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일재 정홍채(逸齋鄭泓采, 1901~1982)를 중심으로 20세기 한국 성리학의 현실적 함축을 검토하고, 21세기 유학이 무엇을 넘어서 야 하는지를 전망해 보려는 것이다. 한때 조선에서 성리학이 가졌던 절대성은 삶 전반을 통제하는 규범적인 것이었지만, 서세동점의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각한 사상적 도전에 직면했다. 정홍채는 20세기 일본의 식민 지배 에 이어 분단과 전쟁을 경험했고,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으로 자본주의 선진 국의 반열에 오르는 대한민국을 목격하면서 유학자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20 세기, 유학의 주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도 정홍채가 견지했던 성리학은 ‘자족적(自足的)’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정홍채가 사용하는 「리(理)는 본질/기(氣)는 리를 훼손시키는 것」, 「성(性)은 도덕적 본질」, 「성[리]은 최선의 표준」, 「본질 순응은 최선의 이익」 등의 리 중심 은유들은 성리학이 ‘그 자체로 완결된 체계’임을 함축한다. 20세기 한국 성리학의 절대주의적 도덕 원리 의 강조는 불굴의 선비정신을 유지하는 원천이었지만, 다수의 프레임(frame)과 다수의 도덕적 귀결이 존재하는 21세기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론적 유폐’는 피할 수 없는 귀결로 보인다. 형이상학적 정당화를 포기하는 것이 마치 유학 을 폐기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극단적 착시일 뿐이다. 우리는 유학의 시 조인 공자의 언설을 통해 인의예지의 덕목들이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덕목이 아니라, 좀 더 큰 프레임이나 도식 속에서 그 의미를 얻는 것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도덕 이론은 21세기 탈형이상학적 흐름 안에서 경험적 정당화에 기반한 유학적 가치들의 현대화에, 나아가 ‘닫힌 철학’에서 ‘열린 철 학’으로의 전환에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 글은 근현대의 유・불 효의례 가운데 제사·재의 간소화와 대중화 방안을 살펴보고 효의례 문화를 개선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유교의 제사는 문중의 예법과 가문의 법도를 중요시하며, 불교의 재는 정형화한 법공과 재공으로 이루어져 간단하게 축소・통합하기 어렵다. 게다가 제사의 비용도 그 정성과 무관하지 않아서 제사·재의 합리적 절차나 간소화에 방안은 선뜻 제안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사·재는 본래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개선을 위해 온라인 등의 근접매체를 활용하여 바르게 알리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유・불 효의례의 대중화에 관한 두드러진 문제는 대중이 함께 공감하며 동참하는 제사·재 문화의 부재이다. 유교의 제사는 한자사용의 보수적 성향으로 제사의 의미를 전달해 주 지 못한다. 불교의 재도 집전자가 어려운 한문의 일방적인 법식을 베풀며, 그 시간도 오래 소요되어 개선책을 요구한다. 그 가운데 유・불 제 사·재에 관한 불평등과 불균형은 더 심각한데, 유교는 제사준비의 여성 부담감으로 부부간의 갈등과 이혼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획기적인 변화가 어렵다면 여성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갈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불교의 재도 대부분은 ‘청하는 의식’으로서 대중이 이해할 때까지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며 동참하도록 그 구조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본 논문은 먼저 공자의 언행록인 『論語』에 보이는 배움에 관한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크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한다는 내용과 문헌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두 부류의 기록으로 나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른 사람의 장단점을 통해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 다는 생각과 不恥下問의 자세를 언급한다.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들 특히 문왕이나 무왕 그리고 주공과 같은 성인들을 통해 통치의 도를 배우고, 뿐만 아니라 다른 많 은 현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의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에게 돌이켜보고 고쳐나가며 배울 것을 희망했을 것이다. 유가 전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내용은 공자가 『詩』를 통해 말하는 능력 즉 정신적 사유능력을 기를 수 있고, 『禮』를 통해 남과 더불어 원만하게 교류할 수 있는 행동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은 유가전적들의 효용에 대한 언급에 힘입어 전국시기 이후 점차 ‘六經’이라는 유가경전의 틀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그 과정을 논술하였다. 끝으로 유가가 주장하는 이상적 군자의 형상이 어떤 모습인가를 잘 드러내기 위해 군자와 소 인을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군자는 궁극적으로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그 방법에 대한 언급은 맹자에 보이는데, 즉 마음을 다해야 性을 알 수 있다는 언급으로부터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心을 통해 性을 부여해준 천명을 알게 되고, 천명을 앎으로써 인간의 도와 세상에 필요한 가르침 즉 배움을 알 수 있고, 인간은 배움을 통해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유가 사상은 한 인간에게 있어 배움의 궁극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면, 배움을 통해 달성하려는 사회적 이상은 『大學』에서 그려지고 있는 內聖外王의 실현에 있음을 논술하 였다.
