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실내악의 쟝르인 예술가곡(藝術歌曲)은 성악작품으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 유럽에서 탄생되었다. 음악과 시, 반주 가 고도로 결합되어 구성된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German and Austria)파 작곡가들인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Johann Jakob Brahms, 1806–1872) 등이 이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부동한 나라와 지역에서 예 술가곡이 전파발전함에 따라 각자의 문화적 차이와 음악적 특 색을 나타내고 있다. 본문에서는 음악 창작의 차원에서 한국의 <마중>과 중국의 <친문타타하(親吻沱沱河)>에서 나타난 곡조 구조와 리듬 등에 대하여 분석과 연구하였다. 여기 한·중 예술 가곡은 각기 한 지역의 문화 특색과 예술을 내포하고 있어 양 국의 예술가곡 창작과 발전을 위한 일정한 계시와 공헌을 하였 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예술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디어를 최초로 구현한 통합적 노 트인 플럭서스의 총보를 중심으로, 예술가의 통합적 노트가 융합적 창작을 기획하는 예술가 의 파라큐레토리얼의 실천으로써 가지는 시의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리하르트 바 그너의 ‘총체예술’부터 빈 분리파가 제시하는 ‘예술가사회’ 그리고 라즐로 모홀리 나기가 바 우하우스 극과 ‘총체극’에서 제안하는 동등한 협업관계까지 융합적 창작에 대한 태도와 방식 이 어떻게 확장되어왔는지 먼저 살펴본다. 이러한 협업에 대한 관계의 성향, 태도 등은 이후 1950-60년대 현대음악 작곡과 전위적 퍼포먼스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 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재조명할 수 있다. 특히, 플럭서스가 제시하는 느슨한 예술가 커뮤니 티와 인터미디어의 개념을 총체예술의 계보 안에서 고찰해본다. 그리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총보와 퍼포먼스 사례들에서 예술가들이 서로가 서로의 기획 에 어떻게 퍼포머의 역할을 수행하여 협업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당시 작곡이나 각본, 드로잉과 같은 형식으로 작성된 예술가의 통합적 노트가 작품화 되는 과정은 여러 예술가들 의 협업을 필요로 했다. 이 연구는 오늘날 다원 예술에서 예술가들이 서로의 작품에서 다양 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 중, 고려해야할 협업의 태도에 대한 지침이 될 것을 기대한다.
본 연구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철학가와 비평가였던 엘리엇이 근대주의(Modernism)적 관점에서 쓴 「블레이크」와 낭만주의 최고의 시인 예이츠가 편집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선집의 서문과 소개문에서, 내용을 비교 분석하여, 블레이크의 상상력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다. 이를 위하여 예이츠의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인간의 머리를 쓴 사자,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The Tyger”), 엘리엇의 1920년 「블레이크」와 같은 해에 쓴 「게론천」(“Gerontion”)의 호랑이, 엘리엇이 개종 이후 1935년에 쓴 「어느 노인에 대한 시」(“Lines for an Old Man”)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대한 비교를 통하여, 상상력과 예술가의 교육 환경과의 관계에 대하여 고찰한다.
본 연구는 유럽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영국 예술가곡의 역사적 흐름과 발전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 작곡가들 을 특정된 20세기에는 작곡한 예술가곡에서 나타난 고유한 문 화적, 음악적 특징, 내면적 감정 그리고 시적 운율 등을 제시하 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영국 가곡 의 역사적인 흐름을 다섯 개 시기로 나누어 정리하여 설명하였 다. 20세기 영국 유명한 작곡가들은 자기 나라의 시인을 선호 하는 배경으로 인해 음악을 시와 연결하여 작곡하는 사실을 제 시하고 당시 예술가곡의 일반적인 특징을 파악하는 동시에 연 가곡 <A Cycle of Life>을 예로 들어 20세기 영국 예술가곡에 나타난 선율, 조성 등 음악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20세기 영국 예술가곡의 특징을 조합적 으로 정리하였다. 이로 도출된 결과는 연가곡 <A Cycle of Life>를 연주하고 표현하는 데에 유용한 참고자료로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음악연구자 또는 성악연주자로서, 20세기 영국 예술 가곡에 관한 이해를 넓히며, 이를 비롯한 다른 20세기 영국 예 술가곡을 연구하는 데에 도움 되길 바란다.
