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해안지역에서 청동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청 동기시대의 비파형동검문화는 지금까지 27개 유적에서 45점이 확인되었다. 남해안지역 비파형동검은 요서·요동지역과 크기와 형태가 다른데,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를 보아도 대부분 남한3지구산(충 청·전라·경북 북서부)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 든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문화의 청동기들은 남한2지구산(강원도 동남부) 원료를 사용한 것이 많아서 역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 는 세형동검문화계 청동기와 함께 중국과 일본열도계 청동기도 확인되는데, 청동기는 계통을 막론하 고 원료가 대부분 중국북부산과 중국남부산으로 추정되어서 낙랑군을 포함한 중국에서 원료와 완성된 제품을 함께 들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 인류학과 전쟁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남해안지역에서 정치체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비파형동검문화의 무기조합은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동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석검·비파형 동검)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부족사회 단계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수반도 일대에서는 비파형동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세형 동검문화가 등장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근접전용 장병충 격무기(동모·동과) 조합이 확인되기 시작하므로 이 시기부터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된 군장 사회로 접어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제 무기가 사용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 촉·철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철단검)+근접전용 장병충격무기(동모·동과·철모·철 과) 조합이 정착되고 있어서 『삼국지』에 보이는 국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경식동검문화는 비파형동검문화와 세형동검문화를 아우르는 말로 공병식동검문화와 같은 다른 문화권에 대비시켜 한국 청동기문화권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단경식동검문화의 청동기는 동검, 동부, 동경 등이 대표 기종인데, 특히 요서계통 동검 및 다뉴동경 등이 조합되는 유물 구성은 고조선문화권 정치체의 권력 기반과도 관련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고조선문화권의 청동기는 십이대영자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상호작용의 네트워크가 북방계통 에서 중원계통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조합 관계 역시 일정하게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서계통의 비파형동검문화는‘단순무기(동검)+의기(동경)+공구(동부)’중심 체계이며, 차마구가 중시된다. 세 형동검문화는‘복합무기(동검ㆍ동모ㆍ동과)+의기(동경)+공구(동부)’중심 체계이며, 차마구는 의기 화되거나 감소한다. 이는 정치체의 권력 기반이 변화하면서도 전사와 제장의 상징성을 겸비하는 수장 권의 기본 이념 등은 일정하게 유지되었음을 반영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단경식동검문화는 청동기의 전개와 수장묘의 변천 양상으로 보아 기원전 9~8세기경, 기원전 6~5 세기경, 기원전 4세기경 등의 시점에서 획기적인 문화변동이 확인된다. 특히 문헌사료와의 비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고조선이 규모있는 정치체로 인지되는 기원전 4세기경 및 이와 연동되는 기원전 6~5세기경의 정가와자유형 관련 문화변동이다. 최근‘고조선시대론’이 여러 관점에서 제기되었는데, 비파형동검문화의 후기(정가와자유형) 또는 세형동검문화 개시 단계부터 설정하는 것이 고조선사의 보 편성과 특수성은 물론 개설서의 편의성을 모두 고려하는 합리적인 방안으로 생각된다.
고창지역은 지석묘 중심 분포권으로 한반도에서 지석묘 최대 밀집지역 가운데 하나로 일찍부터 지석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고창지역 청동기시대는 금강유역에서 형성된 송국리문화가 만경강-동진강을 거쳐 고창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지석묘문화와 송국리문화가 결합되어 청동기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이다. 고창지역을 지형적 특징에 따라 갈곡천유역권, 주진천유역권, 서부 해안지역권, 대산천‧와탄천유역권 등 크게 4개의 권역으로 구분 하여 각 유역권에서 조사된 고고학 자료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고고학 자료를 살펴보면 고창지역은 조‧전기유적 부재와 중기유적의 급증으로 고창지역만의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송국리문화의 확산으로 취락에 있어 송국리 식주거지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분묘는 재지의 지석묘가 중심을 이루면서 일부 송국리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석관묘, 석개토광묘, 옹관묘 등이 축조되기 시작한다. 주거에 있어 송국리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분묘에 있어서는 전통성과 재지성이 강한 지석묘를 축조하면서 하부구조인 매장시설은 석관을 채용하고 있다. 이는 지석묘 축조 집단에 의해 주거와 분묘의 요소 일부를 송국리 문화를 채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후기가 되면 새로운 점토대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기존 지석묘는 물론 송국리문화도 급격하게 쇠퇴한다. 점토대토기문화는 취락의 부재와 분묘 또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류문화로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부터 고창지역은 지석묘를 통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며 이후 지석묘사회의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거쳐 마한사회로 변화된다.
