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점토대토기문화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중국 요령지역으로부터 유입된 문화로 유구와 유물에서 재지의 송국리문화와는 이질적이고 단절된 문화상을 보인다. 그러나 점토대토기문화 에서 확인되는 석기를 송국리문화의 석기군과 비교하면 유사점과 차이점을 모두 보이고 있어‘점토대 토기문화의 석기’에 대한 정체성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있다. 본고는 점토대토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전반을 검토하고, 재지문화인 송국리문화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점토대토기문화 석기의 범주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는 송국리문화 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기종의 출현은 확인되지 않지만, 새로운 형식의 출현은 확인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로 설정하였다. 점토대토기문화의 석기상은 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Ⅰ유형은 자체적으로 고안한 형식으로, 무경 식석검, 삼각형석촉, 소형 편평양인석부, 단면 장방형의 석제 방추차 등이 있다. Ⅱ유형은 재지문화의 석기를 독창적으로 변형한 형식으로 구하부 직선의 유구석부, 편평유경촉 등이 있다. Ⅲ유형은 재지 문화의 석기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합인석부, 편평편인석부, 구하부 사선의 유구석부 등이 있다. 이 세 유형은 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발현된 석기상으로 이를 통해 당시 환경에 적응ㆍ정착하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석기상으로 볼 때, 점토대토기문화는 수렵에 비중을 둔 사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The ecosystem provides a diverse array of environmental conditions for organisms, and only those that are capable of successfully adapting to these conditions within their habitats can endure, thrive, and proliferate. Further, the environmental conditions within these habitats can significantly affect the bioavailability of chemicals that are introduced therein, thus resulting in varied adverse impacts on the organisms. The present study aims to evaluate the sensitivity of Yuukianura szeptyckii - a species adapted to riparian - to heavy metals following ISO guideline 11276, with the objective of assessing its potential as an indicator species for ecotoxicological evaluations in riparian habitats. The findings revealed that cadmium and copper both had significant toxic effects depending on their concentrations. For cadmium, the LC50 was 280 mg kg-1, EC50 was 66 mg kg-1, and NOEC and LOEC were 25 and 50 mg kg-1, respectively. For copper, the LC50 was 911 mg kg-1, EC50 was 151 mg kg-1, and LOEC was 50 mg kg-1. Comparative analysis with previous results for the international standard species Folsomia candida and the domestic standard species Allonychiurus kimi indicated that Y. szeptyckii exhibited even greater sensitivity to toxicity values. The adverse effects on survival and reproduction we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influx concentration of heavy metals in their bodies. Altogether, the results suggest that Y. szeptyckii is a sensitive species for ecotoxicological assessments in riparian habitats, thus making it suitable as an indicator species, particularly in riparian ecosystems that are characterized by relatively high humidity conditions.
필자는 교차편년으로 설정된 기존의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연대와 출현 과정에 오류가 있음 을 발견하였다. 이에 방사성탄소연대를 이용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새로운 연대 안과 출현과정을 제 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현재 학계에 뚜렷한 견해가 없는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격에 대하여도 새로 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는 BC 12세기 무렵, 비파형동검과 동시에 출현하였으며, 이후 후기 청동기시 대 송국리문화, 역삼동후기문화, 검단리문화 등과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장기간에 걸쳐 공존하였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은 요동지역‘정치집단’의 이주민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형성 되어 있던‘요동-서북한-남한’의 네트워크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청동장인집단’이다. 이들이 남겨 놓은 유적 중‘수석리유적’,‘교성리유적’등은 당시 청동의 원광석을 채광·선광했던 장소로 추정 되며,‘동학산유적’,‘방동리유적’등은 청동을 제련·주조 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이‘청동장인집단’은 재지 사회의 지배층에게 비파형동검 등의 청동기를 제작·공급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술장인들이었으나 점차 정치력을 갖게 되면서 세형동검단계에 이르러서는 당시 사회의 지 배층인‘제사장’이되고, 결국 삼한 사회의 최상위 지배층으로 성장한다.
