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1915~1950)의 희곡 <동승>을 기초로 윤용규 (b. 1913) 가 감독하여 1949년 출시한 영화 <마음의 고향>은 최초의 한국 불교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전기조차 없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산사의 생활 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인 고아 출신의 동자승 도성은 우리 조상들 이 살아온 전통적 방식으로 계속 산사에서 살아야 할지 아니면 귀부인의 양 자로서 근대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서울에서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 황에 직면한다. 이로써 본 영화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처한 다양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의 한국전통과 불교를 주인공인 도성과 몇 명의 주요 등장인 물들을 통해서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의 한국인들은 급변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불확실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본 저자들은 고아, 향수, 근대성, 모성, 그리고 업과 같은 여러 가지 모티브들을 채용하여 본 영 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영화는 한국인들이 근대 산업화 사회에 참여하면서 한국전통을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불교를 소개하고 있고, <동승>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이 내재해 있는 모성(불교/전통문화)을 드러내고 있다. 본 저자들은 윤용규가 감독하여 1949년도에 출시한 <마음의 고향>을 2002년도 에 리메이크하여 출시한 주경중(b. 1959)의 <동승>과 비교 분석하여 논문의 결론을 맺었다.
이 논문은 국제불교영화제 상영작의 유형과 특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국제불교영화제는 불교영화재단이 주관하는 국제적인 이벤트로서, 불교적 주제의 영화 또는 불교적 영감이 반영된 영화에 초점을 맞추는 불교 영화 전문 영화제이다. 필자는 유형론적 분석을 통해 몇 가지 양상을 발견하였다. 첫째, 문학작품 을 소재로 하는 불교영화나 윤회사상을 구현한 불교영화는 없었다는 점이 다. 둘째, 자주 발견되는 유형으로는 불교적 가르침의 의미를 추구한 작품, 불교 관련 인물의 전기 성격의 작품,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 있었다. 셋째, 티베트불교 관련 작품이 다수를 점한다는 점이다. 외국의 불교영화, 특히 서구의 불교영화가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었다 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교문학의 영화화나 심도 깊은 해석과 날선 관점에 입 각한 윤회사상의 영화화가 이루어진다면 불교영화의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 다. 서구에서의 불교의 영화화가 티베트불교에 집중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필요하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다수의 불교영화가 티베트불교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인들의 불교 이해가 여전히 정치·사회적 양 상에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와 불교의 만남이란 주제는 광의로 영화와 사상의 만남이라는 인문학 적 성찰로 답해야 한다. 그것은 불교영화라는 틀이 좁아지지 않고, 적극적이 며 개방적인 자세로 넓어지는 것과 일치한다. 영화와 불교의 주제가 영화와 사상의 주제로 넓어질 때 영화는 종교, 사상, 신화, 문화 전반에 걸쳐 확대된 다. 불교영화가 기여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이미지가 불교적 교리를 은유 화한다는 점이다. 영화적 이미지는 불교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근거로 한 다. 유식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궁극적 깨달음은 제 팔식(八識)의 깨달음에 있 다고 본다. 영화가 기반하고 있는 세계는 육근(六根)의 작용에 의한 육식(六 識)의 단계 중 안식(眼識)과 이식(耳識), 의식(意識)과 제7식 말나식의 단계에 서 작용한다고 본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제8식 아뢰야식으로 나아가기 위 한 영화는 그 안에서 각자 모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영화 속에 흐르는 사상적 특징은 유교, 불교, 도교 및 샤머니즘의 구원 관이 종합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혼종문화적이며 통합문화적 성 격(syncretism)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서양영화에 보이는 신화적 세계는 곧 종교적 세계와 통하고 종교는 평등하다는 점에서, 기독교 사상으로만 이해할 게 아니라, 석가모니의 사상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원초적인 신화영웅 영화 들이 많다. 영웅과 적대자의 갈등의 드라마는 그대로 불교의 불이사상이다. 스마트 정보화시대가 가속화될수록 인간 내면의 성숙에 대한 요구는 더욱 치 열해진다. 영화는 일상의 모든 현상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철학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소비한다. 정보화 시대에 영화는 어쩌면 그 중심에 놓여 있다고 봐 야 한다. 요즘 인문학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영화는 인문학의 학제 간 융합적 인 측면을 가장 잘 견지해 온 매체라는 특별함이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불교 사상은 정보화 시대에 그대로 담겨 이동한다고 보면 된다. 정보화와 영화가 두 개가 아니듯, 정보화와 불교도 두 개는 아닌 것이다.
