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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좋은 문학작품 한편은 시간을 극복하지만 현명한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진다. 예이치의 시 “재림”은 두 번째 종류이다. 수많은 수식어가 시에 쏟아 지는데, 몇 개를 보면, 계시적이다, 혹은 종교적, 반유토피아적, 예언적이다, 등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 시에는 이 모든 개념적 요소들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림”은 인간에 대한 경종으로 생존, 권력,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난폭하고 불 필요한 행위들을 되새기게 한다. 운명적으로, 지금 무서운 전염병이며, 끊임없는 정치적 전쟁이며, 인간의 무차별적 개발로 인한 지속적인 자연의 황폐화의 그림자 아래서 세계는 고통 받고 있고 실제적 은유적 치유가 필요한 때이다. 이때에 예이츠의 시 “재김”이 만병통치의 묘약으로 나서는데, 잘 쓰여진 문학작품 1편이 우리로 하여금 상황의 심각함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며, 이 고통 역시 느리지만 결국에는 지나리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4,300원
        3.
        2019.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김종철 시인은 사회와 문명에 대한 풍자를 지향했던 초기 시에서 출 발하여 중기 시 이후 ‘못’의 상징에 천착하며 가톨릭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해온 ‘못의 시인’이자 ‘못의 사제’로 평가받고 있다. 본 논문은 그러한 김종철의 시세계에서도 특별한 위상을 차지 하고 있는 ‘등신불 시편’에 주목함으로써 김종철의 시세계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사유하는 보편적인 ‘종교 시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김종철 시인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초기 시에서 부터 추구해온 ‘성모’적 표상이 아닌 ‘등신불’이라는 성상화된 상징을 통해 자기구원과 인간의 영원한 번뇌인 죽음의 문제를 노래했다. ‘등신 불 시편’들은 시인이 암으로 투병하던 시기에 지장신앙의 성지인 구화산을 여행하면서 썼던 기행시편들로서, 죽음의 번민으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존재의 각성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김종철의 전작을 통해 보면 다소 예외적이고 분량상으로도 적어 보이지만, ‘등신 불’ 시편들은 이러한 불교적 ‘각성’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문제와 존재론적 화두를 추구해온 그의 시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6,300원
        4.
        2018.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박두진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타락한 본성, 이를 대속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시로써 노래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 인물이자 죽음을 이기고 인류를 구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특별히 사도행전 연작에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소명의식으로 시대와 민족을 향한 사도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어지는 고독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정신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춘수는 역사가 주는 폭력을 체험한 후 역사의 실체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서 예수를 소재화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가장 무력한 자의 본보기로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역사라는 괴물 앞에 예수는 사랑의 화신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는 부활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심리적 진실로 자리한 신화적 인물이기도 했다. 박두진이 자신의 실존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시화하였다면 김춘수 시인은 역사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인간 존재의 슬픔과 그의 고통 콤플렉스를 시 쓰기 작업으로써 극복하였다.
        6,600원
        6.
        200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t seems that macro-history has no relationship with family history at first glance. A close look at macro-history reveals that people in the micro-history are helplessly governed by macro-history regardless of their willingness. John Montague, a contemporary Northern Irish poet, has sought to investigate his tragic, painful familial history resulting from the macro-history of Northern Ireland which also turns out to be in predicament in political, religious, and educational terms. He was born in Brooklyn, New York, where his father had to be in exile because of his involvement in political activities in Ulster, Norther Ireland. Yet when Montague was quite young, he was sent to Garvaghey, Northern Ireland, his father's hometown. He was brought up there under the tutelage of his aunt. His early experience of separation from his parents has become the central theme of his poetry along with the political turmoil in Belfast. Thus, a number of his poems address his familial distress as well as his own. This essay seeks to examine how the poet recreates in his poems his painful experience involved in his family members, the victims of Northern Ireland's history. Many poems in Rough Field and Dead Kingdom are evaluated to be successful in terms of maintaining his temper even if they deal with painful matters of his family. As Montague himself reveals in his proses and interviews, his poetry seems to place its focus not only on praise but on liberation from his burdensome family history. To Montague, writing poetry is an inevitable means to overcome harsh realities given to his own family, himself and Northern Irish history. Particularly in his later poems, Montague arrives at reconciliation with the two corresponding histories he had to face.
        8,700원
        7.
