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경기북도를 설치하는 정책을 국회의 일반 입법과정에 따라 분석함으로써 경기북도 설치 정책의 성공 조건과 방안을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행정구역 분할을 내용으로 하는 경기 북 도 설치 입법이 국회에서 계류되는 현상을 관련 정책결정자들의 태도와 입장으로 설명한다. 구역을 소규모로 나누는 것은 분권과 소집단화로 외부 비용과 결정 비용을 줄여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 공공 선택론의 입장이 다. 이들은 주민의 생활권과 행정권을 일치시켜 행정서비스의 효율적인 수 급에 적합한 규모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구역의 통합과 광역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로 인한 혼잡비용 등 규모의 불경제 문제로 적정한 구역 규모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국회의 입법 심사 과정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입 법과정에서 산출된 보고서 등 문헌 분석을 통해 누가 정책에 찬성하고 반 대하는지를 살펴보고, 각각의 주장 및 근거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정책 결 정에 미치는 요인을 도출하였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책결정자의 결 정은 유권자의 선호와 요구에 영향을 받게 되므로, 구역 분할 정책의 성공 을 위하여 정책결정자와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지역 주민 및 언론과 시민단체 등 정책 행위자들 간의 전략적이고 맞춤형 소통과 정 책 공감 영역을 확대하는 기반 구축이 중요할 것으로 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2022년 3월 9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사전한 TV 토론 중 제1차 TV토론에서 후보자들의 토론 이슈 전략, 언어/비언어적 요소 에 대한 분석의 세 가지 차원을 분석하였다. 특히 본고에서는 Benoit and Wells(1996)가 제시한 설득적 공격과 방어의 스피치 전략 분석틀을 활용하여 분석유목을 제시하였다. 분석 결과, 이재명 후보는 설득적 공격 전략으로 의무나 책무 관련성 4.9%, 불일치성, 약속 위반성에 관한 지적 4.9%를 나타낸 반면, 설득적 방어 전략으로 수치나 해외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는 예시제시 22.0%, 정책설명 19.5%을 주요하게 사용하였다. 윤 석열 후보는 설득적 공격 전략으로 원색적 비난(인격, 사생활) 7.9%, 불 일치성, 약속 위반성 지적 5.3% 사용하였으나, 설득적 방어 전략으로 불 필요한 발성음, 더듬거림을 18.4%, 단순부정 13.2%, 정책설명 10.5%, 모호하거나 우회적 답변 7.9% 사용하였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어, 각 이슈마다 대립하였다. 특히 주도권토론에서 양 후보는 대장동 화천대유 이슈로 격론을 벌이며, 다수의 비언어적 제 스처를 취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 태동에 있어서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선교신학 안에 나타난 교회와 선교에 대한 선교신학 논쟁에 관한 연구이다. 두 진영이 갖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과 차이들은 교회와 선교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들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선교에서의 교회 위치와 삶의 자리를 각각 달리 해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교에 대한 교회 역할에 있어 에큐메니칼 입장은 사회 참여와 변혁적 삶에 보다 치중하는 신학을 강조했다면, 복음주의 입장은 복음 전도와 영혼구원, 교회 개척에 보다 치중하는 신학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진영의 인식론적 변화들은 화해를 모색하는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삶의 자리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롭게 인식했다. 무엇보다 두 진영의 지속적인 협력 모색은 통전적 선교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상호간의 선교신학 보완을 위해 화해를 모색하게 되었다.