蘇軾은 중국 北宋시기의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 서예가이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그림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畫史 에서 그의 존재를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식 의 畫學사상은 宋代이후의 畫壇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3부분으로 소식의 화학사상을 천명하였다. 첫째, 그는 화가에 대해 ‘人品’을 요구하였다. 그는 고아한 人格이 畫 道의 근본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고, 회화는 ‘技’에서 ‘道’로 나갈 수 있는 통로하고 천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회화를 ‘技’에서 ‘道’로 한 단계 끌어 올려 文人畫가 정식으로 확립하는데 중요 한 공헌을 하였다. 둘째, 그는 화가에 대해 ‘涵養’을 요구하여 ‘士人畫’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였다. 셋째, 그는 회화의 ‘意境’ 이 총체적인 주요사상이라는 것을 제기하였으니, 곧 ‘畫中有詩’ 라는 것이다. 이외에 필자는 明代胡應麟이 열거한 소식의 주요 친구들의 신분분석을 통해 소식의 친구들 중에 화가 혹은 화단과 밀접한 인물들이 50%를 초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宋代에 출현한 주요 화학 저술은 대부분 소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식이 畫史에서 지위가 견고한 것은 그가 회화기교가 뛰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문단에서 영수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학사상이 문단에 광범위하게 영 향을 주어 화단에 깊이 침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문인화의 4개 요소는 ‘人品’, ‘涵養’, ‘意境’, ‘筆墨’인데, 그중에 앞의 3요소는 모두 송대에 이미 형성 된 것으로, 소식 및 그 학파가 이를 처음으로 제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모종 의의 상에 소식은 중국 문인화 이론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식은 중국 문인 중에서 특수한 지위와 영향력이 있어 그의 문인화에 관한 이론이 신속하게 화 단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宋이래 ‘抒情寫意’, ‘筆恣墨韻’을 중시하는 문인화가 되어 魏晉이래 ‘尊神權’, ‘重教 化’, ‘重形似’, ‘勾勒填彩’의 院體風格을 타파하였다. 그 결과 중 국 전통회화예술의 풍격이 크게 전환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 련하였다.
한자는 형음의의 결합이며, 중국어 서사의 기초단위이다. 한자의 형음의는 서사 와 발음의 형식이며, 이는 형식을 말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자는 표의문자라 는 사실이다. 한자의 의미는 어소와 어소의 의미이다. 언어 사용의 실제면에서 어 휘는 실질적인 활용 요소이나, 보통 사람들은 언어의 문장 의미에만 관심을 지니 거나, 구의 의미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혹은 대부분 어휘의 의미에만 관심을 가지 고 있어, 대부분 어소의 층위를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한자 개별의 어소 의 의미 혹은 한자와 한자를 이용한 단어의 조합 방법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 거나 그 이치에 대해 알지 못하 못하고 있어, 언어의 변화나 자의의 역사 속에서 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여 동일하지 않은 언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하여 어휘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어휘를 생성하여 결국 어소의 의미에 상당한 변화를 생성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缴纳税款的人’ 이 왜 ‘纳凉’, ‘接纳’, ‘收纳’, ‘笑纳’, ‘纳妾’, ‘容纳’, ‘吸纳’, ‘出纳员’의 ‘받는다’의 의 미가 전혀 다른 ‘缴交’가 되는가? ‘缴纳’의 반의어가 조합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纳’의 의미가 사라져, ‘人马’와 같이 현재에는 ‘马’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 을까? 왜 ‘纳税人’ 중에서 ‘纳’이 돈을 내다라는 의미가 되는가?또한 ‘缴’의 의미 가 ‘纳’안으로 포함되었는가?혹자는 이것을 일차적 번역의 오류라고 말한다. 그 러나 언어는 이렇게 변화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만에서는 대륙에서 말하는 신부를 ‘陆妻’라고 하는데, 여기서 ‘陆’은 육지의 ‘陆’이 변화하여, 다시 중 국 대륙의 ‘陆’으로 변화한 것이다. 어소의 의미는 계속 축소하여 점점 더 정치화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부인을 ‘陆妻’라고 칭할 수는 없다. 비록 그가 미국 대륙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더욱이 이 어소의 의미는 중국 대륙에서 온 학 생을 지칭하는 ‘陆生’과 같이 또 다른 어휘를 생성해 내는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 본문은 2012년도에 대륙에서 생산된 신조어를 대상으로 자의의 변화를 탐색해 보 고, 이 새로운 어휘의 어원 지식을 살펴보는 동시에 사전 편찬의 방법과 한자 자 의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여 보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직후 한국은 작전역량 부족이라는 이유로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이양했다. 2006년 9월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전작권 환수에 합의하였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 문제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안보를 둘러싼 국익논쟁 역시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언론은 전작권 논의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언론은 국가이익이라는 보편성을 위해 정파성이라는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일까? 국가이익의 재구성에 있어 언론은 과연 어떤 식으로 개입하는 것일까? 이 연구는 전시작전권을 둘러싼 언론사의 프레임을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진영논리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전작권 환수에 대한 언론의 입장을 확인 한 다음 정부 시기별 미디어 프레임을 분석했다. 분석 샘플은 한국 ABC협회가 발표한 2013년 신문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상위 6개 일간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매일경제>, <한국경제>에 실린 사설 221개다. 분석 시기는 전작권 환수를 합의했던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환수를 연기한 이명박 및 박근혜 정부를 포함했다. 귀납적 방식으로 프레임을 선정하기 위해 국가이익을 안보, 경제, 명예 및 지식 등의 차원으로 구분했으며, 각 차원에 대한 찬성과 중립, 반대 입장을 중심으로 모두 20개의 프레임을 설정했다.