한국의 청동무기 연구는 尹武炳의 청동단검 형식분류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동북아지역의 청동무기 중 한국에서 출토되는 동검의 특징적인 마연 현상을 찾아낸 것이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세밀한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었는 바 아직까지 이보다 先見을 가진 형식분류가 나오지 못한 것은 그의 완성도 높은 논문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그의 청동무기 형식분류는 현재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尹武炳의 청동무기 형식분류는 공반품의 검토에서 오류가 발생하는데 필자는 선생의 연구를 기반으로 재분류를 진행하였다. 즉 동검 Ⅰ식과 Ⅱ식 마연의 세부적인 분류를 진행하고, 공반품을 통해 각각의 공존기간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요령식-한국식동과의 계보 문제(단절), 중세형 청동무 기의 제작지(국산화)에 대한 견해를 간략히 제시하였다. 이는 1960년부터 2020년까지 청동무기 연구사와 출토 사례를 기반에 둔 분류·분석의 결과로 생각되는 바이다. 이상을 토대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생각해본다면, 형식분류의 확대보다 선학의 연구사를 받아들이고, 치밀한 관찰을 통해 한국고고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점을 특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아가 고고학 연구는 다양한 방향 모색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각화된 쟁점 및 학제 간 협동 연구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The Bronze Hu in Shang and Zhou dynasties is one of the most vital bronze wares, from the early Shang Dynasty, through the Xia, Shang, and Zhou dynasties, until the Qin and Han dynasties. The name forms of bronze Hu are rich and varied. There are not only a variety of special names but also dozens of modifiers. The bronze Hu’s names reflect the key information about the function of the vessel. Therefore, we have exhaustively sorted out the names included in The Inscriptions and Image Integration of Bronze Vessels of Shang and Zhou Dynasties,The Continuation of The Inscriptions and Images Integration of Bronze Vessels of Shang and Zhou Dynasties and the Third Edition of Shang and Zhou Bronze Inscriptions and Image Integration by Mr. Wu Zhenfeng. On such a basis, this paper tries to make a systematic study into the function of bronze Hu in Shang and Zhou dynasties by starting from the name of bronze Hu and combining with the inscriptions of bronze vessels, handed down documents, the shape and structure of vessels and the unearthed combination of boats. In the final analysis, it is concluded that such names of bronze Hu as ‘Li Hu’, ‘Yu Hu, and ‘Zao Hu’ reflect the function of wine, The name modifier “盥” reflects thefunction of bronze Hu for the water dispenser, and “飤 Hu” and “Hu” from the side reflects the function of the Hu used for treats.