울펀든 보고서는 법과 도덕의 규범적 관계에 관하여 유명한 하트-데 블린 논쟁의 계기가 되었다. 그 보고서는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사적인 도덕문제에 형법이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에 기초하여서, 성인들이 합의하여 사적으로 행하는 동성애행위를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성매매에 관하여는 성판매여성들을 길거리에서 내쫓기 위하여 관련 형사법의 구성요건을 강화하고 형량을 높이는 반(反)자유주의적인 권고를 하였다. 이 연구는 울펀든 원칙 자체에 그런 반(反)자유주의적인 사용 가능성이 있는지를 다음의 문제들을 검토해서 답하고자 한다. [문제1] 울펀든 원칙은 문제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문제2] 울펀든 원칙은 형법이 관여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역을 확인 하는데 유용한 지침인가? [문제3] 울펀든 원칙이 자유주의와 무관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가? 데블린과 하트의 논변에서 이 문제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보고나서 이 문제들을 검토한 결과 다음의 결론에 이르렀다. (ⅰ) 울펀든 원칙은 문제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무관하게 사용되기 어렵다. (ⅱ) 울펀든 원칙은 형법이 관여할 수 없는 행위영역을 확인하는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없다. (ⅲ) 울펀든 원칙은 자유주의와 무관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음도 논증하였다. (ⅳ) 데블린과 하트의 논쟁에서는 [문제3]이 소홀히 다루어졌다. (ⅴ) (ⅰ)~(ⅲ)의 결론은 밀의 『자유론(On Liberty)』이나 도덕이론 에서 해악원칙만을 떼어낸 ‘단순한 해악원칙(the Simple Harm Princip le)’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According to Johan Huizinga (1949), as a Homo Ludens, man developed play (game) element in our culture during evolution. Roger Caillois (1961) categorized play into four groups: Agon (competition), Alea (probability), Mimicry(roleplaying), and Ilinx (altered perception). Current video/computer games are comprised of one or more of them combined. As these sociologists of game assert, game is one of the most basic and fundamental elements of our culture. However, some gamers become highly immersed in playing games, even to the degree of addiction. In 2013, National Assembly of Korea proposed a bill that would help alcoholics, drug addicts, gambling addicts and video game addicts. This caused huge social debates among experts and lay people. While some experts say that gaming addiction is not a truly existing phenomenon, some people say that we need law to regulate gaming in order to help prevent the addicts. These issues have become a problem of technological governance. This article analyzes 80 researches or so that may help us to learn about the problems and answers of the internet addiction, gaming addiction, and internet game (online game) addiction, or computer games for the youth in general. In order to maintain a well performed technological governance, first we need to know the characteristics of the issue. The author hopes that this article may be a ground study to start the scholastic discussion about the gaming governance in Korea.
Although many theoretical and empirical studies consider violent games, general causality between violent games and aggression or violence is ambiguity. To overcome such limitations, we try to identify the focal points of violent games.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critical debate about violent games from research result in terms of heading in opposite directions. Furthermore, we analyzed the discourse of the violent game based on catharsis theory and cognitive neoassociation theory. Catharsis theory predicts that 'venting' aggression through exposure to violence will reduce the risk of later aggressive behavior. On the contrary, cognitive neoassociation theory posits that aversive events produce negative affect such as aggression. Several recent studies found little evidence for a relationship between violent games and aggression or violence. Given that aggression is not negative, it is reasonable to study the potential benefits of violent games. Therefore, we suggested several ways to application the violent games based on prior literature.
