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몰타의 유대인』에 등장하는 애비게일이 당시의 여성성, 연극성, 그리고 가톨릭교회를 향한 부정적 시선을 집약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논의한다. 종교개혁 이후 영국에서 반연극주의와 반가톨릭주의는 모두 의복이 그 착용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심에 기반해 있었고, 이는 곧 가톨릭 종교의복이 무대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발전한다. 애비게일은 유대인 여성으로 등장했다가 극의 후반부에 가톨릭 수녀로 개종하면서 탐욕스러운 유대인이나 위선적인 가톨릭 종교인의 부정적인 전형들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인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말로우의 무대 위에서 수녀복을 착용하고 소년 배우에 의해서 연기되었던 애비게일은 기만, 위선, 문란함, 미성숙함과 같이 일찍이 수녀 복장에 부여되어왔던 부정적 정서들을 소환해 내기에 애비게일의 성스러움이란 텍스트 안에서나 유효하다. 일관되게 성스러운 여성을 재현하는 것은 당시 영국 무대에 주어진 실현 불가능한 과제였으며, 초기 근대 영국 무대 위 수녀들은 반가톨릭적, 반연극적, 반여성적 정서 속에서 종교 개혁 이후 영국 무대가 당면한 재현의 위기를 시사한다.
이 논문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오늘날 COVID-19의 팬데믹 (pandemic)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공황에 빠져있는 상황을 염두하고 쓴 글이다. 연구자는 이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을 사회 정치 경제적인 상황에서 살펴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종교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에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성공의 요인에 대한 답을 개혁의 중심인 루터에게서만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좀 더 발전적으로 그 개혁을 가능케 하였던 일반 백성들의 관점에서, 즉 그들은 왜 루터의 종교개혁 에 동의하고 함께 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COVID-19는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전염병으로 전 세계를 불안과 공황 속에서 사람들을 허우적거리게 하고 있고,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도 개신교회의 개혁을 위한 선한 영향력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연구자는 무엇보다도 한국 개신교회가 종교로서의 본질을 잃고, 또 잊은 채 다만 이 사회의 한 기관으로서 기능성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며 왜곡되어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이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The Salvage Convention 1989 establishes the main international legal framework dealing with salvage operations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It is the result of many years of drafting and diplomatic efforts where the treaty was negotiated and concluded. It is undeniable that the Salvage Convention 1989 has encouraged private sector and public authorities to establish and maintain the resources needed to contain ecological damage. This was an important accomplishment. Providing adequate incentives for rapid salvage operation adds to the traditional rewards. Nevertheless, the problems of updating the provisions of the Salvage Convention 1989 need to be addressed and the path ahead is still long and winding. In particular, the importance of environmental considerations is increasingly significant. As a result, modern salvage operations must also take into account measures to prevent damage to the environment. Today’s international community is searching for a new salvage regime and law. This paper examines the possibility of building the new salvage regime and its implementation in Thailand.
로잔운동은 세계선교를 위한 전 교회적 노력의 일환으로 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여 왔다. 로잔진영 안에서 교회개 혁에 대한 논의는 1974년 로잔대회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1989년 마닐라 대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토론되어왔다. 1989년 마닐라 대회가 끝난 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로잔운동은 쇠퇴기를 맞이하 였기에, 교회개혁에 대한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못하였으나, 2004년 파타야 대회를 기점으로 하여 교회개혁의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하였 다. 특히 2010년 3차대회를 준비하면서 2007년부터 교회개혁의 문제 는 로잔운동 안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였다. 2010년을 전후로 하여 로잔운동은 교회개혁의 주제를 하나님의 선교의 방해 요소가 되는 교회의 타락, 부패의 문제와 연결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교회의 번영신학에 대하여 로잔운동은 매우 적극적으 로 문제제기하였다. 결국 로잔운동의 교회개혁에 대한 관점은 오늘날 교회 개혁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한국교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연구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동일한 시대에 전개되었던 인문학 (Studia Humanitatis)과 종교개혁(Reformation)의 상관관계를 밝 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인문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제 2의 종교개혁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한국 교회와 신학계의 현상을 비교 역사적으로 조망해 보고자 한다. 15-16세기에 유럽에서 인문학이 태동한 것과 교회의 혁신을 추진했던 종교개혁이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았다면, 인문학은 도대체 어떤 학문이고, 교회와 신학은 인문학과 어떻게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을 것인지에 대해 논구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인문학과 종교개혁이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았던 유럽의 16세기에 대한 논의일 뿐만 아니라,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 교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This paper describes Philippine farmers’ perception on farm mechanization and land reformation. For a survey, 280 farmers were interviewed. According to the survey, Philippine farmerrespondents seem to recognize the many advantages of using farm machines over manual, even if these are expensive and will certainly displace laborers. Although land reformation is known to only one third of the farmers, they understand it as a way of re-structuring roads and fields, and will ease farm management. Philippine farmers’ awareness of farm mechanization and land reformation appears to be very low and they also have financial problems when they consider to adopt farm mechanization and land reformation. Therefor, it is very essential to raise farmer’s awareness and also provide financial subsidy to farmers who have willingness to adopt mechanization and land reformation. Also introduction of farm land bank system like korean experience is recommended as one of alternatives.
