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타난 여성들의 노래를 통하 여,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착취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음을 진단하는데 있 다. 또한 이를 종교학, 여성학, 생태학적 비평을 융합하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전에 연구되었던 수많은 엘리엇의 선행 연구들은 다양하고 풍성하였다. 하지만 그의 종교성과 음악적 요소는 부분적으 로 연구되었고, 특히 여성들의 성적타락과 부도덕에 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던 반면, 그들의 노래에 재현된 고통과 갈망에 대한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생태비평적 관점에서도 여성들의 영성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엘리엇이 노래와 내러티브에 효율적으로 반향시킨 여성들의 종 교적 영성을 에코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는 황무지를 새롭게 재 해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효율적으로 그려낸 신의 죽음/영성의 부재에 대한 각성, 황폐화된 자연환경, 여성의 억압적 사회구조를 인식하여,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이를 위하여 치유의 영적 에코페미니즘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urvey the perspective of the coming days of those two poets, Yeats and Eliot, comparing "The Second Coming" and The Waste Land. Both Yeats's "Second Coming" and Eliot's The Waste Land present a renewal process, but each one focuses on different goals and subjects; Eliot on a particular person's transformation, whereas Yeats predicts a switch of the entire world as a result of an escalation of chaos. And while Yeats attempts to present a definite picture of what he believes will happen at the time of this renovation, as a human being, lack of foresight leaves him to conclude with nothing more than an unanswerable question. Eliot, on the other hand, uses ambiguity to support and develop his theme: death is the way to rebirth. But for Eliot this rebirth, which must be necessarily obscure and extremely perplexing to the newly-born. In contrast, Yeats maintains a pessimistic tone created by his futility on the bleak situation. Though the two poets see the present similarly, their religious differences cause them to view the future differently, consequently Eliot's The Waste Land has a much more hopeful theme than Yeats's "The Second Coming."
본 연구는 제임스 톰슨의 영향에 대한 엘리엇 자신의 진술을 출발점 으로 삼아, 엘리엇의 황무지와 톰슨의 무서운 밤의 도시를 상세하 게 비교하고, 런던에 대한 두 시인의 관심이 그들의 작품에 어떻게 나 타나며, 도시 풍경이 각각의 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본다. 메마 른 도시의 배경에서 나온 두 작품 사이의 주제적 유사성, 즉 화자의 탐 색 모티프, 지옥 같은 도시의 현실, 비관적인 분위기 등은 쉽게 발견될 수 있다. 본고는 두 작품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작가가 속한 시대적 차이와 무관하게, 황무지를 모더니스트 시로, 무서운 밤의 도시를 빅토리아조의 시로 만드는 요인의 유형을 논의한다. 황무지 의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음향의 현대성이 강조될 것이다. 특히 다 성어와 불협화음의 어구, 노래와 소음, 이질적인 다양한 목소리를 포함 하는 파편화된 소리의 차원이 충격적일 만큼 혁신적이고 독특하기 때문 이다.
『황무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고 고통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리엇의『황무지』에서도 사막과 같은 도시에서 소외 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동 시대인들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종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호세아』에서의 선지자와 『황무지』에서의 엘리엇은 매우 닮아있다. 『황무지』에서의 이 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복종하여 처벌을 받지만, 이 처벌이 이들 에 대한 영원한 저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현존에 대해 무지한 『황무지』에서의 도시인들은 돈을 우상 숭배하고 자 신들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도시를 배회하지만, 각자가 엘리 엇의 선지자적인 경고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한 이들을 위한 희망과 구원의 공간은 남아있다.
이 글은 T. S. 엘리엇의 『황무지』 제5부인 「천둥이 말한 바」를 엘리 엇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주도 동기(leitmotif) 중 하나인 사랑과 전쟁 의 관계에 범박하게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려는 시도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천둥이 말한 바」에 대한 개관, 개인적·역사적 의미와 그에 따른 형식적 특성, 시 단락별 설명과 새로운 한글 번역, 그리고 단락별로 연 관성 있는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글의 두 번째 부분은 “깨 진” 엘리엇과 신경쇠약, 전후 유럽의 “발칸화,” 그리고 「천둥이 말한 바」 라는 파편화된 텍스트 자체 사이의 연결고리를 절단된(dis-membered) 오 시리스의 몸을 매개로 제시한다. 참고로, 이글은 1922년 크라이테리언 (The Criterion)에 발표한 판본에서 2015년에 편집된 판본에 이르는 과정 에서 변화되어온 행과 연 구분에 관한 내용도 제공한다.
