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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350

        301.
        2014.10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다문화교실에서 다문화교육을 하는 데에 문학 작품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작품 선정의 기준을 탐색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다문화교육의 목표인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 태도의 교육을 위해서는 문학 작품을 활용한 교육이 필요하다. 문학 작품을 활용한 다문화교육은 학생이 쉽고 재미있게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학생의 문화적 경험을 확장한다. 또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인물에게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태도 교육이 가능하다. 그리고 교사가 다문화교실에서 다문화교육 내용을 직접 전달할 때 느끼는 부담감을 덜어준다. 문학 작품을 활용한 다문화교육의 원리로는 다문화 사회의 현실 인식 및 다른 문화 이해의 원리, 다른 문화권의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의 원리,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체성 형성의 원리를 들었다. 교육 원리에 따라 다섯 가지 작품 선정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다섯 가지 기준은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핍진하게 보여주는 작품, 문화적으로 공정한 시선에서 서술한 작품, 다문화로 인한 갈등 외에 다양한 갈등이 함께 드러나는 작품, 문화 간 유사성이 드러나는 작품, 독자의 수준을 고려하여 다문화 사회를 반영한 작품이다.
        302.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청옹 이명기는 17세기 후반 숙종조 조선왕조의 사대부들 사이의 당쟁이 격화되고 있었던 시기에, 중앙정부의 정치권력에서 점차 더욱 멀리 소외되고 있었던 밀양 사림을 대표하였던 인물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임진란 전후로 밀양의 내진리에 정착한 벽진이씨의 후예로서, 한강 정구 및 여헌 장현광의 학문 연원에 접속하였던 부형들이 전수한 家學을 토대로 학문을 성취하고, 부형들로부터 이어진 世交를 이어받아, 과거를 통하여 중앙정부의 관직에 진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진사가 되었는데, 집안의 喪故와 경신환국과 임술고변,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 더욱 격화되어가는 당쟁의 와중에 到記科에서 直赴會試의 은전을 받았지만 실현되지 못하였고, 예순이 넘은 만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지만 그 또한 관직에 임용되지 못한 채로 별세하였다. 나는 이 글에서 청옹의 생애 전 과정이 숙종조의 당쟁이 격화된 시점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하고, 그 생애 이력의 파란이 당쟁과 관련이 있음을 방증하는 한편, 당쟁의 시대에 지방 학교의 건설과 교육에 종사하였던 지방 사림의 역할과 그 시문의 문학적 성취와 특징적 면모를 드러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청옹문집��에 실린 시문을 개관하는 한편, 문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문 십여 건을 찾아내어 그 내용을 소개하였고, 또한 청옹의 시문은 시어가 平順하고 義理가 雅正하다는 기왕의 논평을 기반으로, 이와 관련됨직한 몇몇 시문을 예로 들어 그 의미와 의의를 유추하여 논증하고, 산문으로 「紅紙說」 한 편을 분석하여 당대의 인재등용에 대한 풍자의 의의와 小品文으로서의 의의와 특징을 논하였다.
        303.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회당 이이두는 퇴계 사후 寒岡 鄭逑 계열의 학통을 계승하여 퇴계의 학통이 밀양사림들에게 주류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퇴계 학통의 또 다른 한 맥인 학봉 계열을 계승한 갈암 이현일과는 교우관계로 아들을 갈암에게 배우도록 인도하기도 하였다.남회당 이이두의 생애는 ‘孝友’로 대표할 수 있는 생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학��을 통해 법도를 익히고 조금의 어김도 없이 몸소 실천하였다. 부모님이 살아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봉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팔십이 다된 노구로도 조상을 섬기는 예를 어김없이 실천하여 지역의 유림들에게 존숭의 대상이 되었다. 남회당은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우의 또한 깊어 만년에 친가의 작은 터에 오두막을 짓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그리워하여 ‘覽懷堂’이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남회당은 시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특히 그가 지은 賦 5편은 다른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문학성과 작품성이 있었다. 그의 시에는 부모와 형제에 대한 정과 자연속에서의 은일과 자적, 학문에 대한 열정 등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의 부 5편은 그의 문학적 지취와 학문적 역량이 집약된 작품으로 조선중기 이 지역 한문학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304.