        200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focus of study in this paper is put on the comparison of symbolism manifested in the world of W. B. Yeats’ poetry and the thoughts of Master Won-hyo.. The comparing works include the identification of their understanding ways of life. The symbols in common to bridge W. B. Yeats and Master Won-hyo are, for instance, circle, cone, cycle, sphere, spiral, wheel, vehicle, etc. Such a sign symbolizes a round thing, in another expression, the world or the cosmos where man belongs to. The phenomenological world or the cosmos by oriental thoughts is represented as the 28 phases of the moon, ranging from the dark moon(objectivity) to the full moon(subjectivity), which according to W. B. Yeats’ theory are identified the same kinds of character of man. Won-hyo(元曉, 617~686), a life-long friend of another Buddhist Master Ui-sang., insisted on the necessity for every living being to return to the foundation of the One Mind(一心), which is the original state of being, in another words, or “Ultimate Reality” to which every living being has to return. The Hwa-yen Sutra(華嚴經), a rare scripture of Mahayana Buddhism(大乘佛敎), emphasizes that the Ultimate Reality is the Source of One Mind of Won-hyo. We can say that Mahayana Buddhism teaches every living being the way to return to the world of the Ultimate Reality by great vehicle of "Mahayana"(大乘) in sanskrit. Another principle of Hwa-yen philosophy may be expressed as "All in one, one in all. One is all, all is one"(一中一切一切中一, 一卽一切一切卽一). "The Six Aspects"(六相) is interpretated by the principle. The mutual relationships are harmonized between the whole and a part, between the unity of the whole and the diversity of the part, and between the completion of the whole and the self-denial of the part. The One Mind is synonymous with the Great Vehicle with great wheels, which return to the Source of One Mind, the original state of being, or the Ultimate Reality( or Nirvana). The meaning of the One Mind may be expanded to the synonym of the existential world or the cosmos, at the center of which the One Mind lies. Accordingly, The One Mind, the Great Vehicle or Great Wheel and the World has a similar analogy, which make a system of symbolism, so called “Yeatsian gyre theory.” Yeats imagined a spiral, which he preferred to call a gyre) or whirling cone. Then two such cones were drawn and considered to pass like the human soul through a cycle from subjectivity to objectivity. These cones were imagined as interpenetrating, whirling around inside one another, one subjective, the other objective. The cones were not restricted to symbolizing objectivity and subjectivity. They were beauty and truth, value and fact, particular and universal, quality and quantity, abstract and concrete, and the living and the dead. Yeats thought that he had discovered in the figure of interpenetrating gyres the archetypal pattern which is mirrored and remirrored by all life, by all movements of civilization or mind or nature. Man or movement is conceived of as moving from left to right and then from right to left. No sooner is the fullest expansion of the objective cone reached than the counter-movement towards the fullest expansion of the subjective cone begins. These movements slide to the 28 phases of the moon. The dark moon, in the course of wane and wax sways to the full moon. The different 28 patterns of the moon is mirrored by all life or mind, ranging from the highest state of subjective mind(the 15th phase: the full moon) to the highest cast of objective mind(the 1st phase; the dark moon). In the long run, the world which Won-hyo and Yeats seek for as an ideal space of mind is a unified one, into which melted are the binominal opposites such as objectivity and subjectivity, the sacred and the profane, the bishop and Jane, fair and foul, the dancer and the dance, beauty and truth, value and fact, particular and universal, quality and quantity, abstract and concrete, and the living and the dead.
        5,800원
        8.
