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는 헤르네의 알에 고대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를 극 형식으로 각색하여 소포클래스처럼 신 중심 사회가 인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과 인간의 자아 완성을 노래한다. 코노트 왕 콘갈과 타라 왕 이드는 헤르네의 알을 놓고 전투를 벌이며, 이후 타라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콘갈 왕은 이드 왕을 죽이고 헤르네의 알과 헤르네의 신부인 어트랙타를 차지한다. 헤르네의 알은 피지배국가가 아닌 지배국가가 갖는 제국의 힘과 왕권을 상징한다. 또한 콘갈 왕은 아폴론 신탁과 같은 그레이트 헤르네의 저주에 따라 바보 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예이츠는 콘갈 왕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일랜드 영웅문화를 재조명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치를 깊이 숙고해 보게 한다.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이 차지하는 위치는 단순한 종교 이상의 권위와 함께 폭력적인 강요를 의미한다. 아일랜드 특유의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가톨릭은 저급한 중산층의 여론과 결탁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누리면서 구성원들에게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조할 뿐 숭고한 정신세계로의 인도, 타협과 화합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달성, 트라우마의 치유 등 원래의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논문에서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예이츠와 히니, 그리고 베리를 통해 아일랜드 가톨릭의 정체성을 규명하려고 한다.
조던 감독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정치적, 젠더적, 성적 갈등과 서사가 풍부한 『크라잉 게임』을 통해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새로운 신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 작품에서 제시되는 신화의 강제성과 함께 사실적으로는 새로운 신화가 아니라 보수적이며 남성 중심의 폭력적이며 강제적인 신화를 재생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논문의 목적은 예이츠의 초기 글에서 예이츠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발전되어 가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있다. 그 중에서도 글에서는 특히 사무엘 퍼거슨 및 클래런스 맨건과 같은 아일랜드 작가, 그리고 보다 전반적인 아일랜드 문학에 대한 바람과 우려에 대해 예이츠가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논문에서는 선배 작가에 대한 예이츠의 글, 그리고 그가 아일랜드의 문학적 어젠다를 수립해 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훗날 예이츠 자신의 시와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고대 영웅 쿠훌린과 현대 영웅 피어스와 코놀리를 아일랜드 영웅문화의 전형으로 제시했다. 그는 쿠훌린의 죽음이라는 극작품에 비전의 “과거의 삶에 대하여 꿈꾸기”와 가이어 이론으로 쿠훌린의 삶과 죽음, 사후세계를 구체적으로 재현했다. 쿠훌린은 피어스와 코놀리의 전형이었다. 이는 한 가이어의 정점에 해당하는 쿠훌린의 영웅문화가 끝나고, 그 정점에서 새로운 아일랜드 영웅인 피어스와 코놀리가 탄생한 것처럼 아일랜드 영웅문화가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이었다. 이 영웅문화의 순환은 개인의 영혼의 순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윤회이었다. 그래서 예이츠는 쿠훌린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영웅문화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순환한다는 점을 현대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본고는 1904년 희극 [뉴스 퍼뜨리기] 속 아이리시 멜랑콜리의 개념 분 석을 통해 레이디 그레고리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우선, 매튜 아 놀드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제안한 켈틱 멜랑콜리를 비교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레이디 그레고리의 아이리시 멜랑콜리를 이론화한다. 궁극적으로 아이리시 멜랑콜리는 아일랜드 소작농이 갖는 전복적인 정치성과 창조적 가능성을 대표하는, 그러나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힘도 가진 정동으로 비춰진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레이디 그레고리의 미출판된 에세이 [아일랜드의 웃음]과 1906년 초연 희곡인 [감옥문] 역시 언급한다.
