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인 지도체제 강화가 중국 언론에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 고 있으며, 시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화 현상은 어느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본 논문은 이러한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중국 언론의 전형인 인민일보 1면 보도 내용을 분 석해 보았다. 시 주석의 권력 장악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1997년 2월 덩사오핑 사망 이후 정적을 제거하고 핵심 권력을 모두 장악하면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두 사람의 언론 노출 빈도와 취급 기사의 가치 평가 등 양적·질 적 분석을 통해 권력의 집중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시진핑 주석의 인민일보 1면 뉴 스 출현 빈도는 물론 1면 주요 기사 분석과 1면 사진 분석에서도 장쩌민 주석보다 각각 두 배 이상 늘어나 두 지도자의 권력 독점 정도에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인민일보 보도 태도는 그동안 권력의 1인 집중에 따른 폐단을 경계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온 중국 공산당내 권력 구도가 집단지도체제에서 1인지도체제로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따 라서 시진핑 주석의 이러한 권력 독점은 앞으로도 중국의 외교문제 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통일 문제, 그리고 한중 관계 발전에서도 시 주석 개인의 정치관과 외교관, 그리고 세 계관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권력 독점 정도와 개인의 성향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이츠의 초기시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를 겪던 시기에 발표된 것 으로, 암울한 국민들의 마음속에 고상하고 영웅적인 기상을 심어준 것으로 높이 평가 된다. 이러한 찬사는 예이츠가 신화, 아일랜드의 전설, 자연에 근거한 다양한 메타포를 사용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예이 츠가 초기시에서 어떠한 메타포를 사용했으며, 그것들은 예이츠 자신의 연애 경험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과 어떠한 연관을 맺고, 어떤 함축적이 고 내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직유와 상징을 메타 포와 같은 비유적 표현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고 메타포로 통일하여 부르고 논문의 서 두에 그 이유를 밝힌다.
예이츠는 그의 시에서 성적인 은유와 죽음이라는 소재를 즐겨 다루었다. 이는 그의 초기시부터 후기시까지 상당히 광범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를 다룬 초 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의 시들을 비교해보면 성적인 메타포와 죽음에 대한 소재가 그 의 시적 또는 영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사후 또는 영의 세계로의 유혹의 도구로 사용되다가 중기에 이르러 서는 죽은 아이리쉬 영웅들을 기억 속에서 소생시키려는 그의 의도를 느낀다. 후기에 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분열이 가져온 한 정치적 영웅의 죽음을 반추하며 이러한 극한대립을 화해하고 녹이기 위한 비전으로 승화시킨다.
본 논문은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예술과 타자성에 대한 논의로, 세계사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생각해봄과 동시에 그 지역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작업을 영토 분쟁과 국제 정치, 그리고 민 족 간의 대립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동시대 미술 속에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문 제를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는 아직도 진행 중인 전쟁과 식민의 상황 속에서 많은 예술가 들이 중동 지역의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며 예술이라는 비폭력 저항의 매개를 통 해 고착된 정치권력과 배타적 제도에 균열을 내며 차별과 억압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 업은 많은 부분 정치적으로 표명되기도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이념을 표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팔 레스타인의 현 상황에 맞서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힘겨운 투쟁과도 같다. 따라서 본 논문이 역사에 서 소외되고 잊힌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 이 되길 바란다.
