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유적은 집중적 관리를 필요로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요 문화 유산이다. 런던 미트라 신전 박물관은 정부 및 민간분야의 협업을 통해 고고유적을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으며, 문화재의 관리와 활용에 있어 민간의 참여를 장려하는 영국의 전통을 반영한다. 그 협업의 결과로 본래 건축 자재와 복제품으로 복원한 신전 유구에 다양한 시청각적 효과를 더해 관람객들의 상상을 북돋우는 전시실이 만들어졌다. 또한 박물관은 소재지인 월브룩 지역의 로마시대 고고 유물과 함께, 이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 기업인 블룸버그가 관리 책임을 맡아서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문화유산의 활용에 있어서 민간 분야의 새로운 형태의 협력상을 보여주는 유용한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본 논문은 한국현대시사에서 인천이라는 장소는 어떻게 표상되었고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가를 살폈다. 인천이 지니는 경계 도시라는 장소적 특성에 주목하여 한국현대시사, 혹은 한국현 대문학사에 나타나는 인천의 문학적, 지리적 의미를 점검하여 인천을 둘러싼 심상지리 연구 혹은 인문지리학 연구에 새로운 연구 결과를 더함으로써 이 분야 연구를 풍성하게 함과 동시에 문화 연구와 문학 연구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주제를 탐색하고자 한 것이다. 본론에서는 식민지 시기의 작품들과 해방 이후 작품들로 나누어 살폈다. 식민지 시기 작품들 가운데 김소월과 김동 환과 박팔양의 작품들을 살폈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항구 도시 인천이 지니는 이국적 풍경과 함 께 가난한 삶의 풍경이 있음과 동시에 식민지의 상처에 대한 암시적인 표현이 담겨 있다. 인천이 지니는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하였을 이러한 특징은 그대로 식민지 조선이 겪는 정신적 상처의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도 주지만 나라 잃은 상황은 현실을 암울하게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작품 들은 박인환과 장석남과 정호승의 작품들을 살폈다. 해방 이후 인천을 시화한 시들도 물론 인천 이 지닌 지정학적 특성이 시적 전언의 배경인 까닭에 한반도가 겪은 비극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 도 있지만 화해와 공존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는 시들도 있었다.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갈 등과 대립이 종결되면 새로운 미래가 여기서 시작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작용하였기 때문이 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함께 섞여 있는 곳, 바로 이것이 인천을 표상하는 시들이 지닌 특성이라고, 또 인천이라는 지역이 지는 중요한 의미라고 해도 될 것이다.
호남학회 성립 이전에 호남지역에서 상경한 뜻있는 인사들은 주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권 회복을 갈망했다. 그러한 열망을 품은 당대 호남의 지식인들은 계몽 단체에 참여 하여 활약하는 동시에 국운 회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경호남 지식인들은 호남지역의 계몽과 신교육의 진흥을 목적으로 호남학회를 조직하였다. 호남학회를 근거지로 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호남을 기반으로 특정 지향점을 공유하는 지식인 공동 체가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본고는 호남학회 활동시기 참여자들의 공론장 형성 활동을 기술하 고자 하였다. 특히 공론장의 주요 의사소통 행위자로 활약한 이들의 공론 표출 양상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호남학회와 『호남학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인 공동 체의 성격과 유학적 관계망을 통한 호남 공론장의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근 대전환기 호남의 공론장 연구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stablish the relationship between Durand's architectural theory which provided reasonable architectural logic in the early 19th century, and architectural logic of the Modern Movement of Architecture led by avant-garde architects in the 1920’s. The system of thought in architecture proposed by Durand which clarified a architectural design method(composition) is very similar to the one of the International Style(Book), which summarizes commonalities in the flow of modern architecture. This approach has something in common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ystems of thought, despite differences in external forms and time gaps. Therefore, this study intends to examine the systems of thought in three ways. It is to examine how the two systems of thought define architecture, what is the logic of building production, and finally the value of architecture (including aesthetic values) while eliminating classical aesthetics.