전작권 보도의 정파성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문제로 언론사별 프레임 비중과 국가이익 차원의 프레임 차이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언론은 객관적 중재자가 아닌 주관적 개입자로 국가이익 재구성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담론 경쟁을 통해 재구성되는 국가이익의 실체를 제시하고, 대내외 정책을 둘러싼 합리적 담론 경쟁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고민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본 연구는 영국의 문화융성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정체성과 세계화를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1990년대 영국에서 발현된 ‘창의산업’ 정책을 탐구하고 있다. 세계화와 정권 교체라는 국내외적 시대 상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영국의 문화융성정책은 내적으로는 전통과 현대 문화를 경제와 산업에 동원해 신경제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고자 했고, 외부로는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 쇄신 및 국가 결속력을 높이고자 했다. 특히 영국이 가지고 있는 다문화주의적 문화 정책성은 세계화 시대 상당히 부합하는 정신으로 다민족의 역사를 통합해 이끌고자 했던 당시 정치 상황에서도 관심을 두었던 주제이다. 결국 영국적인 것을 공감하고 만들면서 공유할 수 있도록 문화 정체성을 강조했던 영국정부는 창의산업이라는 문화융성정책을 계획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그 지원 분야도 소설, 시 같은 문학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 패션, 영화, 도서, 텔레비전, 스포츠 그리고 대중음악까지 이르렀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는 ‘쿨 브리타니아’라는 구호를 통해 전통과 현대 문화의 대중화, 상업화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유니언 잭은 대중에게 이전보다 더욱 개방되었고, 브릿팝에서는 영국의 문화정체성을 보다 강화시키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결국 문화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정책의 논리는 문화를 융성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과 부합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치되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하면서 창의산업 정책은 여러 가지 우려되는 상황을 낫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문화 시장이 더욱 활발하게 교류·확산되는 세계화 시대, 문화융성정책은 문화 정체성을 지켜야 하면서 동시에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현명하게 접근하고 활용해야 하는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예이츠의 『파넬의 장례식과 기타 시들』(Parnell’s Funeral and Other Poems)은 다른 예이츠의 시집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전체의 배열과 개별 시의 의미를 함께 고려해 볼 때 그 시집이 지향하는 주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앞부분에 배치된 시들은 주로 그 당시 아일랜드의 정치적인 분열과 혼란을 다루고 뒤에 예이츠의 종교적인 신념을 다룬 초자연의 노래 (“Supernatural Songs”)를 배치했다. 이 연작시에는 영과 성, 남과 여, 너와 나, 나와 신, 신과 신, 어제와 내일, 밤과 낮, 순간과 영원이 하나 되고 일체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그의 정치적 종교적인 비전인 존재의 합일(unity of being)의 또 다른 표현이며 결국 시집 전반에 제시된 갈라진 아일랜드를 통합을 염원하는 시인의 처방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아일랜드는 식민이후의 분열과 내전 등의 상처를 가진 나라다. 현대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인종과 종교적 갈등의 후유증으로 내전 및 정치적 혼란을 겪어 왔다. 예이츠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이루는 시기에 영국에 호의를 보이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간의 내전을 히니의 경우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얼스터 분규를 경험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의 혼종성을 인정하고, 가톨릭, 공화주의의 광신적 민족주의를 비난하면서 아일랜드를 유럽의 한 국가로 인식하려는 정신을 통해 문화적 화해를 이루려 했다.
동해 표기는 지도상의 표식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종합적인 지리적 형체이다. 동해 표기는 지도에서 지명이 지니는 지리적 가치와 함께 공동의 지리적 영역에 대한 지명의 공유 차원과도 연관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는 동해 해역의 지명 병기를 위한 논리적 접근의 시작을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찾고자 한다. 본 논문은 동해 병기에 있어 지명 표준화와 지명 통일화에 대해 다양성과 차이성을 반영하는 다지명주의 관점의 1객체 다지명 원칙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전자지도에서는 종이 지도와 달리 다양한 축척에서의 지명 표기와 병기가 가능한 만큼 다지명 원칙과 근거는 전자지도상의 지명 표기와 병기의 근거로도 제시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 논의하고 있는 지명 병기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은 공식적인 하나의 표준 지명을 지향하는 지명 표준화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조정하거나 해결하는데 적용되는 대안적 시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앞으로 동해 해역의 지명 병기에 있어 토착 지명과 복수 지명에 대한 입체적 위상 관계의 연구가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에 기여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가지 형태 로 있어왔다. 현 정부에서도 ‘DMZ 세계평화공원’을 당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상징적 결과물로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며 시작하였고,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 는 현 시점에서는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명칭을 바 꾸어 추진하고 있다. DMZ 생태계 현황과 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DMZ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치열한 대립의 현장이면 서도 인간을 제외한 생명들에게는 가장 평화로운 지역이라 는 역설 때문이다. 이는 또한, 대립을 화해와 평화로 전환하 게 만드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과 상징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DMZ를 국내외적 관심의 대상으로 계속 이끌어왔다. 