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의 시적 미학은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수직적이며 열망과 하강을 통해 화해를 분류한다. 형이상학적 고양은 신화적이든 신비적이든 세속적이든 현실에서 출현한다. 예이츠는 주제, 시적 논증, 영적인 의미를 결합한다. 그는 고대 속에서 만물이 조화롭게 통일되고 문화적으로나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영원한 의미를 융합한다. 예이츠는 예술이나 환상적인 영원한 세계에 나타난 완벽한 형태로 지상 생활에서 영혼 요소를 깎아내기 위한 정화의 한 형태로서 물과 화재에 의한 여행을 연관시킨다. 후기 시는 자신의 추상주의가 갖는 영원하고 예술적인 의미로 전환된다.
이 글은 웹소설 <소녀, 홍길동>(2019)에 나타난 남장 서사를 중심으로 고전소설의 남장 서사 주체와 비교를 통해 우리 시대의 주체성에 대해 진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로맨스 웹소설 연구에서는 로맨 스 장르의 문제성이나 웹소설의 상업성과 통속성을 폭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글은 주체성의 측면에 서 바라보았을 때 시대정신과 관련해 변화된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속 남장 서사를 고전소설의 것과 비교해본 결과, 남장이 로맨스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욕망을 은폐시킨 주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로맨스 웹소설의 낭만적 사랑은 기존 로맨스 소설의 문법을 일정 부분 따르면서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로맨스를 형상화한 것이다. 기존 로맨스에서는 완벽한 ‘나’를 찾으려는 욕망이 내재해 있고, 이것은 진정성의 주체를 생산한다. 그러나 <소녀, 홍길동>에는 이러한 시도들이 부재하며, 오로지 상대방의 욕망 안으로 주인공의 욕망이 한정되기에 사랑‘만’을 읊조리는 유아 적이고 자폐적인 주체, 즉 ‘포스트-진정성’의 주체가 생산되었다. ‘포스트-진정성’의 주체는 환상성에 기대 고 있고, 이 환상은 생존을 중시하는 사회와 속물주의에 근원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웹소설 장르가 환상성 이 아닌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주체 생산으로 가야할 것을 제안했다. 그것은 유목적 주체로, ‘타자 되기’를 통해 미래에 다가올 시대에 발맞춰 K-서사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예이츠는 ‘우리는 마지막 낭만주의자다’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의 낭만적 세계관과 시적 패턴에 대해 명백히 한다. 그는 사랑, 좌절, 민족주의에 대한 세속적 감각과 열정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초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본성과 주관성을 시에 가감없이 드러낸다. 워즈워스의 전통이 자연에서 범신론과 자연의 경이로움과 정신, 초자연적 요소 및 아찔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에 반해, 예이츠의 낭만주의는 의식적인 아니마 문디의 존재, 문화적 통합과 존재의 통일성에서 위안을 구한다. 아일랜드와 신화적 상상력을 찬양함으로써, 예이츠는 최대한으로 “사유를 두들겨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현대시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문학 전통과 역사에 대한 독특한 문학 및 시적 전통을 생성한다. 예이츠는 사실주의와 비교와 역사에서 파생된 상상력, 환상과 신비주의의 유형, 갈등하는 자아와 민족주의와 종교를 엮어서 동반 상승효과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달콤하고 황홀한 사랑, 이것을 낭만적 사랑이라고 이름하여 영원히 그 사랑 속에 머물고 싶어한다. 이것은 신화처럼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다. 기쁘면서도 고통스러운 양가적인 속성을 가진 사랑은 인간의 역사 이래로 화두였고 조선 시대 「주생전」에도 서사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주생, 배도, 선화의 사랑을 낭만적 사랑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사랑이 해체된 이유와 사랑의 구원을 살펴보았다. 주생과 배도, 선화는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결국은 비극에 빠지게 된다. 이들의 사랑은 만남부터 강렬했고 낭만적 사랑이 갖는 속성들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생의 거짓과 기만으로 불행해졌다. 두 여인의 분노와 질투는 그들의 자아를 부재하게 했고, 지향점이 다른 조건부 사랑은 이들의 사랑을 해체시켰다. 또한 「주생전」은 사회적 장벽과 전쟁과 같은 세계의 불합리한 횡포에 항거할 수 없는 인간의 사랑은 얼마나 가볍고 연약한지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본고는 「주생전」을 차지하고 있는 상실 모티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환대함으로 사랑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논의하였다.