독점규제법상 지주회사 규제는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의 하나로 1986년 동법의 개정 시에 도입되었다. 특히 1999년 동법 개정에 의하 여 지주회사 규제는 원칙적 설립 금지에서 설립 허용과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와 같은 제도 변화에는 경제력집중의 수 단이 될 수 있는 등의 지주회사가 갖는 부정적 측면이 완화되었고, 반면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같은 긍정적 측면이 활용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이유로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을 원칙적으로 허용 하면서 대신 일정한 제한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로 대표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집단 구조가 계열사의 순환출자 방식에 기반함으로써 매우 복잡하고 불투명한 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적극적으로 권장 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1999년 법 개정에 의하여 도 입된 지주회사에 대한 여러 제한은 처음 입법 당시에 비하여 상당히 완 화된 내용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추진에 의하여 지주회사의 수 는 증가하였지만, 반면 지주회사의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도 입된 규제의 의의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주회 사 규제의 의의를 다시 확인하고, 현재의 규제 내용이 이에 상응하는 것 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를 의도하는 공 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Moon-Young Lee is a layman, not a theologian or pastor, who practiced and influenced Christian values and world view during his academic journey. His impact has been felt for 130 years in Korean Christianity. Moon-Young Lee declares that the foundation of American public administration is the 95Theses of Martin Luther in his book ‘Man, Religion, State’. He also interprets the 95 Theses insections of “Methodology, Work and Men”. In relation to “Methodolgy”, Articles 1-7 and 92-95 explain repentance in its entirety. These articles show how man should live through out his life. The section about “Work” is classified in an ethereal world(articles8-55). These articles teach that the work of man is to pursue God’s justice not “profit” symbolized by purchase of indulgences. The section about “Men” is described in articles 56-91 and states that man is a being standing before God(coramDeo) not before priests or the church. Moon-Young Lee’s motive for joining public administration with Christianity is his childhood motto of: “I will study hard for my country from now on, but within the scope of Christianity.” For him, the 95 Theses of Martin Luther show the origin of and the foundation of three courses of action for public servants within administrative organizations.
