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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1.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한일 간 독도이슈의 시기별 및 이슈별 전개과정을 국제정치·안보적 측면에서 분석을 시도해 봄으로써, 향후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도발에 효율적으로 대처함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한일 간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양국 간 갈등 해결의 계기가 과연 가능 한지를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한일간 독도 이슈의 연도별 추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1950년대 초반에 독도 이슈 발생 건수가 처음으로 급증했다가 이후 40여 년의 비교적 소강 상태를 거쳐 1990년대 중반부터 한일간 독도 관련 이슈가 다시 급증되면서 그 이후로는 독도 이슈 건수가 계속해서 상승기 류 추세로 나타난다. 특히 2010년 이래로 일본의 독도영유권 도발은 국제 홍보전의 양상으 로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1990년 이래 한국 언론매체의 독도 기사를 대상으로 빅데이터(빅카인즈) 트렌드분석 결과에 따르면, 독도 기사가 가장 많이 나타난 세 시기는 2012년 8월의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2008년 7월의 ‘일본 문부과학성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독도 명기 강행’, 그리고 2005년 3월의 ‘일본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등으로 파악되었다. 시기별로는 1950년대의 평화선 선포, 1960년대의 한일협정, 1970년대의 한일대륙붕 협정(제7광구), 1980년대의 유엔해양법협약 체결, 1990년대의 유엔해양법협약 발효와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의 독도 기점 여부, 2000년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및 2010년대의 국제홍보전 본격화 등이 한일 간 독도 이슈의 추이에 미치는 역학관계를 분석해 보았다. 한편 본고에서는 이슈별 개관을 통해 연례적으로 반복 되풀이되 는 일본 방위백서, 일본 외교청서, 일본 교과서 등의 독도 기술 추이를 비교해 보면서 도발 의 수위가 계속 증가되어 왔음을 도출하였다. 특히 일본 방위백서의 독도 기술 추이를 국제 정치적 및 안보적 측면에서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과의 시기적 연관성 여부를 분석해 보았 다.
        742.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present situation of the landscape management - which encompasses landscape ordinance, planning, and agreement - in regards to the Shiga prefecture and Omihachiman city to explore sustained landscape preservation and management methods, and to deduce the implications of the establishment of rural landscape planning and landscape administration. The conclusion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landscape ordinance should be operated so that the practical landscape management is suitable to the characteristics of local governments. Second, landscape management should be based on zoning. The landscape plan should start with defining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landscapes at each site and subdividing the landscape areas accordingly. Third, the restriction of conduct and the promotion of autonomous landscape activities should be employed as the two axes of landscape administration. Beautiful and healthy landscapes can be achieved through collective efforts of the community, and this requires voluntary practice amongst individuals and administrative regulations to achieve so. Fourth, meticulous, dimensional and practical landscape plans should be established. In order to effectively preserve, form and manage the essential landscape elements and resources of the area, the starting landscape plan should be more definitively outlined. Finally, it is necessary to change the perception of landscape. In order to relish beautiful and healthy scenery, it is critical to recognize the value of the attentive efforts and dedication of each member of the community that stimulates the objective.
        743.
        2016.1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research was intended to provide a method to improve competitiveness, based on the integration of basic municipalities by assessing changes in their population and local industry Municipalities were integrated based on the addressing system 市(Shi), 町(Chome), 村(Village) of Japan. As a result, an actual increase of the population could not be seen in the new municipalities formed by the integration of the basic municipalities. It is also found that the shipping volumes, number of companies, and the number of people employed by local industry, attracted by such municipalities, has steadily decreased. However, even though the proportion of industrysharing in the local municipalities is not significant, it was found that the number of tourists has increased. Therefore, it is concluded that the strengthening of the connectivity between local industry and the tourism industry can be one of the principal methods to strengthen the competitiveness of these municipalities. In addition, it has been found that scientific research from a variety of perspectives and verification of data related to the effectiveness of integration of local municipalities is necessary.
        744.
