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학 전통은 서구의 플라톤과 동양의 베다로부터 그 오랜 궤적을 이어오고 있다. 예술이든 문학이든, 이 두 영역은 경험과 상상력 속에서 아름다움의 향기를 간직해 왔으며, 이러한 철학은 동서양 모두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동양과 서 양 문학의 고전 텍스트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는 상호텍스트성 의 통로를 열어준다. 인도의 대표적 철학서인 바가바드 기타는 만물에 내재된 절대 적 자아의 원리를 수호하며, 영혼은 불멸의 성질 안에서 존재하고 지속된다고 본다. 본 논문은 자아의 아름다움이 인식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경험의 진실에 대해, 서 구 사상가들과 고대 인도 철학서들이 제시하는 논거와 개념들을 고찰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가바드 기타와 W. B. 예이츠의 작품은 해당 주제에 대해 풍부한 사유 의 장을 제공한다. 본고는 이러한 미학적 연관성과 그 효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본고는 에후드 보드너의 학문적 연구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 T. S. 엘리 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1915)와 W. B. 예이츠의 탑 (1928)에 투영된 노 화와 노화하는 자아를 재/조명한다. 노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태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서구 사회에서 긍정적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그 시각이 부정적 으로 변화된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두 작품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20세기 초 영문학과 노년학을 가로지르는 학제간 연구로서 이 글은 노화를 바라보는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사이의 변화된 태도를 그 중심부에 위치시켜 엘리엇의 프루프 록 과 예이츠의 탑 에 대한 다시 읽기를 수행한다.
예이츠는 헤르네의 알에 인간의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성취되는 수숩 티와 투리야 상태뿐만 아니라 신과 합일 과정을 인도 사상으로 재현했다. 이 극작품은 아일랜드 역사와 신화를 바탕에 두고 인도 사상을 상징과 비유로 중첩시켜서 노래한 희비극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이 작품에서 초현실적 분위기, 장난감 당나귀, 역동적인 노래와 춤, 냉소적인 유머 등의 사용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이 수숩티 상태를 거쳐 투 리야 상태에서 신과 완전하게 합일되는 과정을 깊이 숙고하게 했다. 코노트 왕 콩갈의 삶과 환상, 헤르네의 여사제 어트랙타의 신인 합일 과정은 현대인들에게 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의 중요성을 각성시키는 동기를 부여했다. 그래서 예이츠의 헤르네의 알은 관객들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깊이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 간을 갖게 한다.
본 연구는 예이츠의 연옥을 대순사상의 원(寃)과 한(恨) 개념을 활용 하여 재해석한다. 이 희곡은 어머니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노인의 폭력적 시도를 통해 세습된 죄의 파괴적 순환을 드러내며,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비극을 반복하게 됨을 보 여준다. 예이츠가 비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러한 갈등의 순환으로부터의 해방은 인간의 폭력적 노력보다는 통합적 해결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시사한다. 이에 비해 대 순사상은 해원상생(解冤相生)의 원리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건설적 길을 제시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예이츠의 “존재의 합일” 개념과 해원상생의 법리를 비교 분석함으로 써, 예이츠의 비전을 중심에 두되 양자가 모두 순환적 갈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 고 있음을 논증한다.
본 연구는 아일랜드 시인 W.B. 예이츠와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 가 역사적 대재앙을 아포칼립틱한 상상력으로 다룬 시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다. 두 시인은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각각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 서 유럽 문명이 붕괴되는 역사적 대격변을 목도하였고, 그 시기에 각각 아일랜드독립 전쟁과 내전 그리고 나치의 유태인 게토 파괴와 바르샤바 봉기 등을 겪으면서 그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역사적 현실을 아포칼립틱한 상상력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 이 있다. 대재앙주의나 종말론은 현재의 문명이 다른 적대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문명 으로 대체되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생각이다. 예이츠의 경우에 반그리스도교적이고 자 본주의적이고 기계적인 사고에 기반한 문명으로 대체되는데 대한 우려이고, 미워시의 경우에는 종족 말살의 폭력을 서슴지 않는 나치와 전체주의적인 소비에트의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유럽과 자국의 문명이 붕괴되는 위기 앞에서 두 시인의 시에서는 불가항 력적인 폭력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 불확실하고 비관적인 미 래의 전망 그리고 폭력의 영속성에 대한 명상과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와 죄의식 및 고통 등의 다양한 반응이 초현실적인 상상력과 독특한 재현 방식으로 드러나 있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저술 기간 동안 아일랜드 가톨릭 중산층과의 관계 변화를 물질주의, 갈등, 공존의 주제에 집중하여 통시적 연구로 제시한다. 앵글로-아일 랜드계 출신인 예이츠는 문화 민족주의를 통해 아일랜드의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톨릭 중산층의 물질주의와 몰예술성을 비판하며 대립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갈등 은 1913년 9월 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예이츠의 비판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1916 년 부활절 봉기를 계기로 예이츠는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자들의 희생에 대해 복합적 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1916년 부활절 에서 예이츠는 봉기 지도자들에 대해 존경심 과 회의를 동시에 표현한다. 이후 다시 찾아간 시립 미술관 에서는 과거의 영웅들과 친구들을 회상하며 그들이 아일랜드 민족정신의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 다. 본 연구는 아일랜드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대한 예이츠의 반응을 추적하고, 그가 어떻게 시를 통해 사회적 대립을 넘어 공존과 문화적 통합으로 향했는지를 분석한다.