본 논문은 린다 허쳔과 마그리타 레라의 번안 이론을 활용하여 소포크레스의 오이디푸스왕를 번안하는 예이츠와 맥기니스의 동기를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 한다. 주제와 파토스에 있어서 아주 상이한 번안을 하도록 하는 각 저자의 시대상황과 사정이 다른 점들을 보여준다. 또 그리스 원전의 번안 방법에도 주의한다. 본 연구는, 저자들의 빈약한 그리스어를 감안하여, 번안작가들은 언어간의 번역보다는 언어내부적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다룬다. 이 논문은 또한 그들이 어떻게 오이디푸의 신화와 현대 및 당대의 아일랜드 극에 기여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 그들의 번안/번역/교정을 할 때 예이츠와 맥기니스가 시도한 변형과 차이를 준 것들이 무엇인지도 논의한다.
본 연구는 캐살 블랙의 다큐드라마 『중력을 배우다』에 나타난 아이리시 포스트메모리 세대의 감응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아일랜드계 미국 시인이자 장례지도사인 토마스 린치의 삶을 추적하는 블랙의 연출기법은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된다. 첫째, 블랙은 린치가 포스트메모리 세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환원되지 않는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족사진 이미지로 구축했음을 보여준다. 둘째, 블랙은 사실주의적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시적 시간관을 결합하여 시적 진실을 추구하는 린치의 열망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블랙은 린치의 멜랑콜리 정서가 자연풍경과 버려진 사물들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존재와 부재 사이의 긴장에서 연유함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매의 우물에서』와 『이머의 유일한 질투』가 어떻게 예이츠 자신의 독특한 영성에 대한 생각을 문화적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두 극은 쿠훌린을 주제로 사용함으로써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인 『매의 우물에서』는 쿠훌린이 영생의 샘물을 찾아나선 젊은이로 등장한다. 그러나 쿠훌린은 결국 샘물을 얻지 못하고 떠난다. 두 번째 작품인 『이머의 유일한 질투』는 그보다 훨씬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극에서 쿠훌린은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인 후 미쳐서 파도와 싸운 후 의식을 잃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논문에서는 두 극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노 극 『요로』 (養老)와 『아우이노우에』(葵上)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예이츠가 어떻게 노 극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변형시키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예이츠는 후기에 들어 아일랜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의 시에 아일랜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예이츠가 자신의 후기시에서 당시 아일랜드 정치상황에 관해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해 예이츠의 후기시 가운데「1913년 9월」,「1916년 부활절」,「재림」,「비잔티움 항행」를 살피고 그의 마지막 시편 가운데 하나인「사람과 메아리」를 고찰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치에 관해 찬미와 동시에 비난과 회의를 제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철과 박목월 시에 등장하는 방랑자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인 자연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긍정적 시각으로 보면 이들은 자연에 매우 잘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부정적 측면으로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와 방랑하는 이유를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방랑의 원인인 갈등이나 억압에 대해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극단적 도피자일 수 있다. 그러나 예이츠와 히니 시의 방랑자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왜 방랑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저항한다. 예이츠는 앵글로 아이리시 영웅으로의 저항 정신을 그의 방랑 시에서 드러냈다. 이것은 자신을 오신, 쿠훌린및 오이디푸스 같은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 한데서도 증명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니는 순례의 섬이나 방황하는 스위니를 통해서 종교의 권위에 저항해 나락으로 떨어져 방랑해야만 했던 전설의 순례자인 스위니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한편 한국 시와 아일랜드 시에 등장한 방랑자들은 모두 예술혼인 자유를 추구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이츠의 「청금석」과 브라운의 「나의 레이니」에서 예술의 마술으로 비극적 장면이 행복의 장으로 바뀐다. 「청금석」에서는 “구슬픈 곡조”조차 기쁨을 만들고, 블루음악은 청중으로부터 고마움을 일으키는 군중의 흥미를 만드는데 이는 레이니의 기교를 통해서 노래로 만들어진다. 