수형자의 인권 보호와 재사회화를 위한 입법과 정책 개발은 매우 더디다. 오히려 이미 법정화되어 있는 사항들도 실무에서 준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형사사법체계의 피의자, 피고인, 범죄피해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과 비교해보면 그 열악함이 더욱 실감난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형자들의 구금은 독거수용이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혼거수용이 인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혼거수용을 전제로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독거수용 시킨다고 할 수 있다. 즉 현실적으로는 행형시설의 미비 ‧ 국가재정의 취약‧인적자원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대부분 혼거수용방식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독거실 비율은 3%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독거수용도 계호상 독거수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밀한 혼거 수용은 수형자에게 최소한도의 사생활도 보장하지 못하고 구금장소는 범죄학습 장소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오히려 교정질서를 해치고 재사회화 이념을 무력화시킨다. 국제준칙이나 비교법적 검토를 통해서도 우리의 구금방식이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과밀수용은 시급히 해소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수형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장소의 크기가 법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으며, 철저한 분류처우가 시행되어야 한다. 혼거수용은 3인 이상을 기준으로 한다는 현행 규정은 수형자 인권보호와 교정이념 실현에 무의미하다. 또한 다양한 개방처우가 개발․시행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9월부터 시행된 전자감시제는 그 역사가 일천하지만,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전자감시 장치가 보급될 정도로 중요한 교정행정 수단이며, 최근에는 캐나다, 영국 등 많은 국가에서 정착되고 있다. 전자감시제는 범죄자에 대한 지역사회활동의 무력화, 지역사회 복귀, 회복적 사법 등의 지역사회 교정처우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비구금주의와 비시설주의를 대표하는 교정처우의 한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감시제는 몇 가지 한계점을 안고 있다. 즉 범죄인 및 주변 시민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수색 및 체포영장의 필요성 여부, 비용부담의 주체, 전자감시의 적용범죄, 전자감시비용에 대비 한 범죄예방효과, 전자감시 대상자 가정에의 영향 등이다. 특히 전자감시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플로리다주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문제 점들이 발견되고 있어 별도의 위원회를 통한 지속적인 평가를 받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향후 전자감시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법의 정비, 대상별 전자감시 유형의 다양화 및 대상자의 비용부담, 전자감시 대상자에 대한 추적확인 강화, 보호관찰관 인력보강 등의 정책개선이 이루어져야한다. 특히 향후 전자감시 대상자가 늘어나고, 그 관리비용이나 보호 관찰관의 증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자감시장치의 부착비용 등에 대해서는 미국 및 캐나다 등의 경우처럼 대상자에게 일정부분 그 비용을 부담토록 하여, 전자감시제도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하는데 활용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전자감시제를 성범죄자 이외의 다양한 범죄자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사회내처우를 강화하여 범죄자의 사회화를 도와야한다. 나아가 전자감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내 약물치료와 수강명령 등의 보호관찰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저작권법 연혁상 배포권은 복제, 발행 혹은 출판권의 한 내용이었으나 최근 독립하였다. 마찬가지로 대여권은 대개의 입법이 배포권의 한 내용으로 하되 최초판매이론에 따라 저작자의 권리 행사를 제한하였으나, 대여 시장의 발달에 따라 영리 대여를 규제할 수 있게 되고, 최근에는 음반, 프로그램, 영상저작물 등 인정 대상을 확대할 뿐 아니라 독립한 권리로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저작권법은 1994년 개정으로 음반과 프로그램에 한해 대여권을 도입하였으나 다음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대여 시장이 발달한 도서와 영상저작물에 대해 아무런 권리 규정이 없는바 대상을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확대하는 경우 권리의 성질은 배타적 금지권으로 하여 이중가격제, 시차제 등 구체적인 행사방법은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할 것이다. 셋째 음반의 경우 배포권자가 아닌 실연자에게 대여권을 인정하는바, 대여권은 우리 저작권법에서 독립한 저작재산권이 아니라 최초판매로도 소멸하지 않은 배포권의 한 내용이므로 이러한 모순을 정비하여야 할 것이다.
Gas accidents are increasing every year, whereas the amount of using gas has been sharply increased due to conveniences, low-pollution, thermal efficiency of the gas. Gas accident has been recognizing serious social unstable elements as well as incredible economic damages of casualties of men and properties. For the prevention of the accidents, basic pre-countermeasure must be arranged to reduce gas accident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strength of preliminary preventable functions against gas accidents throughout reformation of laws and regulations for insurance related in gas laws.
강명석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2차례 해외 유학이었다. 첫번째 전환점은 1920년대 중반 그는 일본 칸사이학원 신학부에서 공부하였다. 자유로운 신학 분위기 속에서 그는 기독교 사회사상을 접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그는 비참한 민족 현실을 이해하였고, 한센병자들의 고통을 체험하며 목회의 길을 준비하였다.
