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urpose of this case study is to compare two luxury brands’ collaborations with modern Korean artists and the qualitative results achieved by the projects. As argued by J.N. Kapferer (2014), through associations with artists, luxury brands are striving to present themselves as part of a creative industry and as a result elevate and legitimize their brand image. This article focuses specifically on Christian Dior’s Dior Lady Art series and Louis Vuitton’s Artycapucines due to the similarity in project structure – the final presentation in form of an exhibition – as well as the objects produced – bags elevated to the status of artworks but still maintaining functionality. Through the selected case studies, this article first explores how partnering with Korean artists enables brands to localize and engage more personally with Korean consumers while building deeper relationships with international consumers by leveraging the continuously growing global popularity of Korean culture. The study then examines how the collaborations contribute to the brands’ goal to present themselves as more authentic – in luxury terms, delivering exceptional experience characterized by high quality, craftsmanship, preciousness, and timelessness (The Quarry Gallery, 2023). This is achieved by providing artists with a platform to reinterpret iconic bags into artwork. Lastly, the article analyzes how, through these limitededition items, the brands are also able to reinforce the idea of luxury as financial investment and a way to build family heritage.
본 연구는 주체사상 극복에 대한 근거이론 연구이다. 연구에는 15명의 탈북민 기독교인들이 참여했으며 주체사상 극복의 내용과 맥락, 결과 등을 분석했다. 연구자는 스트라우스와 코빈(Strauss & Corbin)의 2판과 4판을 혼용했으며 자료는 심층 인터뷰를 수행하여 구성했다. 개방코딩에서는 116개의 개념, 36개 하위범주 14개 범주가 출현했다. 축코딩에서는 범주를 패러다임 모형에 재배열했다. 인과적 조건은 주체의 감옥에 갇힘, 인간의 소외, 절대적 의존으로 나타났다. 맥락적 조건으로는 한계상황 속의 나, 사상의 미로에서 탈출, 겉 사람의 잔재로 나타났다. 현상은 주체와 복음의 기로, 신앙적 경계인으로 나타났고 중재적 조건은 진정한 자유의 길 사랑, 예비하시는 하나님 체험, 복음으로 주체사상 해체로 나타났다. 작용/상호작용은 나의 십자가 지기, 성경적 정체성 재구성으로 나타났고, 결과는 북한선교 비전의 실천으로 나타났다. 핵심범주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복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주체사상을 해체하고 복음으로 다시 재무장하고 북한선교를 꿈꾸는 삶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논의와 제언을 하였다.
2020년 들어 확산된 코로나19는 한국교회의 북한이탈주민 사역에 새로운 과제와 도전을 주고 있다. 사회적 취약계층인 북한이탈주민은 코로나19로 인해 다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북한이탈주민 사역의 환경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교회의 북한이탈주민 사역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 위에서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북한 이탈주민 사역의 초점을 신규 입국 북한이탈주민보다 ‘이미’ 한국에 와 있는 3만 명가량의 북한이탈주민, 특히 기존의 사역 체계에서 놓치던 유형의 북한이탈주민을 향해 전환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탈주민 사역 은 일방적인 선교적 접근이 아닌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라는 목표를 가지고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세심한 접근으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북한이탈주민 사역 방식과 관련하여 시혜적인 방식이 아닌 호혜적인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북한이탈주민 사역 단체 간의 연대와 사역 재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시대에 상호 간의 돌봄과 정서적 관리를 해줄 수 있는 더 작지만 깊은 관계성을 지향하는 공동체들을 세워가야 한다.
이 글은 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적 정신을 규명하고, 그 정신을 한국교회에 적용하여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3·1운동이 일제로부터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지향하는 정치적 운동이 었다면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교분리라는 교리를 넘어서야 했고, 천도교라는 이웃종교와 협력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는 배타주의적 태도를 극복해야 했다. 3·1운동에 나타난 신앙유형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이 아니라 두 진영을 넘어서서 하나 되는 통전적 신앙유형이었다. 그러나 3·1운동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기독교 신앙양태는 초월적 신비주의와 계몽운동으로 분열된다. 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적 정신으로는 자주독립, 민주주의, 평화, 에큐메니칼 정신, 종교간 협력과 연대 등이 있다. 이러한 정신은 한국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교회간 코이노니아와 남반부 교회를 강화시키는 선교, 교회내 민주화와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에 기여, 평화교육과 평화문화 배양과 평화통일에 기여,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로 양분된 교회를 통전적 신앙양태로 회복, 위의 과제들과 지구생명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간 협력과 연대를 제시한다.
