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는 헤르네의 알에 고대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를 극 형식으로 각색하여 소포클래스처럼 신 중심 사회가 인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과 인간의 자아 완성을 노래한다. 코노트 왕 콘갈과 타라 왕 이드는 헤르네의 알을 놓고 전투를 벌이며, 이후 타라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콘갈 왕은 이드 왕을 죽이고 헤르네의 알과 헤르네의 신부인 어트랙타를 차지한다. 헤르네의 알은 피지배국가가 아닌 지배국가가 갖는 제국의 힘과 왕권을 상징한다. 또한 콘갈 왕은 아폴론 신탁과 같은 그레이트 헤르네의 저주에 따라 바보 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예이츠는 콘갈 왕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일랜드 영웅문화를 재조명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치를 깊이 숙고해 보게 한다.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이 차지하는 위치는 단순한 종교 이상의 권위와 함께 폭력적인 강요를 의미한다. 아일랜드 특유의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가톨릭은 저급한 중산층의 여론과 결탁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누리면서 구성원들에게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조할 뿐 숭고한 정신세계로의 인도, 타협과 화합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달성, 트라우마의 치유 등 원래의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논문에서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예이츠와 히니, 그리고 베리를 통해 아일랜드 가톨릭의 정체성을 규명하려고 한다.
조던 감독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정치적, 젠더적, 성적 갈등과 서사가 풍부한 『크라잉 게임』을 통해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새로운 신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신화의 강제성과 함께 사실적으로는 새로운 신화가 아니라 보수적이며 남성 중심의 폭력적이며 강제적인 신화를 재생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세대의 섹션 5에 있는 베일의 떨림(1922)의 제4권은 시인 클럽과 아일랜드 문학 협회에 대한 명상으로 시작된다. 이 두 조직 간의 연관성은 아마도 시인 클럽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가운데 일부는 아일랜드인 또는 켈트인을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843년 3월에 존 켈스 잉그램(1823-1907년)가 쓴 「죽은 자들의 기억」은 분명 <젊은 아일랜드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발라드이다. 예이츠가 잉그램의 발라드에 권위를 부여했을 때, 이 발라드는 이미 “19세기 동안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애국가”로서 기능했다. 한편 예이츠는 외교관인 다니엘 크릴리(1857-1923)가 1888년 발라드 「바이바이의 남자들」을 낭송한 것을 떠올리면서 1916년 부활절봉기 이후에도 데이비스의 바람과는 달리 아일랜드가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다. 그는 「1916년 부활절」에서 신성한 이름들을 중얼거릴 뿐, 추모 의식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예이츠는 고대 영웅 쿠훌린과 현대 영웅 피어스와 코놀리를 아일랜드 영웅문화의 전형으로 제시했다. 그는 쿠훌린의 죽음이라는 극작품에 비전의 “과거의 삶에 대하여 꿈꾸기”와 가이어 이론으로 쿠훌린의 삶과 죽음, 사후세계를 구체적으로 재현했다. 쿠훌린은 피어스와 코놀리의 전형이었다. 이는 한 가이어의 정점에 해당하는 쿠훌린의 영웅문화가 끝나고, 그 정점에서 새로운 아일랜드 영웅인 피어스와 코놀리가 탄생한 것처럼 아일랜드 영웅문화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이었다. 이 영웅문화의 순환은 개인의 영혼의 순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윤회이었다. 그래서 예이츠는 쿠훌린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영웅문화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순환한다는 점을 현대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논문의 목적은 예이츠의 초기 글에서 예이츠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발전되어 가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있다. 그 중에서도 글에서는 특히 사무엘 퍼거슨 및 클래런스 맨건과 같은 아일랜드 작가, 그리고 보다 전반적인 아일랜드 문학에 대한 바람과 우려에 대해 예이츠가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논문에서는 선배 작가에 대한 예이츠의 글, 그리고 그가 아일랜드의 문학적 어젠다를 수립해 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훗날 예이츠 자신의 시와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작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아일랜드의 과거의 영광과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고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통해 문화적 민족주의를 고취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그 나름의 노력이 었다. 그러나 당시에 영국과 직접 전쟁을 하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정치가 들은 예이츠 초기의 민족주의적 작품들을 사람들로 하여금 아일랜드를 위해 목숨을 바쳐 영국과 싸우라는 의미로 왜곡하여 소개하며 그들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오독하 고 있다. 예이츠는 부활절봉기와 내전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들이 정치적으로 오독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초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민족주의적인 작품을 썼다는 것에 대해 후 회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부활절봉기와 내전에서 정치가들이 오 독하고 있는 그의 시를 살펴보면서 예이츠의 후회하는 반응을 확인해 보고 있다.
