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해양력이 동아시아 해양공간에 미치는 지정학적 파장과 그 성격의 문제를 다룬다. 마한의 도서국가지배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양력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해양력의 지정학적 성격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 식과 함께, 21세기 현재 중국이 도련선 전략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있는 지정전략적 성격과 그 파장의 문제를 조사한다. 지난 20세기를 전후 한 시기에 일본이 해양력에 기초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에서 세력권 확장을 기획하는 대동아공영권 정책을 구체화했고, 21세기에는 중국이 도련선 개념을 구체화하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을 관리하려는 지정전략을 구사하 고 있다. 중국의 도련선 전략이 미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외교의 해양세력 의존정책이 21세기 현재에도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본 연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왜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중국의 대북지원에 주목하고서 대북지원의 결정요인을 분석한다.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에 대해 제재와 지원이라는 이중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이중적 자세에 대해 본 연구는 양면게임이론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서 대북지원이 대한 대내외적 상황에 접근하였다. 중국의 대북지원에 대한 결정요인은 국외요인, 국내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요인들은 중국의 패권강화, 미국 견제, 중국의 책임 있는 강대국 역할 수행, 북한의 자원 확보, 중국의 안정적인 성장 지속, 중국의 사회주의정치체제 정당성 유지, 베이징 컨센서스의 확산 등이 있다. 해당 요인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살펴보면 향후 중국의 대북지원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모두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대북지원이 중단 되거나 북·중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확실한 핵우산과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전술핵 재배치 등 모든 옵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교류로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기능주의 입장에서 한반도 통일의 길에 하나의 의미 있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기능주의 입장에서 현재의 북한 핵 위기는 한미동맹의 강화 위에서 풀어가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분명하며 강한 안보를 통해 북한 도발을 응징해야 한다. 지금은 국제사회와 함께 봉쇄와 압박에 매진할 때이다. 유엔의 제재와 미국 등 여러 국가들의 독자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계속되고 있는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은 북한에 대한 더욱 강한 압박이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역할과 협력도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오바마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 보다 적극적인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을 확실한 한미동맹을 통해 우리는 잘 대응하고 활용하여 북한의 비핵화와 민주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 연구는 현대 사회에서 회자되는 ‘영성’의 개념이 대중문화를 통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한다. 이를 위해 베리 테일러와 앙드레 콩트-스퐁빌, 울리히 벡과 마크 매킨토시의 연구를 이론적 틀로 차용하였으며, 영성의 개념과 이에 대한 대중의 증가하는 관심은 근대화 이후 격변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타자를 배제한 개인화된 영성이나 자본주의에서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영성은 본래 영성이 가진 본질이 왜곡된 형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멜 깁슨의 <핵소 고지>를 살펴볼 때 이 영화는 할리우드 전쟁영화 관습을 따르면서도 극사실주의적 재현방식을 통해 전쟁의 폭력성과 ‘반전’(反戰) 메시지를 강조하며, 다양한 카메라 앵글 기법과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초월자에 대한 믿음, 한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라는 영적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본고는 21세기 들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공유된 사회적 불안 요소들 및 글로벌 정치적 상황과 연관시켜 살펴볼 때 할리우드에서 영적 주제와 연관된 작품이 대거 등장한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앞으로 이런 경향은 한층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띠며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017년 9월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하 였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체제수호와 방어적 차원에서 핵무장력 담보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의 전략적 목표가 북미협상을 통해 북한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그들의 한반도 사회주의통일을 위한 핵무 장력을 완성하는 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계속된 핵실험은 한반도평화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으며, 동북아안보 역학구도에 간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엔안보리는 이러한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에 대해 지난 10년 이상 6차례의 유엔안보리 결의로 대북제재조치를 단행해 왔다. 