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문학 사상은 다양한 기원을 갖고 있다. 이상화는 민족종교인 천도 교(동학)와 대종교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연구되어 있는데, 본고에서 는 민족종교적인 영향을 받은 이상화의 문학이 민중인식과 창작방법 면에서 어 떤 특성을 보여주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우주의 변화에 따라 도래하는 새로운 시대에는 민중이 주역이 된다는 이상화의 민중론은 정역(正易)에 기반한 후천개 벽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화의 시에서는 복수주체화된 시적 화자 를 관찰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모든 조선인으로 확대되어 그 자체로 민중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시적 황홀경이나 물아일체와는 다른 이런 양상은 민족종교 에서 ‘내유신령(內有神靈)’의 원리에 따라 접신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신)들 림’과 유사하다. 들림은 주체 외부의 것이 주체를 점유하는 현상으로 빙의(憑依) 라고도 하는데, 엘리아데가 샤마니즘에서 보고한 샤먼들의 ‘탈혼’과는 반대 방향의 접신술이며, 한국의 무당은 탈혼과 들림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되어 있다. 본고는 이상화가 무당이라거나 신들림 현상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 니다. 다만, 이상화는 천도교 등의 민족종교를 깊이 있게 알았던 것으로 보이며, 신비 체험으로 전해지는 수운 최제우의 도통(道通)을 ‘들림’의 전범으로 삼았을 듯하다. 탈혼과 들림은 창작방법론과도 연관될 수 있다. 시적 관찰, 즉 주관적 감각의 외적 투사는 외부의 객관적 상관물을 관찰한 후 다시 주관으로 돌아와 쓴다는 점에서 탈혼으로 비유할 수 있다. < 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도 시적 화자는 ‘탈혼’의 방법으로 망아(忘我)의 상태에서 봄 정경을 관찰한다. 이 상화 시의 특별한 점은 들림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 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의 시적 화자에게는 봄신령이 ‘지펴 있다.’ ‘지피다’는 ‘신이 들린다’는 의미 이다. 이상화의 시에서 시적 화자에게 ‘들리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거니와 그 것은 시간을 초월하기도 하며, 거대한 금강산, 나아가 조선 그 자체라는 더욱 거대한 것들이 들리기도 하여, 동양적인 숭고의 미감을 전할 수 있다. 시적 화자 한 사람(小我)에서 조선(大我)으로 확대되는 이 과정이 잘 이루어질 때 시인은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 이상화의 시의 근간에 대해서는 유신지의 연구가 독보적이다. 본고는 이에 더해 다음을 주장한다. 이상화는 민족종교와 무속의 탈혼과 들림을 창작방법으 로 사용했다. 이는 이상화의 시론에서 미묘와 융화에 각각 대응한다.
이 논문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프닌에서 나보코프가 어떻게 아버 지와 아들, 그리고 예술적 조화를 통한 삼위일체의 개념을 구현하면서 예술과 종교의 양상들을 묘사하는지 고찰한다. 소설에서 나타나는 러시아 및 서구 예술 에 대한 분석과 종교적 주제를 분석하면서, 나보코프의 예술관과 종교관에 초점 을 맞추고자 한다.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림 삼위일체 의 화법 과 주제를 적용하여, 나보코프가 그리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예술적 조화 혹 은 종교적 신성을 통해 나보코프가 그린 약한 자에 대한 자비와 동정을 통해 어 떻게 아름다움을 나타내는지 살펴본다. 러시아적 전통의 바보 성인의 개념을 통 해 나보코프의 프닌에서의 주인공, 프닌이 경험하는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분석하며, 나보코프가 그리는 기독교적 사랑과 구원에 대한 측면을 탐구한다. 더불어, 나보코프 문학 속에 나타나는 종교적 주제와 공중부양과 나 비와 같은 예술적 주제를 통해 나보코프가 창조하는 예술의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영화 <수리남>을 통해서 종교적 기 능의 상실과 사회적 종교 걱정의 시대에 대한 논의를 수행하는 것이다. 