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은 다양한 사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실학사상은 실경산수화의 전개에 중요한 영 향을 미쳤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실학사상이 반영된 한·중·일 삼국의 실경산수화를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중·일 삼국에서 전개된 실학사상은 다소간의 시기적 편차 를 두고 각국의 정치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게 전개 되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현실과 사실이라는 현상에 각별히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경향은 미술 방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실경산수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한·중·일 삼국에서는 17~18세기에 자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는 기유(紀遊) 문화의 유행을 배경으로 특정 지역의 경관을 그리는 실경산수 화가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17세기 중반 안휘성 출신 염상(鹽商)의 풍부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황산도(黃山圖)가 제작 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에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완성 된 이후 19세기에는 김홍도 화풍의 실경산수화로 발전하였다. 일본에서도 18세기에 이케노 다이가(池大雅)에 의해 후지산이 진경도로 다루어졌고, 19세기에는 우키요에 풍경화로 재탄생되 어 대중적 상품 이미지로 전환되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 한·중·일 삼국에서 실경산수화는 실학사상 중 실사구시(實事 求是)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이러한 실학사상은 한·중·일 삼 국의 실경산수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척도를 제공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저명한 화가로, 고숙화 파(姑孰畵派)의 창시자인 소운종(蕭雲從: 1596-1673)의 산수화 도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소운종 산수화의 도식 특징 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산수화 도식의 형성배경과 변화양상 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심도있게 논의했다. 이를 통해 소운종 이 산수화 도식에 끼친 영향과 그 시사점을 새롭게 밝혀냈다. 청(淸)나라가 명(明)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환경 속에서 사회정세는 매우 혼란했지만 당시 화단(畫壇)은 도리어 더욱 활발해 수준 높은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고숙화파의 창시자인 소운종은 당시 산수화 도식의 새로운 풍조를 선도한 화가이다. “경쾌함을 기뻐할 수 있다.(輕快可喜)” 라는 화풍과 독특한 산수화 기하도식 언어는 중국 산수회화사 (山水繪畫史)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소 운종 산수화 도식은 주변 국가에 전파되어 남종문인화(南宗文 人畫)의 교류 전파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로 인해 소운종의 산수화 도식에 대한 연구는 학술적 의의 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장대천(張大千, Chang Dai-Chien,1899—1983)은 중국 근현대 회화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해외 에서도 명망이 높은 세계적인 예술가이다. 사실적인 서양화 기법을 적극 수용했던 중국의 동시대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전통회화를 중시하며 그 미학 사상과 심미관, 기법 등을 깊이 이해하고 체득하였다. 동시에 전통을 근간으로 하여 자신의 예술적인 기질과 심미적인 사고를 융합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해 내었다. 장대천의 ‘발묵발채(潑墨潑彩) 산수화’는 전통회화의 기법을 뛰어넘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산수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작품 속에는 수묵과 채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사의적(寫意的)으로 표현한 추상적인 면(面)과, 공필(工筆)의 섬세한 선묘(線描)로 묘사한 구상(具象)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그는 전통회화 중의 용필법(用筆法)과 용묵법(用墨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고, 거기에 청록산수(靑 綠山水)와 돈황벽화(敦煌壁畫)의 진채(眞彩)기법이 더하여져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얻을 수 있었다. 동시에 중·서 융합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예술을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대천의 발묵발채 산수화는 당대(當代) 화 단이 추구하던 중국화의 혁신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었으며, 채색 산수화 발전에 심미적 표준과 방향성을 제시하여 후대의 화가들이 자신의 예술을 계발하고 선양할 수 있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반천수(潘天壽, Pan Tianshou, 1897-1971)는 20세기 중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이자 중국화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해 온 교육가로서 오창석(吳昌碩1844-1927), 제백석(齊白石 1863-1957), 황빈홍(黃賓虹1864-1955)과 함께 중국 근현대화단의 4대가(四大家) 중 한 사람이다. 반천수가 활동했던 당시의 중국화단은 서양화의 유입으로 전통 문인화가 점차 쇠퇴해가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반천수는 굳건히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 속에서 중국화의 창신(創新) 을 이루고자 노력하였고 개성이 넘치고 독창적인 회화 형식을 창출함으로써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표출해 내었다. 특히 그의 ‘화조 산수화’는 실경사생(實景寫生)을 통하여 터득한 창작 회화형식으로서 화조화와 산수화의 융합이자 전통 중국화의 회화범주를 과감히 깨뜨린 창신(創新)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자연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현대적 예술 정신이 깃들어 있다. 