상하이는 국제도시로 세계의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중국 그 어느 도시보다 지식인들이 집결하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상하이의 진보적 지식인은 국제정세 속에 서 중국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었고,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자연스럽게 상무정 신을 고취하였다. 많은 지식인은 중국 역사와 민간의 전통 속에서 협객을 발굴하였으며 그들 의 상무정신을 찬양하였다. 한편, 상하이는 노동 이주민의 도시였다. 세계대전 후 서구의 자 본이 상하이에 몰리게 되면서 국제도시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상공업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이에 상하이에는 다양한 국가, 인종, 지역민이 모여들었다. 이주민들은 그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업종별, 출신 지역별로 다양한 조직을 결성하였고, 이들 조직은 조직의 결속을 위해 민 간의 협의정신을 적극 수용하였다. 결론적으로 근대시기 상하이에는 위로는 상류층 지식인의 엘리트문화에서 아래로는 하층 노동자들의 하위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협의정신을 찬양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는 근대시기 상하이가 지식과 지식인, 자본과 노동자를 끌어들이는 동북아해역의 인문네트워크 중심도시로 성장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1920-30년대 상하이에 협의서사가 흥성하게 된 주요배경이 되었다.
본고는 17권의 한·중 현대소설 텍스트의 차등 비교문에서 ‘更’과 ‘还’에 상응하는 한국어의 다양한 정도부사 표현에 있어서의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중 인지 언어학 연구 방법론의 하나인 원형이론에서 Langacker의 연결망 모형을 바탕으로 ‘更’과 ‘还’에 상응하는 한국어 정도부사의 의미 연결망 모형 그리고 수평 차원에서의 원형이론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차등 비교문 안의 한국어 정도부사 사용에는 정도상의 표현 되는 크기에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도부사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차등 비교문 안의 연이은 정도부사 사용을 살펴보면서 정도부사 간의 양(量)의 격차 즉, 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거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비문이 되어 원형적 차등 비교문 효과를 나타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두 대상 간의 비교 정도치를 극대화 하거나 반대로 극소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이은 정도부사 사용이 차등 비교문 안에서 원형적 차등 비교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선 반드시 양(量)의 격차를 고려해야 하며, 그중 본고의 연구를 통해 ‘중량(中量) 부사’ > ‘소량(小量) 부사’ 그리고 양(量)의 격차가 ‘0’ 일 때의 동일 선상에서 연이은 정도부사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유랑성(流浪聖), 다양성(多樣性), 그리고 이동성(移動性)이 라고 하는 다양한 시각에서 종교의 문제, 성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과 욕망의 문제를 유랑의 특성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움직이는 城 』 의 작가인 황순원은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유랑의 특성을 부여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유랑의 특성을 창조적 삶의 형태로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식하였다. 유 랑하는 신성함에서는 기독교와 샤머니즘의 관계가 대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상 호보완적인 측면으로 접근하였다. 종교의 문제는 각각의 종교가 지닌 특성을 통해서 공존의 방향을 모색해야하는 것이다. 다양한 성(性)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 의 삶을 추구하는 인물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이라고 하는 성조차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성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동하는 성(性)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유랑의 특성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들의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로서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심미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활동 중에서 곤충의 역할을 다루는 학문 분야를 문화곤충학이라고 한다. 본 연구는 근대 시조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곤충의 종류를 문화곤충학적 관점에서 조사하였다. 조사대상 문학작품은 6,604편의 근대 시조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곤충 관련 어휘들을 조사하였다. 조사 시조들 중 곤충 관련 어휘가 등장하는 시조는 215편이었으며 제목에 곤충 관련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시조 작품들은 26 편이었다. 곤충관련 어휘들은 모두 257번 등장하였는데 30종류의 곤충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곤충류 어휘는 나비로 57회 등장 하였으며 귀뚜라미가 45회, 벌레가 44회였다.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통해 문화곤충학 분야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독교에서 평신도란 사제나 목사가 아닌 사람을 말한다. 천주교에서 는 교황, 주교, 사제, 부제로 이어지는 성직계급과 평신도로 구분되어있으며, 개신교에서는 목사, 전도사와 평신도로 구분된 상태를 유지되고 있다.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평신도에 대한 시각이 달라져 평신도가 성직자의 하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 개신교 에서도 교회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달라진 시각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의 기독교 사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평등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본 논문에서 거론할 평신도 운동은 성직자가 주축이 된 운동이 아니라 평신도가 주축이 된 운동을 말하려고 한다. 평신도 운동의 기존 연구 성과들을 살펴보면 평신도 운동의 역사적 전개나 현재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 연구보다는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 평신도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와 그것에 맞추어 어떻게 평신도를 교육시키고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 반 연구논문은 물론이고 학위논문에서도 거의 예외가 아니었다. 이 글은 평신도 운동들 가운데 주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평신도 운동에서의 특징과 그 전망을 고찰해보는 방향으로 전개할 것이다. 결국 이 글은 앞으로 관련 연구를 위한, 그리고 평신도 운동과 사회변동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인식하는 평신도 운동의 목적은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선교의 중요성이다. 종교로서 선교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가장 시급한 것은 내적 개혁이라고 본다. 이러한 입장을 외면한다면 교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운동이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 운동의 본 질은 자기반성 운동이고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보는 운동이다.
