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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대는 개인의 정신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이름하에 개인이 가지는 종교적 믿음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 수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반해 종교적 근본주의는 종교적 믿음의 순수성과 해석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관점들은 서로의 극단적인 지향점에만 치중한 채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 물음이란 바로 (1) 종교의 근원은 무엇이며, (2) 결국 인간이 중심인 종교에서 다양성과 배타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근원적인가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물음들 가운데 (1)을 그의 저작인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현상학적으로 탐구하고, 「믿으려는 의지」라는 논문에서 (2)를 믿음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탐구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임스가 두 저술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문제의식을 살펴보고, 그가 던지는 종교적 혹은 윤리적 시사점들이 가지는 현대성에 주목하여 그것이 현대 정신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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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2000년 이상 전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흉노부터 13세기에 칭기스 칸이 창설한 몽골 제국, 그리고 손자 쿠빌라이 칸이 만든 세운 대원 올스(원조, 元朝)를 거쳐 오늘날까지 몽골 고원은 계속 유목사회였다 .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유명한 만리장성은 사실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의 지리적, 문화적 경계선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몽골 고원 즉 현재의 몽골과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를 대상지로 하여 유목문명에서 성장한 도시와 건축 및 장인에 대해 설명한다. 몽골 고원의 초원지대에서는 식물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층은 30cm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래는 모래층, 점토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토양층이 얕기 때문에 작은 구멍이라도 파면 풀로 굳어진 토양층이 노출되면서 바람에 날아가고 이듬 해에는 사막화된다. 즉, 농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지인 것이다. 이러한 초원지대의 지리적, 환경적인 조건에 적합한 방목이 생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의 50배, 혹은 100배 이상의 가축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 생산방식으로는 계속 한 곳에서 방목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부하가 커지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가면서 생활하는 ‘유목’이라고 하는 생활 양식이 성립했다.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의 토지소유에 관한 결정적인 차이는 유목사회에서는 토지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없다는 것이다. 한 곳에서 일정기간 생활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활 양식에 맞게 이동할 수 있는 건물 게르(중국어로는 '몽고포(蒙古包)'라고 부른다)가 탄생해 수천년의 진화를 거쳐 현대에 계승되었고 계속해서 변용해가고 있다. 즉, 토지를 '공유'하는 사회시스템에 기반해 이동을 전제로 하는 방목에 의한 생산방식과 생활양식의 니즈로 인해 토지에 속박되지 않는 도시, 건축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목사회에는 전통적인 생산기술과 생활양식이 축적되어 있으며 그 기술과 문화는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널리 보급, 응용되어 유목문명을 구성하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농경문명이 해양문명이나 유목문명보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는 해양 문명이 각광을 받고, 최근에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네트워크 사회가 형성되어 주거와 직장 모두 정해진 장소에 고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유목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토지에 속박되지 않고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내는 지혜는 현대사회에서도 유익하다. 또한 유목사회에서는 일상생활을 항상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지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중국 내지, 일본과 한국처럼 근세 이후 장인에게 전문 도구가 계속 늘어나는 것과 달리 유목민의 장인은 어떻게 도구를 늘리지 않아도 제조를 할 수 있는지에 최선을 다했다. 동시에 13세기 이후에는 이동건축양식의 시스템화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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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echnosignature, previously known as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is the scienti c evidence of past or present extraterrestrial civilizations. Since NRAO's Project Ozma was performed in 1960, most of the noticeable technosignature searches have been done by radio telescopes, hoping to find strong and narrow bandwidth signals that cannot be explained by known natural processes. Recently, the Breakthrough Listen project has opened a new opportunity for technosignature by utilizing both optical telescopes, radio telescopes, and next-generation radio telescope arrays. In this review, mainly based on NASA Technosignatures Workshop (2018), we review the current trends of technosignature surveys, as well as other possible methods for detecting technosignature. Also, we suggest what the Korean community could contribute the technosignature research, including the new SETI project with Korea VLBI Network (KVN).
        4,800원
        4.