원형점토대토기에서 삼각형점토대토기로의 변천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단연 구연부의 형 태와 제작기법이다. 지금까지 단면형태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점토대토기 변천 의 요인에 주목한 연구는 많지 않다. 본고에서는 점토대토기의 구연부에 내포된 제작규범과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여 구연부의 변천이 일어나게 된 요인을 추론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은 사천 방지리유적에서 출토된 점토대토기로, 구연부의 제작기법을 분석하여 점토대토 기 제작패턴의 개념을 설정하고 단면형태와 내면형태, 지두흔과 정면흔의 조합을 통해 제작패턴을 분류하였다. 제작패턴은 점토대토기 구연부가 어떠한 의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를 보 여주는 것으로, 점토대토기 구연부의 성격을 파악하고 점토대토기의 변화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이를 통해 도출된 제작의도에 범형의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 원형점토대토기와 삼각형점토대 토기의 제작은 유기적이며, 점토대토기의 변화는 구연부 제작방식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점토대토기의 구연부는 제작자, 나아가 집단의 정체성이 표현되는 부분으로, 일종의 상징적인 의미 가 부여되어 있다. 원형점토대토기는 점토대의 형태를 원형으로 유지하려는 제작규범 하에서 제작되 었으며, 삼각형점토대토기로의 변화 요인은 이러한 제작규범의 약화로, 제작규범의 약화는 점토대토 기 구연부에 대한 제작집단의 관념과 구연부 제작의 편의성에 대한 인식이 맞물려 일어난 것이다. 결 국 원형에서 삼각형으로의 변화는 외래계 요소의 영향이나 이주민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동일 집단 내에서의 변화라 볼 수 있다.
점토대토기는 호서지방에서는 원형, 만경강유역에서는 원형과 삼각형, 영산강유역에서는 삼각형점 토대토기가 중심을 이루면서 북에서 남으로의 변화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원형점토대토기문화는 호서지방이 중심을 이루고, 이후 점차 호남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보았으나 만경강유역과 서해안 일대에서도 이른 시기의 원형점토대토기 유적이 증가하고 있으며, 호남지역 유적을 통해 원형점토대토기의 유입과 발전,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출현부터 소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는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철기시대를 거쳐 기원 후 1세기경까지 이어지며, 만경강유역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이후 영산강유역, 동부섬진강유역권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와 함께 송국리문화의 소멸도 만경강유역에서 먼저 나타나며, 영산강유역이나 동부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늦게까지 확인되고 있다. 호남지역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양상은 크게 4기로 구분된다.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주거지는 전주 대정Ⅳ유적의 말각장방형계(Ⅰ기), 삼각형 점토대토기 단계의 주거지는 전주 중동유적의 방형주거지가 있으며(Ⅲ기), 이를 제외하면 원형의 송국리형주거지에서 타원형수혈이나 내주공이 사라지면서 말각방형으로 바뀌고, 말각방형에서 점차 방형으로의 변화양상을 보인다. 동부섬진강유역은 송국리형주거지에서 타원형으로 바뀌는 지역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노지는 전주 대정Ⅳ유적에서 1~2기의 장축노가 조영되지만 이는 전기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전통으로 이해되며, 삼각형점토대토기 소멸기인 Ⅳ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다. 분묘는 Ⅰ기에는 송국리식 무덤인 석관묘와 석개토광묘·토광묘에 점토대토기나 검파형동기·경형동기 등의 청동 유물이 부장되며, Ⅱ기에 본격적으로 적석목관묘와 토광목관묘가 조성되면서 세형동검·정문경 등의 풍부한 청동유물이 부장된다. Ⅲ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와 철기로 대표되는데, 토광목관묘가 주묘제로 조영되고 청동유물의 부장이 감소하며 위세품이 철기로 대체된다. 또한 대외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이며, 전반적인 사회변화가 크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준왕의 남래와 그로 인한 마한사회의 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Ⅳ기는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소멸기로 무덤군은 조성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수장급의 무덤이 뚜렷하지 않으며, 이러한 양상은 기원후 2세기까지 이어진다. 최근 꾸준히 1~2세기 자료도 증가하고 있지만, 기원후 대규모 유적의 부재는 제철유적과 연관된 중심세력의 이동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각형토기(角形土器)는 동체가 팽만하고 좁은 저부를 가진 기형을 중심으로 팽이와 흡사한 형태적 특징을 보인다.