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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국 나사렛교회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고찰하면서 지속 가능한 선교 생태계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 과제를 분석적으로 제시하 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웨슬리안 성결 운동의 배경 속에서 국제 나사렛교회의 태동과 확산이 요약적으로 소개된다. 이어 국제 나사렛 교회 선교 정책과의 연계 속에서 한국 나사렛교회의 설립과 발전이 통시적으 로 조망된다. 더 나아가 한국 나사렛교회의 해외 선교 실상 속에서 개선이 긴요한 핵심 현안이 주제별로 평가된다. 특히 선교사 생애주기에 따라 모집, 양성, 파송, 지원의 사중적 맥락 속에서 순차적으로 검토된다. 끝으로 한국 나사렛교회 정체성과 방향성의 관점 속에서 선교학적 제언의 중요성이 확인된다. 본고의 연구 결과, 선교자원 다각화, 선교훈련원 설립, 미전도종 족 중심, 통전적 멤버 케어 구축이 한국 나사렛교회가 추진해야 할 실천 과제로 도출되며 이를 통해 교단의 선교 활성화 방안도 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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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교회가 세속의 신뢰를 잃고, 전도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 갱신운동의 역사가 주는 시사점이 있다.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 개신교 수도원주의(Protestant Monasti cism), 근본적 기독교 공동체(Radical Christian Community)과 같은 개신교 갱신운동의 역사는 전통과 교리에 의존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으로 삶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순종하며, 가시적이고 자발적인 신앙공동체를 추구하였다. 이를 위하여 수도원주의 운동 영성, 성례의 재해석, 평신도 설교와 같은 다양한 도전을 통하여, 성경적으로 충실한 신앙생활을 실천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고뇌하고 때로는 투쟁하였다. 세상과 분리되어 고립되어가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돌아보며, 다시 세상을 위하여 복음전파의 도구로서의 교회론이 회복되어야 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공동체성과, 구도자들에게 복음의 길을 안내하는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항상 갱신되어야 한다”는 현재 한국교회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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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9.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통일선교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생애사적 증언에 기초한 북한의 정치·사회·경제·문화는 물론, 복음 환경과 같은 상황적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졸저의 생애사 주인공 강철수(가명)는 북한이탈주민으로서 현재 남한에서 기독교 복음사역을 하고 있다. 이 연구는 강철수가 복음을 수용하고 북한선교 사역자가 되기까지의 생애사를 로젠탈 (Ronsenthal)생애사 연구방법으로 분석했다. 특히 강철수가 복음을 접하게 된 계기, 수차례의 탈북, 체포 및 수감생활 등 한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생사를 넘나들던 시기, 그리고 한국 입국과 그 이후 신학대학원에서의 공부와 북한선교사역의 시작 등 현재까지의 그의 생애사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중국에서 복음을 전해 준 두 분의 영적아버지와 한국에서 북한선교의 비전을 심어 준 영적어머니와의 만남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드러났다. 강철수의 신실한 믿음은 준비 된 인적자원 (human resources)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통일선교 시대를 맞이하여 사람을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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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종교개혁 이후 선교에 영향력을 미친 주요 인물들의 선교적 영성을 살펴보고 그 시사점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초기 경건주의자들, 니콜라스 친첸도르프와 모라비안들, 그리 고 존 웨슬리(John Wesley)와 알버트 심프슨(Albert B. Simpson)의 선교적 영성을 주로 살펴보았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후 초대교회는 선교부흥을 통하여 지리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다. 그 후 선교는 암흑기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17세기 경건주의가 도래하면서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던 영적부흥과 선교부 흥이 다시 점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선교적 영성은 친첸도르프와 모라비안 교도들, 그리고 웨슬리와 심프슨으로 강력한 영향을 주면서 선교적 영성의 흐름을 이어갔다. 경건주의자들과 모라비안교도들의 영성은 신앙고백과 삶의 일치 추구, 도전적인 선교사 파송을 강조하였 다. 웨슬리의 선교적 영성은 성경과 일치된 삶과 기도를 통한 사회변화 를 추구하는 선교를 통하여 영국에 영적부흥을 가져왔다. 심프슨의 영성은 자신이 경험한 사중복음을 선교와 연결시킨 선교적 영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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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6.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남북통일을 향한 선교역사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ecumenical) 입장과 복 음주의(evangelical)의 입장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는데, 거 기에는 차이가 있다. 복음주의 입장에서의 선교는 북한의 복음화에 집중하고, 반면에 에큐메니컬 입장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통일 자체를 선교라고 본다. 이런 두 진영의 차이에도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문제는 선교신학적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적인 문제이며, 한국교회 의 선교적인 책무이다. 본 논문은 통일에 대한 관점을 통전적인 시각으로 전개하였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남북통일 문제는 에큐메니컬 입장이나 복음주의 입장,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관점에 서 다루고자 한다. 본 연구는 통일을 향한 선교신학적인 관점으로서 북한선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루었고, 통일에 대한 선교역사 적인 관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접근과 제언 을 시도하면서 한국교회의 과제를 논의하였다. 현재 남한에서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계속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다. 남북통일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부여하신 주님의 명령이며, 사명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남북통일을 이루어 가는 길은 샬롬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남북통일은 북한의 복음화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 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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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4.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에큐메니칼 역사에서 선교적 교회를 위한 토론은 계속되어 왔다. 