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존 키츠와 W.B. 예이츠가 잃어버린 대상을 재구성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으로 재창조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키츠는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시」와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매혹적이면서도 도달할 수 없는 꿈의 풍경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화자는 결국 고통스러운 현실로 되돌려진다. 「이사벨라, 혹은 바질 화분」에서 키츠는 이사벨라가 잃어버린 대상을 이상화하고 그녀의 자아와 우울증적 동일시를 함으로써 일시적이지만 그 대상을 되살리는 모습을 그린다. 한편 예이츠는 「청금석 부조」, 「쿨 호수의 야생 백조」, 「서커스단 동물들의 탈주」에서 불완전성을 시적 상징으로 변환함으로써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을 그려낸다. 예이츠에게 부재는 창조적 힘으로 작용하여 현실을 재구성하면서도 상상력이 현실이나 자아를 대체하지 않는다. 존재와 부재, 상상과 현실의 상호작용은 두 시인이 이러한 이중 영역을 조화시키려는 탐구의 핵심이다.
2021년 우리나라 성범죄 발생은 6,321건, 범죄률 13.5%로 교정시설에서는 성범죄 예방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범죄의 재범률은 증가하 고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변증법적 행동 치료이론을 기반으로 성범죄자의 재범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의 개발은 선행연구와 요구조사를 바탕으 로 하였다. 프로그램은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의 4가지 핵심기술인 마음 챙김, 정서 조절훈련, 고통 감내, 대인 관계 증진 기술로 구성하였다. 연구설계는 비동등성 대조 군 사전-사후 설계(Nonequivalent control group pretest-posttest design)로 혼 합연구 방법(Mixed Methods Design)으로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하였다. 연구대상 자는 G*Power 3.1 program의 표본 크기에 맞게 G시 교정시설에 수감 된 남성 성범 죄자 중에서 총 28명 선정하고, 무작위 할당 표집으로 실험집단 14명과 대조집단 14 명으로 배정하였다. 하지만 이감과 중도 연구 참여 거부로 인한 탈락자를 뺀 실험집단 13명과 대조 집단 12명의 자료를 최종분석하였다. 양적 분석은 SPSS 27.0 프로그램 독립표본 검증(Independent t-test)으로 동질성을 확보를 확인하고, 집단 간 변화를 이원 혼합설계 반복측정 변량분석(Repeated measures ANOVA)으로 살펴보았다. 질적 자료는 Braun과 Clark(2006)가 제시한 주제 분석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연구 결 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변증법적 행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실험집단이 대조집단 보다 대인 간의 공감 반응과 성인 애착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으며, 변화의 효과 는 추후검사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유지되었다. 둘째, 프로그램 참여 경험을 분석한 결과 36개의 하위 주제, 몇10개의 상위 주제가 나타났다. 이를 분석영역인 충 동성, 공격성, 자기통제력에 재배열하였다. 충동성에서는 이성에의 의지 폭력 행동의 자발적 제어, 예측 능력의 강화, 분노의 원인 탐색 주제가 돌출되었다. 공격성에서는 파괴 본능을 건강한 에너지로 전환, 타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 없애기, 낮은 자리에 서 기라는 주제가 출연했다. 자기통제력에서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의 배양, 현재의 만족보다는 미래의 성공, 규범적인 행동 목표설정이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논의하였고, 교정기관 내에서 성범죄자들의 사회 재적응을 지지할 수 있는 실천적 접근을 제안함으로써 재범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기존의 교정시설 에서 시도하지 않은 변증법적 행동 치료이론을 접목한 프로그램의 개발하였기에 성범 죄자 프로그램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선행연구들과 차이가 있다.