        2016.10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re has been an increasing trend for the installation of pipeline waste collection systems for household waste in the massive complexes of new houses in Korea. This trend is attributed to the advantages of the system, which can reduce traffic congestion and keep the residential areas clean. The system also prevents odors and facilitates the easy discharge of waste by residents any time. However, several problems have been identified, whereby the installation and maintenance costs of the system are considerable and the system does not support separate discharge of recyclable wastes. For example, residents normally discharge food waste separate from disposable municipal solid waste at the waste drop, but some of the systems mix them at the bottom and transfer them together, which goes against resources recirculation, an important point of current waste management principles. Investigation into other countries’ experiences of the installation and operation of these systems will be a good lesson for Korea. Therefore, we studied Japan’s case, because they have a number of these systems between the 1970s and early 1990s as government-subsidized model projects led by the Ministry of Construction and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However, it was done at a time when the reduction of discharge of wastes and recycling were not considered significant owing to rapid economic development, only focusing on the convenience of waste collection and transportation. Furthermore, energy consumption and greenhouse gas emissions were not priorities to be considered. Now that the systems are not suitable for the current resource recycling-oriented society, none have been installed since 2002, and many facilities have been closed already, with a few facilities operating with difficulties. Therefore, the installation of pipeline collection systems for household waste should be further considered with appropriate measures to avoid the precedent experiences of Japan.
        746.
        201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order to vitalize the local area of Tendou City in Japan, this study chose a local indigenous industry and sought ways to connect the tourism industry with it. An inventory of local indigenous industry was assembled using relevant literature, field surveys, and interviews with local people. The Japanese chess industry was selected for a case study in connecting tourism with industry. Local indigenous industry was defined as an industry related to the local culture that uses local resources (and thus introduces possible industrialization). This industry can be easily marketed is to the rest of Japan or abroad. People in charge of local indigenous industry should understand the meaning and effects of connecting to the tourism industry, while people in tourism should acknowledge that local industry is good marketing material. Three steps are suggested: 1) to display the industrialy process of Japanese chess production: to tourism in safe and comfortable surroundings; 2) to offer amenities and producetion facility tuors; and 3) to offer tourists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Japanese chess productions first hands.
        747.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의 〈바리공주의 전설〉은 스토리와 캐릭터 창작에서 「바리데기」 저승신화를 대부분 수용하면서 레이스형 시나리오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리공주의 전설1: 지옥의 탄생수〉에 이 어, 〈바리공주의 전설2: 왕의 부활〉을 출시했다. 일본에서 〈페르소나4〉는 현대사회를 무대 로 하여 「이자나기·이자나미」 저승신화를 변용하고 있다. 기존의 페르소나 시리즈의 스토리와 요소들을 포함시켜 ‘이식작(移植作)’과 ‘외전(外典)’ 방법을 통해 여러 장르의 게임을 개발했다. 이는 연속적인 부가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사례라고 하겠다. 게임 콘텐츠 를 더 풍부하게 개발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해가야 할 것이다.
        749.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2014년 1월 28일 일본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가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기술하도록 개정된 이후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모든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내용이 기술되었다. 교과서보다 앞서 독도교육을 주도한 것은 시마네 현이다. 시마네현 竹島문제연구회 제3기 최종보고서에는 고등학교 일본사A/B 학습지도안 (이하, 학습지도안)이 제시되어 있다. 