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encyclopedia as the example of the book Gu Jin Shi Lin to record the number of Chinese Characters Vocabulary in Korean at Joseon era which was written by Li Yifeng like a Zhuxi’s scholars. From diachronic perspective, it is of great value in the study of Chinese word form, sound and meaning, spoken Chinese words and the oversea spread of Chinese vocabulary. It cannot be ignored that the Chinese characters and words collected at that time not only reflect the use of spoken words in the time when the book was written, but also provide fresh corpus for the study of modern Chinese characters and words, overseas sinology, overseas transmission of Chinese characters and other studies. By introducing the related content, the hope can cause the attention of academic circles.
Among the research of Chinese Characters, there is a long history of the study of “the six categories of Chinese characters,” also a lot of research achievements have been accumulated from the past. Since the Qing Confucian Dai Zhen put forward the theory of “Four Noumenon and Two Uses,” advocated that the Transformed Cognates and Rebus are as the methods of using characters. The debates have been raised once again among different parties. Among them, the one with the most divergent opinions is the usage of “Transformed Cognates.” At the end of the Qing Dynasty and the beginning of the Republic of China, Mr. Zhang Taiyan made a theor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migrating of language. “The transformed Cognates, means that a new character created by changing the tone or the rhythm of the original character,” said Zhang. He clearly stated” a new character created,” regarded that “Transformed cognates” as a practice of creating new characters due to the transfers of sound. Which has always been seen as an important promoter of the theory. However, the subsequent researchers who also sat at the feet of Zhang have two different understandings and interpretations of “the method of using the character” and “the method of creating a character”. This article attempts to sort out the relevant discussion of Mr. Taiyan’s theory and restore the background of the time that Zhang made it. Also discussing the different interpretation perspectives of Zhang’s Transformed Cognates Theory by subsequent scholars in Taiwan. Finally, propose the author’s observations and conclusions.
There is no doubt that formal schooling has and still plays the role of almost a solitary agent of education in society. However, as time goes on, the question of formal schooling's adequacy in achieving 'true' education in modernity is increasingly being raised. Arguably, formal schooling looks to entertain conformity, social classification, psychological threats, and limits the skills development of learners. Therefore, there must be an alternative education model which creates more channels for learning so that society is no longer confined to the systems of formal schooling. In search of alternatives, deschooling society is becoming viable in today's education.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understanding of Illich's deschooling society by scholars in the 21st century. The authors analyzed 23 articles related to Illich’s ideas published from 2000 to December 2020. Qualitative content analysis was used to analyze the texts and provide interpretations from the reviewed articles. The findings reveal that current scholars view deschooling society as a critical pedagogy that offers alternative learning opportunities to the learners. They argue that more education could be provided through newborn innovations such as flexible-learning in the open community, home-sch ol, work-based learning, the free choice of courses, open educational resources (OER), and massive open online courses (MOOC). On top of that, the openness of science in digital platforms or its pervasiveness in which it is organized in the modern community would most likely widen learning opportunities for the learners. These innovations are useful in transforming from the current formal education which has no bearing on the quality of education provided to the learners. This study calls for more academic researches and discussion on finding suitable ways for adopting Illich's ideas in modern society.