국제선교협의회가 1921년 창립된 이래 교회의 선교적 의무가 주요 토론의제였고,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되면서 이 두 기구의 통합을 위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은 1961년 뉴델리에서 IMC로 대변되는 ‘선교’와 WCC로 대표되는 ‘교회’가 기구적 일치를 이루는 역사를 먼저 다루고, 선교적 구조를 위한 토론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근거와 그 핵심 내용을 밝혀서 오늘날 선교적 교회 논의에 기여하고자 한다.WCC 중앙위원회는 두 기구의 일치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하여 ‘선교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소명’이라는 ‘롤(Rolle)선언문’을 채택하고, 일치를 위한 초안을 1957년에 제안하였다. 이를 WCC 중앙위원회는 1957년, IMC는 1958년 가나 총회에서 각각 수용함으로써 두 기구의 일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교회의 선교적 구조’에 대한 에큐메니칼 토론은 각 대륙별로 진행되었다. 먼저 ‘서유럽연구그룹’은 1965년 1차 연구를 마무리하여『구조원리로서의 선교』라는 보고서를 내었고, 이를 바탕으로『선교적 교회구조를 위한 투쟁 안에 있는 타자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andere im Ringen um Strukturen missionarischer Gemeinden)를, 북미에서는『세계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die Welt)를 출간하였다. 아시아 교회는 플레밍과 라이트가 각 지역에서 보내온 일부자료를 토대로 『선교적 교회를 위한 구조』를 1964년 공동집필하였다.선교적 교회를 위한 에큐메니칼 토론의 신학적 기여는『구조원리로서의 선교』이며, 교회론의 핵심인 ‘타자를 위한’ 명제는 본회퍼(D. Bonhoeffer)에서 비롯되었다.『타자를 위한 교회』는 샬롬(Schalom)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집약되며 이것은 후켄다이크(J. C. Hoekendijk)에 의해 발전되어 전통적인 ‘하나님-교회-세계’의 구조가 ‘하나님-세계-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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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outline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in Thailand and its characteristics, tasks and mission theological issues so that the thesis searches for the wa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to contributing to the unity and empowerment of the Church of Thailand. To achieve this aim, the thesis deals with the social characteristics and value systems of Thai society and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Roman Catholics and of Protestants. Through suggesting the contour of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Korean Church in Thailand, some characteristics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are church plant, church-centered passion, project-centered and materialistic mission, and independent seminaries. Tasks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in Thailand are acceptance of Thai Christians' critiques on Korean missionaries, Korean missionaries' understanding of Thai culture in depth, meagerness and lack of mission strategies, halt in mission, missionary kids' education, partnership in mission, acceptance of difference of Thai church culture, understanding of the missionary tasks from the socio-cultural and religious situation of Thai church, and theological issues. The main results of the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of all, there are two kinds of church in Thailand: one belongs to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the other to 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Some Korean missionaries, however, established independent denominations and ran seminaries so that those denominations and seminaries obstructed the unity of Church in Thailand. These activities of Korean Church cannot be regarded as mission. Secondly, Korean missionaries to Thailand should not transplant the culture of the Korean Church to Thailand. Rather with Thai Church leaders, their missionary tasks are looking for the ways of how to communicate and share the Gospel with Buddhist Thais and identifying the appropriate ecclesiology in Buddhist society. Thirdly, the future of the mission of Korean Church to Thailand depends on whether Korean missionaries could expand the model of the partnership in mission done by the missionaries belonged to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 the relation between the Church of Thailand and Korean missionaries. Lastly, such an expansion of the model of the partnership in mission will be possible only when the ecumenical churches and the evangelical churches can reach a common conclusion through coming to an agreement on the theological issues such as human-centered theology, religious pluralism and mission methods and mission theology in the Buddhist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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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석기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인물로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노동이민을 가서 성실한 면을 인정받아 공부를 한 후 북감리교회 목사, Christian Church(그리스도의 교회, 유악기) 목사, Church of Christ(그리스도의 교회, 무악기) 전도자(환원운동가), 독립운동가(민족주의자)로 활동하였던 지도자였다.본 연구는 한국교회에 아직도 생소하게 느끼고 있거나 혹 이단은 아닌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정도인 그리스도의 교회운동 즉 환원운동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연구이다. 환원운동은 성서로 돌아가자(성서권위회복운동),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원형의 교회 회복운동), 그리스도의 교회로 일치를 이루자(교회일치운동)는 운동을 말한다. 그러나 본 연구가 한 교파를 소개한다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오늘처럼 혼탁한 교파주의와 비성서적 교회들에게는 광야의 외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동석기의 헌신으로 미국 워싱톤교회 장로회의 결정에 의해 한국에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체계적인 선교를 하였다. 