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김환기 현대문인화의 ‘소박미’를 고찰한 것이다. 요 즘처럼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소박’이라는 주제는 왠지 사회적 요 구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물질문명에 취해 정신없이 달려온 인간 문명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미학으로서의 ‘소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이자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박하다’라는 말은 사치스럽거나 과하 지 않고 ‘검소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소박’의 의 미는 그보다 훨씬 심오한 자연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러 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결정적 과 오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이를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해야 할지 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소박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 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인화에 나타난 소박미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문인화는 작가가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물아교융 하는 순간적인 기의 흐름을 통하여 자연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소박미를 대표하는 장르로 볼 수 있다. 이에 한국의 소박미가 한국 현대문인화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 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김환기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특유의 소박미가 현대 미술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박생광의 회화: 한국적 이미지의 추구’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실 증자료를 토대로 성찰하고자 한다. 그 동안 박생광에 관한 연구는 우리 민족 의 미가 표출된 2)그림이라는 틀 안에서 서술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작 품의 형식적인 부분에 있어 소재, 색채 등에 집중한 논문과 내용적인 부분에 서 민속, 무속, 민화 등 전통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연구한 논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의 연구는 전통의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박생광이 우리의 민속 적, 종교적인 요소들을 과감한 색채의 사용을 통해 승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하 여 서술되었다. 이는 한국의 미의 재발견, 우리 채색화의 복권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여 그 의미를 찾고자 했으나, 박생광의 작품이 담고 있는 근원적 바탕 을 해석하기에는 부족하였다고 판단된다. 그가 어떠한 이유로 말년에 무(巫)에 주목했고,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 던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 없이는 그의 작품이 갖는 진정한 의의를 분석 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무(巫)의 본질에 대한 해석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작품만을 두고 단편적으로 분석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박생 광 작품의 특색은 기존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 았던 무(巫)를 소재로 하여 우리 민족의 기층문화를 복권시켰다는 것에 있다. 조선 시대에는 지배층에 의해 멸시받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중의 종교로 박 해받았으며 해방 이후에는 서구식 가치관에 의해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천대받 았으나, 현재까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무(巫)이다. 이러한 연 유로 본 논문에서는 우선적으로 무(巫)에 관한 탐구를 통해, 그가 추구했던 한 국적 이미지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간의 논의들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Global fashion houses have recently incorporated traditional Korean motifs within their inspiration. This trend is an opportunity to showcase the colors of traditional Korean culture by investing in the new design content. Products specifically based on traditional Korean culture are lacking in brand awareness despite the success of Korean content. Accordingly, this study designs cultural products based on Korean folk painting that captures Korean people’s satirical sense of humor. Korean folk painting theories are analyzed, from which different types of folk paintings are classified based on research of bibliographies and online documents. Following classification, the results are dataized as different types of folk paintings and their meanings. Furthermore, images of folk paintings are categorized and scanned digitally. The digitized images of the folk paintings are processed through Adobe Photoshop CS for overall layout and Adobe Illustrator CS for detailed designs. Traditional categories of Korean folk paintings are used, including flowers and birds, letters, and study stationery. Using the main elements of the flower and birds category, designs with cultural products such as images of flowers, birds, animals, and fish are produced. The final designs are used to create fashion items that can easily be used for embellishment or self-presentation: a scarf and a necktie. The scarf and the necktie are not only merchandise; they also symbolize the story, humor, and hope that Korean folk paintings once symbolized.