현대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전용 단말기로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이다. 최첨단 시대일수록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정보의 공유와 보존이 바탕을 이루는 디지 털화가 이루어져 있다. 즉 디지털화는 ‘정보의 공유와 보존’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효 율적인 ‘공유와 소통’을 위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 한자학자 들의 연구문헌 DB 구축은 종이라는 2차원적 정보매체를 세계 모든 사람에게 어디서 나 제공할 수 있는 3차원의 정보로 바꾸는 것으로 DB 속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공 유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 한자학자 연구문헌 DB는 현 시대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구축된 세계 한자학 자 연구문헌 DB는 한자학사와 중국학, 언어학사 등의 넓은 영역에서 정확하고 통합적인 학술적 기초자료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학계의 심화 연구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
조선후기는 전통사회의 마지막 부흥기로 전통시대 문화의 발전이 성숙되었으며, 정원 조영 또한 상류문화의 하나로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의 지식층이었던 사대부들은 정원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기록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작된 의원기는 당시 사대부들의 정원문화 속에서 파생된 결과물 중 하나이며, 의원은 그들이 누리고자 했던 정원문화가 반영된 상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의원기에 나타난 의원의 모습은 작자의 실제 원림 소유의 유무와 관계없이 가상 공간속에서 그들이 이상 적이라 여기는 자연의 발견과 재구성으로 이어졌으며, 저작 이라는 실천적 행위를 통해 이상향을 완성해가는 문화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일례로 구곡유거기 말미에 ‘서씨와 염씨가 사는 곳을 보니 완연히 내 마음속에 그려보았던 곳이 다’는 내용은 의원기에 나타난 이상적 생태공간이 실제 실현 가능한 범주 내에서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 서 의원기를 살펴보는 과정은 당시 사대부들이 희구했던 생태적 상상 환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저작된 사대부들의 의원기의 내용 분석을 토대로 의원의 입지, 공간구성 및 구성요소들을 살 펴봄으로써 당시 정원에 구현하고자 했던 생태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첫째, 의원의 입지는 대부분 풍수지리 사상을 토대로 조 성된 공간을 지목하고 있다. 도성 안에 외지고 조용한 곳을 터로 잡은 이용휴의 「구곡유거기(九曲幽居記)」 외 다른의 원기에서는 ‘산을 뒤에 두르고 시내를 앞에 둔 집’, ‘산봉우리가 돌아서고 산언덕이 굽이치는 곳이나 숲이 아늑하고 개울물이 여유 있게 흘러가는 곳’, ‘물을 접하고 있는 산’, ‘아름다운 산수’, ‘숲과 계곡이 울창한 곳’ 등 공히 배산임수 형국의 입지를 보이고 있었으며 특히 제황상유인첩에 나타나는 의원의 입지는 복지(福地), 국세(局勢)가 맺힌 곳 등 풍수 지리적 요소가 확인된다. 이용휴의 의원 또한 깊은 산 속의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지 않으나, 도성안의 석벽을 담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주변의 산악지형에 둘러진 곳을 정원 으로 삼았으며, 이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이운지 (怡雲志)」 편의 암서유사(巖棲幽事)의 기록과도 유사한 입지와도 관련이 있었다. 둘째, 의원의 공간구성은 규모면에서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집과 주변의 작은 뜰로 구성된 단순구조와 내원·외원으로 구분되는 넓은 지역에 다양한 기능과 장소성을 부여한 구조로 구분되었다. 구곡유거기와 허균의 편지에 나타나는 의원은 각각 집 주위 약간 평의 땅을 개간하고 남새밭을 일구거나 집 남쪽에 넓은 뜰을 두었다. 제황상유인첩이나 숙수념의 경우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는 대규모 정원으로 건물이나 정원시설 등에 의해 각기 다른 장소성을 지니는 공간구성이 확인되었다. 제황상유인첩의 의원은 여러 채의 건물 내에 화분을 심은 내원과 연못이나 산골짜기 물이 흐 르는 남새밭 등 수경관 중심의 외원으로 구분되는 등 담장 으로 둘러진 공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산림 또는 계곡 일부 를 의원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숙수념 또한 각기 다른 기능을 지닌 건조물 7개소와 6개의 별원이 내원에 포함되어 대규모 정원의 형태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외원에 해당하는 오로원은 이보다 더 큰 규모로 둘레가 사십리에 달하는 숲과 계곡이 울창한 지역으로 설정하였다. 이외에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의원은 한가하게 독서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 등 처사의 삶을 표방하고 있으나 공간구성상 의원에서 행해 지는 향유행태에 따라 별도의 건조물을 두는 등 규모면에서 작지 않은 구성을 보이고 있었다. 셋째, 의원에 조성된 공간구성요소는 원예나 완상 등의 향유 행태를 통해 남새밭과 대밭, 화분, 각종 화목 및 과실수를 두었으며, 정원 요소로는 연못과 정자 등을 배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의 의원을 설정한 이용휴와 허균은 공 간의장요소로서 화단이나 화분, 수석 등 점경물로 이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주로 확인되었다. 이용휴는 처마 앞에 꽃 과 수석을 놓았으며, 특히 계절별 다양한 경관을 누릴 수 있도록 개화시기가 다른 꽃을 심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허균은 건축물 주변을 온갖 꽃과 대나무로 둘러진 곳으로 꾸몄으며, 전정(前庭)에는 패랭이꽃과 금선화를 심은 화분과 화단, 괴석 등을 배치하였다. 