당근을 소재로 한 기능성 발효음료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의 하나로 당근주스에 당을 첨가하고 Saccharomyces cerevisiae KCCM 11215를 접종하여 알코올발효를 진행시켜 당근와인을 제조한 후, 종초 Acetobacter pasterianus A8을 접종하여 초산발효를 유도하는 단행복발효 공정으로 정치 배양하여 당근식초 발효를 시도하였다. 6%의 알코올을 함유하는 당근와인에 종초를 5% 부피비율로 접종하고 30℃에서 20일간 정치 배양하는 것을 최적조건으로 하였을 때 산도 6.2%의 당근식초 제조가 가능하였다. 생산된 당근식초는 122.47mg%의 유리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당근식초의 유기산 조성은 aceticacid 55g/L, pyruvic acid 4.5g/L, citric acid 0.45g/L 및 maleic acid 0.05g/L이었다. 당근식초는 1.43mg/L의 베타-카로틴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몇 가지 시판식초에 비해 폴리페놀(478.89mg/L)을 다량 함유하여 DPPH 라디칼 소거활성, ABTS 라디칼 소거활성, FRAP assay으로 표현되는 높은 항산화활성을 나타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개발된 당근식초는 조리용은 물론 기능성 음료로서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논문은 외르크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1945-2007)의 회화 <카페 도이칠랜 드 Café Deutschland>(1978-1982) 연작에 나타난 임멘도르프의 자화상을 통해 당대 독 일의 시대상을 알아 볼 수 있는 연구이다. 임멘도르프는 독일 서독 태생의 작가이며 신 표현주의(Neo-expressionism)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임멘도르프는 뒤셀도르프 아 카데미(Düsseldorff Academy)시절 스승인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로부 터 서독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의 지배에 대한 비판의식에 강한 자극을 받아 서독 자본주 의 이면에 팽배한 모순적 현상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 아래 임멘도르프는 정형화된 예술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기존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반(反)예술 성향의 사 회 운동가적 퍼포먼스를 펼치며 대중사회에 자신의 이념을 전달하였다. 또한 임멘도르 프는 분단된 독일 사회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1976년부터 동독 작가 펭크(A.R.Penck, 1939-)와 교류하게 되었다. 이후 1978년을 기점으로 회화 <카페 도이칠랜드>에서 냉전 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된 혼란한 독일의 모습을 혼잡한 카페(café)라는 독일 사회의 축소판으로 설정하였다. 이렇듯 임멘도르프는 사회적 문제점들을 다양한 상징적 요소들 을 사용함으로써 예술이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있는 도구로 보았으며, 예술과 사회가 통 합된 삶을 이룩하기를 원하는 일종의 사회적 예술가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임멘도르프는 <카페 도이칠랜드>의 역사적 함의를 강조하기위해 실제 당대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겪은 본인의 자화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카페 도이칠랜드>에 표현했 다. 이와 같은 점은 <카페 도이칠랜드>가 시대상을 투영함으로써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동시에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임멘도르프 개인의 일대기적인 회화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임멘도르프는 <카페 도이칠랜드>에 다양한 본인의 자화상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예술가로서 실행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고심과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들을 캔버스에 생생히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법철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데블린은 하트와의 논쟁에서, 그리고 스티븐은 밀과의 논쟁에서 그 가능성을 긍정하였다. 이 연구는 데블린과 스티븐의 논변을 비교하고, 그들의 생각을 근대 이후 서구의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맥락에 서 이해할 가능성을 검토한다. 스티븐과 데블린은 사회도덕을 법으로 강제할 가능성을 긍정하고, 형 벌의 목적을 예방만이 아니라 응보에서도 찾으며,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 면서도 사회의 통합과 질서가 자유의 조건임을 강조하고, 법과 도덕 및 종교의 상호연관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두 사람의 이런 생각은 근대 이후 서구의 보수적인 정치사상과 연관지어서 볼 때 잘 이해될 수 있다.
본 논문은 안드레 세라노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타자성의 담론 속에서 파악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재 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라노는 사회정치적 이슈에서부터 종교적 상징과 신성에 이르는 주제를 넘나 들면서 타자의 의미,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 위치의 전환 등을 탐구한다. 또한 타자성이 평준화되고 권력 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명확한 하나의 입장이나 성명을 제시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질문과 해석을 불 러일으키는 데에 주력한다. 다중부정을 지향하는 주변화된 분석가이자 해석자로서의 예술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의 사진은 상층부와 하층부, 천상과 세속, 신과 인간, 영혼과 육체, 신성과 물질성처럼 서로 반대된다고 여겨지는 대립항들을 결합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양가성을 이끌어낸다.