제2기 竹島문제연구회 활동 기간에는 지리A/B, 공민 (정치경제, 현대사회), 세계사A/B 학습지도안이 작성되었는데, 이번 학습지도안은 竹島문 제연구회 차원에서의 고등학교 독도교육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첫째, 시마네현 竹島문제연구회 제3기 최종보고서를 소재로 일본 초·중· 고 교과서의 독도기술과 시마네현 독도교육 자료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시마네현이 실시하고 있는 독도교육 실태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향후 일본 학교현장에서의 독도교육 방향을 전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시마네현에서 작성한 일본사 학습지도안과 교과서 기술의 공통점은 첫째, 일본이 국제법에 근거하여 독도를 편입한 사실을 가르친다는 학습 목표와 논리, 근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둘째, 독도 편입 경위를 러일전쟁과의 관련성이 아니라 강치 잡이와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고, 편입 후 시마네현이 독도에 대해 행정력을 행사하고 어업활동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마네현에서는 ‘독도는 일본 침략에 의해 최초로 희생된 땅’이라는 한국 주장에 대한 반론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마네현에서는 교원연수, 고등학교 입학 선발 시험 문제 출제, ‘竹島의 날 주간’ 계기수업, 교과 시간 등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竹島학습 이 추진되고 있다. 시마네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독도학습과 교육 자료는 다른 지역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 행사는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와 법령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일본 교과서 기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교과서 기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국제이해에 교과서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본 교과서 독도기술과 시마네현 독도학 습은 한일 간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는 현실과 역행하는 것으로 한일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공생과 번영의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대응방안도 이러한 차원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의 청소년들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독도 영유권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750.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19세기 말엽, 동해라는 바다 명칭이 일본해 또는 다른 명칭으로 분지되는 과정과 관련된 한ㆍ일 양국 간의 인식을 통해 식민주의적 권력과 지식체계가 어떻게 상호구성적으로 이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실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연구자는 외교문서ㆍ신문기사ㆍ고지도ㆍ어업협정문서ㆍ연설문 등에 나타나는 식민주의적 담론의 구성과 그 전략의 실천, 영토 및 해양경계에 관한 지역지식 및 가치체계의 전도양상, 명칭의 역사적 근원에 대한 해석방식 등에 대해 포괄적 접근을 하였다. 19세기 말엽은 한ㆍ일 양국에 있어서 해양공간과 관련된 영토성과 역사성이 변화하는 변곡점에 위치한다. 이 시기에 유럽의 식민지 세력이 아프리카에 확대되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도 서구의 문명개념이 식민정책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 아시아 사회가 식민지상품경제체계로 들어가면서 국가경계를 넘은 식민주의적 상업공간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서구의 문명개념은 식민주의적 영토성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경우, 서구의 진화론적 지식을 수용하면서 이에 기반을 둔 문명관념을 통해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체계의 전도와 ‘군국’(軍國)의 새로운 영토적 범주의 창출, 영토화된 공간에 대한 개념화 등을 정립하였다. 이 시기 일본식 식민주의를 창출한 사상가들은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면서 기존의 동아시아 사상에 내재하던 ‘동문(同文)’,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개념을 일본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동해보다 과거 서구의 탐험가들이나 외교관들이 제작한 고지도 속에 기록된 일본해라는 바다 명칭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이익선과 주권선의 설정을 통한 영토성 구축, 후쿠자와 유기치의 문명과 반개(半開)라는 일본식 진화론적 사상의 정립, 참모본부ㆍ흑룡회ㆍ수산업자 등이 일본해 명칭을 사용한 사례들은 바다 이름이 문화 정치적ㆍ군사적 차원에서 상호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19세기 한국인들의 바다 개념은 연해ㆍ내양ㆍ외양ㆍ원양 등의 범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늘날 국제해양법에서 정한 영해와 인접수역을 포괄하는 해역과 어느 정도 유사한 범위를 나타내주었다. 그리고 당시에 동해라는 바다 명칭은 동아시아인들이 하늘과 땅, 해, 달, 별자리, 산악, 바다, 강 등을 분류하고 위계질서를 정하며 그 방위를 주재하는 신을 위치시키는 공간인식방식에서 형성된 개념이었다. 동해란 동ㆍ서ㆍ남ㆍ북의 바다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에서는 각 바다마다 신이 있다고 믿어 양양에 동해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동해신묘를 두었다. 이 점은 동해에 대해 조선왕조의 왕권이 행해졌음을 시사한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동해ㆍ조선해ㆍ한국해로, 일부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 서해로, 중국의 왕지춘(王之春)은 고려해협 등으로 불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말엽 일본의 명치 정부에서는 동해 대신에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불렀다. 영토확장을 지향하는 식민주의자들은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 과정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공칭화하고자 하였다. 19세기 말엽, 식민주의적 영토지식과 담론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바다공간을 군사적 지배영역으로 전환하면서 동해를 일본화된 해양공간으로 범주화하는 과정과 관련됨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해양공간에 대해 영토성을 부여하는 데에는 명치 정부의 관료ㆍ군부ㆍ지식인ㆍ사상가ㆍ소기업가 등의 식민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한 영토적 장소만들기와 그 지배권의 제도적 실천 등이 원동력이 되었다. 19세기 말엽, 일본해가 동해 대신에 바다 이름으로 부각되는 과정에는 일본과 한국의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구조 속에서 동아시아의 전통적 바다 분류체계의 해체, 일본의 식민주의 확대를 통한 동해 지배권 확대, 일본해 명칭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 등이 상호영향을 주었다. 특히 동해를 일본해로 명명함으로써 일본의 영토가 영해로 둘러싸여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문화 정치적 전략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751.