본 연구는 이명동음 표기에 대한 정의와 기능, 그리고 이러한 이명동음 표기가 낭만주의 시대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먼저 이명동음 기보와 이명동음 전조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즉, 전조에서 축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이 새로운 조에서 기능의 변화 없이 나타나고, 단순히 기보의 단순함을 위하여 이명동음이 사용되는 경우를 이명동음 기보로 간주하면서 이명동음 전조와 분명하게 구별하였다. 또한 낭만주의 시대의 몇몇 가곡과 기악곡을 예로 하여, 한 악곡에서 이명동음 관계로 이루어진 두 조성, 예를 들면 C 단조와 D♭장조의 변화가 전조가 아닌 단순히 이명동음 표기를 통한 장단조혼용의 관계임을 피력하였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폭력적인 남성성을 폭력적으로 전복하는 과격하고 선정적인 복수극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많은 평론가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는 성 정치학을 낭만화하는 서사적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글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중심으로 성 정치학을 표현하 는 플롯이 낭만적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성찰적으로 내면화되게 하는 서사적 전략을 들여다볼 것이다. 플롯은 중심사건들의 개연성을 통해 서사가 끝내 이러저러하게 되어야만 했다는 도덕성을 함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주변사건들의 암시적 상징이나 공간의 명시적 상징은 서사의 미학성을 함축할 수 있다. 주변사 건들이 중심사건들의 선형적인 플롯을 상징하는 역할을 할 때 플롯의 도덕성은 상징적인 주변사건들에 의해 낭만적이고 시적인 형상으로 내면화될 수 있다. 극단적인 성 정치의 도덕을 담은 플롯을 주변사건들 과 공간의 상징을 통해 낭만화하는 것은 극단적인 성 정치학을 성찰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먼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성 정치학이 플롯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성 정치학이 낭만화된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관객이 내면화하게 만드는 서사적 전략의 공과(功過)를 논의할 것이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폭력적인 성 정치학을 성찰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의 낭만적인 형상이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고는 1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신고전주의, 그리고 낭만주의로의 진행에 근거하여 당시에 나타났던 사조들 중 하나인 네오르네상스란 개념이 원래는 건축적, 회화적으로 독일에서 먼저 사용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가 동일한 진행을 따르고 있음을 밝힌다. 나아가 19세기 유럽 예술계에서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이탈리아의 19세기 대표 화가로 프란체스코 아예즈를 주목하고 이 화가의 작품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미술이 고전에 상당히 근거하고 있으나 전유럽 공통의 낭만주의적 경향을 동시에 띄고 있음을 밝히는데 의의를 둔다. 또한 아예즈의 회화가, 니체가 구분한 세 종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발전적인 성향인 ‘비판적 역사’의 방향을 따르고 있음에 주목한다
본 논문은 낭만주의 시대라는 스펙트럼 속에 슈만을 전형적 낭만주의자로 각인시켰던 종래의 편 향적인 시각을 극복하는 시도이다. 여기서는 외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음악의 미적 자율성과 예술성 을 극대화한 낭만주의와 함께, 왕정복고시대라는 역사적 이행기에 체념적 내지 현실 참여적 비더마 이어음악 발전에 모두 개입한 이들이 독일 교육시민계급이며 슈만이 이 특정 계급에 속함을 입증한 다. 먼저 교육시민의 형성사와 정치관, 독일혁명기(1848/9) 태도, 취향 등을 해체한 후 그들이 향유 한 음악장르 위주로 비더마이어음악사를 간략히 재구성한다. 다음으로 이 교육시민계급을 분석 틀 로 삼아 슈만의 혈통과 교육 및 성장배경, 정치관과 음악관, 음악 커리어와 작품 집필의 경향 변천, 학계 최대 난제 중 하나인 혁명기와 그 이후 내보인 소위 ‘모호’하다는 태도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그리하여 교육시민계급 음악가 슈만에게 마치 괴테의 반복투영개념처럼 낭만주의와 특히 참여적 비 더마이어 경향이 정당하게 공존하며 필생의 음악세계를 형성해갔고, 이를 통해 그가 예술성을 극도 로 고양시킨 위대한 음악가임은 물론 독일근대사의 발전과 함께 호흡한 시대지성이었음을 논구해낸 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궁극적으로 음악사학의 정체성을 명실상부한 인문학의 한 분야로 설정하고, 동종 인문학과 연관 사회과학계열 학문들과의 연계·맥락화 속에서 도출 가능했음이 강조된다.
