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회학자 아도르노는 거슈윈이 경음악 창작에서 재능 있는 개조자 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거슈윈이 창작한 '랩소디 인 블루'는 재즈 심 포니 스타일을 개척하여 민족 음악과 미국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이 연 구는 랩소디가 어떻게 한 국가의 시대정신의 상징이 될 수 있는지를 분 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역사 분석법과 곡식 분석법을 결합하여 발 견한 바는 첫째, 랩소디의 창작은 미국 민족 음악의 탄생을 상징하며, 완 전히 새로운 음악 스타일은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미국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둘째, 뛰어난 음악 융합 능력으로 미국 사회의 다양한 집단의 환영 을 받았으며, 래그타임, 블루스 등의 음악의 특징을 과도하게 변경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융합함으로써 클래식 음악 애호가와 팝 음악 애호가 사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사회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음악에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종합하면, 거슈윈의 작품은 당시 미국 음악 의 민족 대용광로의 현황을 진실하게 반영하고 다민족적이며, 다원화되 고 혁신적인 미국 정신을 드러내어 지금까지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 는 시대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Zhu (朱) is a pictophonetic character and associative compound. Mu (木) and Zhu (丶) indicate the meaning, and especially the latter refers to the pronunciation as well. Its original meaning is wood with red inside. Zhu (朱) assumes the semantic function in pictophonetic characters. The meaning of the expression comes from two sources: one is that it derives from the extended meaning of Zhu (丶) as the phonetic symbol of Zhu (朱) means red or bright; the other is that it derives from the extended meaning or rebus of a short form for Zhu (鼄), which means ‘to cut off’ or ‘a name of the place’.
예이츠의 새가 등장하는 시에서 그의 시간관과 역사관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그의 신비주의, 아일랜드의 전설, 신화 및 민담 등의 소재로 예이츠는 그만의 독특한 상징주의를 시 작품에 녹아낸다. 통상 상징의 대조적 개념으로 이해되는 알레고리는 교훈적이거나 풍자적인 또는 의인화된 이미지와 뜻으로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데, 예이츠의 상징을 알레고리의 요소로도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신화와 고고학적 이미지로 예이츠 시에 등장하는 백조와 매를 이해할 수 있고 예언적이고 불멸의 성질을 지닌 공작과 수탉의 이미지도 살펴볼 수 있다. 상승과 하강 그리고 공중과 비행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영시와는 달리 예이츠는 가이어와 큰 수레바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역사성과 신비주의와 함께 신화적 요소의 인유법을 통해 시 세계를 구축한다. 이 과정은 특정 이미지를 끊임없이 또 다르게 말하는 알레고리로 사유하여 다양한 상징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본 연구는 5·4운동 이후 1910년대부터 개혁개방 이후인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기간에 베이징을 묘사한 시를 큰 범주로 분류하여 분석했다. 분석 대상 작가들은 중국, 타이완, 한국 작가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들 작품에 표출된 베이징 이미지와 이들의 표상이 시대가 흐를 수록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변모 과정을 도출했다. 베이징 현대시를 베이징 성, 천안문(天安門) 광장, 전문역(前門驛), 호동(胡同), 공원과 신·구 베이징 사람들로 범주화하여 베이징의 빛과 그림자를 중국 현대시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베이징에 산재한 인문·자연·조형 경 관에 대한 표상과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되고 전파되며 유통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종철 시인은 사회와 문명에 대한 풍자를 지향했던 초기 시에서 출 발하여 중기 시 이후 ‘못’의 상징에 천착하며 가톨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해온 ‘못의 시인’이자 ‘못의 사제’로 평가받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김종철의 시세계에서도 특별한 위상을 차지 하고 있는 ‘등신불 시편’에 주목함으로써 김종철의 시세계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사유하는 보편적인 ‘종교 시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김종철 시인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초기 시에서 부터 추구해온 ‘성모’적 표상이 아닌 ‘등신불’이라는 성상화된 상징을 통해 자기구원과 인간의 영원한 번뇌인 죽음의 문제를 노래했다. ‘등신 불 시편’들은 시인이 암으로 투병하던 시기에 지장신앙의 성지인 구화산을 여행하면서 썼던 기행시편들로서, 죽음의 번민으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존재의 각성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김종철의 전작을 통해 보면 다소 예외적이고 분량상으로도 적어 보이지만, ‘등신 불’ 시편들은 이러한 불교적 ‘각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문제와 존재론적 화두를 추구해온 그의 시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정승각의 동화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에 등장하는 ‘불개’와 ‘삽사리’가 지니고 있는 상징의 의미를 구명하는 것이 본 논고의 연구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한․일의 칠석형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의 역할과 그 ‘개’의 소유자를 밝힌 후,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의 「견우직녀도」의 ‘개’와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의 ‘개’ 그리고 한국의 민담에 등장하는 ‘불개’와 대응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일본의 구비 <날개옷 설화>에 등장하는 ‘개’에는 ‘직녀의 개’와 ‘견우의 개’도 있지만, 그 ‘개’가 누구의 ‘개’이든 상관없이 견우의 승천에 직․ 간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견우의 개’는 흰색, 검은색, 붉은색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직녀의 개’는 어떤 색깔인지 알 수 없는 것 이다.