반천수의 ‘화조 산수화’ 작품의 특징은 첫째, 서예의 필법을 응용한 강기골의 운필로 필선이 강하고 기세가 넘치며 독창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다. 둘째, 실경사생을 통한 일각식(一角式) 근경산수(近景山水)를 구현하여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 내었다. 셋째, 화면을 집중시키는 반공석(潘公石)을 과감하게 배치하여 화면을 경영하면서 조험(造险)과 파험(破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넷째, 화면의 네 면을 모두 에워싸는 사면 포위식(四面包圍式) 구도는 그림 속에 또 다른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그려진 경물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허실 상생(虛實相生)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는 유가사지론 성문지에 나타난 산수수습법의 수습과정과 그것의 자연치유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산수수습법에는 크게 보통의 산수수습법과 특수한 산 수수습법으로 나누어진다. 보통 산수수습법에는 일일산수법, 이일산수법, 순산수법과 역 산수법의 네 가지가 있다. 수습과정은 일일산수법의 수습이 완성될 때 이일산수법을 익 힌다. 그때 순산수법과 역산수법을 병행하여 익힌다. 그 다음에 온전히 승진산수수습법 을 닦아 익혔을 때 과산수지법을 익히고 이것마저 온전하게 닦아 익혀지면 그 때 심일 경성과 신심경안을 얻게 된다. 심일경성이란 삼매의 동의어이다. 삼매란 인식주관, 인식 대상과 인식 자체의 셋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산수수습법을 단계적으로 닦아 익히면 마음이 깊이 안정되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과 능력이 향상되는 자연치유 적인 효과가 있게 된다.
Natural and expandable graphites were chemically treated in acidic aqueous solutions such as acetic acid or mixtures of acetic acid and nitric acid. Structures and thermal conductivities of the as-treated graphites were characterized in detail. Both graphites were significantly oxidized in the mixed acidic solution of H2SO4 and HNO3, which condition was generally used for the oxidation of carbon nanotubes. This considerable oxidation of graphites caused a depression of their thermal conductivity.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btained by XRD and XPS, show that the graphites treated in the relatively weak acidic conditions (acetic acid or mixture of acetic acid and nitric acid) were quite similar to the untreated graphites. However, the thermal conductivities of both acidic-treated graphites were remarkably increased.
어떤 인물이 남긴 문학작품과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 그것이 담아내지 않은 혹은 담아내지 못한 행간 사이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살아간 시대의 배경 속에 놓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인물이 선택한 사회적 참여나 은일적 처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시대의 상황이 과연 어떠했는지가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그런 시대 속에서 그 인물이 선택한 처세는 정당한 것이었는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박내오가 살아간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의 은일적 삶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았으며, 그 연장선에서 지리산 유람에 나타난 그의 의식과 지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보고자 했다. 지리산 유람에 나타난 박내오의 의식과 지향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내적 정체성이 남명학파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이러한 박내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18세기 강우지역의 인물 가운데 남명학파로 거론되지 않은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글은 논자가 앞으로 10여 년간 중점적으로 탐구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지 리산 유산기 연구의 試論이다. 논자가 진행해야 할 연구는 지리산권역을 중심 으로 한 조선조 지식인의 문학이다. 특히 조선조 지식인의 지리산 관련 遊山文 學과 영남・호남 지식인의 樓亭文學 작품을 주요 논의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山 水美學과 그 속에 융화된 자연관을 집중 탐구하고, 이의 전반적 이해를 통해 조 선조 지식인의 자연에 대한 이해,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모색하던 태도 를 밝혀내게 될 것이다. 본고는 그 첫 시도로써, 조선조 지식인이 지리산을 유 람하고 남긴 유산 작품을 대상으로 삼아 그 동안 발굴된 자료를 개괄하고, 작품 속에 내재된 그들의 산수인식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조선초기 李陸의 「智異山記」에서 시작된 지리산 유산기는 20세기까지 약 90 여 편이 발굴되었다. 이를 시대별로 분류하면 15세기 6편, 16세기 5편, 17세기 전반과 후반에 각 6편과 7편, 18세기 20편, 19세기 27편, 20세기는 21편인데, 후대로 갈수록 작품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 수의 차이는 조선시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그에 따른 지식인들의 浮沈에 그 원인 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리산 유산기에 보이는 산수인식은 4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먼저 유산기 담당층이 조선조 유학자인 만큼 다양한 儒家的 志趣를 先賢尊崇으로 압축하여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지리산 산수자연 가운데 佛家的・巫俗的 유적지를 통해 異端을 배척하는 지식인의 의식을 살펴보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仙境을 찾는 그들의 遊仙 의식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은 지리산의 절경 속에서 道家的 志趣를 갈망하면서도 유학자로서의 자세 를 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람을 통해 뛰어난 文學的 志趣를 표출해 내었는 데, 이는 우리 국토에 대한 예찬으로 일관되었음을 확인하였다.