이 논문은 교차로(1889년)와 장미(1889년)가 포함된 1895년 시집 에서의 초기 예이츠 시 속의 낭만주의 계승을 다시 읽으려 한다. 셸리와 블레이크의 예이츠에 대한 깊은 영향에 대해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지만 주로 예이츠의 후기 상징 주의 체계와 신화와 결부 짓는 것이었다기에 사실 예이츠의 초기시는 비교적 소홀하 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의 민담과 신화를 자신의 초기시에 통합시키려 하 지만, 이때 시인과 지상과의 문제가 중심과제로 등장한다. 이 문제는 불가피하게 낭만 주의 전통에 기대게 된다. 본인은 예이츠가 시어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연 에 도전하고 시인과 자연의 관계를 수정하기 위해서 그의 초기시에서 근본적 낭만주 의의 문제를 다룬다고 주장한다. 블레이크와 셸리에 더하여, 워즈워드는 예이츠 초기 시에 자연과 시에 대한 여러 가지의 암시와 반향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워즈워드의 지속적 영향이다.
독일에서 발현된 낭만적 민족주의는 당시대의 시대정신이 얼마나 많은 역사적 파급효과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독일을 포함하는 동유럽 전반을 지배했고, 나아가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 은 향후 어떤 정치체제로 전환되든지 간에, 국가와 인민 사이에서의 주권문제 해결을 피해갈 수 없다. 일본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민적 민족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을 경우, 일본의 앞서가는 정치력과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진정한 지도국가로서 인정받기 힘들어 질 수 있다. 남북한 간의 이념문제는 중일보다 더욱 뿌리 깊고 체제 현실적이다. 이는 민족통 일이라는 보편화된 상식적 인식이 양측 체제의 통치정통성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 이다. 한국은 북한의 백두혈통과 주체사상이 내포하고 있는 낭만적 민족주의 사조를 제대로 간파해 내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사상적 기조와 이것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북한의 사회 현상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경우,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평화통일 은 현실화되기 힘들다. 그러나 한국이 이미 확립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공고화하고 보다 발 전된 시민적 민족주의를 발현시킬 수 있다면, 한국은 북한과의 통일을 이루고 명실공이 확고 한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춘 이후, 이를 발판으로 동북아국가들을 정치적, 사상적으로 선도하 는 지도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다
예이츠의 첫 시집 교차로(1889)는 낭만주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시의 바탕을 이루는 낭만주의 시인들, 블레이크, 셸리에 대한 예이츠의 공감과 탐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세계와 거리가 동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세련되고 복합적인 사상들이 형성되기 전의 젊은 시간에서만 생산될 수 있는 예술을 위한 예술, 시 자체를 향한 순수한 시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블레이크, 워드워드, 키츠와 연결할 수 있는 예이츠의 시에 맞추고 시 작품을 구체적으로 비교한 다. 특히, 낭만주의 시와 구별되는 예이츠 특유의 독특한 시적 개성과 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발전시킨 예이츠의 시적 능력을 탐색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has been widely regarded as the most original and brilliant English landscape painter in the 19th century. Admitted to the Royal Academy Schools in 1789, Turner was a precocious artist and gained the full membership of the prestigious Royal Academy in 1802 at the age of 27. Already in the 1800s he was recognised as a pioneer in taking a new and revolutionary approach to the art of landscape painting. Among his early works made in this period, The Shipwreck, painted in 1805, epitomizes the sense of sublime Romanticism in terms of its dramatic subject-matter and the masterly display of technical innovations. Of course, the subject of shipwreck has a long standing history. Ever since human beings first began seafaring, they have been fascinated as much as haunted by shipwrecks. For maritime societies, such as England, shipwreck has been the source of endless nightmares, representing a constant threat not only to individual sailors but also to the nation as a whole. Unsurprisingly, therefore, shipwreck is one of the most popular motifs in art and literature, particularly during the 18th and 19th centuries. Yet accounts, images and metaphors of shipwreck have taken diverse forms and served different purposes, varying significantly across time and between authors. As such, Turner’s painting registers a panoply of diverse but interconnected contemporary discourses. First of all, since shipwreck was an everyday occurrence in this period, it is more than likely that Turner’s painting depicted the actual sinking in 1805 of the East India Company’s ship ‘The Earl of Abergavenny’ off the coast of Weymouth. 263 souls were lost and the news of the wreck made headlines in major English newspapers at the time. Turner’s painting may well have been his visual response to this tragedy, eyewitness accounts of which were given in great quantity in every contemporary newspaper. But the painting is not a documentary visual record of the incident as Turner was not present at the site and newspaper reports were not detailed enough for him to pictorially reconstruct the entire scene. Rather, Turner’s painting is indebted to the iconographical tradition of depicting tempest and shipwreck, bearing a strong visual resemblance to some 17th-century Dutch marine paintings with which he was familiar through gallery visits and engravings. Lastly, Turner’s Shipwreck is to be located in the contexts of burgeoning contemporary travel literature, especially shipwreck narratives.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y saw a drastic increase in the publication of shipwreck narratives and Turner’s painting was inspired by the re-publication in 1804 of William Falconer’s enormously successful epic poem of the same title. Thus, in the final analysis, Turner’s painting is a splendid signifier leading the beholder to the heart of Romantic abyss conjoing nightmarish everyday experience, high art, and popular literature.