이 연구는 유학의 큰 프레임에서 역동적인 자기 변환의 모습을 담고 있는 조선후기 실학을 분석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한국유학을 재고하려는 시도다. 조선후기 실학의 변증법적 전환은 ‘초월(超越)의 유학’에서 ‘지상(地上)의 유학’ 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연구에서 조선후기의 실학이 ①유학의 실제성 ②개방적ㆍ경험적ㆍ과학적 탐구 ③맥락 의존적 가치관 ④도 덕적 가치에 대한 ‘행위’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 인할 수 있다. 이는 실학의 이론적 흐름이 성리학의 ‘초월적ㆍ관념적 탐구에 서 현실적ㆍ경험적 탐구로’ 전환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실 학이 한국유학사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의 유학을 재고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중요 담론인 까닭이다. ‘실학의 비조’로 평가되는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은 정주(程朱)의 리(理)를 법ㆍ제도의 사회 원리로 재해석함으로써 현실의 차원에서 적용될 수 길을 제시했다. ‘실학의 중조’로 불리는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은 노ㆍ장,불교, 서학 등 여타 학문에 대한 적극적 개방과 함께 과학적 학문 방법을 도입, 실증적 합리성을 견지했다. 또한 그의 국가관에는 형세[勢]에 근거를 둔 ‘맥락 의존적’ 가치관이 함축되어 있다.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도덕 ‘행위’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경험적 인식 방법을 제안함으 로써 과학적 탐구의 단초를 제공했다. ‘실학과 개화사상의 가교자’ 혜강 최한기 (崔漢綺, 1803~1879)는 태양중심설을 비롯하여 뉴턴의 물리학, 기계론적 신체관 등의 자연과학적 탐구를 자신의 기학(氣學)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렇듯 조선후기 실학은 선진유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롭게 재조직함으로써 변증법적 전환을 이루었다. 비록 실학이 초월의 영역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경험과학적 지식의 이론화는 다양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 진화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탐구는 실학을 건너뛰고 ‘지금, 여기’의 유학으로 올 수 없음을, 그리고 왜 실학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본 연구는 존 던의 사랑시를 통해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 사이의 전통적인 이원론이 재고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던의 시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다루는 두 가지 범주로 대별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서로 중첩되는 경향을 보인다. 던이 인생 경로에서의 변화 과정이나 회개 등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하여 성 어거스틴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던의 초기/세속적 시와 후기/종교적 시 사이의 대조는 상대적이며 문제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던의 시에 나타난 이런 경향은 이질적인 생각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결합시키고 통합하는 그의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본 연구는 던의 사랑시를 변증법적 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면서, 신체와 영혼 사이의 분리를 전제하는 어거스틴 의 ‘부정의 신학’과 던의 형이상학적 시학이 빚는 차이에 대해 논의한다. 던의 변증법적인 사랑의 철학은 큐피디타스와 카리타스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경험을 통해 영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논리를 궁극적으로 전달해 준다.
이 연구의 목적은 전승4국에 의해 각각 4분할된 전범국 독일의 동서독 분단과 베를린 분할, 소련과 동독 당국에 의한 베를린 장벽의 구축, 그리 고 동독 주민들의 여행 자유 개방에 따른 베를린 장벽 해체 등을 통해 동 서독의 통일을 고찰하는 데 있다. 연구방법으로는 전승4국과 양독2국 간 쟁점이 되어 온 베를린 장벽의 구축과 해체에 관하여 헤겔의 정(正, These)→반(反, Antithese)→합(合, Synthese) 변증법을 적용하였다. ⓛ 전승4국이 전전(戰前) 회담의 산물인 전범국 독일을 동서독 분단과 동서 베를린 분할을 해 놓은 국제질서하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미에서의 정 (正), ② 그중에서 소련과 동독 당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깨고 공산주의 패 권을 유지하고자 베를린 장벽을 구축한 의미에서의 반(反), 그리고 ③ 베 를린 장벽 해체가 의도되지는 않았지만 동독 주민들의 이주와 이탈을 넘 어서 동유럽의 민주화 일환으로 나타난 촛불시위, 동독 SED 대변인 샤보 브스키(G. Schabowski)의 기자회견에서의 ‘즉시, 지체 없이’ 국경개방 허 용 발언의 말실수 등이 ‘부정의 부정’으로 지양(止揚, Aufheben)되면서 베 를린 장벽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 의미에서의 합(合)인 것이다. 요 컨대 미국과 소련 중심의 전승4국은 전범국 독일을 분할하여 패권이란 국 제질서를 지속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소련과 동독이 베를린 장벽 구축에 나서면서 그들만의 공산권 체제유지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서독 여 행 자유와 국경개방 시위에 나선 동독 주민들의 자유화와 동독 당국의 개 방에 대한 모호한 태도 등이 중첩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기에 이르 렀다. 따라서 베를린 장벽의 해체는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단초가 되었고, 정상적인 통일 독일로 자리매김한 것은 더이상 분단 독일이 지속될 수 없 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깨우쳐준 사실이 아닌가 한다.
