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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CAC(Cognition-Affect-Conation) 프레임을 기반으 로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 이용자가 사용하는 다단계 체험 모델을 구 축하고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탐색하 고, 미래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의 개발 및 최적화를 위한 이론적 근 거와 실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는 CAC 프레임을 기반으로 의인성 인지, 관계성 인지, 오락성 인지, 서비스 품질 인지, 비용 인지, 이용자 감정, 이용자의 사용 의도 등의 측면에서 이론적 모델을 구축한다. 정량적 데이터 분석 방법을 통 해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의 이용자 사용 의도 생성 동기를 분석한 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높은 관계성 인지, 오락성 인지, 서비스 품질 인 지는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에 대한 이용자의 긍정적인 감정을 증가 시킬 수 있고, 긍정적인 감정은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에 대한 이용 자의 사용 의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의인성 인지와 비용 인지가 높으 면은 박물관 AI 음성 대화 기술에 대한 이용자의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 하여 이용자의 사용 의도를 높이는 데 부정적인 연향이 있음을 도출했 다.
        9,300원
        2.
        2024.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음양오행론을 중심으로 한 사주명리학과 『황제내경』의 질병 이론에 관한 고 찰로서 문헌 연구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음양오행론을 중심으로 한 사주명리학과 『황제내 경』의 질병 이론이 일치함을 밝히고, 사주명리학 질병 이론에 『황제내경』의 양생법을 활용 하여 많은 이들의 건강관리법에 도움을 주는 것에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음양오행론을 중심 으로 한 질병 이론에 대하여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 음양오행과 인체의 대응 관계가 사주명리학과 『황제내경』에서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봤는데, 肝·心·脾·肺·腎 인 오장(五臟)과 膽·胃·大腸·小腸·膀胱·三焦인 육부(六腑)의 음양오행이 모두 일치하였다. 둘 째,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한 질병 이론에서 사주명리학과 『황제내경』 모두 음양오행의 태 과(太過) 또는 불급(不及)을 질병의 발생 원인으로 보는 점에서 일치하였다. 셋째, 오행에 따른 성정에서 사주명리학은 주로 용모와 성격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 『황제내 경』은 오장과 감정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서로 차이가 있었다. 연구 결과 음양 오행론을 중심으로 한 사주명리학과 『황제내경』의 질병 이론이 음양오행과 인체 배속 관계 그리고 음양오행 불균형을 주요 질병 원인으로 보는 점에서 서로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6,300원
        3.
        2024.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황제내경(黄帝内經)󰡕에서 바라 본 정신 건강수양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생명과 건강 그리고 질병의 동양의학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본 연구 를 통해 얻은 결과는 염담허무는 마음의 다스림으로 기에너 지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몸의 이완을 가져오며, 진기종지는 몸의 기에너지 순환을 통한 마음의 다스림이다. 즉 호흡명상과 호흡마사지의 상호작용으로 정신내수에 이르러 병의 발생 을 미리 예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앞으로 본 연구결과를 토대로 자율신경 조절과 뇌파 방면의 과학적인 연구지표 검 증을 통하여 정신건강수양법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동양의 학의 우수성을 대중화할 수 있는 지속적인 후속연구가 필요 하다.
        7,700원
        4.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남극 로스해 연안에 서식하는 아델리펭귄(Pygoscelis adeliae)과 황제펭귄 (Aptenodytes forsteri)의 분변 시료를 기반으로 펭귄 장내 미생물 메타지놈 연구를 수행하였 다. Taxonomy 분석 결과,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의 장내 미생물에는 주로 7개의 문(phylum), 18개의 과(family)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생물 다양성을 평가하기 위해 Alpha diversity 및 OTU abundance 분석을 수행한 결과, 전반적으로 아델리펭귄의 장내 미생물 다양 성이 황제펭귄보다 높은 것을 확인하였고, PCoA를 기반으로 한 Beta diversity 분석을 통해 두 개체군 간 장내 미생물 군집에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PICRUSt를 활용한 기능적인 차원의 KEGG pathway 분석을 통해서는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 시료에서 nucleoside and nucleotide biosynthesis pathway가 가장 많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남극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의 장내미생물 구성과 다양성을 비교분석 할 수 있었다. 본 연구 결과 는 향후 펭귄의 먹이 섭식 관련 연구에 활용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양한 남극 생물의 장내 미생물 메타지놈 분석에 대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000원
        5.