이 글은 G2(Group of Two)가 된 중국, 탈유교사회인 현대 중국에서 지식인들은 왜 유학담론을 이야기하며, 유학은 왜 부흥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21세기의 탈유교화된 중국 현대사회에서, 중국지식인들은 왜 100년 전에 그들이 폐기처분했던 공자와 유교문화를 신자본주의시 대인 21세기에 자신들의 새로운 ‘문명가치’로 내세우는가? 현대중국에서 유학은 왜 쇠락했는지, 21세기 오늘날의 중국에서 유학은 왜 다시 부흥하고 있는지, 이러한 ‘유학부흥 현상’을 가능하게 한 중국사회의 매커니즘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현대사에서 유학의 쇠락과정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첫째, 신문화운동 시기에 전통은 무엇 때문에 거부되었는지, 둘째, 문화 대혁명 시기에 공자는 왜 비판을 받았는지를 검토한다. 이 글은 특히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의 방법론으로 G2가 된 중국에서의 유학부흥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국가정책과 지식인의 유학담론, 경제발전과 공자학원의 설립, 대학과 당교(黨校)에서의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제도권의 커리큘럼에 도입된 것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탐색을 통하여 탈유교화된 중국 현 대 사회의 정치문화 상황과 21세기의 중국에서 유교문화의 부흥은 중국이 꿈꾸는 국가의 미래 상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았다.
중국 기업들은 개혁 개방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국경제의 고속 성장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 경제 경쟁 속에서 중국 기업들이 생존하고 도약하려면 기업가들의 성장 과 기업정신이 절박한 실정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기업의 조직, 설립, 경영과 관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업가의 가치 취향, 도덕 이념, 사고방식, 문화적 소양 등을 말한다. 또한 기업가의 문화적 자질이며, 기업가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은 중요한 기업의 무형 생산요소와 문화 자본이라는 점이다. 기업가 정신은 경제, 정치, 문 화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구축하고 발전할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유교사상은 중국 전통문화 중 가장 중요한 축으로 국민의 관념, 사고방식, 행 위, 심리 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유교사상은 중국 국민들의 품격을 형성하는 동시에 중국 기업과 기업가의 중요한 사상을 만드는 문화자산 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 특색의 기업가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중국 전통문화를 수용해야 하며, 유교사상이 기업가 정신 형성에 충분한 역할을 발휘한다면 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유교사상의 문화배경과 이론 연원을 기반으로 유교사상의 정수와 기업가 정신 구축 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유교사상과 기업가 정신의 융합과 충돌에서 중국 특색기업가 정신 구축에 대한 효과적인 경로를 찾아내어 제시하였다.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texts, the scholarly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is divided into two: one is Jingshu Shiyi (經書釋義 : Commentaries on the Confucian Scriptures of The Four Books and Five Classics) investigating the books of pre-Qin Confucianism and the annotations of Han-Tang period; the other is Yulu Shiyi (語錄釋疑 : Commentaries on the Analects) studying the analects of Song-Ming Neo-Confucianism. Having been recorded in colloquial languages, the analects are particularly significant due to their deep relationships to certain linguistic questions. For this reason, this paper introduces how their inflow and dispersion were made in Joseon and explores their specific aspects since Yulu Shiyi developed and produced a number of great achievements in Joseon’s scholarly history. It was during the Goryeo Dynasty that Neo-Confucianism was introduced to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first time, and it was not until the late 13th century that the full-scale acceptance of the doctrines began. The inflow process of the analects went through two stages. The first one was the late Goryeo during