‘각형(角形)’이란 토기 명칭은 기형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남한 내 무문토기의 명칭이 대표 출토지를 중심으로 부여된 점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명칭 차이는 남한 내 주요 토기가 아니란 인식에 따라 통일된 명칭을 부여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 본고는 최근 경기 서북부지역에서 각형토기의 출토에 주목하면서 이 지역의 무문토기 출토양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 하에 기존 각형토기를 남한의 토기문화유형과 같이 대표적 출토지를 바탕으로‘신흥동식 토기’라 명명한다. 지역 내 전반적인 문화유형 양상을 규명하고자 경기 서북부지역 중 강화, 김포, 검단의 무문토기시 대 취락 현황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김포와 검단은 역삼동문화유형권이며, 김포에서 흔암리식토기의 출토는 부재(不在)에 가까운 점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지역 내 각 토기의 출토 현황, 각 형식별 토기가 단독으로 출토된 주거지 사례 등을 살펴본 결과 지역마다 출토양상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유형을 기반으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이중구연토기의 계통성을 확인하고자 토기의 명목형·연속형 속성을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명목형 속성은 토기 구연부 문양을 중심으로 Ⅰ식 토기문 양(이중구연+사선 조합)과 Ⅱ식 토기문양(흔암리식토기)으로 구분된다. Ⅰ식 토기문양은 대동강유역 에서 출토된 신흥동식 토기문양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세분하고, Ⅱ식 토기문양은 이 지역에서 주로 출토된 문양을 중심으로 세분하였다. 연속형 속성은 이중구연의 길이, 이중구연 두께, 사선길이, 이중 구연 접합부 두께를 중심으로 계측이 가능한 토기 71점을 검토하였다. 경기 서북부지역은 남한 내 북쪽에 위치하며 서해안을 따라 다양한 유입 경로를 갖기에 북한과의 관계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시 무문토기문화가 단순하지 않으며 다양한 경로의 이주 및 유입으로 인한 혼재된 문화양상을 지녔을 것으로 본다.
본고에서는 미사리유형의 대표적 유물인 돌대문토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미사리 유형의 물질문화에 당시 사회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는지, 시대적 획기로 구분될만한 시점이 있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돌대문토기의 속성 분석에서는 저부와 관련된 기형변화가 추정되었다. 저경과 구경의 비율을 측정한 저경비 0.38을 기준으로 구경 대비 저부가 좁은 기형(A)과 구경 대비 저부가 넓은 기형(B)으로 나뉘었다. 이를 지역에 따라 순서배열한 결과, A에서 B의 변화 방향이 나타났다. 특히 북한강, 남한강, 금강, 낙동강 유역에서는 A와 B의 기형이 공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돌대문토기는 저부가 좁은 기형이 만들어진 이후 저부가 넓은 기형과 공존하다가 점차 저부가 넓은 기형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돌대문토기는 전개 지역 중 북한강, 한강 본류 유역에서 신석기시대적 요소를 지닌 환저토기와 공반되며 이른 시기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더하여 저부가 좁은 기형의 돌대문토기가 이른 시간성을 지니는 점은 돌대문토기의 기형이 신석기시대 토기의 기형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질산, 황산, 암모니아수, 과산화수소에 대한 생태독성평가를 통해서 사고대비물질들에 대한 기초 독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향후 화학사고 발생시 환경 피해에 관한 의사결정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사고대비물질 중 토양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질산, 황산, 암모니아수, 과산화수소를 대상으로 국내 토착 절지동물인 김어리 톡토기 (Paronychiurus kimi)를 이용한 생태독성평가를 수행하였다. 7일간의 급성독성평가와 28일간의 만성독성평가를 수행하였으며, 시험물질 농도에 따른 토양의 pH 변화를 관찰하였다. 토양의 pH는 질산, 황산, 과산화수소, 암모니아수의 농도가 10,000 mg kg-1 soil dry wt.일 때, 각각 2.86, 2.72, 7.18, 9.69이었다. 질산, 황산, 과산화수소, 암모니아수에 대한 만성독성평가 결과, LC50 값은 각각 2,703, 5,414, 3,158, 859 mg kg-1 soil dry wt.이었으며, P. kimi의 산란 수에 대한 EC50 값은 각각 587, 2,148, 1,300, 216 mg kg-1 soil dry wt.이었다. 비록 본 연구에서는 사고대비물질들의 유입에 따른 토양 pH의 변화만이 조사되었지만, 본 연구의 결과는 P. kimi가 사고대비물질에 의해 변화된 토양의 pH뿐만 아니라 사고대비물질의 유입에 의해 감소된 유기물 함량과 생성된 반응 산물에 의해서도 사망률과 산란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고대비물질들이 토양의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토양의 특성 변화와 이에 따른 생물 영향을 고려한 화학사고 후 평가 및 복원 방법이 필요하다.
