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이종구의 1980년대 농촌 회화에 나타난 리얼리즘에 대한 연구이다. 이종구는 처음부터 서사와 메시지를 내포한 리얼리즘 작품을 하고자 했다. 단순한 서 술이 아닌 작가 고유의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극사실 기법으로 초 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화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그의 관심은 경제발전으로 호황인 도시의 그늘 속에 가려진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후 고향에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자각했고,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 고 있었던 이문구의 농촌소설에서 농촌 표현의 영감을 받았다. 1984년부터 고향 서 산시 오지리를 주제로 농촌사회의 암울함을 회화로 계속해서 표현했다. 1984년 <연 혁-아버지>를 시작으로 농촌회화에 적극적으로 매진했다. 작품에 표현한 아버지의 생애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보편적인 농민의 일생이다. 이종구의 농민 초상화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농민들의 애환을 보여주고 소를 의인화하여 농민의 삶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오지리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 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농촌의 실상은 점차 황폐해져갔다. 이것은 오지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농촌의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이종구는 생명을 길러내던 땅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농촌 상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농촌을 지키는 농민을 민족의 주체로 규정했다.
미술관은 일반적으로 전시, 교육, 연구 등을 포함한 활동 전반에 있어서 공적 책임이 있 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공적이라는 기준은 행정적이고 경제적인 의미에 더불어 관람자 및 관 계자를 포함한 공중의 기대와 의도를 품은 말이다. 이렇듯 여러 의미의 혼성체인 ‘공공’은 공통적으로 이상적인 무언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졌다. 본 논문은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살롱전과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1980년대 무 렵에 설립된 현대미술관들의 사례를 통해 ‘공적 영역’으로서 각 미술관 모델이 대변하고자 했던 시대적 이상과 열망을 논한다. 공적 영역에 관한 이론적 논의는 공중에게 예술을 개방 하고 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했던 조건을 분석하여 미술관의 제도적 형태, 물리적 구 성, 그리고 공중의 주체성이라는 쟁점까지 고찰하는 관점을 제공한다.
As earthquakes have increased in Korea recently, people are paying attention to the seismic performance of buildings built in the past. Many school buildings in Korea were built based on standard drawings before the seismic design was applied. However, since school buildings are often designated as emergency evacuation facilities in case of disasters such as earthquakes, seismic evaluation and retrofit must be done quickly. This study investigated the failure modes among structural components (beams, columns, and joints), focusing on 1980s standard drawings for school buildings. The effects of column axial force, partial masonry infills, and different material strengths for concrete and rebar were considered for detailed evaluation. As a result, most of the joints were found to be the weakest among structural components. Column axial forces tended to make the joints more vulnerable, and partial masonry infills increased the possibility of joint failure and shear failure in column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nges in the Masan region’s restaurant industries from the late 1960s to the early 1980s. Within this period, there were 1,597 numbers of restaurants found in ‘Masansanggongmyeonggam’. During the same period, 313 restaurants appeared in the ‘Gyeongnamsinmun’ restaurant advertisements.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staurant industry in Masan during this period are as follows. In Korean food, meat menus such as ‘Bulgogi’ became popular, and local foods such as ‘Masan Aguijjim’, ‘Kkosirak’, ‘Hoebaekban’, and ‘Jinjubibimbap’ were commercialized. Due to the government's ‘Punshik Changny-ö’ policy, the flour food became popular and the number of Chinese restaurants rapidly increased. New western foods were also introduced, such as hamburger and pizza. Grilled whole chicken at ‘Yeongyangcenter’ became popular, and the emergence of ‘Food Department Store’. These new changes were introduced so quickly that there was almost no time difference with the metropolitan area, and it is thought that this is because the young people who moved in as the Masan area was industrialized actively accepted the new changes.
