과 신령성 그리고 이와 같은특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주변 환경의 항상성이야말로 구곡원림은 물론 정원이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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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09.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這篇論文將園林的贊助行爲分爲兩個部分, 以探索了其內容與系統. 一 個是園主站在贊助者的立場, 另一個是園主站在被贊助者的立場. 前者又分 爲兩個部分, 第一是以山人和士人爲對象的個人贊助, 第二是以雅會和結社 爲對象的集團贊助. 其結果, 就可以知道園主提供了他者(個人、集團)財政 經濟贊助, 他者還提供了園主人文藝術贊助. 後者也又分爲兩個部分, 第一 是君王的贊助, 第二是熟人的贊助. 說不定君王提供了園主財政贊助, 但是 他在一所私家園林住一天也使園林提高了位相與使園主獲得了名聲. 尤其是 如果賜給園主自己的御製, 就在園主的立場是一輩子最高的光榮、最上的贊 助. 而且園主造成園林的時候, 熟人提供了園主他的錢款和財物, 也提供了 園主他的專門技術和藝術能力. 如此, 園林的贊助行爲成立於園主和他者互 相之間.
        6,100원
        16.
        199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essence of Chinese landscape architecture is realization of a space that embraces nature and human integrating the openness and encloseness. The conc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that artificially furnishes natural elegance into urban areas coincides with the spiritual basis of Chinese literati-painting which subjectifies the scenery of objective world and entrusts personal feelings on that. In other words, the ultimate ideal of Chinese landscape architecture is embodying the Utopia of confucian intellectual in a city. This paper has tried to shed a light on inter-relationship of literati-painting theory and Chinese landscape architecture theory through comparing them. It is the identical spiritual basis they shared harmoniously that made landscape architecture, poetry and painting possible to meet.
        4,500원
        17.
        199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paper reviews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elected village groves and the selected roadside groves. In Chonbuk province, the village groves were principally found in the east mountainous region and roadside groves were principally found in the west low-sloped region. They were located in the place of good accessibility and good view. The differrence between the village groves and roadside groves was considerately large in the aspect of physical, socio-behavioral condition and vegetation structure. Both were contrasted in many points. The results resolve itself into Table 2, 4, 6. This research is useful in finding the characters of the both groves and in preparing the conservation and management plan of the groves through comparative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