        2022.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20년 동안 한대 황제릉의 고고학적 조사․탐사 발굴 작업은 한대제릉의 형식과 배 치, 발전 및 변화의 궤적을 밝혀내는데 성과를 거두었다. 이 글에서는 이미 발표된 고고학 자료와 여러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기초로 한대 황제릉의 고고학적 성과와 연구과정을 소개하 고, 능묘배치, 내포된 함의을 중점적으로 소개하였다. 서한(西漢)은 “사사여생(事死如生)” 즉, 죽은자 섬기기를 산자 섬기듯 하였는데, 황제릉제도의 특징을 요약하면, “제후동토부동 혈(帝后同茔不同穴)”로, 황제와 황후는 동일 묘역에 장례를 치루지만, 각자의 능원을 가지 며, 이중능원, 외릉원 안에서 제후는 각기 소능원을 가지며, 능원담장 밖에는 한겹 또는 2중 으로 해자를 둘렀다. 복두형 봉분으로 4개의 묘도가 있는 아자형묘(亞字形墓)이며. 가장 긴 동쪽의 묘도가 무덤의 주묘도이다. 무덤 안은 황장제주의 목곽구조이며, 묘주는 금루옥의를 입고 있다. 능원 안에는 대량의 외장갱이 있고, 여러 기의 건축물이 있으며, 비빈의 합장묘 가 있다. 수량은 몇기에서 수십기로 차등이 있다. 능원밖에는 대량의 배장묘(陪葬墓)가 있 다. 서한 선제이전의 제릉은 근처에 능읍을 설치하였다. 동한(東漢)은 박장(薄葬)을 부르짖 어, 서한시대의 능묘시설을 중시하였던 것과 비교된다. 제사의식을 더 중시하였으며, 동한시기 제릉의 규모가 서한 때 보다 훨씬 작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후동혈장(帝后同穴葬)으 로, 한겹의 능원으로 규모가 작거나 혹은 한 겹의 해자가 있거나 또는 원구형 봉분이다. 무 덤형식은 묘도가 하나인 갑자형묘(甲字形墓)로, 묘도는 통상적으로 묘실의 남측에 있다. 묘 실은 가로형 전실과 세로형 후실이 있거나 혹은 다실(多室)의 전석묘(磚石墓)이다. 묘주는 몸에 금루옥의를 걸치고 있다. 능원 안에는 석전(石殿)건축과 종거(鐘簴)건축이 있다. 외장 갱이 없는 것은, 서한시기의 외장체계를 무덤 안으로 포함시켰으며, 배장묘는 있다.
        9,000원
        6.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작품의 주인공이 아프리카 전통 종교에 대항하면서 내적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다. 위대한 드라마 작가인 유진 오닐은 『황제 존스』에서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주인공을 성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프리 카 전통 종교는 신비로운 힘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영적인 존재 인 살아있는 조상 혼령은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고 그것은 그 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극의 첫 장면에서 존스는 기독교 믿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크지 않다. 예를 들어, 그는 은 총알만 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신화를 만들고 있다. 비록 존 스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만든 은 총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원의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내적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를 향해서 기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5,700원
        7.
        2013.10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조선왕릉은 조선왕조(1392∼1910년) 500여년을 통하여 동일한 조형원리로 조성된 신의 정원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 생산, 사상, 의식이 내재 표현되는 토지의 집합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일정한 형식으로 공간을 계획하고 수목을 식재하여 세심하게 조영된 정원문화유산이다. 남양 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홍유릉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 독립국을 주장하던 고종의 의지로 만들어진 능으로 명나라 태조의 명효릉의 형식을 빌려 조선왕릉과 형태를 달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조선을 계승한 정통성을 보여주는 사상과 의궤 등은 대한제국 황제릉의 고유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 다. 