또한 미국 오토크릭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대학교 부지구입비, 건물 건축비, 학교운영비를 부담하도록 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동석기의 환원운동에 매료된 강명석, 강순명, 장성만 같은 인물들이 합류하여 환원운동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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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2.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Recently, most Christians in Korean have felt shame at watching the status quo of Korean protestantism. Almost everyday, we Christians faced unpleasant news about churches and clergies. At the same time, Christians feel the crisis of church growth and mission. At this moment, it would be significant and meaningful to search for the church reforms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 and to be taught from the past. For this reason, the writer investigated several historical events which caused the church reform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As a result of this research, several types of church reform in the church history could be described as follows. The first case of church reform was accomplished for the purpose of the ecclesiastical and the social change by means of the political struggle. Second, for the purpose of the ecclesiastical and the social change by the revolutionary method. Third, for the purpose of structural subversion by the political struggle. Finally, for the purpose of structural subversion by the revolution. Among these four, because the second type of reform is illogical, the writer would consider the others. The rest of three cases of reform, however, whether it would be successful or not, had the limitation that could not have accomplished the fundamental reform of problems in their own era. For this, the writer has looked for the another way which was named as the fifth way of reformation and the writer considered it as true church reform. Also, it was regarded a genuine church reform as the most effective way of mission. As the fifth way of reform in the church history, the writer analyzed three historical events: the way of St. Francis and his mendicant movement in the twelfth century; the way of religious movement of Beguine in the thirteenth century; and the way of methodist movement of John Wesley in the eighteenth century. The characteristics of these movement would be as follows. First of all, these movements did not happen to struggle or criticize the existing church power and social structure directly. Secondly, even though there were leading persons in these movements, these movements were empowered by the anonymous laities. Thirdly, the participants of these movements proliferated and flourished very rapid within very limited times. Finally, They were so creative that they created new idea, theology, philosophy, and life styles. In conclusion, the writer proposed the fifth way as the ideal both for church reform and growth simultaneously. Through the fifth way, the people who are sick and tired to churches and protestantism in Korea might come into the world of hope, new spirituality, and creative life that they have never felt in the existing ecclesiastical structure. Then, new Christian communities will proliferate such as the above creative religious mov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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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현필은 호남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요 성자로 알려진 이세종, 최흥종, 강순명의 영향을 입고 ‘예수를 잘 믿기 위한 순수 신앙 운동’을 위해 수도원 공동체를 한국에 최초로 설립한 그리스도교 수도원운동의 선구자이다. 그가 설립한 동광원은 ‘예수를 닮아 예수처럼 살아보자’는 순수 신앙운동을 하는 공동체로서 어느 교파에도 소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신을 우상화 하면서 고기와 약을 먹지 않는 자신의 행위를 동광원의 계율로 만들어 율법이 되어버린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예수보다 자신이 높아진 역적이라고 선언하면서 스스로 생선국물을 마시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음으로 예수의 보혈만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준 지도자였다. 이렇게 살았던 이현필을 당시 한국교회는 이단이라고 정죄하였는데, 그 근거는 그의 강론을 들은 교인들이 교회를 이탈하므로 교세가 약해지자 목회자들이 퍼트린 유언비어에 기인한다. 즉 성서적인 문제가 아닌 기득권 세력의 횡포, 당시 교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신비주의 영성과 철저한 금욕주의적인 삶, 호남 신비주의 선구자인 이세종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비주류 세력으로 보는 오해 때문이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현필의 순수 신앙운동은 한국교회사 특히 호남교회사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중요한 운동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개혁과 갱신의 방향을 이현필의 교회관, 순수 신앙운동의 정신, 더 나아가 그의 신비주의 영성에서 찾아야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성을 회복 할 수 있다고 제언하고 싶다. 특히 이현필의 순수 신앙운동의 정신인 ‘예수를 닮아 예수처럼 살자’는 주장은 한국교회에 ‘제자도’를 소개한 옥한흠의 제자훈련 모토와 맥을 같이한다고 보면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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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tained glass, which flowered with Gothic architecture, the climactic era ofMiddle Ages art, conveyed to the faithful theological messages encoded in light, aswell as protecting sacred places from thee elements, made visible the true sun, thatis, the light understood as seen consubstantial with God. The splendid light andbrilliance radiating from the gem-like glass fragments to all intends and purposesmade visible the new Jerusalem on earth. This stained glass with bound formed anexus for the aesthetics and theology of the Middle Ages was to change throughtime and varied ways.Stained glass, overshadowed by painting from the Renaissance till the 18thcentury, came into prominence in the 19th century with the appearance of theEnglish pre-Raphaelite school, the beginnings of art nouveau style, and therestoration of stained glass in French Gothic churches in which Viollet le Ducplayed a central role. Artists such as John Ruskin in the U.K., John la Farge andLouis Comport Tiffany in the U.S.