이 연구는 영국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의 〈나의 침대〉 를 다룬다. 〈나의 침대〉는 에민이 이성과의 이별 후 나흘간 머물렀던 그의 침대를 전 시실로 옮겨 놓은 것으로, 매트리스와 프레임으로 구성된 하나의 침대와 침대 주변에 다양한 오브제를 배치한 작품이다. 에민의 작업은 주로 그의 사적 생활과 감정을 주 제로 삶을 이야기하며, 그가 겪어온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나의 침대〉에는 에민의 불안정한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고통이 드러난다. 〈나의 침대〉에는 모성 의 상실이 드러나거나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이별에 대한 고통과 불안감, 슬픔을 나 타난다. 에민은 〈나의 침대〉에서 그의 상처와 고통을 숨김없이 표현하였고, 그의 혼 란과 고통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치유의 순간으로 전환된 다. 에민이 작업 과정에서 갖게 되는 치유의 경험은 관람자에 전달되며 상호 관계적 소통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본 연구자는 에민이 〈나의 침대〉를 통해 자신의 상처 를 어떻게 치유하는가의 과정을 연구할 것이다.
본 연구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에릭 피슬 자화상에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방식에 관심을 두고 시작되었다. ‘미술가의 초상’ 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3점의 자화상들은 피슬이 자신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화상이 아니다. 시공간의 변화, 젠더의 도치, 광대분장 등을 시도한 다른 방식의 자화상으로서 이 자화상들은 피슬이 작품을 진행 할 당시 뉴욕 미술계의 구상미술에 대한 저평가에 대한 미술가로서의 반응이었다. 피슬이 활동하던 시기의 미술 비평 대부분은 미국 구상 회화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피슬의 자화상에 의도적인 변형과 암시들은 80년대의 구상 미술이 결코 미술의 흐름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추상미술보다 낮은 평가를 갖는 위치가 아님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의 구상 미술을 모더니스트 전통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는 피슬의 작업 방식과 사상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화상 들로 피슬은 천재적인 미술가에 대한 기존의 모더니스트 비평 이론에 따른 고정관념을 깨면서, 모더니스트 이론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와 그 시기에 등장한 구상 미술, 그리고 미술가의 양식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미술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피슬은 미술가로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주변의 요소들과 접목시켜 ‘미술가의 초상’에 스스로의 발전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미술가로서의 생애와 자신의 태도, 그리고 사유 등을 각각의 ‘미술가’라는 이름이 붙은 초상화를 통해 새로운 미술가의 이미지와 역할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피슬은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구상회화는 단순히 읽기 쉬운 그림이 아니라 미술가의 의도와 사회적인 분위기 및 이슈 등 많은 암시와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술가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의 주관을 모두 제거한 이 작품을 통해 피슬 자신이 구상미술가임을 당당이 선언한다.
아일랜드의 문화적 자긍심을 일깨우고 민족주의적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고단한 집필의 여정과 정치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예이츠를 ‘정치적’ 예술가로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말년에 그가 보여준 전체주의적 권위에의 경도는 많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예이츠의 말년의 정치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이 논문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말년까지 인상적으로 지속된 예이츠의 창조성의 비밀을 그의 정치적 견해 속에 반영된 해결되지 않는 모순과 비타협적 성격 속에서 찾는다.