어떤 주장을 두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일은 인문학의 사회적 책무다. 그 책무를 다하려는 이 작업은 따라서 ‘중국어 원지음 표기와 한국어 정체성 보존’이라는 구체적 문제에 접근하는데 어떤 방법이 더 타당할지를, 또 이를 토대로 어떤 제언이 가능할지를 이론적으로 탐색한다. 주된 방법론적 틀은 수렴과 분기의 변증법적 관계설정으로 삼는다.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고정성과 유동성의 모순을 한쪽으로 환원·포섭하려는 이론 생산 및 논의 주체의 욕망을 들여다보려 애씀과 동시에 그것이 생성시킬 벡터의 정당성은 다름 아닌 대중문화의 향유 주체인 대중과 일상적 언어생활의 영위 주체인 언중의 억눌린 욕망이 해방되는 장을 상 정할 때 비로소 획득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어 놓으면서 또 다른 비판적 종합을 기다린다.
이 글은 근ㆍ현대 한국불교 예송의례의 아우라에 대해 전승과 변용을 변 증법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의례서적의 편찬 방식 등을 기준으로, 대각교의식과 석문의범 등이 편찬된 20세기 초중반을 근대 로, 불교의식을 현대와 같은 방식으로 편찬하기 시작한 20세기 중후반을 현 대로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현행 조석의 7정례는 대웅전에 모신 존상과 큰 관련이 없는, 주전에서의 전통 예참의식 형태로서, 사찰의 전 대중이 참여하는 일상의례인데, 근대불 교시기에 유사한 양태로 성립되기 시작하여 점차 변형을 겪으며 현대불교시 기에 이르러 현행 양태로 변용되었다. 7정례가 한국불교사찰에 널리 보급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의 모든 사찰에서 동일하게 설행되는 의 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찰의 새벽을 알리는 도량석이 현재와 같 이 활용된 시기와 의미 등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야간에 행해지는 시식(施 食) 의식의 결계(結界)에 대(對)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 일지 모르지만 현재 법성게가 ‘도량석’에서 주로 염송되는데, 이는 시식의식 에 초대된 존재들이[諸法] 본래의 붓다[名爲佛]이고 그곳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의미와 역할이 묘하게 부합된다. 범종각의 사 물인 법기들은 식당에서 출가 승려들이 음식을 먹을 때 울리던 것으로, 사 찰에 재승(齋僧: 승려공양)이 들어왔을 때 야외에서 식당을 차리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유나소인 종루(鐘樓)에서 활용되게 되어 종각에 모이게 되었다. 이 같은 역사 속에 예경과 송주의 도 량석이나 종각의 사물은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으나 각 의식과 사물은 탄생 의 연기를 환기하여 깨달음을 되새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사회복지는 촘촘한 날줄과 씨줄로 연결된 관계들의 망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매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매듭을 풀기 위해 가능한 여러 생각들을 하고 다양한 학문들을 보고 읽고 듣고 하면서 가능성의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아도르노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계기 찾기가 가능한지 그 의문에 응답할 수 있는 사회복지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여러 문제의식 속에서 사회문제들을 분석한 아도르노의 저서를 토대로 부정의 변증법이 지닌 사회복지적 함의에 주목하였다. 아도르노의 부정은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폐쇄적 사고가 아닌 사고의 계기를 찾을 수 있는 개방적 사고이다. 사회복지는 변화무쌍하여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많은 층을 이루고 있다. 사회복지는 사회에서 실현되기에 그 자체가 실천이고, 실천 속에서 작용하여 관계들의 망인 상호영향 속에서 이론이 생성된다. 생성된 짜임관계들을 풀어내기 위해 사회복지사는 의문을 던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복지에서 그의 비판이론을 통해 사회복지에서의 또 다른 실천 개입들을 이론과 실천의 접목이라는 차원에서 재구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천이 자명하지 않더라도 자명할 수 있는 것은 실천과 이론이 가지는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순의 현상을 직시하여 그 현상 속에서 여러 논의들을 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펼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부정의 사유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변화무쌍한 사회복지인 만큼 다양한 의미 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층위에서 아도르노가 말하는 ‘부정사유’는 여러 함의를 우리에게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Architecture is a product of numerous influences, as shown in the apprenticeships of Kim, Jung-Up and Kim, Swoo-Geun with Le Corbusier’s influences. Therefore, its identity is need to be re-defined based on such complex relationships. The rhetorical images of ‘the Map of Misreading’, as the core of the poetic identification proposed by Harold Bloom’s ‘the Theory of Influence’, provide an efficient way of explaining the relations between architectural apprenticeships and identities. This research is to re-build a new methodology of architectural criticism based on it. The diachronic transformations of the architecture of Seung, Hyo-Sang also had very characteristic ‘revisionary ratios’ about his precursor Kim, Swoo-Geun. As an antithetic stance of his precursor’s final phase, his early days works pursued continuously geometric abstraction and objective images of the architecture of Adolf Loos. However, his recent works are showing the obvious symptoms of regression to his origins. Finally, the architectural identity should be re-conceptualized as a complexity, based on inter-textuality from complex influences. This new architectural identity can be reflected into the modern obsessive identity.
