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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2,004

        1521.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름은 사회를 공동체로 만드는 기능이 있다. 지명을 붙이는 방법에는 ‘문화적 유산’, ‘언어적 이름 붙이기’, ‘자연적 ․ 지각적으로 이름 붙이기’, ‘어원적 이름 붙이기’ 등4가지가 있다.이 이름들은 자연적 위험,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이 나타나면 변할 수 있는데,이름은 이러한 지역의 정보를 담고 있다. 즉, 지명의 변화는 통시적, 공시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상호적으로 이해 가능한 새 유형을 만들기 위한 행정, 정치와 상관된 문화 ․역사적 결과를 연결시켜 바라볼 수 있다.
        4,000원
        1522.
        200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장기간동안 상이한 정치이념에 근간하여 법규범 질서를 정립하고 있는 남북한이 장래에 통일을 할 경우에 그 통합과정에서 다양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북한의 사법질서를 어떻게 통합할 것이며, 통합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고려되어져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예측하여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통일독일의 재산법 통합과정은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일정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와 다르게 북한의 경우에는 몰수당시의 권리관계를 공시할 수 있는 국가공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이를 남한 판례에 근거하여 법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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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3.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 이래, 우리는 초기 감정적인 동요 분위기에서 소극적인 형태로 전화돼 계속 학술적 대응 태도를 고수해 오고 있다. 한국의 대응이 학술적 연구에만 그치는 동안 중국 정부의 묵인아래 중국의 동북공정논리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관계로 한국에서의 동북공정에 대한 인식이 점점 소멸해가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필자는 본고에서 동북공정논쟁이후의 한중 양국의 인식차이에 대한 비교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인식은 아래와 같다. 첫째, 대외적으로 패권주의 발현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패권주의 발현이라는 측면을 정리하자면, 전세계적 패권국으로의 부상, 동아사이의 맹주로의 추구, 북한정권 붕괴 후 한반도까지의 영향력 행사 등까지 계획 중이다. 둘째, 중국내 내부적 인식 태도는 국경 지역 영토 확보 및 다민족 국가인 중국민의 정서적 분열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진행된 것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한국의 입장은 아래와 같다. 첫째, 한국인의 고구려사 역사인식에 대한 환기이다. 동북공정의 결과가 어떠하든, 한국사회는 반드시 고구려역사를 환기하고,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둘째, 민족주의 혹은 탈민족주의 및 동아시아론 등의 이론 등장이다. 다민족·다국가가 함께 생존하는 지구상에서 제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혹은 탈민족주의 및 동아시아론이 함께 등장·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는 학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동북공정을 학술적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그들의 동북공정의 진정한 목적·그에 대한 대응책을 정확하게 분석, 파악,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대내적으로는 범국민적 제대로 된 역사인식 교육에 힘쓰고, 아울러 소중한 고대사에 대한 지각 있는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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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4.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혁명현실주의와 혁명낭만주의의 양결합”은 급진적인 사회주의화를 통한 정치적 결속과 경제발전의 필요성에 처해 있던 1950년대 말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창작방법이다. 신민가운동과 동시에 제기된 ‘양결합’은 모든 문예종사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으며 문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양결합’은 무엇보다 소련의 사회주의 현실주의를 대체할 민족형식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문학창작방법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상은 어떤 안경을 쓰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 시대의 대안이었다. 작가로부터 평론가, 선택의 자유를 제한받는 독자들까지 현재의 필요에 따라 과거를 재평가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희망으로 은폐하며, 공산주의의 환상으로 미래를 꿈꾸어야 했던 ‘양결합’의 강제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혁명현실주의와 혁명낭만주의의 결합은 기존의 동서진영간 대립구도를 소련 수정주의를 포괄하는 대립구도로 전환시키고, 사회주의 현실주의에 대한 민족형식의 우위를 통하여 黨性에 의한 미래의 이념화와 미래에 의한 현실 속의 박투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노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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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5.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장이머우의 대표작인 영화 《인생》이 도달한 미덕을 ‘중국 현대사에 대한 준엄하고 따뜻한 통찰’이라는 측면과, 이런 통찰이 ‘중국인의 심성에 썩 어울리는 방식’으로 절묘하게 표현되었다는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필자는 ‘중국인의 심성에 썩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표현을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속에 담아서 넌지시 암시하기”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루쉰이 일찍이 모든 문예의 보편적 표현법이라고 정의했던 ‘광의의 상징주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영화 《인생》은 기구한 운명에 의해서 빚어진 혈육의 비극으로 점철된 푸구이라는 한 가족의 역사를 그려낸 것이면서, 그것이 동시에 파란만장한 정치적 운동에 의해서 빚어진 사회적 비극으로 충만한 중국민족의 현대사에 대한 서술이기도 하다. 