본 논문은 칠레 출신의 개념미술가 알프레도 하르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에서 나타나는 미디어 비판적 시각에 대한 연구이다. 본래 하르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이용한 설치작품으로 뉴욕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미술사에서는 그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분류하여 사건의 기록적인 측면에서 연구해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시각 아래 제 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그러한 시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언론지 차용 작 업을 연구하는 것은 작가의 작품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하르의 198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은 칠레 쿠데타의 미국 개입의혹과 미국의 자유 주의 사상 이면에 만연하는 불평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언 론지의 표지나 광고, 혹은 보도사진을 병치해 미디어에 내포된 이데올로기를 지우고 자 신의 의도대로 의미를 전환시켜 미디어를 순수한 사회적 기록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그의 1990년대 언론지 작업은 제 3세계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 에 대한 서구 미디어의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기간 동안 발행 된 언론지의 표지를 나열해 미디어가 인종차별적 아래 해당 사건을 주요 뉴스에서 배제 시켰음을 폭로한다. 이를 통해 사건의 직접적 가해자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방관적 태도 역시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그의 1980-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 업은 일상 속에서 정보를 제공하거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언론지의 기사 텍스트나 이 미지 혹은 광고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단순히 병치시킴으로써 기존에 미디어가 내포했 던 의미와 작가가 전환시킨 의미를 관람자가 비교하고 깨닫게끔 유도했다고 볼 수 있 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업은 주류 미디어를 역으로 이용한 대항(counter) 미디어로서 의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언론지 차용 작업은 미국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활발히 논의 중인 우파와 좌파간의 첨예한 대립, 사회적 평등에 대한 시각, 제 3세계 주변국 사람들을 바 라보는 차별적 시선 등과 같은 정치적 사안과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르의 1980-1990년대 언론지 차용 작업은 여전히 동시대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학교교육의 사회화에 관하여 비판하고 배움학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교육과 사회 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핵심은 사회화이다. 사회화란 개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모든 과정과 내용을 의미한다. 이에 관해 구조기능주의론자들과 갈등주의 론자들은 사회화의 정당화와 보장성에 관해 경쟁하며 교육의 공헌에 관한 주장을 하여왔다. 사회화의 대 행기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회 속의 기관은 학교이다. 학교교육은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가장 적합한 기관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교는 특정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계급을 재생산하거나, 사회화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사회화와 더불어 인간의 배움본능의 실현과 개조를 가능케 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학교교육은 개인 을 사회화하기에 부적합한 기관이라는 것이 본 연구의 결론이다.
연구자는 1960년대 후반, 한국의 미술가들이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퍼포먼스에 대한 실험 성을 펼친 사례를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시도한 해프닝, 1970년대 중반의 이건용 과 이강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에서 처음으로 신체를 ‘매개’로 사용한 점 을 분석하며 예술가의 몸과 일상을 서로 중재해 나가는 예술적 과정과 실천을 검토한다. 초기 한국 의 퍼포먼스 아트에서 정강자와 같은 여성 퍼포머를 바라보는 방식, 이건용의 ‘로지컬-이벤트’에서 는 언어의 개념과 상황을 매개하는 예술가의 몸과 타자성, 이강소의 1973년 <선술집>을 설명한다. 1960-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는 미술가들의 신체가 갖는 불확정성, 비결정성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미술가의 몸’을 중요한 개인, 사회, 정치적 사이트라는 문화적 (콘)텍스트로 인식하는 한 국 아방가르드의 특징을 구축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 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고 규정함으로써 대통령에 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 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에 대하여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하 며 대통령 임기 동안 공소시효진행은 정지된다. 