        202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ince the farside of the moon is a place to avoid arti cial radio frequency interference (RFI) created byhuman civilization, it is a most suitable place for searching technosignature, which are signs of technolog-ical civilization in the universe, in the radio band. The RFI is a factor that makes the study of searchingtechnosignature quite complicated because it is di cult to distinguish between technological signals pro-duced by human and extraterrestrial civilizations. In this paper, we review why the farside of the moon isthe best place to detect technosignature and also introduce radio observatories on the farside of the moonthat have been proposed in radio astronomy. The 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projecton the farside of the moon is expected to be one of the main candidates for international collaborationresearch topics on lunar surface observatory.
        4,800원
        5.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예이츠가 정의하고 있는 문명과 인간의 모습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예이츠는 하나의 문명이 중심은 분명 존재하지만 영구적으로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과 성장 및 소멸과정을 경유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 역시 항구적일 수 없으므로 예이츠는 인간의 사고를 문제의 핵심으로 설정하면서 실재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4,600원
        7.
        2019.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일본에서 중국 지명과 인명을 어떻게 표기하고 읽는지에 대해서 한자문명의 공통자산으로서 한자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먼저 일본어 안에는 음성언어가 한자를 중심으로 한 문자언어와 상호보완적인 의존관계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한자가 일본어 안에서 시니피앙(signifiant)으로서 갖는 위상과 기능을 검토하고 그것이 중국 고유명사를 어떻게 적고 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와 직결됨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근대 이후 일본에서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어떻게 표기하였으며 그것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하는 역사적 경위를 살펴본다. 또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안의 서로 다른 언어권 간에 지명과 인명을 차용할 때에 한자음을 취할 것인가 현지음을 취할 것인가라는 문제의 성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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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texts, the scholarly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is divided into two: one is Jingshu Shiyi (經書釋義 : Commentaries on the Confucian Scriptures of The Four Books and Five Classics) investigating the books of pre-Qin Confucianism and the annotations of Han-Tang period; the other is Yulu Shiyi (語錄釋疑 : Commentaries on the Analects) studying the analects of Song-Ming Neo-Confucianism. Having been recorded in colloquial languages, the analects are particularly significant due to their deep relationships to certain linguistic questions. For this reason, this paper introduces how their inflow and dispersion were made in Joseon and explores their specific aspects since Yulu Shiyi developed and produced a number of great achievements in Joseon’s scholarly history. It was during the Goryeo Dynasty that Neo-Confucianism was introduced to the Korean Peninsula for the first time, and it was not until the late 13th century that the full-scale acceptance of the doctrines began. The inflow process of the analects went through two stages. The first one was the late Goryeo during which Neo-Confucianism resting upon the literature of Zhuxi was introduced. The second one was the early Joseon during which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 such as Sishu Wujing Daquan《四書五經大全》 , Xingli Daquan《性理大全》 , Zhuzi Daquan《朱子大全》 , Zhuzi Yulei《朱子語類》 , Xinjing Fuzhu《心經附註》 , etc flew in. The predominant way in which the analects came to be dispersed was the compilation of annotations and dictionaries. As for the former, The Annotation of Zhuzi Yulei《朱子語類考文解義》 and more than a hundred annotation books on Xinjing Fuzhu《心經附註》 appeared; so did The Comprehensive Dictionary of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語錄解》 , as for the latter. At the end of the paper, three supplements are presented: the analects of the Song Neo-Confucianism from Jangseogak Archives in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bibliographical directory of the analects and annotations from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list of relevant researches in Korea and China.
        9,500원
        9.
        2018.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예이츠와 테드 휴즈의 시 작품을 통해 자연과 문명에 대한 관점을 각기 어떻게 형상화하는지를 논하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예이츠의 경우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자연은 인간이 이루는 문명의 세계와는 다른 곳으로, 독자적인 특징을 지닌 세계로 보지만 문명에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그린다. 테드 휴즈의 작품에서는 초기에서부터 자연의 강렬한 존재성을 형상화하여 그것이 지닌 힘과 에너지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휴즈 작품의 자연과 문명은 서로 대조되면서도 어느 지점에서 서로 상대를 융화시키거나 통합한다. 휴즈는 예이츠와는 완연히 다른 자연을 묘사하지만 자연이 문명과 맺는 관계를 시적 영감의 틀로 본다는 점에서 그의 연장선에서 읽을 근거를 제시한다.
        6,000원
        10.