장이모우가 그의 영화 ‘인생’에서 이러한 ‘광의의 상징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 이 글에서 분석하고 논의해보았다. 또한 장이머우의 영화 《인생》과 위화의 소설 《인생》을 영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형태 사이의 관계, 영화감독 장이머우와 소설가 위화 사이의 관계, 그 공통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한 인간이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오며 겪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가 서로 비슷하지만, 소설은 주인공 푸구이가 자신의 극단적으로 불운한 일생을 인생의 황혼에서 깨달음을 얻은 소박하고도 초월적인 시선으로 가뿐하게 돌아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그 철학․사상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영화는 배경으로 설정된 기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몰락한 푸구이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중국 민족 전체의 운명을 은유하여 나름의 사회역사적 지향을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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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6.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참위의 학문은 동한이 정치와 사회생활 그리고 학술사상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가 동한 말년에 쇠미해졌다. 원래 참위 서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의해서 조대가 바뀌는데 이용되었다. 그런데 통치자는 그 중의 위험을 점점 의식하게 되었고 위진 이후에는 수차례 금지되다가, 수양제가 정식으로 금지한 후에는 참위의 서적은 대량으로 손실되었다. 참위라는 것은 신학적이고 미신적인 색체를 띄고 있기에 아예 유가 경전과는 장기적으로 병행 되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비교적 빨리 유가 경전과 분리되어 나갔다. 그러나 참위의 서적은 전부다가 완전히 황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또한 허다한 천문, 역수, 지리학 등의 방면의 고대 자연과학 지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처강”과 같은 수천 년 중국 군주 전제 사회의 최고의 윤리 규범이었던 삼강도 《白虎通義》라고 하는 것에 확실히 기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禮緯 《含文嘉》 중에서 인용해 나온 것이다. 도참은 처음에는 인간과 천지 혹은 자연과의 교류의 차원에서 논의 되던 것으로 시작하여 유가 경전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해석하고 학문의 폭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역대 제왕들이 그것을 정권 탈취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왜냐하면 도참을 이용하여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스스로 에게 다시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에 그것의 위력을 아는 자는 그것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중국의 금서사상 참위는 후대로 갈수록 배척 되어 왔음에도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 신비스러운 잔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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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7.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에서는 한유 시와 불교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한유는 "불도를 배척한다"고 스스로 자임했지만, 그의 행위는 도리어 불교와 깊고 애매하게 유착되어, 자신의 "선언"과 "행동"이 서로 위배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원도〉를 찬술하고 불골 맞는 일을 간언하는 등 결연히 불도를 반대하면서, 한편으로는 승려와 밀접하게 왕래하고 시를 수창하며 정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후세에 비평을 받았다. 현존하는 한유의 시 사백여수 중 불교와 관련된 시는 겨우 약 20여 수 뿐이지만, 그 영향은 대단하다. 당나라 때 불교는 정치사상면에서 국가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사회를 침식시키는 큰 병폐였다. 당시에 형성된 방대한 무위도식계급 및 그들의 소비경비는 심히 통절한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이런 불교의 해악을 지적하고 불교를 적극 반대했다. 한유가 불교를 배척한 것은 불교가 백성들의 생산생활에 막대한 파괴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시에다 불교의 허망과 거짓을 풍자하였으며, 혹세우민을 폭로하였다. 시승과 진지하게 교류한 시들은 후세사람들이 한유가 변심하여 불가에 귀의했다고 여겨 질책을 받았다. 한유와 승려의 교류는 경제적 능력 때문이거나, 시문의 재능이 출중한데 불교에 입문한 것이 통탄스러웠기 때문이거나, 심지어는 그들을 유가의 문하로 끌어들여 벼슬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본스님을 환속시킨 것은 한유의 일대공로였다. 韓愈는 불교비판에 힘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문학창작방법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이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는 불교경전을 익숙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시에다 화용했고, 그가 시도한 "이문위시" 역시 직접 불경과 불경번역과정에서 얻은 것이며, 시 속의 몇몇 조구방법들도 역시 불경게송의 조구방법을 모방했다. 이로 본다면 한유는 비록 불교를 배척했다지만 그는 여전히 불교경전을 열람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온갖 전적을 박람했으니, 불경도 당연한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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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8.