제주지역은 기존 송국리문화의 바탕위에 기원전 4세기 이후 도래한 점토대토기문화가 빠르게 융합되면서 전개된다. 이처럼 문화접변 과정을 거쳐 서북부지역에 대규모 취락이 조성되기도 한다. 서남부지역 에서는 비전형적인 송국리형주거지가 축조되면서 지역화된 양식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변형된 주거지를 축조하고 점토대토기 집단의 금속기를 교환하고 있지만 일상토기인 점토대토기는 배척되고 있다. 점토대토기 집단의 정착과정을 보면 서북부지역에서는 주민간 활발한 동화과정을 통해 재지화되는 반면 서남부지역은 상위계층간 교류가 진행될 뿐 직접적인 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서북부지역은 원형점토대토기 집단이 쉽게 동화되지만 서남부지역에서는 점토대토기 집단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 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삼각형점토대토기 집단은 동북부지역(종달리와 김녕리)에 거점을 확보하지만 활동영역이 축소되고 서남부지역과의 교류가 단절된다. 제주지역에서 점토대토기가 소멸하는 것은 대략 2세기경으로 추정되며 남해안지역과 궤를 같이한다.
한반도의 석기-금속기 전환 과정은 청동기시대 중기 후반부터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를 거쳐, 삼각형점 토대토기 문화까지로 말해지고 있다. 이 과정 중에서, 위신재는 석기에서 청동기로, 실용기는 석기에서 철기로 대체되었다고 이야기되며, 이러한 인식에는 청동기시대 중기부터 삼각형점토대토기 문화까지 동일한 문화 계통, 생업경제를 영위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 고고학적 양상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구의 재질 변화는, 기존의 재질은 점차 줄어들고 새로운 재질이 점차 증가하는 ‘과도기’ 또는‘이행기’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재질이 완전히 정착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석기에서 철기로의 변화는 그러하지 않다. 철기가 등장하기까지는 수백 년간의 시간적 공백이 존재한다. 또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는 토착의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와는 계통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후 삼각형점토대토기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석기에서 철기로의 전환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이다. 즉 청동기시대 중기 에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를‘석기의 감소’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중기의 석기 기종과 수량의 풍부함과 대비되는 현상으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의 석기 양상을 확인하고 그 배경을 검토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호서지방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의 석기 조성을 검토하고, 석기 기종 구성의 편중은 목기의 사용과 일회적인 석기 제작·사용 방식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본고는 무문토기문화가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기준과 유사도에 따라 농담(濃淡)이 있고, 무문토 기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적 범위가 시간에 따라 변동하는 유동성을 띤 것이었음을 밝히는 것이 목 적이다. 특히 한반도 무문토기형성과 전개에 무관하지 않은 중국동북지역까지를 공간적 범위로 삼아, 한반도 조·전기의 무문토기문화를 농담(濃淡)에 따라 크게 4개 무문토기문화권으로 설정하였다. 4개 문화권은 한반도 남부 무문토기의 특징이 압축된 남부 무문토기문화권, 무문토기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지속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압록강중상류(전기에는 청천강유역)까지의 1차 무문토기문화 권, 직간접적으로 무문토기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동반도 남단에서 요동산지에 이르는 2차 무문토기문화권, 무문토기의 기본 구성요소를 공유하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3차 무문토기문화권으로 나뉜다. 특히 1차 무문토기문화권과 3차 무문토기문화권은 시기에 따라 축소 또는 확대되기도 한다. 따라서 광의의 의미로 무문토기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적 범위는 요하유역의 고대산문화까지이고,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질수록 한반도 남부 무문토기와의 유사도가 높아진다. 이처럼 무문토기문 화권에 농담이 있고, 시기에 따라 문화권이 변동하는 요인으로는 집단 간의 교류, 이주 등의 사건도 중요하지만, 청동기시대 동안에 한반도 각지와 중국동북지역 각지 간에 형성되었던 개별적인 지역관계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았다.
