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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
        198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present an effective basic material and data for the future earth science education by analysizing earth science curriculum of Korean high school. The method used in this study is based on comparison and analysis of the related reference materials. The main subject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changing history of earth science curriculum and compare the Korean earth science curriculum revised in 1982 to the American and Japan curriculums. Based on these studies following suggestions are presented for the future earth science education; 1) The laboratory education in earth science should be more emphasized than lecture. 2) It is urgent need to publish laboratory manuals for students. 3) Well designed laboratory equipments and good quality kits of reasonable price should be supplied.
        4,000원
        183.
        1982.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농촌진흥청산하의 41개 병새충발생예찰소에서 1966년부터 1979년까지 14년간 조사된 이화명나방의 유살자료를 기초로 기상자료, 품종의 변천, 경종법의 변동, 기지 농업기술의 변천에 따르는 이화명나방 발생양상의 변동을 분석함으로써 금후 본 해충의 발생예찰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이화명나방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의 연구용 Model을 구성하는 기초로 삼고자 수행하여 다음과 같을 결과를 얻었다. 1. 이화명나방의 유살수는 벼 통일계 신품종이 재배되기 전인 1971년 이전에 비해 확대보급된 1972년 이후에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특히 1화기의 감소가 현저하였다.2. 이화명 나방의 1화기에 대한 2화기 유살량의 상대비율은 지리산 부근의 산간지와 추풍령 이북지방에서 높고 기타지방에서 낮은 경향을 보였으며 통일계 신품종이 보급된 1972년 이후 그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현상을 나타내었다. 3. 이화명나방의 유살일은 1,2화기 공히 동남해안지방에서 늦었고 중서부로 갈수록 빨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4. 1977년 이후 3개년간의 2화기 유살량, 2화기의 1화기에 대한 유살량의 상대비율, 그리고 2화기 유살일에 있어서 추풍령을 경개로 남북간에 뚜렷한 생태적 층화현상을 보였다. 5. 2화기 증식량은 6월과 7월중의 평균기온과 부의 상관을 나타내었으며 6월중의 강우량과도 부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한편 1화기의 증식량은 전년 9,10,11월 및 동년 3월중의 온도와 각각 정의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전년 9월초순의 강우량과 동년 3월의 강우량 및 5월의 습도와 각각 부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6. 이화명나방의 1,2화기 유살일까지의 유효적산오도는 상하 한림계온도 의 범위에서 년차변이가 이내로서 신뢰성 있는 추정이 가능하였으며 이 해충이 1새데 경과에 소요되는 적산오도는 Day Degree 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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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예수셩교문답󰡕(1881)으로부터 시작하여 󰡔셩경문답󰡕(1936/1937) 에 이르는 한 특별한 한글 문답서의 변천사를 현존하는 소장본들과 문헌적 증거들을 통해서 탐구한다. 초판은 만주에서 출판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만주와 한국에서 후속 개정판들과 재인쇄본들이 발행되었다. 모리스 꾸랑 의 󰡔한국서지󰡕(1894-1901)에 의해 처음으로 언급된 이 문답서는 한국기독 교에서 특히 19세기말과 20세기 전반기에 전도와 교육을 위해 사랑받는 문서가 되었다. 이 문답서의 원작자는 만주의 존 로스 선교사이며, 메리 F. 스크랜턴 선교사와 한국인 동역자들에 의하여 조선의 수도인 서울 방언으 로 크게 개정되었다. 원작 및 개정판을 이어서 많은 후속 판본들과 재인쇄 가 1936년 또는 1937년까지 뒤따랐다. 초판을 포함하여 원본이 일부라도 남아있는 8종의 판본들이 역사적 상황과 및 서지적 정보를 위하여 탐구되 었고, 9종의 재인쇄본들 역시 문헌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연구되었다. 판본 들에서 동일한 주제와 구조가 확인되어 연속성이 입증되었다. 신존재를 위 한 존칭법은 점차 한글에 적절한 방식으로 변화되었으며, 문법과 형식 차 원에서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고, 개별 판본들에서 특수한 변화들도 나타 났다. 문답서의 첫 부분을 다룬 이 연구는 향후 문답서 전체에 대한 역사 및 문헌적 연구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기독교가 이 문답 서를 어떻게 수용하였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이 문답서를 점차 배제해갔는가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185.