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he19th century stained glass, resurrecting stained glass from the lowly status ofcommercial art, and reuniting stained glass decoration with architecture through artnouveau. Due to their efforts, the distinct character of stained glass was restored butits intrinsic religious value in the context of historic church architecture wascompromised.In the 19th century the relation between the church and the artist was not as close as during the Middle Ages or the Renaissance period. Secular artists working withreligious themes had few opportunity to furnish works for churches. Churches, intheir turn, were filled with archaic works following the dictates and styles of the pastand supported academism in religious art. But at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new wind of reform began to blow through the decadence of church art. As a resultmainly of the reformers in Germany and France, the artists of Europe and the U.S.created stained glass works that reflected the new modern aesthetic and once againrestored the place of stained glass in modern churches through its incorporation into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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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8.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ince the introduction of Christianity in Korea, there has been a remarkable growth in the number of church members, despite its short history in the country. Subsequently, numerous churches have been and still are being founded in Korea, most of them being relatively new. Nevertheless, theological research conducted on the issue of ‘Church Planting’ has been not very fruitful. However, Peter Wagner began teaching about ‘Church Planting’ at the Fuller Theological Seminary in the USA from the end of the 1970s, which influenced Korean scholars in Korea. Due to his influence, many Korean scholars also started to study the topic of ‘Church Planting’ in Korea since the 1990s. Fortunately, since then, many Korean scholars have studied ‘Church Planting‘ in varieties of diverse ways in order to make the Korean Church stronger. When I look at context of the Korean Church nowadays, I get the impression that the foundation of new churches will carry on continuously. Moreover, ‘Church Planting’ has to occur throughout time, for the completion of the mission which was given to us by Jesus Christ. Therefore, it is my hope that theological research on ‘Church Planting‘ would continue to grow and become more successful in the future. In my study, I will research the relationship of the development of churches throughout time, from when they were first set up. My research will give good directions in order to create a strong church heading, thus be useful to show how to set up a strong, new church in Korea. First of all, in my study, I studied the meaning and necessity of ‘Church Planting’ in the Korean Church in Chapter II, followed by the introduction in Chapter I. I divided the form of ‘Church Planting’ in the Korean Church from the subject of church planting in Chapter III. In chapter IV, I subdivided the four forms of ‘Church Planting’ through each of the times, and I looked at the diverse characteristics of ‘Church Planting’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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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08.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e article is to outline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from 1983 to 2005 and to identify its new missionary tasks in a changed world. At the end of the cold war, the minjung movement in general, the minjung mission in particular, seemed to be unnecessary any more. After the economic crisis of 1997, however, the minjung mission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taking care of victims of the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s of many corporations, and for establishing alternative communities. Its history divides into four periods: the formation period (1983-1987), the development period (1988-1992), the transformation period (1993-1997), and the professional period (1998-2005). Each period deals with its socio-economic, political, cultural background and minjung mission’s main contents,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is interpreted by the results of the social biographies of 26 minjung pastors. According to their social biographies, minjung pastors changed