        2013.08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paper intends to suggest some issues in relation to Korean literature education plan for Chinese students. It is very regrettable that Korean literature education has been little educated in the Korean education field for Chinese students. Even though many people think that education of Korean literature in educating Korean is unnecessary or unuseful. The main problem of literature education is the lack of useful textbooks. Therefore development of teaching materials meeting Chinese students' level is essential to improve the level of educating Korean for Chinese students. This paper hopes to contribute professors, teachers educating Korean for Chinese students to develop their teaching skill.
        305.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藍溪 表沿沫(1449, 세종31-1498, 연산군4)의 작품에 나타난 그의 학문자세와 사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藍溪는 일찍 부모를 여의어 유년기의 그의 삶은 그다지 호화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스승과 좋은 벗들을 만났다. 특히 그가 태어나 24살 2월까지 살았던 咸陽은 그의 꿈과 희망이 깃든 곳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성리학이 성장할 때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스승은 점필재였고, 서거정은 그의 座主였다.그가 깊이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 점필재의 제자이면서 그와는 동문관계인 사람들이었다. 그 외 그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있다 寒暄堂과 一蠹가 도학면에만 뛰어났다면, 藍溪는 道學과 文章 두 가지에서 뛰어났다. 그의 「謹次朱子感興」시 20수는 그가 주자학을 구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藍溪는 道學과 文章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中庸』에 나오는 ‘尊德性 道問學’이라는 말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다루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서서히 싹이 트기 시작한 新儒學, 즉 性理學을 보다 깊이 체득하였고, 작품을 통하여 이론화 한 先驅者였다. 實踐 倫理面에서 보면, 藍溪는 春秋史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의식 속에는 正名思想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의 心性修養, 즉 存心養性을 통하여 도학을 실천하였다. 그는 明道學, 闢異端의 이론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 하였다. 그는 현실에 대해 憂患意識이 있었다. 그는 고고한 선비로서 王道政治 통한 道德的 理想主義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뒤의 靜菴 趙光祖의 이상과도 통한다. 그의 삶과 정신이 繼往聖 開來學이라는 말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意義를 지닌다.
        306.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 20주년을 기념하여 남명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남명문학 연구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의 연구 성과를 장르별로 분류하고, 『남명집』에 수록된 문체 유형에 따라 운문과 산문 분야, 총체적 분야, 비교문학적 분야 등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남명문학 연구는 현재까지 100여 편의 성과가 산출되었다. 남명의 창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수치이다. 이의 검토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예컨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남명 삶의 특징적 국면을 강조하는 연구가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또 이를 대변할 만한 소수의 작품만이 지속적으로 재인용되었다는 점, 특정 분야의 연구는 초창기 이후 장기간 정지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있다. 연구가 지속되어 성과가 증가했음에도 이러한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남명문학 연구가 직면한 총체적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명문학 연구의 절대적 분량을 차지하는 한시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남명집』의 한시와 남명의 일대기를 대조하는 작업이다. 『남명집』의 수록 체계가 시대 순이 아니고 作詩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명의 삶은 크게 네 번의 전환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뚜렷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왔다. 적어도 이러한 4 시기로의 분류만이라도 가능하다면, 현재 소강상태에 있는 남명문학의 연구는 한층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307.
        2011.09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한국어교육은 언어 사용 능력 향상과 함께 문화능력 향상도 중시하고 있는 추세이다. 문화능력이란 폭넓은 영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적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문화 영역 중에서 문학 영역, 그리고 그 안에서 고전문학을 교수학습하고자 한다. 학습 대상은 부산외국어대학교 학부생으로 학부 전공필수 과목인 <한국 전통문화의 이해> 수업에서 한국 고전문학을 한 부분으로 설정하여 내용을 선정하고 그 실제를 진행해 보았다. 본 수업을 통해 들은 한국 고전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활동을 통하여 문화능력의 향상과 더불어 언어능력의 향상도 이룰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한국 고전문학의 교수학습을 위하여 유에게 교수학습 가능한 수업 내용이 제시되고, 이를 통한 그들의 문화능력과 언어능력이 함께 신장되기를 기대한다.