영화에 서 감독은 종교적 기능과 가치가 상실되고 마약과 종교가 긴밀하게 연계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마약은 숭배의 대상으로서 물질주의적 현대사 회의 단면을 극단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영화에서 마약 밀매업자로서 종교 지 도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현대 종교 지도자들의 범죄, 마약, 탐욕, 그리고 물질 집착 등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 사회적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 종교가 작동했던 것과 달리 현대사회 일부 종교 지도자는 주도적으로 범죄나 물질적 탐욕에 관여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은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직면하는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종교의 타락은 절망적 환경이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 문이다. 현대 종교는 기능 상실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인식하고 종교의 본 질적 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정지용의 비로봉1 의 종교적 해석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통 해 시적 위상을 재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로봉1 은 종교시와 산수시의 정신주의가 교차하는 복합적 미학을 드러내는 시편이며, 정지용의 시 세계에서 종교시와 산수시로 이행하는 시적 여정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이다. 본 연구는 비로봉1 의 핵심적 상징을 ‘불’과 ‘이마’로 보고, 산 정상에서 ‘이 마’를 통해 초월적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과 ‘성냥불을 그싯는’ 행위로 형상화된 신앙적 태도의 결합을 고찰함으로써 비로봉1 해석의 지평을 넓힌다. ‘이마’ 는 인간과 초월적 자연을 연결하는 감각적 통로로 작용하며, ‘성냥불’은 내면의 불꽃이 점화되는 상징적 순간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시적 주체는 비로봉 정상을 ‘육체 없음’의 장소성을 경험하며, 연정을 ‘산드랗게’ 얼게 하는 행위를 통해 내적 평온과 정신적 고양에 도달한다. 이러한 귀결은 차갑고 평화로운 정 신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정지용 시의 사유 방식이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보여 준다. 비로봉1 은 신앙적 숭고와 정신성, 그리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경외감 이 응집된 결절점으로서 정지용 시 세계의 내적 연속성을 입증하는 시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독일고전철학과 현대 인공지능 기술을 연결하는 시도를 다 룬다. 셸링은 자연을 단순한 물리적 실체가 아닌 내재된 잠재력과 창조 성을 가진 유기체로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은 인공지능(AI)의 발전과 창 의적 활동에 적용될 수 있다. 또한 AI가 데이터와 알고리즘,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연결되고 재창조되는 과정을 셸링의 자연철학과 비교하 여, 종교적인 의미에서 주체성 문제를 탐구하고자 한다. 셸링의 철학에 서, 신적인 전체와의 연결을 통한 자의식의 근거를 고려하며, 인간과 자 연, 주체와 객체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연결사(correlat)' 개념을 강 조한다. 셸링은 자연과 정신의 관계를 단순한 인과적 연결로 보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한 생산적 과정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AI의 발전과 인간의 자의식 간의 유사성을 드러내며, AI가 지닌 자발성 은 자연의 복잡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도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의식을 지닐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AI와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AI는 상징적 접근과 연결주의를 결합한 인지 설계를 통해 종교와 같은 고차원 적인 기능을 모델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55세 이상 중고령자들의 사회자본이 자살태도에 미치는 영 향과 종교성의 조절효과를 조사하기 위하여 2021년 한국종합사회조사 (KGSS) 데이터를 활용하여 595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분석결과, 사회 자본 중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자살을 허용하는 태도를 낮추는 요인 으로 작용한 반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회에 대한 신뢰'는 불치병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살을 허용하는 태도를 증가시켰다. '상호관심의 호혜성', '가족관계만족도', '사회참여활동'은 특정상황에서 자살에 허용 적 태도를 나타냈다. 