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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선교사의 심리적 탈진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인 ‘자기성찰 디브리핑(Debriefing) 모델’의 제안에 초점을 두었다. 기존 의 디브리핑 모델의 외상 경험 이후의 정서 안정화에 초점을 둔 것과 달리 문제 상황 이전에 적응적 대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예방 모델이다. 선교사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갈등 상황 간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며 “미해결 정서”를 인지 및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부적응적인 스키마와 대처 전략에 대한 교육을 통해 심리적 탈진을 예방하고 인지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모델은 기존 디브리핑 모델의 장점을 토대로 심리도식치료와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 이론을 접 목하여 7개의 단계로 구성되었다. 각 단계는 안전지대 형성 단계, 현재 갈등 상황 파악 단계, 과거 미해결 정서 파악 단계, 해석과 통찰 단계, 교육과 인지전략 단계, 긍정적 자원 강화 단계, 그리고 전망 단계로 구성되며, 각각의 단계에서 활용 가능한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선교사의 심리적 탈진 예방과 이 분야의 디브리핑 실천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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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문화인류학의 통합적 관점에 관한 연구이다. 그동안 선교사역의 사명과 선교사의 현지 부적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왔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문화인류학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사역과 관련된 이해가 필요하다. 본 연구는 현대 선교학 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타문화 선교사에게 기본적인 문화인류학의 개념이해로 시작하여 문화인류학의 역사, 문화 인류학과 선교, 그리고 선교학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문화인류학 통합 적 관점은 찰스 크래프트, 폴 히버트와 강승삼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였다. 선교사가 사역에서 문화인류학을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인간 이해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복합적인 존재로서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 사회적, 도덕적인 측면 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의 목표는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실천적인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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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3.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16-18세기에 서양 원근법 관련 저서를 중국에 들여오게 된 과정과 맥락을 페어하렌의 『북당 도서관 목록』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북당 도서관 목록』에는 예수회 선교 사들이 서양 서적을 매개로 중국의 황제나 사대부층과 대화하려는 접촉점을 마련하려 했던 역사와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 목록에 있는 원근법 저서의 저자와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의 예술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광학, 수학, 천문학 분야의 최신 서적을 통해 중국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나 본성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선교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한편 명말 청초의 중국 지식인층은 서양의 천문학이나 지리학, 수학, 기하학, 예술기법으 로서의 원근법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고, 원근법 책을 번역하는 작업에 도 관심을 가졌다. 물론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 지식층에게 서양 학문을매개로 하나님을 알아가게 했던 노력은 의도한 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서선교를 통해서 중국의 지식인 계층이 서양 의 학문과 기독교를 좀 더 주체적으로 번역하고 확산할 수 있는 기초작업 을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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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3.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초기 한국교회와 일제강점기 한국의 정치 현장 가운데서 우리나라 를 찾은 미국 선교사들의 입장은 매우 복잡했다. 그들은 정교분리와 정치적 중립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언더우드(1884년), 마펫 (1890년) 선교사의 내한 이후 한국선교를 위해 서구 선교사들의 끊임없 는 희생이 있었고, 1907년 평양 대부흥을 거쳐 빠르게 성장한 한국교회 는 스스로 세례를 받고, 성경을 번역하며 토착교회를 설립했다. 그래서 일제에 맞설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일제는 반일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을 일거에 붕괴시키고자 하였다. 기독교 세력은 물론 그 배후에 있는 미국 선교사들을 축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전략은 더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3·1 독립운동이라는 한국 민족 최대의 항일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외부의 추동력과 내부의 흡인력을 모두 고려한 중도파 역사기술로 서술하고자 하는 것이 논문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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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1.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아시아의 창의적 접근 국가에서 봉사와 선교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근거이론을 활용하여 소진에서 회복탄력성 으로 가는 과정을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본격적으로 탐색한 연구 질문 은 “아시아의 창의적 접근 국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의 소진과 회복탄 력성은 어떠한가?”이다. 본 연구를 위해 2020년 5월에서 9월까지 23명의 연구참여자들을 심층면담하여 자료를 수집, 스트라우스와 코 빈이 체계화한 근거이론의 절차(1998, 제2판)를 주로 활용하여 분석하 였다. 최종적으로 도출한 개념은 모두 691개이고, 126개의 하위범주를 생성하였으며, 이를 25개의 범주로 분류하였다. 그 결과 핵심범주는 “안팎에서 허물어진 소진을 넘어 성찰과 성숙의 회복을 경험하며, 단단해진 정체성의 기초 위에서 주체적인 선교사로 다시 나아감”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진에서 회복탄력성으로 이어지는 과정 분석을 하였 고, 이와 연동하여 9단계의 정체성 상태를 도출하였다. 