식생경관으로 볼 때 홍유릉의 능침주변은 일반적인 왕릉 식생경관인 소나무림이 출현하고 있으나 제향공간의 향나 무와 전이공간의 연지, 스트로브잣나무, 독일가문비 등의 등장은 기존왕릉과는 확연히 다른 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황제릉의 식생구조가 가진 정통성과 근대성 을 파악하여 의의를 고찰하고 기존 조선왕릉과 황제릉인 홍유릉의 식생구조의 차이점 등을 파악하여 합리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연구대상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고종황 제와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순정효황 후의 유릉이 있는 홍유릉을 대상으로 하였다. 홍유릉은 사 적 제207호로 공간적 범위는 문화재 보호구역 1,211,273㎡ 중 담장으로 경계되어진 128,342㎡를 대상으로 하였다. 홍유릉의 식생구조 및 현황 파악을 위해 문화재 보호구역 내 담장이 둘러진 경내 주변으로 공간을 구분하여 현존식생 현황을 조사 분석하였다. 현존식생은 1/1,000 축척의 수치 지형도를 이용하여 교목층 수종의 식생상관(Vegetational physiognomy)을 기준으로 조사하였으며 식생이 분포하지 않은 지역은 토지이용유형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자생종 및 외래종 대경목의 현황파악을 위하여 수목의 식재위치와 수 고, 흉고직경을 측정하였으며 공간별로 독특한 경관을 형성 하는 경관우세수종에 대하여는 별도로 측정하고 위치를 파 악하였다. 역사경관림의 후계림 검토를 위하여 소나무 묘목 식재지의 위치와 정아유무를 조사하였으며, 식생구조의 현 상황 및 잠재식재 예측을 위하여 정량적인 방법인 상대우점 치를 이용하여 조사 분석하였으며, 수령 및 생장상태 조사 를 위하여 벌근목의 근원직경을 측정하였다. 홍유릉 위치는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20km 범위에 위 치하고 있어 조선왕릉 능원묘제를 따르고 있었다. 백두대간 에서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대성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두고 한북정맥과 연결되어 있는 천마지맥을 통해 천마산을 중조산(中祖山), 백봉산(묘적산)을 근조산(近祖山)으로 하 여, 홍릉은 서쪽에서 뻗은 능선 허리 해발 70m 부근 북서방 향으로, 유릉은 홍릉 능침에서 좌측으로 뻗어나간 능선 300m 전방의 좌측 60m 부근 정서쪽 방향에 능침이 위치하 고 있다. 풍수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홍릉, 유릉은 맥이 동쪽 인 묘(卯)에서 입수하여 매화낙지형(梅花落地)을 이루는 그 상부에 봉분이 을좌신향(乙坐辛向, 동에서 서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었다. 홍유릉 식재기록 및 연혁을 살펴보면 1970년에서 1980 년대에는 잣나무 식재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990년에 조 경식재 기록이 있었고, 2000년대에는 역사경관림을 위한 소나무 식재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1970년대 이전의 자료 는 사료를 통해 검토하였는데 1919년 조영 당시에는 우량 한 소나무림과 제향공간의 향나무 식재지가 나타나고 있으 며, 연륜 등의 검토를 통하여 스트로브잣나무 등 외래수종 도 1920년경에 식재되어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였다. 홍유릉의 식생구조를 분석하기 위하여 침전을 중심으로 봉분과 그 주변을 능침공간, 침전에서 홍살문을 지나 금천 교까지의 공간을 제향공간, 연지주변의 공간을 전이공간, 진입부분의 광장부분을 진입공간으로 구분하였다. 대부분 의 능침공간에는 소나무림이 40.9%로 우점하고 있으나 참 나무류와 낙엽활엽수, 잣나무 식재지 등으로 인해 역사경관 림을 훼손하고 있었으며, 제향공간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식 재지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향나무의 수세가 열악하였고, 소나무림은 낙엽활엽수와 조경수 등으로 인해 역사경관림 에 지장을 받고 있었다. 전이공간에는 연지를 중심으로 오 리나무림이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스트로브잣나무와 독 일가문비 등이 우점하고 있었다. 식재종 분포를 보면 스트 로브잣나무, 향나무 등의 대경목이 70주였으며, 자생종 대 경목인 전나무 등의 흉고직경이 최대 67cm, 외래종 대경목 스트로브잣나무 등의 흉고직경이 최대 83cm로 분석되었으 며, 식재된 소나무 묘목은 능침공간에서 정아발아율 44.2%, 전이공간에서 82.8%로 소나무림의 후계림 양성을 위한 묘 목식재 관리방안 마련이 시급하였다. 