만약 검사가 대통령을 기소하는 경우 법원은 재판권의 부존재를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1호에 따라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수사를 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헌법 제84조의 규정 취지 및 대통령의 지위와 원활한 직무수행 등을 고려할 때 강제수사는 할 수 없으나 당사자의 동의나 승낙을 받아서 행하는 임의수사는 가능하 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고 할 때 수사의 주체는 검찰청법상의 검사가 아닌 특별검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 하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수사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잠재울 필요성이 특히 요청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란을 예방하 고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하여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 특별검사의 추천 과 관련하여서는 대법원장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바 람직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대부분 선거구 단위로 선출되기 때문에 선거는 지리학의 주요 관심대상이 된다.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은 수도권을 사례지역으로 하여 19대 및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공간 패턴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읍면동 단위의 지역구 및 비례대표 선거 결과 데이터에 대해 공간통계 분석을 수행하였는데,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여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줄었지만, 양당 기준 하에서의 여당의 총 득표율, 그리고 최다득표동의 수 및 득표율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각 시점 별 여당 득표율의 공간 군집성을 분석한 결과 읍면동 단위가 선거구 단위에 비해, 비례대표 선거가 지역구 선거에 비해 더 강한 공간 군집성을 보였다. 서울 남동부 및 경기도 외곽에서 득표율이 높은 반면 서울의 여타 지역 및 서울 인접 지역에서는 득표율이 낮은 패턴이 대체로 유지되면서 시점 간에 전역적인 공간 군집성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국지적으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다소 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셋째, 두 시점 간의 여당 득표율의 공간적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대체로 정치적 성향을 유지하는 경향이 우세하였다. 읍면동 기준으로 약 30%는 공간 군집을 이루면서 정치 성향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득표율의 변화가 발생한 지역 또한 강한 공간 군집성을 나타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잡지는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少年)지였다. 소년은 경영 및 편집이 체계를 갖추었고, 체제나 내용이 혁신적이었으며, 학회 및 단체의 기관지가 아닌 독립적 상태에서 불특 정한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라는 점을 들어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로 평가한다. 소년(少年) 폐간 이후 발간된 청춘(靑春)과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는 각각 대중 교양 계몽지, 문예전문지 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일본이 문화정치(文化政治)를 표방하는 유화책을 쓰 면서 신문과 잡지의 발행이 허용되어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대일보 등의 신문과 개벽(開闢), 조선지 광(朝鮮之光) 등의 잡지가 발행되었다. 개벽(開闢)은 천도교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천도교뿐 아니라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아우르는 통합적 면모를 보여주었고, 이를 경계한 식민당국의 탄압으로 폐간 당 하였다. 조선지광(朝鮮之光)은 사회주의 사상을 표방하였으며, 조선문단(朝鮮文壇)은 이광수가 주재 한 문예잡지로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1920년대 창조(創造), 폐허(廢墟), 백조(白潮) 등의 동인지는 문학 동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학 관과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동인지는 전문적 문예지의 탄생을 의미하며 문학작품을 발표 할 수 있는 지면의 확대와 더불어 문학작품이 예술 장르로서 독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순문예 월간지로 발행된 문장(文章)은 일제 말기 암흑기의 문단을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였지 만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일본 식민지 당국의 민족혼 말살 정책과 같은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 진 폐간함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을 지켰지만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 문학의 명맥이 일시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본고는 서로 이질적인 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 즉 다민족, 다문화권에 대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할 때 그 민족 고유의 역사 적, 정치적 상황을 면밀히 고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은 특히 이슬람 선교에 더욱 중요하다. 피지배 민족의 역사 및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도 주요한 선교전략 요소이 지만, 지배민족인 러시아의 정신적, 종교적 정체성인 러시아정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문화권 선교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연구 주제다. 이에 따라 본고는 비이슬람으로서 지배민족의 종교적 정체성과 이슬람 사이에 역사적, 정치적 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집중하 고자 한다.