        200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들어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것은 ‘세계화’(globalization)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정보 통신 발전에 힘입어 시, 공간이 가까워짐으로써 생긴 현상으로서 경제 문화의 국경선 넘기 및 ‘지구가족’ 이라는 동료애를 강조하는 특성이 있다. 한편 이것을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로 인한 최근현상으로 보는 이도 있고, Anthony Giddens 같은 이는 그것을 15세기부터 확산된 자본주의의 연장 및 현대화, 서구화, 그리고 심지어는 미국화와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 내린다. 따라서 이것 역시 현대화처럼 여러 문제점을 내포할 수 있다. 특히 오랜 식민으로 제 문화를 잃어버린 나라들에 있어서 ‘세계화’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화로 인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glocalism’을 이 거대한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세계화의 날개를 타고 아일랜드를 문학관광국으로 만든 현대 아일랜드 문학 역사는 이상적 ‘glocalism’의 한 예로 볼 수 있고 그 중에서도 그 구체적 예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셰무스 히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시를 세 단계로 나눈다면, 그 첫 단계에서는 고유문화 및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는 지역화(localism)를 강화시키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문화가 갖는 ‘hybridity’를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저변으로 평가되었던 자신들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세계화(globalism)로의 확장단계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이 둘을 양립시킨 이상적 ‘glocalism’의 단계로서, 이 단계는 이제까지의 대립구조가 사라지는 ‘Utopia’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아울러 이 논문은 예이츠와 히니 시의 ‘glocalism’ 과정에서 포스트 콜로니얼 저항 담론도 함께 찾아 보려했다. 그런데 예이츠의 저항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문화 비평가들이 가졌던 산업자본주의 문화가 지닌 속악한 속물성에 대한 것이다. 그의 시의 첫 단계로부터 마지막까지 아일랜드고유의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함으로써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히니에게서 보여지는 상실감과 정치적 저항은 보이지 않는다. 셰무스 히니는 급진적 저항성을 띤 작가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그의 시에는 정치적 저항과 억압에 대한 자유추구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각 단계에 속하는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검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예이츠나 히니의 ‘glocalism’은 민족 고유문화 발굴작업을 통한 지배문화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해 단순히 지배문화를 수용한 것이 아니고 주체적 사고하의 수용인 전유를 거쳐 세계화의 날개를 달았다. 그 다음은 지역문화가 지닌 편협성을 배제시켜 지배문화와 지역 문화를 양립할 수 있게 했고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호미바바(Homi Bhabha)식의 ‘a third space’(제 3의 공간)를 향해갔다. 즉, 이 두 시인의 ‘glocalism’ 단계에서 저항, 전유, 새로운 휴매니즘의 창조라는 포스트콜로니얼 저항담론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예이츠의 경우에는 정치적 저항보다는 후기 산업사회와 문화에 대한 저항이었고, 전유에 있어서도 전유의 주체가 히니와 달랐다. 한편 이 두 작가를 통해 추론된 이상적 ‘glocalism’이란 무조건 세계화를 수용한 것이 아니고 지역주체들이 지역성의 장점을 발굴해 세계화 속에 내포된 억압에 유연하게 저항할 때 가능했다. 아울러 그것은 지역 문화가 갖는 편협성을 청산해 세계화와 양립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가능성을 제시할 때야 완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800원
        9.
        1997.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language of architecture is a kind of tool which helps people to experience the environment not as the thing itself but as a meaningful one. It, gathered by place, constitutes 'genius loci', as the existential structures. It, in other words, gives a thing 'cognitive quality', and serve people to 'dwell' because 'a place is a gathering thing with concrete presence.' Our environment, only when it possesses the language, presents itself as a namable thing or an understood world. Such a meaningful identification is dwelling. The modern world is a complex melting-pot. It is 'complexities' and 'contradiction'. The language of architecture is never created, rather it is selected by needs of the time and the place. In this sense, architectural design means discovery and interpretation of the poetic order of architypal form and style, and the poetic order is a way for people to dwell in the humanistic sense. These reminds me of Martin Heidegger's statement : 'Architecture belongs to poetry, and its purpose is to help man to dwell.'
        4,300원
        10.
        199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main aim of the paper is to reveal what is the sign in art and architecture and what is difference between technology and art. By keeping in mind the suggestions of Heidegger's four different worlds, we become able to discern or elaborate on four different contexts of signs and modes in which the sign can work. World (1) is not conceptualized by selected relations of some of things' aspects with one another; rather, it is constructed by our sensory impressions. The sign of World (1) simply points to other objects occurring in the situation. World (2) emerges as an ontological term, and signifies, in terms of relations that are now brought systematically forth, the Being of those entities of World (1) which we naively perceive or take for granted. The sign of World (2) signifies a constructed world. World (3) is understood as the 'wherein' or environment of beings whose total activity is proven to be inseparable from their circumstances. The sign of World (3) is to recover the perspicuous silence of World (3). The World (4) is the ontological-existential understanding of worldhood. The sign of World (4) is to reveal the conspicuous silence of World (4). Finally, the paper suggests that art including architecture cannot be the sign of World (1), (2) but the one of World (3).
        4,000원
        11.