식물군집구조는 모두 54개의 조사구를 조사하였고 홍유 릉 전체를 4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대표조사구를 선정하 였으며 그에 따른 상대우점치를 분석하였다. 능침공간의 경 우 소나무 우점공간이지만 낙엽활엽수와 참나무류의 세력 이 확대되어 가고 있었고 잣나무 식재지와 느티나무순림 등이 분포하고 있어 관리방안 마련이 필요하였다. 제향공간 은 소나무 우점공간과 낙엽활엽수 우점공간이 함께 나타나 며 역사경관 관리가 요구되었으며, 전이공간은 오리나무림 이 우점한 가운데 스트로브잣나무, 독일가문비, 백송, 주엽 나무 등 흔하지 않은 식재 수목 등이 출현하였다. 진입공간 은 소나무 우점공간이나 조경수에 대한 이식 등이 검토 되 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선왕릉과 황제릉의 식생구조를 파악하여 비교 분석한 결과 둘 다 능침지역에는 소나무림, 저지대에는 오리나무림 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는 황제릉의 근본적인 입지가 조선 왕릉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황제릉의 특징으로는 전이공 간에 나타나는 스트로브잣나무, 독일가문비 등의 대경목 외 래수종과 재실 등의 건물마다 나타나는 대경목 향나무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는 조선왕릉에는 나타나지 않는 식생경 관으로 1920년대 시대적인 특징으로 인해 나타나는 황제릉 의 특성으로 검토 되었으며 전이공간의 외래수종에 대하여 는 우리나라 최초의 임업시험장으로 의의가 있었다 과거 사료를 통한 황제릉의 식생구조를 파악하고 비교분 석을 통해 관리방안을 도출하였다. 조선왕릉의 대부분 식생 관리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역사경관림 복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외래수종은 적극적인 제거를 통해 역사경관림 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황제릉은 그 시대가 가진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외래 도입수종이 왕릉에 식재되어 지금은 홍유릉의 전이공간에 중점적인 경관을 제공하고 있어 비록 외래수종이긴 하나 원형식생 경관으로 파악하여 유지관리 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관리의 기본방향은 원식생에서 이 질화된 수목제거 및 이식을 통해 원식생 경관으로 복원관리 하고 홍유릉의 특성에 맞는 소나무림과 외래수종이 공간별 로 잘 어우러지는 경관관리방안을 제시하였다. 홍유릉 내 적극적인 관리지역은 22,373㎡(17.5%)를 차 지하며 그 중 능침공간의 적극적 관리지역은 10,794㎡ (8.4%)로 인근 산림부분과 연계된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 또한 능침공간 전체 20.0%의 공간이 적극적인 관리지역으 로 나타나고 있어 소나무림의 유지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복원이 필요하였다. 제향공간의 적극적 관리지역은 10,073 ㎡(7.9%)로 유릉 뒤편 산림 연접지에 집중되어 있었고 유릉 소나무림의 복원이 시급하였다. 선택적 관리지역은 11,622 ㎡(9.1%)를 차지하며 그 중 능침공간의 선택적 관리지역은 3,836㎡(3.0%)로 제향공간에서 연결되는 산림부분에 위치 하고 있으며 소나무림으로 단계별 복원 필요성을 제안하였 다.
        9.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무굴 아크바르 황제의 명으로 제롬 하비에르 선교사가 예수 의 생애에 관해 저술했던 『거룩함의 거울』의 텍스트와 이미지의 제작 의 도에 관한 문화 종교적 분석이다. 먼저 아크바르 황제는 예수의 생애에 대 해 다양한 종교에 관한 이성적 관심의 일환으로 예수의 기적과 신성에 관 해 왕권 강화적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다. 한편 제롬은 황제를 개종시킬 목 적으로 무굴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면서 예수의 생애와 접촉점이 될 만한 내용을 선택하여 저술했다. 또한 무굴 궁정의 화가들은 제롬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슬람과 힌두교 종교예술 양식과 서양 기독교의 양식을 혼합하여 예수의 생 애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거룩함의 거울』에 나타난 이러한 문화적 종교 적 대화를 통해 직접적인 개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이고 강압 적이지 않았고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이 러한 무굴제국의 문화 적응적 예수회 선교의 예는 오늘날 여전히 어려움에 봉착한 인도의 모슬렘, 힌두교인의 선교방법에 대화를 통한 선교의 긍정적 선례를 제공한다.