황무지에 등장하는 타로카드에 대한 연구와, 신비주의에 기반해 황무 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195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꾸준히 행해져 왔다. 타 로카드는 한국에 21세기에 들어서 신비주의적 성격보다는 오락적 성격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에 발맞춰 본 연구는 기존 국내외에서 수행된 황무지 속 타로카드 연구를 토대로 타로점술이 직접 등장하는 43-59행을 보다 면밀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우리말로도 새롭 게 번역해 보고자 했다. 기존 해석들을 존중하되, 작품 전체 해석의 일관성 을 해치거나 타로카드의 지식과 배치되는 분석에는 문제를 제기하여 미흡 한 부분은 보강하고 잘못된 점은 수정하였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집필할 당시 영국에 퍼져 있던 타로카드 문화와 지식을 토대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자 하였고, 이렇게 해석된 텍스트 내용은 현대 한국어 독자들을 위해 오늘 날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어 타로카드 용어로 다시 옮기고자 하였다. 이 러한 노력은 기존 황무지 해석에 더 다양한 관점을 보태어 학계를 더 열 리고 풍성한 공간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대중 독자들이 멀고 어렵게만 생 각하는 문학 ‘고전’을 보다 친숙하게 느끼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대상으 로 전환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엘리엇과 울프는 인간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바로 올랜 도의 올랜도와 황무지의 타이리시어스가 주인공이다. 올랜도는 남성 이었다가 여성의 몸으로 변신하지만 러시아 공주 사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남성의 마음을 지난 여성으로 양성적 존재가 된다. 울프는 친 구였던 비타 셱빌과 그녀의 가문을 모델로 하여 342년을 살아가는 올랜 도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으로 그렸다. 비타가 여성이어서 가문을 잇 지 못하고 상실하자 울프가 올랜도에서 올랜도의 아들이 대를 잇는 결말로 그녀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고정된 성 역활에 대하여 해방된 올랜도는 자유로운 여성 작가로 살아가게 된다. 반면 황무지의 타이리시어스는 여성의 젖가슴을 달고 세상을 관찰하 는 예언자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여성들 의 고통스런 절규를 바라보기만 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여성 성을 대표하는 화자를 통해 성폭행으로 얼룩진 세상의 공포를 보이고 남성들에 대한 철저한 제비/응징/복수를 외친다. 하지만 체스/전쟁판처럼 세상은 폭력과 복수가 반복되는 아수라장/황무지일 뿐이었다. 유사한 상 황에서 울프는 올랜도를 통해 양성의 이해, 결혼, 진정한 사랑으로 이분 화된 세상을 바로 잡고자 한다. 이처럼 젠더의 개념으로 분석해보면, 마 치 문제지와 답지처럼 올랜도와 황무지는 상호텍스성을 지닌 판타 지의 정수로 해석될 수 있다.