동북아지역의 구분마연 기법은 대체로 동검, 동모, 동과에서 관찰되고 한국식, 중국식, 일본식 청동무기에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중국 산서·산동지역, 한국 남부지역, 러시아 연해주 동남부지역, 일본 북부구주·산음지역에 분포한다. 일련의 자료를 통해 볼 때, 한국식 청동무기는 중국 동 북지역뿐만 아니라 중원지역(산서·산동)과의 관계에 따라 출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동북아지역의 청동기문화는 각각의 지역권을 형성하여 상호 유기적이면서 독립적인 위치에 성립된 것으로 이해되는 바이다. 구분마연은 청동무기의 능각과 인부에 횡방향의 규칙적인 마연이 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식동검의 구분마연은 0.2~0.5cm 정도의 폭으로 관찰되어 이 좁은 폭을 주목하였다. 즉 봉처럼 얇은 형태, 일정 크기의 단면을 형성한 동추를 제작도구로 제시하였다. 이와 함께 청동무기와 청동공구는 분리되어 각각의 주형에서 제작되는데 이러한 점은 구리와 주석의 성분비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무기와 다른 경도의 동추를 사용하여 세밀한 스크래치인 구분마연을 한국식동검에 넣은 것이다. 따라서 한국식동검의 전반적인 마연(주조 지느러미 제거, 능각과 인부 및 절대 성형)은 지석을 사용하고, 세밀한 구분마연은 동추를 활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동추 a형은 다뉴세문경 등의 세밀한 문양 및 제도에, 동추 b형은 다뉴조문경ㆍ유문청동의기ㆍ유문청동무기 등의 굵은 선문과 주연부에, 동추 c형은 다뉴경의 각진뉴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동추 a·b·c형과 동착 a·b형은 전반적인 제도·성형 및 주형 깎기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즉 각각의 제작 및 사용은 형태나 문양에 맞춰 상호 유기적이면서 연동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토대로 한국식동검의 실험고고학을 진행하고, 그 정보를 제시한다.
본고는 요서(遼西)지역에서 교장과 무덤을 중심으로 출토되는 상주(商周)시기 중원계 청동용기의 기원과 유입경로, 주체인 작기자(作器者) 혹은 소유자 등에 대한 학계의 오랜 숙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연산산맥 남북지역에서 중원계 청동기가 출토되는 유적을 시기별·지역별로 구분한 후 주변지역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요서지역 출토 청동용기의 주체를 추정하고, 이의 북상에 따른 연산산맥을 중심으로 한 중국 북방지역 청동문화의 변화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대상은 시기적으로 서주 연(燕)이 분봉되기 이전 즉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로 한정하고, 연산 산맥 남북지역에서 상계(商系) 청동용기가 출토된 유적을 중심으로 하였다. 본고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째, 요서지역은 모두 본고의 전기에 해당하며, 노로아호산 이서지역에서 출토된 상계 청동용기 는 전형적인 중원계에 속하는 기물과 중원 이외의 지역 혹은 비주원계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기물이 공존하며, 주개구문화 후기 혹은 이가애문화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노로아호산 이동지역 출토 청동용기는 전형적인 중원계에 속한다. 그러나 상문화의 직접적인 유입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교류나 정착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둘 째, 연산 이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상계 청동기 중 본고의 전기에 해당하는 평곡 유가하유적과 일부 천안 후천의유적의 무덤은 상인의 직접적으로 유입에 의한 것으로, 후기에 해당하는 후천의 동기 묘와 장가원 무덤은 상대 선주(先周)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셋 째, 청동원료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서 연산산맥 일대의 풍부한 광산자원은 상주시기 핵심지역의 주요 경락 대상이었을 것이다. 본고의 전기에는 희작구유형이, 후기에는 연산 이남의 후천의유적과 장가원유적이 대표적이며, 서주 건립을 전후하여 토착문화는 소멸·흡수되거나 연산산맥을 넘어 요령지역으로 이동해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국고고학에서 선사시대는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역사시대는 왕조의 변천을 중심으로 시대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선사시대에서 원사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여서 한 가지 기준만으로 시기구분 하기는 어렵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공간적 범위는 무문토기문화의 분포권이면서 비파형동검문화와 세형동검문화가 분포하는 한반도와 요동·요서지역까지이다. 필자는 이를 한국고대문화권으로 설정하였다. 한국 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시기구분은 한국고대문화권을 포괄할 수 있는 안이어야 한다. 한국고대문화권에서 청동기-초기철기시대는 기원전 20세기경부터 기원전후경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초기청동기문화, 비파형동검문화, 세형동검문화, 초기철기문화가 차례로 등장한다. 또한 고조선을 비롯한 초기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물질문화의 변동을 기준으로 시기구분하면, 청동기시대 전기는 초기청동기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20~10세기경까지이며, 청동기시대 중기는 비파형동 검문화가 등장·발전하는 기원전 9~8세기부터 기원전 6~5세기(요서), 또는 기원전 4세기(요동과 한반도)까지이다. 청동기시대 후기는 전국시대의 중원계 물질문화가 대거 들어오면서 요서의 십이대영 자문화가 크게 변화되고(기원전 5~4세기), 이어서 요동과 한반도에 세형동검문화가 등장하는 때(기원전 3세기 초)까지로 설정할 수 있다. 기원전 3~2세기에는 전국시대 중원계의 초기철기문화(세죽리 -연화보유형)가 들어온다. 고조선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사서에 그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4세기경부터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는 고조선을 시대 명칭으로 병기 해도 좋을 것이다. 초기철기문화가 들어오는 기원전 3~2세기에는 고조선은 물론 부여와 삼한 등의 초기국가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기이므로 초기국가들을 대표하는 고조선을 시대명칭으로 사용하여도 좋을 것이다.
