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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언자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다양한 상징과 맥락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일상적 차원을 초월한 문자 혹은 기호로서 기능한다. 시인이면서도 예언자적 특성과 문학적 상징을 사용했던 작가들의 목록은 매우 길다.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워드, P. B. 셸리 등과 같은 낭만주의 시인뿐만 아니라 밀턴이나 예이츠, 엘리엇과 같은 시인은 단순한 문학적 표상을 넘어 시대와 문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상징과 기호로 해독되어야 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담았다. 엘 리엇은 매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만큼, 그의 대표작인『네 사중주』는 여러 관점에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메시지의 형식과 의미가 생산되고 수용되며 해석되는 방식이 예언자들의 점사언어를 해석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밝히며, 어떻게 예언적 점사언어가 예술로서의 시적 상상력을 고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시학적으로, 언어적으로, 그리고 기호학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던 갑골문의 갑자(甲子)력 체계를 근간으로 한 명리학의 해석체계와 발터 벤야민의 언어기호에 대한 일반적 이론을 근거로 하여, 예언적 기호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 시학적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6,600원
        2.
        2017.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 S. Eliot’s Four Quartets and Murder in the Cathedral inherited the religious and philosophical tradition of Thomas Aquinas’s Summa Theology and Dante’s Divine Comedy. The Anglo-Catholicism, as distinguished from the Roman Catholicism, thereby may be seen to designate Eliot’s religious identity. Dante’s Divine Comedy shows the apex of his contemplation based upon the intellect. Dante illustrates “paradiso” reaching contemplation by using various lights, and Eliot’s Four Quartets similarly reveals a still point that is a mystical experience filled with much light. In Four Quartets the moment of mystical experience can be seen like those in the works of Thomas Aquinas and Dante belonging to a Catholic tradition that reaches sanctification. The action of Archbishop Thomas Becket in Murder in the Cathedral might just sin as a failure to will in accordance with God, which is the choice of good and evil of human acts interpreted by St. Thomas Aquinas’s Summa Theology. For the true martyr is the person who has become the instrument of God, who has lost his will in the will of God, and who no longer desires anything for himself.
        5,500원
        3.
        2016.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 S. 엘리엇은 『네 사중주』에서 시를 창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능가운데 하나인 기억의 힘을 사용해서 작품을 썼으며, 기억은 정점(靜點)을 관상(觀想)하 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는 베르그송의 순수기억에 영향을 받 았지만 베르그송의 철학을 절대가 없기에 허약한 신비주의라고 폄하 했다. 이런 점에서 『네 사중주』는 단테나 아우수스티누스의 기억의 전통을 따르며, 서양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관점에서 정점은 이해된다. 이런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며 어둠의 길인 욕망을 제어하여 부정의 길에 거쳐서 정점에 이르게 하여 하나 님을 체험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암시된다. 욕망을 제어하여 멸각에 이르는 부정 의 길은 정점에 도달하는 길이나 인간의 욕망은 제어할 수 없기에 인간이 정점 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 사중주』에서 기억은 신성한 기억과 정점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암시를 준다. 신성한 기억과 정점은 기독교에서 하나님 을 만나는 정신적이고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4차원의 종교적인 세계이기에 모순 인 역설로 설명된다. 리틀기딩 교회의 신성한 역사 앞에서 신성한 기억의 축복 을 받은 엘리엇은 과거의 집착과 욕망이 사라지고, 기억의 힘은 사랑으로 승화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로운 축복의 순간인 정점의 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4,900원
        6.
        2023.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네 사중주』만이 담고 있는 내용의 난해성은 이미 잘 알려 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중심에는 기독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기독교 사상 중에서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 그리고 영적 각성을 핵심어 로 설정하여 『네 사중주』를 감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엘리엇의 난해 한 시간 개념 역시 기독교 시각으로 접근하면 어느 정도 해독이 가능하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네 사중주』에 자주 등장하는 무시간 의 순간 역시 영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가시적이 며 물리적인 시간에서 해방된 영원하고 무시간적인 순간들을 엘리엇은 정점은 물론 춤과 영의 여름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순간 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체념 혹은 자아의식의 제거임을 알 수 있었다.
        7.
        2023.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는 시간을 주제로하여 인간의 보편적 삶이 일체개고임을 피력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 날 방편을 시 속에 담고 있다. 내용은 개 인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기독교, 불교, 힌두교의 사상을 혼용하여 다양 한 함축적이고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문구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최초의 세계”, “장미정원”, “한겨울의 봄”, “영도의 여 름”, “정중동의 흰빛” 같은 문구와 “회전하는 세계의 정점에. 육도 비육 도 아닌 / 그곳으로부터도 아니고 그곳을 향하여서도 아닌, 정점 거기에 무도가 있다. / 정지도 운동도 아니다. 고정이라고 불러선 안 된다. / 과 거와 미래가 합치는 점이다.”와 같은 문장이 되겠다. 모순적이면서도 함 축적인 표현은 난해하여 독자의 이해 수준에 따라서 의미의 해석이 달 라질 수 있다. 필자는 불교의 열반 적정을 표제로 하였고 시간(현상세 계), 영원, 구원(구속)으로 세분화하여 표현된 문구와 문장을 예로 들면 서 탐색하였다. 엘리엇은 기독교 시인으로서 인류 구원의 상징으로 삼 위일체 하느님을 마음에 담고 시속에 다양한 모순적 어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실재의 상징인 하느님은 인간이 시련에 있을 때 모색하는 원형이 된다. 모색하는 방법으로는 참회와 기도 그리고 비움, 겸손, 사랑 실천 등이 되겠다. 불교의 열반 적정도 이와 비슷하지만, 모색하는 방법이 내 적 탐구라는 점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듯하다. 하지만 궁극에는 겸손히 모든 것을 비우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될 때 신의 은총과 인간의 의 지가 합쳐져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의 교시는 동 서양을 아우르는 시적 표현이라 할 것이다.