아서 웨슬리 다우의 구성은 20세기 초 미국의 고전주의적 미술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 된 새로운 미술교육법이다. 학생들은 구성을 통해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 모든 시대와 양식의 미술로부터 구성의 기본요소인 선, 매스, 색채를 조화시키는 법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었다. 다우는 학생들에게 구성 디자인을 수공예로 만드는 실험도 권장하였다. 구성교육은 미국에서 유행한 아트 포터리 운동과 여성 도예가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아마추어 장식가였던 여성들이 구성교육 이후 독창적 도자기 디자인을 개발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고찰하고, 도자기를 예술적으로 생산하는 프로페셔널 미술가의 지위를 획득한 여성 도예가들에게 미친 구성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연구자는 1960년대 후반, 한국의 미술가들이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퍼포먼스에 대한 실험 성을 펼친 사례를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시도한 해프닝, 1970년대 중반의 이건용 과 이강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에서 처음으로 신체를 ‘매개’로 사용한 점 을 분석하며 예술가의 몸과 일상을 서로 중재해 나가는 예술적 과정과 실천을 검토한다. 초기 한국 의 퍼포먼스 아트에서 정강자와 같은 여성 퍼포머를 바라보는 방식, 이건용의 ‘로지컬-이벤트’에서 는 언어의 개념과 상황을 매개하는 예술가의 몸과 타자성, 이강소의 1973년 <선술집>을 설명한다. 1960-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는 미술가들의 신체가 갖는 불확정성, 비결정성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미술가의 몸’을 중요한 개인, 사회, 정치적 사이트라는 문화적 (콘)텍스트로 인식하는 한 국 아방가르드의 특징을 구축했다.
시각예술가인 저자는 자신의 드로잉과 설치작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통찰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자는 미적-예술적 선과 대립되는 과학적-기술적 선의 현상과 효과를 고찰하고자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떠한 유추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제도가로서 저자가 참고하는 자료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인 문제에 접근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것은 추측일까 혹은 인식일까? 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려는 의도에서 저자는 예술적 그리고 과학적 관점에서 기하학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저자는 일종의 번역작업으로 유클리드의 원리와 구성적 기술에 근거한 증명의 계도 형식의 도형을 만들고, 이 도형을 드로잉에 반영하고 있다. 저자는 드로잉 혹은 설치작업이 다양한 요소와 층위를 전개시키면서 본질적으로는 자체적으로 구성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overall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statu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rkers engaged in the field of the film and television artists, and to take appropriate measures to prevent industrial accidents, profession and working environment, safety recognition and education, safety activities, accident experience, and job stress survey. Survey using a structured questionnaire is to be used for 302 worker directly interview research. Safety awareness level of himself or herself was "middle level" of 3.1 points. Those of colleagues and the general public were evaluated to be low as 2.8 points and 2.5 points, respectively. During the last 12 months, 4.6% of total workers have received an industrial safety health education for work-related accident or disease. Regarding cases of having experienced work-related accident or having been exposed to work-related disease over the past 1 year, 20.2% of total respondents have experienced accident. 16.2% of total respondents have experienced work-related disease. And the workers are approximately one's own subjective feeling of physical symptoms that have appeared. In addition, the film sector workers in particular occupations men than women have higher job stress. Preventive education for industrial safety is required to be expanded and strengthened. Safety education is urgently required in order to prevent, and to reduce accident. Safety and health guideline is required to be developed and disseminated in order to prevent accident in advance. Finally, the actor and their staff members to reduce the stress, mental health care and education carefully needs to be in parallel. Also, when taking measures to reinforce safe work environment, it needs to be protected.
중국 水墨畵는 동양예술의 독특한 철학적 意蘊과 인문의 情懷를 지니 고 있으며 ‘物’과 ‘我’관계에서 항상 ‘我’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물의 표 현에서 “寄情于景”、“寄情于物”、“借物抒情”의 사상이 반영되어 최종적 으로 “物我為一”의 境界에 도달하며 동시에 객관적인 사물의 형상을 통 해서 주관적인 예술로 재창조 된다. 바로 이런 “外師造化,中得心源”의 繪畫 주장과 영향은 인문학적 미학 사상과 회화의 筆墨精神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 本考는 中國畵論 중에서 수묵화 언어에 대해 考察해 보았다. 중국 수묵화의 審美 정취와 繪畵技法과의 관계에서 시작해, 화가 자 신의 예술적 修養과 풍부한 회화 언어의 취득 방법 및 의의에 대해 다 양한 각도에서 분석하였다. 먼저 문인화의 필묵정신의 대표적인 예로 蘇軾이 제기한 文人畵의 개념을 분석하고 문인들이 문인화를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다. “意在筆先”의 ‘意’는 詩 중에서 意境을 말하며, 그 속에 문인의 淸廉 하고 고상한 人格과 超脫飄逸의 情趣가 표현된다. 예술창작 과정은 “眼 中之竹”에서 “胸中之竹”으로, “胸中之竹”에서 “畫中之竹”으로의 과정이 다. 이는 意象에서 形象으로의 物化과정을 말하며, 다양한 예술적인 상 상과 사유를 통해서 작가의 구체적인 사고를 표출해 낼 수 있다. 형상 과 韻味는 수묵화의 기본 언어인 筆墨으로 표현된다. 수묵화는 筆法과 墨法으로 意境을 표출해내 形神兼備의 미학적 경계를 얻는다. 문인화가 는 창작과정에서 意境을 중시하는데 중국미학의 중요한 범주에 속하는 意境은 문인의 생활 경험과 부단한 창작활동을 통해 비로소 성숙되고, 화가의 사유 방식과 회화 기법에 의해 비로소 수묵화 언어는 완성된다. 