        2021.12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5세기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이후 이를 통한 한국어 표 기는 그 명칭을 비롯하여 음운과 형태 등의 여러 부문에서 다양 하면서도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 왔다. 이러한 표기의 변화는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따라서 한국어 표기법(또는 표기 규범)의 역사적 흐름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변화의 원리를 찾는 데 집중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훈민정음 모음자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자인 아래아(‘ㆍ’)의 표기상의 변화 과정을 기술한다. 이를 위해 한국어 표기법의 역사적 흐름을 문자의 명칭을 따라 훈민정음 표 기법과 국문 표기법, 언문 철자법, 한글 맞춤법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경우에서 문자로서의 ‘ㆍ’가 표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해 당시 의 표기 자료와 규범 등의 문헌을 통해 분석한다. 특히 문자는 음성언 어를 반영하지만 표기법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보수성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하여, ‘ㆍ’ 표기의 변화 과정을 문자의 보수성의 측면에서 해 석한다.
        186.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대한장로교회 신경의 변천과정과 장로교회 각 교단의 헌법에 수록되어 있는 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한국장로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한 인식을 연구한 것이다. 1907년에 제정된 대한장로교회 신경은 192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신경, 1934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신조로 이름이 변경되고, 1934년 수정과정에서 문구의 수정 및 단어의 추가나 삭제 등의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다. 해방 후 장로교회 각 교단은 대부분 1934년의 조선 예수교장로회 신조를 저본으로 해서 현대철자법에 맞게 수정한 후 헌법에 수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만 예장 고신 교단은 2011년 개정, 공포된 헌법에서 대한장로교회 신경을 삭제했으며, 예장 통합 교단은 1971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 서언을 축소하고, 승인식을 삭제했으며, 제12조의 내용 중 불신자가 최후 심판 때에 형벌을 받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현재 대한장로교회 신경은 역사적인 기원과 개정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이 헌법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여 이해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제정한 후에는 그것을 보편적으로 사용 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187.
        2021.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제6차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중학교 정보 교육과정의 변천 양상을 총론-각론 관계와 각론 차원에서 탐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해당 시기의 교육과정 문서(총론, 각론, 해설서 포함)를 연구 대상으로 문헌연구를 진행하여 정보 교육과정의 특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시사점을 도출했다. 중학교 교육과정으로 연구 대상을 한정한 이유는 보통 교과이자 단일 교과로서 정 체성과 체계 등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정보 교과는 도구 활용 및 실습 중심의 컴퓨터 과목으로 시작하여,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기점으로 컴퓨터 과학 기반의 도구-이론-소양을 지향하는 교과로 발전했다. 정보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총론 차원의 교과 의미 부여 및 편제 변화, 사회 변화 및 요구, 관련 기술 및 학문 변화, 구성주의 학습관 등이 있었다. 또한, 정보 교과의 입체적 이해 제공, 교과교육의 동질성과 명확성 확보를 위해 교과 해설서 제공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본 연구는 정보 교육과정의 포괄적 이해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향후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시사점과 비판적 검토에 유용한 관점을 제공했다는 의의가 있다.
        188.
        2020.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national parks of South Korea take up an area of 6,726 km2, which accounts for 6.7% of the national land. They are national conservation areas with their area made up of 59.1% of land (3,972.6 km2) and 40.9% of seawaters (2,753.7 km2). And in 2019, the national parks are classified by type into 17 mountainous, 4 maritime or coastal, and 1 historical site. Here, the maritime or coastal nation parks are lately spotlighted as landmarks in maritime tourism. However, the area of the maritime or coastal national parks is continuously dwindling due to conflicts between the residents in the parks and Korea national park service, the continued pressure with respect to the regional tourism development and private investments, and the abolition of parks in relation to allegedly breached private properties. This study identifies the issues with the operation and management of national parks as caused by the abolition of parks and the reduction of areas, and goes from there to do research with the aim of suggesting an institutionalized improvement plan with a view to more useful operation and management of the maritime or coastal national parks. As a result, the natural resources in the sea and on land should be surveyed again to establish the standard for use-specific zoning and reorganize the park areas in adjusting the national park areas. Second, the use-specific districts need to be reviewed for their reorganization that meets the designation requirements by focusing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different national parks with a view to ensuring reasonable natural conservation in the maritime or coastal national parks. Third, various support facilities for residents such as public path, lodgings, and rentals need to be created to reduce the conflicts between Korea national park service and those who live in the parks.