스마트 폰(Smart phone)의 등장을 비롯하여 인터넷전화(VoIP), 인터넷 TV(IPTV),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OTT 등 인터넷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한 신규 응용서비스들의 등장은 인터넷 통신망에서 의 폭발적인 데이터 트래픽 증가를 가져왔다. 위 와 같은 이른바 관리형 서비스(QOS, quality of service)의 등장은 인터넷망 사업자의 망 증설비용 증가를 초래했고, 인터넷시장의 가입자 포화는 인터넷망 사업자의 수익정체로 이어져, 당초 선순 환적인 상호보완관계에 있던 인터넷망 사업자와 컨텐츠, 서비스, 어플리케이션 사업자 간의 관계는 점차 갈등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터넷망 사업자는 트래픽 관리를 시도하거나 망증 설비용 분담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컨텐츠 사업자 등은 인터넷상의 모든 전송행위는 네트워크 상에서 동일한 속도로 전달되어야 하고, 이를 부당하게 차단하거나 차별해서는 아니된다는 이른바망중립성(Net Neutrality)의 원칙을 주장하게 되었다. 차별금지의 원칙, 차단금지의 원칙, 투명성의 원 칙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망중립성의 원칙은 우 리나라에서는 이른바 하나TV 사건, NHN 사건, 삼성TV 사건, 카카오톡 mVoIP 차단사건 등을 통해 조명되었고, 미국의 경우 일찍이 2003년경 Tim Wu 교수가 개념을 언급한 이래 Madison River 사건, Brand X 사건, 2010년 Comcast 사건을 통 해 논의가 본격화 되었다. 특히 2014년 1월 미연 방항소법원은 Verizon 사건에서 연방통신위원회 (FCC)가 인터넷망 서비스를 통신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분류한 만큼 여기에 통신법상의 Common Carrier로서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고, 이로써 망중립성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에서 인터넷망 사업 자를 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하면서, 설비 등의 제 공⋅공동이용⋅상호접속 등에 있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또는 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 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인 터넷망을 정보 서비스로 분류한 미국과 달리 망중 립성 규제의 일반적 법률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렇다면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어떤 경우에도 차별 및 차단이 금지된다거나, 혹은 차별이 허용되 어 언제나 규제가 불가능하다는 절대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어느 경우에 합리적 차별 내지 차단에 해당하는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초점이 맞추어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방통위와 미래부는 망중립성 및 합리적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마련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한편, 인터넷망은 통신 사업자(Network Provider), 컨텐츠 사업자(Contents Provider), 플 랫폼 사업자(Platform Provider), 제조 사업자 (Device Provider) 등 각 영업 주체들의 핵심적 수익기반이 되고 있고, 방송⋅통신의 융합과 사업 간 영업장벽의 붕괴는 각 사업자 간의 이해충돌을 심화시키고 있는바, 망중립성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망중립성 논의는 입법⋅사법⋅행정의 각 국면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데, 이때 각 분쟁의 일면 혹은 행위주체의 단편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시각에서 각 행위주체간의 이 해조정과 상호간의 형평을 고려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India had been opened to Protestant missionary activity by a decree of the British Parliament in 1813. In 1832/1833, non-British missionary agencies were allowed to enter and launch their mission work in British India. The Protestant (mostly British) missionaries were very eager to preach the gospel message and disseminate gospel tracts on the market place. Inevitably, missionaries had clashed with local Muslims. There arose a fear that the beginning of Christian preaching and proselytizing activity in Agra was a threat to the center of Islam on the uneducated Muslims of the city and the surrounding region. Protestant missionary activity was a new phenomenon to the Muslims of north India. Encounters between Indian Muslims and Protestant missionaries in the years following British expansion into the old Mughal heartlands of north India brought about a mode of interaction and conflict between the two parties. This study examines the obstacles in reaching out to the Muslims with a special emphasis on the debate held in Agra, India on April 10-11, 1854. I will attempt to analyze the significance of this Muslim-Christian debate in India and its effects on future Muslim apologetical works. One of the missionaries, Karl Pfander, who was already experienced in Georgia, was circulating Persian and Urdu gospel tracts which criticize Islam and their prophet Muhammad. Kairânawî, together with some of the local Muslims, thought that it was the high time to challenge the aggressive mission activity. The Agra debates marked a turning point in Christian-Muslim apologetics, for it was the first time that Muslim theologians utilized European critical methods to disprove Christian doctrines. Why is the 1854 Agra debate of such significance? Although the Agra debates took place nearly 160 years ago, their impact is still felt today. Both disputants are still well remembered in the Muslim world and have influenced not only the form of modern apologetics, but the modern Muslim view of Christianity as well. Although the debates had been planned to address the topics of the deviation of the Bible, the Trinity, the Quran as the word of God, and the sending of the prophet Muhammad, the debate did not proceed further than the deviation of the Bible. The Islamic polemicists insisted that the Bible had been corrupted and tried to prove this with evidence taken out of the Bible itself and works from Christian authors who most fellow Christian would regard as skeptics or outright unbelievers. The timing of this counterattack was significant because Pfander, with a Pietist background, was either unfamiliar with or extremely hostile to the works of the aforementioned Biblical liberals. By utilizing such findings to undermine Pfander from within the Christian fold, the Muslims were able to declare an easy victory. Interestingly, the Muslims still employ such tactics today to attack Christian beliefs as they did 160 years ago. Therefore, missionaries who are working among Muslims should know the issues of the Agra debate and be prepared to answer the Muslims.
