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였으며, 이 에 따라 중국어는 가장 중요한 외국어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는 통문관(通文館), 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을 통해 중국어가 교육되었고 四書나 直 解小學과 같은 중국의 경전이나 老乞大, 朴通事와 같은 회화서를 사용했다. 조 선 중기,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실질적인 의사소통에 필요한 교재가 필요함을 깨 달으며 여러 회화서의 개수본(改修本) 뿐만 아니라, 譯語類解와 같은 유해류(類解 類), 즉 분류어휘집도 편찬되었는데 이는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 학습을 도와 정확한 의사소통에 기여하였다.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는 민간에서 중국어 학습 수요가 증가 하여 민간인 저자에 의해 華語類抄, 漢語抄, 華語, 漢談官話와 같은 유해류 서적이 편찬되었다. 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근현대시기 한국과 중국 두나라의 언어사를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漢談官話는 1902년 필사,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는 미상이다. 18개의 부 류(部類)로 나누어 총 613개의 어휘를 실었다. 譯語類解나 華語類抄처럼 천문(天 文)으로 시작하지 않고 인사‧관직 관련 어휘로 시작하고 있으며, ‘一字部’, ‘不字部’, ‘長語類’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주로 쓰이는 구어체의 어휘, 어구, 문장 표현을 실어 실용성을 높였다. 어휘 부류 및 뜻풀이의 형식과 내용에서는 기존 유해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혁신을 꾀하였다. 각 부에 수록된 어휘는 의미의 상관관계에 따라 연 관성이 있는 표제어끼리 가깝게 배열되었다. 또한, 사용자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문(諺文) 대역어(즉 당시의 한국어)와 한자 및 한문을 이용하여 뜻풀이했다. 譯語類解나 華語類抄와 공통적으로 수록된 어휘 비율이 매우 낮아 漢談官話의 저자가 매우 독자적인 시각에서 어휘를 수집, 분류했음을 알 수 있다. 漢談官話의 주음(注音) 측면에서 살펴보면, 見組 성모가 일부 구개음화 되기 전 의 형태인 ‘ㄱ’, ‘ㅋ’으로 기록된 것과 日母가 영성모로 기록된 것은 동북 방언의 영 향을 받은 부분이다. 그러나 來母를 ‘ㄴ’으로 주음 한 것과 같이 당시 한국 한자음을 학습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에 따라 주음하고, 端組를 ‘ㅈ’혹은 ‘ㅊ’과 같이 한국 한자음에서의 구개음화 현상에 따라 주음하며, ‘兒’을 ‘라’로 기록한 것은 저자의 중 국어 음운학적 지식의 한계에 기인한 것이자, 이 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러나 漢談官話는 체제, 형식, 어휘, 뜻풀이 면에서 볼 때 기존 유해류 서적과는 뚜 렷한 차별성을 보이는 혁신적인 성격의 유해류 서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근현대 한 중 양국의 언어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In recent years, many Vietnamese and International researchers have been interested in two aspects of Vienamese variant Chinese charaters – International variants and national variants. International variant characters here are Chinese characters originating from China. National variant characters are Chinese characters created by each country under the Chinese cultural influence, such as Vietnam, Korea and Japan. In order to clarify the charateristics of Vienamese unique variant Chinese charaters (national variants), we analyzed two Buddhist texts: The first one is Chư phẩm kinh 諸品經 (there are 187 variant Chinese charaters correspond to 183 standard charaters with total number of appearance is 1,697); the second one is Thích thị bảo dỉnh hành trì bí chỉ toàn chương 釋氏寶鼎行持秘旨全章 (there are 56 variant Chinese characters correspond to 41 standard characters with total number of appearance is 243).
楷書가 완전히 정립된 당나라는 中國書藝史에서 차지하는 비 중이 대단히 크다. 그리고 虞世南과 歐陽詢, 褚遂良, 薛稷으로 대표되는 初唐4대가와 唐太宗, 武測天, 唐玄宗등의 최고 통치 자들과 孫過庭, 張旭, 顔眞卿, 懷素, 柳公權등 수많은 훌륭한 서예가가 이 시대를 거쳐 갔다. 특히 앞선 隋나라에서 싹튼 雅 健整正한 書風을 더욱 발달시켜 渾然하고 圓熟한 해서의 황금 시대를 가져왔다. 여기서 初唐의 저수량은 역대 서예가들 멀리는 王羲之, 가까 이는 구양순, 우세남을 배우고 南北風을 하나로 융합하였으며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여서 唐代해서에서의 군계일학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저수량의 生平과 그의 서예예술 세계, 특히 해서를 중심으로 전시대의 계승과 발전과정을 살펴 보았다. 저수량의 해서에는 <禮器碑>, <曹全碑>등의 八分隸法운필이 있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과정의 변화가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저수량의 필세는 이후의 颜真卿, 柳公權등에게도 영향 을 끼치면서 唐朝해서의 완성에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저수량은 선인들 서체의 장점을 받아들여서 군계일학 으로 唐代서예의 모범이었다. 그의 심미추구는 혁신정신으로 가득 찬 가늘면서도 시원하고 고상하면서도 민첩한 풍격은 시 대를 선도하여 새로운 楷書을 개척하였다. 그는 唐代서예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전대 서예가 및 작품 의 영향을 벗어난 대표자이자 옛 것을 변화시켜 새 것을 창조 하며 당대 해서를 성숙하게 하였다. 더욱 저수량 이후 설직, 안 진경 등 서예가는 저수량의 기초 위에 자신의 풍격을 발전시켜 당대 해서의 특징 “尙法”을 성숙케 했다. 그의 강직하고 굽히지 않는 정신과 품격, 또한 그의 심오한 서예와 함께 영원히 남아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었다.