일본 유학이후, 강명석은 반기독교운동에 대해 대응하는 한편,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교회와 교인들을 비판하였다. 그는 교회가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사회 현실의 이해와 사회사상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는 사회사상의 역사적 변천과 성경 속에서 담긴 의미 등을 검토하여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전환점은 1930년대 초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의 유학이었다. 미국 유학과정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환원사상을 접하였다. 환원사 상은 교회의 일치를 표방하며, ‘성서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는 핵심 내용이었다. 그는 환원사상을 한국교회의 내분과 갈등, 충돌을 넘어서 이 땅 위에 참된 교회를 세우는 개혁사상으로 이해하였다. 이를 통한 교회의 일치는 한국교회의 개혁 방향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강명석은 졸업직후 감리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였다. 그는 귀국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를 본격 소개하며 환원운동의 선구자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한국 땅에 세우기 위해 열정적인 활동을 하였다. 비록 환원사상이 보수적 신학으로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강명석은 한국교회의 내분과 갈등, 충돌을 넘어서 교회의 일치를 지향하며 이 땅 위에 참된 교회를 세우는 개혁사상으로 변용하여 받아들였던 것이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독일의 루터10년 프로젝트처럼, 한국교회 역시 많은 학술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종교 개혁 내지는 루터 신학의 세계적인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 논문은 루터의 신학에서 “무엇이 종교개혁적인가?”를 다루었다. 관점에 따라서 루터 신학 의 핵심은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염 두에 두었고, 그 결과 루터 신학의 바른 이해와 적용을 위해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선택하여 논했다. 칭의의 조건은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이다. 그렇지만 칭의는 종결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작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이 칭의와 더불어 시작되고,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기까지 함께 간다. 그것이 무엇이건 인간이 할 일이 있다면, 칭의 이후의 일이며, 칭의 이후의 일이 역으로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즉 칭 의를 위해 인간이 할 일은 없지만, 거룩한 삶은 칭의와 더불어 가는 것이 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의 일하심의 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 혹은 외적인 권위와 규모 를 통해 신을 파악하려했던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 내지는 스콜라신학을 거부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의존성, 기복 및 개교회 지상주의 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인제사장직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 평등의 선언이자, 직업 활동 을 통한 소명의 성취를 요구한다. 한국교회 역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이 분법적 틀을 희석시켜야 하며, 동시에 교회 밖 직장과 사회에서 직업 소명, 즉 제사장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자랑스런 유산을 물려받은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십자가 신학, 만인제사장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2017년은 개신교 종교개혁 500주년이 된다. 근래에 일부 역사가들은 신 학에 비중을 두는 데서 벗어나 종교개혁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과 그들의 역할을 연구하면서 종교개혁의 사회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경향을 따라 서 여성사학자들도 종교개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은 유럽 여성들의 지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성들은 종교개혁 의 전파와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여성들은 단지 종교개혁의 메시지 를 받는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종교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종교개혁 여성들은 실로 개혁된 것이 아니라 개혁을 했다. 종교개혁에 수반된 가장 극적인 변화들 중의 하나는 수녀원의 폐쇄였다. 어떤 역사가들은 수녀원의 해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종교개혁은 타락하고 성차별적인 수도원 제도로부터 수녀들을 해방시켰으며, 여성과 가 정을 정절과 수녀원보다 높은 단계로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사 가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수녀원의 폐쇄는 수녀들의 선택권을 제한했 으며,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제한적인 경력들 중 하나를 부인했고, 여성이 지도력을 행사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수녀들은 그녀들이 겪은 가장 강력한 도전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반응했다. 독일의 많은 수녀들은 수녀원을 탈출해서 종교개혁의 물결에 참 여했다. 그러나 다른 수녀들은 강력한 개혁의 폭풍에 맞서 수녀원 생활을 존속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또 다른 수녀들은 개혁 세력과 절충해서 개 신교로 개종하거나 수녀원 시설을 학교나 병원으로 전환했다. 종교개혁 시 대의 여성종교단체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아직도 수녀원의 저항이나 존속 보다 해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많은 수녀들이 수녀원에 남았으며 말과 행동으로 저항했다. 독일의 수녀원들은 종교개혁의 격류에 도 휩쓸리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수녀들은 막강하고 정복되지 않는 베일 쓴 군대였다. 접
