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 시대로 불리는 콘텐츠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아, 지금까지 ‘서브 컬처’(sub-culture)로 불리던 웹툰이 OTT 플랫폼의 원천 IP(지식재산)로 급부상하고 있다. 웹툰은 팬덤을 통한 흥 행성 확보 및 독창성·확장성 등의 장점을 무기로 유력한 거점 콘텐츠 IP 로 각광받고 있다.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 K-드라마의 글로벌 경 쟁력을 확인시킨 <킹덤>,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 홈>,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특히 웹툰은 스토 리의 완결성과 세계관을 가진 원천 콘텐츠로서 영상, 게임 등 다양한 분 야로 IP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디어 생태계의 새로운 ‘가치사 슬’(value chain)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 연구는 OTT 플 랫폼을 통해 공개된 국내 웹툰 콘텐츠의 활용 사례와 IP 확장에 유용한 전략으로 기대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의 상관관계 연구를 통해 웹툰의 세계관 확장에 대한 시사점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청소년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 특히 과학적 세계관의 강한 영향아래 있는 미 정립된 청소년의 세계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며, 청소년 선교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되 그것을 전도서의 세계관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 세계관 형성이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들은 세계관의 혼란을 겪는다. 이는 교회 내의 청소년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복층식 기독교’의 개념은 교회 내의 청소년과 교회 밖의 청소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청소년 선교의 근본적인 방향은 성서적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 연구자는 이 기독교 세계관을 전도서에서 도출하되, 그 핵심 사상을 헤벨, 하나님 경외, 헬레크로 제시한다. 이 사상은 한계 속의 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모든 판단의 교만을 멈추게 하고, 그 한계 너머의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며, 그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주어 지는 몫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참되게 발견하게 한다. 헤벨, 하나님 경외 헬레크의 세계관은 인생의 방향을 창조주에게 맞추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통하여 문제들의 대안과 소망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본 논문은 크리스천요가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성경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힌두교의 수행법이며 또 하나의 종교 형태를 갖추고 행해져온 요가의 사상에 나타난 구원관을 기술하였다. 힌두교의 자력구원을 위한 수행체계인 요가에 교회와 성도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크리스천요가가 형성되었다. 이런 현상은 뉴에이지 운동과 웰빙이라는 사회 문화적인 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힌두교와 요가의 사상에 나타난 구원관이 성경적인 세계관과 어떻게 대립되는지 세 가지 주제를 통해 비교하고, 현대인들이 단순한 운동으로 생각하고 쉽게 접근하는 요가가 성경에 반하는 세계관을 가진 종교라는 사실을 선행 연구들을 통해 제시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행 연구에서 더 나아가 국내외 선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였다. 문화를 통해 성도의 마음을 분산시키는 사탄의 전략을 구별할 수 있으려면, 문화 심층부에 자리한 세계관을 분별할 수 있는 성도로 교육하기 위한 교회 교육이 절실하다.