둘째, 종교성이 자살태도에 미치는 영향에서 높은 종교행사참여는 '삶이 피곤해서 죽고 싶은 경우' 자살을 허용하는 태도를 높였다. 셋째, 사회자본이 자살태도에 미치는 영향에서 종교성의 조절효 과를 분석한 결과, 높은 종교행사참여는 '불치병'과 '파산' 상황에서 자살 태도를 완화하는 보호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삶이 피곤해서 죽고 싶을 경 우' 자살을 허용하는 태도를 강화했다. 강한 믿음은 '삶이 피곤해서 죽고 싶을 경우'와 '공공기관의 신뢰' 사이에서 자살을 허용하는 태도를 완화 하는 보호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특정상황에서는 자살태도를 강화하는 조 절효과도 나타냈다. 본 연구는 횡단적 자료의 한계와 종교별 종교성을 다루지 못한 제한점이 있으나, 사회자본과 종교성이 자살태도에 미치는 영향의 복합성과 양면성을 실증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중년여성의 자아존중감과 회복탄력성의 관계에서 종교적 신 념과 낙관성의 매개효과를 검증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중년 여성 210명을 대상으로 자아존중감 척도, 회복탄력성 척도, 종교적 신념 척도, 낙관성 척도를 온라인 설문지를 활용하여 실시하고, 그 중 201명 의 자료가 분석에 활용되었다. 수집된 자료는 SPSS 25.0과 PROCESS Macro 3.5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관분석 결과, 자아존중감, 회복탄력성, 종교적 신념, 낙관성의 연 구변인 모두 정적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자아존중감과 회복 탄력성의 관계에서 종교적 신념과 낙관성이 부분매개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한점 및 후속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였다.
본고는 안병호에 의해 쓰여진 「오타 줄리아 전」과 후데우치 유키코(筆内幸子)가 지은 오타 줄리아의 생애(おたあジュリアの生涯)를 한국어로 번역한 오타 쥴리아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종교적 인물로 숭상받고 있는 ‘오다 쥬리아(大田 Julia, ?-?)’에 대한 글쓰기 양상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허구 ‘사이’에서 종교적 믿음을 형성하기 위해 나타나는 수사학적 전략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인물에 대한 담화 구성의 차이를 통해 형성되는 종교성에 관해 살펴본다. 두 글쓰기는 오다 쥬리아가 보이는 천주교 신앙의 모범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독자들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게 하기 위해 신앙인으로서의 자질(/존재(être)/)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것에 관한 /현상(paraître)/과 함께 서술하는 수사적 전략을 보인다. 하지만 담화 구성에 있어서 전자는 그녀를 약초 지식과 의술에 기반하여 종교적 삶을 실천한 ‘치유자’로, 후자는 박해 속에서도 일본에서 천주교 신앙을 지킨 ‘수호자’로 오다 쥬리아에 대한 서로 다른 종교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소통한다.
본고는 종교의 스포츠 수용에 관한 이론적 틀을 만들어서 앞으로 종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스포츠와 종교 간의 긴밀한 관계는 특히 스포츠 선교가 복음 전파의 통로로서 큰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스포츠가 종교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전통적인 종교의 경건성, 엄숙성이 주는 무게나 어렵고 딱딱한 분위기를 스포츠가 매력적으로 또는 즐겁게 변화시 켜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스포츠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이 레크리에이션이다. 서구에서 18, 19세기 산업사 회로 옮겨가면서 사회복음이 출현했는데, 특히 이 복음에는 ‘오락과 스포츠’, 바로 레크리에이션을 포함했 다. 교회 레크리에이션은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스포츠와 복음적 메시지의 결합 은 교회의 필수적인 프로그램으로 의미, 도덕 및 목적에 대한 현대의 불안을 해소하는 하나의 출구를 제공한다.