북한 서포항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형성되어, 동북한 선사시대 문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유적의 절대연대가 측정되지 못해서 북한학계에서도 중국과 비교연구 하면서 연대를 소급시킬 뿐이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문화층 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문화층도 연해주문화와의 관련성이 토기 및 토우 등에서 뚜렷하게 관찰된다. 이미 서포항 청동기시대는 연해주 청동기문화와 관련지어져 왔으나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1유형이 새롭게 고찰되고, 리도프카문화의 토기가 관찰됨에 따라서 서포항유적의 청동기시대층의 편년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 결과 서포항 청동기시대 4계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서포항 청동기 1단계는 유적의 5기가 해당된다. 7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시니가이 문화 서부 1유형의 파수가 한쪽만 달린 토기가 출토되는 등 토기와 석기가 모두 시니가이 문화 서부 1유형과 비슷하다. 서포항 청동기 2단계는 5호, 6기 퇴적층 일부 토기가 포함되며,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1유형과 동부 2유형이 공존하는 특징이 확인된다. 서포항 청동기 3단계는 2호 주거지와 이와 유사한 유물이 확인되는 7기 퇴적층 일부를 포함한다. 시니가이 문화의 서부 2유형과 동부 2유형이 함께 확인되는 단계이다. 서포항 청동기 4단계는 7기에서 확인되는데, 4호와 10호 주거지 및 7기 퇴적층 유물과 6기 퇴적층유물도 일부 포함되며, 주로 리도프카 문화와 관련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니가이 문화 및 리도프카 문화와 절대연대를 비교하면 1단계는 3300~3200년 전, 2단계는 3200~2900년 전, 3단계는 2900~2500년 전, 4단계는 2500~2300년 전으로 볼 수 있다.
서포항 5기보다 이른 시기의 동북한 청동기시대 유적은 범의구석 1호인데, 이곳에서 출토된 대부마연 토기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돌대각목 혹은 이중구연의 적색마연토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따라서 동북한에서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부터 단절 없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변화되며, 특히 서포항 유적의 5~7기에서는 연해주의 청동기시대문화인 시니가이문화, 리도프카문화 특징이 반영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최근 관련 유적이 다수 조사된 춘천분지 일원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유적군의 획기와 편년 체계를 구축하였다. 춘천분지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I단계는 타원형 석상위석식노지 방형 주거지·이중구연거치문토기· 사장경호·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단계는 위석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각종 돌대 문토기·이중구연토기·구순각목토기·복합문토기·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I단계는 (퇴화형 위석식노지+)수혈식노지 세장방형 중심 주거지·천발형토기·발형토기·호형토기·공열토기·적 색마연소호·무경식석촉·이단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이단병식석검·타원형어망추·제형석도·주형석 도, IV단계는 수혈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기존 토기 외 다양한 적색마연토기(발형토기, 호, 대부소 호)·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타원형어망추·이(일)단병식석검·주상편인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V단계는 전형적인 천전리식 주거지·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일체형석촉· 원통형어망추·일단병식석검·유경식석검·유구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V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방 형 중심 주거지·순수 무문토기 중심 토기·일체형석촉·일단병식석검·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VI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말각방형 주거지·점토대토기·두형토기·흑색마연토기·조합식우각형파수· 우각형파수·봉상파수·삼각만입석촉·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 의 시간적 범위는 기원전 12~11세기(I단계), 기원전 11~10세기(II단계), 기원전 9~8세기(III단계), 기원전 8~7세기(IV단계), 기원전 6~5세기(V단계), 기원전 4~3세기(VI단계), 기원전 3세기 전반~1세기 중엽(VII단 계)이다.