오늘날 해외 선교지와 국내 이주민 선교 현장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주민 선교는 유형별로 선교전략을 달리하여 접근해야 한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들은 초기 정착과정에서 한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가 크다. 한국어 공부는 선교의 좋은 접촉점이 되지만 큰 수요에 비해 선교를 위한 한국어 교재개발과 공급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선교목적 한국어 교재개발은 학습자인 외국인 유학생, 한국 인 교사, 성경과 일반 내용을 융합한 텍스트와 유학생들의 삶과 학업 현장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한국의 유학생 전도용 한국어 공부 교재로 개발한 본 연구자의 졸고 『세계관 한글공부』 교재를 분석했다. 한국 유학생인 학습자 상황, 세계관 연구방법과 한국어 교육을 접목한 특징, 내용과 구성을 중심으로 교재를 분석하고, 유학생 선교현장에서 교재를 활용한 선교적 적용 및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선교적 지도자들은 타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달 하기 위해 이들의 세계관을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부족 세계관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복음적인 상황화로 이끌어 가는 필수임을 뜻한다. 이 세계관은 아프리카 부족사회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데, 이는 부족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하부구조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아프리카 부족사회의 중심적 특징들을 살펴봄을 통해 - 소규모 부족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살펴보는 - 아프리카 세계관의 중요성을 본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아프리카 부족 세계관은 아프리카 우분투(ubuntu)의 정신에서 적절하 게 나타난다. 집단지향적 사회에서의 뚜렷한 특징은 인간, 조상, 신, 영, 동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데, 이는 물활론적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부족 세계관에 대한 평가는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세네갈의 월로프족의 ‘좀’(jom), ‘먼’(mun), ‘콜레 레’(kolere), ‘테랑가’(teranga)라는 부족의 4가지 최고 가치 덕목들과 콩고 브라지빌 신학교 학생들의 ‘음봉기(mbongui)’ 라는 문화적 개념은 성경적 상황화를 통해 평가되고 변혁됨을 전제로 한다.
박두진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타락한 본성, 이를 대속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시로써 노래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 인물이자 죽음을 이기고 인류를 구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특별히 사도행전 연작에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소명의식으로 시대와 민족을 향한 사도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어지는 고독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정신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춘수는 역사가 주는 폭력을 체험한 후 역사의 실체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서 예수를 소재화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가장 무력한 자의 본보기로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역사라는 괴물 앞에 예수는 사랑의 화신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는 부활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심리적 진실로 자리한 신화적 인물이기도 했다. 박두진이 자신의 실존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시화하였다면 김춘수 시인은 역사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인간 존재의 슬픔과 그의 고통 콤플렉스를 시 쓰기 작업으로써 극복하였다.
본 논문은 카자흐민족의 선교는 그들의 민간신앙의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변혁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먼저 카자흐인들의 민간신앙의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변혁시킬 방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카자흐민족의 민간신앙의 신념 체제는 거주 공간, 동물(가축), 불, 음식과 같은 일상생활의 물질문화와 천신 사상, 조상신 숭배, 샤머니즘 등의 정신문화에 고스란히 배여 있으며, 이슬람의 제의와 사상과 혼합주의를 형성하여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민간신앙의 신념체제는 카자흐민족의 세계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카자흐민족의 민간신앙을 향한 선교는 그들의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변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연구자는 카자흐민족의 민간신앙의 세계관을 변혁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본 연구를 통하여 제시한다.
조상 제사가 실존적·실제적 차원에서 여전히 중차대한 한국적 상황에서 본 논문은 자신학(自神學)적 시도로써 한국적 조상 신학을 세계관 분석을 중심으로 예비적으로 탐색한다. 첫째, 현상학적 접근의 결과 조상 제사에 내재한 혼합주의적 요소가 파악된다. 무교(샤머니즘)적 우주관, 불교적 구원관, 유교적 윤리관이 조상 제사의 세계관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성경적 평가의 결과 혼합주의적 세계관의 실태가 드러난다. 무교적 우주관 으로는 정령(精靈)―망자(亡者) 지향성이, 불교적 구원관으로는 공로(功 勞)―보살(菩薩) 의존성이, 유교적 윤리관으로는 계층-남성 중심성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끝으로, 본고의 연구 결과 한국적 조상 신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 제시된다. 우주론적으로는 정령-망자가 아닌 섭리-창조주 지향성이, 구원론적으로 공로-보살이 아닌 은혜-그리스도 의존성이, 윤리적으로는 계층-남성이 아닌 평등-인류 중심성이 요청된다. 상기한 탐색적 연구 즉 세계관 분석 및 변혁은 한국적 조상 신학 정립에 관한 선교학적 논의에 있어 정향(正向)적 기제로써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발터 벤야민의 미학적 관점을 통해 인디음악씬의 작가주의적 음악인들의 예술적 세계관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발터 벤야민의 멜랑콜리적 사유는 꿈 혹은 잠재적인 메시아적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상과 세계, 텍스트의 존재를 새로운 ‘원천’으로 다르게 읽어내는 이러한 알레고리적 방법론은 파국적인 일상의 보편성과 자명성을 넘어서서 인식가능한 새로운 ‘메시아적 현재의 시간’을 추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상이 된 텍스트인 자우림의 「꿈」과 장기하와 얼굴들의 「TV를 봤네」, 그리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은 모두 현실을 파국으로 인지하고 이와 거리를 두는 멜랑콜리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를 파국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인지하는 동시에 멜랑콜리커(Melancholiker)로서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보여준다. 