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힌데미트의 그로테스크가 도드라지는 초기 기악곡 ≪우스꽝스러운 신포니에타≫ op. 4와 ≪한 밤 중에 ... 꿈과 체험≫ op. 15에 주목하면서 유럽 문예사에서 구축되어온 그로테 스크의 개념, 내용, 미학의 맥락 안에 힌데미트의 그로테스크를 놓아본다. 힌데미트는 그가 당면한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 질서, 윤리, 표현 방식을 풍자하면서 그것들의 무의미와 무가치를 드러내는 작업에서 그로테스크를 요긴한 도구로 쓴다. 거센 반음계와 불협화음, 혼란의 박절과 리듬, 피아노 의 타악기화 등을 통해 낭만주의 음악을 과장, 왜곡하며 일그러뜨린다. 이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및 거부라는 그로테스크의 본질적인 의도를 담아내면서 강렬한 긴장, 당혹, 생경, 섬뜩의 인 상을 불러일으킨다. 힌데미트는 반낭만주의적 그로테스크의 악곡들 사이에 재즈 춤곡을 위치시켜 본질과 태생이 다른 형상들의 혼합이라는 그로테스크의 고전적 어법을 다루기도 한다. 표현주의 시와 엮어 교향곡 중심부의 구조 체계를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고대부터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19-20세기까지 주요하게 쓰인 그로테스크의 수법과 어법들이 곳곳에서 읽힌다. 힌데미트의 창작을 넘어 음악예술이 더 큰 문예사적 맥락 안에 놓이게 되는 지점이 형성되는 순간들이다.
예이츠의 「청금석」과 브라운의 「나의 레이니」에서 예술의 마술으로 비극적 장면이 행복의 장으로 바뀐다. 「청금석」에서는 “구슬픈 곡조”조차 기쁨을 만들고, 블루음악은 청중으로부터 고마움을 일으키는 군중의 흥미를 만드는데 이는 레이니의 기교를 통해서 노래로 만들어진다. 아일랜드의 문예부흥과 신흑인 문예부흥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데, 토속적 언어, 음악성, 그리고 공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니의 바이올린연주자」와 「성인들이여」는 둘 다 “예술에서의 자기존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 는 민속과 강하게 연관된 토속적 시의 전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민속의 중요성을 전경화 시킨다.
1902년 루쉰은 일본유학생으로 파견되어 국내에서 학습한 자연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의학 전문대학에 진학해 의학도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날, 청국 유학생에 대한 멸시와 이른바 ‘환등기 사건’으로 돌연 자퇴하고 문학의 길로 전향한다. 의술이 한두명의 환자를 구할 수 있을지언정 썩어 있는 중국인의 정신을 구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였다. 토쿄에서 동생 저우쭤 런(周作人)과 쉬서우창(許壽裳) 등 친구들과 문예잡지 『신생』을 창간해 본격적인 문예운동에 뛰어들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녹지 않았고 필진, 자금 등의 고갈과 주변의 냉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자 한 세계와 내용은 우연한 기회에 연결된 『허난(河南)』이라는 잡지에 발표되면서 일정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학생활은 오래가지 않았고, 귀국해 오랫동안 ‘무쇠로 만든 방’에 갖혀 침잠해야 했다. 반제반봉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신청년(新靑年)』이 창간되었고, 루쉰은 침묵을 깨고 글들을 발표해 나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잡지는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少年)지였다. 소년은 경영 및 편집이 체계를 갖추었고, 체제나 내용이 혁신적이었으며, 학회 및 단체의 기관지가 아닌 독립적 상태에서 불특 정한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라는 점을 들어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로 평가한다. 소년(少年) 폐간 이후 발간된 청춘(靑春)과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는 각각 대중 교양 계몽지, 문예전문지 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일본이 문화정치(文化政治)를 표방하는 유화책을 쓰 면서 신문과 잡지의 발행이 허용되어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대일보 등의 신문과 개벽(開闢), 조선지 광(朝鮮之光) 등의 잡지가 발행되었다. 개벽(開闢)은 천도교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천도교뿐 아니라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아우르는 통합적 면모를 보여주었고, 이를 경계한 식민당국의 탄압으로 폐간 당 하였다. 조선지광(朝鮮之光)은 사회주의 사상을 표방하였으며, 조선문단(朝鮮文壇)은 이광수가 주재 한 문예잡지로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1920년대 창조(創造), 폐허(廢墟), 백조(白潮) 등의 동인지는 문학 동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학 관과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동인지는 전문적 문예지의 탄생을 의미하며 문학작품을 발표 할 수 있는 지면의 확대와 더불어 문학작품이 예술 장르로서 독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순문예 월간지로 발행된 문장(文章)은 일제 말기 암흑기의 문단을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였지 만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일본 식민지 당국의 민족혼 말살 정책과 같은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 진 폐간함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을 지켰지만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 문학의 명맥이 일시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王端淑은 역대 여성문인들의 시문을 수집하고 비평하여 여성시문총집을 편찬한 명말청초 의 대표적 여성문예가이다. 본 논문은 현전하는 왕단숙의 저작 名媛詩緯初編과 映然子吟 紅集을 중심으로 왕단숙의 문학사상과 그 창작경향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왕단숙은 시 창 작에 있어 學識을 기반으로 한 시의 體格을 중시하였으며 궁극적으로 典雅한 풍격을 갖춘 시 를 지향하였다. 또한 여성문학의 주요 개념인 脂粉氣에 대해 작가가 주어진 환경의 한계를 넘어서야 고금의 경계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문학을 할 수 있듯이 여성작가의 경우 脂粉氣를 벗어나고 피상적이고 습관적인 시어를 탈피하여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왕단 숙의 시가 창작에서는 명말청초 강남지역 문인간의 교류와 소통의 도구로서 시의 기능이 강 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제재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시인의 내면세계에 보다 집중하여 회포와 감회를 읊은 시들도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秋史 金正喜의 편지를 모아 간행한《阮堂尺牘》의 수사적 특징을 통한 글쓰기의 한 단면 과, 내면의식의 표현을 통한 내용적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추사 척독이 갖는 독특한 문예미를 조명 해 보고자 씌어졌다. 