본 연구는 선교사의 소진과 회복탄력성 과정에 따른 정체성 변화를 이론화함으로 써,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멤버케어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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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1.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헤어드레서 전문인 선교는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속에서 전문적인 헤어기술로 사회봉사를 하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별히 뉴질랜드의 총 인구 433만 명 가운데 헤어드레서 종사자는 11,457명이다. 이러한 수치는 헤어드레서 1명 당 377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써 직업부족 직종에 해당하여 사회적 대우와 근무환경이 한국보다 월등하다. 주 40시간 근무에 시간당 $19-32이상 의 임금을 지급 받고, 시간외 수당도 1.5배-2배까지 받을 수 있는 여건이다. 특수한 경제실정으로 인해 헤어커트 봉사는 소외되고, 가난 한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매력적이다. 헤어드레서 전문인 선교사는 좋은 작업환경과 무자본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사회봉사, 기술교육, 상담 등의 사역을 하고, 지역주민과 원활한 소통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또한 선교사는 복음으로 인해 회심한 자를 만나게 되면, 그 제자와 함께 동거동락하고, 영육간의 필요를 채워주며, 제자 양육이 가능하다. 한 명의 제자가 또 다른 제자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 기까지 도와주고, 책임져 주면, 제자 삼는 재생산은 계속 이어지고, 효과적인 전문인 선교의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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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1.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선교사 탈진 진단 및 대처방안을 프로이덴버거의 “과잉 성취동기” 이론과 마슬락의 “정서적 고갈”에 관한 측정 방법론을 통해 제시하고, 보완책으로 호킨스와 오스왈드의 이론을 다루었다. 2012년 부터 2년간 한국선교사의 중도탈락은 40%를 넘었다. 세계적으로 선교사 중도탈락의 위기관리 연구가 1996년과 2015년에 심도 있게 진행되었고 200여 곳 선교사 케어센터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방향 제시는 없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의 헌신적 태도가 대인관계에서의 조절능력 부족을 야기하였고 탈진이 초래되었다. 현실의 실망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에 의한 부정적 자아개념이 업무에서 성취감 감소로 이어지며 사람들로부터 떠나고 싶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본 논문은 선교사의 탈진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분석하 고, 탈진 학자들의 의미 있는 대처방안을 재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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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8.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한국전쟁 당시 ‘죽음의 행진’에 참여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수기에 관해 연구한다. 이를 위해 당시 남한 사회에 거주하고 있던 멜 으제니 수녀, 셀레스뗑 코요스 신부, 가르멜회의 마리 마들렌 수녀, 필립 크로스비 신부가 작성한 한국전쟁 수기를 살펴본다. 한국전쟁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냉전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북한군들에게 냉전 체제 속 이데올로기에 따른 타자 만들기의 빌미가 된다. 동시에 전쟁 포로들에게는 재난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의 삶을 회복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희망에 대한 인식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재난을 공유하는 공동체 속에서 타인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억과 애도, 더 나아가 연대를 가능하게 해준다. 본고에서는 한국전쟁 외국인 선교사들의 수기를 통해 종교가 이데올로기적 기구로 작용하는 과정에서는 재난을 일으키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재난 상황 속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공동체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종교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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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7.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북한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선교사 납치 및 억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의 대북선교 위기관리를 고찰하며 대책을 다루었다. 1995년 이후 북한에 의해 강제실종된 선교사는 10여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당국은 선교사 억류를 최고 존엄과 북한체제 비방, 간첩행위 등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북한주민 단속강화, 탈북자 차단, 지하교인 색출, 선교조직 와해를 목적으로 선교사를 억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모종의 협상이 필요할 때 선교사 석방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선교현장에서의 불필요한 마찰과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분노출을 삼가고, 무분별한 북한주민 접촉을 삼가는 것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다. 선교관련 자료 노출은 선교사 개인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다수의 사람들과 선교사역 자체에 치명적이 될 수 있으므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특히 선교 관련하여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성과위주로 사역을 하게 되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끝으로 대북선교는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나 선교단체와의 연계가 어렵고, 선교결과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후원교회나 선교단체에서는 이런 제한과 한계에 대해 이해하여 선교사의 이름과 사역내용과 선교장소 공개를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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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신학교 시절에 배운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가르치고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단단하게 하기도하고 부수기도 하는” 귀납적 성경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왔다고 한다. 