본 연구는 근래까지 잊혀져 왔던 취리히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 (1504-1575)가 1534년에 출간한 고린도전서 주석의 역사적 형성 배경과 그 의 주석적 방법론의 특성, 특히 자료 인용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그가 츠빙글리의 사후 위기에 처한 취리히 종교개혁을 유지 발전시키는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과정의 산물로서, 간편하고 유용한 주석 자료를 동료 목회자들에게 제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주석 출간의 계기는 불링거에게 주석 자료를 보내주고 출간해 주기를 끈질기게 요청했 던 베르히톨트 할러 등 여러 스위스와 독일어권 지역의 개혁자들이 제공했 으나, 불링거는 1532년부터 신약 성서 서신서의 주석들을 출간하여 선물하 고 헌정함으로써 취리히와 여러 지역의 교회, 정치 지도자들 간에 연대와 교류를 만들어가는 기회로 삼았다. 1534년 고린도전서 주석은 프랑크푸르 트 교회의 개혁파 목사인 디오니시우스 멜란더에게 헌정되었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멜랑히톤과 칼뱅 등 동시대 다른 주석가들과 비 교해 볼 때, 문헌학과 수사학에 기초한 인문주의적 주석 방법론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주석 자료 인용의 빈도와 태도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불링거는 적어도 42명의 고대, 중세, 근세 저자들로부터 거의 주석 한 페이지에 한 회 가까이 인용하고 있으며, 간접 인용과 의역이 주를 이루는 다른 저자들에 비해 직접 인용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더군다나 그런 경우 비판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을 추구하기보다는 고대 교부들과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인용하며 그 저자들의 목소리를 빌어서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취리히 교회의 성서 해석이 교부적 권위를 담아 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학문적 자료들을 직접 다룰 여력이 없는 평범한 목회자들에게 유용하고 간편한 성서 연구 방편을 제공해 주고 있 다. 불링거의 성서 주석은 취리히 교회와 다른 개혁 교회 공동체, 그리고 고대 교부와 당대 개혁 교회의 구성원들간에 진리의 네트워크와 연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이 표어는 종교개혁의 중심원리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모든 신학적 원리들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prima principium)이다. 그러나 종교개혁기에 있어 다양한 논쟁적 상황에서 볼 때,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이 표어가 가지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학적, 실천적 의미들은 더욱 세분하여 정확하게 논구될 필요가 있다. “오직 성경만 으로”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세부적인 교리로 구성됨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1) “성경의 충분성(sufficientia)” 교리와 (2) “성경의 명료성(claritas, or perspicuitas)” 교리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 가운데 특히 두 번째인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가지는 실제적이고도 중요 한 의미들을 루터의 신학을 중심으로 연구 고찰한 것이며, 또한 이것이 그의 종교개혁신학의 정립 과정과 성경해석 원리 및 여타 다른 종교개혁 원리들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구체적으로 구현되고 작동되었는지 살펴 본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에 있어 특별히 ‘성경의 명료성’ 교리와 관련하여, (1) 인식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 (2)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 (3)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로서의 그 실제적인 작용과 구체 적인 함의들을 구분하여 고찰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의 명료성’ 교리가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과 그의 종교개혁운동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여러 신학적 논쟁 과 신앙적인 투쟁의 국면들에 있어 다양한 기능의 역할과 함의들을 함축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루터에게 있어 그것은 먼저, (1) 신학적 인식과 실천을 위한 명확한 확실성을 담보하는 근원적인 “인식론 적 원리”(epistemological principle)로 작용하고 있으며, (2) ‘십자가의 신학’의 정립을 위한 ‘그리스도와 복음 중심’의 성경해석의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로서 기능함과 동시에, (3) 종교개혁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성경해석 방법론을 구축하는 “해석학적 원리”(hermeneutical principle)로 작 동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4) ‘말씀의 선포(설교)와 성례전의 개혁’, ‘전성도의 제사장직과 교회 직분의 개혁’,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소명론’과 일상의 삶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종교개혁신학의 핵심적인 “실천적 원리”(practical principle)들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현대 성경해석학 적인 위기의 상황 속에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그들의 종교개혁신 학을 정립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원리(prima principium)로 삼았던 “성경 의 명료성”(claritas Scripturae) 교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올바른 성경해석 원리 들을 창조적으로 복원하여 더욱 발전적이며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깊이 있는 연구가 더없이 중요하고 긴급하게 필요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