이들의 텍스트는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동일시를 통해 대중예술이 가질 수 있는 인식론적 가능성과 사유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교단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제사가 큰 어려 움 없이 추도예배로 정착된 것 같다. 그러나 제사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모 교회 주일예배를 참석하는 중 대표기도 하는 분이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성도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예식을 참여함 으로’ 믿음을 흐리게 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람직하지 못한 예식’이라 함은 물론 제사를 칭하는 듯하다. 조상제사는 신자의 가정에서 추도예배로 대치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결혼하여 불신자 가정에서 생활하든지 혹은 불신자 가정에서 예수를 믿게 되어 그 집안에 첫 신자가 되었을 때 제사 문제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복음이 전파된 후 한국 천주교는 정부의 극한 박해를 거쳐 조상제사 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제사문제를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 대한 공경인 제5계명으로 이해하여 더 이상 교인들이 조상제사에 대해 고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결과는 나름대로 조상제사에 대한 비판적 상황화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복음이 전파된지 약 1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상제사에 대한 일치된 해석이 없어 신자들은 불신자 가정에서 행해지는 조상제사 의식 앞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세계관(worldview)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어떤 세계관 을 가지고 조상제사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조상제사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조상제사의 의미는 신학적인 조명과 함께 그 문화 안에서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 가치, 의식구조, 평가 등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그 결정된 조상제사의 의미는 내부자 스스로의 상황화 과정을 통하여 현지문화에 정착이 되고, 마지막으로 그 상황화가 삶의 현장으로 이어질 때 가장 바람직한 성육신적인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소고는 신학적 접근으로는 조상제사와 상황화를, 문화적인 접근으로는 조상제사와 세계관을, 그리고 끝으로 삶의 현장으 로 조상제사와 성육신에 대해 기술하려고 한다. 이들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상호간에 연관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본 소고로 불신자 가정에서 갈등하는 신자들이 조상제사에 대한 이해가 다소 넓어지고 타문화 사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선교적인 교훈이 되기를 희망한다.
This is a study on the ecological view of Robert Smithson’s reclamation projects. Smithson was a pioneer of Earth art in the late 1960’s. Robert Smithson believed that he could transform industrial wastelands, such as an abandoned oil rig and a no longer used quarry, into “Earth Art." In the early seventies, he conceived of land reclamation as a new art form and called this art “Reclamation Projects.” His attention regarding industrial ruin started from the American political and social situations in the 1960’s. In the late 1960’s, American society was in chaos from the right of movement of African Americans, the women’s rights movement and from the strike for renunciation of the Vietnam War. The intellectual class seemed to believe that it was the destiny of a closed system’s society to run in the direction of entropy. Smithson, who was skeptical about the system of American society, also thought that entropy was the proper diagnosis to describe America’s situation in the 1960’s. The 1960’s civic movements like the civil rights movement and antiwar movements expanded into the environmental movements based on ecological views of the 1970’s. The government had also started to worry about environmental pollution. Thus, the reclamation act was also established in 1972. Smithson believed that the relation between art and social background are closely related and affect each other. He was concerned with how art can join society, and the result was reclamation projects. Such reclamation projects lie on man-made wastelands, like abandoned oil rigs and no longer used quarries, which was an allegory of entropy. He also thought that Frederick Law Olmsted was a pioneer of earth art. The aesthetic category of Olmsted’s view of landscape is to be based on the picturesque of Uvedale Price and William Gilpin. So Smithson, who considered Olmsted as his touchstone, also accepted the picturesque. Such reclamation projects aim to change with nature by adapting the creative power of artists to the ruin which has the highest level of entropy in industrial society. Smithson wanted this to become the bridge between man and nature. His reclamation project’s aim, which shows the system interacting between man and nature as a network, is not different from the ecological view of the 1970’s environmental movement.