본 논문은 일본에서 일어난 근현대 재가불교운동의 특징을 살펴보고 재가 불교 교단이 나아갈 방향을 알아본 논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도 교단이 형성 되어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법화천태계열 교단과 진언종 계열 교단의 교단 형성과 발전, 교학과 수행체계의 특징을 알아보고 현대사회에서 재가불교 교단의 발전 가능성에 대하여 고찰해보았다. 일본의 재가불교운동은 일본의 근대화와 더불어 일어났다. 급격한 근대화로 인한 개인의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종단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교단을 형성하며 재가불교운동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에서 재가불교 교단은 크게 법화천태 계열과 진언계로 나눌 수 있는 데, 법화천태계 교단은 혼몬부츠류슈(本門佛立宗), 코쿠츄카이(國柱會), 레이유카이(靈友會), 리쇼고세카이(立正佼成會), 소카각카이(創價學會)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니치렌슈(日蓮宗) 계열의 재가교단으로서 근대화에 따른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교육과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소카각카이는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했다는 특징이 있다. 신뇨엔(眞如 苑)은 진언계 교단으로 봉사와 실천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와 환경문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근현대 재가불교 교단의 활동을 참고하여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종교적 방법론이자 재가자들의 실천수행방법론으로 필자는 인권분야 사회운동에의 참여, 경제공동체 및 환경보호단체의 확충, 사회봉사 및 사회사업의 체계화, 전반적인 문화활동에 대한 투자, 정 치참여에의 독려의 5가지 발전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방안은 재가자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회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미래세대와 현재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재가자들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재가불자와 교단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한국의 재가불자의 활동은 근대 형성되기 시작되었다. 계기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불교의 포교활동과 외부에서 유입된 타종교의 견제가 주된 목적이었다. 대한제국은 일본불교를 견제하기 위해 동대문 밖 안양암에 종교회를 두었다. 중앙에 임원을 두고 지방 각 도의 조직을 관장하였다. 그러나 관리서가 1904년 1월 폐지되면서 근대적인 재가불교운동도 막을 내렸다. 근대 불교계에서 자발적인 재가불교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0년 전후 한 무렵이다. 사찰을 중심으로 타종교인 예수교에 대한 대항, 불교진흥과 공부를 위한 목적, 그리고 지역불교 발전을 위한 목적이었다. 이런 활동은 재가불교의 힘을 성장시켰고 그 역량이 사회활동에 이르게 되었다. 이 가운데 불교부인회는 어려운 환자나 걸인 그리고 어려운 재난을 당한 이재민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전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한국 현대불교에서 재가불교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이다. 처음 에는 종단과 관련되지 않고 모임이 결성되어 독자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 후 1962년 4월 통합종단 이 설립되고 신행단체를 육성하면서 전국 신도회, 대한불교청년회, 그리고 대학생불교연합회 등 종단관련 재가불 교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이런 재가불교운동은 한국 현대불교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80년대 민중불교를 태동시키는데 가교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 재가불교운동은 80년 사원화 운동, 1983년 전국청년불교 도연합대회, 그리고 1985년 재가와 승가의 연합인 민중불교운동연합으로 이어지면서 불교의 자주화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젊은 불자들에 의해 공권력에 의존하는 한국불교의 모습을 척결하고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불교계의 개혁과 반성을 지향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1990년대는 재가자만의 독자적인 불교운동이 형성된 시대였다. 불교의 내적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종단에 대한 비판적 역할도 잊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면서 왕조의 정통성과 성전파괴를 경험하였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편협된 틀을 깨고 야웨신앙을 견고히 하면서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공동체와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회당을 세웠으며, 그들의 생활을 만인에게 공개하고 율법을 실천하며 모범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실생활에 서도 경건한 생활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에 대한 도전을 주었으며 그 자체가 유대교 선전의 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존재의 선교, 즉 삶을 통해 보여주는 선교에 중심을 두고 있다. 포로기에 유대인들의 생활을 통해 그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며, 회당을 세우고, 신앙재건을 위해 노력한 점을 확인하였으며, 그들의 열악한 상황 가운데서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의 뜻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해 나갔는지 회당공동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대교 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였다.