        2019.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수긍재 하천일은 대대로 명문가인 진양하씨 판윤공파 집안에서 출생하여 40세의 짧은 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짧았던 생과 자료 부족으로 인해 그의 생애는 지금까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수긍재유집』에 실린 詩文과 『송정집』의 「연보」 등에 산견되는 자료를 토대로 생애와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다. 그의 詩作에서는 형 송정 하수일, 동생 매헌 하경휘와 함께 화락한 모습으로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던 때와 임진왜란의 참상과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모습, 생의 마지막 바람을 담은 도산에서의 은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시는 과하지 않은 절제된 감정으로 간결하며 평이한 표현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거기에는 40년 동안 짧은 삶에서 맺어진 진한 형제애와 세상사와 인간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哲理 가 담겨 있으며, 생에 대한 소박한 바람이 담겨있다. 우리는 수긍재의 짧은 생이 보여준 삶의 궤적을 통하여 화락하고 우의가 넘치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의 뜻을 펼치던 한 젊은 지식인이 전쟁을 겪으며 쇠약해지고, 세상의 변고를 수용하며 현실에 적응해 가는 변화과정을 읽을 수 있다.
        12.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反求堂 林汝栢(1614~1685)의 시세계를 살펴보고, 그것이 그의 內省的 학적 지향과 反求의 정신에서 비롯했음을 확인하고자 서술되었다. 반구당은 17세기 중반을 살았던 영남의 지식인으로서, 時命 의 불운으로 폐거한 뒤 지역의 학인들과 교류하며 士人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삶의 행적은 『反求堂集 』(필사본)으로 수렴되어 전하며,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인물이다. 이 논고는 그의 문집을 일견한 뒤에 적은 摘記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시세계가 갖고 있는 특징을 중심으로, 그의 시적 논리를 추적하고자하였다. 반구당의 시를 살펴보면 두 가지 情調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偶吟’의 방식을 통하여 갈등하는 내면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있는 바, 우울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상황을 禍로까지 생각하는 마음과 그 안에서도 수긍하고 안온하게 여기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갈등은 ‘霖雨’를 대상으로 지은 시에서도 나란히 노출된다. 그러나 이런 갈등하는 마음은 독서를 통한 自警的 주체의 정립으로 시적 승화를 이룬다. 이는 그의 내적 성찰을 위주로 하는 反求의 정신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차후 이와 관련하여 반구당의 학술적 담론들에 대한 별도의 논구를 통해, 그의 17세기 조선지성사에서의 위치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13.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南冥의 학맥을 자신의 從叔父인 覺齋 河沆으로부터 계승하여 謙齋 河弘度에게 傳授한 인물’로 평가받는 松亭 河受一(1553~1612) 의 필사본 문집 『松亭歲課 』를 고찰한 것이다. 하수일에 대한 연구는 이상필 교수와 전병철 교수에 의해 진행되었고, 두 선행연구자의 노력으로 송정의 생애와 학문, 시세계에 대한 주요 국면이 밝혀졌다. 다만 근래 『松亭集 』의 모본이 되는『송정세과 』가 발견되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송정 문학 연구를 새로이 해 볼 필요가 있음을 논하기 위해 우선 시세계만을 대상으로 고찰한 것이다. 고찰 결과 『송정세과 』를 통해 송정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작품 창작 연대를 정밀하게 고증하며, 윤문되기 전 작품의 원형을 복원하고, 覺齋 이후 晉陽 河氏의 남명학 계승 양상을 조명할 수 있음이 밝혀졌고, 아울러 지역사 연구와 송정 작품 세계의 새로운 면모 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요 정보와 개성적인 작품을 싣고 있음이 밝혀졌다.