예이츠(W. B Yeats)의 모드 곤(Maud Gonne)에 대한 평생의 사랑은 널 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삶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모드의 의붓딸인 이 졸트 곤(Iseult Gonne)에 대한 그의 애정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이 측면은 보다 깊이 있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졸트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깊고 지 속적이었으며, 그 사랑의 강렬함은 그의 많은 작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주목 할 만한 것은 예이츠가 종종 이졸트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써 댄서의 이 미지를 자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그녀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반영한다. 반복되는 이 상징은 예이츠가 이졸트를 향해 가진 감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에서 이졸트와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사 랑 시에 담긴 감정을 보다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W. B. 예이츠의 유산과 멜리스 베스리의 소설 흩어진 사랑에 서 나타나는 뼈의 상징적 공명을 탐구한다. 소설에서 예이츠의 유령은 그의 삶, 예술, 그 리고 자신의 유해라는 수수께끼 같은 운명을 되새기며 지속적인 주제들을 반추한다. 뼈의 모티프는 사랑, 죽음, 그리고 기억의 교차점을 포괄하는 서사적이고 은유적인 축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논문은 베스리가 예이츠의 미완의 열정, 특히 모드 곤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재구성하며 그의 정체성의 더 넓은 문화적, 역사적 차원을 어떻게 탐구하는지를 살펴본다. 예이츠의 유해 발굴과 재매장에 얽힌 논란은 예술적 불멸성과 신체의 덧없음 사이의 긴장을 심화시키며, 이는 아일랜드의 복잡하고 종종 단절된 역사 적 서사를 반영한다. 예이츠를 현대 문학적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베스리는 그의 비전을 확장하면서도 변모시키며, 사랑, 상실, 유산에 대한 예이츠의 사색을 현대적 맥락에 녹여 낸다. 이 논문은 베스리의 소설이 뼈를 기억의 매개체로 부각시키며 예이츠의 시적 상상 력과 그녀 자신의 재해석 사이의 다리를 놓는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는 예 이츠와 베스리가 공유하는 죽음, 역사, 그리고 예술과 감정의 초월적 힘에 대한 탐구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흩어진 사랑 은 예이츠의 사랑의 유산 을 재구성하며, 그 자체로 그 유산의 본질적 일부가 된다.
본 논문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New Realism)을 통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B. Yeats)의 시를 재조명하며, 그의 상징들이 지닌 자율성과 내재적
의미를 탐구한다. 가브리엘의 ‘의미의 장(fields of sense)’ 개념은 예이츠의 상징을 개
인적 혹은 문화적 맥락의 반영으로 제한하는 인간 중심적 해석을 넘어, 상징이 인간
인식과 무관하게 독립적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예이츠의 상
징적 세계를 다차원적 실재로 위치시키며, 그의 역사적 현실과 신화적 상상력의 교차
를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가브리엘의 철학은 예이츠의 시에서 자율적 실재를 발견하
며, 시적 의미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와의 만남으로 재정의한다.
본 연구는 예이츠의 시에 나타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제를 조사하여 니체가 예이츠의 문학 작품에 끼친 상당한 영향을 강조한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비교 분석을 통해 예이츠 시의 실존적, 철학적 주제를 조명하면 그들 간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본 연구는 “권력에의 의지,” “영원회귀” 등 니체의 주요 개념에 대한 개관을 시작으로, 예이츠의 시에서 이러한 주제가 나타나는 사례를 살펴본다. 이 분석의 핵심은 역경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초연함을 유지하는 슈퍼맨의 묘사를 통해 니체가 강조한 자기 극복을 반영하는 실존적 투쟁에 대한 탐구이다. 예이츠의 시에서 니체적 개념을 조사해 보면 철학적, 실존적 탐구에 대한 니체의 중요한 영향이 드러난다.