현대는 개인의 정신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이름하에 개인이 가지는 종교적 믿음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 수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반해 종교적 근본주의는 종교적 믿음의 순수성과 해석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관점들은 서로의 극단적인 지향점에만 치중한 채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 물음이란 바로 (1) 종교의 근원은 무엇이며, (2) 결국 인간이 중심인 종교에서 다양성과 배타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근원적인가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물음들 가운데 (1)을 그의 저작인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현상학적으로 탐구하고, 「믿으려는 의지」라는 논문에서 (2)를 믿음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탐구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임스가 두 저술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문제의식을 살펴보고, 그가 던지는 종교적 혹은 윤리적 시사점들이 가지는 현대성에 주목하여 그것이 현대 정신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본 연구는 오늘날 동서양을 대표하는 종교 불교와 기독교의 신앙적 기초와 발전 과정의 깊이를 알고 근본적인 차이와 유사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갖는다. 이에 두 창시자 의 종교체험을 비교하고 마(魔)의 시험은 무엇을 의미하며 마(魔)를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를 통해 그들의 종교를 시원적으로 이해하여 종교발전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다. 불교의 자력(自力) 신앙과 기독교의 타력(他力) 신앙의 창시자인 붓다와 예수 의 종교체험을 살펴보고 첫째, 붓다와 예수는 종교를 어떻게 체험하였고 둘째, 종교체험 시 마(魔)의 유혹은 무엇을 의미하며 마를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문제를 제시하여 다룬다. 결론적으로 마(魔)의 유혹은 세속적인 권력과 교환 조건으로 종교적 사명 을 단념시키려는 유사성을 가지며, 마(魔)의 극복은 종교가 형성되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인 자력 신앙과 타력 신앙의 방법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받쳐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인 타력 신앙과 불교 신앙을 받쳐주는 지혜에 대한 믿음인 자력 신앙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며 신앙생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여 지속적인 영적 지도와 영감을 제 공한다.
이 연구는, 생활종교(lived religion) 연구 방법을 사용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이자 가톨릭 신자인 박완서와 공지영이 어떻게 그리스도교를 해석하고 그것을 문학적 실천에 반영했는지를 탐구한다. 박완서는 종교는 사람의 중심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라 보았고, 이에 따라 반성을 중요한 종교적 실천으로 보았다. 반면에, 공지영은 종교는 사람의 진실을 알아주는 것이라 보았고, 따라서 자기 용납을 중요한 종교적 실천으로 보았다. 이들은 종교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문학의 의미와도 연결했는데, 그 해석이 문학적 실천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박완서의 「사람의 일기」와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생활종교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박완서의 생활종교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혼종 양상을 띠면서 자기를 반성하는 인간으로 표상되며, 공지영의 생활종교는 그리스도교와 치료 심리학의 혼종 양상을 띠면서 자기를 용납하는 인간으로 표상되었다. 이 연구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한국 사회의 그리스도교 혼종 양상과 실천의 다양성 그리고 변화를 엿보게 해준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18세기 말 영국의 자연종교와 이신론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출현한 급진적인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는 당대의 베이컨, 뉴턴, 로크를 “사탄의 삼위일체”(Satanic Trinity)라고 언급할 정도로 이신론과 자연종교 사상의 근거가 되는 이성중심주의와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였다. 블레이크의 최초의 글인 모든 종교는 하나부터 최후 대예언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이신론과 자연종교에 대한 그의 비판적 언급들은 무수히 많다. 그의 예술과 시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참 인간”(The True Man)은 당대의 이성중심의 계몽철학과 자연종교 및 이신론의 문제점을 알고 인간의 개념을 재정립했을 때만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다. 