        308.
        201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Eliot has been known as a poet and critic for being so serious and moralistic that he might teach his readers. Yet, he published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 in 1939 for children, especially for his friends. In this sense, this poetry is aimedat amusing children with an allegory of a variety of cats. Usually, the style that children like lies in amusement in form and satirical language in use. Eliot knew it; so it is an interesting task to examine the significance of the old possum, his nickname, from the poetry for children, and the poet hidden behind the nickname. The Old Possum poetry appears to take into account what children like: a poetry collection of amusement and seriousness put together for children using lively rhythms and regular rhymes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practical cats. The poetry shows a variety of each cat’s characters and habits, which, the poet believes, practically reflect various forms of human life. Above all, Eliot tried to associate practical cats in profound meditation with himself as a thoughtful, yet invisible poet and critic just like the wild, yet shy animal: a metaphor of the old possum in poetry.
        309.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e case of T. S. Eliot, the difference between the use value of literature and its exchange value stems from the philosophical difference between the inner value of literature and its outer value. In the view of literature from an economic value, its exchange for money means the exchange of cultural and literary capital. Yet, it is not easy to ignore Marx’s concern the about the disturbing author’s consciousness of social criticism and his/her communication with reader’s when a literary work exceeds its worth by a critic in terms of commodity fetishism. But, if insight about human beings and society turns out to be a property of capital as a productive added-value, its literary worth is so satisfying that the fetishism of the reader as a consumer for the book cannot be an irrational action towards the market. From such a view, the study of economics of literature in the case of Eliot, gives us an instance in which we can find the use value of humanities in literature and its exchange value in terms of economics. As a poet, critic, and publisher, Eliot can be a most valuable person in literary history necessary for the study of literature in the light of economics. This paper examines Eliot through the effect of unity between literature and economics on the study of economics of literature and its positive elements in market, such as literary production, publica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310.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南冥 曺植(1501-1572)의 「神明舍圖銘」은 한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 것 으로, 그의 엄격한 수양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고에서는 남명의 「신명 사도명」을 계승한 남명학파 학자들의 문학 작품 5편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 써, 지리산권 가운데 하나인 진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명학파의 마음 공 부를 이해하는 일단의 실마리로 삼았다. 대상으로는 삼은 작품은 龜巖 李楨의 「神明舍賦」, 東岡 金宇顒의 「天君傳」, 寒沙 姜大遂의 「神明舍記」, 台溪 河溍의 「神明舍記」, 俛宇 郭鍾錫의 「神明舍賦」 등이다. 이 5편의 문학 작품이 가지는 재해석의 면모와 시대적 의미를 고찰해 볼 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그 결론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명의 「신명도사명」을 각기 계승하되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와 중 요성을 저마다의 입지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5편의 작품 들은 자신의 관점과 시대적 필요에 의거해 「신명사도명」의 핵심을 파악하는 해 석의 각도가 차이를 빚게 되었다. 