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이후 중국의 종교계는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종교계는 변화된 사회정치적 환경 속에 생존을 위한 타협점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각 종교의 특성에 따른 규장제도라는 틀 속에서 종교활동을 보장받게 되었다. 도교 또한 정부의 5대종교의 제도적 정비에 따라 이에 준하는 규장들이 만들어지고 그 규장은 중국도교의 조직적 체계와 신앙활동을 규정하는 핵심적 구속장치가 되어 종교활동의 당위성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도교는 민간에서 자생한 토착 종교인데 종교집단로 성장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정치 권력과 길항관계를 통해 늘 자구책을 모색해왔다. 시대에 따라 권력의 보호를 받아 교세를 확장하는가 하면 때로 권력의 박해를 받아 교단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어쩌 면 도교의 계율은 이러한 상황논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도교가 처한 종교적 상황에서 도교 계율의 생성원리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개혁개방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도교 관련 법규들이며, 이러한 도교협회의 규장제도를 통해 현재 중국 도교의 실태와 종교적 위상을 탐색해 볼 수 있다.
송대는 중국 문화사의 중요한 시기로 간주되어 서민문화(市 井文化)가 발달하고 도시가 번영하며, 정치하고 우아한 사대부 문화나 아문화(雅文化)가 전면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전통 유학의 사상은 끊임없이 갱신되었고, 아울러 이학의 흥기와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 시기의 문예 미학 이론과 품평 기준도 시대의 미적 가치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 특히 송대의 서예은 위진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법도와 풍격을 계승하여 오대십국 시기의 기법을 전수받아 전인처럼 엄격한 법도를 추구하지 않고, 서예의 의취(意趣)와 예술 풍격이 다양성을 더욱 중시하여, 유학의 체계까지 포함하였다. 단순한 윤리적 의미를 우주 본체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주관적 표현을 강조하고 예술을 인간 정신의 품격을 상징으로 삼아 서예의 문화적 품격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전통 서론에서 서예 품평의 이면에는 옛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숨어있는데, 그중에서도 주요 참여자인 고대 문인사대부 집단의 사고방식, 가치관념, 심미적 취지 등, 특히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아정한(雅正) 사회관은 서예가의 작품과 개성적인 풍격에 대한 품평에 자연스럽게 작용한다. 송대의 문인사대부들은 서화이론에 탁월한 공헌을 하여 원시적인 유가의 윤리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의 생명체험과 예술실천을 결합하였다. ‘문도통일(文道統一)’ ‘기도병진(技道並進)’ 등을 추구하는데, 이 시기의 주류인 ‘상의(尚意)’ 서풍도 유학의 심성 화와 ‘내성지학(內聖之學)’이 문예의 심미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송대의 서예 풍격과 이론의 품평 사조는 시종 송대의 이학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이학(理學) 관점에 따라 서예에 대해 품평하고 윤 리적 의의를 지나치게 중시하면서 서예의 예술적 가치를 소홀히 한다면 서예가의 정서와 상상의 자유의 표현을 저해될 수밖에 없고, 이는 서예의 예술성에 대한 무시이자 훼손이다.
본고는 1930년대에 루쉰과 취추바이가 합작한 잡문의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 이다. 루쉰과 취추바이의 공동 잡문 미학은 ‘집단주의’와 ‘예술의 정치화’로 요약할 수 있다. ‘집단주의’는 ‘지식인의 대중화’로 개괄할 수 있는데, 이는 대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의 우월감을 버리고 거대한 군중의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문학과 혁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 잡문의 ‘예술의 정치화’는 ‘예술성을 띤 논설(포이통)’이라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공동 잡문이 사회의 중대한 일상적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매우 적합한 문체로 개발된 것이며, 예술성에 기초한 무기로서의 글쓰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Based on analysis of connotation and measurement scales of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dimensions of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toward Korean university and impact of each dimension on total satisfaction were discussed in this study. First, through literature review on measurement of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and depth interview with 12 Chinese students, a four-factor model reflecting dimensions of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was constructed. Second, through regression analysis of 224 data collected by questionnaire survey, influences of four dimensions of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on total satisfaction were revealed. The results showed that international student satisfaction can be divided into four dimensions, including education service satisfaction, administration service satisfaction, facility service satisfaction and support service satisfaction. Education service satisfaction is the most influential variable on total satisfaction, followed by support service satisfaction, facility service satisfaction and administration service satisfaction.