본 연구는 영국 17, 8세기 베이컨, 로크, 뉴턴을 중심으로 이신론과 자연종교에 대한 블레이크의 비판적 견해를 그의 글과 시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아울러, 상대 개념인 “시적 천재성”, “상상력”, “참인간” 등의 의미를 통해 블레이크가 성취하고자 한 예루살렘과 회복된 참 인간의 모습에 대해 규명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성과 과학적 사고 자체를 단순히 악마적으로 거부하고 비판만 한 것이 아니고, 회복된 인간이 참여할 에덴 즉 예루살렘에서는 궁극적으로 예술과 과학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였다는 점이다.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종교의 자유의 보호대상에 명상은 포함되 는지 의문이다. 전통적으로 명상은 종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명상은 종교성에서 세속화·대중화·산업화로 변천 되었다. 명상의 세속화는 종교의 개념에 대한 재해석을 요청한다. 명상의 개 념은 더 이상 종교에 국한하지 않는다. 명상은 종교적 차원과 세속적 차원이 조응 혹은 분리된 개방적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다면 명상을 종교로 포섭하여 일률적인 종교의 자유의 보호영역으로 설정할 수 없다. 국가는 종 교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도록 종교의 범위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한다. 합의 된 헌법적 정의는 부재하다. 이에 대한 헌법적 대답을 부과한다. 헌법질서 아 래 상이해진 두 개념 간에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상에 관한 헌법적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명상 은 종교인가? 둘째, 헌법상 명상의 개념은 무엇인가? 셋째, 종교의 자유와 명 상은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종교적 명상과 세속적 명상으로 구분하여 종교 의 자유에 대한 실효성 있는 헌법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종교적 명상의 경우 종교가 추구하는 유일한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다. 이와 달리, 세속 적 명상의 경우 각인의 다양한 목적을 내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생활의 실천 이란 점에서 합리적인 헌법적 해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본고는 종교성을 갖 는 명상의 경우 종교의 자유의 영역이지만, 세속성을 갖는 명상의 경우에는 무종교의 자유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하여 고찰한다. 이 를 논증하기 위하여 헌법상 종교와 명상의 개념, 종교의 자유와 무종교의 자 유를 구분하여 탐색한다. 그리고 무종교의 자유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무신앙 의 자유, 무종교적 행위의 자유, 무종교적 집회·결자의 자유, 무종교의 자유 제한의 한계를 명상의 개념을 접목하여 살펴보고, 이어서 종교의 자유와 무 종교의 자유에서 각기 파생되는 가칭 ‘종교적 명상의 자유’와 ‘세속적 명상의 자유’에 대하여 제언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헌법상 종교와 명상의 개념을 살 펴보고, 헌법해석을 통해 상충할 수 있는 종교적 명상과 세속적 명상의 기본 권 보호의 범위를 법익형량 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함에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구원에 관한 견해는 전 인류를 두 진영으로, 즉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로 나누어왔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분의 주권으로 인해 모든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는 신념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나 구원의 전능성과 같은 하나님의 본성에 기초한다. 심지어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타종교인과 비종교인들의 운명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합의가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와 은혜를 통하여 특정 종교전통 안에 있는 개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을까? 여기서 기독교인으로서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은, 타종교의 가르침이나 종교적 관행 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셨고, 그리고 어떻게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기독교인의 인식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을 조사한 후, 연구자의 개인적인 신학적 결론을 제안하였다.
중국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한편으로는 종교정책를 통해 신앙활동을 강력간 섭하고 통제하고 있다. 종교로 인한 갈등이나 사건의 발발하는 것은 곧 정권의 위협 이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종교문제는 개인의 인권문제와 민족 갈등으로 자주 비화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직자의 양성은 중국종교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종 교 자체의 자율적 방식보다 종교학교를 통한 공적인 시스템을 선호하고 있다. 1949 년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로 새롭게 출발한 중국의 종교는 보장과 통제라는 기본 지 침 아래 통전부가 종교를 중점적으로 관리하였다. 그리고 종교학교의 설립은 이러한 국가 종교정책의 방향에 따라 획일적이고 균등한 방식으로 필요한 성직자를 정부 주도로 양성하기 위한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가 인가한 5대종교협회는 각기 불학원(불교), 도교학원(도교), 경학원(이슬람교), 신철학원(가톨릭), 신학원(기독 교)을 설립하여 종교인을 양성하고 있다.