Korean culinary culture is traditionally studied through the analysis of foods ingested. However, this study attempts to dialectically reinterpret Korean culinary culture through its relationship to Korean literature. In our study we consider culinary culture prior to the development of scientific techniques and economic growth related to food as "dietary lifestyle of the innocent world" and time since then as "the dietary lifestyle of the experience world". The former represents a simple means of survival without food processing (the "slow food" world), while the latter represents the "fast food" or processed food culture as a modern concept. People living in the age of economic growth and overflowing individualism have lacked an organic life and an opportunity to commune with nature. As a result, they have returned to values of the past, seeking the "slow food" culture to benefit their individual health. A series of return processes, however, were transformed into "the dietary life style of the higher innocence," called "a well-being dietary life style" involving a new healthy conception passing through the dietary life style of the experience world.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dietary lifestyles of the "innocent" world and the "experience" world based on dialectic concepts. Individual concepts of "thesis" and "antithesis" are applied, as well as the developmental concept of "synthesis" for the way both symbolic worlds changed to "the dietary lifestyle of the higher innocence" and formed complementary relationships to each other.
이 논문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행이 된 한류현상을 비판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한류문화가 세계적인 문화로 거듭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인문학적인 성찰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한류의 기원과 정체성, 한류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 그리고 한류문화담론 및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등의 비판철학적 시각을 제시하였다.한류(韓流, Hallyou, Korean Wave)는 ‘한국의 TV드라마,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가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유행해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말한다. 한류는 가족윤리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와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현대적 가치가 융합된 세계적인 문화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서구의 대중문화가 아시아적 가치에 적합하게 필터링된 모방문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비판이론가의 문화산업이론에 따르면, 대중문화는 ‘동질성’과 ‘예측가능성’ 때문에 대중들의 허위의식을 조장하여 비판의식을 상실하게 한다. 한류문화가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변증법적 종합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서구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며, 한국의 전통문화에 내재된 비판정신이 회복되어야 하며, 미디어 교육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통과 현대의 변증법적 교섭과 실천을 통해 한류문화는 세계적인 문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한국 문학에서 구여성은 무식하고 관습을 좇으며 간혹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만 대체로 선량한 하층민으로 표상되었다. 현진건, 이기영, 강경애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거니와 이로써 이들은 '불행한 조국'을 상징하는 알기 쉬운 환유가 되었다. 그들의 고난과 희생은 수난당하는 조국의 운명과 동일하게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여기에는 분명 의아한 구석이 있다. 구여성은 대관절 언제부터 문학사에 등장했을까. 