        2008.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8,600원
        1529.
        2008.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소고는 倭亂(1592年~1598年)과 胡亂(1636年~1637年) 이후 조선후기의 사 상을 ‘実心’과 ‘実心実学’을 키워드 삼아 고찰하였다. 조선후기는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보다 견고한 왕조지배체제를 제구성해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있었다. 따 라서 그 이전과는 다른 氣流가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와 문화 등 여러 분야 에 흐르게 되었다. 특히 ‘実’이라는 개념을 자주 눈에 띠는데, 이는 兩亂의 原因을 반성한 결과일 것이다. 즉 ‘虛’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實’이다. 따라서 英祖․正祖時期의 文書에서 발견되는 ‘実心’과 ‘實心實學’의 용례는 ‘實’을 내용을 고찰함에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儒學의 텍스트에서 ‘実’은 ‘誠’의 내용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특히 中庸에는 ‘誠’은 하늘의 道이고, ‘誠之’는 사람의 道라고 하는 規定이 있는데, 이는 ‘実心’을 분석하고 논의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이 된다. 용례를 정리하면 실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공식문서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実心’이 다. 이 경우 군주는 끊임없이 신하의 忠告과 警告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実心’을 갖추어야 한다. 政治的의미가 강한 실심으로, 君民共治를 위한 實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行動主体로서의 군주 自身의 文書, 혹은 신하 의 個人的文書에 사용된 ‘実心’이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本然의 마음을 실심으로 보는 것이다. 朱子学적 修養論인 ‘存天理去人慾’과 ‘戒愼恐懼’의 자세를 갖추고, 内面의 純粋性으로서의 실심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実心’은 他者에게 感動을 주어 共感하고, 他者와의 疎通을 꾀하며, 他者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여기서의 ‘実心’은 實事에 임하여 實政을 행하고 백성에 도움이 되는 實效를 거두는 원동력이다. 또 이 실심에 근거한 학문이 ‘實心實學’이다. 이 ‘實心實學’은 陽明学的絶対純粋의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重視하는 観点이 기초를 이룬다. 실심을 강조하는 人士들은 文字에 얽매여 있는 知識을 実践에 옮기는 ‘實心實學’ 의 구현을 위하여 노력한다. 즉 朝鮮後期의 새로운 학문기류에서 보이는 實心이 란, 자신을 향한 엄격 수양의 필요성을 자각한 데서 나온 개념이다. 이런 실심을 전제로 하는 실심실학이란, 이상적 민생실현을 위한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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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0.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Lady Gregory is best known as a central figure of the Irish Literary Movement and the founder of the Abbey Theatre along with W. B. Yeats, John Millington Synge, George Moore, and Sean O’Casey. Her secondary contribution to the Irish Literature must be that she had discovered Yeat’s genius when nobody paid serious attention and supported him with every possible environments so that Yeats could cultivate and exert his genius without wasting his genius in other tribial matters. It is a wonder that Lady Gregory herself was a playwright and she had produced 35 plays in her lifetime. As is generally known to the public, her genius was overshadowed by a far greater poet and playwrights Yeats. Of course, she had no idea and desire to be a playwright, but her writing was initiated by collaborating with Yeats. In “The Rising of the Moon”, ‘Man’ persuades the sergeant who were originally to seize the Man to be helping his escape through reminding the days when all the Irish people were under Granuille’s leadership. At last the sergeant even betrays fellow policeman X and B and become co-criminal by strongly ordering them to go away from him. The “Man” who might be a wandering poet consistently reminds the sergeant of the good old days when all Irish people were single-minded holding the same ideal-to be perfectly free from British rule. In “The Shadow of the Glen”, Nora leaves home following a stranger, Tramp. Literally, she was expelled by her husband, Dan but, frankly