이 글은 필자가 나름대로 변혁적 효과를 탐구하며 그 동안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필자의 그동안의 지론의 연장선상에 놓인 글이다. 창세기 12장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복 주시려는 새롭고도 적극적인전략을 펼치면서 한 가계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한다. 창세기 12장 부터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거룩한 역사의 거의 유일한 주제인양 다뤄진다.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는 아브라함이 결과적으로‘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롤 모델, 즉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이 글에서 모델이라는 개념은 스코트 모로(A. Scott Moreau)가 분류한 물질적, 은유적, 이론적이라는 세 가지 범주 가운데두 번째인 은유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족장들은 타문화권 선교사가 열망하는 하나의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모델이 될 수 있다. 고로 족장들 의 삶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를 추출하고자 한다. 그들이 타문화권 선교사의 전형(典型) 즉 기준이나 규범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타문화권 선교사의 기준이 될 만한 이론적틀을 찾아본다. 아브라함에게서는 관계 성공하는 선교사, 이삭에게서는 우물을 넘겨주는 선교사, 야곱에게서는 우물 아귀의 돌을 옮기는 선교사라는 틀을 찾아낸다. 하나님과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현지인들과는 사랑의 관계를 맺은 아브라함은 가히 타문화권 선교사의 선구자 라 할 만하다. 순종과 양보의 대명사인 이삭의 삶은 이양과 출구전략이라는 측면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훌륭한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전략적 계획의 대가로서 타이밍과 목표와 단계적 접근의 중요성을 포괄적으로 잘 활용한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많은 일을 겪으면서 사는 것에 더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타문화권선교사가, 삼대에 걸쳐 창세기를 아름답게 수놓은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밟아 마침내 길이 된 타문화권 선교라는 지난한 길을 잘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7,000원
        12.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할 때 다수의 서구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 중의 일부는 모국으로 돌아간 이후 자신들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재현했다. 특히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우 편지, 잡지기사, 팸플릿 안내문, 연설문, 일기, 여행기, 및 기독교 소설과 같은 ‘잡다한’ 글들을 기록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다양한 출판물 중에서 본 논문은 엘라수 캔터 와그너(Ellasue Canter Wagner)의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 (KIM Su-Bang and Other Stories of Korea)과 애니 배어드(Annie Baird)의 '동트는 조선' (Daybreak in Korea)을 산문이론으로 접근한다. 일부 학자들은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동트는 조선'과 같이 기독교로 개종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한 서사를 ‘선교소설’로 구분한다.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본 논문은 배어드와 와그너의 글을 ‘여행서사’로 분류한다. 배어드와 와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삶과 당시 두 선교사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처해있던 상황을 볼 때 이들의 글을 여행서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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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study factors affecting level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for Korean Missionaries' Kids (MK) dwelling in Turkey. 45 Korean MKs were asked to answer three different questionnaires designated to investigate Korean language proficiency, cultural identity and demographic background. This study adopts altered TOPIK for the evaluation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and focuses on finding out the relationship of Korean proficiency with sexuality, age,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years of Korean study, self-recognition of cultural identity, cultural identity of Korea, and cultural identity of Turkey. The SPSS for windows 17was used for the statistical analysis.Ethnic Identity Scale was measured with the KAEIS that was developed by Ahn(1999) and Proficiency Test that was selected by 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 session 19, 20. Cronbach  for cultural identity of Korea was 0.823 and Cronbach  for cultural identity of Turkey was 0.691. Internal consistency reliability for Korean proficiency test was 0.891. The result shows that cultural identity of Korea and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have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level of Korean proficiency, especially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has more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the proficiency. The result from this study helps to recognize factors affecting level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Especially, the Korean proficiency of MKs who live in Turkey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Korean cultural identity.These facts indicate that not only the Korean education are required to effectively increase the korean education itself, but also developing the pride of being Korean are needed to be followed up as well.