        201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안티노미가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초자연의 노래」전체 작 품을 관류함을 논술한다. 시인은 이 연작시에서 성의 문제를 자연계를 넘어 초자연적 영혼의 세계로 확대하였다. 가시적 대응구조인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천상의 합일을 대척점에 놓아 섹슈얼리티의 안티노미 구도를 갖춘 것이다. 예이츠가 제시한 종교적 안티노미는 이미 넓고 깊이 인식된 기독교 정신과 교리를 전혀 새롭게 사색하게 하는 일종의 도발이다. 그는 남성 위주의 성 삼위일체가 아닌 남녀와 자식으로 구성되는 양 성적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사랑이 아닌 증오가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 명의 대립구도는 서양의 긴 문명사를 동양의 은자가 일갈해서 허무는 데 압축돼 있다. 성산 메루의 은둔자는 종교적, 철학적, 문명사적 혜안으로 모든 서양 문명의 쇠락을 설파한다.
        5,200원
        11.
        200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200원
        14.
        200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 엘리오트, 조이스등 모더니즘 문학작품 속에서 독자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르네상스 이후 4세기를 주도하면서 이루어낸 영국적 실용가치관이 주도한 현대문명을 비판한다. 가까이는 영국빅토리아 시대의 극단적인 형태의 정치, 경제, 도덕, 문화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즉, 정치에 있어서는 제국주의, 경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도덕과 문화에 있어서는 속물주의, 종교에 있어서는 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해부를 그 특징으로 한다. 무엇보다 예술이 도덕, 정치, 종교의 시녀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자체로 독립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그 실용성보다는 미 자체로 다시 태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이츠의 부르주아 문명에 대한 비판은 그의 영적이고 시골적인 것을 찬미하는 기질과 그의 18세기 앵글로 아이리쉬 문화에 대한 애착 그리고 순진하고 신선한 원시성을 지닌 아일랜드 풍물에 대한 매튜 아놀드 같은 이의 찬미에 힘입어 주로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아일랜드 중산 계급의 심미적인 결핍을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한편, “재림”이라는 시에서는 서구문명의 해체까지를 예언하며, 또 한편으로 “비잔틴으로의 항해”에서는 예술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세계를 그려낸다. 그의 문명비판의 특징을 좀 더 확실히 규명하기 위해, 서구 문명을 소유와 지배로 규정한 아도르노와 비교해 본 결과, 예이츠가 부르주아의 소유욕을 비판할 지라도 아도르노처럼, 서구 문명에 내재된 착취, 지배라는 사회학적 억압기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돈과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자본주의에 심취한 부르주아는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고 성적에너지를 자연스럽게 구가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아도르노처럼, 문명을 지배와 억압이라는 사회학적인 차원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시적 가치와 미적인 삶을 충실히 구가할 수 없게 하는 파괴자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예이츠가 지배의 구조를 서구 문명 안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과 달리 그는 예술로만 지배되는 이상적 국가를 제시한 점은 그 역시 부르주아로서의 지배 욕구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문명의 속성인 지배를 향유한 계급으로서 지배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했으며 피지배자들을 동정하기보다 그들의 미적인 결핍을 지적했다. 특히 그가 예술로만 지배되는 파시즘적인 미학을 가진 것에서 그의 부르주아로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살아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예이츠와 대다수 아일랜드인의 공동 목표는 아일랜드적 문화를 만들려는 데서는 공통점을 보일지라도 정치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면에 있어, 서로의 감각은 매우 큰 차이를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그 당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이 예이츠의 문학을 “노예의 깨어진 거울”로 평가 절하시킨 것이라든지 아일랜드 내에서 예이츠 미학에 대해 별로 호응이 없었던 것도 예이츠가 자신의 시에서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한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즉, 정치와 경제, 사회계급에 민감했던 아일랜드 중산계층은 예이츠의 예술 지상국 창조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았을 가능성과 자신들에 대한 예이츠의 공격을 새롭게 도전하는 노예에 대한 상전의 방어로 보았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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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1979.12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17.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소코트라에 인도인, 아랍인, 헬라인들이 거주하며 홍해와 인도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국제무역을 했다는 사실이 1세기에 저술된 『에리트라이해 항해기』에 기록되어 있다. 2000년에 발견된 호크 동굴에서 인도 브라흐미어, 남부 아라비아어, 에티오피아어, 헬라어, 팔미라어 등으로 기록된 낙서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낙서들의 기록 시기를 분석한 결과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라는 사실이 밝혀져 『항해기』의 내용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소코트라에 빠르면 4세기 후반 늦어도 6세기에는 기독교가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빠른 시기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은 354년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해 힘야르 왕국에 파견되어 기독교를 수용하도록 활동했던 테오필루스이다. 