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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7.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역사적 관점에서 7세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주요 논쟁점을 살펴본다. 본 연구의 주된 내용은 무슬림들은 기독교인 들이 하나님, 예수, 마리아의 삼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이슬람을 기독교의 한 분파나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테오도어 바르 코니는 다마스커스의 요한처럼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무함마드를 이단의 두목으로 보았다. 가경자 피터, 루터, 칼뱅도 이슬람 을 이단으로 단정하였다. 무슬림들은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구세주이심 을 부인한다. 루터와 칼뱅은 무슬림들이 예수를 구원자,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다고 보았다. 루터와 칼뱅은 이슬람을 하나님이 범죄한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사용하시 는 진노의 막대기로 보았다. 루터는 무슬림을 기독교의 대적자로 보았 고, 칼뱅은 이슬람은 거짓 종교(우상숭배)이며, 무함마드는 배교자, 협잡꾼, 악마의 하수인, 그리고 적그리스도로 간주하였다. 새로운 무슬림 전도방안을 제시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대 이슬람 변증의 주요 논쟁점이 무엇인지 우선 인식해야 한다. 이슬람에 대한 공격적인 선교 를 지양하고, 이슬람 선교의 장애물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성경과 유사한 꾸란의 내용을 활용하여 무슬림 전도의 연결고리(bridge)로 활용해야 한다.
        9,000원
        23.
        2017.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김동리의 『을화』와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대상으로 한다. 두 작품은 모두 기독교와 토착 신앙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차이점 또한 확연하다. 을화 에서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며,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토착 신앙과 가치체계를 고수하는 부모 세대와 기독교적 가치체계를 받아들인 아들 세대는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 결과 을화에서는 아들 영술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는 아버지 오콩코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술의 죽음은 기독교가 토착 신앙화되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결합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오콩코의 죽음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 제국주의 세계의 폭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의 결말에서, 기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양 면성을 읽을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존중받아야 할 문화를 삭제하는 제국주의가 모두 폭력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 다. 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빚어진 죽음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재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기반으로 종교 간의 갈등이 문학작 품에서 그려지는 조건과 인물형을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다.
        5,500원
        24.
        2017.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국 기독교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영향력을 미친 토속종교 중 하나인 무교를 비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독교와 무교는 신과 신적인 존재들을 인정하고, 복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복의 개념,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이라 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기독교는 무교와 다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복은 영적인 복과 세상적인 복 둘 다른 강조한다는 점에서 세상적인 복만을 강조하는 무교의 복과 다르다. 또한 하나님, 신적 존재들, 이웃과의 관계를 기독교에서는 강조하는 반면에, 무교에서는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중요하 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교에서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도 끊어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종교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 기독교인들에 기독교와 무교와의 차이점에 관한 연구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관한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6,100원
        25.
        2016.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80년대 진보적 운동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 시인 들은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시들을 적지 않게 창작하였는데, 이에 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교회력이 다수 등장한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 더우드목사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제물포에 상륙한 후 약 100년밖에 되지 않았 음에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성경적인가. 본고는 당 시 사회비판 시에 나타난 기독교, 특히 신관과 내세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시들은 신성보다는 인간화된 예수로 묘사되며, 나아가 예수는 민중을 상 징한다. 인간예수의 강조는 십자가형이란 극한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자 이기 때문에 이 땅의 비극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바탕 으로 하고 있다. 지식인 시인들은 사회의 모순이 신의 침묵에 원인이 있다고 보 았고, 신은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종교를 거부하게 되고, 민중이 예수 더 나아가 투사 자신이 예수가 된다. 이러한 기독교를 소재 로 한 1980년대의 사회비판 시가 갖는 의의는 기독교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해 방문학을 지향했다는 데 있다.
        7,700원
        27.
        2016.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Moon-Young Lee is a layman, not a theologian or pastor, who practiced and influenced Christian values and world view during his academic journey. His impact has been felt for 130 years in Korean Christianity. Moon-Young Lee declares that the foundation of American public administration is the 95Theses of Martin Luther in his book ‘Man, Religion, State’. He also interprets the 95 Theses insections of “Methodology, Work and Men”. In relation to “Methodolgy”, Articles 1-7 and 92-95 explain repentance in its entirety. These articles show how man should live through out his life. The section about “Work” is classified in an ethereal world(articles8-55). These articles teach that the work of man is to pursue God’s justice not “profit” symbolized by purchase of indulgences. The section about “Men” is described in articles 56-91 and states that man is a being standing before God(coramDeo) not before priests or the church. Moon-Young Lee’s motive for joining public administration with Christianity is his childhood motto of: “I will study hard for my country from now on, but within the scope of Christianity.” For him, the 95 Theses of Martin Luther show the origin of and the foundation of three courses of action for public servants within administrative organizations.