하지 만 DMZ의 생태적 가치를 실제 물리적인 공간 속에서 상징 화하고 남북의 관계 개선 결과 또는 과정을 매개하는 실체 로서 구체적인 개념과 방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까지는 다소 관념적으로 DMZ 생태계를 상징화해왔다고 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의 개념 과 전략을 공간 속에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이 갖 는 중요한 생태적 개념과 의미를 제시하고, 전체 DMZ의 장기적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그리고 남북 협력을 위한 세계생태평화공원의 역할과 조성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당초 현 정부는 남북의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대화 의 시작점이자 신뢰구축의 상징적 결과로서 소규모(1㎢)의 평화공원을 DMZ 내부에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는 기존 접근과 달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매개로서가 아닌 결과로서 DMZ 활용이 시작될 수 있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규모 평화기념공원 개념 접근은 기본적으로 과거 지향적 반성과 기억으로부터 평화를 창출하기 때문에 미래 발전을 위한 동력 생산은 미흡하다. 현재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서 ‘생태’가 강조되 었으나 생태적 이미지 강조 또는 친환경적인 공원 개발 수 준에 머무를 우려가 있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의 생태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서는 우선 DMZ 생태계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DMZ 생태계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자 동시에 훼 손된 생태계이다. 군사활동 교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생물다 양성을 유지하는 생태계이면서 남북의 하천과 산림이 형성하 는 자연생태축을 단절시키고 인위적인 철책에 갇힌 위태로운 생태계이기도 하다. 또한, DMZ 생태계는 남한에서는 도시화 와 산업화로, 북한에서는 산림 황폐화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 동식물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냉전의 산물인 DMZ는 역설적 평화와 생명의 원천이면서 새로운 통합과 지속가능발전의 시 작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의 조성을 위한 생태적 개념과 기본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한반도 DMZ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통일시대 미래비전을 먼저 설 정하고 평화기념 상징공간과 접경보호지역이 결합된 새로 운 모델로서 접근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 궁극적으로는 DMZ일원이 독일의 그뤼네스반트 지역과 유사하게 발전하 도록 미래 비전을 설정하고, DMZ 자체가 거대한 평화기념 공원이라는 인식 하에 DMZ 내부에 소규모 평화기념 상징 공간과 함께 DMZ 외부의 인접지역을 넓게 포함한 접경보 호지역 평화공원 협력공간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이 적합 하다. 둘째, 끊어진 백두대간과 강줄기 및 생물 서식처의 연결을 위한 남북 협력공간으로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DMZ에 의해 남북으로 나뉜 한강하구, 임진강, 한탄강, 북한강의 강(江) 생태축과 백두 대간 산(山) 생태축을 연결하고, DMZ 내부 생태계를 원천 으로 남북한 각각의 지역에서 생태계서비스를 복원 증진시 키는 협력공간으로서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셋째,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은 지속가능발전과 사회통합의 미래발전 패러다임 실현을 위한 교육과 실천의 공간으로서 역할이필요하다. 지역적으로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등을 포함 하여 생태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대안적 지역 발전 모델을 제공하도록 확장될 필요가 있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주요 추진 전략으 로는 DMZ 내부 소규모 상징공간을 포함하여 외부의 인접 지역을 포함하면서 DMZ를 따라 여러 곳에 조성하는 남북 연결·확장형 공원 형태의 공간 구성을 제안한다. DMZ 각 지역별 특성과 내부의 상징적 의미, 외부 인접지역들과의 연결 관계를 반영하여 크게 네트워크 활용형, 동심원형, 대 칭핵 연결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 체계적인 공간 구상 과 핵심활동 발굴이 필요하다. 네트워크 활용형은 DMZ 내 부의 상징공간이 외부의 연결요소들과 비슷한 정도로 활용 되는 유형으로 다양한 생태, 문화, 사회요소들의 연결이 가 능하다. 동심원형은 생물권보전지역과 유사하게 핵심, 완 충, 전이지역으로 구분하고 DMZ 내부는 상징공간을 물리 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생태계 보호 및 연구활동이 가능한 핵심지역, 외부는 생태관광과 지역활성화 기반 강화 등의 완충·전이지역으로 구분하는 형태이다. 대칭형 연결형은 DMZ가 통로로 가능하여 남북의 핵심거점 또는 핵심 보호 지역을 연결함으로써 단절된 남북 생태축을 연결하고 협력 활성화가 가능한 형태이다. DMZ의 서부지역부터 동부지역까지 한강하구, 임진강, 한탄강, 북한강, 그리고 백두대간 생태축 연결성을 우선적 으로 고려하여 5개의 연결 지점을 거점으로 하는 세계생태 평화공원 조성이 가능하다. 한강하구인 판문점 일대 지역은 평화를 기념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자원(평화명소)들이 풍 부하고 DMZ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활용형 공원을 조성하고 한반도DMZ연구소 설치 가 가능할 것이다. 철원평야 일대의 경우는 근대역사유적, 생태환경, 지질경관 등 다양한 자원을 연결하는 지질공원 형태의 네트워크 활용형 공원을 조성하고, 습지와 산림 등 다양한 서식지를 활용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의 추진이 가 능하다. 임진강과 북한강 지역은 동심원형이라 할 수 있는 생물권공원(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적합하며 지속가능발 전 모델사업과 공동 유역관리 및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설악산과 금강산을 연결하여 한반도 백두대간 축을 연결·복원하고 설악산-금 강산 생태관광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대칭핵 연결형 공원 형태가 적합하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은 DMZ 내 존재하는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통일 이후 생태·문화 자원의 보전과 사 회경제적 이용을 촉진하는 지속가능발전 지역으로 만들 수 있도록 미래 비전과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상징적 공간이 다. 