Since 1884, many western Protestant missionaries came to Korea. The missionaries initially treated of the spiritual perspective of Koreans as superstitious and ignorance-oriented. Especially in the field of medicine, the Western perspective seemed to be far advanced tha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 According to the Korean traditional view, sicknesses was in many cases caused by intrusions of spiritual beings. Therefore, to cure the sick, one had to cast out those spiritual beings out of the bodies through placations or by force. With such perceptions, Korean people were not able to overcome the hard situations caused by the contagious diseases such as pestilence, small pox, and typoid fever. Western missionaries could take advantage on those matters in order to help Koreans and thereby achieving the trust of Korean government. Even though Western science and medicine proved their effectiveness through such medical works, excessive reliance can cause one to fall into the idolatry of worshipping medicine instead of God. Throughout the development in the area of science and technology, Westerners have tended to look everything through the scientific perspectives. Through such trends Western societies were believed to run the course of secularization throughout the 19th and 20th centuries. God and His supernatural world have been marginalized especially in public areas. According to Professor Paul G. Hiebert, even missionaries with severe Western cultural backgrounds have difficulties in understanding the spirit world of the native people. Early missionaries to Korea were not exceptions. They also had difficulties when they first met the Koreans and tried to understand their spiritual view points. In contrast to the Westerners who generally do not recognize the spiritual beings around them, the Koreans recognized the spiritual beings such as ghosts, ancestors in almost every aspect of their lives. Koreans were famous in maintaining the practices related to such spiritual beings throughout their ancient history. When the missionaries first observed practices related to the spiritual beings, they judged Koreans to be ingnorant or superstitious. However, the missionaries continuously tried to understand the people and their worldviews. When they were unable to understand the Korean worldview on the spiritual beings, they resorted not to the Western naturalistic perspective but to the Bible. Through comparison betwee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the Biblical perspectives, they discovered that the Biblical perspectives were more similar to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with careful observation and examination of the Korean ministers’ deliverance works, they changed their thought about the spirit world. The demons and spiritual beings which were regarded to harass Korean people were not supterstitions or fatacies. They were real beings confirmed by the Bible. The native Korean ministers contributed a lot in the paradigm shift from Western perspective to the Korean perspective on the reality of spiritual beings. The Korean ministers viewed the Bible differently. They believed Bible stories where the possessed were released by Jesus and his disciples. The faith of Korean ministers proved to be simple and firm enough to follow the practices of Jesus and his disciples in casting out demons. When the missionaries heard about the stories of deliverances by the Korean ministers and believers, they did not stop but rather carefully examined such behaviors in light of the Bible. The final criteria of missionaries were not the western but the Biblical perspective. With such criteria, they accepted and recognized the deliverance ministries of the Korean believers. Some missionaries, when asked if they could cast out demons out of troubled, succeeded in the deliverance ministries. In my estimation, the Nevius mission plan contributed greatly in making harmony and cooperation between the missionaries and the Korean ministers. God brought Koreans who were troubled with spiritual bondage into the Kingdom of God through such faithful servants of God. The reasons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to Korea brought such great success in evangelizing Korea were foremost their deep reliance to the Bible as the Word of God and secondly their deep understanding of Koreans and their ways of thinking.