이 논문은 베케트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예이츠가 차지하는 지위와 그 함의를 논의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문화민족주의에 기반하는 특수성을 담보하는 예 이츠의 문학과 이에 대항하는 세계주의적 모더니즘의 보편성을 지향하는 베케트의 문 학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고 두 작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 논문은 두 작 가가 공유했던 20세기 초 아일랜드 개신교 공동체가 경험했던 문화 및 정치적 변화에 주목한다. 더불어 1930년대, 50년대, 70년대를 대표하는 베케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예이츠의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베케트와 예이츠의 관계를 조명한다. 베케트가 아일랜 드와의 관계를 양가적으로 형성하는데 있어서 예이츠는 중요한 매개로 작동한다. 궁극 적으로 베케트에게 아일랜드는 유령화된 예이츠의 나라로 표상된다.
예이츠와 레이디 그레고리는 신화를 모으기 위해 함께 작업했었다. 그러나 레이디 그레고리는 민간 설화를 설화로만 취급하였으나 예이츠는 시, 이야기, 희 곡, 산문 등의 자신의 창작물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충분히 활용한다. 예이츠의 작품에 서는 전개되는 작품의 배경을 이루며 결과적으로 그가 시에서 말을 할 때 예술과 인생에 있어 문학의 직접적 의미와 아름다움 외에는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게 된다. 독자는 작품의 보다 긴 배경설명 없이 특정 작품에서 그가 보고 듣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것이 예이츠의 작품의 간결함과 촘촘함의 비밀이다. 예이츠는 그래서 신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큰 작가든 그렇지 못한 작가든 간에, 그 이전의 여러 작가들과 차이가 있다. 신화는 아일랜드의 예이츠에게 일종의 속기와 같은데, 한국 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그런 작가들이 보인다.
북아일랜드의 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블러디 선데이는 시, 소설, 영화 그리고 팝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재현되어 왔다. 블러디 선데이 사건의 발생 배경에는 북아일랜드 공동체를 둘러싼 영국과 아일랜드 가톨릭의 대립적인 정치적 입장과 당시 국제 정세와 분위기 등이 반영되어 있다. 본 글에서는 1972년 1월 30일 당시 사건의 장면들이 토착민들과 공동체에 어떤 기억을 남겼으며, 이 사건을 다룬 시들에서는 이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의 목격자들의 증언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공동체의 파편적인 트라우마 기억이 어떻게 하나의 내러티브로 만들어지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본 논문은 린다 허쳔과 마그리타 레라의 번안 이론을 활용하여 소포크레스의 오이디푸스왕를 번안하는 예이츠와 맥기니스의 동기를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 한다. 주제와 파토스에 있어서 아주 상이한 번안을 하도록 하는 각 저자의 시대상황과 사정이 다른 점들을 보여준다. 또 그리스 원전의 번안 방법에도 주의한다. 본 연구는, 저자들의 빈약한 그리스어를 감안하여, 번안작가들은 언어간의 번역보다는 언어내부적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다룬다. 이 논문은 또한 그들이 어떻게 오이디푸의 신화와 현대 및 당대의 아일랜드 극에 기여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 그들의 번안/번역/교정을 할 때 예이츠와 맥기니스가 시도한 변형과 차이를 준 것들이 무엇인지도 논의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북아일랜드가 어떤 지위를 담보 하는가를 논의한다. 아일랜드와 시인 자신의 매개체로서 문화적 민족주의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데 천착했던 예이츠의 방대한 저술 속에서 놀랍게도 북아일랜드에 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논의를 찾기 어렵다. 이 논문은 일기, 일화, 소수의 “전쟁시”와 상원 연설문 등 부분적이고 파편적으로 산재한 자료들을 발굴 및 수집하고 이들을 연계해서 예이츠와 북아일랜드의 관계에 관한 응집된 서사를 구축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논문은 특히 유년시절 슬라이고에서 겫었던 얼스터 통합주의의 경험, 얼스터문예 극장에 관련된 일화, 「1916 부활절」, 「내전기의 명상」 및 「1919년」과 같은 정치시, 그 리고 그의 상원 연설문들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한다. 궁극적으로 얼스터/북아일 랜드가 예이츠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생략된 원인을 추적하고 또 상징이자 실체로서 얼스터/북아일랜드의 부재가 예이츠의 문화민족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본다.
