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재일동포 사회의 세대 변화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 서 김희수 회장의 모국 육영사업 사례를 통해 재일동포 기업의 세대 간 기업계승 전략을 고찰하는 데 있다. 연구 방법은 각종 신문 보도 자료와 현지 인터뷰 조사 자료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일동포 1세는 모국 지향의 ‘금의환향’의 기업가정신이 창업으로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이는 명확한 성공의 지표가 되어 핸디캡을 극복하 고 기업 성공의 동인이 되었다. 둘째, 일본 태생의 재일동포 2세~3세들 은 일본 정주지향의 기업가정신 발현으로 1세들이 가지고 있는 탁월성과 도전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셋째, 김희수 회장의 기업 계승자의 발탁 배경에는 경영 철학을 공유하고 한일 가교역할의 가능성에서 비롯된 것 으로 보인다. 넷째, 김희수 회장의 모국 투자의 성찰과 교훈은 일본에서 대학 교육사업과 금융 기업의 한계, 특히 모국 중앙대학교 인수와 매각 과정에서의 한일 육영사업의 차이점 등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 로 김희수 회장은 그의 경영철학과 한·일 육영사업의 가교로서 세대 간 의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연결할 수 있는 통로로서 신경호 이 사장을 발탁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수림문화재단을 설립하 여 오늘날까지 한·일 육영사업과 문화 사업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불교통사에는 조선시대 불교 신행을 참선・간경・염불로 요약하 였으며 이와 같은 양태는 현대 한국불교 불자들의 신행으로 변함없이 유 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에는 불상 과 사찰의 조성・점안・공양・조석예불 등의 외형적 요소가 있으며, 이들 은 모두 밀교에서 기인한다. 밀교는 불교의 의례 소재를 이루지만 내면적 으로는 초기 불교의 선정・유가행을 발전시켜 삼밀가지(三密加持)・즉신 성불(卽身成佛)과 같은 출세간 수행의 요소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고 려시대 말에는 임제선 풍토의 선이 주도하지만 동시에 밀교를 통해 수행 의 마장을 물리치고 보살지의 유가행을 도와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을 성취하는 불교 수행의 정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밀쌍수(禪密雙修), 혹 은 선밀겸수(禪密兼修)는 밀교가 동아시아에 성행한 이후 시작된 것으로 선과 밀교를 병행하는 실천 수행의 전통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중심축은 선종이며, 밀교는 선종과 융합하되 수행의 보조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 한다. 한국불교의 선밀쌍수의 연원은 신라시대 밀교 아사리인 불가사의로서 불가사의는 자신의 저서인 공양차제법소에서 단밖에 깨닫지 못하는 근 기를 위해 차례의 방편을 시설한다고 하여 돈오(頓悟)를 근간으로 밀교의 방편이 시설되는 이유를 밝혔다. 선불교는 초조 달마대사 이후 많은 발전 단계를 거쳤지만, 근본은 능가경에서 볼 수 있는 대승보살도의 계승이 며 돈오의 깨달음 이후에도 후득지(後得智)를 강조하고 있으며, 마조의 조사선과 임제선 이후에도 중생의 고난과 국가재난을 구제하는 무위진인 (無位眞人)의 행도에 밀교가 활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불교의 경우 천수경의 유행은 일찍이 다라니를 선정장(禪定藏)이라 하여 진언과 다 라니를 선정의 범주에 포함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범서총지집이 선밀쌍 수의 전적으로 꼽히며, 많은 선사들의 선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한 선밀쌍수의 전통은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로 계승되고 근대의 선사 들에게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 논문은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그루브(Groove)가 캐릭터 형성, 감정 전달 및 스 토리 전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은 그루브가 단순한 리듬 적 요소를 넘어 서사의 긴장감 조성과 정서적 몰입에 기여하는 핵심적 역할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연구 방법으로는 주요 장면 <Circle of Life>, <Hakuna Matata>, <He Lives in You>, <Be Prepared>를 대상으로 악보 분석 및 연출 관찰을 통해 그루브의 리듬적 특성과 서사적 기여를 심층적으로 탐구하였으며, 특히 리듬 구조, 악 기 구성, 음악적 동선 등을 분석하여 각 장면에서 그루브가 어떻게 구현되고, 캐릭터와 서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는 그루브가 캐릭 터의 내면적 변화와 감정을 구체화하며, 주요 서사의 전환점에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 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뮤지컬에서 그루브의 학문적· 실용적 의의를 강조하며, 뮤지컬 창작과 분석 과정에 기초 자료를 제공하였다.