Acute and chronic toxicities of methyl ethyl ketone and methanol were investigated on Paronychiurus kimi (Collembola), for evaluating the potential effects of accidental exposures of these chemical substances on the terrestrial environments. This study was undertaken to establish a toxicity database for these chemical substances, which was required for the preparation of the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 for agricultural production and environmental damage. The 7-d acute toxicity and 28-d chronic toxicity were conducted using the OECD artificial soil spiked with varying, serially diluted concentrations of methyl ethyl ketone and methanol. Mortality was recorded after 7-d and 28-d of exposures, and the number of juveniles were determined after 28-d of exposure in the chronic toxicity test. In both assessments, methanol was more toxic than methyl ethyl ketone in terms of mortality (LC50) and reproduction (EC50). The 7-d LC50 of methyl ethyl ketone and methanol were 762 and 2378 mg kg-1 soil dry wt., respectively, and the 28-d LC50s were 6063 and 1857 mg kg-1 soil dry wt., respectively. The 28-d EC50 of methyl ethyl ketone and methanol were 265 and 602 mg kg-1 soil dry wt., respectively. Comparison of results obtained in this study with literature data revealed that P. kimi was more sensitive to methanol than other soil invertebrates. However, given the high volatility of the chemicals tested in this study, further studies are necessary to improve the current test guideline, or to develop new test guidelines for an accurate assessment of chemicals that require toxicity databases for chemical accidents.
점토대토기문화기에서 석재를 사용한 분묘는 적석목관묘 ․ 위석목관묘 ․ 토광위석묘 ․ 석곽묘 ․ 석관묘 등 다양한 명칭으로 구분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분묘를 검토한 결과 삼국시대 석곽묘와 같은 견 고한 구조의 석곽묘와 목관과 묘광사이를 할석을 이용하여 뒷채움한 유사석곽형, 목관과 묘광 사이에 판석을 석관처럼 가로방향으로 세워 놓은 석관형, 묘광의 장벽이나 단벽을 따라 목관을 고정하기 위해 몇 매의 석재를 듬성듬성 놓은 위석형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축조 당시의 모습이 완벽하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잔존상태만으로 이를 구분하는데 한계가 있다. 석재사용 분묘는 공간적으로 경기지역과 호서 ․ 호남지역에 넓게 분포한다. 하지만 경기지역은 대부분 단순한 형태를 보이며, 부장유물도 세형 동검을 제외하면 청동기는 없이 토기만 부장된다. 이에 반해 호서․호남지역은 분묘의 구조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유물도 의기류, 무기류, 공구류 등 다양한 청동기가 다량 부장되고 있다. 한반도 점토대토기문화는 중국 동북지역 주민 이주로 형성되었으며, 다양한 구조의 분묘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주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또한 출토 청동기를 통해 볼 때 중국 동북지역에서 볼 수 없는 한반도만의 특징적인 청동기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서 ․ 호남지역의 경우 석재사용 분묘에서는 검파형동기 ․ 방패형동기 ․ 동령구 ․ 동경 ․ 이형동기 등 의례용 청동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의례를 관장하는 특수집단의 이주가 상정되며, 의기와 함께 다량의 청동무기를 부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위계를 가진 집단이 이주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님마디톡토기는 토양생태계에서 오염물질의 독성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국제 공인 표준시험종으로 제안되고 있다. 토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톡토기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으며, 더 민감한 독성영향 종말점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토양오염물질인 중금속의 생태독성영 향을 평가하기 위하여 장님마다톡토기의 도약능을 이용하였다. 장님마디톡토기는 표준시험법에 따라 중금속 오염토 양에 만성노출되었으며, 이후 생존개체를 수집하여 도약능 평가를 수행하였다. 톡토기의 도약은 일시적인 화학스트레 스를 이용하여 유도되었으며, 이를 회피하기 위한 운동능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기록하여 평가하였다. 중금속 오염토양에 노출된 개체는 도약을 통한 회피 경로가 단순화되었으며, 도약 횟수와 길이가 중금속 농도에 따라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이는 중금속 오염토양에서 톡토기의 회피능력이 감소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생태독성을 평가하기 위한 종말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청동기시대의 생업도구인 마제석기는 요령지역의 점토대토기 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게 된 다. 