themselves in the process of the minjung mission rather than changed the minjung. They rediscovered the importance of the Bible and religion in relation to the social change. Also they found negative aspects of the minjung. They regarded spirituality and life as pillars for the forthcoming minjung mission. Some reflections on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was carried out through analy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ideology, the dilemma of identity-involvement, positive understanding of religion, understanding of minjung, and theories of community organization and conscientization. In a changed world, spirituality, the minjung and life are identified as new tasks for the minjung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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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0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Church growth movement began with Donald A. McGavran’ s book The Bridges of God. The book shows that people movements are effective means wbereby people can become a Christian in tbe form of mass conversion. In the same vein, McGavran claimed that “ Men like to become Christians without crossing social, linguistic, or class barriers." He founded the Institute of Church Growth through which be propelled cburch growth movement although he struggled in its early stage. He published the Church Growth Bulletin periodically which was read among missionaries and pastors all over the world. He became the Dean of School of World Mission a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There he taught mission courses with Alan Tippett, Ralph Winter, Artbur Glasser, and Charles Kraft. He published a classic textbook Understanding Church Growth in which he explained whatever he wanted to express concerning church growth in the world. He authored with Arthur Glasser Contemporary Theologies of Mission to defend evangelical theologies of mission against ecumenical theologies of mission. He is called “ the father of the church growth movement." C. Peter Wagner was impressed by McGavran’s teaching about church growth and his book The Bridges of God. He was invited by McGavran to teach church growth courses a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He experienced divine healing when he attended a revival meeting in his mission field of Latin Arnerica. He published lots of books concerning church growth, spiritual gifts, and spiritual battles. He became the best disciple of Donald McGavran and revised Understanding Church Growth although he missed a crucial chapter regarding discipling urban populations. He maintained the evangelical theologies of mission and stressed making disciples of all nations based On the Great Commission. He authored 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Among his books, Church Growth and the Whole Gospel and Strategies for Church Growth are more theological than others. These two books deal with theological foundations for church growth. He stressed intercessory prayer through which Kingdom of God is extended. He taught the course “ The Ministry of Healing and World Evangelization" (MC 510) with John Wimber who lef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to lead Vineyard movement. In addition to these two men, George Hunter, Eddie Gibs, Win Arn, Kent Hunt, Elmer Towns, Charles Chaney, Lyle Schaller, Delos Miles, Ralph Winter, William Easum, and Thom Rainer have studied church growth and taught it. Church growth was criticized by many but it became a science in theological circles. The church growth movement today tends to be evangelical while accepting a holistic position. As McGavran pointed out, the 19th century was the great century in terms of mission, but the 20th century became the century of church growth. The key of church growth movement is discipling all nations of the world. In doing so, all Christians are called to reach many groups of people who are yet to be Christians aIl over the world. The church growth movement is essential to reach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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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목회는 목회자, 회중, 목회사역의 삼대 요소로 이뤄진 삼각구도를 통해 수행된다. 목회에 있어서 이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목회론(혹은 목회신학)은 전반적으로 볼 때, 주로 목회자 혹은 목회사역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목회론에서 회중은 상 대적으로 관심을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고, 따라서 목회자론과 목회사역론 에 비해서 회중을 논하는 ‘회중론’(필자의 조어)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한편 오늘날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은 급변하고 있고, 이런 변화 가운 데 회중에 대한 강조를 빼놓을 수 없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런 학문적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한편으로 교회사에서 회중론의 유산을 간추려보고자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본 논문은 최근 신학 특히 교회론과 선교론에서 회중을 강조하는 담론들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목회론 특히 회중론에 대해 지니는 함의를 간추려보고자 한다. 교회사 가운데 평신도의 중요성은 간헐적으로 강조되 어왔고 대표적인 것은 종교개혁이지만, 본격적으로 신학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신학은 평신도 신학, 하나님의 백성 신학, 회중 신학 등이다.