전남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인 지석묘를 검토하여 시기별 전개와 전환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청동기 시대 전기에 무덤이 출현한다. 지석묘와 석곽묘, 토광묘가 축조되며, 단독 혹은 군집 내 독립되어 있 거나 군집 내 위치한다. 지석묘의 경우 개석식이며, 개별 묘역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물은 상징성을 가진 비파형동검, 석검, 부장용 토기류, 삼각만입촉, 일단경식석촉, 옥류가 출토된다. 중기에는 지석묘 문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다양한 평면 형태를 가진 묘역시설이 있다. 한 묘역 에 1기 석실만 있는 묘역, 한 묘역에 4~6기 석실이 있는 묘역, 2개 혹은 그 이상의 각 묘역이 서로 잇대어 조성된다. 더불어 지석묘가 군집화된다. 수십 기 또는 백여 기가 넘는 대군집을 이루는 지석묘 가 확인된다. 유물 부장에 있어서도 전기 전통을 계승하지만 동시에 차별성을 보인다. 후기에는 지석묘 석실에서 초기철기시대 유물이 부장된다. 거대한 묘역 내 1기 혹은 2기 이상의 석실이 있거나 다단 토광으로 축조된다. 초기철기시대와 상당 기간 공존하며, 청동기시대 문화가 쇠 퇴하는 과정에서도 일정 기간은 묘제로써 권위를 유지하였다. 청동기시대 이후 새로운 무덤인 토광묘는 전남지역에서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출현한다. 토광묘에 는 청동 유물이 수습되며, 철기 유물이 등장한다. 이를 통하여 지석묘 사회가 완전히 종착된다.
본 논문은 다형 김현승(1913~1975)의 시어를 계량적으로 분석하여 그 특징을 찾아내고, 각 시기 시어 특징을 살펴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우선 김현승의 작품을 목록화하고 시어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계량적 방 법으로 시어 통계를 진행했다. 새로운 연구법을 통해 학계의 연구 성과 를 검증하고 보완하기로 한다. 본 연구는 김현승 현재 발간된 작품들을 목록화하여 총 257편 작품을 통계 대상으로 삼고 기존 연구에 따라 1기 (해방 전), 2기(1954~1963), 3기(1964~1970), 4기(1971~1974)로 나눠 시 어 빈도를 얻고 분석하였다. 형식적 특징으로 김현승은 짤막한 문장을 선호하여 단시(短詩)를 많이 창작했다. 그리고 내용적 특징으로 김현승은 행동보다 사물 자체에 대한 묘사를 더 집중함을 알 수 있고 '신'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다. 어휘 빈도를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 김현승의 시세계는 1기가 ‘희망’, 2기가 ‘신앙’, 3기가 ‘고독’, 4기가 ‘사랑’으로 요 약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계 결과는 조태일, 김병선 등 김현승의 연구자들 이 텍스트 분석으로 밝힌 시세계 양상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계량적 방 법은 시를 연구할 때 한 연구법으로 전통 시어 분석법의 보조로 되어 새 로운 연구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나 창작 입문 단계의 학생들 이 파악하고 창작에 적용하기에 적합한 영화의 이야기 구성 방법을 찾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8단계로 구성하고 그 구성의 적절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연구 결과 프롤로그는 인물 소개, 이야기의 배경,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등을 소개하는 단계이고, 발단은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첫 번째 사건이자 실제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계 이고, 도발적 사건 단계에서는 그 사건으로 인해 주인공 삶의 균형이 파 괴되거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전개는 도발적 사건에 대한 주인공 의 대응 단계로 여기서 주인공은 삶의 균형을 회복하거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표를 가지게 되고 추구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적대자나 장애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의 목표를 저지하려 한다. 위기는 주인공의 목 표 추구가 강력한 방해를 받는 단계로 주인공이 계속해서 목표를 추구하 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목표 추구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 의 기로에 서게 된다. 절정은 위기 단계에서 주인공의 최종 선택을 보여 주는 단계로 주인공은 적대자나 장애물의 방해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대 응한다. 결말은 주인공의 최종 목표 추구에 대한 성공과 실패 등 완전한 결과를 보여주는 단계이고, 에필로그는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해소되지 못한 감정, 남은 궁금증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본 논문은 미국 남북전쟁의 전개와 의의 및 교훈을 분석하기 위한 것 이다. 이를 위해 남북전쟁의 배경 및 원인, 남북전쟁의 전개와 의의, 남 북전쟁이후 미국의 발전과 상흔극복 등의 순서로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 해 보기 위한 것이다. 남북전쟁(1861~1865)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그 배경도 극히 광범위하지만 남북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노예제 존 속을 둘러싼 갈등이다. 남북전쟁의 주요과정은 남부와 북부의 대립 → 링컨의 대통령 당선 → 남부의 연방 탈퇴 및 독립선언→ 남북전쟁 발발 → 북부의 승리→노예해방과 미국의 재건 등으로 볼 수 있다. 