After entering the era of Xi Jinping administration, China's 3.0 version foreign policy has been continuously developing in practice. Especially since 2017, China's 3.0 version foreign policy continued to have new changes as follows: First, it emphasized the “Foreign Policy of Neighboring Countries” and put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into the Communist Party Constitution. Second, added “Adhering to the Path of Peaceful Development”, “Adhering to the Win-Win Strategy of Opening up” and “Promoting the Building of a Community with a Shared Future for Mankind” to China Constitution. Other than that, “New Concept of Asia Security” and “Bottom-line Thinking” also gradually are implemented in China's diplomatic practice. In the volatile international society, there have been upstreams against globalization and regional integration, of which Modi administration is one example. Modi pushed for Hindu nationalism, which not only set off drastically religious nationalism trend in the domestic, but also led to spillover in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Indian military respectively crossed the border into China and caused the Dong Lang Issue and the Galvan Valley Conflict. These issues seriously affected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challenged the implementation of China 3.0 version foreign policy. This paper focuses on how the important concepts in the 3.0 foreign policy were applied to the diplomatic practice against India, and how China avoided the escalation of the situation. From the paper, we can find that China maintained a high degree of restraint and insisted on solving the problem through negotiation and consultation in the Dong Lang Issue. In the interlude between the two issues, China actively promoted the interaction between two leaders and sought to build a momentum of peace and mutual benefit. In the Galvan Valley Conflict period, China stuck to the “Bottom-line Thinking” at well as adhered to the “Path of Peaceful Development”. China in the future will still need to adhere to these 3.0 version foreign concepts-- “the Great Power Relations”, “Bottom-line Thinking” and “Amity, Sincerity, Mutual Benefit and Inclusiveness in China's Neighborhood Diplomacy”. China will safeguard its core interests and maintain a good foreign environment in order to contribute to peace and development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이 글의 목적은 독일통일과정에서 통일의 견인차적 역할을 해 온 동서독 주민들에 대해 분석함과 동시에 이에서 취할 수 있는 한반도 통일의 방법을 도출하자는 데 있다. 즉 동서독 주민들의 역할이 통일 독일을 이룬 단초적 선례가 되는 만큼 통일 한국에서도 남북한 주민들의 역할론이 무엇인지를 고찰하자는 것이다. 독일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주민들이 해낸 역할론은 남북한 주민으로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 벤치마킹의 대상 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비정치적 분야의 대중행태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의 연구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는 특히 동서독 주민의 역할 분석은 전개과정상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이후를 구분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반면 남북한 통일에의 함의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성을 아직도 공고한 대립 상태의 한반도의 DMZ와 연결시키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동서독 통일은 정상회담의 댓가가 아닌, 동서독 주민들의 자발적, 비정치적인 통합의 산물에 의해서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조선 후기 노론⋅호론계의 재야 유학자인 함인재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경학의 세계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정국채가 남긴 문집인 『함인재유고(단)』에 수록된 『논어』⋅『맹자』⋅『대학』⋅『중용』 방면의 기록들을 대상으로 한 검토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국 채의 경우 문자 학습과 병행된 가학적 연원에서 출발한 끝에, 차츰 논맹과 용학으로 이뤄진 사서경학의 세계로 진입하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경학은 정치한 담론들을 결집시킨 경전 해석학의 세계와는 대조를 연출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국채가 남긴 사서경학의 경우, 논의 전개가 극히 간략하면서도 일회성 수준에 그친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자주에 대한 비판적 언술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본격 적인 경전 해석학과는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함인재유고(단)』에는 『시경』⋅『서경』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할뿐더러, 여타의 경전들에 대해서도 극히 간략한 기록만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반해 사서경학 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의 언술을 남겼는데, 이는 정국채가 추구했 던 학문세계에서 사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준다. 