필자는 요시무라 레이 吉村怜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화화생 도상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꽃 문양은 몇 변화 단계를 거쳐 불·보살·天人(飛天)으로 化生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관련 연구를 계속하면서 아래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시무라가 주장한 연화화생 도상은 넓게는 화생 가운데 하나이며 더욱 넓게는 기의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의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 만 범세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불교미술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교 전래 이전부터 도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기(화생 연화화 생 포함)에 등장하는(표현하는) 여러 문양은 단순한 장식 문양으로 그치 지 않는다. 이들은 기(화생 연화화생 포함)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상호 同格을 이루고 互換交互하며 連繫된다.> 필자는 위 견해를 1993년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해석에 적용시켰다. 본고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기의 표현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 리고, 더불어 백제금동대향로 제작 특히 연화화생 등 기의 표현도 당시(6 ∼7세기) 이웃나라(특히 중국)의 영향이 아닌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을 따 른 것임을 알릴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논문에서 例示한 토기와 청동기에서 보듯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기 화생 연화화생의 표현은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전 개, 전승되었다. 또한 앞애서 주장한 것처럼 기 화생 연화화생 표현 에 등장하는 여러 문양들은 상호 동격을 이루고 호환 交互하며 連繫된 상태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토기에는 주로 點文(점선문) 직선문 (연속)삼각문으로 표현하였고 기타 연화문 화염문 파상문 당초문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산 태양 연꽃 또는 그 관련 기 화생을 표현하였는데 대 개 간단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연속)삼각문(그 안 직선문 포 함)은 삼국시대에 이르면 분명 山文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연화문을 나 타낸 웅기 송평동 출토 토기(도2), 연속 삼각문과 유사한 모습의 연화문 을 나타낸 통영 연대도 출토 토기(도7) 등을 통하여 볼 때 신석기시대에 도 蓮華化生山즉 ‘연꽃으로부터 山이 화생되는 표현’도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 山文이나 연화화 생산 표현을 계승, 발전시킨 도상 가운데 하나가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청동기시대 기 화생 표현은 주토 청동기에 ‘짧고 조밀한 연속 직선 문’ 점문(점선문) 원문圓文(연속)삼각문 파형문巴形文당초문 등으로 나타냈다. 기본 바탕은 신석기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다. 이들은 불교미술 등 후대에 깊 은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가야시대 포함) 토기에 보이는 기 화생 표현은 그 문양 등 에서 보듯 신석기시대 토기(기원전 5000년경∼기원전 2000년경)와 청동 기시대(기원전 2400년경∼기원전 600년경) 청동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이다. 기 화생 표현은 더욱 다양화되었고 확산되었으며 특히 연화화생 표현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연속 산문을 위시하여 원문 半圓文당초 문 연화문 인동문 등으로 나타냈으며 역시 철저하게 상호 동격을 이 루고 호환 교호하며 연계된 구성을 보여 준다. 이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강역(오늘날 滿洲와 한반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는 시기에 전개된 기 화생 연화 화생 표현은 독자적 영역을 이루며 전승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본고는 청동 치(觶)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연구한 후에 중국 고대 청동기의 저록과 연구과정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송에서 청 말기까지 중국 청동기는 기본적으로 금석연구의 범주에 속하였다. 