《阮堂尺牘》은 추사의 유배 이후부터 만년까지의 편지를 모은 것으로 經史, 百家, 古文, 詩詞, 老佛, 金石, 楷隸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과 예술 세계가 고스란히 나타나며, 내면묘사가 섬세한 문예취향이 강한 글이다. 《阮堂尺牘》의 수사적 특징은 ‘나열과 반복’ ‘영탄과 비장’ ‘직서와 고백’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나 타나고 있다. 그는 유학자로서 절제된 감정이 아닌 흘러넘치는 직관적 감흥을 시적인 리듬감을 통 하여 표현하였다. 질병에 의한 육체적 고통과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고뇌를 영탄과 비장을 통하여 나타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강하게 묘사하고자 할 때는 직서적 표현을 통하 여 내면을 여과 없이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阮堂尺牘》의 내용적 특징은 환경적 요인에서 오는 고독을 기다림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치유하 고자 하였는데, 그 기다림의 매개체가 척독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는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주역의 소통 이론을 통하여 현실을 극복고자 하였다. 추사는 서신을 통하여 서예이론에 대한 공부법과 서화에 대한 품평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깊이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당대 예술적 경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추사척독은 자신의 精華가 말 밖에 넘쳐흐르고 신묘한 운치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척독의 예술성 을 풍부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하여 척독 사에 그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다 음 시기까지 이어주는 교량역할을 하였다.
현대 한국에서 주요한 문단 등단 방법 중의 하나는 신춘문예이다. 신춘문예 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가운데 한 편을 뽑고 심사평을 발표하는데 심사평 은 ‘올해 투고시의 경향’이나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낙선이유’와 ‘당선이유’ 등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본고의 연구대상 시기인 2000년 이후 약 60여명의 심사자, 약 100명가량의 당선자, 수천 명의 낙선자가 있었다. 시간차 가 있음에도 당선된 시와 심사평에서 발견되는 낙선자나 심사자 그리고 당선자 의 특징은 이들을 단수로 지칭해도 될 만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매해 수 천 명의 시인들이 투고하고 있으므로 신춘문예는 지극히 당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2000년 이후의 신춘문예 심사평과 당 선작을 통해 신춘문예의 종교현상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당선자 낙선자 심사자 는 문학청년들의 강렬한 문학 숭배현상,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서의 ‘통과의례’ 라는 의례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당선된 시들에게서는 ‘신화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신화화의 과정이란 ‘무서운 아버지,’ ‘소외된 아들들,’ ‘아버지의 쇠퇴,’ ‘아버지 죽이기,’ ‘죄의식과 아버지의 토템화,’ ‘주기 적인 의례로 기억하기,’ ‘또 다른 아버지가 되기’의 신화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홍루몽』은 중국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간행되자마자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파되었다.『홍루몽』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찰하는 것은 전파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작용이 있다. 『홍루몽』의 문예적인 특성을 살펴보고 독자들이 상상과 추측을 통해 반복적으로 생각하여 점차 작품에서 표현하려는 깊은 의미와 미묘함을 이해하여 암호 해독 과정 중에서 즐거움을 얻어 극대한 예술적 향유를 느끼게 된다. 『홍루몽』은 독자들에게 풍부하고 영명함, 미묘한 암시를 제공하였고 이러한 점이 바로 『홍루몽』이 널리 오랫동안 전파되어 무궁한 흥미와 연구 자료로서의 기치를 제공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이에 『홍루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먼저 작품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작가가 살았던 당시의 문화와 현실에 대해 조명해 보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홍루몽』의 가치를 다양한 시각으로 재탐색하는 방법으로 『홍루몽』의 문예적인 특성을 살펴보고 또한 한국에의 유입에 대하여 정리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뚜렷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점이 있다. 앞으로 이를 좀 더 보완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한․중양국의 문화교류를 이해하고, 미래의 관계를 개선해 가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상상과 관련된 이론을 상상의 속성, 상상력 발휘의 조건과 관건, 상상력과 언어표현의 관계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유협이 <文賦>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음을 볼 수 있다. 창작의 경로를 思→意→言로 인식한 점도 그러하다. 그 중 상상력 발휘의 조건을 허정(虛靜), 학문(積學), 이치(酌理), 독서와 연구(硏閱), 정취(馴致)로 세분화한 점이나 상상력의 관건을 통솔하는 요소로 志氣를 제시한 점 등은 육기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부분이다. 두 사람의 이론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본 논문은 육기가 창작자의 시각으로 문학의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육기는 창작의 고통을 깊이 체험하고 <文賦>에서 상세하게 묘사했다. 유협은 상상의 근본원리에 대해 분석하고 이론적으로 접근했지만 육기는 불가지의 영역으로 인식했다. 오히려 상상이 막혔을 때의 고통에 대해 묘사했다. 이런 특징은 문체론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유협이 뚜렷한 기준을 설정하여 문체를 구분하고 각 문체의 특징을 상세하게 서술하는데 중점을 둔 반면 육기는 문체운용에서의 임기응변과 창조성을 강조했다. 역시 창작자의 입장이 투영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두 사람의 이론이 문학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