which Neo-Confucianism resting upon the literature of Zhuxi was introduced. The second one was the early Joseon during which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 such as Sishu Wujing Daquan《四書五經大全》 , Xingli Daquan《性理大全》 , Zhuzi Daquan《朱子大全》 , Zhuzi Yulei《朱子語類》 , Xinjing Fuzhu《心經附註》 , etc flew in. The predominant way in which the analects came to be dispersed was the compilation of annotations and dictionaries. As for the former, The Annotation of Zhuzi Yulei《朱子語類考文解義》 and more than a hundred annotation books on Xinjing Fuzhu《心經附註》 appeared; so did The Comprehensive Dictionary of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語錄解》 , as for the latter. At the end of the paper, three supplements are presented: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 from Jangseogak Archives in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bibliographical directory of the analects and annotations from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list of relevant researches in Korea and China.
The famous Neo-Confucianist Zhu Xi considered that “Heart” was the cognitive subject and the practice subject, it was the cognitive object that every knowledge including human and all things on earth relations, but the most of all was the principle of morals such as filial piety, righteousness, loyalty and credit. Their relationship was that the cognitive object(every knowledge) was discovered and isolated by the cognitive subject(the wise heart). It can make “heart” and “all things on earth” concordant by exploring rule from thing(即物穷理), and can realize the subject's cognition to object.
Hong Dae-Yong, as one of the representative abandoning Neo-Confucianism scholar, considered that “the practical heart” was the most important cognitive subject, it meant to take the practical matter and article as the object of cognition. Their relationship was that “the practical heart” as the object of cognition reached factual matters and factual articles and realized the subject's cognition to object. That is to say: we should put “the practical heart” into practice and reach cognition about factual matters and factual articles, so that we can innovative applications on reality(经世致用) and use everything to secure a better livelihood for people(利用厚生).
As we can see the differences between Neo-Confucianism and Abandoning Neo-Confucianism from above three aspects content.
본 연구의 목적은 우리나라 신종교로서의 대순진리회 신앙 실천수행법과 성리학의 정좌 수행법의 비교를 통한 새로운 수행법 개발에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대순진리 수행법 체계를 일별하고, 유가적 수행법 등을 비교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수행법의 효과적인 진로를 대순진리 미러뉴런 수행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개발 측면에서 제안한다. 본 연구의 필요성 측면은 첫째, 사회적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 혼란기 인류 진로와 종교적 안식처 제공, 둘째, 개인적 修道측면에서 인간개인의 수양과 安心방안으로서의 대순진리회 수행 프로그램의 개발과 효과성 및 셋째, AI 시대 종교 가치로서의 대순진리회 확 대와 적용, 실천방안을 대순수행법(Deasoon Self-cultivating)을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본 연구의 기대효과로는 인류통합 종교로서의 대순사상을 통하여 인류 공동체 사상, 자유와 평등의 조화, 보편적 평화주의 구축, 신인합일과 3교(유불선)의 사상적 기원과의 통합, 조화에 따른 신앙효과와 종교 윤리적 기반정립과 확산 등을 들 수 있다. 주요 결과는 人尊思想(神人調和(化))의 대순진리회 수행법과 효과는 신앙적 수행으로서의 자력방법 중 수도 측면에 한정하여 대순수행법 스토리텔링의 효과와 대안으로 구분하여 제안하였다.