        16.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해방 이전과 이후로 시기를 나누어 군산지역의 화교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해방 이전에는, 1928년에 조선과 중국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3달에 걸쳐 이루어진 중국인 전도대 전국 순회집회 의 결과, 1929년에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주와 군산에 화교 기독교 공동체가 조직되었다. 특히 전주의 남장로회 윈 선교사가 화교에 지속적으 로 관심을 쏟으면서 신앙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는데, 다만 중일전쟁, 태 평양전쟁,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단절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북장로회에서 중국인사역 전담 선교사를 다시금 초빙 하였는데, 그때 내한한 매클레인 선교사와 군산화교 2세인 조계지 권사의 노력으로 1959년부터 다시금 군산에 화교 기독교 공동체가 조직되었고, 1963년에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군산중화교회는 중국인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구 화교 중심의 지역교회에서 점차 신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이민자 교회’의 모습으로 역 변이되어 나갔다. 또한 중국어 교실을 운영한다든지 중국선교단체를 돕 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한국인 및 현지 한국교회와도 협력관계를 맺어왔 다. 하지만 중국인 수의 감소 및 목회자의 부재 등의 연유로, 현재는 단 두 명의 교인이 교회를 지키고 있으며, 교회는 이제 새 시대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17.
        2020.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기독공보」는 1946년 1월 17일에 발간되어 74년 동안 출판된 한국 에서 가장 오래된 주간지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기관지이다. 최근 에 「공보」는 4만 페이지 이상의 자료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어서 누구 든지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 논문은 디지털아카이브를 사용해서 얻 은 1차 자료를 통해 「공보」의 초기 역사(1946-1979)를 구성한 것이다. 특 히 「공보」가 혼란기를 거쳐 에큐메니칼적 정체성을 확립하고(1960년대), 재정자립을 구축하고(1970년대), 대정부와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는 신문으로 발전하는 역사를 추적했다. 이 역사작업은 한국 기독교 언론의 가치와 의미를 보여준다.
        18.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수록된 아시아교회사와 관련된 논문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창간호부터 53권까지 총 425편의 연구논문 중 7.3%인 31편이 아시아교회사와 관련되는데, 여기에는 한국교회사와 관련 된 6편의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아시아교회사를 시리아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로 분류할 때, 상대적으로 아시아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논문이 매우 적었다(2편). 또한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고대시리아교회와 관련된 논문 2편과 필리핀과 버마와 캄보디아에 대한 논문이 3편만 수록되어 아시아 각 지역의 교회사 연구는 매우 미진하다. 그럼에도 2011년까지의 국내에서의 아시아 교회사 연구를 정리한 논문이 수록된 것은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결론에서 본고는 아시아교회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시아기독교사학회의 협력, 한중일 삼국의 개신교 수용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문명교류의 입장에서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아시아 교회사 연구, 한국 교회의 아시아 선교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사료 수집을 제안하였다.
        19.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창간호부터 2019년까지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수록된 한국기 독교의 역사 연구 논문들에 대한 분석적 연구이다. 「한국교회사학회지」는 해방 후 최초로 발간된 한국의 교회사 학술 연구 논문집이다. 이 기간 동안 135편의 한국교회사 연구 논문이 수록되었다. 이 글은 그 연구 논문들을 분류하여 인물 연구, 사회사, 사상사, 교단사, 문화사 등의 범주로 분류 하였다. 초창기 연구들은 한국교회사의 기초를 위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 연구 논문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2000년 이후의 논문들은 체제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연구 분야도 다양해졌다. 2010년대의 연구 논문들은 논문 심사의 강화로 논문들의 체제와 논문의 주제들이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연구 분야는 인물 연구와 사회사 논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신학사상, 문화사 연구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후의 연구에서는 통계자료의 도입과 타 분야와 복합적 연구가 필요하다.
        20.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근, 현대교회사에 해당하는 시기에 새로운 신학사 상체계가 수립되고 새로운 교회체제인 교파(교단)제도가 출현하게 되었다.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회, 침례교, 급진종교개혁세력등으로 대표되는 개신교는 저마다 교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고백과 신학체계를 확립했고 교단의 운영체제인 감독정체, 장로정체, 회중정체등도 각 교파가 처한 여건과 상황속에서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교회사학회 창간이후, 지난 50년 동안 학회지에 실렸던 72편의 논문들은 각 교단 관련 신학과 교회정체, 그리고 일반적인 주제들(교회일치운동 포함)을 다루었다. 하지만 특정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으며 이에 주제의 다양성 확보와 보다 다양한 교단참여와 적절한 성비 비율을 위한 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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