링컨은 남 부를 ‘체제 반역’으로 규정했고 62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지만 남부가 항복협정에 서명한 뒤에는 대통합·대사면을 단행하여 반역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링컨이 보복정치를 감행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남 북전쟁의 전쟁사적 의의 및 영향은 ①군사 지휘력의 중요성, ②총력전 양상의 노정, ③전문 직업군인의 양성, ④과학기술발전에 의한 화력·전력 의 강화 및 전술변화 등으로 요약·정리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참상의 슬기로운 극복과 민주국가와 세계적인 강국으로의 도약 그리고 남북전쟁의 상흔과 극복노력 등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이 낳은 불세출의 풍운아가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한 평생을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 살다 간 파란만장한 인물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주요 전투는 첫째, ‘초기 혁명기 전투’(툴롱항 탈환, 이탈리아 원 정 등), 둘째, 나폴레옹이 제1통령과 황제가 된 이후 ‘전성기 전투’(마렝 고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등) 그리고 셋째, 스페인 원정이후 ‘쇠퇴기 전투’(모스크바 원정, 워털루 전투 등)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나폴레옹의 전쟁사적 의의는 첫째, 가장 대규모이자 고강도 전쟁, 둘째, 전쟁기획 개 념이 명확히 정립된 전쟁, 셋째, 부침의 곡선이 큰 전쟁, 넷째, 나폴레옹 의 천재적 군사전략전술이 구사된 전쟁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나폴 레옹이 전투에서 주로 사용한 것은 기동전략전술이었고 그것은 주요전투 에서 승리한 비결이기도 했다. 그는 정복전쟁으로 지탄도 받고 있지만 21세기 우리에게도 인간행위의 가능성과 한계 연구 및 ‘전쟁사적·군사적 인 많은 교훈도 주고 있다.
BC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 당시 벌어진 역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영화 ‘300’은 이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용사는 3일 동안 1,000배나 더 강 한 페르시아군 진군을 3일 동안 지연시켜 그리스 연합군이 전쟁을 준비 할 시간을 벌어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게 하였다. 테르모필레 전 투의 유·무형전력을 비교평가해보면 먼저 유형전력은 면에서 ①다수의 페르시아군과 소수 정예의 스파르타군, ②호플리테스의 호플론 방패와 장창의 위력 등이 돋보였고, 무형전력 면에서는 그리스 연합군(특히 스파 르타)의 ①300용사의 강인한 정신력과 숙달된 기량, ②개인·가족·조국의 자유·독립을 위한 투혼, ③지형지물을 활용한 성공적 지연작전 등이 우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테르모필레 전투의 함의 및 교훈으로는 ①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형적 전투, ②살라미스 해전준비·기선제압을 위한 전초전, ③군사혁신 및 정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투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2,500년이 지난 전투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주고 있다.
This article define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vegetarianism by tracing the changes in the core motives revealed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vegetarian movement that started in the West. We further explore and compare the limitations of the vegetarian movement conceived in the West with the essential values, ‘How can Korean vegetarian culture gain the upper hand?’. Our results indicate that the sequential changes of the motives inherent to the flow of the modern vegetarian movement were <religious-philosophy>, <political-society>, and <healthy-nutrition>. This settled the transition from ‘vegetarianism as an ideological form’ to ‘vegetarianism as a lifestyle’, making it a more becoming way of life. However, along with the spread of ‘vegetarian lifestyle as a form of life’, commercial vegetarianism, which overshadows the essential value of vegetarianism, continued to flourish due to the modern capitalist industrial system. To curb commercialization, the necessity arose to establish a new vegetarian diet with a propensity towards an ‘ecological-environmental point of view’. Thus, in order to establish the term and concept of a vegetarian diet for Korean vegetarian characteristics, we propose the formation of a vegetarian term and concept suitable for the Korean vegetarian culture.
