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일재 정홍채(逸齋鄭泓采, 1901~1982)를 중심으로 20세기 한국 성리학의 현실적 함축을 검토하고, 21세기 유학이 무엇을 넘어서 야 하는지를 전망해 보려는 것이다. 한때 조선에서 성리학이 가졌던 절대성은 삶 전반을 통제하는 규범적인 것이었지만, 서세동점의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각한 사상적 도전에 직면했다. 정홍채는 20세기 일본의 식민 지배 에 이어 분단과 전쟁을 경험했고,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으로 자본주의 선진 국의 반열에 오르는 대한민국을 목격하면서 유학자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20 세기, 유학의 주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도 정홍채가 견지했던 성리학은 ‘자족적(自足的)’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정홍채가 사용하는 「리(理)는 본질/기(氣)는 리를 훼손시키는 것」, 「성(性)은 도덕적 본질」, 「성[리]은 최선의 표준」, 「본질 순응은 최선의 이익」 등의 리 중심 은유들은 성리학이 ‘그 자체로 완결된 체계’임을 함축한다. 20세기 한국 성리학의 절대주의적 도덕 원리 의 강조는 불굴의 선비정신을 유지하는 원천이었지만, 다수의 프레임(frame)과 다수의 도덕적 귀결이 존재하는 21세기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론적 유폐’는 피할 수 없는 귀결로 보인다. 형이상학적 정당화를 포기하는 것이 마치 유학 을 폐기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극단적 착시일 뿐이다. 우리는 유학의 시 조인 공자의 언설을 통해 인의예지의 덕목들이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덕목이 아니라, 좀 더 큰 프레임이나 도식 속에서 그 의미를 얻는 것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도덕 이론은 21세기 탈형이상학적 흐름 안에서 경험적 정당화에 기반한 유학적 가치들의 현대화에, 나아가 ‘닫힌 철학’에서 ‘열린 철 학’으로의 전환에 유효한 시각을 제공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청허휴정(1520~1604)의 심공급제(心空及第) 기반의 깨침과 선명상시 특징을 살펴보는 데 있다. 숭인 장로의 ‘심공급제’의 가 르침을 받아 출가 한 휴정은 임제종의 종풍을 이어받아 마음이 모든 것 의 근본임을 깨닫고 지관(止觀)을 통하여 본래 모습을 찾고자 하였다. 특 히 그는 세상과 절연하여 청산과 백운 속에서 무상함과 깨달음을 구하고 교화하는 의연한 수행 자세를 보여주었다. 깨달음의 세계나 선심은 언어 의 압축과 고도의 상징적 언어로 표현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휴정은 구도 와 깨달음, 보임(保任)과 교화의 과정에 있어 맑고 탈속한 마음의 경계를 가장 절제된 시적 양식의 하나인 오언절구와 칠언절구를 통해 잘 표현하 였다. 이는 곧 휴정의 선명상시의 특징이자 그의 선적 직관과 시적 상상 력이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깨침의 미학이다. 선시가 철저한 구도와 깨달 음의 표현이라 할 때, 철저하게 깨닫는다는 것은 나와 너, 그리고 그 모 든 존재와의 관계성을 깨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휴정의 ‘심공급 제;의 선명상시를 읽고 이해하며 감상하는 것은 탐・진・치 삼독으로 번 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내려놓기’의 지혜와 ‘텅 빈 충만’의 기쁨 을 전해주는 치유적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In Korea, the function of Jeong(亭), Jeongja(亭子), and Nujeong(樓亭) architecture is essentially rest. However, in China, where the name Jeong was first coined and used, Jeong was not only used as a place of rest, but also for a variety of functions depending on the time and region, such as building units for guard posts, policing, and mail delivery. But why is it that in Korea, Jeong is primarily perceived and used as place of rest? Starting from this question,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ical process of the emergence of Jeong and its changing functions, focusing on the official history of China, and then examines the perception of Jeong in Korea through its connection to the dominant function of Jeong in China during the period of Jeong's emergence in Korean literature. This will help us to fundamentally understand the differences between Jeong architecture in Korea and Jeong architecture in China, and to further clarify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types of Jeongja and Nujeong architecture in Korea.