따라서 부각시키려 한 중심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남명학파의 계보상에서 저자들을 구분해 볼 때,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남명학파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가늠해 보게 된다. 구암과 동강의 작품은 ‘남명학의 계승과 전파’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사와 태계의 작품은 인조 반정 직후 남명학파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봉착하여 ‘학 맥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면우의 작품은 외세의 침략과 국 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에 유학적 마음 수양의 指南으로서 ‘남명의 심학을 천양’한 것이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
        311.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면우 곽종석의 문학사상을 고찰한 것이다.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기본 적인 사고들을 문학사상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내용별로 본질론·창작론·비평론 으로 분류하여 검토하였다. 본질론에서 면우는 도덕을 갖춘 吉人이나 君子의 문장을 진정한 문학이라 보 았다. 이때 도덕이란 일종의 작가의 내면세계인데, 그것은 전통적 문예이론에 서 말하는 작가의 내면에 축적된 志趣·個性·才能·品格의 文氣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면우는 문학의 본질에서 문학작품이 단순히 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알 게 해 줄뿐 아니라 그 시대 정치의 治亂得失과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를 알게 해 주는 治世의 자료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즉 知人論世와 移風易俗의 기 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라고 본 것이다. 또 문학에서 추구해야 할 본질은 文藝性을 고도로 높이는 것이나 명망을 추구함에 있지 않고, 오직 자신 의 인생에서 實質을 추구하여 실천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면우는 文의 實이라 하였다. 문학의 본질로서의 實이란 存心과 立誠의 학문을 통하여 도덕 을 내면에 확충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부득이하여 유출된 말이 글로써 형상화 된 것이었다. 그것을 면우가 인용한 말로 표현한다면 작가의 층위에서는 修辭 立誠이고, 사회적·문화적 층위에서는 經天緯地의 文이다. 창작론에서 면우는 存養省察과 學問講究와 常行以謹과 凡事以理가 축적되어 부득이하여 말에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읊조리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는 창작의 과정이 求道의 과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求道의 과정과도 같은 創作의 과정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에 대해서 문으로 표현하려는 대상에 대한 깊은 理解와 識見의 올바름과 實踐의 專一함을 들었다. 또 면우는 곧바로 率性의 학문을 닦아 나아가다보면 文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成文章의 경지 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의 과정에서도 결국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내면의 도덕을 확충하는 存心의 공부이지 文辭의 枝葉을 좇는 공부가 아 니라는 것이다. 즉 求道의 과정으로 표현한 창작의 과정에서 存心의 공부는 그 핵심을 이루는 방법론으로 제시된다. 비평론에서 면우는 이반룡·왕세정이 작품의 실제에 보인 擬古的 실천이 부정 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문장을 전범으로 삼는 것 에 반대하였다. 典範을 상정함에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道에 얼마나 羽 翼이 되는가에 기준을 두어 玉石을 가려서 취해야 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左 傳󰡕과󰡔國語󰡕와 같은 先秦兩漢의 규범적 텍스트조차도 취사선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 文을 비평하는 기준으로 작가의 내면에 축적된 學問과 節槪에 두었 다. 한편 면우는 공령문의 폐해가 심지어 道를 밝히는 말이나 학식이 높은 자의 詩나 聲律에 맞지도 않는 글을 막론하여 퍼지고 있음을 개탄하였다. 衰世의 文 章에 亡兆가 든 단서를 功令文에서 찾은 것이다. 면우는 文明의 한 기축을 담당 하는 문학이 허물어져간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文明守護의 차원에서 扶持하려 고 노력하였다.
        312.
        2009.06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한국어 교재에 나타난 문학 텍스트와 문학 텍스트의 학습 활동을 분석하여 한국어 교육에 나타난 문학 교수-학습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재분석 결과 한국어 교재에 수록된 텍스트 중 문학 텍스트는 극히 일부이며, 장르가 다양하지 않고, 대부분 중급과 고급에 치우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재에 제시되어 있는 학습 활동의 유형에 주로 어휘 학습과 읽기, 말하기에 한정되어 있다. 한국어 교육에서 문학 텍스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인의 정서과 주제의식, 문화적 요소는 물론 언어적·기능적 사용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텍스트를 선정해서, 수업의 목표와 학습자 유형, 과제 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학습 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314.