북한선교는 현실적으로 다양한 제약점이 있다. 북한의 폐쇄성으로 선교의 문을 여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선교는 급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순차적 단계를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그 첫 발걸음이 접촉점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NGO는 접촉점 확산에 있어서 중요한 문이자 선교전략이 될 수가 있는데, 지금까지 대북 NGO 활동은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과 개발지원사업에 집중되어왔다. 본 연구는 직접적 선교 활동을 할 수 없는 한계적 상황 속에서 NGO를 통한 새로운 북한선교 전략으로 음악적 NGO 활동을 제안한다. 음악과 친숙한 북한 주민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악기를 보급하고, 찬송가, 복음성가와 같은 기독교음악의 선율적 특성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향후 직접적인 복음 전파가 가능할 시점에 친숙함을 느끼고 마음 문을 열게 하는 선교적 기초 작업이 될 것이다.
본 연구는 장기간 타문화권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사회에 돌아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과 그들의 타문화 경험이 어떻게 평생학습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경력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 질적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 차용한 근거이론 방법론에 따라 분석된 정착과정은 다음과 같다. 타문화권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으로서 변화인식기(평생학습 필요단계), 불안정함 표출기(경력개발 추구단계), 문제상황 인식과 돌파기(평생학습 시작과 경력개발 초기단계), 구체적 행동실행기(평생학습을 통한 경력개발 단계)를 거쳐 자신과 타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 속 적응과 정착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선교사 개인의 관점에서 선교지와 한국에서의 삶을 연결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무경계 경력과 프로티언 경력 개발을 위한 적극적 행동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이들을 파송했던 교회와 선교단체에게는 돌아온 이들의 심리적 적응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사역의 플랫홈 제공이 필요함을, 사회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의 사회통합 및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 이들의 정착을 도울 것을 제시하였다.
The church’s world propagation effort through Christian NGOs is a missionary strategy that appropriately meets the cultural trend of the globalization age. Among different kinds of NGOs, international development NGO is unique because one can effectively attain its missionary goal through implementation of regional development programs in the targeted region. Furthermore, NGOs are very useful in gaining access in certain parts of the world where there is no freedom of religion. Christians and churches have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history of NGO in Korea that history of NGO in Korea can legitimately called the history of Christian NGO. Few examples of Christian NGO activities in Korea include: a) Independent movement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b) relief efforts in the 1950’s before and after the Korean civil war, c) citizens’ democratization movement under the military regimes in the 1970’s and the 1980’s, and d) North Korea aid activities through northsouth exchanges. Today, moving beyond the basic Christian missionary work, the Korean Christian NGOs are propagating into the world to satisfy the needs of the local people and the need for world missions. Despite the successful Christian NGO activities, churches should always keep in mind that the establishment of NGOs without a purpose that centers on evangelical propagation or church building can result in adverse outcomes. Churches should operate Christian NGOs professionally with proper philosophical understanding and academic knowledge. Today’s Christian NGOs have tremendous amount of responsibilities that include: a) clarifying their identity as Christian, b) consisting up of members with strong Christian view of the world, c) equipping their operation with expertise and regularity, d) being effective in receiving countries, and, above all, e) revealing the excellence of Christianity throughout the whole world through transparent and ethical management centered on human right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urch and Christian NGOs and missionary organizations and Christian NGOs should never be a competition for resources. Rather, their relationship should always be a cooperation to bring God’s kingdom to this world and accomplish the Great Commission for world missions. Apart from church, Christian NGOs will lose their purpose of existence.