본 논문은 원(元)으로부터 전래된 성리학(性理學)과 명리학(命理學)의 새로운 사상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여 문화의 다양한 변화와 사회전반에 영향을 끼친 현상에 대한 연구로써 고려 말∙조선 초의 사회현상에 초점을 두어 수용 되는 과정상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 동안의 연구는 성리학의 전래과정과 수용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고려 말의 정치상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폐단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 무격신앙(巫覡信仰)의 성행으로 민심의 이반(離反), 문벌귀족(門閥貴 族)들의 횡포와 백성들의 유랑(流浪) 등 사회질서체계의 파탄이 일어났으며 이를 바로 잡고자 노력한 신흥사대부의 반성, 사회 질서 회복, 왕조교체로 이어지는 성리학적 정치철학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 이면에는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철학으로서의 성리학이 수용되고 전개되었다면 그 반면에는 분명 삶의 철학으로써 수용되고 전개되었던 인간론적 가치철학이 존재하였다. 본고에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성리학과 인간론적 가치측면에서의 명리학이 수용되고, 그 이후 전개되는 과정을 문헌적 조사와 비교를 통하여 살펴 보았다.
본고는 ‘寒山’이라고 알려진 인물의 詩作集인 『寒山詩』를 고찰한 글이다. 천태산에서 國淸 寺 승려인 豐干, 拾得 등과 교유하면서 창작활동을 한 그의 시집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렬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나 사상적 이념에는 젊은 시절 받았던 儒家적 훈도의 영향과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따른 道家적 기풍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고는 『寒山詩』의 전체적 면모를 파악하기 위하여 불가 이외에 유가와 도가의 사상이 한산의 시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 글이다. 유가적 경향을 살펴보면, 시에서 『論語』의 글귀 인용 및 그 내용의 주제화, 유교 정치사상의 핵심인 『書經』의 민본사상, 유교 윤리의 핵심가치인 『孝經』의 ‘孝’, 『禮記』 등을 언급하며 긍정적 성향을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을 유교경전을 탐독하면서도 ‘백정’신세를 면치 못하는 선비, 추위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비, 유가의 경전은 박통하면서도 농기구 사용도 하지 못하여 자신 및 집안경제를 빈궁에 빠뜨리는 유가의 인물들을 내세워 허울뿐인 유가적 경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도가적 경향을 살펴보면, 『莊子』 逍遙遊를 통한 도가적 가치관, 자연에서 ‘仙書’ 혹은 黃帝 와 老子의 글을 중얼거리는 화자의 모습, 『莊子』 應帝王의 혼돈의 일화, 天地를 棺으로 삼고 죽어서는 곤충의 먹이가 되겠다는 莊子의 이야기, 손에 늘 老子의 『道德經』을 들고 다닌다는 화자의 모습 등을 통해 긍정적 성향을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려는 환상에 빠져 심신을 망쳐버리는 인간들의 모습, 도가의 신선술을 신봉하던 漢武帝와 秦始皇 의 무덤에 무성한 잡초 등의 이야기를 통해 도가적 환상에 대한 비판적 성향을 나타내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서 불자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된 한산의 시에서 과거에 걸어왔던 유가의 경향과 시대적 조류인 도가의 양상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양수명의 초기 저작인 동서 문화 및 그 철학에서 드러나는 문화생성이론 및 그 한계를 고찰했다. 양수명은 먼저 ‘의욕’과 ‘생활’이라는 두 개념으로 문화의 생성과정을 설명하고, ‘문화 삼노선’ 을 통해 서방․중국․인도문화의 특징을 분석했으며, ‘문화 조숙’이론을 통해 중국문화의 가치를 논증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개과정은 내재적 모순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제기한 ‘문화 삼노선’은 ‘문화 상대주의’, ‘문화다원론’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조숙’이론은 ‘문화절대주의’, ‘문화일원론’ 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양수명의 문화관에 논리적 모순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가 동서 문화의 문제를 탐구한 목적이 유가문화의 시대적 가치를 논증하고 나아가 유가문화가 위주가 되는 현대화의 길 을 찾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유가문화에 대한 강한 신념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공정하게 문화의 문제를 탐구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The Republic of China was a key period of the development of Confucianism. The Imperial Examination was abolished and the discipline of classics disintegrated, so that intellectuals produced different understandings on traditional Confucianism. There were four understanding dimensions: Confucianism is a kind of religion; Confucianism is a kind of classic; Confucianism is a kind of system; Confucianism is a kind of lifestyle. The dimension of religion, on one hand, promoted Confucianism to the height of religion; on the other hand, maintained the social foundation of Confucianism. The dimension of classic reflected an academic style in the inheritance of Confucianism. The dimension of system was a misunderstanding for Confucianism under the context of the culture conflict between China and the west. The dimension of lifestyle aimed at building a traditional Confucian lifestyle. In the period of the Republic of China, these different understanding dimensions of Confucianism provided different approaches for the modern transition of Confucianism. Nowadays, these approaches still constitute the mainstream of Confucian development.