The main purpose of this short essay is to mitigate harsh debate about ‘comfort women.’ Although it is not expected to be resolved in the foreseeable future,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the problem based on the fact-finding and legal analysis would enable the two peoples to seek a better solution. The author claims that: (1) although some of the historical facts remain unclear, and some people tend to focus too much attention on fact-finding, from the viewpoint of international law, sufficient evidence has been revealed to confirm Japan’s responsibility for its conduct in the Second World War, and Japan does not and should not deny the relevant historical facts; (2) Japan was absolved of its responsibility by the 1965 Agreement in a legal sense; and (3) having said that, this case reveals the limits of the positivistic legal approach, and the Asian Women’s Fund can be one legitimate way of dealing with this problem.
자가통제평가(CSA : Control Self Assessment)는 핵심사업 목적을 달성하는데 개입되는 위험 그리고 그러한 사업위험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계된 내부통제를 공식적이고 문서화된 협력적 프로세스에 의하여 검토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방법론이다. 현재 많은 기업에서 효과적인 조직통제와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위하여 전문 감사인과 경영인들이 기업지배구조 조직의 강력한 위험관리 도구로서 자가통제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가통제평가는 해당 조직
Yeats established a contact with the spoken word and learned to use it so that he could express the reality and acquire masculinity under the influence of his participation in Abbey Theatre. And he, dramatizing himself, would express the life of the individual person with long and objective points of view, of which he was to follow simple methods of dialogue and debate. In his some later poems, Yeats adopts these methods and suggests his subjects through some persona of ‘Self,’ ‘Soul,’ ‘Robartes,’ ‘dancer,’ ‘He’ and ‘She.’ His concerns in this form are not to direct confess of his mind or feeling but to give different voices and opinions on his poetic subject. Not as his early poetic voices which represent poet's own subjectivity, these persona have voices of various opinions and show some conflicts each other in the text so that the reader should refer to all their positions and would be led to his or her own conclusion on the debate. The other significance of the debate form in Yeats's poetry is the participation of women persona and her role as a speaker of Yeats's attitudes on his writing. Different from the other male modernists, Yeats adopts the voice of a woman, submits himself to the female perspective and distances himself from the poetic situations and the subjects intended to suggest in his works. In other words, Yeats seeks poetic impersonality by speaking in female persona. Yeats’s use of the dialogue and debate between the persona of different experiences and different gender reinforces his attempt to displace his early romantic faerly landers and respond to his urgent subjects-the real world matters. With this method he portrays himself as a being caught between his social identity and his permanent personality, which grants him an achievement of the deeper wisdom into the human life and personality.
독도는 고대의 신라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 41호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독도는 행정적으로 울도군의 소속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를 침략하기 위해 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이라고 했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칙령41호를 부정해야만 했다. 칙령 41호에는 “울릉전도, 죽도, 석도” 를 행정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여기에서 석도는 독도이다. 일본은 석도가 독도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은 석도가 관음도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울릉도 주변에는 죽도와 관음도만 있다는 것이다. 울도군의 관할구역은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섬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899년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된 우용정이 울릉도를 조사하고 울릉도의 범위에 독도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칙령41호로 울도군을 정한 이유는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 하게 위한 것이다. 독도를 관리할 이유가 없었다면, 명칭으로써, ‘울도군’이 아니고, ‘울릉군’ 으로 충분했다. 위키피디아의 ‘석도’는 내용적으로 죽도문제연구회가 날조한 것이다. 죽도문제연구회는 칙령41호의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1904 년 이전에 독도를 알지 못했다. 명칭상으로 ‘석도’가 ‘독도’로 변경된 이유를 알 수 없다. 한국의 주장대로라면, 석도는 우산도가 되어야 옳다. 1905년 일본이 독도를 편입하였을 때, 한국은 일체 항의를 하지 않았다.” 일본은 칙령41호의 ‘석도’는 ‘관음도’라고 주장한다. 울릉도 주변에는 독도가 없고, ‘죽도’와 관음도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추측이고, 합당한 설명은 없다.