이러한 접근 하에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은 DMZ 생태계 보전과 더불어 남북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데 핵심 적인 역할을 하는 시작점으로 기능하고, DMZ 생태계 보전 이라는 공동 협력 과제를 통해 남북의 대립·갈등 관계를 완화하고 남북 평화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산림 훼손 이 심각했으나 산림 녹화사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 그 러나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거쳐 70년대에는 농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였다면, 2000년대에는 도시 인구가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상태에 도달하였고 도시 생태계가 훼손되고 도시 주거 환경이 열악해졌다. 이때 도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도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 안으로 도시숲 운동이 등장하였다. 현재 도시숲 운동은 정부 의 산림정책과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도시숲 운동의 흐름을 정리하여 도시숲 운동 의 단계를 적절한 명칭으로 나누고 정부의 산림정책과 당시 사회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숲 운동의 흐름을 되짚어 기존 산림정책과 도시숲 운동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도출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의 내용적 범위는 우리나라 도시숲 운동이 남북 분단 이후 각기 다른 임정체제를 거치게 되므로 1947년 ‘조림 및 사방사업 10개년 계획’제정 이후를 대상으로 한다. 도시 숲 운동의 단계는 ‘사방사업기’, ‘산림녹화기’, ‘산림경영 기’, ‘숲문화창출기’, ‘시민숲운동기’로 나누었다. 연구 방법 으로 기존의 산림 정책은 문헌과 통계자료를 참고로 하고 최근 도시숲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홍 보자료, 심포지엄 자료집을 참고하였다. ‘사방사업기’는 광복 이후부터 산림 녹화사업 시행 이전까지이다. 광복 이후 산림 복구의 긴급성이 인정되어 1947년 ‘조 림 및 사방사업 10개년 계획’ 을 수립하고 1948년부터 1957년 사이에 황폐임야 복구사업을 실행하였으나 국가의 예산과 행 정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계획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였다. ‘산림녹화기’는 1·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이 시행되 던 시기이다. 1961년 5·16 이후, 국가 체제 정비를 목적 으로 일제 강점기의 산림령을 대체할 산림법(1962)이 제 정되었고, 산림청이 신설되면서 산림정책을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국토의 속성 녹화를 목표 로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1973~1978)’이 4년 앞 당겨 달성되자, 산지의 장기적인 육성을 위해 ‘제2차 치 산녹화 10개년 계획(1979~1987)을 시행하며 성공적인 녹화를 시행한 국가가 되었다. 치산녹화 정책 성공의 주 된 요인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경 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한 8~10% 고도 성장을 배경으로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의 뒷받침, 화석연료의 대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림경영기’에는 치산녹화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 되자 산림의 역할을 단순히 목재생산으로 생각하는 시 각에서 벗어나, 다목적 이용을 통해 산림자원의 효율적 인 이용과 보전을 실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제3차 산림기본계획(1988~1997)을 시행하여 자연 휴양림을 조 성하는 등 산지의 소득개발과 공익 기능의 증진을 통한 산지 효용의 극대화를 정책 목표로 하였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에 따라 1960년대 39.1%였던 도시 화율이 1970년대 50.1%, 80년대 68.7%로 급속한 변화 (2005,도시계획현황)를 보였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으로 산림 녹화지의 산림 관리가 어려워졌는데, 정부의 산림정책은 아직 산림 녹화지에 집중되어 인구가 밀집 한 도시 지역은 배제되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기존 구도심이나 원도심의 경우에는 도시계획 차원의 적 정한 도시숲 공급이 부족하고, 추가적인 도시숲 공급에 어려 움이 있었다. 따라서 도시숲 문제를 극복하고자 제4차 산림 기본계획(1998~2007)은 산림복지국가 구현이라는 비전하 에 지속가능한 산림경영(SFM)의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하였 다. 1990년대 시행된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은 훼손된 남 산 자연경관을 복원하고 자연 및 역사문화의 주체성을 확립 하자는 사업으로 도시숲 가꾸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증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2년 지방자치제 시행이 있었다. 지 방자치제 시행으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산림정책의새로운 패러다임의 일환으로 공원 녹지 조성, 도시 숲 가꾸 기 계획을 내세우게 되었다. 지방자치 단체장 선출로 민주주 의 운동이 확산되며 민주화 운동은 환경운동으로 전환되었 다. 또한 1992년 6월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회의 (UNCED) 이후로 산림생태계의 건강과 생산력 유지, 산림 생물종다양성 유지 증진, 휴양서비스 공급 및 경관보호 등 산림의 다양한 사회적, 생태적 기능을 포함하는 새로운 산림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김용하 외, 2008: 375). 리우 환경회의에서 제시된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과 생물다 양성을 실현하기 위해 ‘지방의제 21’이라는 거버넌스 조직 이 확산되었다. 이는 숲 운동 관련한 시민단체들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시민숲운동기’는 정부가 주도하는 숲 운동에서 시민사회 가 주도하는 숲 운동으로 숲 운동의 흐름이 변화한 시기이 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녹화된 산림 자원에 대한 효율적 이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998년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이 설립되면서 2000년대 초반 시민단체가 주도하여 산림의 효 과적 이용과 보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증가하였다. 시민 단체의 숲 운동은 학교숲 운동 이외에도 숲탐방 문화, 산림 휴양, 숲 가꾸기 사업에 기업이 함께하거나 민관 협동 숲 조성 운동을 시작하였다. (사)생명의숲국민운동에서는 학교 숲을 조성하여 자투리 공간을 공유공간으로 만들고 환경 교 육에도 이바지하였고,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도심의 녹지축 을 연결하여 서울숲과 같은 도시숲 조성, 우리 동네숲 만들 기 프로젝트를 통하여 숲을 조성할 때 시민의 참여를 높였다. 다양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정부 정책 추진의 바탕이 되 었다. 산림청은 숲 속의 도시, 도시 속의 숲 실현을 위한 도시림 기본계획(2013~2017)을 발표했다. 