게임은 다양한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공학적인 상상력이 융합되는 첨단 종합문화예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정서유발스토리텔링의 순기능성을 연구해 보고자는 것이 본 논문의 집필 목적이다. 이 논문은 MMORPG의 대표적인 게임인 <WOW (World of Warcraft)>의 서사에 드러난 다양한 정서유발 사례를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WOW>의 핵심 구성요소인 세계관, 캐릭터, 사건에 드러나고 있는 정서유발이 게이머에게 어떤 자극을 일으키고 있는가에 대한 사례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살펴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게임산업의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고 산업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게이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서스토리텔링이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예비 생물교사의 인식론적 신념과 인식론적 세계관의 변화를 탐색하였다. 예비 생물교사들은 3학년 2학기 교재 연구 및 지도법 과목에서 구성주의에 기반한 모의수업의 기회 및 RTOP(Reformed Teaching Observation Protocol)에 의한 동료평가와 자기평가의 기회를 가졌으며, 4학년 1학기 학교현장실습 기간 동안 매주 구성주의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반성적 저널을 적도록 하였다. 연구 결과, 예비 생물교사들은 현장실습 후 ‘지식의 확실성’과 ‘신속학습’에 대해 좀 더 세련된(sophisticated)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나(p<0.05), ‘지식의 단순성’과 ‘권위의존성’ 점수에는 변화가 없었다(p>0.05). 또한 학교현장실습 후 약 90%의 예비 교사들이 자신은 맥락주의자(contextualist) 또는 상대주의자(relativist)라고 답하여 지식, 교육과정, 교수방법 및 평가에서 구성주의적 교수학습관을 나타낸데 반해, 구성주의적 교수학 습관의 실행에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예비 생물교사들의 인식론적 신념이 학교 현장 실습 후 좀 더 섬세한 관점으로 바뀌고, 그러한 관점이 수업현장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예비 과학교사들이 학교현장실습 기간 동안 과학적 사고과정을 촉진하는 탐구중심의 수업을 통해 구성주의적 교수학습의 실행과정을 관찰하고, 이를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도록 현장교사의 지도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현장실습 시 단순히 예비 교사들을 학교 현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사양성기관과 현장교사와의 협력을 통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습정재 하응운(1676-1736)이 지니고 있었던 주정적 세계관을 중 심으로 그의 문학적 형상을 탐구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그의 가학적 전통 과 시대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문학작품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응운은 선대로부터 남명학통을 이어받았으나 노론으로 정립한 학자다. 그의 시대에 와서 명실상부 한 진주지역 노론 명문가로 발전하게 된다. 이 같은 처지에서 노론과 소론 사이 에 있었던 辛壬獄事를 거치면서 退處를 단행한다. 철저한 유가적 출처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응운은 당대를 위기의 시대로 판단하고 산림 속으로 물러나 주정적 세계관 을 정비한다. 이는 周惇頤 이래 성리학자들이 聖學을 터득하기 위하여 치열하 게 구축해갔던 세계관이다. 그 역시 이 주정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자신의 호를 ‘습정’이라 하였고, 이를 통해 안으로는 通明을, 밖으로 公溥를 획득하고자 했 다. 이 같은 세계관에 기반하여 문학창작을 하였으며, 당대인으로부터 ‘文苑의 詞宗’이라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時文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淸 越奇健’하고 ‘往往逼古’했다는 평가 받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문학적 경향 을 대체로 파악하게 된다. 주정적 세계관에 기반하여 작품을 창작했던 하응운은 자연을 ‘습정’의 공간으 로 인식하기도 하고, 창작의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생활공간으 로 인식하기도 했다. 습정공간으로서의 자연은 그의 문학이 유가적 수양론과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작공간으로서의 자연은 起興의 대상이 되어 하응운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시화를 나누고 주흥을 이끌어내어 작품을 창 작케 하는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연은 책읽기나 글쓰기 등 선비의 일상사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존재였으며, 특히 여행은 자연을 작품 화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