speaking, she actively leaves home for a new and better life. Here Dan represents an old and stubborn British rule while “to search for a new life following Tramp represents a new Ireland, a free and hopeful Ireland.” Nora has the same name with Nora in Henrick Ibsen’s “Doll’s House”. Like Nora of “Doll’s House”, Nora in “In the Shadow of Glen”, ventures her life for the sake of an independent, free, and hopeful life. In “Cathleen Ni Hoolihan”, Michael is rushes out of the house to join the French to fight against the British army following the voice calling outside. Peter, Bridget, Patrick & Delia could not hear the old woman’s voice while Michael clearly hears her & bolts out as if led by ghost not hearing Delia's appeal to wait for their marriage. In Michael’s eye, the old woman looked like a queen and Michael followed her as if the Queen’s people follow the queen quite naturally. Lady Gregory has been often referred to as ‘a queen’ in that she had a strong leadership like a queen and she had a special power to make people succumb to her will.In Gregory’s plays it is often represented that she consciously stirs patriotism in people’s mind. And especially in three of her plays, “The Rising of the Moon”, “In the Shadow of the Glen”, and “Cathleen Ni Hoolihan”, it is so transparent that Lady Gregory intentionally drives the reader to wake their patriotism up and continue to fight against British rule by helping the man to escape, by giving Nora courage to follow Tramp, and by making Michael to join the French following the voice of an old woman leaving his bride-to-be Delia. In most cases, It seems to be nothing but patriotism that drives Gregory to write plays. In this sense, Gregory could be labelled as an political or an activist writer.
        6,700원
        1531.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5,200원
        1532.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儒學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됨에 주목하고, 그 실현에 진력하는 학문이다. 19세기 한말의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기타 모든 분야에 걸쳐서 미중유의 혼란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 艮齋 田愚는 우리 역사상 초유의 난세에 처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뇌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그의 출처는 그렇게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그는 끝까지 ‘守道’로써 일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난이 일어났는데, 간재가 외연의 행적과는 달리 후세 사람들로부터 정당하게 평가 받고자 했던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그에 대한 儒學思想史的 자리매김은 이런 논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오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의 관점으로 간재의 ‘去之守義의 守道意識’과 ‘自靖의 出處觀’을 살펴보았다. 간재의 ‘去之守義의 守道意識’에서는 그는 단순히 난세를 피하여 자기 한 몸 깨끗이 살겠다고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더라도 수도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그는 유학자의 본분은 도의 수호와 실천으로 여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自靖의 출처관’에서는 도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수도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사회 기강 확립을 위한 근간으로 생각하였음을 확인 하였다. 본고의 이러한 말이 간재의 학문과 의리를 억지로 정당화 한다거나 굳이 옹호하고 과대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한 사람의 학행과 인간을 이해하고 평가함에 있어서는 편협하거나 일면적인 것만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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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3.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17세기 중반 소중화의식과 攘夷의 의지를 지니고서 6차 사행의 종사관으로 도일한 南龍翼이 일본을 바라본 시선을 「富士山歌」를 통해 살핀 것이다. 