그 후 전문가의 활동의 뒷받침되어 1인당 9㎡의 생활권 녹지 확보 등을 ‘산림복지 10대 기본선’으로 엮어 정책을 제안하였고 산림 복지 종합계획(2013)에 ‘생애주기별 산림복지 서비스’, ‘산 림복지 관련 일자리 창출’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산림정책과 도시숲 운동의 흐름을 정리한 결과, 과거에는 정부 주도로 산림정책을 시행했으나 점차 사회 상황에 따라 시민 운동 차원의 도시숲 운동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지속적인 숲 조성과 관리를 위해서는 사회 상황 을 반영하고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산림정책과 이를 뒷받 침할 전문가의 전략, 시민단체의 활동이 필요하다. 최근 TEEB(2010)에서는 도시농업 등을 통한 마을공동체와 문화 회복, 도시 생물다양성 증진 등 도시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도시숲 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2015년 현재 도시숲 운동은 서울시의 ‘서울 꽃으로 피다’와 같이 녹지 조성을 통해 도시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한평공원’사례, 시민단체, 전문가,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거버넌스 형태의 도시숲 운동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숲 운동 의 방향으로는 1)적극적인 시민참여를 위한 시민단체와 전 문가와 기업과 정부 협의체를 통한 도시숲 조성, 2)도시 주 변 자투리 녹지를 활용을 통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3)도 시 생물다양성 인식 증진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도시숲의 생태계서비스 증진 방안 마련이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다수의 사건들은 조직의 윤리성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더욱이 조직의 비윤리성은 이미지 실추와 함께 실질적인 성과를 떨어뜨리며,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종말 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윤리에 대한 인식과 그 수준이 향상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도 윤리경영의 핵심인 윤리적 리더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 다. 이런 시점에서 본 연구는 윤리적 리더십이 조직의 효과성에 직결되는 구성원의 조직시민행동 및 일탈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리더만족의 매개역할과 구성원의 정치적 기술의 조절효과를 검증하였다. 군 간부 150명과 직속상사 90명의 자료를 토대로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상사의 윤리적 리더십이 높아질수록 조직에 이로운 조직시민행동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반생산적 업무행동인 일탈행동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Baron & Kenny(1986)의 매개효과 검증 방법 및 SPSS macro의 부트스트래핑 방식으로 윤리적 리더십의 간접효과를 확인한 결과, 윤리적 리더십은 리더만족을 통해 조직시민행동 및 일탈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으로, 구성원의 정치적 기술이 낮을수록 윤리적 리더십과 리더만족 간의 관계가 더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주로 서구에서 밝힌 구성원의 조직시민행동 및 일탈행동에 미치는 윤리적 리더 십의 효과를 국내 표본을 대상으로 확인함으로써 선행연구 결과의 일반화를 확장하였다는 시사점이 있 다. 특히 국내에서는 윤리적 리더십과 일탈행동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더욱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실질 적인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리더만족의 매개역할 검증을 통해 윤리적 리더십과 구성원의 조직시민 행동 및 일탈행동 간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선행연구에서 고려되 지 못한 구성원의 정치적 기술이 윤리적 리더십에 대한 태도적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밝힘 으로써 윤리적 리더십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의 증진은 물론, 실무적인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말미에 연구의 한계 및 향후 연구방향에 대해 논하였다.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인구 10만 명당 구금자수 707명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구금자 수나 구금율은 지난 몇 십 년 동안에 이루어진 변화의 결과이다. 보수주의 시대에 해당하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른바 강경대응방식(tough-on-crime approach)을 취하였고, 그 결과 구금자수와 구금율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강경대응방식은 구금자수와 구금율의 급격한 증가 이외에도 따른 행형예산의 대폭적 증가, 과밀수용 등 처우의 악화, 권한남용 및 인권침해 증가, 행형비리 등 온갖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강경정책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지속되다가, 2000년대 후반 세계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예산문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된 미국 정부는 기존 대응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대안으로 효율적 대응방식(smart-on-crime approach)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새로운 대응방식은 비단 예산 절감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강경정책에 가려 묵인하거나 소홀히 취급하였던 인종간 불균형, 청소년·여성 등 취약자에 대한 배려, 사형수의 처우, 민간행형시설의 비효율과 인권침해 등 행형전반에 걸친 문제점들을 하나씩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현재 미국은 예산절감, 인권신장 그리고 범죄통제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범죄를 비롯하여 각종 흉악범죄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도되면서 흉악범죄에 대한 경경대처 여론이 비등하였고, 이에 정치권과 사법부는 형벌가중, 보안처분 확대, 양형기준 인상 등 강경대응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미국의 경험이 증명하듯 예산의 압박, 인권침해 사례의 증가, 행형비리의 증대와 같은 각종 폐해를 양산할 우려가 다분하다. 필자는 그 동안 미국의 경험은 우리나라가 참조하기에 충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보고, 구금자수와 구금율의 변화, 인종간 불균형, 청소년, 여성, 노인,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 LGBT), 사형수 등 구금을 중심으로 하여 최근 미국 행형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프랑스 형사개혁의 가장 중요한 분야라 할 수 있는 보호관찰제도의 변화 및 향후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는 보호관찰을 교정사무의 일부로 규정하고, 그 지휘감독을 교정당국이 행하는 등 한국과는 제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어 연구의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최근 프랑스가 추진하는 형사개혁의 방향은 첫째, 개별처우제(Individualization of sentences)를 강화하였다. 