        8,300원
        14.
        2012.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에 기고했던 재중 선교사 티모티 리차드, 존 로스, 및 D. Z. 셰필드의 글들은 19세기에 맺어진 서구열강과 중국 간의 조약들, 그 조약에 포함된 선교적 권리들, 그리고 선교사의 향후 태도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리차드는, ‘조약권리’ 중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항목들이 본국 외교부와 중국 관료들에 의해 이행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중국 신자들의 박해가 일어나고 선교에 큰 장애가 되어왔다고 간주하여, 동 권리의 이행 및 법 개정을 위한 외교부의 노력을 주장하였다. 그는 ‘신자들의 종교자유권’, ‘선교사의 내지거주권’, 그리고 박해자의 처벌을 포함하는 ‘신자 및 선교사 보호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의 주장은 선교현장에서 ‘선교의 자유’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공동체의 내적인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또한 그의 제국주의적 서구의 중국침탈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잘 보여준다. 로스는, 선교사들이 서구열강의 억압으로 쥐어짜낸 ‘조약권리’에서 나오는 선교적 권리를 포기하고, 신자들과 비신자간에 일어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사관의 권력에 의지하지 말며, 극단적인 박해사건에 개입하되 관리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우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견해는 서구 제국주의의 본질을 통찰하고 중국인들의 입장을 고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역시 텐진조약이 가져다 준 북부항구의 개방이라는 외교적 조건 안에서 기독교 선교를 수행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선교적 문제해결에서 ‘가장 덜 제국주의적인 방식’의 해결을 제안하였다. 이와 달리, 셰필드는, 기독교선교와 문명의 전파를 위하여 서구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기독교신앙과 진보정신 그리고 우월한 인종을 보유한 서구기독교국가의 선교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며 서구국가들 및 중국의 보호를 받을 만하다고 보았다. 기독교 선교의 방법으로써 말(word)과 힘(power)을 제안하는 셰필드의 견해는 매우 가부장적이며, 나아가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리차드, 로스, 그리고 셰필드는 청말의 동시대에 중국선교사로 일하였지만, 중국의 조약법 및 기독교선교를 위한 조약법의 이행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9,800원
        15.
        2008.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ince 1884, many western Protestant missionaries came to Korea. The missionaries initially treated of the spiritual perspective of Koreans as superstitious and ignorance-oriented. Especially in the field of medicine, the Western perspective seemed to be far advanced tha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 According to the Korean traditional view, sicknesses was in many cases caused by intrusions of spiritual beings. Therefore, to cure the sick, one had to cast out those spiritual beings out of the bodies through placations or by force. With such perceptions, Korean people were not able to overcome the hard situations caused by the contagious diseases such as pestilence, small pox, and typoid fever. Western missionaries could take advantage on those matters in order to help Koreans and thereby achieving the trust of Korean government. Even though Western science and medicine proved their effectiveness through such medical works, excessive reliance can cause one to fall into the idolatry of worshipping medicine instead of God. Throughout the development in the area of science and technology, Westerners have tended to look everything through the scientific perspectives. Through such trends Western societies were believed to run the course of secularization throughout the 19th and 20th centuries. God and His supernatural world have been marginalized especially in public areas. According to Professor Paul G. Hiebert, even missionaries with severe Western cultural backgrounds have difficulties in understanding the spirit world of the native people. Early missionaries to Korea were not exceptions. They also had difficulties when they first met the Koreans and tried to understand their spiritual view points. In contrast to the Westerners who generally do not recognize the spiritual beings around them, the Koreans recognized the spiritual beings such as ghosts, ancestors in almost every aspect of their lives. Koreans were famous in maintaining the practices related to such spiritual beings throughout their ancient history. When the missionaries first observed practices related to the spiritual beings, they judged Koreans to be ingnorant or superstitious. However, the missionaries continuously tried to understand the people and their worldviews. When they were unable to understand the Korean worldview on the spiritual beings, they resorted not to the Western naturalistic perspective but to the Bible. Through comparison between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the Biblical perspectives, they discovered that the Biblical perspectives were more similar to the Korean traditional perspectives. And with careful observation and examination of the Korean ministers’ deliverance works, they changed their thought about the spirit world. The demons and spiritual beings which were regarded to harass Korean people were not supterstitions or fatacies. They were real beings confirmed by the Bible. The native Korean ministers contributed a lot in the paradigm shift from Western perspective to the Korean perspective on the reality of spiritual beings. The Korean ministers viewed the Bible differently. They believed Bible stories where the possessed were released by Jesus and his disciples. The faith of Korean ministers proved to be simple and firm enough to follow the practices of Jesus and his disciples in casting out demons. When the missionaries heard about the stories of deliverances by the Korean ministers and believers, they did not stop but rather carefully examined such behaviors in light of the Bible. The final criteria of missionaries were not the western but the Biblical perspective. With such criteria, they accepted and recognized the deliverance ministries of the Korean believers. Some missionaries, when asked if they could cast out demons out of troubled, succeeded in the deliverance ministries. In my estimation, the Nevius mission plan contributed greatly in making harmony and cooperation between the missionaries and the Korean ministers. God brought Koreans who were troubled with spiritual bondage into the Kingdom of God through such faithful servants of God. The reasons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to Korea brought such great success in evangelizing Korea were foremost their deep reliance to the Bible as the Word of God and secondly their deep understanding of Koreans and their ways of thinking.