        4,600원
        28.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활은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룬 희곡으로 기독교도가 아 닌 예이츠로서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구조는 그리스도가 인간인가, 신인가 하는 본질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토론과 주장, 코러스의 노래, 부활한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가 심장이 뛰는 인간으로, 죽음을 극복한 신으로 등장함으로써 등장인물 과 관객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러나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는 디오니소스와의 유사성과 만물유전설을 강조하는 코러스의 노래를 시작, 중간, 끝에 배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 활로 시작된 기독교 문명도 2천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긴 역사의 한 주기에 불과하고 다른 문명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를 겪기 마련이라는 예이츠의 기독교관을 보여준다.
        5,500원
        29.
        2015.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역사적으로 중국교회에서 기독교의 중국화에 대한 논의는 두 번에 걸쳐서 제기되었다. 첫 번째는 반기독교운동에 대응하여 기독교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중국교회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1920년대에 일어 난 본색화(本色化)운동이다. 또 한 번은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지금까지, 중국공산당과 정부,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삼자교회에 의하 여 추구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 즉 삼자화(三自化)다.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요구한 기독교의 중국화를 이룬 교회다. 최근에 와서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중국교회에 기독교의 중국화를 위하여 구체적인 방침을 세우고 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오진 오화’(五進五化) 정책이다.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교회 안으로 진입시키 려고 하는 다섯 가지는 (1) 종교정책법규(宗敎政策法規進敎堂), (2) 건강의료(健康醫療進敎堂), (3) 과학기술지식(科普知識進敎堂), (4) 가난을 구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扶持帮困进教堂), (5) 조화로 운 사회건설(和谐创建进教堂)이다. ‘오진’(五進)이 그 이론적 토대라면 ‘오화’(五化)는 그것의 구체화이다. 중국에서 기독교가 변화되어야 할 오화는 (1) 종교의 본토화(宗教本地化), (2) 관리의 규범화(管理規範化), (3) 신학의 본토화(神學本土化), (4) 재무의 공개화(財務公開化), (5) 교리의 적응화(敎義適應化)이다. 오진오화 정책은 삼자화의 구체화 이다. 오진오화정책은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중국교회에게 기독교의 중국화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준 것이다. 중국교회에서 역사상 두 번 있었던 기독교의 중국화를 평가하면 기독교의 중국화를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색화는 기독교의 중국 토착화 작업이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주도로 삼자애국 운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삼자화와 삼자화의 구체적 실현의 가이드라 인인 오진오화는 중화사상의 중국화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삼자화 정책과 그 구체적 실현화인 오진오화는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하는 중국공 산당의 통일전선전술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 고 있는 각종 공정(工程)과 마찬가지로 중화사상이 기초하고 있다.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기독교의 중국화는 토착화나 상황 화가 아니라 중화사상의 중국화이고,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기독교를 이용하고자 하는 통일전 선전술의 일환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중국화에 주장만 있을 뿐 중국의 기독화(基督化)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없다는 것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삼자화와 그 구체화인 오진오화 된 기독교는 중국적 기독교이지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다.
        8,600원
        30.
        201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역사는 주어진 사료(史料)을 기술하는 것(history)으로는 충분하 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는 해석된 역사(Geschichte)일 때 진정한 역사 이기 때문이다. 초기기독교는 박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이유를 유세비우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고, 그린은 확산의 저해요인을 들어 설명하였 다. 이와 반대로 페스틴저는 ‘인지적 부조화이론’을 들어 심한 박해가 도리어 열정적인 선교를 하게 했다고 보았고, 이를 수정한 게이저는 임박한 종말의 기대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때까지로 대체되었고 하였다. 이에 비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지금까지의 수용사(受容史) 중심의 선교역사에서 벗어나 전달자와의 관계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이를 초기기독교 확장사에 적용하면 복음의 확산에 기여한 흡인력으로서 내적요인과 추동력으로 서 외적요인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흡입력으로서의 내적 요인은 선교 를 위한 신학, 순교자로서의 증인, 강력한 윤리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라 고 할 수 있고, 추동력으로서의 외적 요인은 세계를 통일하고 있었던 로마의 정치와 문화, 당시 문명이 서로 교차하는 세 개의 대륙이 서로 만나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라고 할 수 있다.