그러나 북한 김정은 정권은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핵・경제병진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조치가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은 북한이 강도높은 핵실험으로 격상시키는데 요인으로 분석된다. 2017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제재 조치 수단 가운데 하나인 대북 군사옵션은 한반도에서의 전면 전과 국지전 양상으로 예상된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의 미국 행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양상과는 다르게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외교압박전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조치에 대해 북·미 간 전면적인 군사대결 입장을 밝히며 ‘벼랑끝 전술’로 맞서고 있다. 북한은 당분간 체제생존차원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체제는 미·중 간의 현실주의적 국가전략 추진 으로 체제붕괴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한국사회에서 증가되어 온 성범죄에 대해 기존의 권위주의 정권은 형벌의 강화 외 에도 전자감시 등 다양한 가외성(redundancy) 장치의 보안처분을 시행해 왔다. 특히 2010년에 제정된 성충동 약물치료제도(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에 대한 보안처분 중 에서도 가장 강력한 처분으로 여러 인권적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이 제도의 개선을 위한 많은 선행연구들이 나왔다. 그러나 기존의 선행연구들이 제도의 보완론과 수정론에 그치는 근본적 한계가 있고 동시에 법적, 형사정책적 등의 비학제적인 단선적 측면에서 접근한 한계가 있다. 학제적 접근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한국의 성충동 약물치료제도는 권위적 정치체제의 공리주의적 이념, 선정성을 깊고도 은밀히 깔고 있는 한국의 상업 저널리즘, 엄격한 성 문화의 전통, 시민들에 대한 정치사회화와 미디어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의 부족으로 인하여 극장의 우상과 상징폭력에 대한 상징 세뇌의 심화, 보수주의와 보안 관료레짐의 역사에 기인한 패널 포퓨리즘의 역사,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야만적이고 잔인한 국가폭력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성충동 약물치료에 깊이 숨겨진 파시즘적인 상징폭력과 반인권적 속성을 독창적으로 주장하고 동법의 전면적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3·1운동과 여성독립운동을 세계평화의 시각에 대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 에 의해 국권을 상실했던 시기의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3.1운 동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 특히 3·1운동은 민중운동으로서 계층과 지역, 성별의 구분을 넘어선 독립운동이었으며, 그 시대 독립운동이 지향한 독립과 자유에 대해 평화적 견지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 시대가 당면했던 독립의 과제는 시대적·민족적 견지에서의 독립이었으며, 평화운동의 일환이었다. 둘째, 3·1운동에 참여한 여성은 주체의지로 독립운동의 참여자, 실천자로 변화했으며, 독립운동사 에서 한 주류로 한국여성독립운동의 맥락을 이어갔다. 셋째, 3·1운동은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미주 등으로 확산되면서 아시아 약소국이 자유 의지를 발휘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의 정신적 저력이 되었다. 이상에서 3·1운동은 세계평화의 관점에서 재인식되어야 하며, 3·1운동과 한국여성독립운동이 평화운동으로 주목받아야 할 것이 다.
본 연구에서는 정치관련 이슈정보에 대해 기초적인 게임메커닉스를 활용하여 정치인(정당)을 평가하는 블 록제인 기반의 게이미피케이션 시스템과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플레이어들의 자발적 참여와 문제해결을 위해 게임적사고와 게임메커닉스(순위표, 점수, 단계, 가상증표, 아이템 등)를 적용하는 개념 이다. 게이미피케이션 연구에서 '플레이어'는 사용자, 관객, 고객, 손님, 구매자, 학습자, 환자, 군인 등을 포괄하므로, 이 논문에서 플레이어는 유권자(혹은 투표자)를 말하고, 이 표현들은 같은 의미로 병기하였다. 게이미피 케이션의 이론배경은 '게임요소'나 MDA프레임워크(게임메커닉스,게임역학,게임미학) 등의 '게임학 연구'를 기반 으로 한다. 이 논문에서는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 우선 기초적인 게임메커닉스만을 정치인(정당)의 성공적인 평가 시스템에 적용하였다. 정치인(정당) 평가에 게이미피케이션를 적용하려는 주목적은, 유권자(투표자)의 자 발적 정치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며, 이 논문에서 제안하는 시스템과 방법이 적용된 이슈정보는 더 유익한 플 레이어 경험(PX) 창출에 도움을 줄 것이다. 