한국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는 모두 ‘직녀의 개’일 뿐이다. 이 ‘직녀의 개’는 원래 견우의 승천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견우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함께 내려온 ‘개’ 의 꼬리를 놓쳐서 남편이 승천을 할 수 없는 이야기만 있기 때문에, 직녀의 개가 남편의 승천에 도움을 주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직녀의 개’는 청색과 검은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이 ‘직녀의 개’는 ‘청삽사리 (청 삽살개)’와 ‘까막 (까만) 강아지’, ‘쬐그만 강아지’로 각각 다르게도 불리지만, 이 ‘까막 (까만) 강아지’와 ‘쬐그만 강아지’는 강아지의 성장 과정에 따른 ‘청삽사리’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불개’ 민담의 ‘불개’와 동화 속의 ‘불개’는 고대인들의 의식 속에서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게 하는 ‘시리우스- 천랑성’의 상징인 것이다,
<날개옷 설화>의 ‘직녀의 개’는 은하수를 건너편 하늘에 있는 작은개 별자리 (프로키온/남하)의 상징으로, 「견우직녀도」의 ‘검은 개 모양의 짐승’과 동화 속의 ‘청삽사리’와 대응하는 것이다. 일본 <날개옷 설화>의 ‘견우의 개’는 은하수를 건너가기 전에 있는 ‘큰개자리 (시리우스/천랑 성)’,이고, 「견우직녀도」의 ‘성성지상’과 동화 속의 ‘황삽사리’와 대응하는 것이다.
「견우직녀도」의 ‘검은 개 모양의 짐승’은 한국 <나무꾼과 선녀 이야 기>의 ‘청삽사리’, ‘쬐그만 강아지’, ‘까막 강아지’와 대응되기 때문에, 이 ‘검은 개 모양의 짐승’을 일본의 ‘구로 (黑)’의 번역어인 ‘검둥개’나 ‘검둥 이’로 부르기보다는 ‘청삽사리’나 ‘쬐그만 강아지’ 또는 ‘까막 강아지’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동화 속의 ‘불개’와 ‘삽사리’는 일제 강점기에 채록된 민담에 의거하여 창작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원천 소스 (source)는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로 대변되는 고구려의 칠석전설과 칠석형 구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일 개연성이 많은 것이다.
본 논문은 문자 그대로 예이츠 자신의 말인 상상의 체계를 반영하는 “나선형 계단”의 상징을 통해서 시의 의도적 구조를 연구한다. 엘리엇의 주장대로 우 리가 아는 예이츠는 그가 젊었을 때의 가능성에 의해서 정의되었던 것처럼 정의되어 야한다. 이런 접근은 예이츠의 만개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초기의 서정적 성공만 으로는 한계를 보일 수 있다. 이 방법은 그의 작품의 중심적 발전의 관점에서 그의 초기의 서정적 작품을 능가하는 중요성을 후기시가 얻도록 낭만적 영감을 지칭하는 시적 과정의 진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점이다
이 논문은 중국 현대소설, 특히 신감각파(新感覺派)의 작품에 나오는 상품과 광고를 추출 하여 그 표상과 브랜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 작가의 작품엔 수많은 시각 매체와 도시 매체가 출현한다. 그 가운데 현대 상품은 현대인이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의 리스트이자 오마주(Hommage)다. 자동차, 보석 등과 같은 고급 사치품에서부터 일상 생활용품에 이르기 까지 현대 상품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선전한다. 위의 작 품들을 토대로 현대 상품 목록을 뽑은 결과 크게 몇 가지 범주, 즉 영화나 배우 광고, 담배 광고, 양주 광고, 자동차 광고, 일상용품 광고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본 연구자는 상품 매체 와 공간 매체를 모두 상품 광고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고 보고 다시 이를 도시 경관 광고, 공인 광고, 기호품 광고, 사치품 광고, 일상용품 광고 등으로 분류하여 논의할 것이다
It was an honor to give my speech to the American public about the Jeju 4.3 Grand Tragedy as one member of the Jeju 4.3 delegation. On March 27, 2015 I supported the “Petition for a Joint South Korea and United States Jeju 4.3 Incident Task Force on Social Healing through Justice.” On August 15, 2016, I was happy to write the foreword “Jeju 4.3 Grand Tragedy becomes Human Spirit in the Asia Pacific,” for the new book about Jeju 4.3 titled, “Jeju 4.3 Grand Tragedy during ‘peacetime’ Korea : The Asia Pacific Context (1947-2016). On September 8, 2016, we proceeded with “Authentic 4.3 Jeju Tragedy Reconciliation as a symbol of Peace in Asia” at the Jeju 4.3 Tragedy Reconciliation Conference 2016 in Washington D.C.