특히 정국채는 『중용』에 큰 의미를 부여한 특징이 발견되며, 『논어』⋅『맹자』⋅『대학』의 경우는 그가 착지했던 사상적 입각점이 원시유학이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한편 정국채의 사서경학이 다소 단조로웠던 이면에는, 주자의 경전 해석학에 반기를 들기 어려웠던 노론계 학풍과도 무관하지 않았 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노론 호론계 유자였던 정국채가 선보인 사서 경학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연구 성과가 미미한 향반 계층의 지식인이 이룩한 경학적 수준의 한 실태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연구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기존 한국유학사상사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추이란, 이미 그 존재가 드러나 잘 알려진 중량감 있는 인물들에 국한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본연구는 알제리의 지전략(geostrategy)이 사헬-사하라 안보 확립의 주요한 변수라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사하라 사막 가운데 있는 사헬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척박하고 반정부 무장 단체, AQMI 같은 지하디스트 테러, 불법 이주 및 난민, 인신 및 마약 밀매 등이 여러 국가에 걸쳐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석유자원국이며 군사 강대국 알제리는 말리, 리비아, 니제르, 튀니지 등과 총 4,279km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지중해 를 가운데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그레브의 이슬람 문화와 사하라 이남의 기독교 문화와의 융합을 이끌 수 있는 지정학 중심이다. 따라서 알제리의 사헬 안보 정책은 서아프리카의 지속 가능한 안보 확립 및 지역통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알제리의 대 사헬 안보 정책은 전반적으로 실패했으며, 전통적으로 유지하였 던 주변 국가와의-모로코 제외-관계마저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알제리는 현실적인 외교정책을 구축할 명확한 지정전략적 비전이 없었으며, 특히 사헬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 외교’가 아닌 ‘정권 외교’였다. 이로 인해 사헬 안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G5 사헬에 불참하고 있는 알제리는 사헬 이웃 국가에 의해 그 어느 때 보다 고립되어 있다. 따라서 테분 (Abdelmadjid Tebboune) 신정부의 대 사헬 정책이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EU 다자주의 협력 외교에 관해 고찰하고, 최근 강조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EU 및 유럽 주요국의 전략을 분석하였다. EU와 미국은 실재하는 양측의 가장 큰 위협인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해 상호 협력 하 대응하여 다자적 구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본고는 EU·미 대서양 동맹 복원 전망에 관해 NATO를 통한 동맹의 강화 그리고 EU·미의 對러시아 및 對 중국 공동 대응 전략을 통해 복합적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유럽의 전통적 안보체계인 NATO를 통해 러시아 등 기존의 안보위협에 관해 재확인하였으며, 새 시대와 상황에 따른 위협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였다. 더불어 EU는 범대서양 동맹을 통해 안보 부문을 포괄한 기술 등의 범 이슈적 영역에서 EU-미국 간 협력이 상호작용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범대서양 동맹의 확증 강화는 중국의 선택지를 좁힐 것이며, 미중의 강력한 라이벌 관계에서 EU의 외교적 활동 영역과 역할을 넓힐 것이라 판단된다.
조선 시대의 유배는 주로 정치범에게 적용되었던 형벌이었다. 정치 상황이나 죄인의 신분 혹은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지도 결정되었다. 특히 조선 중기에 들어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배는 대부분 섬으로 가게 되었다. 유배는 현대와 달리 비리에 의한 것보다는 당쟁의 결과였으며 정치적인 속성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본 고는 이를 위하여 유배가 주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이를 조선 후기의 우봉 조희룡의 심미경계를 통하여 고찰하였다. 그는 여항문인화가로 임자도에서 19개월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육체적 정신적 시련과 한계상황을 극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처소인 만구음관 주변에 자생하는 대숲의 자연을 통하여 묵죽의 문인화에 천착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묵죽 문인화는 심미경계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묵죽의 심미경계는 독표성령(獨標性靈)의 심원미학(心源美 學)⋅자출기저(自出機杼)의 심장미학(心匠美學)⋅자성별구(自成別區)의 심득미학(心得美學)에 나아갔다. 심원의 미학은 조희룡의 독자적인 성령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심장미학(心匠美學)은 스스로 우러나와 이루어진 자출기저(自出 機杼)이다. 또한, 심득의 미학은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 자성별구 (自成別區)였다. 이와 같이 조희룡 묵죽의 심미경계는 심화 경지에 나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유배는 역으로 한 예술가에게 자신의 예술에 천착할 수 있는 기회도 주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문인예술은 유배를 통하여 그 깊이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역으로 이러한 측면 에서 살펴보면 유배문화는 우리 문화예술에서 하나의 선물이었다.
2021년 1월 20일 출범한 바이든(Joe Biden)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Donald Trump) 하에서 추진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 정책 에서 벗어나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중국 및 북한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지역 정세의 불안정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일본의 국익과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스가(菅義偉) 정권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정책과 북핵 문 제 해결에 적극 편승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인식 하에 본 연구에서는 일본의 대외정책이 일본 국가의 특수성과 미일안보체제의 제도적 규정력에 의해 미국에서의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다양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 작품의 해방 양상은 기독교 해방 서사의 원형이자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해방기인 「출애굽기」의 특징과 유사하다.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는 서로 다른 배경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는 다양한 차원의 억압으로부터 고통받는 타자를 해방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악(惡)은 다름 아닌 타자를 노예로 삼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욕구와 행동이며, 이에 맞서는 주인공 도로시의 역할은 오즈 나라에서의 모험 여정 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개인적으로 또 집단으로 ‘속박’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이 해방의 양상은 크게 물리적·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내재화된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 자기 속임수와 거짓 정체성으로부터의 해방의 특징을 보이며, 이 세 가지 해방의 통합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찾는 것이 자유이다. 이런 특징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로부터의 물리적 해방 후에 광야에서의 정신적 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 앞에 자신들의 참된 정체성을 인식해가는 『출애굽기』의 해방 여정과 맥을 같이 한다.