        189.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경영이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Management)의 개념으로 시작되었듯이 제품디자인도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모더니즘(Modernism) 디자인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기업의 경영의 목적은 이윤의 추구이며 기업의 제품디자인 또한 그렇다. 이러하듯 경영과 제품디자인은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경영과 디자인의 시대적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본 연구는 시대별 경영 전략에 대하여 살펴보고 같은 시대에 제품디자인 전략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비교를 통하여 경영 전략과 디자인 전략과의 연관성을 고찰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비교 고찰의 결과 경영과 제품디자인은 시대별로, 사회, 경제, 기술, 문화의 변화에 따라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변화해 왔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190.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도의 식물에 대한 학술 연구는 194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독도의 자생하는 식물의 목록화를 통해 식물의 변화상을 관찰하고 있다. 최근 10년 전까지는 단순한 식물상 조사가 대부분이었으나, 2010년 이후부터는 분자수준의 연구와 함께 병행하여 독도 식물에 대한 연구방향이 다양해졌다. 이토록 독도 식물 연구에 많은 학자들 과 다양한 접근방법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연구 대상종에 대한 학명과 국명의 사용이 학자들마다 매우 달랐다. 이에 본 연구는 2002년부터 2017년까지 독도 식물상 관련 논문 및 간행물 등을 검토하여 독도 식물의 학명과 국명의 사용과 그에 대한 변천과정에 대해서 연구하고 학술적으로 학명과 국명에 대한 정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명의 변화가 있는 종들은 억새(Miscanthus sinensis Andress.), 술패랭이꽃(Dianthus longicalyx Miq.), 갯장대(Arabis stelleri DC.), 갯괴불주머니(Corydalis platycarpa (Maxim.) Makino), 바랭이(Digitaria sanguinalis (L.) Scop.), 갯제비쑥(Artemisia japonica subsp. littoricol (Kitam.) Kitam), 6종이다. 이중 특히 억새는 변종과 품종이 많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국명의 변화가 있는 종은 도깨비쇠고비, 갯까치수염, 쇠무릅, 가는갯능쟁이 등 4종이 있다. 독도 식물 중 일본과 관련되어 있는 학명이 존재하는데 특히, 일본지명 또는 국내 일본식 지명이 들어있는 학명은 참소리쟁이(Rumex japonica) 등으로 10과 10속 8종 1아종 1변종 10분류군이 있다. 또한 일본학자에 의해 명명된 학명은 가는 명아주(Chenopodium album var. stenophyllum Makino) 등 9과 10속 9종 1아종 3변 종 13분류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ICBN(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명을 제시하였다.
        191.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80년대 이후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인한 식량부족 위기설이 대두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R&D 대응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래 산업혁명의 기반은 연결(connectivity)이다.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결에서 오는 데이터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지능 정보 서비스로 연결(connectivity)되어 있다. 급변하는 산업화시대 농업은 디지털 산업과 바이오기술의 융합을 통해 자연환경을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소비자 맞춤형 농산물을 생산할 수도 있다.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고 있던 농업은 토양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것으로서 생산량은 기술보다는 경지면적에 더 크게 좌우되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농업은 노동·토지·자본이라는 전통적인 농업 생산성 요소를 기술로 대체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농업에서의 광고홍보 전략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광고는 현대의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하나이다. 농업의 시장 환경이 불확실하고 과거처럼 생산만 하여도 끝없이 팔리던 시대는 끝났고, 해외 농산물의 수입 등으로 유동적인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소비자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과거 농업분야의 광고홍보포스터의 사례를 통해 진화과정을 분석하고, 미래 산업화시대의 ‘광고전략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변화하는 한국 농업의 미래 키워드를 연구하고 전통적 농업과 스마트 기술의 결합으로 진화하는 광고홍보포스터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192.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승산리는 진주목 東面 勝禦山里에 속한 네 개의 자연 마을 가운데 상승어산과 하승어산에 해당한다. 임진왜란 후에 이웃 龍奉里에 합해 졌다. 승산리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관련된 길은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었다. 특히 승산리는 남해안 고성지역에서 내륙의 의령·삼가지역을 연결하는 지름길에 위치하였다. 승산리에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474 년 무렵이며, 처음으로 들어선 곳은 蓮塘 許東岦(1601-1662)의 유허 지 연당의 북쪽 일원이었다. 