17세기 로마의 전성기 바로크에서 활동했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건축은 정교하고 복잡한, 하지만 탈 고전주의적인 기하학적 구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 연구는 이 성당의 공사과정상의 문제들을 당대의 정치적 변화와 연동지음으로써 산 티보 성당의 정치적 상징체계의 변화와 그 양상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1642년에 착공되어 1660년에 봉헌된 이 성당은, 그 규모를 고려할 때, 상당한 공사기간을 가 졌다. 이것은 건축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의 지연이 아니라, 정치적 역학에 따른 지연이었다. 건축 공간과 구조 속에 투영된 기하학적 그리고 문장학적 요소들은 선행연구들이 인식했던 ‘지혜의 상징’을 넘어서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실내와 외부에 추가된 장식물들 또한 이러한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圓相은 동양문화에서 널리 사용되는 상징기호이다. 특히 불교의 禪宗 에서는 원상을 사용해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거나 제자를 지도하였다. 선에서 원상이 사용된 것은 인도문화의 영향과 도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도교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되는데, 선사상 자체가 도교 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에서 원상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중국 唐代의 南陽慧忠(?~775)인데, 특히 潙仰宗에서 많이 사용하 였다. 위앙종에서 원상을 사용하게 된 것은 自宗의 독자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선에서 원상이 유행하게 되는 것은 宋代 이후인데, 송대 이후에 五家가 확립되어 자종의 독자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때 臨濟宗의 三玄三要, 雲門宗의 三句 등과 더불어 위앙종에서는 원상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明代이후가 되면 선종에는 모두 96종 이상의 원상이 있었다고 한다.
원상은 여러 의미를 가지는데, 첫째 ‘세계 내지 우주 그 자체’를 상징 한다(全體性, 無限性). 둘째 ‘唯一者 내지 모든 만물의 시초’를 상징한다 (唯一性). 셋째 ‘가장 뛰어난 것’을 상징한다(最上性). 넷째 ‘궁극적 경지’ 를 상징한다(解脫, 깨달음). 선이나 書畵藝術에 나타난 원상의 의미는 이 네 가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때로는 하나의 원상이 2, 3가 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圓敎는 ‘다른 가르침보다 뛰어난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서 배타성을 지니므로, ‘원융성’이 라는 원상의 일반적 의미와는 반대된다. 이와 같이 선이나 서화예술에 나타난 개별적인 원상은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되므로, 그 의미도 상황 에 따라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There are two opinions in academia: one opinion realizes Chinese Character as a shape, or a concrete image in one’s mind. But another realizes Chinese Character as the symbol of language. The two character’s ideologies both have their own applicability and boundedness. They are the results under certain historical conditions, so they can’t satisfy the modern people’s needs of recognitions of character. Therefore, we should define the research objects, stand in the position of semiology, use dialectical materialism and historical materialism and modern scientific methodology, to reexamine Chinese Character, and will find that, Chinese Character is the results which combine the graphic/visual symbol with voice/auditory symbol. It is graphic symbol presenting a certain voice and meaning.
One opinion of traditional Chinese Philology is that Character is a shape, or a concrete image in one’s mind. But in modern Chinese linguistics and Philology quoted from linguistics in Europe and America, character is considered as the symbol of language. The same of these two ideologies is that character is seemed as a symbol. But the difference is that character equals meaning in the former one, on the contrary the latter considers character equals language. In the former theory, they are the same status between character and language, but in the latter theory, character is seemed as the dependency of language. This difference was originated from different research objects, different standing, and different theoretical basis.