T. S. 엘리엇의 대표작인 『황무지』는 그 주제의 방대함과 구성의 복 합성으로 인해 작품을 이루고 있는 부분을 독립적으로 살펴보아도 문학적으로 분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들은 『황무지』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해 왔는데, 본 논문은 『황무지』의 두 번째 파트인, 체스게임 (“A Game of Chess”)에 대해서 보다 집중적인 분석을 도모해 보고자 한다. 『황무지』는 전체가 하나의 작품임에도 개별적인 파트에 대한 분석 역시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2부 체스게임 은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상징성, 그리고 후반부 등장인물들의 파편적인 대화와 몽타주 기법 같은 장면의 병치는 2부를 독립적으로 떼어 살펴볼 수 있을 만큼 매우 상징성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엘리엇은 긴즈부르그의 관점에서 본 것처럼, 가장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문 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몰개성의 시학이, 바로 그 몰개성성으로 인해 다른 어떤 시학과도 차별되는 역설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르조아의 실내라는 매우 독특한 소재를 마치 회화처럼 제시하는 2부 도입 부분과, 당시 영화의 기법으로 사용되었던 몽타쥬 기법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특성이 가장 덜 드러나는 방식으로 자신을 가장 확고하고 분명하게 드러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엘리엇이 사용한 성경적인 유들을 중심으로 작품 내에 함의되어 있는 종교적인 의미를 분석해본 것이다. 『황무지』는 주지하다시피 엘리엇의 대표적인 초기 시로서 많은 이미지와 인유들이 가득한 난해한 시이다. 엘리엇이 1927년에 성공회로 개종을 하면서 그 후에 집필된 시들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시들을 많이 집필하였으나, 개종 이전의 시 작품에 함의된 종교적인 의미들은 난해함과 수많은 시적 장치들 그리고 신화적 인유들로 인해 비교적 간과하기 쉽다. 본 글은 엘리엇이 사용한 성경적 인유들에 근거하여 엘리엇이 종교적 신념을 자신의 시와 작품과 인생 전반의 지적 여정에서 얻고자 하였던 영적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한 하나의 신념 체계로 바라보았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황무지』는 단순히 개종 이전의 신화적인 인유들과 난해한 이미지만 있는 작품이 아닌 엘리엇이 암시적으로 나타내려 했던 종교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시임을 다시 금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스티븐 스펜더의 『비엔나가 각각 어떻게 1인칭 대명사를 사용했는지를 탐구함으로써, 유럽의 분열과 정치사회적 탄압 이라는 주제가 각 시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1인 칭 대명사 사용에 대한 연구는 시인이 “얼마나”, 또 “어떻게” 자신의 시 에 직접 개입하여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를 알기 위한 중 요한 작업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황무지속의 1인칭 대명사 “I”의 정체를 찾기 위한 과정이 유럽의 분열이라는 시적 주제를 어떤 방식으 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그 다음, 『비엔나에서의 “we”와 “they”의 병치가 어떻게 사회주의자들을 향한 정치적 탄압 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향한 사회적 탄압을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할 것이 다.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 졌다. 특히 T. S.엘리엇의 대표적인 작품인 『황무지』와 『네 사중주』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이 매우 통찰력 있게 나타나 있다. 운명에 대 한 인식은 단순히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비극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으로 추상화된 삶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의 작품을 운명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기존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연장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중요 작품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명리학적 운명의 인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무지』와 『네 사중주』 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운명과 관련된 이미지, 상징,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엇이 고찰하고 있는 인간 운명에 대한 인식은 많은 측면에서 명리학적인 운명의 인식과 비교될 수 있다.
T. S. 엘리엇의 대표작인 황무지에는 다양한 신화적 요소가 혼재한다. 제임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를 비롯, 제시 웨스턴의 『제식에서 로맨스로』에 등장하는 고대의 희생제의 의식과 중세의 신화까지 매우 다양한 신화적 요소들이 공존한다. 이러한 대표적인 신화들과는 달리, 비록 엘리엇이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황무지』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신화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토성신화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토성신화는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관계가 심리적으로 재현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비롯,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서사는 물론, 프로이트의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에 이르기까지 토성신화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성은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황무지』에서 토성신화가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황무지』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던 티레지아스의 존재나, 『햄릿』과 내용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토마스 키드(Thomas Kyd)의 『스페인 비극』 등과 같은 요소들은 명백히 그 저변에 토성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작품이 담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정서인 멜랑콜리를 표현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제임스 톰슨은 빅토리아 시대 시인으로서, 『두려운 밤』의 도시를 발표했는데, 『황무지』와 『두려운 밤』의 도시는 그 어조와 세계관 그리고 멜랑콜리적인 요소의 연관성으로 볼 때, 엘리엇은 톰슨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황무지』를 집필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엘리엇이 강의했던 내용 중에 제임스 톰슨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엘리엇이 처음 톰슨을 읽었던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톰슨의 작품이 엘리엇의 문학세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을 것 이다. 