        6,600원
        31.
        201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정찬의 장편소설 『빌라도의 예수』에 나타난 기독교적 사유를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정찬은 이 소설에서 예수와 빌라도를 비롯하여 유대 역사에 전승되는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켜 역사성에 바탕을 둔 허구적 서사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를 통해 예수의 신성에 대한 도전적 해석을 시도했다. 예를 들면 예수의 탄생과 부활에 관련된 주류 기독교의 전승에 의심을 시선을 던지거나 또 다른 해석을 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정찬은 이 소설에서 고난과 악의 문제에 대한 고전적 신정론의 입장을 통해 ‘잃어버린 신성을 욕망하는 글쓰기’라는 주제의식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다수의 소설에서 인간이 당하는 고난과 악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문제인식이 이 소설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음을 통해 기독교적 사유에 바탕을 둔 작가의식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찬은 『빌라도의 예수』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에 의해 갇혀버린 신성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성전 이데올로기로 훼손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다.
        5,700원
        32.
        201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한국문학사에서 프로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문제적 비평가이자 작가인 김남천의 기독교 인식의 특징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김남천 연구에서는 간과되었던 부분으로 식민지 시대 프로문학 계열의 작가, 작품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배제되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프로문학 작가들이 기독교에 반감을 갖고 기독교를 사회주의 운동이 타개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있는 기독교 인식의 다양한 측면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김남천의 경우 개인적 체험과 삶의 과정 속에서 경험한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어 여타의 프로문학 작가들과는 변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김남천의 소설에서 기독교적 요소와 긍정적 인식이 드러나는 것은 주로 카프 해체 이후 1939년경부터이며 전향소설로 규정되는 작품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기독교를 자아 각성과 민족개화의 매개사상으로 인식하면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작품에 표현하거나, 기독교인을 개화인의 표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종교적 차원의 개인적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 행동의 변화와 깊이 있는 종교 인식은 부재한 양상을 보인다.
        5,700원
        33.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 근대 여성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 1세대,’ ‘여류 문인 1기’로 불리는 나혜석의 문학을 기독교와의 연관 아래 다시 읽고, 그 관련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데 있다. 여성의 자아와 타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 나아가 인생과 세계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기독교 신앙심과 기독교 정신(윤리)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나혜석의 대표적 자전적 작품인 「경희」에서 여주인공 경희는 ‘하느님의 딸’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 또한 「회생한 손녀에게」에서 할머니는 하느님의 복음을 몸소 구현하는 신앙적 인물이다. 이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여성 주인공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양된 ‘종교적 정신성’에 있다. 기독교적 신앙심에서 발원된 자기에 대한 긍정적, 주체적 인식과 그에 상응하는 고양된 정신 상태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더 나아가 삶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신념과 열정을 생성하였다. 여성 주인공들의 이러한 태도와 심리는 기독교 신앙심과 연동되어 나타난다. 경희는 “자기 자신을 조선 사회의 한 여자보다 먼저 우주 전 인류의 여성”으로 자각하면서 “전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착심”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신념과 열정은 그의 문학과 삶에 드러나는 “개척자로서의 여성 정체성”과 맞물려 있다. 나혜석 문학에서 기독교는 전통적 가부장적 구조와 유교적 이념 속에서 종속적이며, 수동적인, 억압적인 삶을 살았던 당시 조선 여성들이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추동하도록 하는 내적인 힘이었다.나혜석의 초기 문학에서 기독교는 단순히 개인의 영적 구원을 위한 신앙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조선 여성의 삶과 현실의 문제에 기독교를 부단히 연계하면서, 그 정신과 윤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실천했다.