The pine trees have been existing in Korean Peninsula since about 7,000 years ago. It is the tree which has been always present in Korean's life and it is the tree which has a potential to become a true identity of Korea's Nature. In This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pine(Pinus densiflora Sieb. et Zucc.) forest in the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were investigated according to the 9-categorization. The result of the study are as follows: 1452 pine tree forests samples are collected from 179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The 9 classifications are following; Mountain top, saddle os mountain, foot of hill, Ridge, Valley, Slope, Rock, Soil, Waterside. In the case of the topography, 64.3% of the pine forests are drawn in the ridges. The forests are mainly located on the tops and the saddles of mountains. The current ecological findings also show that the ridges are the most suitable sites for pine trees. the pine forests drawn in the valley are frequently in the foot of mountains and the rock. The slopes(135) and the valleys(267) are mainly located foot of hill.
遺逸은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문학의 작자층 가운데에서 학덕이나 재능을 지 녀 朝官이 될 자질을 갖추고도 벼슬하지 않고 재야에 은거하는 未入仕者를 말 한다. 士禍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근거지로 은거한 이들은 현실 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는 학문연구와 심성수양을 통해 온전한 인격을 추구하 였으며, 향촌을 교화하고 도학을 전파하는 등 경색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士 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중과 신망이 조 정에서 벼슬하는 관료보다 더 높아져, 조정에서는 이들을 예우하여 徵召하였다. 곧 遺逸은 출사하지 않으면서도 지방에서 백성의 신망이 두텁던 당대 碩儒들로 서, 우리 역사상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의 터전은 산수자연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은거지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고, 은거지 주변의 명산과 절경을 유람하는 것으로 이를 표출하였다. 유람 에서 만나는 자연경물에 자신의 심정을 붙여 술회하였는데, 그들에게 있어 산 수자연은 ‘본래 그러한 것, 본래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으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특히 16세기 조선조는 성리학 연구의 심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이 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성리학자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산수자연은 당대의 不正한 현실을 인식하는 자신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특히 은거지 중심의 유람에서 표출되는 산수자연은 현실에서의 좌절을 수양으로 승화시키는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성리학자였던 만큼 자연경물을 통해 현실의 不 正 및 민생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고, 역사유적지를 접하면 그 시대를 회고 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무엇보다 물러나 있지만 자아를 각성하고 심성수양에 진력했던 이들에게 산수자연은 士意識을 고취하는 매개로 작용하였다. 곧 당대 관료세계에 피동적으로 편입되기를 거부 하고 물러났던 조선조 士人의 의식을 산수자연으로 표출하였던 것이다.
1945년 8 15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산수 교육의 변천은 사회적,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개정된 산수과 교육 과정에서 그 특징을 알 수 있으며, 산수과 교육 과정은 해방 직후의 교수 요목기(1945-1954), 제1차 교육 과정기(1955-1962), 제2차 교육 과정기(1963-1972), 제3차 교육 과정기(1973-1981), 제4차 교육 과정기(1982-1988), 제5차 교육 과정기(1989- )로 구분할 수 있다. 본 고에서는 각각의 시기에서의 산수과 교육 과정의 변천의 특징을 목표와 내용으로 고찰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