        6,100원
        16.
        2005.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7,800원
        17.
        200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early state of modern architecture, specifically mission architecture,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Christianity, and for the goal it deals with the architectural activities of pioneer missionaries. Especially it is a piece in a series of those researches after on Graham Lee, and it is focused on the other representative missionary, R. M. Wilson, A. M. Sharrocks, and C. A. Clark. Although coming in the capacity of a medical doctor or an educator, they should play all kinds of roles, such as carpenters, educators, and officers. For this mission, even they didn't have a professional knowledge for construction, they should carried on to establish mission compounds, only with their experience and informations. In this process they needed to be assisted by Korean carpenters, surely. The architectures born by them-selves are designed with a unique eclectic style compounded with those of Korean traditional and occidental. That is to say, the pioneer missionaries made a profound influence to create a new tradition of modern architecture in Korea, which is called as Korean-occidental eclectic style in the period of transition. Moreover, some pioneer missionary, such as Sharrocks, took a part in education of architectural skills. The educated carpenters seemed to be called from outside, and the unique styles could get spread away. On this point this paper has the meaning to clarify historically the continuous development of the Korean architecture through the survey on their activities, on the contrary of the existed recognition that Korean modern architecture has been evaluated to be imported from outside; therefore having a crevice with the its own architectural tradition.
        4,800원
        18.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의 목적은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한국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 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몇 연구자들이 선교사들의 한국 무속 이해를 간략하게 언급하였고, 선교사들의 한국 종교 이해를 다룬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무속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초기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선교사들이 인식한 한국 종교 체계 속에서 무속신앙의 위치를 다룬다. 한국인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느꼈다고 선교사들이 인식했는지도 다룬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인식에 따른 다양한 행동들도 분석한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속에서 선교사들이 기복주의를 발견했음도 살펴본다. 악귀와 관련된 다양한 무속신앙의 치유방법들이 선교사들에게 목격되었음도 살펴본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대결의 대상으로 삼았음도 확인한다. 본 연구의 방법론은 문헌연구이다. 선교사들은 한국 선교 경험을 토대로 책을 저술하였고, 편지, 잡지, 일기를 통해 그들의 무속신앙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이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선교사들의 이해를 분석하여 정리하게 될 것이다.
        20.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American women missionaries in Korea had specific works for Korean women in the mission field. Traditionally, Korean women had less opportunity to be educated, to participate in social activity and self-achievement. Women mission changed the life of the Korean Christian women. The women religious education is the most important element to lead the women’s life. This is the study on the manual of weekly Prayer meeting by women missionari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South. These documents were published in 1936, 1938 and 1939. The authors of each book were Meta L. Biggar, Talmage Eliza and Josephine Hounshell. These books show everyday piety and spirituality of Korean Christian women in the 1930’s. The most important goal of prayer was to improve Christian faith and to encourage discipleship of Jesus Christ. When they taught prayer, they had to read and study the Bible. They studied the bible to learn the life and teaching of Jesus Christ. In the prayers, they wished to participate in the way of Jesus Christ. These regulations of the prayer meetings displayed the pious heritage of evangelical protestant tradition. The modern Korean church has to develop the noble tradition rather than accept contemporary secul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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