본고는 러시아의 정복 대상지였던 이슬람권 지역에 대한 이해를 통해 러시아 지역에 대한 선교전략을 모색하며, 이를 위해 피지배 민족인 러시아연방 내 무슬림 민족들에 대한 역사적, 종교적 부분, 그 중에서도 러시아정교와 이슬람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고는 러시아권에서의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이념을 러시아와 오스만 튀르크와의 역사적 관계를 통해서 규명하며, 소비에트 체제 이후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현재의 러시아연방 내에서 러시아정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연 방 내의 무슬림권에 대한 선교 전략을 도출하는 학적, 방법론적 내용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논문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남북통일을 향한 선교역사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ecumenical) 입장과 복 음주의(evangelical)의 입장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는데, 거 기에는 차이가 있다. 복음주의 입장에서의 선교는 북한의 복음화에 집중하고, 반면에 에큐메니컬 입장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통일 자체를 선교라고 본다. 이런 두 진영의 차이에도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문제는 선교신학적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적인 문제이며, 한국교회 의 선교적인 책무이다.
본 논문은 통일에 대한 관점을 통전적인 시각으로 전개하였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남북통일 문제는 에큐메니컬 입장이나 복음주의 입장,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관점에 서 다루고자 한다. 본 연구는 통일을 향한 선교신학적인 관점으로서 북한선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다루었고, 통일에 대한 선교역사 적인 관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남북 간의 통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접근과 제언 을 시도하면서 한국교회의 과제를 논의하였다. 현재 남한에서는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계속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 선교적 관점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을 다루었다.
남북통일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부여하신 주님의 명령이며, 사명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남북통일을 이루어 가는 길은 샬롬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남북통일은 북한의 복음화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 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는 한국 역사의 격동기였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전래 되었다. 이 시기에 복음은 개인에게 옛 관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기쁨을 주었고, 민족에게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되리라는 소망을 갖게 하였다. 특별히 한국 여성들에게 복음에 의한 회심과 삶의 변혁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등 여러 방면으로 놀랍게 나타났다. 한국 기독 여성들 가운데서 김마리아(1892-1944)는 선각자 역할을 한 본보기였다. 본 연구는 김마리아의 삶에 집중하여 회심과 변혁의 생애를 통전적인 선교적 관점으로 고찰하였다.
김마리아는 초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일평생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인, 여성운동가, 교육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활약하였다. 그녀는 한국인으로서 일제 치하에서 2.8 독립선언과 3.1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또한 여성으로서 당시 집안에서 머물러 있던 관습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사상을 가지고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조직 하여 대외적인 활약을 하였고 여전도회연합회 회장으로서 교회 여성들 을 이끌었다. 그녀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가로서 수피아 여학교, 정신여학교, 마르타 윌슨 여자신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런데 안타 깝게도 김마리아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김마리아는 당시 기독교인에게 당면한 선교적 과제인 독립운동과 여성평등을 위하여 변혁자로서 선교적 소명에 충실하였다. 또한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며 한국 여성이 근현대사의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그녀가 민족주의적 기독교를 추구하는 한계에 있었지만, 양성평등 관점에서 남녀 동반자 의식과 여성교육을 통한 주체성 확립을 추구하는 선각자적 정신이 있었다. 그녀의 변혁적 삶은 오늘날 아직도 장벽이 남아 있는 한국교회 여성과 경제적, 정치적, 성적 억압에 고통당하는 세계 여성들 에게 도전을 준다.