교정처우는 재범위험성을 낮추고, 수용자재활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보호관찰을 강화하여 대상 범죄유형과 대상자, 그리고 그 기간을 확대하였다. 즉 보호관찰의 의무적 대상을 형집행중지자 및 집행유예 대상자, 도난, 파손, 경멸, 교통 위반, 폭행 등으로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은 경우, 강간, 무장 강도, 살인 등이 아닌 강력범 등으로까지 확대하였다. 셋째,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하여 수형기간에 상관없이 수형자는 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조건은 재범 위험성의 여부에 두었다. 넷째, 보호관찰조직 및 교정조직을 정비하고, 보호관찰관을 대폭적으로 증원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가 2012년 이후 벌여온 일련의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조치, 특히 구금처우 정책에서 벗어나 재활 및 보호관찰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정책적 기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프랑스가 구금주의 우선정책에서 재활 및 보호관찰처우 즉, 사회내처우제의 확대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범죄자처우와 사회안전을 맞바꾼 룰렛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0여 년간 추진한 교정행정 개혁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또 다시 정치적 논리에 휘둘려 보호관찰 개혁을 들고 나왔다는 비판이다. 나아가 민간협회에 대한 위탁사업을 인정함으로써 민영화에 착수했다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한편으로 프랑스가 사회내처우를 강화하면서도 보호관찰관 채용조건을 법률전공자로 한정하는 등 보호관찰을 처벌로 인식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According to the catch condition of Scomberomorus niphonius in autumn season affected greatly, the catch price for the set net fishery. Catch production and the selling price were relatively even except 2009 showing a great big blooming jellyfish of Nemopliema nomurai in 2008~2011. The fishing cost of the set net fishery in Yeosu has increased gradually by the decrease of catch production and unexpected environmental change like as jelly fish blooming. The increase of fishing cost diminished net income and caused a negative impact in profitability. The lowest Fisheries ratio of gross profit to gross costs the set net fishery were appeared 60.2% in 2010, respectively.Bycatch was highest in 2008 and lowest in 2009. In general, the bycatch was occurred from May to July every year and when Scomber japonicus was most dominant in the catch price by bycatch had a advantage in the profit side. However, the catch increase of immature small fishes by the bycatch, which will bring about the decrease of fisheries resources. Finally, the present state in set net fisheries will act as a defect on the long-term management of fisheries resources.
선교적 종교(missionary religion)로서 이슬람은 그 신앙 운동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종교 세력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신앙공동체가 되었다. 무슬림들이 한국인들과 처음으로 접촉하고, 한국 땅을 밟게 된 시기는 1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성내 이슬람 사원이 세워질 정도로 무슬림들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무슬림들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지 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선교적 결실은 부진했다. 왜냐하면 당시 무슬림들은 원나라의 사신들로서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들에게 호 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한국 전쟁에 파견된 터키군은 한국 사회에 이슬람의 종교적 호감도를 ‘부정적(Negative)’ 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전화시켜 주었다. 한국의 우방국으로 참여 해 한국인들을 위해 과감히 피를 흘린 터키군들의 신앙 전통은 한국인들 에게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1970-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한 중동 국가들 역시 한국 사회에 이슬람 이미지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슬람의 이러한 긍정적 호감도와 함께 국내외 무슬림 들의 적극적인 선교(Da’wa)활동을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이슬람이 한국 사회에서 부흥하는 신흥 종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본 논문은 21세기 한국 내 무슬림 신앙공동체의 부흥 원인과 개종자들의 개종 사유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국 무슬림들 49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개종자들의 73%가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종교 정체성 변환했다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계 에 신선한 충격이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 이슬람 사원으로 향하는가? 필자의 연구결과 한국 무슬림들의 주된 개종 요인은 “지적 동기와 실험적 동기”가 강하다. 이슬람에 호기심을 갖고 그 종교를 깊이 연구한 개종자들은 기독교의 복음과 예배 행위보다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 의식에 더 매력을 느껴 교회를 떠나 마스지드 (masjid)로 향하고 있다. 본 논문을 통해 이러한 종교 현상에 대한 우리의 선교 신학적 고찰과 대안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삼화사 창건 내역과 노사나불상 조성의 내용, 그리고 불상 조성의 불교사적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다만 불상의 양식을 중 심으로 고찰한 기존 연구와 달리 명문에 기록된 결언의 행적, 사상 경향을 통해서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 조성의 정치적인 입장을 주로 살폈다. 