지금까지 문인화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고고한 선비 의 남성적 문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성리 학의 영향이 약화되고 문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으로써 문인 화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고 또한 여성적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관점에서 먼저 현대 한국문인화를 정의하고, 다음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미학텍스트라 할 수 있는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의 ‘섬농’과 ‘기려’의 풍격을 기준으로 현대 한국 문인화의 여성적 풍격을 진단하였다. ‘섬농’의 풍격으로 문봉선의 <유수>와 홍석창의 <별꽃>을 분석하였고, ‘기려’의 풍격으로 이철규의 <상생>과 김순철의 <About wish>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다원화되고 기호화된 현대사회에서 한국 문인화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성행하였던 문인화는 문인의 정신을 일획성의 수묵 기법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미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과 예술이 결합된 문인화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적 도구로 앞으로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 논문은 논자가 활동하고 있는 현대 한국 문인화단의 제경향 중 단색회화 경향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현대 한국 문인화의 다양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대 한국 문인화의 나아갈 방향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문인사대부들은 우주의 원리나 현상을 자신이 몸소 체험함으로써 그들의 교양의 질(質)과 그 지위를 검증하는 수단으로 문인화(文人畵)의 수묵 정신(水墨精神)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서양의 현대미술 사조 중 하나인 미니멀니즘이 우리나라에 유입 되어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변화됨으로써 한국적인 미니 멀리즘, 즉 단색회화(單色繪畫)가 탄생되었는데 그 배경 역시 문인화의 수묵 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논고에서는 문인화와 단색회화의 공통분모인 수묵 정신을 비교 검토하고 현대 한국 문인화의 단색회화 경향 작품을 예시하여 이를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서양 회화에 속하는 단색회화와 동양 회화에 속하는 단색회화 경향의 문인화 작품들 모두 문인화 전통의 수묵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미적 양식과 우리만의 새로운 회화 양식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미래의 한국미술의 한 축을 담당할 한국 문인화의 유파에 대한 고찰이다. ‘문인화’라는 용어는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이 처음 사 용하였으나 그 연원은 북송대(北宋代)의 소식(蘇軾)이 화공들의 그림과 상대되는 문인들의 그림을 ‘사인화(士人畵)’라 한데서 찾을 수 있으며 형사(形似)보다 운치(韻致)를 중요시하는 특징 이 있다. 현대의 문인화는 문인이라는 작가의 신분적인 요소보 다 작가의 문기가 표출된 작품이라 정의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한국의 문인화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기까 지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초기의 수용 체계를 파악하 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에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이 인상, 강세황, 신위, 김정희 등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한국 문인화의 원류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문인화는 세 개의 유파로 분 류할 수 있다. 첫째 유파는 허백련과 손재형의 전통 유지파로 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먹의 농담을 중시하며 한국의 정서에 맞는 편안함과 여유로운 느낌의 표현이 특징이 다. 둘째 유파는 민영익, 김규진, 김용진, 서병오가 주축이 된 중국 신문인화 영향파로서 홍익대와 계명대 그리고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문인화의 현대화 작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금석학의 영향으로 중봉의 필법과 강한 채색, 새로운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셋째 유파는 김용준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신남화 영향파로서 서울대에서 수묵화 위주의 작업을 중심으로 현대미 술을 수용해가며 다양한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서울대출신 의 작가군의 고갈로 현재는 영향력이 미미한 상황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문인화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세개의 유파로 발전하여 독자적이고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한국 문인화단을 이끌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성행하였던 문인화는 그 정신성과 수묵의 운치 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지성과 철학이 미술과 결합된 문인화는 한국의 중요한 문 화유산으로 미래의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주지하듯이 기존의 한국 문인화에 대한 연구는 미술사가나 미술평론가들이 고전 자료를 중심으로 한 화론적(畫論的)인 내용이나 한국 현대문인화의 문제점 분석 등 관념적인 내용의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국 현대문인화의 본질(本質)을 중시하는 관념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논자가 미술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인화의 실존(實存)을 통한 한국 현대문인화를 전통적 경향과 현대적 경향의 작품으로 분석하여 한국 현대문인화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엄밀하게 말해서 작품의 성향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오해의 가능성이 크다. 또 같은 작가라고 해도 각각의 작품의 내용과 방향성은 세부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문인화를 전통적 경향과 현대적 경향으로 나누어 구분할 것이다. 구체성에서 멀어진 대신 지극히 단순함이 갖는 이점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문인화를 구조적으로 개괄함으로써 복잡하고 다양한 작품들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한국 현대문인화에 대한 기본 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은 오늘날 ‘단색화’로 명명되는 한국 추상화의 한 경향에 대한 세 개의 반성적 질문을 던 지고,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자 한다.
첫째 질문은 단색화를 진정 독자적인 유파로서, 긴밀한 이념과 그 실천의 집약체로서 형성된 한국적 미술운동 또는 유파로 볼 수 있는가이다.
둘째 질문은 오늘날까지 관례적 정설로 자리 잡아 온 견해로서 ‘단색화는 진정 한국성 또는 한 국적 미의 반영인가’이다.