다음으로 文人畵의 시대적 위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오늘날, 많은 화가들은 수묵 언어의 審美系統 연구나 자신의 인격과 예술적 수양보다는 수묵화의 技法에만 무게를 두고 있어 회화기법을 위 한 표면적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 속에는 대부 분 자기만의 필묵언어가 없이 여전히 옛 선인들의 방식만을 그대로 踏 襲하고 있으며 화면은 私利私慾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자기 修養과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함으로, 그림의 품격이 현격히 저하되고 자신만의 필묵정신은 반영되기 어려워 문인화는 絶體絶命의 위기에 놓여있다. 文人畵의 발전을 위해 보다 깊은 思考를 필요로 한다. 기존의 수묵화 역사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墨象을 재발견하고 개개인에 따른 수묵정신을 직접 체득해야 한다. 이러한 각성은 반드시 새로운 가치관 과 철학사상 및 예술이념에서 출발하여야 하며 자연적인 예술 수법을 채택하여 당대의 함축된 문화, 수묵 정신, 이성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재검토가 되어야 하겠다.
본 연구의 목적은 대전·충남 지역의 대표적인 무용가 이미라의 예술 활동을 종합적으로 연 구하는 데 있다. 연구의 방법으로는 인터뷰에 근거한 구술 조사와 책, 연구 논문, 신문 기사, 전 문 사전, 팸플릿 등 각종 참고 자료에 근거한 문헌학적 연구를 함께 사용하였다. 이미라는 자신 의 전공인 무용 분야에서 주로 역사적 위인을 소재한 삼은 무용극을 창작하여 공연하였다. 이러 한 무용극은 교훈적 요소의 용이한 전달, 빠른 내용 이해, 내용의 풍부한 구성, 흥미 요소의 가 미 등이 장점이다.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성웅 이순신>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는 충효 사상이 주제로 부각되었다. 그녀의 무용극은 서사성이 강하고 연극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미라는 충청남도의 민속 예술을 재창조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작업은 원형의 발 굴과 예술성의 제고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은산 별신제>, <거북놀이>, <아산 줄다리기>, <횃 불쌈 놀이>, <등바루 놀이>, <산유화가> 등이 그녀가 재창조 작업에 참여한 충청남도 지역의 민 속 예술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상을 수상하였고, 일부는 국가와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녀는 다음 세대에 우리 민족의 얼을 심어 주기 위한 교육 무용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 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무용극 경연 대회와 강습회가 그 대표적 활동이다. 한편 이미 라는 예술 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examine the responses of artists on nuclear experiences through an analysis of the nuclear images represented in contemporary Japanese art. Japan has previously as twice experienced nuclear disaster in 20th century. The first atomic bombs were dropped in 1945 as well as the 5th Fukuryumaru, Japanese pelagic fishing boat, exposed by hydrogen bomb test operated by the US in 1954 nearby Bikini atoll. Due to Tsunami taken place by the great earthquake that caused the meltdown of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in March 2010, Japan is being experienced a nuclear disaster again. Despite practical experiences, comtemporary Japanese art has avoided the subject of nuclear disasters since the end of the Asia-Pacific War for a variety of reasons. Firstly, GHQ prohibited to record or depict the terrible effect of atomic bomb until 1946. Secondly, Japanese government has tried to sweep the affair under the carpet quite a while a fact of nuclear damage to their people. Because Japan has produced numerous war record painting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in the aftermath of the defeated war, most of Japanese artists thought that dealing with politics, economics, and social subject was irrelevant to art as well as style of amateur in order to erase their melancholic memory on it. In addition, silence that was intended to inhibit victims of nuclear disasters from being provoked psychologically has continued the oblivion on nuclear disasters. For these reasons, to speak on nuclear bombs has been a kind of taboo in Japan. However, shortly after the atomic bomb dropped on Hiroshima, the artist couple Iri and Toshi Maruki visited to ruin site as a volunteer for Victim Relief. They portrayed the horrible scenes of the legacy of nuclear bomb since 1950 based on their observation. Under the condition of rapid economical growth in 1960s and 1970s, Japanese subculture such as comics, TV animations, plastic model, and games produced a variety of post apocalyptic images recalling the war between the USA and Japanese militarism, and battle simulation based on nuclear energy. While having grown up watching subculture emerged as Japan Neo-Pop in 1990s, New generation appreciate atomic images such as mushroom cloud which symbolizes atomic bomb of Hiroshima. Takashi Murakami and other Neo-Pop artists appropriate mushroom cloud image in their work. Murakami curated three exhibitions including <Little Boy: the Art of Japan's Exploding Subculture> and persists in superflat and infantilism as an evidence in order to analyze contemporary Japanese society. However, his concept, which is based on atomic bomb radiation exposure experience only claimed on damage and sacrifice, does not reflect Japan as the harmer. Japan has been constructing nuclear power plants since 1954 in the same year when the 5th Fukuryumaru has exposed until the meltdown of Fukushima Nuclear Plant although took place of nuclear radiation exposures of Three Mile and Chernobyl. Due to the exploding of Fukushima Nuclear Power Plant, Japan reconsiders the danger of nuclear disaster. In conclusion, the purpose of this paper may be found that the sense of victim which flowed in contemporary art is able to inquire into the response of artist on the subject of nuclear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ety, politics, culture, and modern history of Japan and international political situation.