이 글은 우원 이호빈 목사(友園李浩彬, 1898-1998)의 독립운동과 토착적 신앙운동으로서 예수교회운동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인류보편사적이고 민족사적이고 한국교회사적인 맥락과 의미를 밝히려는 작업을 시도했다. 우원의 기독교 복음에 바탕을 둔 새로운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은 근대 제국주의와 서구적인 근대 기독교 패러다임을 넘어선 지평에서 주체적인 한국기독교인의 삶의 세계를 열어냈다. 이것을 선교사들의 ‘서도서기 패러다임’과 초기 한국기독교의 주체적인 입장인 ‘대도대기 패러다임’을 넘어선 ‘한도한기 패러다임’으로 파악했다.
Today, a lot of schools aim for open education and school. In the same context, Christian university can’t be equal to academy mission, building a high wall of a doctrine. As Paul confesses tha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for the Gospel under any circumstances, Christian university must be open for the Gospel. Above all, open school is open for all students and must be always ready for a meeting. Open Christian school is to ask a meaning of life and to meet students asking a question of existence, receiving them with a open mind and help them welcome Jesus Christ in the Holy Spirit. This is possible to be one in the center of Christ. School personnels who work in Christian university are to serve faithfully. They must take part in the faith training program actively and positively as ripe christians. Students who work in missionary organizations and christian groups have to cooperate each other in university. Because of spiritual superiority and arrogance of faith, we must not be separated and repeat past mistakes. On the contrary, we must receive in a humble way the comment that missionary organizations were a obstacle to academy mission. In the case of a part of missionary organizations, officials and core members used to build a wall and blame a church. And so, we have to improve this negative attitude. When members in campus as a God people have to cooperate each other and live in a place of life as the witness of the Gospel, the future of the campus mission will be better and brighter. We will get the vision of the future, conversing past history with present situation. First, we will examine the missionary history of christian university briefly and diagnose the situation of campus mission. On the basis of this diagnosis, we should present several important tasks to practice for mission. This paper will give a direction of campus mission with a limitation of research range. We will examine this paper in the center of Jeonju University .
In the 21st century, the era of change in Northeast Asia, Korean Christianity encounters a crisis of identity being Korean or Christian. Korean people tend to regard Christianity as a western religion connected with America and its faults and negative sides are widely broadcasted through the mass communications. Futhermore, the confucian fundamentalism revives and focuses on Korean nationality and the indigenous national religions has emphasis on their national identity. In order to respond their challenges to Korean Christianity, she should find her national identity in Korean people’s distinctions which can be found in the indigenous religions of Korea. The author finds some Korean indigenous distinctions with an analysis on the indigenous religious phenomena by using Friedrich Heiler’s analysis frame of religious phenomena. These are as follows: 1, 3, 7, 21, 40, 100 days as sacred times; mountains, divine place, and council rooms as sacred places; religious specialists as sacred persons; traditional religious words and writings as sacred words and writings; purification, sacrifice, unification as sacred practices; the concept of reconciliation as a sacred concept. These indigenous distinctions can be applied to Korean Christianity to be Korean and be indigenous Christian which may solve the problem of the identity crisis. Some cautions can be noticed when they are applied to and used by Korean Christianity. These distinctions must be contextualized critically by the consensus among the intercultural hermeneutic community in Korean and the world Christians. Through the process of the critical contextualization of Korean Christianity, she can be Korean and be Christian also in Korea.
Korean women’s fertility rate is rapidly declining as it goes down from 4.5 in 1970 to 1.3 in 2002. The impacts of the low fertility rate are many, e.g., the decline of Korean population, the lack of industrial man powers, the numerical rise of foreign workers, the growth of older generation, and so on. Soon Korean church will be under direct impacts of the low fertility rate as well. The present paper aims to investigate (1) the growth rate of Korean Christian pop띠 ation based on the scientific national census; (2) the rapid decline of the Korean women’s fertility rate; (3) the influence of the 1997 IMF econornic crisis upon the decline of fertility rate; (4) practical suggestions for the future ministry from missiological analysis which include counseling, silver rninistry, rninistry to corning generation, rninistry to foreign workers, and encouragement for childbe뻐ng for the Christian farnilies. What Korean churches need now is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the rnissionary proclaim in the Book of Genesis (9: 1):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Otherwise, Korean church would have a significant difficulty to maintain the present energy and enthusiasm due to the sharp decline of the Christian pop비ation in Korea near soon.