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waterlogging stress on the physiological response and growth characteristics of the five Italian ryegrass varieties. For all varieties, the germination rate of seed decreased by 10-15% as the waterlogging period increased, but the waterlogging stress treatment after the early seedling stage increased the growth of shoot and root length. Photosynthetic activity (Fv/Fm) according to waterlogging stress treatment decreased in all vareity, and Florida 80 showed the least decrease with 1.5%. Waterlogging stress treatment was found to reduce the accumulation of reactive oxygen species (malondialdehyde, MDA) and the activities of antioxidant enzymes. These results suggest that other mechanisms may be involved in the defense mechanism of Italian ryegrass against waterlogging stress, such as promoting root growth to escape from waterlogging stress, in addition to the antioxidant enzyme system.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solated lactic acid bacteria (LAB) on the quality of high moisture rye silage. Rye forage (Secale cereale L.) was harvested at the heading stage (27.3% of dry matter (DM)) and cut into approximately 3-5 cm lengths. Then, the forage divided into 4 treatments with different inoculants: 1) No additives (CON); 2) Lactobacillus brevis strain 100D8 at a 1.2 x 105 colony-forming unit (cfu)/g of fresh forage (LBR); 3) Leuconostoc holzapfelii strain 5H4 at a 1.0 x 105 cfu/g of fresh forage (LHO); and 4) Mixture of LBR and LHO (1:1 ratio) applied at a 1.0 x 105 cfu/g of fresh forage (MIX). About 3 kg of forage from each treatment was ensiled into a 20 L mini-bucket silo in quadruplicate for 100 days. After silo opening, silage was collected for analyses of chemical compositions, in vitro nutrient digestibilities, fermentation characteristics, and microbial enumerations. The CON silage had the highest concentrations of neutral detergent fiber and acid detergent fiber (p = 0.006; p = 0.008) and a lowest in vitro DM digestibility (p < 0.001). The pH was highest in CON silage, while lowest in LBR and MIX silages (p < 0.001). The concentrations of ammonia-N, lactate, and acetate were highest in LBR silage (p = 0.008; p < 0.001; p < 0.001). Propionate and butyrate concentrations were highest in CON silage (p = 0.004; p < 0.001). The LAB and yeast counts were higher in CON and LHO silages compare to LBR and MIX silages (p < 0.001). However, the mold did not detect in all treatments. Therefore, this study could conclude that L. brevis 100D8 and Leu. holzapfelii strain 5H4 can improve the digestibility and anti-fungal activity of high moisture rye silage.