이 작품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이전의 부사산시에서 형상화된 거의 모든 심상들이 한 곳에 집약되어 있고, 그가 인식한 일본을 부사산이란 글감 속에 솔직하게 드러내어 문학적 투영 양상을 엿볼 수 있어서다. 그는 산의 위치, 외형, 정상의 눈, 魁踞를 큰 축으로 삼아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논지를 전개하였다. 산의 위치에서는 서북보다 낮은 동남의 지형을 보충하려고 上帝가 부사산을 일본에 있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부사산을 서북에 종속시킴으로써 일본을 조선의 조력자나 교화의 대상으로 되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일본이 武를 숭상하는 데 착안하여 시루 모양에 선계적 면모를 띤 산의 외형에서 ‘雄壯’을 읽어내었다. 부사산에 호의적 시선을 보이던 그가 정상의 눈을 대상으로 하자, 부정적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한랭한 눈 때문에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산의 부덕으로 인해 인재를 배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더구나 따스한 햇살에도 녹지 않는 눈이 마치 교화를 거부하는 夷狄의 교만함으로 비추어졌다. 눈에 기인한 부정적 인식은 산의 魁踞함으로부터 교화에 아랑곳 않고 멋대로 천자라 일컬은 尉佗의 僭濫함을 느낀 데서 극에 달한다. 尉佗의 僭濫함은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채 독자의 연호를 쓰고 천황의 존재를 둔 일본의 정치제도를 문제시하여 쓴 표현일 것이다. 부사산의 외형에서 선계로 보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위치, 정상의 눈, 魁踞를 통해 부사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감추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그가 일본의 문화 속에서 읽어낸 이적의 면모를 세밀하게 들춰내는 대신 부사산이라는 상징물 속에 문학적으로 형상해 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가 부사산에다 부정적인 인식을 투사한 이면에는 소중화의식에 근저한 양이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일본 문사에게 주려고 지은 것이 아니라 부사산을 본 후 일본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니만큼 일본 문사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기에 솔직할 수 있었다. 그가 부사산의 선계적 면모를 인정한 반면, 속으로는 부사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진솔하게 드러낸 것은 교린과 조선의 자존이라는 두 개의 가치 중에 조선의 자존을 발현하는 쪽으로 의식이 기울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부사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전에 한 일본의 행태에 의해 부사산을 부정적으로 도색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혈기 왕성한 28세의 젊은이가 지었기에 그 정도가 심하였기는 하나 이것 역시 17세기 중반 조선 문사들의 부사산 인식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8,000원
        1534.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형사사법제도란 일종의 전문화된 국가사법기관의 제도로써 형사소송상의 임무를 맡고 있는 조직과 기능에 관한 제도를 의미한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범죄문제가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범죄의 예방과 그 척결은 형사사법제도의 사회적 역할과 그 기능의 효과성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정치사회적 환경이 유사한 한국과 중국의 형사사법제도를 비교분석하여 보는 것은 향후 양국의 형사사법제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형사사법기관인 경찰검찰법원교정기관을 중심으로 한 한중 양국가의 형사사법제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경찰에 해당하는 공안부는 한국의 일부 법무부의 기능까지도 포함한 막강한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며 둘째, 중국의 검찰조직은 한국처럼 법무부 산하조직이 아니라 헌법상의 독립적인 기관이나 한국의 검찰처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법원제도는 중국은 2심종심제이며, 한국과는 달리 중대한 재판인 경우에는 재판위원회에서 특정사건의 처리를 토론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넷째, 교정제도의 경우에는 중국은 기결수만을 교정당국에서 관리하고 있고 미결수는 공안당국에서 관리하며, 의료처우나 재소자 수용밀도가 한국보다는 훨씬 양호하다는 점을 그 특색으로 열거할 수 있다. 한중 양국가의 형사사법제도를 비교분석한 결과 양국은 우선적으로 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국민참여제도의 활성화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7,700원
        1535.
        2008.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재까지 연구로는 흰목이 균사체에서 EPS 생산과 균사생장에 대한 적정 정치배양 조건이 연구되었다. 본 연구로부터 탄소원과 질소원의 처음 농도, 균사 형태와 발효조의 타입의 선택은 흰목이 균사체 EPS 생산에 가장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 결과는 공기주입식 반응기에서 EPS 생산성은 진탕탱크 반응기 보다 더 높았다는 점을 증명하였다. 또한 흰목이 균사의 정치배양의 생리적 생장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제한적이다.
        4,000원
        1536.