이 논문은 『매의 우물에서』와 『이머의 유일한 질투』가 어떻게 예이츠 자신의 독특한 영성에 대한 생각을 문화적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두 극은 쿠훌린을 주제로 사용함으로써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인 『매의 우물에서』는 쿠훌린이 영생의 샘물을 찾아나선 젊은이로 등장한다. 그러나 쿠훌린은 결국 샘물을 얻지 못하고 떠난다. 두 번째 작품인 『이머의 유일한 질투』는 그보다 훨씬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극에서 쿠훌린은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인 후 미쳐서 파도와 싸운 후 의식을 잃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논문에서는 두 극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노 극 『요로』 (養老)와 『아우이노우에』(葵上)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예이츠가 어떻게 노 극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변형시키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예이츠는 후기에 들어 아일랜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의 시에 아일랜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예이츠가 자신의 후기시에서 당시 아일랜드 정치상황에 관해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해 예이츠의 후기시 가운데「1913년 9월」,「1916년 부활절」,「재림」,「비잔티움 항행」를 살피고 그의 마지막 시편 가운데 하나인「사람과 메아리」를 고찰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치에 관해 찬미와 동시에 비난과 회의를 제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해운업은 국제자유경쟁체제에 완전히 노출된 전형적인 글로벌 산업이므로, 전 세계 해운업계에서는 조세부담 완화, 선원고용의 규제완화, 특수목적회사의 설립의 용이, 선박금융의 편의성 등과 같은 안정성을 제공하는 국가에 선박을 편의치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 해운업계에서는 전통적으로 파나마를 편의치적국으로 가장 선호해왔다. 최근에 편의치적 국가의 선박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파나마와 더불어 마샬아일랜드를 편의치적 국가로 선호하는 것을 국제적인 통계와 국내 통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편의치적 국가인 파나마의 선박등록·등기제도를 소개한 논문은 발표된 적이 있어 실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어 왔다. 그러나 마샬아일랜드를 기국으로 하는 선박등록 및 등기제도를 소개한 논문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마샬아일랜드의 선박등록 및 저당 권 등기 제도를 소개하고 다른 기국과 대비되는 특징을 소개하여 우리나라 해운 실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정철과 박목월 시에 등장하는 방랑자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인 자연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긍정적 시각으로 보면 이들은 자연에 매우 잘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부정적 측면으로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와 방랑하는 이유를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방랑의 원인인 갈등이나 억압에 대해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극단적 도피자일 수 있다. 그러나 예이츠와 히니 시의 방랑자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왜 방랑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저항한다. 예이츠는 앵글로 아이리시 영웅으로의 저항 정신을 그의 방랑 시에서 드러냈다. 이것은 자신을 오신, 쿠훌린및 오이디푸스 같은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 한데서도 증명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니는 순례의 섬이나 방황하는 스위니를 통해서 종교의 권위에 저항해 나락으로 떨어져 방랑해야만 했던 전설의 순례자인 스위니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한편 한국 시와 아일랜드 시에 등장한 방랑자들은 모두 예술혼인 자유를 추구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이츠의 「청금석」과 브라운의 「나의 레이니」에서 예술의 마술으로 비극적 장면이 행복의 장으로 바뀐다. 「청금석」에서는 “구슬픈 곡조”조차 기쁨을 만들고, 블루음악은 청중으로부터 고마움을 일으키는 군중의 흥미를 만드는데 이는 레이니의 기교를 통해서 노래로 만들어진다. 아일랜드의 문예부흥과 신흑인 문예부흥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데, 토속적 언어, 음악성, 그리고 공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니의 바이올린연주자」와 「성인들이여」는 둘 다 “예술에서의 자기존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 는 민속과 강하게 연관된 토속적 시의 전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민속의 중요성을 전경화 시킨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가톨릭교 신부들을 이득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 아일랜드 국민들을 배반한 유다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작품의 각 중단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이스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맹목적인 순종과 그 권력에 절대 복종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작품에 묘사되고 있는 신부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능하며 성직자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거짓된 권위와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가톨릭교를 거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한데, 그것은 그가 가톨릭교회를 거부하긴 했지만 그 제도나 형식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예수회재단 가톨릭교회의 제도나 교리 등을 작품창작에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는 가톨릭교회나 신부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변화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