승산리 김해 허씨의 입향조는 許錘인데, 1474년 허추는 진주 班東山 里 진양 강씨 姜叔卿의 딸에게 장가를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산리로 이거하였다. 이로써 승산리에 사족이 거주하게 되었다. 허추는 비록 학문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수된 벼슬도 참봉에 지나지 않았지만 생육신으로서 명망이 높은 함안 원북리 漁溪 趙旅의 가문과 情分을 깊이 맺고서 교유하였던 인물이다. 승산리는 15세기 말기에 사족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17세기 중엽까 지도 多數의 사족이 거주하는 마을로 성장하지 못했다. 승산리가 사족 마을로서 성장하는 데에 첫 디딤돌을 놓았던 이가 입향조 허추라면 그 정치·사회적 기반을 공고히 한 인물이 觀瀾 許國柱이다. 관란 허국주 는 비록 벼슬이나 학문으로 현달하지 않았지만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으로 승산리 김해 허씨 가문의 정치·사회적 기반을 공고히 하였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조선 중기 승산리는 사족 마을로서 성장의 한계를 지녔으나 17세기 중엽 이후 승산리 김해 허씨는 벼슬로 현달한 자가 배출되는 등 사족 마을로서 성장을 거듭하였다.
        193.
        201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조선 중·후기 介坪里의 역사 변천을 일두 정여창과 사회·경제적 변화 에 초점을 맞추어 구명한 것이다. 먼저 개평리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인 정 여창의 증조부 정지의, 조부 정복주, 아버지 정육을의 행력을 고증하여 가전 자 료의 오류나 윤색 부분을 구명하였다. 정여창의 행력은 조카 정희삼이 행장으 로 정리하였으나 1550년의 시점에서도 그에 대한 자세한 행적이 널리 알려지 지 않았음을 구명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1552년에 개암 강익이 주도한 사우 창 건은 의미가 크다. 그리고 1570년 5월에 이르러 정여창에 대한 국가의 포증은 대체로 마무리 되었다. 이와 함께 정수민이 수집하여 정구를 통해 찬집한 󰡔文獻 實紀󰡕는 사림세력의 구심점으로서의 정여창의 위상 정립과 제고의 근거였다는 점에서 개평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헌이다. 다음으로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대동법이 경기도에 처음으로 시행되고, 山郡인 함양도 1662년(현종 3)에 그 대상이 되었다. 이로써 개평리의 상민들은 호세로서 대동세를 포목으로 납부하였다. 개평리의 사족과 상민들은 17세기 중 엽의 庚辛大飢饉과 전염병의 유행이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악화, 1728년 정 희량 사건에 의한 정치적 혼란 등으로 불안정한 형편에 처하였다. 더구나 18세 기 중엽 이후 환곡의 폐단은 개평리를 비롯한 함양지역 상민들의 삶을 매우 열 악한 상태로 밀어 넣었다. 대체로 1790년대를 기점으로 극심한 환곡의 폐단에 서 벗어났으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田稅木價로 인한 농 민의 불만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개평리에 위치하였던 北倉, 場市, 介坪店 등 은 조선 후기 개평리의 사회·경제적 변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역사 현장이며, 육 로 교통의 중심지이자 지역 내 거점의 증거이다. 이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사 설의 介坪店이 생겨나고 운영되었다. 개평 장시는 조선 후기 5·10일장으로 개 평리가 주변 마을과의 관계에서 사회·경제·문화의 구심점의 역할을 했으며, 개 평리 사족과 상민들의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194.
        2017.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investigated the background thoughts and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the trees planted in Soswaewon garden located in Damyang, Jeollanam-do, South Korea.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the tree species in the early years of the garden and their chronological changes. The number of trees planted in Soswaewon garden is presently 135 in 22 species, which consists of 107 arboreals in 15 species and shrubs in 7 species. Tree species which showed high frequency rates were Zelkova serrata, Lagerstroemia indica, Acer palmatum, Sophora japonica and Rhododendron indicum. The background thoughts of these trees were Feng Shui, Yin Yang, and Confucianism for Zelkova serrata; Shin-sun, Taoism, and Confucianism for Lagerstroemia indica; Confucianism for Acer palmatum; Shin-sun, Taoism, and Confucianism for Sophora japonica. Rhododendron indicum was planted just for decoration without any particular background thoughts. In exploring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all of 5 trees species were found to grow well everywhere in southern regions of Korea, especially in maritime climate of the south west coasts. Literature survey revealed the tree species planted in the early years of the garden. Back in 1548 when Soswaewon was first established, there were 11 tree species growing, then 12 species in 1755, 28 species in 1983, 23 species in 1999, and 24 species in 2012. At present, there are 22 tree species growing in Soswaewon garden.