이 글은 1980년대 중국 문학이 아이트마토프의 작품을 수용하는 각종 양상과 차이 를 분석함으로써, 1980년대 중국 문학이 당시의 중국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추동하 려 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왕멍이 아이트마토프에게서 배운 것은, 문혁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 1980년대의 중국이 명징한 정치 인식과 정치로부터의 거리두기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문학적 시험이었다. 장청즈는 소수민족적 풍토, 인도주의라는 동질감으로 아이트마토프를 수용했으며, 츠쯔젠은 현실 생활에 대한 아이트마토프의 시적인 시선에 주목했다. 루야오는 긍정적인 태도, 인도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고난에 대한 진지한 자세, 노동존중이라는 195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통을 견지한다. 1980년대 아이트마토프의 중국 수용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자장과 개혁의 여명이 중첩되는 시기라는 1980년대 중국 사회의 중층적 성격, 전환기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위젠(于堅. 1954∼)은 1980년대 중국 시단에 출현한 ‘3세대(第三代)’를 대표하는 시 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80년대 중반 그들(他們)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담담한 구 어체로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시를 선보이며 ‘3세대’의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기 전까지 중국시는 오랫동안 정치 이데올로기와 집체주의적 사고 에 의해 지배되었던 탓에 일상의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과 감정을 시화(詩化)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사회정치적 프레임을 벗어던진 시적 실험이자 혁명이었다. 위젠의 1980년대 작품은 ‘3세대’ 시가운동(詩歌運動)과 그 흐름을 같이 하면서 다양한 시적 (詩的)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보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80년대 위젠의 시적 실험들은 중국 당대시 창작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시의 미학(美 學) 영역을 확장시켰고, 90년대 시 창작에 경험적 바탕을 제공하게 된다.
As earthquakes continue to occur in Korea in recent years, seismic evaluation and retrofit of existing school buildings have been carried out. Many domestic school buildings were built using or referring to standard drawings. Therefore, if the overall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a school building can be known first based on standard drawings, it can be provided as valuable data for detailed seismic evaluation. For this reason, this study investigated the weak structural components and failure modes by comparing the strength of beams, columns, and joints constituting standard school buildings constructed in the 1980s. The evaluation was performed for different types of standard drawings and different material strengths. The results showed that the joint was mainly the weakest due to the eccentricity, and the failure modes were partially changed depending on the material strength.
본 논문은 1980년대 여성시에 표현된 죽음에 대한 상상과 그 표현을 내용별로 분 류하여 고찰하였다. 1980년대는 중국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여성시의 발전을 이 끈 첫 번째 시기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때 여성시는 서구의 영향과 뚜렷한 성 별의식으로 다량의 우수한 시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죽음의 주제는 자신의 몸에서 시작해서 여성 특유의 생존 체험과 심층 의식을 표현해 주어 남성과는 다른 성별 특 징을 지니고 있다. 논문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1980년대 여성시에서 죽음 에 대한 상상을 첫째, 현실 고통에 대한 해탈로서의 상상, 둘째, 사랑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로서의 상상, 셋째, 종교적 표현과 문화적 저항으로서의 상상 등 세 가지 모 습으로 분류와 분석을 하였다. 그리고 죽음의 상상을 통하여 여성 시인의 독특한 신 체 경험과 문화적 경험, 여성 시인의 다양한 예술적 스타일을 탐구하였다. 본 논문을 통하여 죽음의 상상으로 쓴 여성시의 예술적 특징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20세기 여성시의 정신적 함의와 문화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 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1980년대는 시인 창야오의 창작이 본격화되고 서북 변방의 시인 창야오가 세상에 알려진 시점이다. ‘유형 4부곡(流放四部曲)’이라 지칭되는 일련의 장시(长诗)와 조형 능력이 탁월한 시를 발표하면서 문혁 이후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던 창야오 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예술적 사유와 언어 감각으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 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80년대 창야오의 시를 그의 개인사와 함께 분석하고, 1980 년대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그의 시가 가지는 사회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시인의 개인사는 1980대 대표작의 분석과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cultural meaning behind modern experiences of diversity through the history of clothing in Korea. To this end, this study examines aspects that dictate clothing culture acceptance experienced and practiced by women by analyzing the case of the Naju rural area in Jeollanam-do from the 1950s to 1980s. Modern clothing was accepted later in the 20 century in this village, and the Satgolnai traditional textile tradition was an important factor after 1950s. In addition, the continuity of the rural five-day market is different from practices in the city. Limitations in access to media such as TV, films, and magazines, and the functional meaning of clothing in rural areas contributed to limitations for women to get the opportunity to access modern clothing items that were popular in the city. Unlike in the city, the event that inspired the transition to full-scale modern clothing in this village was the Saemaul Undong Movement of the 1970s. Additionally, Mombbe (labor cloth) wor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continuously worn as daily clothes for Naju women even after the 1950s. Therefore, colonial modernity continued through clothing.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이 실각 되면서 중국은 새로운 근대화 단계에 접어든다. 이 시기 새로 운 생활방식 도입과 중국 문단의 변화는 조선족 문단에도 영향을 끼친다. 철저한 계급의식과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했던 과거와 달리, 문화대혁명 시대의 규제에서 벗어난 조선족 문단은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문학에 수용하고 반영하기 시작한다. 이 글은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조선족 문단의 대표 극작가라 할 수 있는 리광수 희곡을 통해 1980년대 이후 조선족 희곡에 나타난 세태 반영 양상을 살펴보았다. 