예이츠는 낭만주의자, 신비주의자, 상징주의 시인 등으로 불린다. 이 논문은 영국 낭만주의를 태동시킨 워즈워드의 시 이론으로 예이츠의 시를 읽는다. 예이츠는 워즈워드의 “즉흥적인 강한 느낌의 넘침”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시의 이론으로 아름답고 리듬감을 살려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시의 이론도 정립한 시인이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낭만주의 시학에 초점을 맞추어 예이츠 시에 대입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생태 시를 논의한다. 본 논문이 예이츠를 생태 시인으로 다루는 세계 최초의 논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실, 생태 시는 새로운 시가 아니다. 셰익스피어 같은 시인도 생태 시인으로 다루는 학자가 있다. 본 논문은 또한 마르크스나 페미니스트 비평의 길을 가고 있는 생태비평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시는 정치적 슬러로건도 아니며, 그렇다고 전혀 쓸모 없지도 않다.
최근 문학 담론으로써의 탈식민주의 이론은 실천적 의미에서 텍스트 해석의 전략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불어 탈식민주의는 식민 경험을 했던 국가 안에서 문화적 맥락으로써 식민 담론을 전복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작가에게 이러한 의식은 글쓰기에서 탈식민 공간과 주체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들어 주는 동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정전적 글읽기로 대변되었던 예이츠의 텍스트를 탈식민주의 전략 중의 하나인 탈정전적 글 읽기로 다시 조명해보기로 한다.
Architectural embodiment of a national identity has long been a significant topic in Korean architectural circles. For this reason, it must be helpful to examine the so-called, 'National Romanticism' of Finnish architecture around 1900 in that Finnish architects of the time struggled to embody their national identity through their projects. Considering the historical and linguistic affinities between Finland and Korea, the Finnish architectural situation draws . our additional attention. This paper aims at showing its historical background, the meaning of each type of buildings in the stream, and limitations it implies. The atmosphere of Finnish nationalist movement, which was provoked by [Kalevala] publications (1835; 1845) and shown in Karelianism, was heightened by Tsarist Empire's Russification programme of Finland in the late 19th century Architecture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genres expressing her national identity. Finnish national romantic architecture could be divided into three. The first is a log house style for artists' studio house, motivated by the Finnish vernacular farmstead - especially by Karelian farmhouse. This type of building signifies the Finns' will to return to their motherly soil. The second is a stone architecture style for public buildings, inspired by Finnish church or castle of an early medieval time. By using roughly-cut granite as the main exterior material, buildings of this type symbolise the toughness of legendary heroes and Finns' desire for national Independence. The third type of building was based on both of the former or more dependent on architects' Imagination and creativity. However, Finnish national romantic architecture has been criticised by some critics owing to its decorative, eclectic and self-indulgent characteristics. Probably, it was not really national but rather inter-national because of the Influences of English Arts and Crafts Movement, the American Richardsonian architecture and the continental Art Nouveau. And the negative images of 'national' and 'romantic' made some historians coin other terms like 'national realism' or 'material realism'. As another limitation, one raises the low degree of its contribution to the entire architectural history. Despite these criticisms, however, this paper argues that Finnish national romantic architecture is meaningful in itself, particularly because it illustrates vividly Finns' struggle to search for their national identity and, after all, their craving for national independence.
This is a paper that shows how poetic dialogue plays upon poems between three different authors, William Butler Yeats, Samuel Taylor Coleridge and William Wordsworth. Many of Yeats' poems broach a gentle issue of how they respond to their poetic precursors. "Among School Children" can be read as an updated version of a Romantic "conversation" poem. Coleridge applied the term "conversational poem" to "The Nightingale," one of twenty-tree poems in Lyrical Ballads of 1798. Earlier than this, a phrase Sermoni propriora ("suitable for conversation") appears in his "Reflections, On Having Left a Place of Retirement." These two poems demonstrate Coleridge's conscious efforts at experimenting with conversational speech as a legitimate poetic language. Coleridge's conversational mode is in full bloom in such remarkable poems as "The Lime-Tree Bower My Prison" and "Frost at Midnight," the latter a masterful lyric that paves ways for Wordsworth's "Tintern Abbey" in its compositional mode and structure. The traffic between the two Romantic authors and "Among School Children" is obvious--a noticeable parallelism is developed in terms of diction, figures, thematic structure, and rhetorical devices. Yeats's "Among School Children" serves as a poetic testimony to the on-going lyrical dialogue that explores possible links between the workings of different poetic minds and that creates remarkable echoing eff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