전(傳)의 형태를 띠고 있는 「우인효자군만전」의 시대적 배경은 고려말이며, 저자는 여말선초 성리학자 및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권근이다. 그는 증조부 권보와 조부 권준이 편찬한 『효행록』에 후서와 주해를 쓴 것으로 보아 유학 에 대한 박식함과 효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우인효자군만전」보다 앞서 발행되었던 설화형태의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효선편」에서 표현하는 효개념은 「우인효자군만전」에서 표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효를 서술함에 있어 설화와 전에서 표현하는 양상에서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위해 구성적, 기술적, 논리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예정이다. 효행설화에서 효를 부각시켰던 방법은 주로 중국인을 각색한 주인공이 연로하거나 병약한 부모님을 대상으로 효행하는 서정적 분위기와 효행은 곧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내용이었다. 반면 「우인효자군만전」에서는 주인공 설정의 탈중국화, 효행대상자인 부모 가 노약하거나 병약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탈서정화, 효행을 하면 복을 받거나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는 기복적인 결론에서 벗어난 탈기복화로 기술(記述) 적 표현이 발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효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우인효자군만전」에서 언급한 불효 10죄가 『효경』, 『명심보감』, 『맹자』 그리고 고려율을 적용했을 때 명백한 불효임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효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척도구로 불효를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려말 「우인효자군만전」에 시도된 새로운 양상들은 조선시대 『삼강행실도』의 발행에 등장인물과 발간목적에 영향을 준 동기가 되었으리라 사료되며, 새롭게 시도된 표현방식과 문헌을 통한 논리적 근거를 이용해 효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초 미국의 조 바이던 신행정부 출범은 한반도 정세 변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중의 전략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 신행정 부의 대중, 대북정책의 향방은 동아시아, 한반도 정책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1월에 열린 북한 8차 당대회 이후 사실상 김정은 외교정책의 2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북한의 대미·대 남전략 전개와 북한 비핵화 협상의 진전 문제는 한반도 정세의 향방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바이든 신행 정부의 출범에 따른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망을 중심으로 향후 우리 정부의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표정(瓢庭) 송병우(宋炳宇, 1874∼1944)가 조영한 익산 함벽정원림을 대상으로 문헌조사, 현장조사 그리고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원림의 특성과 전환기적 조영 양상을 추적한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정신세계의 소중한 결정체였던 누정문화가 일제강점기라는 정치·문화적 과도기에 어떻게 계승, 변동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전환기적 시대 문화가 지역의 근대 정원문화 담론(談論)에 어떤 역할을 끼쳤는지를 조명하고자 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함벽정의 입지와 규모 그리고 기능과 구조를 보았을 때 함벽정 일대는 별서원림으로 서의 성격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함벽정 지붕의 소재인 붉은색 자기와(磁器瓦), 기단·초 석·기둥의 형태, 계단 입구부의 장식성, 공포결구 수법, 사각기둥과 사분합의 문비(門扉) 그리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단청과 지붕 합각부의 ‘쌍희자(雙喜字)’ 길상문 등은 일제강점기 지역의 경제 강자가 보여줄 수 있는 전환기적 의장기법의 양상으로 파악되었다. 공간 및 시각구성 그리고 시설 배치 상의 전환기적 설계양상으로는 정자의 규모 및 암대(巖臺)를 활용하여 이루어진 축산(築山), 적극적인 읍경(挹景)의 조망처리기법 그리고 급경사지역에 형성된 5단의 화계(花階)에 적용된 돌쌓기기법을 들 수 있다. 또한 함벽정원림 조성 이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 아래 일제의 수리사업에 동조와 유지관리 과정에서 행해진 양버즘나무, 왕벚나무 등의 대체식재나 보완식재는 전통식재의 규범 혼란 속에서 나타나는 식재상의 전환기적 양상으로 추찰된다.