        195.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상품에 나타난 이미지들을 대량생산체계를 구축한 생산자의 의도적 선전물로 규정한 보드리야르(Baudrillard)의 상품 이미 지에 대한 언어적 개념은 데이비스(Davis)의 브랜드 연상 개념으로 변환되는데, 이것의 핵심은 상품과 브랜드이미지에 나 타난 다양한 형상들이 소비자들의 욕구에 의해서 제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량생산체계와 선전의 능력을 지닌 생산자의 힘에 의해 사회적 언어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본고는 소비사회의 언어적 속성을 가지는 기호로서의 상품과 브랜드이미 지를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 베이커리 산업의 변천 과정의 고찰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상품과 브랜드이미지는 소비자의 자발적 욕구의 구현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소비사회의 기호로서 일반대중인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선택 조건이며, 대중은 소비를 통해서 사회적 언어체계에 참여할 뿐이다. 상품과 브랜드이미지에서 나타난 시대 적 변화는 소비사회 속으로 편입된 대중의 가치관의 변화이고, 이는 초개인적이며 동시대 사람들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소비행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욕구의 민낯인 것이다. 상품과 브랜드이미지에 함축된 상징성에는 대중이 소비사회에 내재된 언어체계에 의해 통제 받는 기호 해석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사회에서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기 호의 형상적 실현이 대량생산체계를 가진 생산자들에 의해 상품과 브랜드이미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소비라는 행위에 의해 표출되는 일반대중의 소비사회의 언어체계의 참여라는 개념은 소비자의 상품 구매가 실제적 사용가 치의 충족이라기보다는 소비사회에서 타인과 연계 혹은 구별되는 의미론적 기호의 소비라는 브랜드 연상 작용을 본고에서 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이론을 기반으로 정의할 것이다.
        197.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단계마을의 역사 변천과 의미를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구명하고자 했다. 먼저 단계마을의 지명은 철광석의 산화철 현상인 ‘붉 은’ 의미가 들어간 ‘적촌’‧‘단읍’‧‘단계’에서 유래했다. 단계의 고대 사회 는 한 가야 소국을 구성하던 단위인 읍락이었으며, 신라에 의해 정복된 이후 赤村縣으로 편제되었다. 통일신라 때 菁州 闕支郡의 영현이 되었 으며, 경덕왕의 한화정책에 의해 丹邑縣으로 개명되었다. 다음으로 940년 단읍현에서 단계현으로 명호 개정은 단계현이 국가 질서 내로 편제되었음을, 토성분정으로 지역 내의 세력 재편이 마무리 되었음을 의미한다. 단계마을은 나말여초의 변화 속에서 단계현의 중 심지가 되었다. 그 치소가 도평[양전]에서 단계마을로 옮겨졌기 때문 이다. 단계현은 1254년의 몽골 침략, 皆品部曲의 山陰縣으로 移屬, 왜 구의 침입으로 위상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단계마을도 그러한 변화로 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許邕은 단계마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지명에서 취한 단 계로 호칭되었으며, 토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단계마을 역사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허옹은 1337년에 처향 단계로 은거하여 스스로 迂軒이라 칭하였으며, 당시 일반적인 男歸女家의 혼인 형태에 서 본다면 귀향이라 할 수 있다. 허옹은 1345년에 다시 벼슬살이에 나섰다가 1348년 무렵에 다시 단계로 낙향하고 그 직후 법물리로 이거 하였으며, 1357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헌 허옹이 단계에 입향함으로써 불러온 단계 사회의 변화는 결코 적지 않았다. 여말선초 우헌 허옹의 아들 허소유와 許繼道, 사위 안동 장씨 張綱, 외손서 상산 김씨 丹邱齋 金後가 단계마을과 법물리에 은거하거나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 이다.