멜랑콜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도상학적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전형적인 상실과 암울함 또는 희망과 구원에 대한 좌절 등이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황무지』는 『두려운 밤의 도시』가 차용하고 있는 상당부분의 멜랑콜리적인 요소들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중요한 인유로서 이용되고 있는 단테를 비롯하여, 다양한 중세회화의 도상들은 엘리엇의 『황무지』가 톰슨이 묘사하려고 했던 멜랑콜리적인 세계, 혹은 도시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자기실현을 성취하기 위해 종교적인 방 법 혹은 패러다임(기독교, 힌두교, 불교)을 고려하고 있고, 『칵테일 파티』에서는 현실적인 방법이나 패러다임(심리학 혹은 정신분석학)의 가능성 과 한계를 따져보고 있다. 각각의 작품은 이러한 엘리엇의 고려가 완전 히 이성적인 것에서 신비적인 영역으로 이동하는 지점으로 접근하고 있 지만, 엘리엇이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말했듯이 자신은 그 사이의 경 계를 넘어서지는 않고 있다. 독자들이 반드시 숙고하고 해답을 구해야 하는 “압도적인 질문”으로 상상의 독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엘리엇 의 그러한 자제력일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타난 죽음을 주로 전기적 접근과 부도덕한 성애가 죽음이라는 테이레시아스의 실체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히아신스 정원, 마게이트 백사장, 선술집에서 릴의 대화, 위험 성당, 밀레 해전 등의 장면과, 바다, 템즈강, 런던교, 시티와 런던,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등에서 성폭행, 죽음 또는 멸망이 병치‧직조되어 죽음의 함의와 상징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제 1차 세계대전 중 에게 해에 익사한 친구들인 루퍼트 브루크와 다다넬즈 해협에서 익사한 장 베르드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원을 하는 꾸마에의 무녀, 슈타른베르크 호수에 미쳐서 익사한 루트비히 2세, 익사한 페니키아 선원의 타로 카드, 즉 플레바스, 밀레 해전에서 익사한 스텟슨, 미쳐서 연못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 궁전이 파괴되어 흙속에 파묻힌 첨탑에 유폐되어 몰락한 아뀌뗀느 왕자, 다시 미치고 자살하는 이에로니모 등과 같이 미쳐서 물에 빠져 죽고 싶은 죽음에의 염원을 암시적‧상징적으로 표백함으로써 죽지 않고 재생의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Boredom has been recognized as an important cultural symptom in the formation of modernism. Charles Baudelaire, who had affected to a remarkable extent upon modernism, was representatively a poet of “spleen” or in other words, “boredom.” It is widely conjectured that T. S. Eliot, who was once under the influence of Baudelaire, was interested in the problem of boredom as a socio-cultural phenomenon. There have been several terms that designate the similar meaning to boredom such as, melancholy, acedia, ennui and so on. As they are various, the individual meanings and usages are slightly different. However, it is widely acknowledged that the concept of boredom first emerged before and after the World Wars to be merged into modernity. Therefore, the problem of boredom shows the slice of human mentality in an industrialized and urbanized society that may expands into the existential problems. In this respect, The Waste Land shows the barren and sterile landscape of human mind after experiencing the World War, in which people had witnessed absurdity, meaninglessness of life, the sense of emptiness, and the overwhelming boredom. Eliot suggests lots of images of boredom in the poem, these images sometimes appear directively and other times by way of providing barren images of natural landscapes that metaphorize the human existential conditions. Most of such images are very much poetic; and also at the same time, they are the life conditions that modernist writers tried to express as the core essence of life in modernism. The Waste Land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texts that show this relationship between boredom and modernism.
he main aim of this essay is to extract similarities between James Thomson’s The City of Dreadful Night of and The Waste Land. The names of the two poets have often been mentioned in connection, but the relation between their poetry has not drawn a serious attention. This essay is meant to track possible exchanges between the poets by examining mainly The City of Dreadful Night and The Waste Land. My focus has been on how Thomson influenced the urban scenes in Eliot’s poems and the images of the “Unreal City,” which are centered on London.Thomson’s poetry shows much influence from Dante. I have tried to present a meaningful number of verbal details showing that Eliot’s reading of Thomson was not confined to The City of Dreadful Night. Thomson seems to have also been a major influence on Eliot’s general thoughts and techniques. Eliot seems to make a good case of how a later-coming and greater-talented poet can make a more universally-appealing work out of the stuffs a locally-confined predecessor presented to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