본 논문은 청대 중기 양주팔괴(揚州팔괴)를 대표하며 시.서. 화 삼절로 유명한 판교 정섭(板橋鄭燮1693-1765) 서예의 핵 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육분반서의 형성과정을 고찰하려 하였 다. 명말 청초 진보적 사인(士人)을 중심으로 싹튼 반권위적 사 상운동의 시대적 배경하에서 정섭의 인생 행로는 한마디로 지 극히 불우하고 비참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가적 중화 미를 중심사상으로 삼았으나 양주지역을 중심으로 양주팔괴라 일컬어지는 혁신적인 개성주의 예술가들이 출현한 시기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괴(怪)의 미학을 추숭 하였으며 그 중심에 정섭이 활동했다. 정섭은 세상의 명예나 출세에 초연하여 평생 군자의 인품을 상징하는 전통적 소재에 심취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초일(超逸) 한 심미경계의 진솔함이 육분반서를 탄생시킨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정섭의 학서과정은 유년시기 당시 풍미했던 관각체인 해서를 주로 연마하였고 30대는 첩학(帖學)은 물론 비학(碑學) 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행서에 예서 필의의 혼융을 시도하였 다. 40대 전후 회소. 안진경, 소식, 황정견, 고기패 등 명 서예가 들의 필적을 두루 연구하여 독창적인 육분반서를 창안하였다. 육분반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전하는 바가 없고 후대인들의 다양한 해석만 있을 뿐이어서 의견 또한 분분하다. 그중 정섭 스스로 말한 한대(漢代)의 팔분서(八分書)에 해.행.초 를 결합하였다고 한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육분반 서는 팔분을 바탕으로 전.예.해.행초 등 각 서체를 두루 혼합하 였다는 뜻임과 동시에 하나의 상징적인 용어로 그 의미를 해석 하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높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평가는 청대 초기 의고주의(擬古主 義)와 대립하는 즉, 정감과 개성을 중시하는 `괴`의 발현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기괴 함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전의 연마를 통해 변용 시킨 서풍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연구 는 현대 서예 창작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본 논문의 목적은 백수 정완영(白水 鄭椀永, 1919~2016, 이하 백수) 의 시조 문학에 나타난 고향의식과 불교적 사유 기반의 생명존중의 의미 와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백수는 이병기, 이은상, 김상옥, 이호우, 이영도와 함께 1960년대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그는 말과 말의 행간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면 서 단아하고 잘 정제된 시상과 한국의 정한의 주제와 자유로운 율격을 담아냄으로써 현대시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백수의 문학적 사유 와 토양을 깊게 해 준 배경에는 고향상실과 민족전통을 관류하는 정한(情 恨)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시조 문학 작품에는 전통적 인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관조의 미학을 탐구하면서, 상실한 조국과 고 향의 회복, 연기적 생명 존재에 대한 사랑의 뜨거운 시혼이 잘 담지되어 있다. 결국 백수가 그토록 끊임없이 또 간절하게 고향과 불연(佛緣)을 노 래한 것은 역사관과 인생관을 매개로 한 자기정체성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조선 천주교 신자들의 제사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진산사건을 전후해 윤지충과 정약용이 처했던 중국과 조선의 상황과 자신들의 생각을 언급한 1.2차 사료의 분석을 통해 고찰했다. 이를 통해 제사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입장은 천(天)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자 했다. 즉 윤지충은 천주(天主)의 명령은 큰 부모의 명이며 동시에 교회의 명령으로 여겼기 때문에 천주교 제사 금령을 목숨을 걸고 지켰다. 한편 정약용에게 천명은 상제(上帝)의 명이었는데 상제의 명은 인간의 마음에 생기는 도덕을 행동으로 실행함 으로써 따르는 것이었고, 인간 도덕에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죽은 부모와 천에게 제사 드리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비록 공적으로 천주교를 포기하면서도 제사를 지냈다. 한국에서 제사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인이 되는 데 커다란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한국개신교는 제사에 관한 태도를 정하는 데 있어서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도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신학을 확립해 가는 가운데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과거업을 단념한 채 오롯이 학문 연마에 매진했던 정국채는 정주학과 예학⋅농학 세 범주에 걸쳐서 괄목할만한 학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주요 저서들이 모두 일실된 상태다. 게다가 문집인 『함인재유고』도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탓에, 정국채를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도 극히 일천한 실정이다. 