        2016.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is study, we looked into the levels and distribution characteristics of harmful substances found in imported coal ash to identify their possible impacts on the environment and human body in the process of recycling and to develop plans for their proper management. To this end, organic pollutants including heavy metals were analyzed from 19 samples of imported coal ash, and their potential impact on the environment was evaluated.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the heavy metal content in the coal ash, a leaching test was conducted, and the result showed that the heavy metal concentrations in the coal ash were far lower than the permitted levels of hazardous substances in designated waste in Korea. In addition, a content analysis showed that the heavy metal content was lower than the level prescribed in the standards for area II levels of soil contamination. Since coal ash is recycled in cement kilns, levels of Pb, Cu, and Cd in the cement kilns were reviewed and compared against permitted levels of those heavy metals in other alternative fuels. Levels of Pb, Cu, and Cd in the coal ash were comfortably within the acceptable limits by Korean standards, but the level of arsenic was close to the limit. Given the fact that arsenic leached from the coal ash recycling process could have an adverse impact on both the environment and the human body,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monitor arsenic leaching from coal ash continuously . Levels of other substances that could be contained in coal ash, such as dioxin, PCBs , and PAHs, were also measured. The measurements showed that the levels of these substances were generally low or undetectable; therefore, the environmental impact of organic pollutants from coal ash recycling was considered insignificant.
        752.
        2016.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농촌 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현상, 도농소득격차의 심화로 농촌의 부정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농업부가가치 및 농 가 소득이 정체되는 것을 타파하기 위해 농업 6차산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농업 6차산업의 활성화를 추진하고 이에 대한 발전전략 연구를 위해서 농업 6차 산업의 개념과 의미를 정의하고 농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농 촌산업의 동향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의 성공적인 6차 산업의 현황과 포장디자인의 사례를 분석한 후 농촌산업의 활성 화를 위한 6차산업 발전 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농업 6차산업의 기대효과는 농업의 고부가가치화, 농가소득 증대, 농촌경 제 활성화를 위한 6차산업화와 농촌산업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방안을 모색하여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 제조, 체험, 관광, 숙박, 농가레스토랑, 판매 등 모든 분야가 융.복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특히 상품판매를 위한 포장디자인은 농산물 소비량 증대와 농촌경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에 대한 전략 방안을 제시하였다.
        753.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역사교과서는 사람들의 가치관 형성에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편찬은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토대 위에서 표준과정과 심의과정을 체계적으로 운영 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대내외 정치적 문제 때문에 독도를 포함한 과거 역사를 사실과 다른 역사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기존 교과서에서 독도가 부분적으로 기술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해설서에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일본은 2015 년 독도와 관련하여 일본의 고유영토, 1905년 시마네현의 편입, 1954년 한국의 불법점거, 국제사법재판소의 평화적 해결 등의 내용을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대폭적으로 강화 되었다. 일본은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을 통해서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독도 교육을 전면적으로 강조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독도를 영토문제로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역사문제로 전면적으로 확대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일본의 사회과 교과서는 동북아의 평화적 미래보다는 아베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일본은 독도와 관련하여 초등학교에서 시각적인 측면, 중·고등학교에서 논리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일본은 주로 근현대사 위주의 독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고등학교 지리와 공민 교과서에 독도를 영토문제로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서, 현재 역사 교과서에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독도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였다. 