끝으로, 본 정치 평가 인터렉티브 게임화 시스템과 방법 연구는, 보 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웹 또는 앱서비스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신뢰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발터 벤야민의 미학적 관점을 통해 인디음악씬의 작가주의적 음악인들의 예술적 세계관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발터 벤야민의 멜랑콜리적 사유는 꿈 혹은 잠재적인 메시아적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상과 세계, 텍스트의 존재를 새로운 ‘원천’으로 다르게 읽어내는 이러한 알레고리적 방법론은 파국적인 일상의 보편성과 자명성을 넘어서서 인식가능한 새로운 ‘메시아적 현재의 시간’을 추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상이 된 텍스트인 자우림의 「꿈」과 장기하와 얼굴들의 「TV를 봤네」, 그리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은 모두 현실을 파국으로 인지하고 이와 거리를 두는 멜랑콜리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를 파국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인지하는 동시에 멜랑콜리커(Melancholiker)로서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보여준다. 이들의 텍스트는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동일시를 통해 대중예술이 가질 수 있는 인식론적 가능성과 사유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위는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해 관개시설 설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주로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말라위의 효율적인 관개시설 구축을 위해 우리나라의 영산강유역농업종합개발사업(이하 영산강사업) 사례를 검토한 후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우리나라의 영산강사업은 유관기관들의 체계적인 협업 시스템으로 장기간에 걸쳐 시행되었다. 따라서 말라위의 중장기적인 관개시설 구축을 통한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해당 사업을 주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기관의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말라위의 사회경제적 여건은 우리나라의 영산강사업 추진 시기와는 매우 상이하다. 또한 한국의 영산강사업은 중장기적으로 걸쳐 시행되면서 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통한 노하우(know-how) 및 기술이 축적되었다. 따라서 말라위도 영산강사업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을 일괄적으로 시행하기 보다는 테스트 베드를 거쳐 말라위 여건에 맞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영산강사업은 시행 초기에 환경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 현재 영산강사업 5단계 설치는 중단된 상태이다. 따라서 말라위에서도 이러한 환경문제 및 제반 정치경제적 여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영산강사업은 벼농사를 위한 관개시설 위주의 사업이므로, 밭작물 위주의 관개시설은 그 형태 및 시사점이 달라질 수 있다 . 그리고 우리나라 영산강사업은 장기간에 걸려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이 단계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 각 토목기술별로 말라위에 적용 가능한지는 추후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이러한 정책적 한계점은 추후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유신체제시기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발생한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의 제반 모순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일 뒤 박정희 대통령이 권부 내 갈등으로 살해되는 10·26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부마항쟁은 이 사건의 도화선 역할을 한 ‘미완의 항쟁’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 연구의 요체는 ‘부마항쟁의 진실과 역사적 성찰’이란 주제에 걸맞게 부 마항쟁이 어떻게 발발하고 전개되었으며, 또 어떻게 진압되었는지를 부산항 쟁과 마산항쟁의 주요 쟁점을 통해 비교고찰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대 학생과 민중이 주도한 부마항쟁의 시위전개와 경찰과 군에 의한 시위진압 이 서로 부딪치면서 박정희 대통령 및 권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구 체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부마항쟁은 올해로 39주년을 맞는 과거사가 되었으나 아직도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어 법제도 의 정비 등,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이 많은 현대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 단의 세력들이 항쟁의 주도자인 양, 여러 가지 기록물이나 증언을 통해서 부마항쟁사의 진실을 호도하고 농단하는 작태로 진실규명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부마항쟁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의 획득, 항쟁관련자 의 증언 청취나 현지조사 등이 필요하며, 항쟁사의 진실을 호도하고 농단해 온 세력에 대한 법적․사회적 응징과 대응도 필요하다고 본다.
본문에서는 법술세론의 측면에서 현행본 『한비자』에 반영된 상앙, 신불해, 신도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비와의 연계성을 검토하였다. 한마디로 한비의 법술세 이론은 법가의 선구자와 선행 법가의 전개 과정을 거쳐 점차적으로 정립된 것이다. 특히 상앙, 신불해, 신도 등의 정치적 경험과 정책 방향은 한비의 법치론을 정립하기 위한 재료와 근거가 되었다. 사실 한비의 법철학의 기본 내용은 이상의 선행 법가의 실천 과정에 이미 반영된 것이 많으며, 한비는 다만 이러한 실천 경험에 대해 이론적으로 총결하고 체계적으로 논증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체계를 정립하였다.