        14.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台窩 河必淸(1701~1758)의 삶과 시세계를 조명한 것이다. 18세기 강우지역은 무신란 이후 정치적 탄압을 받아 출사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청은 家學을 이어받아 문장과 行義로 출사하여 정치적 소신을 현실정치에 실현하고자 하였다. 지역적 한계와 당쟁의 폐단으로 정치적 꿈이 좌절되자, 그가 택한 길은 권력자에게 아부하기보다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벗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후진을 가르쳐, 실제 문하에는 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남명정신을 계승해 나갔다. 그런 가운데 지역 인사들은 물론, 霽山 金聖鐸과 忠窩 許錘처럼 이곳으로 유배 온 인사들과 긴밀한 교유를 통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한편, 그가 추구한 107제 146수에 이르는 시문학은 출사하여 태평성세를 이루어보려는 정치적 꿈을 노래하였고, 그 꿈이 좌절되자 자신의 지조를 지키면서 속세의 부귀영화에 초연한 삶을 살고자 하였으며, 이처럼 出과 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평소 자기수양에 따른 실천학문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었다. 요컨대, 자신의 포부와 이상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태와 하필청이 추구한 삶의 지향은 18세기 강우지역의 지성사적 측면에서 볼 때 보편성과 특수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5.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 경상우도 宜寧에 살았던 송파 강우영의 생애와 시세계를 고찰한 글이다. 송파는 忠孝로 이름나고 南冥學派를 연원으로 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치적으로 남명학파가 몰락함으로써 張福樞와 金道和를 스승으로 섬겨 남인계열이 되었고, 張錫贇・ 張升澤・田珪鎭・安鼎漢 등과 당색을 초월하여 교유하였다. 만년인 60세 무렵에 鳳里精舍를 지어 考槃亭 등의 이름을 붙이고 隱居自靖하였다. 송파의 은거는 19세기 후반 대내외적으로 혼란을 겪다가 일제치하로 변한 시대에 대한 현실인식과 대응방식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송파는 시를 통해 드러내었다. 송파는 101題에 112수의 시를 남겼는데, 시세계는 크게 세 가지 양상을 띤다. 첫째, 松節 지향은 복잡다단한 世事와 일제치하라는 시대현실의 파고를 넘기 위한 修身의 표상을 소나무로 설정하고, 根固・晩翠・直幹 등의 소나무 본질을 자신이 지향하는 덕목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 隱居求道의 志趣는 격동하는 시대현실에 대해 鳳里精舍를 지어 隱居自靖으로 대응하면서, 持敬工夫를 통한 心수양 등의 道學추구를 표출한 것이다. 셋째, 報本追遠의 정성은 충효가문의 후손으로서 선조에 대한 추모를 다짐하며 정려 도모, 비석 설립, 묘지명 찬술, 제각 수리 등의 사업을 실천하여 선조의 미덕을 현창한 것이다. 이러한 송파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의령지역 士人들의 현실인식과 대응방식의 일면을 견지한 것이라 하겠다.
        17.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澹軒 河禹善(1894~1975)의 생애와 시세계를 고찰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담헌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후반에 세상을 마쳤다. 한문학이 막을 내린 이후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樂窩 河弘達 이후 남명학을 계승해온 하동군 옥종면 안계마을이 그의 고향이다. 담헌은 젊은 시절 일제의 단발령에 저항하며 경남의 각지를 떠돌아다녔으며, 이후로도 혼란한 시대에 ‘敬義’로 표상되는 남명정신을 근간으로 선비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 평생 노력하였다. 때문에 그의 시에는 심성 수양, 남명에 대한 존숭과 유교지식으로서의 처세, 강점기 시대의 세태에 대한 개탄 등이 들어있으며, 근대화 시기의 서울 풍경도 담겨있다. 요컨대 담헌의 삶과 문학에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간 마지막 남명학 계승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8.
        2018.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無何堂 洪柱元 한시의 내용과 형식의 특질, 그리고 표현방식의 특징적 면모에 대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무하당 한시의 내용적인 특질로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輓詩가 다른 사람의 경우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과 내용과는 상관없이 형식상 특이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서는 대작이 많이 보이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만시는 다른 사람들의 문집에도 흔히 보이는 것이지만, 무하당의 경우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국왕이나 왕비, 공주 등 왕실의 인물들에 대한 만시, 더 나아가서는 왕실과 관련이 깊은 여러 인물들에 대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사람이 죽었을 때 지은 것 이외에 묘를 옮길 때 지은 遷葬輓詩도 제법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작은 고관대작을 위하여 지은 것도 있지만, 일반사대부나 혹은 아녀자들을 위하여 지은 것도 있다. 그리고 고관대작을 대신하여 지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아우나 매형 등을 대신하여 지은 것도 있다. 누구의 대작인 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히 자신의 매형인 李時述을 위하여 지은 것처럼 이름이 드러난 경우도 있다. 무하당 한시의 표현방식으로서의 특징으로는 첫째 대립적인 뜻으로 형성된 단어의 사용이 눈에 많이 띄며, 둘째는 한 인물을 용사하여 이끌어다가 씀에 있어 반복적일 뿐만 아니라 복합적으로 다양하게 사용하였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대립적인 개념어의 사용은 存亡, 存沒, 生死, 幽顯, 去住, 昇沈, 憂寧 등 특히 죽음과 이별에 당면하여 지은 시에 특히 많이 보인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개념을 병렬하여 드러냄으로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용사의 복합적인 사용은 晉나라 때의 문인 潘岳에 대한 용사에서 두드러진다. 반악은 한시에서 지방관을 하며 어머니를 板輿에 모시고 명승을 구경시킨 효자, 미모와 함께 32살에 일찍 센머리가 나 더욱 드러나는 老病, 河陽의 도리화로 대표되는 善政, 아내가 죽었을 때 지은 「悼亡詩」에 드러난 슬픔, 「秋興賦」에 드러난 가을의 서글픈 서정 등 여러 가지 면모로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19.