여행과 이동의 비유는 20세기 초 새로운 이동과 통신기술과 예이츠의 문화적 사업 사이의 상호관계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현대성에 대한 예이츠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경험주의, 사실주의,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낭만주의적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의 신비주의적 문화민족주의를 들여다보면,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신적 문예부흥을 촉발할 새로운 방식의 창의적인 영감과 기법을 모색하는 예이츠는 이동과 통신기술에 대한 애매한 관계를 보인다. 예이츠는 일생을 거쳐 신비주의 현상의 탐구과정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정신현상에 대한 주장을 회의적으로 대하였고, 현대적 이동수단에 의존하는 이동적 생활방식에서 창의적 영감을 얻었으며, 말년에는 새로운 기술인 방송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Modern Joseon Architecture is North Korea's unique building style that interprets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 in a modern way, and its most distinctive design feature is the Paljak roof that decorates the upper part of the buildings. This paper argues that continuous attempts at characterizing the nature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in the late 1950s and early 1960s developed the theoretical rationale for the exclusive use of the Paljak roof in Modern Joseon Architecture. It also argues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Pyongyang Grand Theater and the Okryu Restaurant during this period became a decisive moment for the formalization of the Paljak roof. The double roof rafters and gables and the "cheerful yet solemn" roofline were considered as main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Korean roof and the Paljak roof perfectly fits this description. Particularly, in North Korean society where Kim Il Sung became idolized as an impersonalized deity, an anecdote in which Kim Il Sung fixed a prominent gabled roof in the Pyongyang Grand Theater into a Paljak roof has allowed for the roof to gain an exclusive status. Hence, almost all Modern Joseon Architecture since the 1960s accepted the Paljak roof’s monopoly position, rather than experimenting with other traditional roof types.
이 글의 목적은, 1960년대 내부 간행물로 출판되어 1980년대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서구 모더니즘 문학의 수용과정과 그 영향력을 고찰하는 데 있다. 케루악과 샐린저가 1980년 대 중국작가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을 왕쑤오와 쑤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구 모더니 즘 작가들이 중국 문학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그 이전 1960∼70년대 “내부 발행” 도서에서부터 시작되어 확장된 것이었다. 이 “내부 발행” 도서는 중국의 세계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중국에서 비트 세대라는 기호는 21세기 초의 중국문학과 문화의 새로운 길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사회주의시기 이후의 문학은 사회주의시기 문학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침잠하는 잠재성을 통해 연속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분명한 징표라는 점이다.
본고는 동일한 통사적 양상으로 실현되는 RVC구문이 서로 다른 의미구조를 표상하고 있 음을 밝히고, 이들의 의미적 범주화를 시도하였다. 현대중국어에서 능격동사, 비대격동사로 분류되는 RVC는 논항구조와 의미역에 따라 ‘자동’과 ‘타동’, ‘사동’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구조 를 형성한다. 특히 타동문과 사동문은 통사적으로도 동일한 결합가를 가지기 때문에 그 의미 적 차이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RVC 타동구조는 <AGENT, THEME>의 논항구조를 통해 단 일 사건 내에서 동작의 행위자와 대상의 역학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의미구조이다. 반면, RVC 사동구조는 <CAUSER, CAUSEE>라는 두 논항을 취하여 복합사건 내에서 원인을 유 발하는 사동주와 이로 인해 결과사건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피사동주의 작용 관계를 중심 으로 의미구조를 형성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두 구문의 논항관계와 의미역, 사건구조를 통해 RVC 타동문과 사동문의 의미적 구분 문제와 RVC 사동문의 의미적 특징을 조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