        8.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설령 엘리엇 자신도 네 사중주를 자신의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했지 만 실제 우리가 이 작품을 정확하게 감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작 품만이 지닌 철학적․종교적 사상이 그 난해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 래서 본 글은 네 사중주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영혼계에 초점을 맞추 었다. 즉, 우리 인간의 영혼의 이동 모습을 고찰해 본 것이다. 우리 인 간의 영혼은 물리적/ 물질적 세계에서 영적/비가시적 세계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그것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 바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며 아 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화와 사랑 등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9.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네 사중주의 첫 번째 작품인 번트 노턴 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네 사중주의 주제는 시간과 영원, 그리고 그것의 교차점인 성육(Incarnation)에 대한 화자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 다. 네 사중주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십자가의 성 요한, 노르위치의 줄리안 등의 동서양의 철학적, 종교적 사고들을 참 조하고 인용하면서 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였다. 엘리엇은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했지만 번트 노턴 같은 초 반부에서 기독교적 의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연구들은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네 사중주를 고찰하기도 했다. 그러 나 번트 노턴 에서 네 사중주의 구조적 모델로서 후반부에 명시된 기독교적인 관점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번트 노턴 3부에서 표 현된 암흑이나 5부에 나타난 “십단의 비유”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신비 주의 저서에서 참조된 것이며, 이스트 코우커 3부에서 이 암흑에 관 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5부에 나타난 “사랑”은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제 1운동자의 의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성육의 의미를 함축한 다. 이 성육은 드라이 샐베이지즈 5부의 “반쯤 추측된 암시, 반쯤 이 해된 재능은 성육이다”(The hint half guessed, the gift half understood, is Incarnation.)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타나는 장 미, 빛, 새, 나무 등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들에도 기독교적인 의미가 함 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0.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창작의 기본 바탕은 “번트 노턴”에서 “리틀 기딩”에 이르 기까지 엘리엇이 직접 방문한 체험 혹은 경험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엘리엇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체험을 정서와 감정을 배제한 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네 사중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엘리엇의 체험은 물론 기독교 시인으로서 그가 하나님과 만난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네 사중주』만을 위한 체험이라기보다는 이미 이른 시기에도 이와 유사한 체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체험은 명상이나 요가에 의해 출현된 것이 아닌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매우 짧을지라도 이 순간은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11.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실상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종류의 시간 속에 익숙한 채 살 아가지만 엘리엇이 『네 사중주』를 통하여 정의한 시간은 우리의 그것과 는 대조를 보인다. 그 차이는 엘리엇이 신학적 관점에서 시간에 접근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엇의 경우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순간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에서 집중한 과거 역시 현재와 밀 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엘리엇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엘리엇은 자신이 네 장소에서의 체험을 현재의 시각에서 재조명되기를 소망하면서 이를 보는 시각 역시‘초 탈’을 강조한다. 즉, 자기 자신과 타인과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하여 ‘초 탈’의 자세 유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12.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으로 요약된다. 간단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네 사중주』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려움 중의 하나가 시간에 대한 엘리엇의 정의이다. 엘리엇은 시간을 우리가 생활기준으로 삼는 물리적 기준과는 달리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한다. 그는 물리적 시간에 익숙한 인간에게 시간에서 해방되는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시간에 인간의 그것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곧 과거, 현재, 미래에서 해방되어 무시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부인하고 시간을 물리적이나 과학적으로 측정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일종의 점술 행위에 의존함으로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13.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4 편의 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의 제목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다-「번트 노튼」(“Burnt Norton”),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 「드라이 샐베이지즈」(“The Dry Salvages”) 그리고 「리틀 기딩」(“Little Gidding”). 본고는 네 개 제목들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결합하면 ‘B-E-TH-L’ 또는 ‘B-E-THE-L’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Bethlehem’ or ‘Bethel’ 이라는 낱말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을 제안 한다. 히브리어로 ‘beth’는 ‘집’을 뜻하므로 ‘Bethlehem’은 ‘빵의 집’을, ‘Bethel’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본고는 엘리엇의 집필과정을 상세히 탐구함으로써 이 가정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간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인의 은밀히 감춰진 의도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네 사중주』를 신이 인간이 된 역사적인 사건, 즉 성육화가 일어났던 독특한 지상의 공간인 한 특별한 ‘집,’ 즉 베들레헴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대 현상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공간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이 작품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적 경험으로서 분석한다. 『네 사중주』의 순례자에게 공간은 실존적이며 존재는 공간적이다. 베들레헴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14.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그의 어느 다른 작품보다도 우리의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다양한 별칭이 붙어 있으며 특히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엘리엇 개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엘리엇 역시 자신이 느낀 체험을 문자화(언어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며 독자들은 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해서 출현된 언어화를 적절히 이해하는 것이 본 작품에 대한 이해의 최대 관건이다. 그래서 본 연구는 『네 사중주』의 창작과정에서 ‘추억’과 ‘체험’의 중요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고 이어서 그 ‘추억’과 ‘체험’을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엘리엇의 모습과 함께 인간의 삶의 바람직한 자세를 시간으로 부터의 구원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15.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 졌다. 특히 T. S.엘리엇의 대표적인 작품인 『황무지』와 『네 사중주』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이 매우 통찰력 있게 나타나 있다. 운명에 대 한 인식은 단순히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비극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으로 추상화된 삶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의 작품을 운명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기존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연장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중요 작품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명리학적 운명의 인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무지』와 『네 사중주』 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운명과 관련된 이미지, 상징,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엇이 고찰하고 있는 인간 운명에 대한 인식은 많은 측면에서 명리학적인 운명의 인식과 비교될 수 있다.