Confucianism originated from China, spread to East Asia soon in history. "Confucianism East" have taken advantage of creating a flourishing Korean Confucianism, so far, from the Korean Three-Kingdoms Times, the Unified Silla, the Korea Times, Joseon Dynasty, to today, South Korea contemporary Confucianism still to better development and spread, in the aspects of ideology, social structure, folk life wide under its influence. The contemporary South Korean Confucianism spread and inheritance trend, as the Comparison between Chinese and Korean Cultures, not only inherits the official and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s established in the earlier history of the path of "central-local", but also to Sung Kyun Kwan University as a representative of the Confucian education take on an altogether new aspect of modern university. The efforts of Korean society in the study of Confucian literature and Confucianism, showing the social and academic power,and it is indeed the valuable and sustainable cause of Confucian's good inheritance and development in contemporary Korea. And "An-dong cultural phenomenon" is the best “ChongRu-ShangXian“ interpretation of Confucianism in contemporary South Korean society spread. In the course of study、inheritance and development, Confucianism carried out fruitful local practice in Contemporary Korea, forming the good development trend of Korean Confucianism and the Korean characteristics of Confucian studies. With the internationalization of Confucianism, inheritance and development of Confucianism in Korea to local benign succession, characterized both contemporary Confucianism spread and inheritance, and embodies the modern value of Confucianism, not only closely linked with the Korean cultural environment and soil, of course , but also cannot leave Chinese classical culture broad and profound and tremendous influence.
유가철학은, 특히 신유학의 심학적 전통에서 ‘천리’와 ‘인욕’, 이성과 감정의 관계에 대하여 일정부분 대립적으로 보려는 시각을 지속해 왔다. 이는 도덕적 인간의 길에 관한 모색으로 거기서 천리로서 본성이나 그 저편으로 인식되는 욕망은 우리가 몸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발단이 된다.
마음도 몸의 한 부분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와 달리 마음은 도덕적이며 이지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전자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맹자이며 후자는 순자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넘어 성품에 ‘천리’를 상정한 성리학은, 그것에 대비되는 욕망을 제거하여 인간의 행동을 도덕에 위배되지 않게 할 것을 권장한다. 그러는 과정에 마음 범주의 다양한 용어를 써서 이론 체계를 세운다.
이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치와 욕망의 경계, 이치와 사람 마음의 몇 갈래 즉 천리 그 자체인 인간의 마음, 천리와 욕망으로 구성된 마음, 마음이 모두 욕망인 경우를 살펴본다. 나아가 마음 범주인 심(心), 성(性), 정(情), 의(意), 지(志))의 경계를 시론적으로 접근한다.
Confucianism and Taoism both played very important roles in the history of China. On the whole, such a trend can be found that when the nation is united and the society is stable, Confucianism would prevail and dominate the political orientation. However, Taoism would become the mainstream of social ideology and the main theme of thought together with Buddhism when the nation is in the state of war and there is social unrest. Therefore, it’s obviously necessary to figure out what the characteristics of the two schools are.