이들 종교학교는 정부의 종교정책 방향에 따 라 그 역할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특히 근래에 공표된 「종교원교관리판법」은 중 국 정부가 종교학교를 통해 종교인 양성을 일원화하고 공식화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본 정성적 연구는 네팔 극서부 바주라(Bajura) 지구의 부디 강가 05구역(Budhiganga-05) 중심부에서 유의추출법을 활용했 다. 본 연구에는 다양한 직업, 카스트, 문화, 언어, 식자 수준 및 배경을 가진 다양한 인구가 참여했다. 연구 지역의 총 213명의 가임기 여성 중 30명이 월경 중인 여성으로 밝혀졌다. 연구자 들은 참가자들의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설문지, 직접 심층 인터뷰, 관찰, 회의 및 대화를 사용했다. 응답자들이 제공하는 '차우파디 관습(Chhaupadi Pratha)‘에 대한 서술적 설 명은 연구에 크게 기여하여 타당성을 높일 것이다. 정성적 구 성 요소는 차우파디 관습을 겪은 여성들과 지역 사회 지도자, 종교인, 의료 제공자와의 심층 인터뷰로 구성된다. 이 인터뷰는 차우파디 파르타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종교적 신념을 탐구하 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의미를 탐구한다. 또한 인터뷰 는 근절을 위한 잠재적인 전략을 포함하여 이 관습에 대한 주 요 이해 관계자의 태도와 인식에 대해 조명한다. 본 연구의 결과물을 통해 네팔 여성의 월경 건강에 대한 기 존 지식과 월경 금기 및 성 불평등에 대한 광범위한 담론에 기 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차우파디 관습을 철폐하고 월경 건강 및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상황에 맞는 개입을 개 발하기 위해 정책 입안자, NGO 및 지역 사회 지도자에게 중요 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가 차우파디 와 같은 전통적인 관습의 해로운 영향을 다루면서 네팔 여성의 월경 건강과 웰빙을 위해 보다 포용적이고 지원적인 환경을 조 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본 논문의 목표는 그로토프스키의 전기와 후기 작업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배우를 바라보는 윤리적·종교적 관점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는 것이다. 전기 ‘가 난한 연극’ 작업에서 그로토프스키는 배우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아를 드 러내는 ‘성스러운 배우’를 목표로 엄격한 규율과 훈련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후 기 ‘유사 연극’ 시기부터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여 배우들의 삶을 보다 원초적인 인식으로 바라보고 이에 따라 훈련 과정들을 다채롭게 이끌게 된다. 이어지는 ‘원천 연극’에서는 배우들에게 고착화되어 있는 일체의 인위적인 것들 을 제거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것, 즉 육체적 뿌리로 돌아가게 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배우를 일종의 ‘영적 수행자’로 바라보고 그들의 영성 을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로토프스키는 배우를 바라봄에 있어 객관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으로 나아갔다 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다종교시대 한국 현실에서 불교가 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 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서 한국불교의 거 울이 될 만한 대만불교와 일본불교를 언급하였다. 대만불교와 일본불교를 본격적으로 살피고자 한 것이라기보다 각각의 불교사회적 환경에서 장점으 로 부각되는 실천적 가치의 측면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실정에서 참고하여 쓸 수 있는 것으로 대만불교의 리더십과 일본불교의 혼 합주의(→혼합현상)를 거론하면서 우리의 현실대응에 대한 논의를 해 보았 다. 본격적으로 Ⅲ장에서 한국불교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대응을 점검해 보았다. 한국불교의 내적 개선과 외적 결합이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주로 한국의 주요 교단과 승려들을 중심으로 ‘바른불교’와 ‘생활불 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는지를 짚어보았다. 바른불교를 위해 멀리는 「사찰 령」이나 「태고사법」을 통해 오늘날 종무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또한 생물학적 인간의 조건을 스님들의 ‘전통적’ 계율 우선주의식 한국불교가 과 연 현대에도 옳은지를 물어보았다. 이는 선(禪)과 선법(禪法) 중심의 불교 가 불자와 일반인들이 사는 도심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한편 생활불교를 표방하면서 외적 결합으로 혼합주의를 넘어서 창조적 혼합현상에 주목할 것을 주장해 보았다. 혼합현상으로써의 생활불교는 큰 무엇이 아니라 우리 불자들의 마음을 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현대인들 모두에게 도사리고 있는 잠재적 위험인 불안은 외부로부터 온다. 이 불안을 부처님의 마당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공간과 장소를 내어주는 것이 생활불교의 첫걸음이라고 본 것이다. 그것은 혼자만의 마음치유가 아 니라 대중들과 함께 공공의 선을 실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 리가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불교를 만 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