한국은 독도와 관련하여 초·중·고등학교에서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였다. 한국은 주로 전근대와 근대사 중심의 독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과 교과서는 독도에 관한 국제법적 측면, 논리적인 측면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다. 향후 한국의 사회과 교과서는 근현대 일본이 동북아의 역사 갈등을 유도했다는 서술이 필요하다. 또한 한중일의 근현대 역사 교과서의 공통편찬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럽과 달리 동북아의 역사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754.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외무성은 SCAPIN 677에 의해 일본의 영역에서 분리된 일본 주변 섬들을 되찾기 위해 이들에 관한 영토조서 4권을 1947년까지 작성해 미국에 제출하였다. 이 중에 독도(다케시마)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일본정부는 영토조서 제출 후 독도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독도는 류큐 등에 비해 중요도가 각별히 낮음으로 거의 무시되었다. 1951년에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는 규정되지 않았다. 이에 위기감을 가진 시마네현의 호소를 계기로 외무성은 독도 연구를 시작하였다. 또한 한국이 1952년에 평화선을 선포하고 독도를 그 안에 넣자 외무성은 독도 영유권의 공고화에 나섰다. 그 하나가 미·일 합동위원회에서 독도를 주일 미군의 폭격 연습장에 지정하는 것이었다. 이 지정에 인해 한국 어민들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1953년 5월에 지정이 해제되었다. 해제를 계기로 독도로 항행한 시마네마루가 한국인의 어로를 발견하자 일본정부는 「다케시마 대책 요강」을 결정하였다. 이 목적은 독도를 경찰력으로 탈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횡포에 한국 측은 분노해 일본 순시선에 총격을 가했는데, 오히려 외무성은 한국정부에 사건을 항의하고 영유권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외무성은 「한국정부견해1」을 받자 영유권 논쟁만 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국제사법재판소(ICJ)로 제소하는 준비를 시작하였다. 다음해 다시 일본 순시선이 총격을 당하자 일본정부는 ICJ 제소를 한국정부에 제안하였다. 물론 한국정부는 이를 거부해 재판은 성립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하려고 여러 방도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나머지 방도는 한일회담에서 쟁점화 하는 것이었다.
        755.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영역참고도」는 샌프란시스코 대일평화조약의 조인(1951.9.8) 직전에 일본정부에 의해 제작(1951.8.)되어 조약조인 후 비준승인 과정에서 일본국회에 제출되었다. 「일본영역참고도」는 한일간을 가로지르는 경계선과는 별도로 독도의 동편에 반원을 그려,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하고 있는 점에서 그 이전의 「연합국최고사령부 관할지역도」 (SCAP Administrative Areas: Japan and South Korea, 1946.2.)와 같다. 일본국회에 제출된 만큼, 당시 「일본영역참고도」에 관해 논의한 내용은 일본의 국회회의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본 국회 회의록 중, 조약의 비준 승인 당시 기록으로는 1951 년 10월 22일 중의원 ‘평화조약 및 일미안전보장조약 특별위원회’ 회의록이 있으며, 조약 비준 2년 후인 1953년 11월 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 회의록 및 1970년 3월 24일의 참의 원 예산위원회 회의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케시마(竹島)문제연구회에서도 「일본영역참고도」의 국회제출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대일평화조약은 조약의 간략화 방침에 따라 개별 섬의 영유권귀속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조인되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조약 조인 후 조약비준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독도를 한국령’으로 그린 「일본영역참고도」를 조약의 비준 승인을 위한 국회에 제출하고, 일본 국회는 조약조문과 「일본영역참고도」를 근거로 하여 조약을 승인했다. 결과적으로 조약의 비준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국회는 ‘독도 한국령’을 승인한 것이 된다. 또한, 조약 발효 직후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또 다른 지도「일본영역도」가 마이니치(每日)신문사에 의해 제작 배포되었다. 일본 정부에서 ‘독도 한국령’을 인정했다는 것은, 조약 발효 후의 「일본영역도」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756.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대한제국의 칙령은 입법체계상 법률의 위임에 의하여 제정되는 내각결정이나 명령, 훈령, 고시 등과 달리 대외적 구속력을 갖는 상위의 법규범이며 입법절차에서 법률보다 존중 되는 법규범이었다. 대한제국의 입법체계는 당시 일본의 법제와 대체로 동일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대한제국의 영토관할권에 독도(석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국가의 대외적 의사표시를 하는 공식문서로서 관보를 통해 공포하였다. 대한제국의 입법체계와 절차를 규정한 법률로서 ‘공문식’에 따른 입법절차를 거쳐 제정되어 관보에 공포된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는 법체계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불과하며 국가적 의사 표시를 위한 공식문서인 관보에도 게시되지 않은 1905년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보다 상위의 법체계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새로이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울도군의 관할에 포함되는 독도(석도)에 대하여 별도의 지리적 위치 등에 대한 설명 없이 법률로 명시하였다. 