그는 힘야르 왕의 허락을 받아 세 개의 교회를 건축한 후에 자신의 고향인 소코트라에 기독교를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악숨은 525년 이후에는 힘야르 왕국을 정복하여 기독교를 믿도록 개종을 시켰다. 이 시기에 소코트라는 힘야르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으므로 악숨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셋째로 코스마스의 『기독교 지형학』은 소코트라 섬에 페르시아에서 임직받은 감독들과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코트라의 다하이시와 SHP_067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포크형의 네스토리안 형태의 십자가 모양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페르시아에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코트라에서 고대 시기에 로마제국에서부터 인도양에 이르는 국제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러한 교류활동 가운데 기독교도 함께 전파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8.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코스마스는 6세기 중엽에 알렉산드리아에서『기독교지형학』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지구가 둥글다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미의 그리스 우주관을 비판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려는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신이 젊어서 항해무역을 하면서 여행을 했던 에티오피아와 타프로바네와 인도와 중국 지역과 이루어지는 중계무역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바다와 만을 통한 국제무역활동은 인류의 삶에 필요한 물자들을 유통시켜 상호간의 우의를 증진 시킨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당시 자신 이 직접 방문했던 에티오피아의 아둘레를 중심으로 향료를 비롯한 다양한 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방문하지 않았던 타프로바네에서 인도와 중국 등지와 이루어지는 비단과 향의 무역을 설명한다. 그는 특히 인도의 동물과 식물과 해양식물을 소개하면서 에티오피아의 동물들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중계무역을 편견 없이 문화횡단성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6세기 동서양을 통해 이루어지는 무역을 통해 이러한 상품교역과 함께 각 지역에 전해진 기독교의 활동들을 설명하여 기독교 확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19.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의 목적은 이슬람의 등장(622년) 이후 비잔티움의 멸망(1453년)까 지 이슬람 세계, 비잔티움,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의 세 권역에서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대응을 개관・비교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글 은 이슬람 세계와 종교, 특히 꾸란과 무함마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변 증과 논박서를 개관하고 그 논점과 성격을 권역별로 비교한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이슬람 세계 안에서 꾸란과 이슬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슬람의 도전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변증했던 동방 그리스도교의 이 슬람 대응 문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이슬람 세계와 적대적인 관계 에 있었으며, 언어의 차이와 왕래와 교역의 제한으로 무슬림과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과 관행을 접하기 어려웠던 비잔티움과 라틴 그리스도교의 이슬람 대응과는 대조된다. 대체로 비잔티움이나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의 지성인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그리 스도교 세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될 때에야 이슬람의 지적인 도전을 인정하고 이슬람에 대한 학문적이고 개관적인 연구를 발전시켰다. 이 연구 는 무슬림 이주민 사역과 국내외 무슬림 선교를 위해 한국 교회에 보다 객 관적이고 진지한 이슬람 연구를 요청하며 끝맺는다.
        20.
        2016.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은 20세기 시인 중에서도 여타의 시인과 확연하게 구별 되는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시인이었다. 엘리엇의 시학과 사상 에 대해서 행해진 기존의 연구는 철학적, 문화적, 종교적, 인류학적, 그 리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들이 상당하다. 엘리엇은 당시의 심 리학, 철학, 인류학, 그리고 신비주의와 같은 종교적 사상의 방대한 학 문적 배경을 토대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과 문학적 지표”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엘리엇과 활동연대가 상당부분 중첩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와의 연관성은, 이 두 사람의 시기적 문화적 중첩성을 고려해 볼 때,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부 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 예술 다방면에 걸쳐서 영향력이 줄어 들지 않고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엘리엇의 사상 및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이 문화와, 문명,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매우 깊고 진지 한 성찰을 행했던 것처럼, 프로이트 역시 다양한 저술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명, 종교와 문화에 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엘리엇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인류의 문화, 문명, 종교라고 하는 아주 근원적인 요소에 대해서 각기 어떤 변별적 차이점을 지향하 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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