리광수 희곡은 중국의 개방정책 이후 변모하는 조선족 사회의 단면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희곡집 ≪사랑의 품≫과 TV드라마 대본집 ≪사랑의 샘≫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삶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유입으로 혼돈과 변화를 거듭하는 조선족 사회에 대한 낙관적 관망과 더불어, 혼란과 분열에 대한 작가적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 당시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를 작품 안에 담아내고, 문제의식을 형상화함으로 써 ‘상처문학’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리광수 희곡 의 변모 양상은 개방 이후 조선족 사회가 직면하게 된 개혁해방에 대한 태도의 변화와 궤를 같 이하며, 그의 조선족 사회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리광수는 80년대 이후 변화하는 중국 조선족 사회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극작가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칠레 출신의 개념미술가 알프레도 하르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에서 나타나는 미디어 비판적 시각에 대한 연구이다. 본래 하르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이용한 설치작품으로 뉴욕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미술사에서는 그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분류하여 사건의 기록적인 측면에서 연구해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 아래 제 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그러한 시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언론지 차용 작 업을 연구하는 것은 작가의 작품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하르의 198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은 칠레 쿠데타의 미국 개입의혹과 미국의 자유 주의 사상 이면에 만연하는 불평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언 론지의 표지나 광고, 혹은 보도사진을 병치해 미디어에 내포된 이데올로기를 지우고 자 신의 의도대로 의미를 전환시켜 미디어를 순수한 사회적 기록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그의 1990년대 언론지 작업은 제 3세계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 에 대한 서구 미디어의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기간 동안 발행 된 언론지의 표지를 나열해 미디어가 인종차별적 아래 해당 사건을 주요 뉴스에서 배제 시켰음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사건의 직접적 가해자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방관적 태도 역시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그의 1980-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 업은 일상 속에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언론지의 기사 텍스트나 이 미지 혹은 광고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단순히 병치시킴으로써 기존에 미디어가 내포했 던 의미와 작가가 전환시킨 의미를 관람자가 비교하고 깨닫게끔 유도했다고 볼 수 있 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업은 주류 미디어를 역으로 이용한 대항(counter) 미디어로서 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언론지 차용 작업은 미국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활발히 논의 중인 우파와 좌파간의 첨예한 대립,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 제 3세계 주변국 사람들을 바 라보는 차별적 시선 등과 같은 정치적 사안과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르의 1980-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은 여전히 동시대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진보적 운동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시기 시인 들은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시들을 적지 않게 창작하였는데, 이에 는 성경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교회력이 다수 등장한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 더우드목사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제물포에 상륙한 후 약 100년밖에 되지 않았 음에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성경적인가. 본고는 당 시 사회비판 시에 나타난 기독교, 특히 신관과 내세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시들은 신성보다는 인간화된 예수로 묘사되며, 나아가 예수는 민중을 상 징한다. 인간예수의 강조는 십자가형이란 극한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간 자 이기 때문에 이 땅의 비극적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바탕 으로 하고 있다. 지식인 시인들은 사회의 모순이 신의 침묵에 원인이 있다고 보 았고, 신은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종교를 거부하게 되고, 민중이 예수 더 나아가 투사 자신이 예수가 된다. 이러한 기독교를 소재 로 한 1980년대의 사회비판 시가 갖는 의의는 기독교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해 방문학을 지향했다는 데 있다.
Park Eun-ha. 2016. “Comparative Study of Linguistic Aspects Expressed in Cosmetic TV Commercials: With a Special Focus from 1960 to 1989 and from 2013 to 2015”. The Sociolinguistic Journal of Korea 24(1). 149~174. This study examines and compares characteristics of sentences, vocabularies, textual structures, and types of persuasion in cosmetics TV commercials that have aired before the 1980s (1960~1989) and in the last three years (2013~2015). The study consists of four parts, and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in order of frequency of occurrences, “declarative sentences” ranks the first, followed by “imperative sentences” before the 1980s and “interrogative sentences” in the last three years. Word final endings reveal that nouns have been the most frequent in both periods, followed by haera style before the 1980s and haeyo style in the last three years. Second, this study examines the main topic and characteristics of vocabulary in cosmetics TV commercials. The results show that “skin” is the most frequent main topic in both periods. Remarkable topics in use indicate: “color” and “scent” before the 1980s, “moisture” and “anti-aging” in the last three years. In the use of foreign languages, alphabets have been in use for the written caption in the last 3 years, while Hangeul (Korean alphabet) were used for the written caption before the 1980s. Third, with regard to the textual structure, it is noted that the structural factors of the advertising texts were observed similarly. In the two periods under study, caption and female narrators texts have been the most frequently or mainly. Compared from 1960 to 1989 with from 2013 to 2015, male characters have appeared somewhat in the last three years while there have been no male characters before the 1980s. Finally, for the type of persuasion, “straightforward type” ranks the highest, followed by “economical type”, and “CM song type” before the 1980s, and “mixed type” among various types in the last three years.