        8,100원
        34.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출처와 장르, 시대와 정서에 있어 상호 유사성이 희박한 『베오울프』, 『거나의 딸』, 『장미의 이름』이란 세 개의 독특한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요소를 도출하여 중세기독교의 모습을 그리려는 시도이다. 비록 유사성은 희박하지만 이 세 작품은 이교도의 시대에서 기독교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형태로부터 서양의 종교로 자리매김하여 완성된 형태에 이르는 다양한 중세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세 초기가 게르만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둔 영웅 중심의 이교도 사상의 잔재를 드러낸다면, 시대가 흐르면서 중세는 신학적, 교리적 정통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논쟁에 휩싸이는 기독교 중심의 철저한 종교적 시대로 변해간다. 이런 중세기독교의 특징은 이들 세 작품 속에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전사, 여성, 혹은 수도사의 삶이 기독교 신앙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는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고대영어로 쓰여진 남성 중심의 서사시 『베오울프』를 대표적 중세작품으로 놓고, 14세기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현대 역사소설 『거나의 딸』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교 분석하여 문학에 나타나는 이교도와 기독교 사상의 혼합을 증명한다. 한편, 14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역사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기독교 세계에서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가 추구하는 진리는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듯, 불에 타다 남은 조각처럼 의미 없는 잿더미에 불과하다. 이 소설에서 진리란 인간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전능함이 만들어내는 유희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이런 중세적 특징들로 점철된 당시를 대표하는 오리지널 작품과 그것을 모방한 현대 문학이 어떻게 우리에게 중세기독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5,200원
        35.
        201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제 3의 지점을 지향한 사상은 예수의 사상과 관련성을 맺는다. 예이츠가 반자아를 통해 지향적 자아를 추구한 과정에는 부정의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부정과 해체의 방법을 사용한 예수의 사상과 유사한 점들이 포착된다. 예이츠의 시 세계 속에는 현실과 초월에 대한 균형이 존재한다. 이것은 성경의 사상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예이츠의 예술세계 속에는 영혼의 연마의 과정을 통한 신과 인간의 연합 사상이 담겨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동방정교의 신화사상과 유사성이 있다. 이처럼 예이츠의 예술의 세계의 중심사상 속에는 기독교와 연관성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게 된다.
        5,400원
        36.
        201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this article I studied the novels and essays of Park Hwa-Seong, who was a representative woman in the 1920-30s as a tendency writer. She wrote a lot of novels over 60 years from 1925 when she became a writer till 1988 when she died. The literary world of Park Hwa-Seong changed greatly according to the conditions of times. In this article, above all, I want to focus on her novels that dealt with the christianity as a subject matter in order to prove the characteristics of recognition of christianity expressed in her works. This study can be an example of how the tendency writers of the 1920-30s recognized christianity and expressed their ideology in their work. Park Hwa-Seong had a specific biography in respect of christianity as a tendency writer in the 1920-30s. She was baptized as an infant and led a religious life very eagerly in her youth. However, as she became a tendency writer and wrote realistic novels reflecting the conditions of the bard times, Japanese colonial era, she wrote novels which expressed negative recognition of American missionary and protest providence of God. In the 1920s-30s, the tendency writers looked upon christianity as a certain ideology for tbe perspective of socialism and criticized it on the ground that christianity could not improve the conditions of colonial reality. As an intelligent leader, she considered anti-christian emotions as an act of nationalistic faith to overcome Japanese colonial conditions. So the reason why she wrote negative christian view in her novels in the 1930s was to disclose the feeling of helplessness of christianity which couldn't revolutionize the dismal reality of nation. For examnple, the short story "Hangui" showed the question of theodicy, why the good had to suffer from hunger and poverty despite the prosperity of the evil. She doubted about the presence of God and became a skeptic of God in her life. Nevertheless she didn't leave the christianity and lived a christian life in a specific method. If she had not known the christianity,she could not have written such a novel that raised a metaphysical question about the providence of God. Through her life, Park Hwa-Seong created works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times. But as she was a writer who had related with christian background from her childhood,in the time of Japanese colonial period, she used christianity as subject matters in her works. AIso she showed christian consciousness in the form of negative as a tendency writer and expressed writer's recognition of chrisrianity as a skeptic of God honestly in the latter part of her literary world.
        6,100원
        37.