프랭클린 올링거(Franklin Ohlinger,중국명:武林吉)는 미북감리교 (Methodist Episcopal Mission, 여기서 M.E.M의 중국식 표현으로 미이미회 (美以美會)라 지칭했다.) 소속 선교사로서 한국선교의 초기 북감리교 선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뿐 만 아니라 문서선교로도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짧은 한국선교(1887-1893), 5년8개월의 시기에 비추어 그의 사역을 평가하 는 면도 있겠지만 그의 생애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선교(1870-1887, 1895-1911)에 대한 연구는 한국기독교사연구에 올링거를 통전적으로 이해 하는 기초라고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그가 한국선교를 시작하기 전 18 년동안 중국 복주(福州,Fuzhou)에서 활동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다 시 평가하고자 한다. 북감리교의 복주선교를 통해 직접적인 선교뿐만 아니 라 출판과 교육에 중점을 두고자 한 선교정책을 이해해 보며, 올링거와 뗄 수 없는 영화서원의 성립 등을 통해 그의 교육선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 를 풀어가고자 한다. 특히, 영화서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영문 이중언 어교육 논쟁을 통해 당시 선교와 교육의 문제에 대한 북감리교 선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선교사들은 전문적인 영어교육이 중국신도의 자존감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현지기독교인과 함께 만들어 가는 선교이양의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반면 이와 다르게 영어교육이 선교의 세속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물질주 의적인 취향이 농후한 중국신도가 신앙문제보다 영어를 통한 직업적 성공 에 더 몰두할 수 있다고 여겨 영어교육을 선교의 장애물로 보고 염려했다. 이점은 분명 올링거의 영화서원 이중언어교육에서 발단이 된 것으로 올링 거 이해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중국기독교 역사 속에서 정통과 이단의 문제를 성경 God의 중문번역명에서 발생한 논쟁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명말청초의 천주교에서도 조상숭배와 공자숭배와 더불어 “전례논쟁(礼仪之争)”의 한 축으로 당시 천주교선교사들의 중국선교 현장에서 문화적응적 입장 또는 중국문화를 이교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배척 또는 개화하려는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이 논쟁의 연장선에서 특히 개신교 중국선교 중 많은 서방선교사들이 참여한 영문저널 The Chinese Recorder 를 중심으로 이 논쟁을 전개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선교사들의 서방전통 또는 성서전통으로 구분되는 의식의 차이와 중국문화 특히 ‘상제’, ‘신’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의 차이, 그리고 중국종교 등에 대한 관점차이와 선교대상인 중국신도에 대한 이해, 서로 다른 선교지역 이해 등의 원인 때문에 좀처럼 종식되지 않는 논쟁을 전개했음을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충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이 논쟁을 통해 얻어진 경험과 중문번역명의 직접적 사용자인 중국신도들의 성장을 주목하면서 전대와는 다른 새로운 입장을 찾아나가며 이를 통해 상호 이해와 일치의 길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분명 용어문제(Term Question)는 단순한 명사논쟁이 아니라 사상간의 실제적인 교류를 의미하는 논쟁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역명(용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파악하고 중국언어가 가지고 있는 복잡성과 지역적 차이성 그리고 역사적 변천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한다면 충돌처럼 보일 수 있는 논쟁의 현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The Chinese Recorder 를 통해 얻은 관점은 바로 이를 실천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고집해 성서의 God을 전달할 방법이 한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전달할 수 있음을 즉 번역 속에 수많은 타협과 다원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