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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연구대상지인 김천 공자동은 유가의 시조인 성현(聖賢) 공자(孔子)의 존함을 그대로 차용해 이루어진 지명을 갖는 마을이다. 이러한 공자동을 배경으로 하는 구곡시가에 나타난 지명의 물리적 환경과 인간 활동 그리고 그 의미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인 마을의 장소성 구명(究明)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따른 분석과 해석을 통해 도출한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례향교와 도동서원을 중심으로 16~17 세기 선비문화가 발전한 김천 공자동 설동(設洞)의 가장 유력한 설은 조선초 김천 부항면 출신 병마사 이회(李晦)가 자택에 보관하던 공자의 화상(畫像)을 1650~1670년 사이에 경주 이씨·김해 김씨·밀양 박 씨를 본관으로 하는 세 선비가 인근 지례향교로 옮기면서 공자동이라 명명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인근 지역의 지명까지도 공자와 관련된 고사(古事)와 관련된 인물과 행적과 관련지어 명명하면서 유가의 성 현 공자의 소환을 통한 유가의 이상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명의존과 장소착근 현상이 심화되었다. 둘째, 공자동이 지속적 마을 형성과 발전을 지탱해온 바탕에는 이곳이 지례면과 김천시를 잇는 길목에 있는 교통요충지라는 이점과 더불어 성현의 존함을 차용한 공자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마을의 물리적· 정신적 토대이자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소속감과 장소애의 본질로 판단된다. 지금도 존재하는 공자 관련 지명은 대항면 대성리의 공자동·창평, 주례리의 주공, 구성면 상거리의 저익촌·백어·명덕·벽계, 구성면 상좌원리의 문도동 등 다수가 존재한다. 셋째, 공자동의 산수경관이 노래된 황남별곡(黃南別 曲), 공자동구곡(孔子洞九曲) 그리고 구곡단가(九曲短歌)는 공자와 관련한 인명과『논어(論語)』의 고사를 통해 공자에 대한 숭모(崇慕)와 득도(得道)의 열망이 표출된 것이다. 지명 공자동(孔子洞), 창평 (昌平), 주공(周公), 안연대(顏淵臺), 백어(伯魚), 명덕(明德), 저익촌(沮溺村), 문도동(問道洞), 상좌원 (上佐院), 모성암(慕聖巖), 자하령(子夏嶺) 등은 특히 성현 공자를 향한 흠앙(欽仰)과 존양(存養)의 장소 로서, 공자와 유가사상이 깃든 장소의존과 장소애착의 산물이다. 넷째, 벽계천(碧溪川)을 중심으로 설 정된 공자동구곡과 구곡단가의 제1곡 모성암을 비롯한 구곡명과 경물 그리고 구곡 바위글씨는 공자 이외에 무이구곡 문화를 실천한 주자(朱子)의 덕행에 대한 흠모를 바탕으로 유가의 실존과 덕행을 따르 고자 했던 흔적이다. 공자동에서 보여지는 지명과 경물에 부여된 의미경관과 실존경관은 궁극적으로 모두 공자와 주자에 대한 흠앙과 존숭(尊崇)을 통해 유가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신 념이 표출된 것으로 공자동 장소정체성의 본질이다. 다섯째, 공자동 구곡 일대의 바위글씨 대부분은 제1곡 모성암과 제6곡 안연대에 집중(75.6%)된다는 점에서 해당 장소가 문화경관적 맥락에서 장소적 중요성과 가치를 지님을 확인하였다. 또한, 모성암의 바위글씨는 장소와 관련한 인물에 대한 흠앙과 존숭 그리고 장소에 대한 찬미의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안연대 바위글씨는 공자의 제자 안연(顏淵)에 대한 추모와 함께 안빈낙도하고 유유자적한 삶의 동경이 강하게 표출됨에 따라 구곡간의 장소성에는 다소의 차이가 발견된다. 공자동 일대의 지명 등은 공자뿐만 아니라 공자의 아들과 제자, 공자가 숭모한 인물 주공 그리고 공자의 정신이 함축된 것일 뿐 아니라 공자동구곡 및 구곡단가를 통해 주자가 무이산 무이구곡에서 실행했던 덕행 또한 오롯이 담겨 있는 유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공자동을 중심으로 산재한 지명과 경물명 그리고 구곡명은 유가의 시조 공자와 주자 성리학을 숭모하 며, 철저한 유학자적 삶을 추구하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의 관념이 장소화 된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2.