예이츠의 성숙한 시에서 풍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구현한다. 풍경은 한편으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자연의 유비적인 이미지 역할을 한다. 또 한편 풍경은 초월을 지향하는 상징의 열쇠로서 기능한다. 그의 시에 제시된 풍경은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본질상 지상의 상관물이 없는 초월적 상징에서 비롯된다. 그의 많은 시에서 풍경은 자연풍경과 감각적인 이미지에 의해 유혹되지만 심층적인 구조의 통일성과 의미는 비자연적이고 초월의 상징에서 나온다. 자연의 이미지는 초월의 상징을 외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하지만 초월의 상징은 현시되기 위해서 자연의 이미지가 필요하며 자연의 이미지에 의존하고 그것에 의해 동반된다.
본 논문의 목적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담론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동일한 사건이 신화, 종교, 교리의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수용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사다리를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담론이라는 두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일화가 신화적 상징과 신학적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도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시각에서 야곱의 사다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포함한 다양한 신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상징체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자신의 종교경전으로 간주하는 유대인이 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면, 야곱의 사다리는 야훼 하나님과 신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보다 구체적이며 제한된 신학적 담론 안에서 논의될 수 있다. 야곱의 사다리는 다시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학적 담론 안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될 뿐 만 아니라, 동일한 기독교 안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각기 다른 신학적 담론을 형성한다. 본 논문은 이 같은 목적을 위해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신화의 영역은 주로 엘리아데의 “우주의 축”의 개념에 따라,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의 영역은 각기 성전, 교황, 만인제사장의 신학적 담론 안에서 “야곱의 사다리”를 분석한다.
이 글은 정재가 지닌 융합적 성격을 고려하면서, 정재의 의미에 접근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며 시작되었다. 특히 정도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그가 지은 악장은 조선시대에 표본적 역할 을 했으며, 이후 정재의 형태로 공연되어 대한제국까지 지속되었기에 그의 악장 정재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정도전은 1393년(태조 2) 7월에 태조에게 악장을 지어 올렸는데 그 중 <몽금척>․<수보록>․<문덕곡>이 나중에 정재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정도전 악장의 정재인 <몽금척>․<수보록>․<문 덕곡>의 가무악 요소에 담긴 상징과 비유는 무엇가? 그 상징이 어떻게 조선시대에 지속되었으며, 현재적 의미 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연구의 시기적 범위는 조선시대로 한정하며, 대한제국기를 포함한다. 연구방법은 정재가 기록된 사료와 도상자료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문헌연구방법을 택했다. <몽금척> 정재는 태조가 즉위 이전에 꿈에 신인이 내려와 천명을 상징하는 ‘금척’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금척’은 곧 ‘금으로 만든 자’인데, 신화에서 자[尺]는 왕권과 함께 생명력과 규범을 상징한다. 치어의 내용에 서 금척을 받을 인물의 조건은 문무를 겸하고, 덕이 있으며,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고, 백성들이 바라는 사람 이었다. 1인이 읊는 치어가 하늘 뜻을 대표한 것이라면, 12명의 함께 노래하는 창사는 많은 백성들의 뜻이라 는 것을 시각화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금척사에서는 ‘유덕’과, ‘백성들의 마음’을 강조했다. 창사를 부르면 서 점진적으로 춤도 확대되는데, 천 억대를 이어가라는 금척사의 메시지의 확대와도 상응하였다. 마지막 퇴구 호에서는 경계의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수보록> 정재는 태조가 즉위 이전에 이상한 글이 쓰여 있는 ‘이서’를 지리산의 석벽에서 사람이 얻었는데, 이후에 태조가 즉위하여 이 글이 실현되었다는 내용이다. <수보록>의 춤에서 핵심적인 상징은 ‘보록’이라는 무구이다. ‘금척’이 하늘에서 천명으로 신인이 내린 것이라면, ‘보록’은 살아있는 사람이 전해준 것이나, 왕업 이라는 상징은 상통한다. 춤에서 상징적인 인물은 지선(地仙)인데, <수보록> 악장에 없던 새로운 역할로 등장 했다. 보록사를 창한 뒤에 전체 6대의 18인의 무원이 이중으로 줄지어 세 차례 도는 춤동작은 창사의 내용이 모두 이루어지라는 온 백성의 염원과 소망을 담은 듯하다. <문덕곡> 정재에서는 백성들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문덕곡> 악장은 태조 이성계가 언로(言路) 를 열고, 공신(功臣)을 보전하고,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예악을 정리한 것을 치적으로 찬양한 내용이다. 표면 적으로는 공덕을 기리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정도전이 건의하여 진행 중인 네 가지 사안이 앞으로 조선왕 실에서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원이었다. 태조대에 만들어진 세 악장은 늦어도 태종대에 정재로 만들어져서 각종 의례에 쓰였다. 태종대에는 <몽금 척>과 <수보록>의 내용이 꿈에 일어난 일과 도참설일 뿐 태조의 실제 덕이 아니라고 비판받았으나 세종대는 다시 <몽금척>과 <수보록>을 활발히 공연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몽금척>만이 연향에서 자주 공연되었 으며, 대한제국 때까지 지속되었다. 정도전 악장의 정재는 신하로서 임금에게 하는 발언이자 제언이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부르는 악장을 단순 히 임금의 공덕이나 치적을 받들어 올리는 송덕이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으로만 이해하면 평면적인 이해에 그치는 것이다. 오히려 정도전이 악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위정자로서 칭송받을 만한 공덕을 지니고 있어야 한 다는 ‘경계’의 시각과, 천명과 민심에 의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낮고 무겁게 깔려 있다. 정도전의 민 본사상이 그의 세 악장 정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정도전의 악장에서는 민심을 반영하는 좋은 국가 를 만들기 위해 군주로서의 최선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했다. 천심, 즉 민심을 떠난 왕과 왕실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고국정자의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 는가?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오늘날에도 정도전의 악장 정재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여전하다.