이에 논자는 이미 진척된 기존의 몇몇 연구를 토대로 하여 정국채가 평생토록 주력했던 정좌 수행에 관한 논의를 개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서가 일실된 탓에 추적이 불가능한 예학⋅농학의 경우와는 달리, 문집인 함인재유고에는 정국채가 행한 정좌 수행을 서술한 내용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정국채는 그가 사사(師事)했던 스승인 성담 송환기와 경호 이의조에게 정좌법과 관련하여 교차적인 질의를 던진 사실도 눈길을 끌게 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정황은 19세기 무렵까지 전승되어 온 노론계의 학문 방식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채의 경우 정좌의 이론적 전제에 해당하는 주자학적 함양설, 특히 일념이 발동하지 않은 미발시의 심체 상에서의 “정좌시(靜坐時)의 기상(氣像)”을 체인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였다. 정국채는 고인⋅선유들도 이처럼 지난한 공부론적 과정을 경유했던 것으로 확신했고, 그에 따라 정좌야말로 위기지학의 세계로 진입하는 첩경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정좌가 항상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나, 그 관심과 열정의 정도란 주자학적 공부론의 또 다른 한 축인 성찰설에 대한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국채가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서신에는 “늘 깨어 있는” 경지가 감지되지 않는 대신에, 계속된 병마와 심히 고단했던 일신상의 처지만이 풍겨 난다. 이는 정국채가 주자학적 거경⋅궁리론 중에서, 후자인 독서에 의한 궁 리가 결실한 학문세계와는 판이한 양상인 것이다. 또한 정국채가 취한 정좌가 과연 유학적 종지에 적법한 방편이었던가? 하는 문제점과 함께, 또한 군자유의 도정에서 분명한 실효성을 담지한 교육적 수단이었는지 하는 의문점도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서계 박세당과 다산 정약용이 순차적으로 제기한 함양설과 선불교 비판은 제기된 두 사안들에 대해 유의미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본 논문은 秋巒鄭之雲의 『天命圖說【이 어떠한 내력을 지녔으며, 『天命圖 說』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退溪와 비교해 볼 때, 성리학의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秋巒은 선조들이 高陽으로 이주해 오면서 그곳에 살았고, 죽기 전에 고향 인 高陽의 강위에서 밭을 갈기를 희망했던 53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秋巒은 士禍期를 거쳤다. 秋巒이 조용했던 삶이 그의 「天命圖說」이 후에 다른 사람의 저술로까지 여겨지는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秋巒「天命圖說」의 ‘天命’은 『中庸』 1章에서 따온 것으로 天命과 人性이 같아짐을 나타낸 것이다. 즉, 天의 理致가 人間의 理致임을 말하였다. 天의 운행에는 元⋅亨⋅利⋅貞이라고 하는 4가지 德이 존재한다. 이 四德을 바탕으로 해서 理氣가 나뉘고 陰陽과 五行이 나뉘게 된다. 秋巒은 人과 物이 다르게 된다는 것은 氣의 正⋅通⋅明⋅偏⋅塞⋅暗의 다양한 차이점으로 보고 있다. 性과 情의 문제에 있어서는 四端과 七情의 문제 를 끌어들여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四端⋅七情은 하늘의 四德⋅五行과 합치된다고 한다.
秋巒은 心이 發하기 전에는 善⋅惡의 나뉨이 없다가 發할 이후에 善⋅惡으로 나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心이 發하게 되는 ‘意’가 중요하게 된다. 인간은 바름[正]을 받아 태어났지만 氣에는 淸⋅濁⋅粹⋅駁의 차이에 따라 上 智⋅中人⋅下愚로 나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인간의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에 빠지게 되어 修養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 지만 모든 것이 자질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또, 수양의 방법으로 存養工夫, 省察工夫, 敬工夫를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秋巒의 사상은 退溪와 비교해 보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秋巒이 그의 동생 鄭之霖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天命圖說」은 退溪哲學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Jeju is a small island of 650,000 with a mixture of cities and farming and fishing villages, but famous for many things including longevity, Haenyeo community culture, strong sprit of Jeju Women, Kim Man Deok, etc. The elderly in Jeju rural areas including Haenyeo women divers run a community centered on labor. The women divers’ community, in particular, is the most representative community, and was inscripted by UNESCO in 2016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dditionally, Jeju's residential culture is unique. In Jeju area, Jeong Nang, consisting of 3 wooden bars (gate attached to fence) is used instead of a main gate. When you enter the Jeong Nang (gate), there are the Ankeorae, Barkeorae, and Mokeorae within the same fence (refer to Figure 3 below). In addition to acknowledging the economic and emotional independence between generations in different houses within the same fence, it is also a structure that encourages communal life in the yard for ritual ceremony, communal labor, playing, etc., which guarantees independence between generations plus "filial