셋째 질문은 단색화의 거의 공식화된 영문표기인 ‘Dansaekhwa’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담론 은 타당한가이다.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은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시절 제작한 화첩이다. 영조 18년(1742) 10월 보름날, 임술년을 맞아 경기도관찰사 홍경보가 경기 동부지역을 순시 중에 삭녕 우화정으로 경기도 관내 최고의 시인 연천현감 신유한과 최고의 화가 양천현령 정선을 불러들여 연천의 웅연까지 뱃놀이를 즐겼고, 정선은 이 이벤트를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두 점으로 그렸다. 그림의 제목대로 삭녕 우화정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과 웅연에 도착하여 닻을 내리는 장면을 각각 담은 것이다. 이 모임은 같은 임술년(1082)에 가졌던 북송대 문인 소동파(蘇東坡)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660년 전의 고사(故事)를 추모하여 재연한 행사였던 셈이다. 이를 밝힌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 ‘의적벽부(擬赤壁賦)’ 일부, 그리고 정선의 발문(跋文)을 합하여 꾸민 서화첩이 《연강임술첩》이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화첩본 이외에 새로이 2011년 11월 필자가 참여한 동산방화랑 기획전에 또 다른 《연강임술첩》이 공개되었다. 정선이 화첩의 발문에 밝힌 대로 세 화첩 가운데 두 번째가 출현한 셈이다.《연강임술첩》의 〈우화등선〉(도6)과 〈웅연계람〉(도7) 두 폭은 소동파 적벽부 관련 고사도이자 실경산수화이면서, 동시에 경기도관찰사의 선유 행사를 담은 기록화이다. 옆으로 긴 화면을 적절히 소화한 대가다운 구성방식을 보여준다. 고운 비단에 비교적 강한 먹을 쓰고 옅은 담채와 먹의 농담으로 늦가을의 정취가 살짝 감돌게 그렸다. 강변의 절벽과 암봉(岩峯)은 북종화풍인 농묵의 부벽준(斧劈皴)을, 먼 토산과 근경언덕은 피마준(披麻皴)과 태점(苔點)의 남종산수화풍을 구사했다. 남북종화풍을 조화시켜 임진강변의 풍광을 그렇게 담아낸 것이다. 겸재가 통상 현장사생을 거의 하지 않았듯이, 아마 두 점도 관아에 돌아와 기억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했을 것으로 본다. 실경그림과 실경현장을 비교하기 난감할 정도로 이상화 시켜 놓았다. ‘의취(意趣)를 살리며 외형 닮기에 소홀히 했다’는 당대 문인 이하곤(李夏坤)의 지적을 실감케 하는 진경작품이다. 그리고 좌우로 긴 풍경에 행사장면과 그 주변 등장인물이나 경물들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기록화적 성격까지 적절히 살려놓은 명작이다.
The memory of the Korean War is about the time period when people lived toughly during evacuation, due to being exposed to the natural climate such as intense cold or heat without any protection, leaving their comfortable home and living in temporary built shelters which were barely enough to avoid the wind. ‘Death is concealed and only the figures of evacuation for survival were expressed, just as how the government ordered. Since the experience of the battlefield is personal and fragmentary, that is broken into pieces, it does not have compatibility. As war is a distorted experience that cannot be placed in a big picture, it is not possible to take a view of the war’s big picture. Having this individualized experience as a common collective memory is an issue and it is the will that people tries to pursue. The reason why the evacuees from north to south, and as well as from the south to further south were all able to be adopted as the theme of artworks due to the military action that emptied the occupied territories of the North Korean Army under the forced removal command. In such situations, the natural state of the ‘snow’ was like a symbol of the 1.4 Recession. The group of people who were thrown into the intense cold displaced the war damage of loosing their base livelihood, and symbolized the obedient citizens who faithfully follow their government’s command. The figure of advocating anti-communism is projected as a figure of a refugee during cold winter-time and it contains ones past which he or she obeyed its own country’s commands. Evacuation, especially the evacuation during the winter is a visual device that can confirm these kinds of country’s command. The consequences were same for the artists as well. Therefore, the situation being communal could be found due to the individual experiences during war are ideological. The image of the refuge shown in the picture played the role of strengthening the consciousness of defecting to South Korea into the meaning of the ‘Finding Freedom.’ I would like to express that the reason of them leave their home during the harsh winter is in order to avoid the oppression of the Communist Party. The evacuation that people went through was not to ‘Finding Freedom’, but ‘To Survive’. Later, this evacuation has been imprinted as a behavior of choosing free Republic of Korea, which was an ideological issue. Anti-communism was the rule of survival in South Korea society, and people have the tendency to remember what they want to remember. As it is not the people who possesses an incident, but the memory that possesses ones, people cover their memory with disguised plots in order to forget the violence and to live a different prologue. They share the incident of violence as a hurtful memory. The tragedy of the Korean War was the result of Ideology and being in between the powerful nations’ rights, but the violence during the war has been depicted as a natural disaster, which was the evacuation in heavy snow.
This present study suggests a wider view of our ancestors' food culture by examining the generality and peculiarity of the food culture of the Chosun Period by associating the culture with genre paintings made in the 18th~19th century in Korea. People in the Chosun Period outwardly advocated the Confucian idea reflecting the life philosophy of Chinese. However, the vitality of common people's frank and simple lifestyles saturate genre paintings and display Korean food culture and sentiments of the age. Initially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of food sociology through Namjong literary artists' paintings. The meaning and philosophy of drinks are considered in relation to the trend of declining tea culture among scholars in the mid-Chosun Period with the policy of promoting Confucianism and oppressing Buddhism. Secondly, this paper investigates the background of genre paintings in the late Chosun Period, and examines the unique food culture of Koreans appearing in paintings, particularly with regard to the abundance and variety of seasoned vegetables appearing in genre paintings, our ancestors' sentiment appearing in milk-gathering painting, humanity in guest reception, food culture and view of nature in farm villages, fishing life history, food distribution culture, soybean-curd culture, etc.
This study is resource planning of painting lines in Korean motor company using simulation techniques. The painting lines have bottle neck problems that is considered production capacity, number of lines and so on. The alternative solutions is decided by the result of simulation techniques. This Paper is focused on resource planning using simulation techn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