한비는 전적으로 선행 법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집대성하였다. 한비가 보기에 그들의 논의는 모두 미진한 것이다. 먼저 상앙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그의 법치사상을 수용하면서도 신민을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단지 법의 획일적 적용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였다. 다음으로 신불해에 대해서는 술수만을 제시하였을 뿐 실천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에 대한 대처 방법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한비는 신불해의 이론을 수용하면서도 오히려 그의 언행을 예로 들면서 한계성을 지적하였다. 또 다음으로 신도의 세론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하면서도 자연적 세가 아니라 인위적 세에 주목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한비가 보기에 인위적 세는 바로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법과 군주의 은밀한 술이다. 군주의 권위와 권세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동해 연안의 경상북도(경북)와 강원도(강원)의 정치망어업에서 31년(1980~2010)간 5~11월에 어획된 방어 어획량 과 연근해 수온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NOAA 수온 영상을 이용하여 수온의 상승과 하강 시기에 외해수의 이안 및 접안으로 인한 방어의 북상시기(5~8월)와 남하시기(9~11월)의 어획량 변동을 분석하였다. 전체 방어 어획량의 변동은 연도별 차이는 있지만 방어의 북상 시기보다 남하시기에 높은 수온의 외해수가 연안에 접안할 때 어획량이 증가였다. 연안수온의 하강기는 북상 및 남하하는 모든 시기에 경북이 강원보다 방어 어획량이 많았다. 수온 상승기는 방어 어획량의 증감이 동시에 나타났고, 남하시기의 방어 어획량은 일반적인 현상 과 달리 강원이 경북보다 어획량이 많았다. 이것은 하계의 25 이상의 수온이 강원도까지 분포하면서 추계까지 높은 수온(20 )이 지속 되어 방어의 체류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은 북미와 유럽, 동남아시아 등을 포함하여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핵무장에 기인한 북한의 자신 감 상승은 북한 발 테러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이밖에도 미국 라스베 가스 총기공격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특정한 정치, 사회, 종교적 동기를 갖지 않은 불특정 개인에 의한 폭력적 테러공격이 감행될 소지가 있다. 국내 테러공격의 위험성이 이처럼 증가하는 상황에서 현재 테러방 지법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현행 테러경보체계를 살펴보고 그 한계점을 평가하고 발전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논 문은 이러한 취지하에 테러경보체계와 관련된 테러방지법의 내용을 살펴 보고 그 현행 작동방식과 체계를 평가하며, 그 한계점을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안점을 제시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테러경 보체계의 역량과 역사가 가장 잘 축적되어 있는 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테러경보체계를 평가하고 시사점을 도출할 것이다. 미국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서 이 논문은 국내 테러경보체계의 현실 적용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왕자오정 (王子午鼎)>은 기물의 모양이 독특하고 문양은 실랍법 (失 蠟法), 명문은 조충서 (鳥蟲書)를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선행연구에서는 주로 무덤주인, 제작연대, 내용분석에 치중하였는데, 본 고에서는 이를 토대로 <왕자오정> 명문의 내용과 기물의 주인, 그리고 명문에 나타난 서체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왕자오정> 본체의 명문에 영윤자경 (令尹子庚)이란 명칭을 통 해 왕자오 (王子午)가 영윤으로 있던 기원전 558~552년 사이에 열정 (列 鼎)을 주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덮개에 보이는 붕 (倗)은 자 경과 자남 (子南)의 뒤를 이어 영윤 (令尹)이 된 위자붕 (蔿子馮: 楚叔之 孫倗)으로, 어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 기물을 획득하여 덮개를 추가로 만들고, 기원전 548년에 죽으면서 자신의 무덤 (M2)에 부장하였을 것으 로 추정된다. 둘째, 춘추 5패 (覇) 중의 한사람인 초나라 장왕 (莊王)은 9정 (鼎)에 대한 고사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인 왕자오는 자신의 신분보다 한 단계 높은 7점의 열정을 주조하여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음을 고고 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왕자오정>과 같이 화려한 청동기 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인문정치가 미약하였기 때문으로 추 측된다. 셋째, 조충서는 춘추전국시기에 장강 중하류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여 중원 지역에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오 (吳), 월 (越), 초 (楚), 서 (徐), 증 (曾), 채 (蔡), 송 (宋) 등의 여러 제후국에서 주로 발견된다. 