        10.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콘스탄티누스 이후 그리스도인 황제들이 변화시키려고 했던 로마제국의 공적 영역을 율리아누스가 어떻게 개혁하려고 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율리아누스 집권 이전의 로마제국의 국가와 종교의 상황을 서술하고(II), 그 다음에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율리아누스의 종교 정책의 내용을 분석하고(III), 마지막으로는 그의 종교정책의 성격을 제시하고자 한다(IV). 결론적으로 본고는 율리아누스의 종교 정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정책 기조는 동일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책의 전환은 페르시아 정벌과 다신교의 부흥이 기대보다 저조하다는 인식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후기에는 다신교의 재조직과 함께 교육법, 그리스도인의 공직·군대 배제, 교회 재산 몰수, 교회 지도자 추방에서 나타나듯 보다 강력한 조치가 취해졌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신교를 부흥시키고 신들에 대한 제의의 회복을 통해 국가의 번영과 안정을 도모하고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교를 실제적으로 약화 내지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은 전기나 후기나 동일했다. 율리아누스는 “거룩한 행위”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지니고 있었고, 스스로 제사를 드리며 신들의 뜻을 분별할 정도로 강한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정책은 이러한 “거룩한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 듯하다. 다신교의 재조직은 기존의 다신교를 강화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다만 가난한 자의 자애에 대한 요청은 분명히 그리스도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페르시아 정벌을 준비하면서는 신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더욱 강력한 정책을 추구했고, 그의 신심과 열정으로 볼 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강도가 조정될 수 있겠지만, 근본 목표는 동일했다. 율리아누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그는 후기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와 다신교의 공존과 대립과 갈등의 역사에서 큰 분수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등장과 성장은 후기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와 다신교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면적인지, 그리스-로마 세계의 그리스도교화가 얼마나 길고 어려운 과정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1.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의 논점은 동방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를 통해 과연 동방 로마제국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처럼 caesaro-papism 으로 정의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슈멤만의 항변이 옳은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방 로마제국은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동방 로마제국은 “비잔틴 제국 황제-교황주의” ‘Byzantine caesaro-papism’로 국가가 교회를 조정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다. 동방정교회 학자인 알렉산더 슈멤만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어떤 조약 혹은 법률상의 제한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나 교회 신앙에 의해 말해진 진리(truth)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의 신앙은 먼저 황제가 그리고 나서 그를 통해 제국 그 자체가 교회 신앙의 진리로서 그리고 황제나 제국의 우위에 있는 진리로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일단 슈멤만의 주장을 전제하면서, 테오도시우스 2세가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 사이에 언제나 연결되어 있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황제는 과연 진정으로 교회 분쟁의 중재자인가 혹은 결정자인가를 검토하려고 한다. 필자는 네스토리오스 논쟁(428-431), 즉,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재임했던 428-431년, 특별히 테오토코스 논쟁에 휘말리면서 그의 실각까지의 역사적인 재구성을 통해 이러한 쟁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입장을 논의하지만, 방법상 교리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테오도시우스 2세가 전체 역사적 정황 속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로마제국을 최초로 기독교제국으로 명명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손자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 이후 장남인 아르카디우스(395-408)는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하였고 차남인 호노리우스(395-)는 이태리 지역을 통치하였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408-450) 아르카디우스의 장남으로 40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르카디우스는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그는 408년부터 450년까지 42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전 생애동안 통치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네스토리오스의 논쟁에 관여하게 된 때는 그의 아버지 알카디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토모스를 실각시킨 지 불과 사반세기가 겨우 지난 때였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즉 동방 로마 제국이 지향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크게 변화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소스토모스와 네스토리오스의 실각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기에, 두 사건을 함께 고찰하는 것은 동방 로마제국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얻을 것이다.
        12.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빈고전주의 음악의 자율성, 보편성에 살진 토양을 마련해준 합스부르크 제국 황 제와 귀족의 음악문화 및 음악후원에 대해 탐구하며,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합스부르크 제 국의 절대적이고 강력한 유력가들은 정치적, 종교적 목적을 음악후원의 한 기틀로 삼았으나, 동시에 수 세대에 걸쳐 음악을 중요한 정신적 덕목으로 삼으며 전문가적 관심과 방식으로써 다양한 장르의 음악예술을 보호했다. 아울러 ‘옛’ 양식과 ‘현대적’ 양식, ‘옛’ 언어와 ‘현대적’ 언어, 세속적 양식과 종교적 양식이 공존하는 음악, 혼합양식의 음악을 보호, 후원함으로써 보편주의적 음악 상(像)을 구현했다. 이러한 기조 가운데 18세기 중반 황제에서 귀족으로 음 악 문화 및 후원의 주체가 옮겨지고, 이때 귀족들은 후원자를 넘어 동료로서 동시대와 미래 를 주도할 음악에 발전의 동력을 마련해주었다. 과거 유산들의 시대 초월적 의미마저 발견해 내 독창적 작곡가들에게 알린 이들의 공적은 음악예술의 자율성과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논문투고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