        202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중국의 대유럽 공공외교 전략과 그 핵심 요소인 '공자학원' 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공자학원은 중국이 세계적인 문화외교 활 동의 일환으로 설립했으며,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중국문화의 영향력 을 확장하려는 목적을 둔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전 세계 160여 개 국 가에 540개 이상의 공자학원이 설립되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유럽 지역은 공자학원 중심지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최근 일부 유럽 지역에 서는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은 폐쇄 또는 퇴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유럽 내 공자학원의 현황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다. 이를 통해 유럽에서의 중국 공공외교 전략의 효과와 한계를 평가하 고자 한다.
        6,600원
        3.
        201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 “ ” in the second slip of Kongzishilun was calligraphed as “ ”, and explained as a kind of musical instrument made of bamboo. However, it is suggested in this paper that this character should be calligraphed as “ ” in Clerical Script instead of “ ”. Its phonetic loan is “蕩”. Its meaning is “profound and grand” according to the bamboo’s exact meaning and the masterpiece Shijing. The second part of this paper mainly discusses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 “ ” in the tenth slip of Kongzishilun. There are many explanations of it, such as “攺”, “改”, “妃”, “媐”, “逑” and so on. In our opinion, this character should be written as “施”, which means “educate” or “education”. “關雎之” reflects Confucian ethics of “克己復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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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孔子의 일평생 활동 중에서 敎學思想에 관해 고찰해보고자 한 글이다. 연구 방향은 ‘孔子의 敎學思想’에 관해 탐구하되, ‘敎’와 ‘學’을 따로 구분하여 그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하 였다. 대상은 공자의 언행 및 제자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論語로 하였다. 공자가 행한 ‘爲學의 과정’은 ‘爲己之學’ 즉 자신을 위한 학문을 통한 내면의 성찰이 우선시 되었으며, 지속성을 갖춘 학문적 사색의 과정을 동반하였다. 이는 문물에 대한 博學으로 이어 져 학문적 깊이와 외연의 확대로 이어져 갔다. 스스로 배움을 좋아한다고 강조한 공자의 ‘好 學’에는 학문에 대한 篤信과 ‘正道’를 향한 올바른 방향의 정립이 세워져 있었다. 이러한 학문 의 正道는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워서 위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는 과정으로 들어가서는 人 事와 天理가 터득된 시의 적절한 權道의 구사로 이어졌다. 공자의 가르침은 ‘詩·書·禮·樂’ 외 政事 등 많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가르침의 대상에는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들에게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가르침의 문호는 모두에 게 개방시켜 놓았으며, 피교육자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단계를 밟아가며 인내심을 가지 고 지켜보는 자기계발식 교육을 행하였다. 가르침의 방식에서는 피교육자들의 장점을 잘 드러내어 격려하였으며, 치우친 점은 스스로 보완할 수 있도록 드러내어 일러주었다. 가르침의 방식에서 돋보이는 점은 상대방과의 문답을 통한 대화의 방식이다. 많은 제자들과 여러 나라 의 군주와의 사이에서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였다. 즉 공자의 교학사상은 가르침과 배움이 둘 이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결부되는 하나의 이미지로 조합된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 적으로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하는 ‘敎學相長’의 실천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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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民主主義의 핵심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기록들을 살펴보면, 古代 中 國의 태평성대에는 백성이 지도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았고, 지도자는 또 백성의 마 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름 아닌 현대 정치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지도자와 백성간의 진정한 소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런데 지도자와 백성이 서로 소통하는 국면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연 누가 먼저 나서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나라의 주인인 백성이라는 뜻이고, 민주주의의 이념을 이행하 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지도자가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 전통의 사상들 이 이구동성으로 率先垂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孔子는 지도자의 솔선수 범 이외에 또 하나의 덕목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常의 변치 않고 初志一貫하 는 태도이다. 그 이유는 비록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더라도, 초지일관의 태 도를 지니지 못하면, 그 태평성대의 국면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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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진 나라 이전의 중국 문헌에서 발견되는 특징의 하나는 사람들이 상대방과의 대화중에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다. 