대부분은 저록을 위주로 하며, 극소수는 글자 의 고석과 연대구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민국에서 20세 기 70년대까지는 고기물학(古器物學)이 흥행함과 동시에 고고 학도 중국에 진입하였다. 청동기의 저록은 촬영과 탁본 기술을 활용하여 자료들을 수록하기 시작하였다. 고고학에서 제공하는 배경지식을 저록의 내용에 새롭게 추가하였고, 고고학 방법도 청동기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적인 학술에 영향을 받음으로 인해 이 시기에 여전히 전통적인 연구 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일례로 명문고석, 청동 기 연대고증, 역사문제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20세기 70연대 말에 진입하면서 중국 고고학은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중국 내 학자들은 청동기의 연구에 대해 정식으로 전통적인 금석학과 고기 물학의 영역을 벗어나 고고학 중심으로 전환하여 청동기 연구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저록 방면에서도 고고 학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가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그 활 용된 기물의 그림과 사진 등도 청동기 저록 중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외에 수집 성격의 저록들이 대량으로 출현 하게 되었고, 일부 집대성적 저작들도 출현하였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고대 청동기의 저록과 연구는 금석학에서 고고학 으로 전환된 뒤에 새로운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계시(寶雞市)는 섬서성(陝西省)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관중(關中) 지역에서 남쪽으로 사천(四川)으로 통하고 서쪽으로 감숙(甘肅)에 이 르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예전에는 진창(陳倉)이라고 일컬었다. 여기 에 속하는 기산현(岐山縣)과 부풍현(扶風縣)은 주(周)나라의 발원지이 다. 청(清)나라 후기 이래로 이 지역에서는 다량의 양주(兩周)시기 청 동기(青銅器)가 끊임없이 출토되어 명실상부한 청동기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 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청동기군(青銅器群) 을 선별하고 고고유적에 의거하여 교장(窖藏)과 묘장(墓葬)으로 크게 분류하였다. 교장의 청동기는 장백1호교장(莊白一號窖藏), 동가촌1호 교장(董家村一號窖藏), 양가촌교장(楊家村窖藏), 오군서촌교장(五郡西 村窖藏), 운당1호교장(雲塘一號窖藏), 태공묘진공교장(太公廟秦公窖藏) 등이 포함되었다. 묘장은 최근에 발견된 상송향홍위촌묘장(上宋鄉紅 衛村墓葬), 석고진석주두촌묘장(石鼓鎮石嘴頭村墓葬), 금대구장청촌묘 장(金台區長青村墓葬) 등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교장에 보관된 청동기군은 동일한 가족 혹은 서로 다른 가 족의 여러 세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기물을 포함한다. 그 연대는 대부 분 서주(西周)초기에서 후기에 해당된다. 태공묘 진공교장(太公廟秦 公窖藏)과 같이 극히 일부의 것은 춘추(春秋)초기 진 덕공(秦德公)이 사용하던 기물도 보인다. 선별된 묘장은 기본적으로 모두 서주 초기 에 속한다. 그 족속(族屬) 상황은 비교적 복잡한데, 주로 주인(周人) 집단 중의 강성(姜姓)과 어성( 族)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다르지만 분포가 질서정연한 고고학적 현상을 통해, 우리는 서주의 건국 전후에 관중지역의 족군(族群)에 대한 구 체적인 배치와 이러한 족군(族群)이 서주 왕조에 대한 방어 및 통치 체계 중의 기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주왕조가 동천(東遷)한 뒤 에 관중(關中)지역 진(秦)나라의 활동 상황도 엿볼 수 있었다. 본고를 통해 독자들은 양주(兩周)시기 관중지역의 문화면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경기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여, 유적의 시기별 편년을검토하고, 이에 맞는 주거지의 배치를 통하여 취락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중부지방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구분은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 안과, 전기(전·중·후), 중기(전·중·후), 후기로 나눈안으로 크게 대별될 수 있다. 