한편, 대규모의 의원을 설정한 임원경제지에서는 부용(芙蓉), 대나무, 매화, 토란, 밤나무 등의 수목을 식재하였으며, 특기사항으로 수목식재를 통한 경관구성 이후에 각 건축물들이 배치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정원이 건축물의 조성 이후 이를 중심으로 경관연출이나 공간구성요소의 배치가 이루어지는 반면, 의원은 건물 중심의 공간에서 벗어나 외부 생태공간 조성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제황상유인첩의 의원에는 수백 묘(畝)의 전답과 연꽃이 심겨진 연못과 호수, 남새밭, 초각(草閣)과 대나무 숲 등의 요소들이 확인되었으며, 숙수념에 나타나는 의원에는 폭포와 동굴, 대나무 숲, 강과 계류를 포함하고 주변에 정자와 대(臺)를 조성하여 정원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의원기에 나타나는 의원은 배산임수 형 국의 풍수적 입지를 지니며, 공간의 구성과 영역의 설정에 주거 목적의 건축물과 주변의 남새밭 또는 뜰이 결합된 공 간구성이 확대되어 주변의 산수를 외원으로 포함하기도 하였다. 또한 규모에 따라 건축물 주변이나 내원에는 화단이나 화분, 괴석배치 등의 공간구성요소가 확인되었으며, 외원에는 다양한 자연요소를 포함한 영역 내부에 과실수나 화목의 식재, 연못 또는 정자와 같은 정원시설의 설치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특성들은 작자의 태도에 따라 그 입지와 규모, 공간구성, 정원 내 요소의 다양성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나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려나가는 과정이 공히 기록되고 있어 상상 환경속의 텍스트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시대적 배경이 반영된 생태적 환경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蘇門四學士의 詞는 貶謫 이전과 貶謫 이후로 나눌 수 있다. 蘇門四學士의 폄적이전 詞風은 婉約한 반면 폄적이후에는 豪放, 沈鬱, 飄逸한 풍격을 보인다. 이는 폄적의 심경을 사를 통해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시 詩는 정치적으로 민감하여 폄적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 관심이 덜한 사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결과적으 로 이는 詞의 詩化를 가져와 사의 내용과 풍격을 변화시켰다. 소식으로부터 시작된 詞의 詩 化는 蘇門四學士의 계승을 통해 가능했다. 왜냐하면 당시 蘇門四學士는 송대 문단을 대표하 는 문인들이었다. 따라서 蘇門四學士의 폄적전후를 비교 고찰하는 것은 송사의 변화와 발전 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관건적 시기이다. 폄적이후 나타난 그들 사풍의 변화는 송대 사단 전 체에 영향을 주었다. 蘇門四學士의 폄적사는 사의 내용을 확대시키고 풍격을 넓혀 이후 사풍 의 변화를 이끌었다. 후대 辛棄疾과 朱敦儒 등의 豪放詞人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The spiritual world in Wang Wei’s poem has a significant impact not only to the artists of the time but also to the Chinese literati at later date. This infleunce was not limited to the ancient Chinese literati. It also infleunced Goryo dynasty’s scholars. Goryo literati influenced by his poem were Lim Yujung(林惟正), Lee Gyubo(李奎报), Lee Jehyun(李齐贤), Jin Hwa(陈澕), Lee Saek(李穡) and so on. Its influence to the Goryo Dynasty’s scholars was essentially founded on the Nature of perception,the style of 'The implication', Zen realm and 'Poem paintings' realm in Wang Wei’ poem.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and trends of academic research by Korean scholars of English education. The main focus was on the extent to which active scholars focus on their primary major areas. The study surveyed 11 journals of major academic societies in Korea, and analyzed a total of 5,072 research papers written by 1,639 scholars. The results showed that the most popular topic was acquisition/learning (19.30%), followed by English (applied) linguistics (17.90%), English materials (14.59%), teaching methodology (12.03%), and learning psychology (10.11%), the top five collectively comprising 73.93% of the total papers. The 99 most productive scholars published 1.01 papers per year on average. Younger scholars published more papers per year on average than older scholars. As for the concentrated efforts in their primary areas of research, the top 99 scholars wrote 46.84% of their papers on their primary areas, and 20.03% on their secondary areas of study. Younger scholars concentrated more efforts on their primary areas than older scholars. The results were interpreted, and suggestions were made for the future research.