예이츠는 헤르네의 알에 고대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를 극 형식으로 각색하여 소포클래스처럼 신 중심 사회가 인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과 인간의 자아 완성을 노래한다. 코노트 왕 콘갈과 타라 왕 이드는 헤르네의 알을 놓고 전투를 벌이며, 이후 타라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콘갈 왕은 이드 왕을 죽이고 헤르네의 알과 헤르네의 신부인 어트랙타를 차지한다. 헤르네의 알은 피지배국가가 아닌 지배국가가 갖는 제국의 힘과 왕권을 상징한다. 또한 콘갈 왕은 아폴론 신탁과 같은 그레이트 헤르네의 저주에 따라 바보 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예이츠는 콘갈 왕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일랜드 영웅문화를 재조명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치를 깊이 숙고해 보게 한다.
예이츠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인 변신(Metamorphosis) 은 현실의 가혹함으로부터 위안을 제공한다. 아일랜드 유산에 뿌리를 두고 전설과 민 간 전승에 둘러싸여 자란 예이츠는 변신을 상징적 탈출구로 활용하여, 「흰 새」, 「레다 와 백조」, 「비잔티움으로의 향해」, 「메이브 여왕의 노년」, 환영의 바다 등의 작품을 통하여 덧없는 삶 속에서 영원한 사랑의 주제를 탐구한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변신 사용의 예를 분석하고, 존재의 덧없는 본질에 맞서는 그의 의도와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이츠는 성실한 연구와 주변 철학자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하여 플라톤과 플로티누스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키웠다. 특히 플로티누스의 철학 체계인 신플라톤주의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널리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통찰력을 준다. 예이츠의 신비주의와 비교가 주목을 받아온 반면, 예이츠의 시에서 신플라톤주의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시, 특히, “The Tower”에 얽혀있는 이러한 주제들을 밝히고자 한다. 예이츠는 “The Tower”에서 풍부한 상징주의와 우화를 사용하여 이 시를 신플라톤주의를 탐구하기 위한 이상적인 장으로 만들었다. “The Tower”를 통하여, 영혼의 상승, 물질적 한계의 초월, 지상과 천상의 상호 작용이라는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적 주제들이 탐구되어질 수 있다. 시 속의 탑은 신플라톤주의의 핵심인 더 높은 진리를 향한 영혼의 추구와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의 연결을 상징한다.
예이츠와 히니는 아일랜드의 호수와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어부의 이미지를 시적 글쓰기에 활용한다. 예이츠의 「물고기」와 「어부」는 삶의 희망과 불안을 썰물과 밀물로 탐구하며 삶의 지혜를 어부를 통해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히니는 「송어」, 「농어」, 「연어잡이가 연어에게」에서 바다와 호수의 생태적인 면과 이상 및 현실의 경계를 접목하여 해당 어류들이 사이를 치열하게 넘나든다. 히니의 물고기는 장어처럼 바다와 강의 경계를 상징하고 물과 흙 이미지의 결합인 진흙과 연결된다. 예이츠의 물고기와 어부는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이상향을 향해 쌓아 올린 탑과 같다면, 히니의 물고기와 어부는 물과 흙의 경계에서 과거 기억과 현실, 그리고 시적 상상이 어우러져 균형을 유지하려는 수평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글은 예이츠와 디킨슨의 집을 프로이트의 언캐니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프로이트는 어떤 사건이나 개인의 심리적 경험인 언캐니의 개념을 단순히 신비한 것이 아니라 기묘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구체화한다. 예이츠와 디킨슨에서 익숙한 집은 불안하고 섬뜩한 맥락에서 자주 마주쳐져 자아에 환원될 수 없는 불안감을 낳는다. 구체적으로 본고는 예이츠가 『연옥』에서 현실의 불안과 혼란, 절망의 상징으로서 집을 노인이 표상하는 방식, 그리고 디킨슨이 여성의 역할이 강요되고 억압되는 공간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그녀의 시에서 집을 매개로 자신의 과거를 은폐하고 억누르는 상황은 분열된 자아, 낯선 또 다른 나를 마주치게 한다. 예이츠와 디킨슨에게 언캐니 집은 억압되어 실현되지 못한 자아의 파편들이 잠복하여 출몰하고 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공간이다.