칙령 제41호에 따른 관할권의 행사는 울도군 절목이라는 후속적 하위법령의 제정을 통해 세금의 징수라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이 일본보다 먼저 서구적 근대법의 형식으로 독도에 대한 직접적 주권을 행사한 1차 증거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의 근거로서 그 무게와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757.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의 목적은 1870~80년대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과 「울릉도도항금지령」의 발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하여 1881년 수토사에 의해 발각된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의 배경을 살펴보고 당시 우리 조정의 대응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항기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은 일본의 관주도 하에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도항한 일본인은 야마구치현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본 군함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견되어 군함에 의해 철수시킨 것은 이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둘째, 이 때의 침입은 무인화 되어 있었던 울릉도에 침입하여 체류함으로써 경제적 이득 추구보다는 근대 국제법에 근거하여 새로운 섬의 ‘발견’과 ‘실효지배’라는 「무주지선점」의 논리를 적용하여 울릉도 를 침탈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당시 검찰사 일행과 일본인 체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셋째, 1881년 봄 일본인의 독도 침입은 수토사에 의해 적발되어 신속히 조정에 보고되었고 당시 우리 조정의 대응은 이규원 검찰사의 파견과 「울릉도개척령」의 반포로 이어졌다. 「태정관지령」 등을 통해서 울릉도·독도의 소속이 조선에 있음을 재차 확인하면서도 ‘죽도명칭혼란’ 등의 이유로 「죽도개척원」, 「송도개간원」 등의 청원을 통해 다분히 울릉도 탈취 의도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조선 조정의 대응은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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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독도의 옛 이름 송도(松島)가 왜 울릉도의 옛 이름 죽도(竹島)로 부르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 논리에는 무주지 선점 법리가 이용되고 있다. 1876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을 통해 제출된 ‘송도개척건의(松島開拓之 議)’의 송도(松島)는 ‘일본 땅’ 송도(松島)라는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이를 적용해 해군성은 울릉도를 송도(松島)로 명기하였다. 당시 해군성은 울릉도에 소속 불명확한 1도 2명의 이름을 붙여 조선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군함으로 민간인들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1881년 조선정부에 발각되자 일본 외무성은 1880년까지 명칭 혼란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침입했다고 변명하였다. 이러한 수법은 일본의 영토 침탈 수법으로 독도의 편입과정도 이와 동일하다. 1900년 러시아가 울릉도를 점거하자 일본은 일본어민이 어로 활동 중 ‘발견’했다고 유포하면서 관 주도하에 계획적으로 ‘발견’한 독도를 선점하였고 민간인을 동원한 영토 편입은 ‘영유 의사의 재확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일본은 국제법상의 무주지 선점 법리로 자신들의 침탈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1875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세와키 히사토 「블리디보스토크 견문록」에는 이러한 일본의 영토 침략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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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was conducted to effectively develop rural tourism in Korea. For the purpose, tourism that can develop with local industries and cultures together was designated as life-type tourism and development models of such tourism were reviewed based on an understanding that province-oriented tourism is necessary. An analysis of three actual cases of Japan led to following results. First, life-type tourist destinations can be developed in connection with making local areas based on their special themes, can be developed in relation to their life cultures based on their peculiar life cultures and can be developed in creative forms using characteristic environment and organizational culture of those areas. In pursuing life-type tourist attractions, it will be possible to make practical development using it with those three basic models. Second, it is important to form a flow covering the entire regions based on their own special themes, to build cyclical structure of regions and tourism and tourism and industries and to create overall conditions that can help local residents get benefits and join together, in order to develop such life-type tourist destinations. Development of life-type resort tourist destinations needs roles of practical organizations that can effectively manage them, but such organizations should be dynamic and should be distant from management of money as much as 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