공자의 언행에 대한 기록이 많은 두 종류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논어』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가어』이다. 이 두 종류의 책에서 우리는 거의 100 개가 넘는 『시경』 인용 사례를 볼 수 있다. 공자는 왜 이처럼 많은 대화에서 『시경』을 말했을까. 이 모든 사례의 분석을 통해서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공자는 자기 말 과 자신의 논리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시경』을 인용했다. 둘째, 공자는 자신의 말에 별 의 미 없는 수사적인 효과를 위해서 『시경』을 인용했다. 셋째, 당시 『시경』은 문화적으로 또 문 명적으로 당시 사회의 정신적 결정체였다. 특히 지식인들의 중요한 정신적 공감대이며 문화 적 공통분모였다. 공자는 당시 귀족과 지식인들에게 귀중한 교재였던 『시경』에 깊이 공감했 다. 보수적인 사상을 가졌던 공자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명적 권위와 문화적 공통분모인 『시경』에 자신의 논리를 의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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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5.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笔者在曾经写过的一篇文章「用以修辞法接近于道德经圣人之定义」,得出了一些结论:所谓的圣人主要指大同社会的领导者-三皇五帝。孔子在论语中谈到作为领导人该具有些什么样的形象时,经常提到了君子:孔子在论语里提到君子一共有107次。因此,在这里我们有必要探讨一些问题:一,对孔子来说君子有着什么样的含义?二,孔子所追求的是什么样的社会,何必那么强调了君子?三,圣人与君子之间有何差别?笔者着眼于这几点,以论语的与君子有关的句子为主,要进行分析并试图得出些比较具体的结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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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5.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술은 韓愈의 「原道」에 나오는 道統論을 인용하여, ‘공자가 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로 이어지는 道統의 전수자’라는 절대적인 위상을 설정하고 있다. 맹자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春秋戰國時代를 거치며 亂世로 접어드는 혼란 속에서 孔子이후의 道統의 전수자로 孟子를 설정한 것이다. 최술은 ‘孔子를 존재할 수 있게 한’ 孔子의 弟子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그는 공자의 弟子24人을 德과 功勞에 따라 顔子부터 子思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이들의 행적을 상세하게 고증하였다. 공자제자들의 위상을 순차적으로 설정하면서, 최술은 기존의 이른바 ‘孔門十哲’을 과감히 해체했다. 현재 成均館文廟配享順位에 포함된 孔門十哲중에서 12. 子游, 13. 子夏, 14. 子張, 15. 宰我, 16. 冉有5인이 10위권 밖으로 빼고, 8. 有子, 9. 原思, 10. 公西華, 11. 子賤4人을 이들보다 훨씬 앞선 순위에 배치시킨 것이다. 또한 최술은 『孟子』의 내용을 정치하게 분석하여 『孟子』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공과를 분류하였다. 그는 이들을 樂正子․公都子․屋廬子, 萬章․公孫丑․充虞과 같은 “수준 높은 제자[高第弟子]” 두 그룹, 陳臻․徐辟과 같은 “차등의 제자그룹”, 그리고 陳代․彭更․咸丘蒙․桃應과 같은 “제자의 여부를 단정할 수 없는 그룹”까지 4등급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고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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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3.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Movie sometimes has been actively used as political propaganda because it is one of genre in communion with public. In socialist countries, such as China, in which intervention and interference of state power being explicited widely, political messages in movies have been reflected in any forms. Mass production of the recent films on the subject of Sinocentrism is a good example. Historically, in China where confucianism has been settled as state religion since DongZhongshu, so-called Sinocentrism has been applied in the center of manas dominating international order to establish the relationship of neighbor countries. In particular, it is recently a discerned atmosphere that China's vertical rise of global status in many aspects has made Chinese domination and interference take for granted. Reflecting this trend, recent films with themes of culture supremacy, grand unification, and heroism have been poured into the world these days. Since the late 90s, so-called ‘National Studies fever(國學熱)’ that booms to reexhibit China’s traditional ideas proceeded in the maximized form has given birth to the movie <Confucius>. The Confucius who was once perceived negatively by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as a vestige of feudal society is shed new light on and now he comes back to the heroic shape and mobilizes national consciousness dispelling the current crisis of moral civilization. Apparently, Confucius meets the sign of 'China' the most, but what we should not overlook is that he has been already sublimated to the absolute value of East Asian civilization and spirit through historical process so he is no longer tied to ethnic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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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0.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詩經》古時有三千餘篇,孔子‘去其重’,定《三百》,‘始於衽席’, ‘關雎之亂以爲風始’。