Accepting the musician as a genius means the concern for outstanding ability of human beings reflects the viewpoint of the emphasis on the artist's individuality, subjectivity, and especially the creativity. In this context, the aesthetics of genius provided the opportunity of establishing the autonomy of arts and the chance of reestablishing the social position of musicians. That is, on the one hand the formation of the concept of genius has a close relation with individual and artistic subjects and on the other hand, is closely rela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Western music. However, does the word "genius" contain just positive meanings? In this thesis, I began with this question and researched the aesthetic meanings of "genius" in the aspect of the artist's subjective identity(subjektive Identität). And I've examined the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the 'identity' in the concept of artist a 'geniu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geniu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artist's identity in the field of music. In this thesis, I've objectively examined whether the musician could have attained authentic identity as a subject of art as the musician got the recognition of being a genius or not. Then I have thought the internal meanings of representation or the rhetoric of 'artist as a genius'. And I looked on the problems of 'aesthetics of genius' which is so-called 'genius-ideology'. Throughout this process I've critically examined the hidden meanings of 'musical genius' and moreover groped the 'images of genius' which is contemporarily meaningful in the view of these times.
Mona Hatoum and community make unlikely bedfellows. From her beginnings as a teenage exile to her maturity as an internationally celebrated artistic nomad, Hatoum defies classification within any single geographical or cultural community. Attempting, however, to locate specific points of contact between her and certain communities in terms of artist‐in‐residence projects in which she participated might be a particularly fruitful way of circumventing her notorious critical resistance to identity and her refusal of homogeneity. This paper starts with Miwon Kwon’s critique of contemporary practices in community‐based art, which locate an essentialising force that isolates a single point of commonality and overlooks authentic differences. It then turns to Jean‐Luc Nancy’s reconceptualization of community as ‘unworked’ and ‘being‐in‐common’ to provide analytical tools for avoiding the dangers of essentialism. By examining the three residencies that Hatoum accepted in the mid‐1990s in the light of Nancy’s observations and theories, and by bringing the idea of artistic nomadism and that of community into juxtaposition, we hope to show that Hatoum succeeds in finding an equilibrium between art and community, and that this sheds new light on the issues raised in recent discussions on such relationship
This paper discusses perfectionist writers W. B. Yeats and James Joyce. To compare how they worked slowly and creatively toward completing a work, I take two works by Yeats and Joyce, two of their best works. Yeats tends to work on his poems and plays continuously, even after they have been published. This paper looks at the rewriting of “Leda and the Swan” in several different stages, in order to see how the poem gather intensity and art, as an exemplification of what he did as a literary artist. Yeats’s attitude toward art and his literary style can be compared to the traits of art, and his literary style can be compared to that of the young artist depicted in A Portrait. In fact the young artist Stephen can be seen as Joyce the artist, and the paper discusses Stephen who grows linguistically and artistically competent. Yeats and Joyce are not merely Romantic writers; they were determined to develop new art and bring it to the highest perfection. And indeed they have achieved it in their works respectively.