춘추시기에 서 조충서는 무기류에서 주로 확인되고 용기에는 극히 드물다. <왕자오 정>은 현재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충서의 명문으로 그 사료적 가치 뿐만 아니라 서법예술에서도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춘추시기 초나라 문화권에서는 세로의 길이가 긴 장방형 결구를 선호하고 있다. <왕자오정>의 명문도 이러한 결구를 취하고 있는데, 본 체의 복부에는 조충서로 14행 8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덮개에는 장 방형의 대전 (大篆)으로 4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 이 기물 본체는 왕자오가 만들고 덮개는 위자빙이 만들었기 때문이며, 덮개를 추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고풍적인 장방형의 전서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왕자오정>은 동시기 청동예기 중에서 기물의 제조방법과 명문의 서사방식이 매우 빼어난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최고의 걸작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초나라 왕실과 국제정세를 알 수 있는 청동기 유물이며 조충서의 초기적인 형태로 조충서의 형성과 변화양상 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한(漢)나라 때부터 약 1천 년 간 중국의 속국으로서 통치를 받는 동안 정치, 행 정, 경제, 문화,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한자를 사용했고,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베트남의 대부분 봉건왕조는 한자를 공식문자로 지정해 공문서를 한자로 작성,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봉건왕조 시기에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도입하여 베트남 사회에 한자 숭배 사상과 유교사상 또한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본 논문에서는 한자의 베트남으로 유입, 발전, 쇠퇴의 과정을 시대별로 살펴봄으로써 한자가 베트남의 언어문화에 초래한 영향의 정도와 그 추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예이츠의 시에는 사랑과 낭만 아일랜드를 찾아 헤매는 작가의 정신적 방황뿐 아니라 아일랜드 내전 이후의 정치적 방황도 역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예이츠 시의 화자는 앵글로 아이리시 귀족의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어쉰 및 오이디푸스 등의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한편 히니는 자신의 시집인 『순례의 섬』, 『스위니의 방랑』 등에서 종교의 권위를 부정해 핍박 받았던 전설의 방랑자 스위니와 자신을 동 일시하면서 거기에 순례의 이미지를 덧붙인다.
본 논문은 이른바 예이츠의 정치적 작품의 성격을 규명하고 한다. 통상 정치적이라고 해석되는 예이츠의 시 몇 편과 희곡 한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그런 지 검토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 예이츠는 일부 비평가들이 정치시, 정치극이라는 작품을 그렇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필자는 이 작품들이 정치적이지도 비정치적이지도 않으며, 그의 사상과 철학체계의 일부분으로 여겨져야 하고 또한 전작품의 구조에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이 받아들여지면, 그의 복잡한 작품세계와 더욱이 많은 평론가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작가 예이츠를 보다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료이다. 특히 5세기 평양지역 고분벽화는 4세기 이래로 지속된 漢系와 낙랑 고분의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평양천도 이후에는 고구려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벽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본 논문에서 옥도리 벽화고분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5세기 전 반~중반 평양지역에서 이루어진 집안지역 문화의 수용과 융합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옥도리 벽화고분이 조성된 5세기 고구려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427년에 단행된 평양천도에 주목하였다. 수도 천도로 인해 평양은 이제 고구려의 새로운 정치적․문화 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기존 국내성의 집안 문화가 새로운 수도 평양으로 유입되며 평양에서 汎고구려적인 새로운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5세기의 고분 문화에서도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교류․융합되는 과정을 거쳐 汎고구려의 문화가 성립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구조상 감실이 달린 二室墓의 구조로 평양지역 벽화고분 고유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분의 구조나 생활풍속·사신의 벽화 주제와 구성은 평양과 집안 지역의 고분들과 친연성을 보여 그 제작시기를 5세기 전반∼중반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옥도리 벽화고분은 감이 달린 이실묘의 독특한 구조와 생활풍속·사신·장식문 등 다채로운 벽화 내용과 구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옥도리 벽화고분에 나타나는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문화의 특징들은 고구려의 평양지역 지배 및 평양천도를 전후로 하여 두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그러나 옥도리 벽화고분은 두 지역의 고분문화가 공존할 뿐 아직 서로 융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양상으로 두 지역 의 문화교류 초기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옥도리 벽화고분을 통해 5세기 전반~중 반에 이루어졌을 두 지역 간의 교류를 통한 고분문화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옥도리 벽화고분은 5세기 후반 고구려 고분벽화와 汎고구려 문화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중요 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