한국문학에서 이들 구여성이 계급성을 획득하는 시기는 카프(KAPF)의 등장과 맞물려 있지만 사실 이들은 어느날 혜성처럼 문학사에 신여성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저절로 특정한 의미로 자연화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예컨대 근대일본문학의 기원을 논하며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 문학에서 근대 문학이 자연화되어가는 과정을 '풍경의 발견'이라는 발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고진의 설명처럼 기원이 사후적으로 구축된다면 구여성이라는 '슬픈' 기원 역시 신여성이 등장한 후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축된 근대적 관념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신의 소설을 보면 노신이 바라본 하층민, 특히 구여성의 모습에서는 이제 막 재현되기 시작하는 '중국적인 것'의 기원으로 그 의미가 안착되고 있는 구여성의 존재가 감지된다. 서술자의 시선은 이들을 집요하게, 그리고 꾸준히 따라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종종 익숙하기보다 기묘하게 낯선 존재로 다가오는 점이다. 병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내일》)는 한국 소설의 어머니보다 더 늙고 체념적이며 비합리적이다. 근대 한국 문학에 비해 어딘가 지나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지나침의 배후로 의학도의 시선을 되받아치는 응시를 지목했지만 여기에는 또한 노신의 개인사도 개입하고 있다. 노신이 《광인일기》에서 의학도의 감각으로 이 슬픈 기원을 해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성숙한 장년이었던 것이다. 떠나온 자였으되 한편으로 여전히 고향의 이런저런 풍속을 기억하고 그곳에 아내를 둔 내부인이기도 했던 그의 처지는 노신의 문학에서 의학이 가치중립적 지위를 넘어서 그 시선의 권위를 감지하는 자기반성적인 기제로 전환되는 것을 설명해준다. 주체의 시선과 응시가 뒤엉키는 곳에서 의학은 문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축원례》에서 이 슬픈 기원이 가르쳐 준 것은, 뒤늦었지만 주체이기 전에 이미 대상이었던 의학자 자신이다. 반면 이광수는 이 점에서 훨씬 자유로웠다. 동일한 이유를 붙이면, 십대에 유학을 떠나 문명을 날리면서 춘원에게는 이 슬픈 기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을 추동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의 이상이었고 그것은 귀국한 춘원이 창조해야 할 근대문학 자체이기도 했다.《개척자》에서 춘원은 희귀한 주체, 화학도를 내세워 그 가능성을 열렬하게 타진했지만 정작 춘원이 만들어낸 창조의 꽃은 그의 모순적인 근대성을 모조리 흡수해 용해시키는 '새로운 기원'-신여성이었다. 이로써 춘원이 창조한 한국 근대문학의 주체들은 과학(자)의 젠더지향성에 쉽사리 포섭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구여성이 등장하는 춘원의 다른 작품을 보아야 하므로 여기서 다룰 바는 아니다. 이 논문은 근대 초기 한국과 중국에서 과학과 문학이 만나는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론일 따름이다.
『에머의 유일한 질투』에서의 쿠쿨레인은 예이츠의 다른 극에서 보여주는 두려움 없는 신화적 영웅이 아니다. 그는 자연계와 초자연계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으며 자신의 운명 또한 에머의 손에 달려있는 전적으로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쿠쿨레인의 속수무책과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세 여인 및 브로크리우가 보여주는 욕망의 파노라마는 그의 영웅적 모습이 단순히 그들이 갖고있는 그의 경험적 종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면이 있음을 암시한다. 즉 이들의 욕망을 고려해야만 경험적 종합으로 환원되지 않은 그의 영웅적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들 욕망사이의 갈등을 기억과 희망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에머가 에이스니로 하여금 쿠쿨레인의 이름를 부르고 그에게 키스를 하도록 하는 제의적인 모습은 그의 영웅적 정체성과 이름과 욕망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에머에게 주어진 잔인한 선택은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이미 확정된 것으로 가정함으로써, 에머는 미래의 희망을 희생한 것이 단순히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그녀의 욕망을 비밀스럽게 실현시킨다. 시디의 여인(the woman of sidhe)의 욕망은 쿠쿨레인과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영혼의 완전히 실현하려는 것이다. 쿠쿨레인이 비통한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자신과의 결합에 머뭇거리는 것을 알고 그 기억을 자신과의 키스로 지우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이 초자연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이 여인은 결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는데 이는 모든 기억을 지운다는 그 세계조차 이미 언어와 기억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극에서 에머와 시디의 여인의 욕망이 좌절되는 것에 비해 브로크리우만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실현을 위해서는 자신과 철저히 동일시했던 쿠쿨레인의 모습을 포기해야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욕망은 애매한 실현으로 그친다. 이렇게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않으며 항상 대체되고 환치된다는 점은 이 극의 초두의 두 노래에서 이미 암시되어 있다. 이 노래는 여인의 미와 이를 묘사하는 비유사이의 긴장, 특히 지나간 비유에 대한 기억과 다가올 비유에 대한 기대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준다. 이 긴장은 욕망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기억과 희망의 변증법을 상징적으로 예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