한국현대미술에서 예술적 아방가르드는 물론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시대로 1960년대를 주목한다. 그 시작점의 4․19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이정표와 같은 사건이었고, 청년 작가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였다. 정치 주체로 성장했고 또한 좌절했던 청년세대가 사회적 억압의 탈출구로서 미술현장에서 폭발시킨 매체 다양성은 반예술 담론으로 확장 가능성을 갖는다. 하지만 ‘저항’의 시기에 모더니즘 비평은 미술과 사회를 분리하며 시대의 전위에서 사회적 의미를 축소시켰다. 1960년 《벽전》에서부터 1970년대를 문 연 AG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고수된 모더니즘적 주류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본 논의는 시작된다. 저항의 시기에 평론가 이일이 제시한 ‘참여’의 화두를 중심으로 현실 인식의 간극을 살펴 ‘전위’의 의미를 환기한다.
본 연구는 노인장기요양기관들의 비영리 전환에 따른 잉여금 사용에 관한 규정을 살 펴봄으로써 향후 노인장기요양사업의 발전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인장기요양 기관의 비영리단체로의 전환과정과 회계규정의 변화, 잉여금의 사용 규정과 신설된 기타 전출금의 문제까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사회복지의 민영화 또는 시장화를 표방하던 노 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공공성 확보라는 정치적 구호에 영향을 받아 일관성 없이 운영되 어왔음을 확인하였다. 대표적인 것은 일반 사업자의 비영리단체로의 전환 및 사회복지 재무회계규칙 강제 적용, 인건비 지출비율 강제, 잉여금 사용의 규제와 용인의 반복 등이 다. 이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 책 추진이 필요하고 규제보다는 그간의 성과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음을 제언 하였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양국은 갈등과 경쟁, 그리고 협력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부침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시기 미국의 일 관된 대중국 강압 전략으로 미·중 간 긴장과 안정의 순환 고리는 끊어져 갈등이 최고조로 이른 채 머물러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경쟁을 넘어 미국의 가치에 대항하는 이념적 경쟁으로 규정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바이든이 제안했던 자유주의 국제주의에 기반한 협력의 외교정책과 상충된다. 이런 배경에서 본 연구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의 변화와 지속성을 규명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률 증가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원 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하였다. 미디어는 TV, 라디오와 같은 전파 매체와 신문,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의 형태에서, 접근성이 좋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다양한 플랫폼들의 등장은 수많은 콘텐츠들을 생산하였 다. 플랫폼들은 소비자들에게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손쉽게 제작하고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등 콘텐츠 소비와 제작의 접근 성을 더 용이하도록 하였고 1인 미디어를 발전 시켰다. 플랫폼과 콘텐츠의 종류와 형태 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콘텐츠 소비 시간도 크게 늘면서 미디어에 의한 문제점들도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가짜 뉴스의 범람과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과장된 선입견의 여러 행태들과 왜곡, 편향성들은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을 흔들며 정보의 혼란을 가속화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개인과 사회에게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기업의 경영 이윤과 같은 문제에서 객관적이지 못하고 자유로울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여 비판, 사고, 추론, 평가가 가능한 교육이 반드 시 필요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 소비자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하여 정보의 비판적 수용자세와 함께 올바른 미디어 활용 능력을 습득하여야 하고 이를 통한 미디어의 자율적 규제가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거로부터 그 사회의 사회상, 예술성 을 담고 있는 광고를 활용하여 흥미로우면서도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점들을 파악하여 어린이 및 청소년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교육자를 양성하기 위한 부분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승만 정부의 국회의원선거제도가 한국 국회의원선거제도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역사적 제도주의를 활용해 이승만 정부의 국회의원선거제도를 생성과정, 지속과정, 조정과정, 변화과정 으로 검토하였다. 첫째, 생성과정은 국회의원선거법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의 부재로 정당에 대한 인식의 부족하여 선거결과도 정당 보다는 무소속의 당선이 많았다. 둘째, 지속과정은 국회의원선거법에 미세한 변화가 있었지만 선거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셋째. 조정과정은 국회의원선거법의 변화보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당창당과 정당추천제의 도입으로 집권당인 자유당의 절대우위체제가 구축되었다. 넷째, 변화과정은 입후보자의 등록기간 단축과 기탁금제의 도입으로 무소속의 입후보자가 급감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선자도 정당소속이 대부분 이었으며, 집권당을 견제할 수 있는 양당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국회의원선거제도는 한국의 국회의원선거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에 대통령이 집권안정과 집권연장을 위해 국회 의원선거제도를 왜곡하였다는 부정적 효과도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