        198.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글 근대 활자 인쇄사적 관점에서 한글 번역 성경의 역사적 변천을 천주교 , 개신교로 나누어서 , 출판 년대 별로 분류하고 , 타이포그래피의 실증적 분석을 통해 , 천주교의 성경출판의 역사적 변천을 수반한 타이포그래픽의 발전을 명확히 정리하였다 . 천주교 선교사들은 병인박해 후에도 조선 정부의 엄중한 탄압정책에도 굴복하지 않고 , 조선과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관계로 , 국내와 국외로 나누어서 정리하였다 . 국내 조사에서는 , ① 1860 년 조선교구 인쇄소의 목판본 간행목록을 정리하였다 . ② 1870 년대 블랑 신부에 의해서 설립된 인쇄소에서 간행된 목활자로 인쇄된 활자본을 조사하였다 . 국외 조사에서는 , ③ 1879 년부터 리델 주교의 주도로 요꼬하마의 출판활동과 1881 년부터 1886 년까지 코스트 신부가 나가사키에 설립한 조선교구 인쇄소에서 간행된 연활자본을 조사 정리하였다 . ④ 1886 년 조선교구 인쇄소의 서울이전 , 그리고 1898 년 명동성당 완공 후의 인쇄활동에 관해서는 [ 표 ] 로 정리하였다 . 지금까지 근대 활자 인쇄사에서도 미해명 되어왔던 , 천주교 선교사들의 한글 활자 개발의 계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본문용에는 1880 년 최지혁체 5 호 활자 , 1881 년 2 호 활자 , 1886 년 4호 활자 , 1887 년 3 호 활자 , 1889 년 1 호 활자 , 1894 년 5 호 활자 , 제목용에는 1895 년 초호 활자가 해서체로 개발되었다 . 여기서 동일인 원도로 개발된 활자를 제작 년대 순으로 나열하면 , 1881 년 2 호 활자 , 1886 년 4 호 활자, 1887 년 3 호 활자, 1894 년 5 호 활자가 제작되었다 .
        199.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article is a diachronic study of different constructions involving the verb DARE from Old English (OE) to Modern English (ModE). With regard to the Late ModE (lModE) change, this paper examines the Corpus of Historical American English (COHA) covering 1810 to 2009. It is found that the general tendency is a decline of the frequency of DARE in terms of both the modal auxiliary and the main (lexical) verb uses in American English. However, the frequency of the auxiliary use, contra Taeymans (2004), has more rapidly decreased, while that of the main verb use has less drastically dropped. The blend constructions have had a low frequency throughout the past 200 years. Yet, the inflected blends(e.g. dared, dares) showed gradual decrease of frequency, whereas the DO-support blends did not. This study also examines historical changes from OE to Early ModE (eModE). It is found that lexical and modal properties coexisted from OE to Early Middle English (eME), the modal ones climaxing during the eME period. This paper argues that the grammaticalization from lexical to modal was triggered before the OE period and thereafter until eME is the period of gradual extension. From the lME period lexical properties increasingly occurred, which led Beths (1999) and Taeymans (2004) to argue for degrammaticalization. This paper accounts for the same phenomenon in terms of renewal, a natural process in grammaticalization. There are lME evidences showing phonological and semantic reductions of DARE, which necessitated a renewal of DARE. This study, moreover, shows that the words of the same category can follow different paths of change with time.
        200.
        2013.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e traditional subsistence farming era in Korea, most of small farmer's housing plots in the rural villages had their boundary barriers of which materials being the natural ones provided from nearby places. However, during the rapid industrialization period from 1960s, a traditional type of boundary barriers in the rural villages had been replaced mostly by low-cost factory-made ones, which means absolute loss of their amenity values as a linear part of villagescape. In spite of many study efforts on boundary barriers of traditional rural houses, detailed historical dating on them after 1960s have not tried up to now, which provoked to try this study. Through the direct and in-depth interviews to rural villagers sampled from 21 case villages, it was found that original boundary barriers structure in most of farm houses was made of natural materials like stone, soil, trees and bamboo, but, replaced by cement block structures mostly during Saemaeul Project period. However, although being relatively minority, traditional ones have been preserved up to now mainly in remote mountainous and seashore villages, but was in very low condition. In the overall view, for more than half a century, boundary barriers of farm houses had been left without public or private improvement efforts. In order to enhance their amenity values, more research works should be carried out on positive reassessment of the traditional ones harmonized with multifunctionalities for modern village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