미술가의 저작인격권의 보호수준과 범위는 미술에 대한 철학적 인식, 미술의 사회적 중요성, 개인의 정치적 권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정해지고 있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19세기 이후 미술은 자연의‘재현’이 아닌‘표현’으로 미술품에 미술가의 인격이나 정신이 드러나고 있어‘정신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며, 저작권을 자연권 중 하나로 보기 때문에 저작인격권의 틀로 보호한다. 또 19세기 저작인격권이 처음 도입될 당시 이미 미술이 매우 발달해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보호수준을 높게 하고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 반면 영미법계 국가는 미술품은 작가의 인격이나 정신이 드러나는 것이라기보다 세상에 대한 ‘재현’으로 하나의‘물건’이라고 보는 전통이 있고, 저작권은 소비자의 최소의 비용으로 작가의 창작을 격려하고 사회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인정하는 권리라고 보기 때문에 미술가의 저작인격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미술을 자연의 ‘재현’이 아닌‘표현’으로 보게 되면서 저작인격권을 인정하게 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미술이 덜 발달해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보호수준을 낮게 하고 범위를 좁게 인정한다. 그러나 대륙법계 국가의 저작권 시스템과 영미법계 국가의 저작권 시스템은 원본 보호의 필요성 등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미술가의 저작인격권 보호가 어느 시스템에도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국가 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세계적인 철학의 조류를 살펴보면 결국 작가의 인격이나 정신이 작품에 드러나고 미술가와 미술품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는 방향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가의 저작인격권의 보호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확산은 기존 저작권 보호 체계에 중대한 도전이며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라기보다는 저작권 도입 초기부터 있었던 기술의 변화에 대한 대응의 문제에 불과하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창작성을 보호하는 저작인격권의 보호 필요성은 줄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미술가의 저작인격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민족의 미술에 대한 인식과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한민족은 미술을 자연을 묘사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만 보기 보다는 작가의 인격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면이 두드러진다. 묘사의 기교보다 대상물을 통해 그 자체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그림이 곧 사람이라하여 기술적인 면보다 화가의 인격 도야에 힘썼던 사상을 가져왔다. 또 작가가 창작을 할지 여부, 창작의 내용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원 작품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의지도 높았다. 다음으로 대한민국 미술 시장을 보면 프랑스나 미국에 비해 보호해야 할 미술저작물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하지만 2006년에 들어서면서 미술경매 시장이 폭발적으로 신장하면서 미술 시장의 활성화가 이루어졌고 국민소득의 증가 등으로 볼 때 대한민국도 미술가의 저작인격권에 대한 보호수준을 높이고 보호범위를 넓히는 해석 및 입법을 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과 입법에는 한민족의 미술에 대한 역사적 관념, 명예에 대한 법감정 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Artist-in-residence which gets chances to create by artists’moving and encounteringnew culture is heightening its level in 21th century. Under the circumstance that issue ofcultural diversity and the role of artists which is for city revitalization and sustainability areaffect residency program in the midst of highly proceeded globalization that internationalexchange. Therefore, in the aspect of creative city, a new model is creating by reuse ofabandoned industrial facilities and Asia or Eastern country become the subject in residencyprogram management, the issue of cultural diversity is getting more important, programsbased on project not just residence are managing. Furthermore, it has inter-countrycooperating system in the rage of cultural management. It means that artists’space ofcreating activity has a new, social role in spontaneously we need to approach to followingmodel in Korea, a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