점토대토기 문화의 파급경로와 유입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이로 인해 나타나는 한국식 동검문화의 성립, 원형점토대토기의 사용, 지석묘의 소멸과 목관묘의 등장, 마제석기의 쇠퇴 등 문화적 변 화는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금속제 도구의 등장은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마제석기 소멸의 직접적 인 요인은 삼각형점토대 문화와 관련된 전국계 철기문화이다. 본고는 철기문화의 출현이 명확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점토대옹의 발생순서에 따라 원형점토대토기 단 계(Ⅰ기), 원형점토대토기와 삼각형점토대토기가 공반되는 단계(Ⅱ기), 원형점토대토기가 소멸되고 삼각형 점토대토기만 보이는 단계(Ⅲ기), 삼각형점토대토기와 와질토기가 공반되는 단계(Ⅳ기)로 설정하고, 마제 석기를 대체하는 금속기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통하여 석검→세형동검·철검, 석촉→철촉, 석부→철부, 석착 →철착·철사, 석겸·반월형석도→철겸으로 파악하였다. Ⅰ기는 B.C. 4C 말∼B.C. 3C 후엽으로 유(무)경식석검, 평기식무경촉, 합인석부, 편평편인석부, 주상편 인석부, 주형석도, 석겸 등 다양한 석기가 공존하며 세형동검의 등장으로 석검은 쇠퇴기에 접어든다. Ⅱ기 는 B.C. 2C 전엽∼B.C. 2C 중엽까지로 전국계 철기가 유입되는 단계로서 Ⅰ기에 비해 마제석기의 수량이 급감한다. Ⅲ기는 B.C. 2C 후엽∼B.C. 1C 전엽까지로 주상편인석부·유구석부→판상·주조철부, 석착→ 철착·철사, 석도·석겸→철겸으로 대체된다. Ⅳ기는 B.C. 1C 중엽∼B.C. 1C 후엽까지로 와질토기가 등 장하는 시기로서 석촉→철촉, 합인석부·편평편인석부→판상·단조철부로 바뀐다. 늦어도 기원 전후를 기 점으로 지석, 연석 등을 제외한 대부분 기종의 석기가 철기로 대체된다.
한국고고학에서 점토대토기문화에 대한 연구는 기원과 편년, 그리고 전개양상을 중심으로 진행되 어 왔으며, 여기에 사회성격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연구경향을 발 전적으로 계승하면서 중국 요령지역에서 남한지역으로 유입된 외래계 점토대토기문화가 재지문화와 어떠한 접촉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수반하여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주 거문화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하였다. 먼저, 주거구조에서 볼 때 벽부노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장축노도 외래계 주거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평양 남경 3호 주거의 토기 를 점토대토기로 인정하는 쪽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주거구조를 검토하여 전 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는 것을 밝혔다. 점토대토기 출토 유적을 취락의 측면에서 보면, 영동지역에서 는 외래계 주거 및 유물이 주체적인 유적이 주로 확인되고 있는 반면에, 영서지역의 경우는 재지문화 가 중심을 이루는 취락에서 외래문화가 일부 수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양 지역 모두 재지문화와 외 래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혼인과 같은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루 어진 것과 연동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외래계 취락과 재지계 취락의 교류 과정에서 나 타난 모방(절충)토기의 존재를 주목하였다. 한편 유적마다 타문화 주거지의 구성 비율 및 유물 출토 양상에서 차이가 있는 점에서 볼 때, 집단마다 공동체의 성향에 따라 외부 문화의 수용 양태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요시무라 레이 吉村怜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화화생 도상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꽃 문양은 몇 변화 단계를 거쳐 불·보살·天人(飛天)으로 化生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관련 연구를 계속하면서 아래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시무라가 주장한 연화화생 도상은 넓게는 화생 가운데 하나이며 더욱 넓게는 기의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의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 만 범세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불교미술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교 전래 이전부터 도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기(화생 연화화 생 포함)에 등장하는(표현하는) 여러 문양은 단순한 장식 문양으로 그치 지 않는다. 이들은 기(화생 연화화생 포함)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상호 同格을 이루고 互換交互하며 連繫된다.> 필자는 위 견해를 1993년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해석에 적용시켰다. 본고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기의 표현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 리고, 더불어 백제금동대향로 제작 특히 연화화생 등 기의 표현도 당시(6 ∼7세기) 이웃나라(특히 중국)의 영향이 아닌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을 따 른 것임을 알릴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논문에서 例示한 토기와 청동기에서 보듯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기 화생 연화화생의 표현은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전 개, 전승되었다. 