In this paper, we choose the geographical vocabularies from Xunmeng Zihui which is the earliest educational dictionary in Korea, finding out the corresponding vocabularies in the Original Yupian, and compare those vocabularies from their characters and meanings and some other aspects. We point out that the vocabularies in Xunmeng Zihui have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orresponding vocabularies in Original Yupian, as well as the other Ancient Chinese Dictionaries. At the same time, we discuss the characteristics of the educational vocabularies in the 16th century in Korea, such as most of them are basic vocabularies, the characters are mainly simplified ones and the meaning are popular at the time.
참위의 학문은 동한이 정치와 사회생활 그리고 학술사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가 동한 말년에 쇠미해졌다. 원래 참위 서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의해서 조대가 바뀌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통치자는 그 중의 위험을 점점 의식하게 되었고 위진 이후에는 수차례 금지되다가, 수양제가 정식으로 금지한 후에는 참위의 서적은 대량으로 손실되었다. 참위라는 것은 신학적이고 미신적인 색체를 띄고 있기에 아예 유가 경전과는 장기적으로 병행 되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비교적 빨리 유가 경전과 분리되어 나갔다. 그러나 참위의 서적은 전부다가 완전히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또한 허다한 천문, 역수, 지리학 등의 방면의 고대 자연과학 지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처강”과 같은 수천 년 중국 군주 전제 사회의 최고의 윤리 규범이었던 삼강도 《白虎通義》라고 하는 것에 확실히 기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禮緯 《含文嘉》 중에서 인용해 나온 것이다. 도참은 처음에는 인간과 천지 혹은 자연과의 교류의 차원에서 논의 되던 것으로 시작하여 유가 경전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학문의 폭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역대 제왕들이 그것을 정권 탈취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왜냐하면 도참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스스로 에게 다시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에 그것의 위력을 아는 자는 그것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중국의 금서사상 참위는 후대로 갈수록 배척 되어 왔음에도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 신비스러운 잔영으로 남아 있다.
There are many different cultures in this world. Likewise,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cultures are largely different. There are about 175 definitions of culture according to cultural anthropologists. However, it is clear that there is only one Gospel in the midst of many different cultures. It is the biblical truth which cannot be changed under any circumstances. The biblical truth sets people free of sins and lets them have eternal life (In. 8:36). The goal of missions is to witness to Jesus Christ, the Word of God and pursue true conversion as a result of a radically different world view. The core of true conversion is to make disciples of Jesus Christ. The way of making His disciples and the meaning of becoming His disciples could be different according to culture. A cross-cultural missionary should understand culture and love the people in culture and minister to the people's needs in order to communicate the Gospel to the people (I Cor. 9:20). The cross-cultural missionary needs to encourage the people to become Christ's disciples as Jesus Christ served the people in incarnational ways. The people need to encounter the Lord in their own culture and have a close fellowship with Him. In consequence, the cross-cultural missionary should not impose his or her own cultural forms upon the people whom he or she is called to serve. Rather, a cross-cultural missionary needs to communicate the biblical truth instead of his or her own cultural forms. It is because what is sacred is not a cultural form but the biblical truth. To communicate the biblical truth to the people, the crosscultural missionary needs to distinguish biblical meanings from cultural forms and to communicate the biblical meanings to the people in their cultural forms. As discussed, culture is an effective medium of communicating the Gospel message to the people who are yet to be Christians. The cross-cultural missionary has the responsibility to share the Gospel with the people without destroying their culture. As Abraham respected and accepted the Hittites' custom (Gn. 23: 1-19) and the apostle Paul encouraged Gentiles to become Christians while remaining in their cultures (Acts 15), a cross-cultural missionary has to respect the people's culture. Human culture is worth being saved. Culture is an effective means of fulfilling God's intention. There is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Gospel and culture. The Gospel traverses, judges, and saves culture. The Gospel dedicates, sanctifies, and beautifies culture. The Gospel exorcises demons in culture. Culture receives or rejects the Gospel. Culture communicates the Gospel and conditions peoples to have faith in it. Culture brings glory to God.