삼화사는 대체로 후삼국통일 이후에 왕건이 범일의 遺墟에 전각을 세우고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범일이 터를 닦기 이전에 이미 삼화사는 지금의 자리보다는 바다에 가까운 계곡 아래쪽에 자리 하였다. 삼화사 옛 터에는 석탑 1기와 함께 철불 2구가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1구의 철불만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삼화사 적광전에 봉안된 노사나불상이다. 이 불상은 ‘말법이 시작된 지 300여 년’에 조성되었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이나 염거화상 승탑의 명문과 관련하여 볼 때, 제작 시기는 대체로 860년 쯤일 것이다. 없어진 1구의 철불은 9세기에 전국적으로 비로자나불상 제작이 성행하였음을 고려하면, 비로자나불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 조성 불사는 결언이 주관하였다. 결언은 삼화사 노사나 불상을 조성하는 불사를 설행한 뒤, 다시 숭복사 노사나불상을 제작하는 불사에 참여하는 등 주로 노사나불상 조성에 깊이 관여하였다. 숭복사 노사나불상의 제작은 경문왕의 지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도 경문왕 의 교서에 의해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곧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의 조성에는 즉위 직후 위상을 부각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경문왕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 되었다. 결언은 해인사 승려였다. 헌강왕과 정강왕 때 해인사에서는 지엄과 의상을 추모 하는 법회를 개최하면서 60권 화엄경과 80권 화엄경을 사경하는 화엄불사를 설행하였다. 결언은 현준과 함께 이 불사를 주관하였다. 결언은 성기론적 화엄사 상을 가졌지만, 유식 논리에도 유념하였으며 실천 논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결언 이 융섭적인 화엄사상을 강조하면서 노사나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는 불사를 주관하였으므로, 삼화사 노사나불상 조성 불사는 화엄사상을 통해 당시 불교계를 아우르려는 경문왕계 왕실의 입장이 반영되었다. 경문왕계 왕실은 노사나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면서, 당시를 말세로 인식하는 민심을 위무하고, 굴산 문과 같은 선종산문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결국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상 조성 불사는 9세기 중반 이후에 경문왕계 왕실이 명주 일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삼척 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던 정치적 의도와 밀접히 관련되었다.
역사는 주어진 사료(史料)을 기술하는 것(history)으로는 충분하 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는 해석된 역사(Geschichte)일 때 진정한 역사 이기 때문이다. 초기기독교는 박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 이유를 유세비우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고, 그린은 확산의 저해요인을 들어 설명하였 다. 이와 반대로 페스틴저는 ‘인지적 부조화이론’을 들어 심한 박해가 도리어 열정적인 선교를 하게 했다고 보았고, 이를 수정한 게이저는 임박한 종말의 기대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때까지로 대체되었고 하였다. 이에 비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지금까지의 수용사(受容史) 중심의 선교역사에서 벗어나 전달자와의 관계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역사의 객관적 사실을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이를 초기기독교 확장사에 적용하면 복음의 확산에 기여한 흡인력으로서 내적요인과 추동력으로 서 외적요인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흡입력으로서의 내적 요인은 선교 를 위한 신학, 순교자로서의 증인, 강력한 윤리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라 고 할 수 있고, 추동력으로서의 외적 요인은 세계를 통일하고 있었던 로마의 정치와 문화, 당시 문명이 서로 교차하는 세 개의 대륙이 서로 만나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선교를 타문화권 선교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를 입증하는 것이다. 필자는 북한이 타문화권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로이드 콰스트(Lloyd Kwast)의 문화의 구성에 대한 ‘4개의 동심원층 모델’을 이용하였다. 로이드 콰스트의 문화에 대한 이론으로 분석한 북한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타문화권이었는데, 그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째, 북한 사람의 행동, 습관, 관습, 제도가 남한과 다르기 때문이 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정치적, 경제적인 체제의 차이로 인하여 타문화권이 되었다. 북한사람은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김일성 우상화(신격화)의 영향으로 종교적 행위라고 판단 될 수 있는 행동들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둘째, 북한 사람의 가치관이 남한과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은 북한당국의 사회주의 혁명(건설) 논리, 사회 안정 논리, 위기 극복논리 에 따라 평등주의, 집단주의, 획일주의, 수령중심주의 가치관을 발달시 켰다. 그러나 북한 사람의 실제 삶은 이상적인 가치관(ideal value)과 현실적 가치관(real value) 간의 타협의 산물이다. 셋째, 북한 사람의 신념체계가 남한과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당국 이 원하는 이상적 인간형은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주체형의 새 인간은 김일성 혁명사상과 교시로 자신의 신념체계를 삼아 김일성에 게 대를 이어 절대 복종, 충성하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넷째, 북한 사람의 세계관이 남한과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가 국가종교 형태를 추구하면서 북한 사람의 세계관에는 김일성이 ‘하나님’ 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북한당국은 종교적인 용어들을 차용하여 김일 성에게 적용시켜서 김일성을 우상화(신격화)하고, 어릴 때부터 철저하 게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김일성교’를 믿는 국가종교 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논증을 통해서 이 논문을 시작하며 제시하였던, “북한 선교는 타문화권 선교로 접근해야 한다.”는 가설이 옳았음을 입증하였 다. 로이드 콰스트의 이론으로 분석한 북한은 남한과는 완전히 다른 타문화권 사회이다. 북한선교는 동일문화권 선교가 아니라 타문화권 선교로 접근해야 한다. 비록 민족이 같고 언어가 같아서 의시소통이 된다 하더라도 타문화권 선교로 접근할 때 올바른 선교가 이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