piety" for the elderly. Voluntary intergenerational communication in this space can be very significant. Jeong Nang is the main gate to connect all the family members within the fence to their neighbors. It is not closed or locked but open which signifies complete trust between neighbors. Specifically, this study seeks to utilize the spatial concept of the community of Ankeorae, Barkeorae, and Mokeorae traditional houses of Jeju as shown in the pictures above. Hanok, a Korean traditional house, is a patriarchal, economically and emotionally dependent community model in which elderly people and younger generations utilize a kitchen in common and the elderly in the house have the highest authority as a dining community. However, each generation in Ankeorae, Bakeorae, and Mokeorae has its own independent kitchen, though they are one large family within a fence connected by Jeong Nang, and they also guarantee economic and emotional independence. Intergenerational privacy is guaranteed. In addition, there is an independent space which is used when a visitor comes in or relatives visit. It is a model for communication between generations, with dignity and independence, respect, love, trust and acceptance coexisting The reasons for choosing the culture of Haenyeo community for the silver model archetype are as follows. Jeju women divers have learned how to dive without oxygen tank since they were young. They have lived on diving as Haenyeo for all their lives. Even after becoming elderly, they continue to live on diving to educate children and grandchildren. They share a sisterhood with grandmothers, great grandmothers, daughters and granddaughters. They are divided into superior, middle, and lower divers according to their ability and experience. And if one reaches 80 and 90 years of age, it will be material in the sea. As for the labor of Haenyeos, there is a saying: "We are daring to die for diving to keep our family welfare." As long as the life continues, their labor continues, their dignity is maintained as they in turn maintain the dignity of nature. Many of the “old-old” elderly divers, in their late 80s and beyond, are found floating dead in the sea while collecting shells without oxygen tank. That’s Haenyeo’s strong spirit. In 2016, for those above the age of 80, the Jeju Provincial Government decided to reinstitute the tradition of maintaining a separate area in the shallows called " Halmang Badang " (“Sea of Grandma”), so that oldest Haenyeos can safely take care of themselves. The way of life of these Haenyeos was similar to the typical life style of retired Babe Boomers, who had been devoted to social contribution until the last minute, returning expert knowledge to the community. That’s why Haenyeo community was chosen as a typical archetype for a new silver model development.
Source criticism is very important on the research of architectural history as well as general history. In this point this research studied on the original form and change of Dokrak-dang that is very important building in architectural history of Korea. The result is as in the following. Dokrak-dang that Whoijae built at first was three by two kans size that had daecheong of four kans and ondol-bang of two kans. Gye-jeong that Whoijae built was three kans size that had daecheong of two kans and ondol-bang of one kan. After Whoijae died, Dokrak-dang’s ondol-bang was changed to maru between 1555 and 1556 and ondol-bang in west side and stack room was added in 1630. Gye-jeong was changed to ㄱ-shaped floor plan that was added up two kans from three kan’s ‘一’-shaped one.