한국과 프랑스에서 새로운 예술운동이 태동하던 198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의 두렁과 프랑스의 아르 크로쉬는 예술의 발생과 소통의 장소가 기존의 예술제도와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이 상이한 지점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2000년대 이후 양국의 제도예술현장에서도 더러 발견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예술 그 자체를 고정된 형식과 내용을 바라보지 않고 그 범주와 존재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했던 두 집단의 노력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예술개념 자체에 대한 도전적 질문으로서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본 논문은 80년대 한국과 유럽에서 대두된 새로운 예술운동이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예술현장과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가를 한국의 ‘두렁’, 프랑스의 예술스쾃 ‘아르 크로쉬’를 비교분석하면서,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오아시스프로젝트의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예술 그 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었던 양국의 예술가들에 의한 운동이 현재는 어떠한 모습으로 예술계와 사회에 현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노정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부대행사로 열린 《세계현대미술제》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세계화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맥락을 살펴본다. 1980년대 국제전시의 확산과 함께 대두된 《세계현대미술제》는 냉전시대의 이념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 교류와 소통의 공간 창출을 목표로 했으나 한국 미술계의 이념적 차이가 노출되면서 여러 진영간 대립의 궁극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갈등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형에서 ‘세계’를 인지하고 ‘세계 문화’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서구의 ‘세계화’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전개과정과 다르게 1945년 이전 식민지 시대의 불편한 과거, 역사적 트라우마와의 타협과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으며, 개인적, 집단적인 차원에서 내부/외부, 피식민지/식민주의, 지역성/세계성, 추상/구상, 전통/현대 등 20세기 구축된 여러 대립구도가 작용했기 때문임을 밝힌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es of cotton and silk textile production in Honam district, especially in Gurye, Jella Province from the 1930s to the 1980s. To do this, research method in this study was both literature and fieldwork research and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in terms of cotton fiber cultivation of Gurye, Chinese Cotton(在來綿) has been substituted for America Cotton(陸地綿) and additionally, Yellow Cotton (黃綿) has been cultivated in the 1930s. Also, in terms of silk fiber cultivation of Gurye, Joseon Silkworm has been substituted for Japanese Silkworm by inflowing the Japanese mulberry tree. Second, in terms of spinning method, cotton spinning has been conducted at every house by an individual tool from the 1930s to the 1950s and has been gradually changed to mechanization by market shop equipped with mechanized cotton gin and cotton whipping tool. However, there have been no changes in silk spinning method from the 1930s to the 1980s. Third, loom type has been changed from the traditional Korean back-strap loom to the treadle loom between the 1930s and the 1940s. Fourth, dyeing was conducted by chemical dyestuff after weaving. The circulation of textile was done through the joint market by Japan in the 1930s~1950s and has changed to the market sales by producers since the 1950s. Fifth, since the 1970s, the outputs of cotton and silk textile of Gurye have been reduced. This was connected with the westernization and the inflow of the synthetic fiber and cloth in cotton and was related to the changes of the nation policy and silk fiber inflow from the china to the Korean farm villages.
The core idea of the critical regionalism could be summarized as a self-conscious synthesis between universal civilization and world culture. After World War Ⅱ, it has been applied to architecture for overcoming the problem of Industrial Capitalism and uniformity of 20th century Modern Architecture. Naturally, religious architecture cannot also be an exception in this cultural trend, thus we can also apply the critical regionalism to the Korean Catholic Church Architecture with the basic premise that the Traditional Western and Modern Style Church Architecture should be regarded as universal civilization, and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and endemicity as one of world culture. In the context, this article attempts to analyze the regionality of Korean Modern Catholic Church Architecture constructed between the 19th century and 1980's, and how it has been differently transformed with the view of the critical regionalism. Its analysis will be carried out within three types;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and the influence of Japanese Modern Architecture,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and abstraction of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with each advantages and disadvant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