과학기술 전문가가 근거를 제시하고 정책관료가 결정을 내리던 기존의 정책결정체계와는 달리, 불확실성과 이해관계 대립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술위험 영역에서 참여적 의사결정방법이 바람직한 모델로 상정되어왔다. 이어 여러 가지 정책실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견해가존재한다. 본 연구는 기술위험 거버넌스에 대한 사회적 배경이 다른 두 나라인 영국과 한국에서 각각 수행된 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 모색을 위한 공론화 프로그램을 역할분담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본고는 영국과 한국의 공론화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참여자그룹이 어떻게 정의되고, 어떠한 근거로 역할이 상정되며, 적용된 의사결정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해 논의한다. 공론화과정의 사례연구를 통해 많은 기술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지 받고 있는 ‘참여를 통한 의사결정’이라는 기술위험 거버넌스의 규범이자 방법론이 실제 각기다른 정치사회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되는 지를 살펴본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와 공론화에 대한 오랜 경험을 가진 영국과의 비교분석은 한국의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과 나아가 기술위험 거버넌스를 위한 정책도구를 정교화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토마스는 선교의 목표가 인간화라고 주장하였다. 이 소고의 주목 적은 인간화를 신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토마스는 기독교의 사상의 궁극적인 틀은 추상적인 하나님‐인간 또는 오히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다. 토마스는 현대의 혁명적인 변화의 의미와 신앙의 의사전달 표현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기독교의 신앙의 함축적 의미를 탐구하는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권 을 촉진시킨다. 토마스의 기독론적인 발전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묘사한다. 토마스는 역사상의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을,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정의와 인간화를 위한 혁명적인 변화 내의 발효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견해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죄와 악의 모든 구조를 극복하고 마침내 죽음 자체와 마지막 사건인 그리스도의 왕적인 통치의 뜻으로서 이해되 는 것, 즉 이 세상의 왕국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전환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고통 받는 인간과의 함께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적 인 도구의 말로 혁명적인 인본주의를 위한 원동력으로서 나타내는 인도의 기독론을 요한다. 복음의 보편성이 모든 문화와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뚫고 들어가서 그것들을 그것의 매개물 즉 소위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변혁시키는 능력 안에서 그러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요구한다. 토마스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이끄는 대화를 의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는 타종교간의 대화가 목표이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이데올 로기적인 다원주의 신학의 주요한 논점인 넓은 의미의 에큐메니즘과 열려진 세속주의를 표명하였다. 그가 기독교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구원을 소망하는 에큐메니컬 신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영향을 주었으 나, 결국은 그것은 선교에서 편향된 구원을 지향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를 제안한 것이다.
정자 생존성은 정자기능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Eosin-nigrosin 염색법, Hypo osmotic swelling test법, CFDA, SYBR-14, Hoechst-33342, Calcein AM 등의 형광염색법을 통해 평가될 수 있다. 또한 Flow ctyometer를 이용, 단시간에 형광 염색된 세포를 검사하여 생 존성뿐만 아니라 정자의 여러 기능적 특성을 평가하는 기술이 최근 이용되고 있다. 이 연 구는 Flowcytometry를 사용하여 제주흑우의 동결정액에서 정자의 생존성을 평가하는 2가 지 형광염색법 간의 비교분석을 통해 정자 생존율의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서 사육중인 제주흑우 2두를 인공질법을 이용하여 채 정하였으며, 정자 최종농도가 2.0×107/ml가 되도록 Triladyl-eggyolk로 희석 후 4℃에 1시 간 30분간 평형과정을 수행하였다. 그 후 스트로 정액 충전기로 정액을 충전 후 간이 액 체질소 증기 동결법으로 동결하여 LN2에 동결보존하였다. 동결보존된 정액 스트로(n=12) 를 융해하여 PBS를 이용하여 5×105/ml 농도로 희석 후 2개로 분획하였으며, 각각 Calcein Am-PI(CAM/PI)와 6-CFDA-PI(CFDA/PI)의 이중 형광염색을 실시하고 37℃, 15분간 정치 후 Flow ctyometry로 생존율을 비교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살아있는 정자 의 비율은 29.26±1.28(CAM+/PI-), 27.50±0.76(CFDA+/PI-), 약간의 생체막의 손상이 있으나 살아있는 정자의 비율은 21.67±4.92(CAM+/PI+), 23.29±2.76(CFDA+/PI+), 생체막의 손 상으로 죽은 정자의 비율은 48.44±4.18(CAM-/PI+), 48.61±2.71(CFDA-/PI+)이었으며 각 각 형광염색법간의 유의적인 차이는 없었다(SPSS v18.0 통계프로그램 사용).
본 연구결과 Flow cytometry를 사용하여 정자의 생존율을 평가할 때 Calcein AM과 6-CFDA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정자의 생존성 평가에 CAM/PI 방법과 CFDA/PI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용 가능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