두 구분 모두 토기문양과 유물의 조합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있어서 큰 차이점은 없지만, 후기를 점토대토기단계로 인정하는 것은 공통점이며, 돌대문토기 단계를 조기로 인정할 것인의 여부, 구순각목공렬토기의 중기여부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는 토기문양의 계기적 변천과정이 잘 나타나는 후자의 안을 기준으로 시기적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시기별 주거지 배치관계도 살펴보았다. 전기취락의 구조는 정상부의 능선을 중심으로 구축하였고, 계획배치 형태보다는 주거지간의 공간확보차원에서 조성되었고, 중기에는 구릉사면에 집중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후기에 들어서서는 외곽으로 배치되고 있는 특징이 확인된다. 이는 중기중반이후에 인구가 줄어드는 양상과도 부합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편, 중기에 분묘가 확인되기 시작하는데, 집단묘보다는 소규모로 조성되는 현상이 간취되는데, 이는 분묘공간의 확대로 정의될 수 있으며, 농경과도 연관된다. 대형 및 중형취락의 기준에 대해 살펴본 결과, 김포 양촌, 소사동,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유적을 대형취락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소사동유적은 전기~중기에 걸쳐 시기별로 고른 분포를 보이면서,마을이 운영된 점이 돋보이며, 양촌리,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4개유적은 중기에 집중된 유적으로,유적 상호간의 거리가 근접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한단위의 취락으로 판단하였다. 경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변천은(물론 지역적 변천은 인정하며), 중기전반에 가장 취락의 규모가 융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전기에 있어서 평택 소사동유적과 같은 규모가 큰 유적도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중기전반에 규모가 최정점을 이루다가 중반이후로 규모가 쇠퇴하기 시작하는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는 제주도에서 차나무 뿌리를 가해하는 홈줄풍뎅이(Bifurcanomala aulax)와 청동풍뎅이(Anomala albopilosa)의 환경친화적 방제 가능성을 알아보 기 위하여 토양 서식 해충의 생물적 방제인자로서 활용성이 큰 곤충병원성 선충 3종(Steinernema arenarium, S. longicaudum Nonsan, Heterorhaditis sp. Gyeongsan)과 식물체 정유 18종(anise oil, camphor, clove oil, cinnamon, clove oil, citronella, fennel, geranium, lavender, lemongrass, linseed, neem, peppermint, pine, rosemary, tea-tree, thyme, turpentine)을 처리하여 효과를 조사하였다. 홈줄풍뎅이 3령충에 곤충병원성 선충 3종을 각각 80ijs/0.5㎖로 접종 하였고, 접종 5일 후 Heterorhaditis sp. Gyeongsan 의 경우 100%의 높은 치사율을 보였 으며, Steinernema arenarium과 S. longicaudum Nonsan 에서는 각각 35%, 55% 의 치사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홈줄풍뎅이 3령충에 침입한 곤충병원성 선충 의 침입수와 증식수 또한 Heterorhaditis sp. Gyeongsan 처리에서 가장 많았다. 18종의 식물체 정유 물질을 홈줄풍뎅이 3령충에 1000ppm 농도로 1㎖씩 각 각 처리 하였고, 처리 1주일 후 linseed와 tea-tree에서 88.9%로 높은 치사율을 보였으며 anise oil에서도 72.2% 치사율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청동풍뎅이 3령충에 대한 곤충병원성 선충과 식물체 정유물질의효 과는 미약하였다.
청동합금인 우리 전통 식기 놋그릇 유기 소재의 항미생물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주요한 식중독 세균인 Salmonella spp., E. coli O157, E. sakazakii, B. cereus의 배양액을 유기, 구리, 주석, 스테인레스 스틸 쿠폰에 노출 건조 후 생균정도를 분석하였다. 이들 금속표면에서의 살균력 측정결과 Gram(-) 세균인 S. Typhimurium, E. coli와 E. sakazakii는 구리가 가장 높았고 유기, 주석표면, 스테인레스 스틸 금속표면 순으로 항균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Gram(+)인 B.cereus의 살균효과는 어느 금속표면에서도 살균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S. Typhimurium, E. coli와 E. sakazakii의 구리이온(Cu+2) 최소생육저해 농도는 25 ppm이었지만 B. cereus의 경우는 50 ppm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구리와는 다르게 강한 경도를 갖고 있는 유기 소재를 식품제조 환경에 적용시킬 경우 Salmonella spp.를 포함한 주요한 Gram(-) 세균의 교차오염을 효과적으로 저감화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