본고는 남한지역의 생활 유구와 분묘에서 출토된 유경식 석검의 속성을 검토해 형식분류하고 이를 통해 지역성 및 전개 양상, 석검의 성격과 기능 추정을 목적으로 하였다. 남한지역을 다섯 개 권역으 로 세분하고, 계측형과 명목형 속성을 검토한 결과, 기존 연구에서 주목했던 경부 길이는 검신부 길이 와 무관하게 2~5.4cm 범위에서 제작되어, 본고에서는 형식분류 기준을 경부 길이가 아닌 경부 형태, 전체 길이, 최대폭 위치로 설정해 11개 형식으로 구분하였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와 공반유물을 종합해 지역·형식별 시간성을 검토한 결과 전 지역에서 전기 후반부터 유경식 석검이 등장했고, ⅠA 식 석검이 선호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중기에는 석검의 크기와 경부 형태의 다양성이 확인되었고, 생 활 유구와 더불어 분묘에도 부장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기 물질문화 전통이 지속되었던 중부, 강 원, 영남 동해안 권역에서는 여전히 생활 유구에서만 사용되었고 분묘 부장 사례는 송국리 문화가 확 산된 권역에서 확인되어, 유경식 석검의 분묘 부장은 송국리 유형의 확산 결과로 이해하였다. 한편 중 부지역은 각형토기 문화권과 형태적 유사성이 높은 Ⅳ형식 석검, 전기부터 9개의 형식이 등장했으나 소멸 양상이 이르게 확인되는 점, 물질문화의 이동 방향을 고려했을 때 남한지역에서 유경식 석검의 확산은 중부지역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였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양국은 30년 동안 경제, 교육, 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현재 급변하고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양 국은 인문교류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전략적 동반자로까지 관계가 격상되었 으나, 최근 서로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혐오와 불신이 사회 전반으로 퍼 지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본 연구에서는 중앙정부 제도적 장치와 지방정부 및 민간 차원의 인문교류 과정들을 분석하여 양국 교류 중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 및 오해를 발생 요인들을 정치·안보, 역사·문화, 사회 등 다각적인 관점으로 규명하여 양국의 관계가 지속 발전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문교류 메커니즘의 보완적 필요에 대한 고찰과 함께 향후 양국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제언 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원찰․원당의 시각에서 조선 시대 동학사 내 동학삼사(東鶴三 祠)의 불교사적 전개를 통해 이곳에 모셔져 있는 인물들을 위한 의례에 주목한 연구이다. 동학삼사에는 현재 단종을 비롯하여 단종의 거사를 돕 다 죽임을 당한 종친과 사육신 및 생육신, 관료 그리고 심지어 노비들도 제향되고 있다. 특히 계룡산 초혼각지(鷄龍山 招魂閣址)는 야은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와 함께 단을 쌓고 고려의 국왕과 정몽주를 초혼하는 제사 를 지냈다는 점도 원찰 연구의 단초로 삼는다. 또 하나의 전각으로 숙모 전(肅慕殿)을 다룬다. 이곳은 계유정난을 계기로 등극한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면서 건립되게 된 조선의 역사적인 공간이다. 본 논문은 동학삼사의 공간을 단순히 유교의 사당이나 사우로 볼 수는 없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말하자면 숙모전을 포함한 동학삼사에 모셔 지고 제향되는 인물들의 면면들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조선시대 유교 의 례와 불교적 죽음관 및 그 의식이 혼합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동학사 동학삼사의 공간/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을 제사해 온 역사를 일차적으로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유교적․불교적 의례 혹은 이들 의례의 혼합양상이 번갈아가며 지속되는 양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조선시대 수장과 수장가에 대해 그동안 단편적으로 논의되었던 수장가의 개념과 수집행위로부터 파생된 여러 양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 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진정한 수장가란, 수집을 이용해 재력이나 인맥을 과시하는 사람 이 아닌 작품의 가치를 분별할 줄 아는 진정한 감식가이자 작품의 훼손을 방지하는 보존가로 해 석된다. 당시 수장가들은 작품의 보전을 위해 별도의 보관처인 장서루나 수장처를 마련하였고, 수장인을 찍거나 수장목록을 작성해 수장품의 소유를 증명하고 출납과 현황을 파악하였다. 이러 한 현존 수장목록은 개인의 취미를 보여주는 사례를 넘어서 한 시대의 지성사와 예술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