        16.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글은 기독교 시각에서 엘리엇의 『네 사중주』를 고찰했다. 특히 인 간의 삶을 ‘시작’과 ‘끝’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것으로서 엘리엇은 『네 사중주』에서 이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 시각에서 보면 ‘시작’은 곧 우리의 인생이 끝을 향해서 가지만 이 끝 또한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엇은 “나의 시작에 나의 끝이 있다” 혹은 “나의 끝은 나의 시작에 있다”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끝에 나의 시작이 있다”는 논리는 기독교적으로 ‘영생’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인간은 이와 같은 논리를 외면하기 때문에 변함에 노출되기 쉽고 또한 변하는 것에 집착을 보이게 된다. 엘리엇 역시 이 모습을 『네 사중주』에서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17.
        2018.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이 『네 사중주』에서 추구하는 것은 현상계에서 육화된 신, 즉 성육신이다. 시간에 속박된 인간들은 무시간계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엘리엇은 다양한 환경에서 드러나는 초월계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그 경험의 성격을 묘사하고자 노력한다. 시간과 관련해서 엘리엇이 상정하는 존재방식은 세 종류이다. 먼저 시간을 초월한 세계, 즉 시간의 흐름과 관련이 없는 무시간계, 시간의 지배를 받아 생로멸사(生老滅死)하는 현상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상계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현될 수 있었던 가능계가 그들이다. 엘리엇은 이 가능계는 현상계가 가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특성 없이, 현상계와 초월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엘리엇은 인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계는 이 가능계를 통해서라고 본다. 융은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에서 비롯되었고 무의식이 힘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의식이 무의식의 전체, 혹은 정신 전체의 원리인 ‘자기’를 인식하는 방식이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의 심리적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무의식의 내용은 꿈, 환상, 백일몽과 같이 주로 수동적인 양태로만 의식에 전해지는 문제가 있다. 융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적극적 상상’이다. 의식의 작동을 최소한으로 해서 무의식을 불러들이되 무의식에 의해 압도되지 않은 채로 무의식이 가진 주제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엘리엇과 융이 『네 사중주』와 적극적 상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초월적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18.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네 사중주』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의 내용과 엘리엇이 묘사한 “사랑”의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먼저 대다수의 평자들이 『네 사 중주』의 중심에는 기독교적 사고가 내포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게 되면 무시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네 사중주』 전체의 핵심 내용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엘리엇이 묘사하는 “사랑” 역시 기독교적 논리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본 연구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부연하면 사랑은 만물을 이동 또는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지만 개인적 욕구나 이기심이 배제되어야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네 사중주』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9.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 와 기독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연구는 특히 이 작품 전체의 주제를 포괄하고 있는 두 종류의 제사만이 담고 있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그 의미가 네 사중주 전체에 어떻게 삼투되었는가를 조명했다. 제사가 중심을 잃은 현대인의 생활상에 대한 묘사를 나타내듯 엘리엇은 네 사중주 전체의 주제를 중심에서 이탈한 현대인들의 바른 중심 찾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 방법이 하나님과 완벽한 조화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결과이다.
        20.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네 사중주』 는 시간과 영원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인간이 현상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접하게 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항이지만 막상 그 의미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엘리엇은 『네 사중주』 에서 구속과 고통이 있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자유와 행복이 있는 영원한 삶을 대비적으로 나타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두 극단을 하나로 일치시키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이러한 지혜는 시간과 영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며, 시인은 “정점,” “한겨울의 봄,” “영의 여름”이라는 시적 객관적 상관물과 상징을 고안하여 그 의미를 함축시킨다. 시인의 궁극 적 지혜의 가르침은 모든 다양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원리를 찾는 것이며, 그것은 영원과 시간의 상징인 불과 장미가 하나로 합쳐져 영광의 불 매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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