<關雎>是《詩經》三百篇中卷首之作。因此司馬遷說 的‘衽席’和‘亂’就是<關雎>居《詩經》之首的兩大意義,也是司馬氏所能體 會到的孔子意圖。‘衽席’含蘊男女的本性,‘亂’則指禮樂。<關雎>本是男女 相悅之詞,但經過孔子的手,就變成了輔佐禮的樂章。《孔子詩論》所云 “<關雎>以色喻於禮”可說是孔子注重<關雎>的緣故。孔子歎息“未見好德 如好色者”,又強調‘戒色’。不過孔子的‘戒色’並不是抑制本性,以教化的方 法來調和,使人的動物本能上升到人性,以詩(樂)明禮,以禮節制本性, 這就是孔子注重樂禮的原因。再來從《韓詩外傳》載有子夏問孔子‘<關雎> 何以爲國風之始’與孔子的答復“天地之間,生民之屬,王道之原,不外此 矣。”將此與司馬遷所論對照,可以探窺孔子的微言大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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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술은 이름 없는 선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저술 《수사고신록》은 공자 사적 고증의 압권이다. 정확한 고증을 통해 믿을 수 있는 것만 믿겠다는 최술의 집념과 학구적인 태도는 그를 고증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이었으며, 《고신록》과 그 일부인 《수사고신록》은 先秦史와 공자 사적에 얽힌 난제들을 풀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최술은 공자의 사적을 변증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전적의 신뢰도에 천착했다. 그리하여 《사기․공자세가》와 《공자가어》가 공자의 사적을 왜곡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고증을 진행했기 때문에 汗牛充棟의 전적을 枚擧하지 않고서도 綱擧目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술은 《논어》의 編定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張禹의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논어》에도 純雜이 뒤섞일 수밖에 없음을 밝혔으며, 아울러 공자가 纂輯했다고 일컬어지는 《尙書》․《周易》의 일부분 및 《孝經》과 刪詩說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辨證을 진행했다. 《수사고신록》은 僞書의 牽强附會로 왜곡되고 날조된 성인 공자의 진면목을 복원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有機的인 體例를 활용하여 고증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제 그런 최술의 저술을 바탕으로 중국 고대사와 공자 사적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검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6,900원
        13.
        199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6,900원
        14.
        199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000원
        15.
        2020.0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중국(취푸)국제공자문화축제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공자를 기념하는 현대식 축제로 매년 9월 공자탄신일을 전후해 중국 취푸(曲阜)에서 개최된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중국공자문화축제의 기원 과 초창기, 성장기, 성숙기 등 세 가지 단계별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공자문화축제의 특징과 지위를 설명하고자 한다. 공자문화축제는 공자의 고향에서의 개최에서 비롯되는 대표성, 공자 제례 문화 및 정부 주최에서 비롯되는 엄숙한, 세계적 영향력으로 인한 국제적 축제의 지위, 다양한 활동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컨텐츠 등의 특징을 갖는다. 끝으로 본 논문에서는 중국공자문화축제가 공자의 업적 기념, 공자 제례 문화의 전승, 유학 연구의 발전, 세계 문화 교류 촉진 등의 측면에서 거둔 정신문화적 효과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16.
        2002.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wo books have recently been published to argue for diametrically opposite views. One is『Gongjaga jugeoya naraga sanda(The Nation will prosper once Confucius dies)』, which argues for the negative impact of Confucianism on the nation's culture. The other is 『Gongjaga salaya naraga sanda(The Nation will prosper once Confucius becomes alive)』, which puts emphasis upon constructive elements in Confucianism. I believe that it does not matter whether Confucius is dead or alive but it matters whether every individual in this nation is with him- or herself.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explain how Confucius taught everyone to be with oneself, especially for political leaders. In Confucius view, everyone could be a political leader once he or she learns the way(Do; 道). The methods by which Confucius brought up political leaders were peculiar in many respects. First, the teacher never sought for the learner but the learner sought for the teacher. The teacher never failed to teach those who came with proper manners(Ye; 道). Second, the teacher never taught those who did not put an effort as well as those who did not ask questions. Third. the teacher taught how to live a righteous life. Fourth, the teacher tried to bring out the best out of the learner. Since each individual's merits differ from the others', answers to a question from different individuals varied. Fifth, the teacher took into consideration the level of the learner. An adult could at times be taught by utterances but at other times by silence. In short, the teacher must be with the learner, a prospective political leader so as not to lose oneself, and guard the learner so as to shine from one's wit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