        200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滄海 文尙海(1765-1835)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진주 인근에 살았던 남명 연원가의 한 사람이다. 이 시기 경상우도 지역의 학자들이 인조반정 이후 出仕 하지 않고 지방에 퇴처하여 학문연구와 修身에 치중하여 살았던 것처럼, 창해 또한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일생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서 不斷한 수양자세로 일관하였는데, 이러한 삶의 자세는 그의 문 학작품 속에 고스란히 표출되어 있다. ..창해집..에는 그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이 시기 경상우도 지역의 여느 지식 인의 문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문체의 글이 실려 있다. 漢詩의 경우 조선조 지식인에게 통용되던 오언시와 칠언시 외에도 六言詩가 6수나 들어 있 으며, 그 외 記·說·詞·傳·訓·銘·歌·賦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골고루 실려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재야지식인으로서의 ‘끊임없는 수양하기’가 일관되게 나타 난다. 곧 유사한 내용을 읊어내더라도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해 낸 경우인데, 이 는 창해가 그만큼 풍부한 문학적 소양과 다양한 창작활동 욕구를 지녔음을 의 미한다. 문학작품 가운데 특히 시를 중심으로 효용론적 측면에서 孝行詩·紀行詩·愛民 詩·修養詩·隱居詩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는데, 그 속에 드러난 창해의 문학적 志 趣는 재야지식인으로서 삶 그 자체였다고 하겠다. 그는 출사하여 자신의 이상 을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조선조 지식인으로서의 處世, 士意識, 愛民精神 등을 다양한 문체 형식을 빌어 작품 속에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315.
        200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芳洲 文國鉉은 둔암-성재-순암-성호-퇴계로 이어지는 학통에서 발견되는 보수적이고 반외세적인 영향으로 일찍부터 서구세력의 동점을 경계했다. 외세에 의한 침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자기 수양과 함께 유학의 부흥과 후진의 양성이었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조선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과 국권의 상실의 역사적 상황은 그로 하여금 그의 이념의 적극 적인 실천 보다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와 은둔을 선택하게 하였다. 은둔자로 자처하던 방주는 개방적이기 보다는 보수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여 유가의 전통적인 이념을 묵수하면서 혼란한 시대에서도 本性의 유지와 심성의 함양을 통한 인간 도리의 실천 그리고 유가의 전통적인 학문 공부를 통해 미래 사회에서의 재기를 꿈꾸었다. 이 시기의 방주의 학문경향이나 문예관은 조선 500여년을 면면히 이어온 유 가적 학문・문예관을 충실히 계승하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근대로 들어서는 시 대 상황을 고려하여 평가할 때는 역사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또는 동참하 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유학자로서의 문예관을 고수한 인물로 평가된다.
        316.
        200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文劼은 어려서부터 문명을 떨쳐 소년시인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 작 품을 남겼고, 정유재란에 하수일과 의병을 일으켜 하동의 악양에서 활동함으로 써 이들 덕분에 이 지방이 온전하였다는 평과 조정의 상을 받기도 하였다. 文弘 運은 아버지를 따라 악양에 있다가 아버지가 병사함에 전란의 와중에서도 장례 를 치루고 그 이후로는 유거하며 지냈으며, 그가 남긴 「頭流八仙遊篇」은 지리 산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頭流八仙遊篇」은 문홍운 자신을 비롯하여 성여신, 정대순, 강민효, 박민, 이 중훈, 성박, 성순의 여덟 사람이 성여신의 제의에 따라 두류산을 유람한 과정과 느낌을 읊은 시이다. 이 시는 지리산 유람을 노래한 여러 시편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240구 1,200자에 이르는 장편 5언시이다. 특기할 것은 성여신의 「방장 산선유일기」 가운데에도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는 여덟 사람을 신선이라 부른 것이다. 선비들이 자신들이 유람을 가는 곳을 신선세계라 하며, 그곳을 속세와 구분하 여 마치 신선세계에 오른 듯이 그 감회를 기록한 것은 있지만, 유람 가는 자신 들을 신선이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인에게 신선의 이름을 이처럼 지어붙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이들의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이 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또한 한 번의 일회적인 유희에 그치지 않고 유람하 는 동안 내내 이어졌음을 성여신과 문홍운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여신이 “속에 들어가서는 눈에 띄는 사람 모두 선인이었고, 산 밖으 로 나와서는 만나는 사람 모두 범인이었다.”라고 한 바와 같이 이들의 이러한 신선놀이는 결국 유자로서 신선에 인식의 테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 다. 문홍운이 지리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과 예찬이 극 에 달하였지만, 막상 그가 지리산에 당도한 뒤 특히 지리산 청학동이나 향로봉 에 올라 읊은 평범한 시구는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홍운은 그의 시에서 청학동이나 향로봉에서 신선세계에 당도하여 신선을 보았다고 했으나, 이는 보통 사람들의 신선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곧 문홍운의 신선놀음도 결국은 성여신이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의 선유는 이름은 비록 ‘仙’이나, 실제는 ‘仙’이 아닌 것 이다.”라고 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17.