또한 앞애서 주장한 것처럼 기 화생 연화화생 표현 에 등장하는 여러 문양들은 상호 동격을 이루고 호환 交互하며 連繫된 상태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토기에는 주로 點文(점선문) 직선문 (연속)삼각문으로 표현하였고 기타 연화문 화염문 파상문 당초문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산 태양 연꽃 또는 그 관련 기 화생을 표현하였는데 대 개 간단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연속)삼각문(그 안 직선문 포 함)은 삼국시대에 이르면 분명 山文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연화문을 나 타낸 웅기 송평동 출토 토기(도2), 연속 삼각문과 유사한 모습의 연화문 을 나타낸 통영 연대도 출토 토기(도7) 등을 통하여 볼 때 신석기시대에 도 蓮華化生山즉 ‘연꽃으로부터 山이 화생되는 표현’도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 山文이나 연화화 생산 표현을 계승, 발전시킨 도상 가운데 하나가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청동기시대 기 화생 표현은 주토 청동기에 ‘짧고 조밀한 연속 직선 문’ 점문(점선문) 원문圓文(연속)삼각문 파형문巴形文당초문 등으로 나타냈다. 기본 바탕은 신석기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다. 이들은 불교미술 등 후대에 깊 은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가야시대 포함) 토기에 보이는 기 화생 표현은 그 문양 등 에서 보듯 신석기시대 토기(기원전 5000년경∼기원전 2000년경)와 청동 기시대(기원전 2400년경∼기원전 600년경) 청동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이다. 기 화생 표현은 더욱 다양화되었고 확산되었으며 특히 연화화생 표현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연속 산문을 위시하여 원문 半圓文당초 문 연화문 인동문 등으로 나타냈으며 역시 철저하게 상호 동격을 이 루고 호환 교호하며 연계된 구성을 보여 준다. 이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강역(오늘날 滿洲와 한반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는 시기에 전개된 기 화생 연화 화생 표현은 독자적 영역을 이루며 전승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북사’명 토기 출토 건물지는 사비도성의 南北道路에서 동쪽으로 약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지의 북쪽 1.5m 거리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샘이 하나 있고, 여기에서 북쪽 2m 거리에는 동서방향으로 석축이 지나고 있다. 이 석축은 사비도성의 북쪽 경계를 표시하는 석축이다. ‘북사’명 토기 출토 건물지는 절반 정도만 조사 되었다. 규모는 남북 너비가 7.7m이고, 동서 길이는 4m만이 확인되었다. 동서 길이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남향의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지는 소형의 독립가옥 형태를 하고 있는데, 지붕에 와당을 사용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祭器로 사용된 듯한 특수한 토기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그런 점에서 祭祀를 거행한 신성한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료에 의하면 백제는 사비도성내에 始祖 仇台廟를 모시고 1년에 4차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北舍’명 토기 출토 건물지가 바로 그 始祖 仇台廟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고는 남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토기문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간남한강유역에 대한 연구는 강원영서 또는 충청권에 편중된 연구로 인해 남한강유역 전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남한강유역 전반을 대상범위로 설정하여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 문양의 각 속성을 기준으로 발생순서배열법을 통해 단계를 설정해 본다. 이후 토기기종과 AMS연대를 보완하여, 종합적인 편년을 설정함과 더불어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남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토기문화는 총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조기후반은 돌대문계요소와 이중구연계요소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한다. 전기전반이 되면 이중구연계요소와 공렬문계요소가 단독 또는 복합되어 나타난다. 전기후반에는 흔암리식토기를 중심으로단독문의 공렬문계요소가 확인된다. 후기는 공렬문계요소만 확인된다.
남한강유역 청동기시대 문화 전개양상은 조기후반에는 미사리식 토기문화가 남한강 상류에 분포한다. 전기전반에는 가락동식, 역삼동식 토기문화가 남한강유역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전기 후반에는 가락동식 토기는 쇠퇴한다. 그리고 흔암리식 토기문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역삼동식 토기문화는 남한강유역 전체에 확산된다. 후기에는 남한강 하류와 상류 일부에 유적이 확인되며, 유적의 수가급감한다. 유적이 급감하는 이유로는 첫째, 발굴조사 자료의 부족. 둘째, 주민의 이동. 셋째, 문화의장기존속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시·공간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동북계와 서북계가 상류와 하류에 달리 나타나며, 이들 문화는 접점에서 공존하고 있다. 또한 후기에는 북한강유역과 공존하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남한강유역의토기 문화는 재지문화를 중심으로 주변의 문화와 접하였고, 주변문화를 재지화 하였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