아일랜드의 문예부흥과 신흑인 문예부흥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데, 토속적 언어, 음악성, 그리고 공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니의 바이올린연주자」와 「성인들이여」는 둘 다 “예술에서의 자기존중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 는 민속과 강하게 연관된 토속적 시의 전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민속의 중요성을 전경화 시킨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가톨릭교 신부들을 이득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 아일랜드 국민들을 배반한 유다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작품의 각 중단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이스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맹목적인 순종과 그 권력에 절대 복종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작품에 묘사되고 있는 신부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능하며 성직자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거짓된 권위와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가톨릭교를 거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한데, 그것은 그가 가톨릭교회를 거부하긴 했지만 그 제도나 형식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예수회재단 가톨릭교회의 제도나 교리 등을 작품창작에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는 가톨릭교회나 신부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변화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1920~30년대 한국의 근대 연극 수용의 특징과 의미를 아일랜드 연극의 영향에 초점을 두고 역사적 배경과 극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 근대 연극의 발전 과정에서 아일랜드 연극의 영향력을 검토함으로써 서구 근대 연극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한국 지식인과 다른 아시아 지식인들의 태도 사이에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 할 것이다. 또한, 당시 대표적인 극작가였던 유치진과 함세덕의 작품에서 아일랜드 극장의 영향을 확인해 볼 것이다. 그들은 아일랜드극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존 밀링턴 싱과 션 오케이시와 같은 아일랜드 작가의 극적 특징과 배경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을 창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은 아일랜드 극작가에 대한 한국 극작가의 수용이 단순하고 고립된 하나의 연극적 현상이기보다는 당시의 정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본 논문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영국과 유럽의 변방에 있는 국외자적 지위에 항시 민감한 작가 3명의 소설을 탐구한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의『작은 붉은 의자들』, 조 베이커의『시골길, 나무 한 그루』및 세바스찬 배리의『한시적 신사』, 등을 읽는다. 우선『작은 붉은 의자들』에서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의 유럽변방의식을 주제로 비영감적으로 가능한 플롯을 만드는데, 최근 유럽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불법자 중 하나(보스니아의 학살자 라반 카라치크) 같은 주인공은 아일랜드의 외딴 곳 코나트 지역에 잠시 숨어서 비교적 잘 지낸다. 베이커의『시골길, 나무 한 그루』에서는, 반면에, 아일랜드시민 도망자에게 일종의 피난처가 되는 것은 유럽이 된다. 내가 “일종”이라고 한 것은, 피난하기 위해서 소설의 문화적 도피자—극작가며 소설가인 새뮤엘 베겟—는 어정쩡하게, 아니면 위험하게 2차대전 중에 프랑스에 머물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배리의 포스트콜로니얼 아일랜드의 세기 중엽의 “웨스트 브릿트” 소설인『한시적 신사』의 텍스트인 공상적 메모와는 우리에게 아일랜드적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거의 다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두 가지 요구는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유럽인이며 영국인임도 요구한다.
이 논문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예이츠가 민속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는 탐구한다. 예이츠는 민속을 활용하여 자신이 아일랜드인임을 강조하며, 프로테스턴 트교인이면서 중산층 도시민으로서, 아일랜드독립운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아일랜드 농부들의 민속은 보편적 원시종교의 계승이며, 민속과 신비주의는 동일한 곳에서 파생 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아일랜드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는 농부들 과 자신이 같은 신비주의적이고 전통적인 신바주의를 공유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신 과 농민층과의 연결 짓고 자신의 아일랜드정체성을 갖고자 한다. 문화에 활력을 불어 넣는 예술가로 자처하는 그는, 원시종교의 영항을 보여주는 것 같은 특징을 강조하여 자신과 농산층 사이의 고리를 만듦으로써, 힘을 얻고자 한다.
본 연구는 짐 쉐리단의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와 영국 간의 갈등관계와 영국의 의도된 조작으로 인해 아일랜드인이 어떻게 테러리 스트로 낙인찍혔는지에 대한 과정을 살펴본다. 쉐리단은 ‘길포드 4인’ 사건으로 알려 진 실화사건을 형상화 함으로써 영국정부가 아일랜드인을 테러리스트로 동일시하거나, 심지어 테러 사건과 무관한 평범한 아일랜드인까지 테러리스트로 조작한 불합리한 상 황을 전달한다. 달리 말해, 이 영화는 테러리스트로 누명을 쓴 ‘게리 콘론’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영국이 아일랜드를 억압한 역사뿐만 아니라 테러리즘의 양가적 의미 역시 상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