본고는 정연희가 기독교를 수용한 7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기독교 윤리가 구조화되는 방식을 해명하였다. 외형적으로 이전의 사회비판 소설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지만 인식과 구조, 미학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이들 작품에서 종교적 윤리성이 구성되는 방식과 내용, 윤리적 실천 양태를 작품분석을 통해 살펴보았다. 정연희 기독교 소설은 그동안의 폐쇄적, 특권적 내면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공감을 회복하면서 사회적 윤리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후 신의 시선을 내면화한 자아가 그 시선으로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는데 신에 속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분노, 질타하면서 질타의 초점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고 있다. 이는 욕망을 문명적 창의의 긍정적 에너지로 추앙했던 이전 소설들과 극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정연희 기독교 소설의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분노, 불안, 공포가 고압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비판 소설의 서사적 객관성을 넘어서는데 이는 현재의 부정성을 통해 미래의 종말을 계시하려는 묵시록적 서사를 취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작을 통해 멸망의 징후를 예고하려는 종교적 실천의 결과인 것으로, 부정성을 부정함으로써 최후의 멸망을 부정하려는, 역설적 긍정을 내재한 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The aims of this study are to examine the lifetime and educational thought of Dasan Jeong Yak-Yong and to find the significance of meeting and Dasan's educational spirit. Dasan was born on June 16, 1762 and died on February 22, 1836. In general, his lifetime is divided into four periods : ①learning stage(1-28age), ②public service stage(28-39age), ③exile stage(40-57age), ④emancipation stage(57-75age). He systematized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practical science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 ideal image of a man to Dasan is a shepherd, who not only keeps his duties of magistrate but also is well qualified as a governor with learning and virtue, and as a teacher to lead people. Therefore, a shepherd is a practician having the whole personality of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The spirit of governor based on practice of the self-control first and then govern others should not be looked down on as the old, and its spirit and lesson should not be overlooked in modern education. Dasan emphasized here and now and service to humanity. His aim was to educate a person to be a good father, mother, son, daughter, friend, and citizen. He believed that every person should strive for the continual development of self until excellence is achieved. The seven principles of teaching and learning which Dasan executed are as follows : ①step by step, ② major, ③fitting, ④practice, ⑤discussion, ⑥collaboration, and ⑦creative activity. It is sincerely hoped that this study on Dasan's Educational Thought will be contributed as a stepping stone of some help to those scholars and students who are interested in new teacher-education of the 21st century.
This study examined the constituting principle of Hwasajip("Flower-Snake Anthology") and its Christian influence. The consciousness of original sin in the Bible refers to the fall of Adam and Eve that led mankind to a state of corruption. However, the consciousness of original sin in "Self-Portrait," "Flower snake," "Leper," "Daytime," and "Barley Summer" seems to be a longing for something carnal. Mankind's sins were the cause of the Passion and death of Christ. Yet, "From the Hill of Noon," "Goeulna's Daughter," "Rooster(I)," and "Rooster(II)" depict the struggle for freedom from the body and the accompanying limitations of human existence. Christ was resurrected three days after his death. But in "The Sea," "The Door," "Ode to the West Wind," and "Resurrection," Seo Jeong-ju depicts the resurrection of the poetic speaker from the desires of youth. However, this desire for resurrection indicates an Oriental worldview. Therefore, the poet seems to have understood, assimilated, and transformed Christianity into a vehicle for revealing the wanderings and intense mental agony of youth.
본 연구는 겸재 정선의 쌍도정도에 표현된 지당에 대한 고찰로서 쌍도정지 그림을 실경의 관점에서 조명하여 문헌 및 고지도 분석과 해석과 현장조사 및 향토사가들의 인터뷰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과 그림 속 실경을 비교하고자 하였다.또한 쌍도정지의 위치 및 입지장소성을 확인함으로써 쌍도방지의 복원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쌍도정지는 전통정원 유적의 현장을 비교적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간 자체가 매우 유서 깊은공간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발굴을 통한 원형복원의 당위성과 기대가 가일층 간절해진다. 본 연구를 통해서 해결하지는못했지만 1)쌍도정도에 표현된 역학적 도해와 2)쌍도정지의 조영자로 본 고산 윤선도 그리고 겸재 정선과의 관련성은추후 학제적 접근으로 풀어나가야 할 전통조경적 과제로 되새겨야 할 것이다. 본 연구를 계기로 겸재의 쌍도정도에나타난 쌍도정지의 복원은 물론 오늘날 성주군 조선후기 관아정원의 모습 및 전통경관적 산수시스템 등 전통경관의원형복원 및 회복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