예이츠는 집과 후손들, 그리고 노년에 대한 네 편의 기도시를 썼다.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하면서, 결혼은 그에게 가정과 가족 그리고 마음의 안정감을 선사했다. 우선, 그는 결혼한 아내를 위하여 투르 발릴리 탑을 구입하고 수리했는데, 이 탑은 그의 후기 시들에 많은 시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1918년 발릴리 탑으로 이사하면서 「내 집에 들어갈 때의 기도」(1918)를 썼다. 그리고 「내 딸을 위한 기도」(1919)와 「내 아들을 위한 기도」(1921)에서 딸과 아들의 행복과 안전을 기원했다. 딸을 위한 기도는 이상적인 여인의 삶을 위한 미덕과 금기 사항들로 채워진다. 아버지로서 예이츠는 아직 힘없고 어린 아들의 건강과 안전만을 간절히 염원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가는 영역은 예이츠가 명상했던 일관되고 진지한 주제였다. 비록 시간의 흐름으로 노년에 이르렀지만 진중하고 열정적인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노년을 위한 기도」(1934)에서 염원했다. 예이츠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한 남자로서 인간적이고 솔직한 진정성을 기도 시에서 보여준다.
본 연구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이끈 W.B. 예이츠와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관계 고찰을 통해, 그것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한다. 두 사람은 1894년 처음 친구로 사귄 이래로 서로의 작품을 최초로 읽어주는 독자가 된 후 40여 년간 친구에서 연인, 다시 친구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먼저 예이츠 시에 언급된 올리비아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를 추적할 것이다. 아울러 작가로서의 교유는 예이츠가 추구했던 신비학이 올리비아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움이 머문 순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본 논문은 두 사람 간의 절친한 친구, 연인, 작가로서의 그들의 관계를 상호 중첩된 관계의 시학이라 명명한다.
T.S. 엘리엇은 전혀 새로운 시인으로서 20세기 영미시에서 우리가 전혀 본적이 없는 시를 쓴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유럽, 특히 프랑스 시의 전통에 확고한 뿌리를 둔 시인이다. 반면, W.B. 예이츠는 자신이 상징이라고 정의한 시의 특성을 추구한 시인으로 영시나 아일랜드 시에서 금세기에서 조차 어떤 시인도 그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엘리엇에 영향을 준 프랑스 시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엘리엇은 프랑스의 새로운 시인들과 접촉하게 되어 독특한 시를 쓰게 된 것은 명확한 것 같다. 엘리엇은 시인 코르비에르에게서 프랑스 시인들이 무시하고 가치를 보지 못한, 프랑스 시의 전혀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구하의 책에서 프랑스 시의 영향을 다룬다. 특히 트리스탄 코르비에르의 엘리엇에 대한 영향을 논하다. 코르비에르는 당시 프랑스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 무명시인이었다. 엘리엇은 이 시인에게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시에 잘 사용하였다. 구하는 이점을 다룬다. 반면 예이츠는 불어시를 읽을 수 없었고 프랑스 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예이츠는 그의 산문에서 엘리엇의 새로움과 위대함을 지적한다.
도와 일본의 미학은 예술적 적합성에서 유사한 미적 보편성을 나타내며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인도와 일본 미학의 예술적 목적은 덕목, 즉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술의 미적 감상은 인도의 미학이 브라만의 직관적인 빛을 드러내는 동양의 텍스트적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본의 미학은 공의 신비한 그림자를 찬미한다. 절대의식의 형태로 동양적 주체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브라만은 절대적인 통일성을 추구하는 반면, 공은 허무주의적이지 않으며 종종 오해되는 불합리한 생각도 아니다. 그것의 실현은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통일성, 연속성, 조화 및 마음 챙김을 발생한다. 동양적 관점은 형태와 무형태의 초월적 의식에 의해 한계를 지니는데, 이것은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지각하는 가운데 명상한다. 이 논문은 T.S. 엘리엇과 W.B. 예이츠의 시를 통해 그들의 예술이 어떻게 빛과 그림자의 미학을 드러내며 동양의 철학적 의미를 창의적으로 반영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시가 어떻게 초월적이고 세속적인 속성으로 열반에 도달하는지 탐구한다.
이 논문은 프랭크 페이(1870-1931)와 윌리 페이(1872-1947) 형제가 예이츠의 드라마 발전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다. 1890년대 프랭크 레이와 윌리 페이의 다양한 아마추어 극단은 아일랜드 국립극단(Irish National Theatre Society, 1902)을 탄생시켰고, 그들 중 하나가 최초의 애비극단으로 발전했다. 애비극장의 설립에 형제가 한 역할은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그들의 명성은 때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제의식을 개진한 문학 및 연극 역사의 서사에 달려 있다. 예이츠는 1923년 스웨덴 아카데미 연설에서 ‘우리의 최고의 남자 배우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무대에서 변호사의 사무원이었고, 또 한 명은 흑인이 관리하는 극단에서 아일랜드를 여행했던 노동자였다’(CW3 413). 이러한 깔보는 듯한 언급은 페이 형제에 대한 이후의 평가에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은 애비극장의 기록 보관소와 프랭크 페이 기록 보관소 및 미발표 강의를 참고하여 더블린의 문학적 환경 내에서 페이 형제이 갖는 위상을 재고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