파시즘에 대한 서적 에서 엘리엇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관한 동시 대의 저작들에 대한 간략한 서평의 범위를 넘어서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던 이 정치적 운동에 대한 정밀 한 진단과 예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서평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 는 파시즘에 대한 엘리엇의 비판적인 태도는 그가 내심 어느 정도는 파 시즘의 동조자였다는 엘리엇 연구에서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의 심에 찬 목소리를 논박할 수 있는 확고한 증거를 제공한다. 엘리엇이 이 서평을 발표한 1928년까지만 하더라도 파시즘의 광기 어린 극우 이 데올로기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인 점을 고려하면, 일관된 정치 철학이나 체계화된 강령도 없이 대중의 심리를 조작하고 권모술수 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엘리엇의 통찰력 있는 분석은 선구적인 측면이 있다. 파시즘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엘리 엇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왕당파이자 국교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동적 보수주의라 는 자신의 당파성을 바탕으로 하여 유사한 극우 이데올로기인 파시즘의 문제점들을 정밀히 검토하고 있다.
경건주의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요한 아른트 (1555-1621)는 독일 근대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루터교에서의 아른트의 위치와 평가는 중세 신비주의의 문헌 그리고 영성주의와 같은 종교개혁의 외적 문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17세기 개신교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는 것에 달려 있다. 아른트는 자신의 주저 “참된 기독교에 관한 4권의 책” (1605-1610)을 통해 요한 타울러, 독일 신학, 앙겔라드 폴리그노, 그리스도를 본받아, 발렌틴 바이겔 그리고 파라첼수스 등을 수용하였다.
본 논문은 아른트의 기도 서적 “천국의 작은 정원” (1612)에 대한 문헌 비평이며, 이러한 문헌 비평을 통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중세 신비주 의자 버나드의 문헌 그리고 버나드의 영성 아래서 전승된 위 버나드 문헌들을 밝혀 낸 연구이다. 또한 아른트의 기도 서적 속에서 드러난 수난 신비주의, 신랑 신부 신비주의, 사랑의 신비주의, 예수 이름 신비주의 등 다양한 일치 신비주의는 버나드 없이는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중 양국은 오랜 역사기간동안 문화와 정치, 종교와 예술에서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우리나라 는 자체적인 우수문화를 창달하였다. 중국의 선진문물과 문화를 도입하여 발전시키고 이를 이웃국가 인 일본에 전파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도 수행해왔다. 특히 인쇄와 종이제조 기술의 유입과 발달은 중 국의 문학작품을 수용하여 한국고유의 작품탄생이 탄생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 유입된 중국 고대문학 작품 수는 총 483종이며 이중 전등신화와 전등여화를 포 함한 소설이 464종, 원나라 잡극 서상기를 포함한 희곡 19종이다. 특히 조선왕 연산군이 직접 하교하 여 중국 서적을 구매해서 들여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중국에 파견하는 사절 단에게 명나라에서 서적을 구매해 올 것을 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파견 사절단이 서적 유입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유입된 서적 중 전등신화와 전등이화는 조선 초기 한국의 최초 소설인 금오신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후 전기소설집 기재기이의 탄생은 17세기 몽유록 소설의 대표작인 구운몽의 탄생에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표적인 애정소설 운영전과 주생전 그리고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 동전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역에 의한 중국 서적 유입은 한국의 고전소설의 탄생과 발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컨텐츠는 고전소설을 중요한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산업을 활용하 여 수출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국가 경제 이익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문화 산업 수출의 중요성은 더욱더 강조될 것이다. 오래전에 국내로 들여온 무역서적 중 전등이종의 국내 유입은 우리의 자체적인 문학작품탄생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독자적인 소설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다. 이후 우리는 우수한 고전문학작품을 문화컨텐츠 소재로 잘 활용한다면 문화산업발전과 나아가 세 계 무역교류를 이끄는 선두 주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을 통하여 중국서적의 무역유입과 현 재의 한국 경제에 깊은 영향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는 학교와 학교 밖의 공간에 내재된 경험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아존중감, 그 리고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는 자서전적 방법과 생애사 연구의 방법론을 활용하였다. 연구자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자신 이 겪은 에피소드를 내러티브로 구체화하면서 학교와 교회, 그리고 일터에서의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이러한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 관계의 양상을 분석하여 연 구자의 경험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생애기술은 ‘공간 #1. 가정과 학교: 낮은 자존감과 무기력한 시절을 보낸 곳’, ‘공간 #2. 집 앞의 교회: 가정과 학교 경험의 연장선’, ‘공간 #3. 새로운 교회, 공간’ ‘#4. 다시 학교로: 갈등과 통합’, ‘공간 #5. 일터: 내면적, 외면적 성장’으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구 성되었다. 이를 통하여 연구자는 무기력 했던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맞이한 새로운 공 간에서의 경험을 성찰하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 변화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또한 인정, 소속감, 봉사정신을 학교와 일터에서 통합하기 위하여 결정한 진학과 진로,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겪은 현실의 갈등을 기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