일반인들의 생물다양성 인식정도를 지방자치단체 및 기초자치단체의 자연상징물 (새, 꽃, 나무)의 종수로 파악 한 결과 전체 종다양성은 40목 59과 90속 114종이 자연 상징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상징새 38종, 꽃 40종, 나무 36종이 지정되어 있었으며, 새는 까치, 꽃은 철쭉, 나무는 은행나무가 높은 빈도로 지정되었다. 연안에 위치한 지역 에서는 갈매기과에 속한 새와 동백꽃, 소나무과에 속한 종을, 내륙에서는 까치나 비둘기와 같은 텃새류와 진달래 과에 속한 식물종 등 주변에서 흔히 관찰되는 종들이 자 연상징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자연상징물로 지정된 종들 은 크기가 크거나 화려하며 대중적으로 인식정도 높은 종을 선정하였기 때문에 지역간 중복지정된 종들이 많았 다.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생물종들에 대한 정보가 축적 되면 깃대종 또는 상징종을 지정기준을 설정하고 서식처 보전에 상징종을 이용하는 방안을 수립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컴퓨터 기술의 발달 및 GIS 소프트웨어의 보급은 주제도 제작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제작 가능한 유형이 소프트웨어에서 제공되는 기능에만 국한되어 주제도 표현의 다양성은 향상되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도형표현도의 경우 단계구분도와 함께 유용하게 사용되지만 상용 소프트웨어로 제작 가능한 유형이 매우 한정적이며, 소프트웨어마다 지원하는 지도 제작 기능의 정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사용자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범용 GIS 소프트웨어인 ArcGIS를 이용하여 구현하기 곤란한 도형표현도를 선택한 후 이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국내외 국가지도집을 대상으로 도형표현도를 분석한 결과, 가산적 도형표현도와 반원형 도형표현도의 사용 빈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ArcGIS와 같은 범용 GIS 소프트웨어의 기본적인 제작 옵션으로는 구현이 곤란함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 도형표현도를 대상으로 하여 속성자료를 변환한 후 GIS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도형표현도 제작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The paper searches and analyzes the image of Iseult Gonne in some of Yeats's poems. It is not difficult to locate Iseut's images in most of the poems that contain her image, except the poem, "Long-legged Fly." In this poem the young girl at puberty practicing a tinker shuffle picked up on a street is said to be Maud Gonne, as definitely noted by Jeffares. But this paper claims that she is Iseult Gonne on the basis of Yeats's recording what he has witnessed, the young girl barefoot dancing and singing, thinking that nobody is looking at the edge of the water and
sand at Normandy.
And one of the important poems that immortalizes Iseult is "To a Child Dancing in the Wind," singing what's permanent in the present Iseult, against the passing of life and time. This concern deeply permeates most of Yeats's Iseult poems, as one of them being "Two Years Later" and another is a poem, "Why Should Not Old Men Be Mad?" (written in 1936, three years before he died in 1939) in which the poet calls Iseult's husband a dunce, because Yeats loves and
pities Iseult so much. To Yeats and in his poems, Iseult Gonne symbolizes eternal beauty or something that should remain for good.
Not only that, but also the most beautiful and strongest of Iseult Gonne poems is "Owen Aherne and his Dancers" written immediately after Yeats's marriage to Georgie, with two sections, once the first being called "The Lover Speaks" and the second "The Heart Replies." As the image of dance indicates, it is about Iseult Gonne, with Yeats in disguise. It signals a new beginning for Yeats in relation to his poetry and to his life-long love Ise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