        2012.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features of early christianity mission and mission tasks in Jeonju region. The mission in Jeonju started with the seven missionaries who were sent by the overseasmission department of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SPCA) in 1892. They arrived in Jemulpo in November 1892, and were assigned to Honam area. And they started their mission works in 1893. At that time, people in Jeonbuk were in the depths despair under the failure of Donghak revolution. In this dark period, people were lured to newlyemerged religions such as Jeungsangyo, Cheondogyo( Donghak), and Wonbuddhism. These religions were surprisingly originated in Jeonbuk area when the Buddhism and Confucianism were hopeless and became weak. So, the first feature of mission in Jeonju is that christianity started the mission work and approached to people as hope under this situation. Another feature of mission in Jeonju is that the triangle mission station which are based on the church, school and hospital was formed in Jeonjumission station. SPCA in 1893 purchased a house in Eunsongri, Jeonju for future purpose. This house became the place for worship later and gave birth to motherchurch( called as Seomoon church) in Honam. In 1902, Mattie B. Ingold and Mr. Harrison established Jeonju hospital on the mission site which is known to ‘Jesus’ hospital now. In 1899, missionary Harrison taught a few boys churcheducation on Sunday and he also started training 8 boys with his language teacher. From 1900, missionary Reynolds, the founder of ‘Shinheung’ school, started the regular curriculum at his house with his wife, Bolling. From April 24, 1900, Mattie Tate started training 12 girls churcheducation and regular curriculum twice a week at her house. This was the beginning of ‘Kijeon’ girls’ mission school. The third feature is that the activity of local layman missionaries were great. The early mission strategy of protestant in Korea adopted the ‘Nevius’ plan which are based on the ‘Three Self Principles’. This Nevius plan was very helpful to mission work by the layman at that time because there were absolutely short of leaders like pastor. Therefore, there are some mission tasks to solve for world mission in Jeonju region. First of all, churches in Jeonju region are to change their goals from expansion of each denomination to Missio Dei. In Missio Dei, the subject of mission is God, not the church. Also, the purpose of mission is the expansion of kingdom of God, not the church. And it is not the glory of church but the glory of God through His Son in Holy Spirit. Therefore the authentic mission is expanding the kingdom of God, not the church and setting the sovereignty of God firmly. Thus Missio Dei made the theological cofoundation between evangelical and ecumenical and opened up the interdenominational cooperation for world mission. Second, the mission needs to be shifted from the salvation of soul to holistic mission. The early christianity mission in Jeonju was the mission based on the social service with the church, school and hospital, but it was different from the Missio Dei which builds up the sovereignty of Christ. Early missionaries enlightened the people by education, evangelism, and bible distribution, and also they did medical work for aid and service. But it was a way for the salvation of soul, not today's holistic way. The holistic mission through social welfare is just to help the poor, to heal the wound, and to fill the poverty, and it is the anticipation about a new life, a new community and a freely world in the kingdom of God. The Missio Dei, which aims for the kingdom of God, should be the holistic mission. It should be changed from an individual salvation to a whole man salvation and social salvation. Third, It should be ecumenical mission with local people together. There was a surprising revival in the early Korean church but it was relatively slow in Jeonju which was assigned as the mission region to SPCA because it was the local culture of confucianism and rooted male domination and the antiecumenical theology of SPCA. Mattie Ingold who laid the foundation of Jesus hospital, is an example. Therefore, Mission plan has to be made in a most appropriate way to do the ecumenical cooperation among the ministers. Especially, the overseas Korean missionaries have reported that the biggest problem is the conflicts among themselves. It shows us how desperately urgent the ecumenical cooperation n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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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2012.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일본의 근대 ‘천황제’ 국가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절대군주제 국가였다. 이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고래의 신도사상(神道思想)과 충효의 윤리를 바탕으로 한 전제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천황’의 권위를 신성시하고 절대시함으로써 국민의 일상은 물론 정신세계까지 지배하여 국가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을 얻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종교적, 반민중적, 반이성적 성격이 들어있었다. 일본 메이지시대 전반기에 형성된 이러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의무화된 근대교육 기관과 군대, 교화기구를 통해서 자국민에게 체계적으로 주입되었으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침략전쟁을 통해서 해외 식민지를 강점․지배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정교화되어,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일본의 종교정책은 메이지유신기에 형성되었는데 그 기조는 국가신도 내지 신사신도(神社神道)를 정점으로 하여, 그 하위에 교파신도와 불교, 기독교를 국가의 공인종교로 삼고 국가 시책에 충실히 따르도록 통제․이용하면서, 그 외의 종교는 ‘유사종교단체’라 하여 불법화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통제․탄압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전래 초기부터 사회적인 비난과 배척을 받아 교세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으며, 국가와의 관계에 자신을 적응하여 자신의 유용성을 변증하고자 하였다. 일본 기독교는 초기부터 국가의 종교정책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고 협력하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일본 기독교는 천황숭배와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침략전쟁에 협력하였으며, 대륙침략을 재개한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적 기독교라고 하여 교리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변질시켰다. 1939년 4월 종교단체법이 공포된 이후에는 개신교 교파들이 통폐합하여 일본기독교단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침략 전쟁에 협력함으로써 국가의 교화단체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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