Our close observation of the debates among Pauline scholars in the west on the issue of mission-relationship between Paul and the church provides some points to be borne in mind for a fresh approach in our further discussion. The dichotomy between scholars’ approach to the issue of mission-relation between Paul and the church either in terms of mission-continuity or mission-discontinuity needs to be remedied by appreciating the possibility to see the issue afresh, namely,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Therefore, our further discussion is to begin with assuming a certain ‘mission-continuity’ between Paul and the church or at least Paul’s missio-ecclesial understanding vis-à-vis his understanding of his own mission. This again means that the unsettled exegetical question is not about such a mission-continuity or mission-discontinuity between Paul and the church but about the nature of such a continuity. On a more fundamental level, the current debate has more to do with a more plausible description of Paul’s conceptuality regarding what Pauline scholars have generally called ‘mission’ than simply to explain away the relation between Paul and the church under a given popular definition of mission. As the modern notion of ‘missio-Dei’ and “missional ecclesiology’ do, a more plausible description of Paul’s conceptuality regarding the current issue requires to see ‘mission’ not ‘pattern-analytically’ but ‘purpose-analytically’. However, this should not be done anachronistically by projecting these modern notions to Paul’s texts, but in a way in which we can provide a more biblical and historical basis for a better understanding about our mission today.
Fenbiewenand Leizengziare two kinds of complex phenomenon ofChinese character which were coming from WangYun's research on Chongwen,both ofthem were from the point of view of character creation,they are different fromGujinzi,the term of contacting the usage of characters in ancient bibliography.Fenbiewen, LeizengZiand GujinZiare heterogeneous concepts due to theirdifferent academic backgrounds and research purposes.Beacuse of different pointof view,they have intersection of materials,so WangYun occasionally use Fenbiewenor Leizengzito explain those Jinziof Gujinziis in order to explain the causeof Jinzi,but doesn't mean he changed the historical definitions of Gujinzi. XuHaois the origin of the Gujinzidistortion,the different usage of a word in differentages' documents had been paralleled by XuHao with the terms like FenbiewenandLiezengzi,and then he inclined to tell that Gujinzimeans the phenomenon thatcharacters creation with the radicals increasing,so later misled people becomesto believe Gujinzimeans the phenomenon that characters creation with the radicalsincreasing just like Fenbiewenand Leizengzi,then they usually believe this isWangYun'sGujinziconcept but in fact this is not true.
언어 교육에서 오류 분석은 언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의 언어를 연구하거나,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안을 고안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이다. 하기에 많은 학자들이 학습자들의 작문이나 발화에서 오류문을 추출하여 연구를 시도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마다 오류에 대한 견해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 판정에서 어려움을 시사하고 있다.본고에서는 학자들의 견해를 기초로 하여 한국어 교육에서 오류의 판정, 오류와 실수, 중간언어와의 관계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고 필자의 견해도 밝히고자 하였다. 그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오류는 외국어 학습자 자신에게 있어서 필요 불가결이며 교사는 오류 분석과 오류 교정에 주목해야 한다.2. 오류 판정에서 문법성, 체계성, 반복성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원인을 밝힐 수 있으면 오류로 보아야 한다.3. 오류는 학습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교정할 수 없지만 실수는 학습자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다.4. 오류는 중간언어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원인을 밝힐 수 있다.