        200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16세기 초 경상좌도의 퇴계학파와 더불어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경 상우도 남명학파의 宗匠이 된 南冥 曺植의 문학과 교육에 관한 연구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에서 그의 문학에 나타난 敬·義 사상을 바탕으로 한 實踐躬行과 그의 교육에 나타난 因人施敎의 下學上達의 교육관 등을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명이 퇴계에게 보낸 書信에서 '입으로만 天理를 담론하는' 16세기 당시 성 리학의 한 특징이라고 할 이론적 측면만을 중시한 사실에 비판을 가하면서 形 而上學의 이론적 논쟁에 앞서 形而下學의 실천적인 덕목이 필요함을 주장하였 다. 남명의 제자 김우옹도 스승에 대한 회고에서 '몸소 실천하는 공부는 매우 돈 독하다'고 하였다. 「言行總錄」·「戊辰封事」 등에서도 敬·義 사상으로서의 실천궁 행을 강조하였다. 그의 <浴川>에서는 敬의 마음으로 義가 내포된 活敬의 의미 를 드러내었으며, <經傳>에서는 맹목적인 학문이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 직접적 으로 필요로 하는 실용성의 학문을 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처럼 남명의 실천력 강조는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기점이 될 수 있었다. 남명의 因人施敎 교육은 배우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가르침을 베푸는 것 이다.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학습자의 연령대와 능력 자질에 맞추어 교육하여 그 피교육자의 능력, 자질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제자에게는 그에 맞는 교육 방법을 택하였으며, 성품이 성급 한 제자에게는 천천히 행할 것을 당부하는 뜻으로 걸음이 느린 황소를 타고 가 게 하였다. 이 같은 교육 방법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행한 因人施敎의 교육 방법 이었다. 이 같은 유학자의 교육 방법은 ‘老莊爲崇’의 주장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墓碣銘」·󰡔學記類編󰡕 등에서도 下學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 다. 經世致用的 학풍을 지닌 정구는 남명의 제자인 오건의 제자이고, 후기 실학 파와 직접 접목된 허목은 정구의 제자이기도 하다. 정구·허목 등의 經世致用的 학풍과 考證學的 경전 해석은 실학의 泰斗인 이익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처럼 남명의 인인시교의 교육 방법과 下學을 통하여 上達해 나가는 實踐躬行的 교육 사상은 조선 후기에 꽃을 피운 實學思想의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18.
        200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士農窩 河益範(1767-1813)은 滄洲 河憕 및 그의 손자 河洺으로 이어진 가학 을 계승한 바탕 위에 尤庵學派의 性潭 宋煥箕에게 경학과 성리학을 배우고, 鏡 湖 李宜朝에게 예학을 배워 韓元震-宋能相-宋煥箕․李宜朝로 내려오는 학맥에 속하게 되었다. 그는 성담에게 집지함으로써 학문적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尤 庵家와 世交를 돈독히 하는 두 가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사농와의 삶의 지취는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산 曾點의 방식을 추종하면서 仁 智之樂을 추구한 데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實心․實學으로 爲己之學을 하는 用實心務實學의 務實精神으로 나타난다. 그의 문집에는 紀行詩와 紀行文이 대 부분을 차지하여 문학적 특징으로 부각된다. 그의 기행시는 크게 山水遊覽과 求道觀光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지리산 등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지은 것이고, 후자는 스승의 문하에 나아가고 한양을 관광하면서 지은 것들이다. 그의 기행문학작품에 나타난 작가의식으로는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째, 산수유람을 좋아하는 성품으로 자연에 몰입하는데, 그것은 현실에서의 불 화를 달래기 위한 측면보다는 曾點의 경우처럼 天人合一의 경지를 추구하는 仁 智之樂에 心醉하는 정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둘째, 산수유람이건 구도관광 이건 그의 기행문에는 源頭處를 향하는 求道意識이 깊게 스며 있다. 셋째, 그의 기행시문에는 선인의 유적을 만나 역사를 회고하는 작가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데, 선현의 道德과 志節을 흠모하기도 하고 선현의 불행을 탄식하기도 하며 불 교의 황당한 설을 비판하기도 한다. 넷째, 그의 기행시문에는 南冥精神을 환기 시키며 그것을 본받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 있다.