Confucianism emphasizes on “Difference”, however “Equality” is an important part of Taoism. The refined two terms probably reflect the difference in expounding ideas and practicing theoretical path between them. Confucian politeness rule “being harmonious then respectful” (亲亲尊尊) standardizes Chinese millenarian civilization. Since the existence of Confucianism, it has great influence on each dynasty. It, meanwhile, explicitly specifies a class difference between the young and the old, and between the lower class and the upper class, which is also an equidifferent logic paradigm. On the other side, it appears that Chuang Tzu’s “On Leveling All Things”(齐物论) is unruly uninhibited. However, the “Equality” philosophy builds strong inner strength in a large context and it also has great soft influence on the social framework which is composed of Confucianism on the surface and legalism beneath the surface.
Up to now, the intertexture between “Equality” and “Difference” can probably still contribute to the rebuilding of the Golden Rule by means of their distinctive characteristic of thought and profound historical accumulation.
The paper focuses on the clothing codes described in the Analects of Confucius, and explores the reasons for the rules setting up, including the rules of color, the design, the pattern, and even the material of the clothes whose distinct features reflect the ceremony and etiquette of the time in the classic, which are in correspondence with the requirements of Confucianism, especially for stressing the social rights, obligations and codes of conduct to everyone in the society.
Leibniz was trying in his whole life to establish mutual understanding and cooperation in many respects, especially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This paper focuses on philosophy of mind in both Confucianism and Leibniz's organism. On the one hand, the two are almost in consonance with each other. Firstly, in the point of mind, Confucianism shows that mind has the characteristic of subjectivity and has a process for self-fulfilment as well. In Leibniz's organism, mind refers to the rational soul, which has the ability of introspection. Secondly, in the point of man, for Confucianism, man has morality, which distinguishes man from beast. For Leibniz, it is alike that man has self-awareness, which makes man to be man. On the other hand, the two are quite different. In the poin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ind and object, as well as man and the nature, Confucianism holds that mind and object is a unity. Man is an integral part of the nature natively. Nevertheless, as for Leibniz, mind and object are separated. Orders were set up by preestablished harmony. In summary, Confucianism and Leibniz have both the similar and different arguments on mind, which lay exactly the foundation for the dialogue and study between each other.
이 글은 고령(화)시대 노년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전환의 모색을 목표로 하면서, 근현대 개인주의 및 기술 산업사회의 경쟁 논리에 의한 인간관에 대한 하나의 대안(보완)으로 유가의 인간 관계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교의 인관관계론을 ‘仁’개념에 토대를 두고 孔子(爲己, 恕) 및 曾子의 언명(忠恕), 그리고『孟子』및『大學』등에 산재한 기술을 재구성적으로 해석하였다. 공자는 “군자는 자기(己)에게서 구하다”고 하면서 자기정립의 학문 이념을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공자의 ‘爲己之學’을 증자는 ‘忠’개념으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忠’은 신체의 주관자인 마음을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不偏不倚),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無過不及) 표준 상태에 두어” 자신의 본성(仁)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나아가 ‘爲己之學’(忠)을 맹자는 ‘求放心之學’, 곧 “仁義(大體)로서 자아를 정립하여 大人이 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계승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大人之學에서의 자기정립은『大學』에서 제1강령인 ‘明明德’, 그리고 八條目 가운데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유가에서 타자관계는 우선 ‘恕’(推己及人)의 원리로 제시되었다. 恕는 “자기를 정립하고자 하면 남을 정립시켜 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시켜 주면서 仁을 실천하는 방법” 혹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등으로 공식화되었다. 그리고 이는『大學』에서 우선 ‘치국-‘평천하’의 가장 중요한 방법인 ‘絜矩之道’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칸트적인 정언명법의 제1원리인 ‘보편성의 원리’, 제2원리인 ‘공평성의 원리’ 또한 함축한다고 해석되어 왔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恕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칸트 정언명법의 제3의 원리, 즉 ‘보편적 자기 입법의 원리’ 및 ‘목적의 왕국’의 이념까지 함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가의 忠恕의 원리는 ‘보편적(우주적) 가족애’라고 하는 맥락에서 노인을 나의 부모처럼 대우하고, 노인들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베푸는 정책을 시행하라는 것을 함축한다고 전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