한국은 독도를 양국 간의 외교 교섭의 대상으로도, 제3자에 의한 분쟁해결의 대상으로도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독도 문제를 국제적인 법정에 강제적으로 제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독도 문제에 관한 가상 법정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의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영향력·발신력이 있는 제3국에서 일본 입장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하면서 영토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영어로 전달하는 정보 발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학자가 아닌 제3국 학자의 독도 관련 연구 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독도에 관한 국제사회의 여론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도 문제에 관한 법적 연구에 한정하여 보면 제3국 학자의 연구는 시기적으로는 1990 년대 이전에는 보기가 어렵다. 1990년 말에 영어로 된 제3국인의 독도 연구 논문이 등장하여 2000년대에 그 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2010년 대에 들어 가장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제3국 학자들의 독도 영유권에 관한 논고들은 거의가 독도에 관하여 한국이 일본보다 우월한 법적 영유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의 독도 문제 제소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 것이 많다. 이들 제3국 학자들의 독도 연구에는 한국 학자가 영어로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3국 학자의 독도 연구 논고들은 일종의 가상의 법정과 같은 역할을 하여 독도에 관한 한국과 일본의 국내 여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제3국 학자와 국민과 같이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국의 주장에 동의하도록 하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과 논리가 필요하다.
본고는 일제 강점기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儒者들의 의식과 특징 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일제 강점기 ‘지리산 기행문학’에는 전통적 지식인인 유자의 한문 유람록과 근대적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과 지식인의 한글 기행문이 병존한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는 한문 문집과 한글 신문이라는 언어와 매체의 이질성만큼이나 상이한 인식론적 편차가 존재한다. 성리학적 유람 문화의 전통 속에서 쓰인 한문 유람록과 근대적 담론의 영향을 받은 한글 기행문이 상호 변별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규정할 수 있을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분과 학문별 연구 대상의 배타성 등이 작용하면서 이 시기 기행문학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은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제 강점기 지리산유람록에 대한 한문학 분야의 심층적인 연구와 지리산 기행문학에 대한 문학사적인 접근을 기대하면서, 일제 강점기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의미와 특징 등을 試論的으로 논구하고자 하였다.
먼저 시대적 특수성에 주목하여, 지리산 기행문학에 ‘전근대’와 ‘근대’가 교차·공존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근대적 관광 인프라와 정보를 바탕으로 형성된 ‘근대적 유람로’와, 근대적 위생관념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 휴양촌에 투영된 유자들의 자정과 은일 의식 등을 통해 ‘비동시성’의 교차 양상을, 그리고 공동체적 관념상과 원근법적 시각상, 성리학적 이념과 수양관을 바탕으로 한 천인합일 의식과 자연을 대상화하는 주체중심주의적 사유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비동시성’의 공존 양상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지리산유람록에는 산을 매개로 한 求道의식과 尊賢정신, 그리고 성리학적 수양과 성찰적 태도가 면면히 계승되고 있으며, 더불어 민초들을 긍휼히 여기는 애민의식과 비판의식이 도저하게 관류하고 있음을 논구하였다. 그렇지만 근대 문명의 확산과 그 혜택으로 인해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儒仙 의식과 仙趣 경향은 현저히 약화되어 수사적 차원에서 그치고 있다는 점 또한 규명하였다.
본 논문은 동일한 시간에 상이한 ‘역사적 시간’을 살고 있는 두 주체들 간의 인식론적 편차를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써 한문 유람록과 한글 기행문의 공시적 차별성을 파악함으로써 이들의 영향관계와 통시적 (불)연속성을 문학사적으로 탐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조선후기 유학자의 산수 유람기 속에는 사찰이나 승려에 관한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이 기록들은 제삼자의 눈에 비친 사찰과 승려의 실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유람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指路僧이나 가마를 메는 藍輿僧에게 지나친 관심을 둠으로써 抑佛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유람기가 이해되어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유람기에는 여러 修行僧의 모습도 함께 등장하기 때문에 그 수행승에게 시선을 돌리면 당시의 불교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조선후기 지리산에는 많은 名僧들이 주석하며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본고에서 다룬 16-18세기 유람기에서도 그들의 법명이 등장한다. 가령, 浮休善修, 逍遙太能, 靑梅印悟, 碧巖覺性 등은 당대 최고의 禪師로서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유람기에서는 이들을 따라 공부하는 승려들이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리고 깊은 암자에는 長坐不臥하며 수행하는 수행승의 모습도 그려지고 있다.
유학자들은 유람 도중에 만난 高僧들과 대화를 나누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들의 대화 가운데 心性論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1790년에 李東沆은 유람 도중에 만난 승려 道原과 理氣心性에 관해 대화하였고 그 대략적인 내용이 그가 쓴 유람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보건대, 당시 불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던 심성에 관한 논쟁이 유학자와 승려의 교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