        319.
        200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초등학교 학습자들은 이야기를 즐겨 읽고, 이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학습자의 흥미와 발달 수준을 고려하여 볼 때, 이야기 제재는 향후 문학 경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 교육은 텍스트 위주의 구조적인 특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대부분 읽기 영역에서, 학습자들의 텍스트 이해에 초점을 두고 지도되었다. 문학 영역에서 이야기는 학습자의 생각이나 느낌 위주의 감상만을 해 왔고, 의미를 구성하는 문학 감상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명숙(2003)의 연구는 이야기 구조 교육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는 텍스트와 학습자 모두를 존중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깊이 있게 감상하는 방법에 속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 연구 방법이 문학 감상 능력을 신장시켜주는 도구 역할을 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검증해보고자 했다. 학습의 실제 양상은 문화 기술적 방법으로 접근하였고, 문학 반응을 분석하여 문학 감상 능력의 신장 정도를 파악하였다. 이는 학습자들의 언어, 비언어적인 반응 및 학습 결과물, 반응일지, 면담을 통해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이해적 반응을 주로 보이던 학습자들이 해석적 반응, 평가적 반응, 정의적 반응을 보여 이야기 감상 능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습자들은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을 즐거워하여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읽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감상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와 감상의 폭이 넓어지고 문학적 표현력이 향상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학습자의 독서 동기를 활성화하여 향후 독서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본 연구는 학습자 내면의 변화를 확인하기에는 짧은 기간 동안 연구를 하였고,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모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이야기 교육이 실시되기를 기대한다.
        320.
        200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遺逸은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문학의 작자층 가운데에서 학덕이나 재능을 지 녀 朝官이 될 자질을 갖추고도 벼슬하지 않고 재야에 은거하는 未入仕者를 말 한다. 士禍라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근거지로 은거한 이들은 현실 을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는 학문연구와 심성수양을 통해 온전한 인격을 추구하 였으며, 향촌을 교화하고 도학을 전파하는 등 경색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士 로서의 정체성 확립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중과 신망이 조 정에서 벼슬하는 관료보다 더 높아져, 조정에서는 이들을 예우하여 徵召하였다. 곧 遺逸은 출사하지 않으면서도 지방에서 백성의 신망이 두텁던 당대 碩儒들로 서, 우리 역사상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시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의 터전은 산수자연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은거지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고, 은거지 주변의 명산과 절경을 유람하는 것으로 이를 표출하였다. 유람 에서 만나는 자연경물에 자신의 심정을 붙여 술회하였는데, 그들에게 있어 산 수자연은 ‘본래 그러한 것, 본래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으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특히 16세기 조선조는 성리학 연구의 심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이 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성리학자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산수자연은 당대의 不正한 현실을 인식하는 자신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특히 은거지 중심의 유람에서 표출되는 산수자연은 현실에서의 좌절을 수양으로 승화시키는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성리학자였던 만큼 자연경물을 통해 현실의 不 正 및 민생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고, 역사유적지를 접하면 그 시대를 회고 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무엇보다 물러나 있지만 자아를 각성하고 심성수양에 진력했던 이들에게 산수자연은 士意識을 고취하는 매개로 작용하였다. 곧 당대 관료세계에 피동적으로 편입되기를 거부 하고 물러났던 조선조 士人의 의식을 산수자연으로 표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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