        2015.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南冥 曺植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盧.의 증조부로 조선 초기 함양을 대표하는 인물 松齋 盧叔仝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에 대해 정 리한 ..松齋實紀..에 수록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송재는 세종 때 집현전에 들어 교리, 응교 등을 거치고 세자시강원 필선, 예문관 직제학 등을 지낸 뒤 호조참판 등에 이른 경력으로 보아 학문과 문장 이 뛰어남을 알 수 있으나, 그가 남긴 시문도 그리 많지 않고 학문을 알 수 있는 것은 .八字遺訓.이 유일하다. .팔자유훈.은 아들이 충주의 판관으로 나갈 때 지어준 誠·信·廉·公·勤·簡· 和·惠의 여덟 자의 교훈인데, 이전에는 이에 대한 뜻을 풀이한 내용이 있었 다고 하나 지금은 여덟 글자만 남아 있다. 후손들이 이에 풀이를 더한 것을 통하여 그가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뜻과 이를 후손 및 후학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를 수 있다. 그의 시세계는 그가 남긴 몇 편의 抒情詩와 酬唱詩를 통하여 살필 수 있는 데, 주로 벼슬살이 하는 중간에 느낀 것을 읊은 서정시 10제 11수와 중국 사 신이 왔을 때 지었다고 하는 13제 21수가 분석의 대상이다. 서정시는 지방 에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오가며 보고 느낀 바를 지은 것이 대부분인데 나라 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수창시는 1457년 陳鑑과 高閏이 왔을 때에 지은 7제 10수가 있는데, 이시 들은 모두 당고와 고윤이 성균관을 방문하였을 때, 호조참판으로 그들과 함 께 성균관에 가서 수창한 것이다. 중국 사신을 대접하며 그들의 뜻에 맞추어 시를 지은 것이다. 나머지 祈順에게 화답한 것으로 5수가 있고, 唐皐에게 화답한 것으로 2수 가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기순과 당고는 송재가 별세한 뒤에 사신으로 왔 던 사람들이므로, 이들과 화답한 작품을 송재의 것으로 수록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 화사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시, 즉 누구와 수창, 화답한 것인지 드러나 있지 않는 작품으로 「臨津舟中酬華使」, 「鳳仙館又次前人」, 「次華使猪灘過橋韻」, 「葱秀嶺又次華使」의 네 수가 있는데, 이 시들은 언제 지은 것 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20.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세기 조선의 詩壇 및 淸朝와의 교유사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했던 작가인 홍현주 작품세계의 일단을 살펴보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불교적 사유의 흐름을 검토하고자 한다. 청년기의 홍현주는 부마라는 개인적 처지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운명에 대한 관조라는 방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申緯와의 교유는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홍현주는 30대에 幻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을 통해 불교의 교리에 접근해 갔다. 이것은 인생무상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고, 그는 空 사상을 통해 이러한 무상감을 극복하고자 했다. 40대에는 공 사상을 체화하여 그러한 法悅이 형상화된 작품들을 다수 창작했다. 50대 이후, 특히 60대의 시에서는 空과 色의 경계를 넘어 자신이 있는 곳을 바로 서방정토로 여기는 자득의 경지로 나아갔음이 발견된다. 요컨대 홍현주 시 세계의 한 특징으로서 젊은 시절 싹튼 심적 갈등을 불교적 깨달음을 통해 극복하고 자족적인 삶의 태도를 획득해가는 과정이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홍현주 작품세계의 주요한 국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19세기 경화세족이 불교를 수용하고 작품 창작에 활용하는 방식의 하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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