한국 개신교의 초기 출판은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 역사가 가장 깊은 중국의 출판물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 뿐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일본 출판계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력은 한반도에서 서서히 약화되어 갔으며, 「구미 → 중국 → 일본 → 한국」이라는 근대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 구조가 「구미 + 일본 → 한국」이라는 도식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는 「구미 → 한국」이라는 구조로 재편 되면서, 나름의 주체적 기독교 출판의 역량 확보를 도모해가게 된다.
일제하 한국 기독교 출판은 그러한 한계들과 미숙함 속에서도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창출신학이 움트는 모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감당했으며, 해방 이후 현대 한국교회의 역동적인 신학담론과 저술들이 출판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 논문은 한치진이 『基督敎人生觀』을 통해 1930년대 한국교회의 문제 점을 진단하고 그 개선방안을 제시한 논지를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연구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基督敎人生觀』 뿐만 아니라 본 주제와 관련된 다른 주요 문헌들도 참고할 것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에 출판되었으며 기독교윤리관에 입각하여 저술되었다. 그는 목사도 신학 자도 아닌 평신도의 위치에 있었지만 기독교윤리에 뛰어난 지식을 갖춘 인 물이었다. 한치진의 저서 『基督敎人生觀』이 남긴 중요한 교훈들을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당시 한국교회가 여러 방면에서 심각 하게 타락했다는 점을 직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를 개혁해나가기 위 해서는 먼저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내적 부패상부터 척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둘째, 실천적인 관점이다. 한치진은 엄격한 규범을 제시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선행을 추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을 따라 기독교윤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저서에 높은 실업률, 젊은 세대 교육, 병약한 환자들, 삶과 노동, 파시즘과 권위주의 등 다방면 에서 윤리적 주제들을 담았다. 셋째, 세계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교회는 반드시 만물의 궁극적 중생(重 生)을 고대하면서 현세와 지복(至福)의 내세 양 지평에 동등한 관심을 가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가 향후 한치진의 ‘기독교 윤리관’, ‘기독교 심리학’, ‘기독교 교 육학’, ‘신앙적 사고’ 등의 연구 작업으로 더욱 확장되어지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Pro-Rhee’ Christian Forces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Relationships between Rhee and Korean Christian forces were formed by Independence Association, his conversion in prison, and his activities of YMCA in the early 1910s. Most of the Pro-Rhee Korean Christian forces were Korean Christian of Seoul, Gyeonggi-Do, and ChungChong-Do birth who were active mostly in Christian groups including Christian Association and YMCA in the 1910s. Rhee suggested Diplomatic Independence Principle and Ability Cultivation Principle as strategie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Korean Christian forces connected to Rhee agreed to Rhee’s strategies. They did not attract support for Korea’s independence from the international society but also developed movements of ability cultivation such as Private University Establishment Campaign and Rural Enlightenment Movement.
Directly after the March 1 Movement, Korean Christian forces delivered Korea’s interim government’s document declared in Korea to Syng-man Rhee, who was out of Korea. After that time, this contributed greatly to Rhee’s becoming the supreme leader of dependence movement in and outside Korea. Korean Christian forces banded together with Rhee outside Korea and formed Heung-eop Club as an organization which agreed to Comrade Association abroad and adopted as important activities raising funds of independence movement and constructing economical networks in and outside Korea. Some members of Heung-eop Club did not participate in Shin-gan Association Movement but also played a key role in YMCA’s Rural Enlightenment Movement.
However, Syng-man Rhee’s overseas position became weakened due to the bankruptcy of Dongji-Shiksan Company and conflicts related to the subscription of fund. In conclusion, Rhee’s relationships with Korean Christian forces were rapidly estranged in Korea’s circumstances (e.g. Sang-Jae Lee’s death, the conflict of Chi-Ho Yoon and Heung-Woo Shin in Heung-eop Club, the failure of establishing Industrial Department, the depression of YMCA’s Rural Enlightenment Campaign, etc.) after the mid-193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