        2008.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시험의 볏짚버섯속(Agrocybe) 2균주 ASI19003(A. cylindracea; 버들송이)와 '차신고'로 불려지는 ASI19016(A. chaxingu)의 배양생리 및 재배적 특성 비교에서 종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균사생장 최적온도는 ASI19003이 28 , ASI19016이 30 이었으며 배지산도는 고체배지 평판배양의 경우 ASI19003과 ASI19016 균주 공히 pH 5.5∼7.0 범위에서 잘 자랐다. 그러나 액체배지 정치배양에서는 ASI19003이 pH 5.5에서, ASI19016이 pH 5.0에서 잘 자랐으며 ASI19016 균주의 경우 액체배지의 pH 6.0∼7.5 범위에서는 균사생장이 매우 저조한 특이적 현상을 나타내었다. 탄소원으로는 ASI19003이 lactose, ASI19016 균주가 fructose에서 잘 자라고, 질소원으로 ASI19003이 asparagine > alanine > glycine, ASI19016이 ammonium tartrate > asparagine > glycine > alanine 순이었다. 봄재배 시 ASI19003은 배양기간이 27일, 초발이소요일수 13일로 ASI19016의 29일과 17일보다 총재배기간이 6일 빨랐으며, 850 ㎖ PP병당 자실체 수량도 ASI19003이 114 g으로 ASI19016의 100g보다 15%가 많았다. 한편 여름재배 시 ASI19003은 배양기간이 29일, 초발이소요일수 11일로 ASI19016의 30일과 12일보다 총재배기간이 3일 빨랐다. 그러나 버섯 생육기에 온도가 상승하면 ASI19003 균주는 자실체 색이 옅어지고 조직이 물러지는 등 상품성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으나, ASI19016은 고온기에 오히려 버섯 발생이 빨라지고 자실체의 갓 색깔도 짙게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봄, 가을과 겨울철에는 다수성인 ASI19003(버들송이)을, 여름철 고온기에는 상품성이 좋은 ASI19016(차신고)균주를 재배품종으로 선택함으로써 버들송이류 버섯의 상품성을 연중 내내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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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7.
        2008.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국에 있어서의 복지국가 발전과정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을 통하여 고찰하였다. 즉, 본 연구는 역사적 변천과정에 따른 한국의 사회복지의 변화상을 비교 분석하여, 향후 한국의 사회복지 발전방안을 제시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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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8.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점토대토기와 파수부호, 청동기·철기, 유구석부 등의 유물조합에 의해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1단계는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중국 동북지방 凉泉文化와 춘추시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기원전 5세기대로 볼 수 있다. 한국식동검이 등장하는 3단계는 기원전 4세기대로, 전국계철기와 삼각형점토대토기가 등장하는 4단계는 기원전2세기대가 중심이다. 또 와질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보이는 5단계는 기원전 1세기대가 중심이 된다. 한편 점토대토기와 함께 한반도에 전개되는 초기철기문화의 사회문화적 변동은 점토대토기문화가 기존 청동기문화의 연속이라기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임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송국리유형까지만을 청동기시대로 보아 청동기시대는 조기(미사리유형)-전기(가락동,역삼동유형)-후기(송국리유형)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고에서 설정한 점토대토기문화 중 1,2단계는 송국리유형과 같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5단계는 원삼국문화와 중첩된다. 따라서 초기철기시대는 앞서 살펴본 5단계 중 3단계와 4단계만을 지칭할 수 있으며 철대연대로는 기원전 4~2세기의 약 300년의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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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9.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우리나라 버섯재배에서 액체종균의 산업적 이용은 1990 년대 초에 밀가루 액체배지를 이용한 영지버섯 재배가 시 도된 바 있으나 정착하지 못하였다. 그 후 1995년부터 액 체종균의 제조와 이용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어, 농업과학 기술원에서는 팽이버섯 병재배 농가에서의 자가종균 생산 에 액체종균의 이용에 관하여 검토하였으며, 강원대학교 에서는 느타리버섯 톱밥봉지재배와 균상재배에 액체종균 의 활용을 시험하였고, 임업연구원에서도 표고버섯 톱밥 재배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액체종균의 제조는 살균시설 등 일정한 설비를 갖추어야하는 특성상 병재배 농가에서 기 갖추어진 자가종균 배양설비를 활용하여 액체종균의 장점을 확인하고 대용량의 스테인리스 배양통을 개발함으 로써 톱밥종균을 대체하여 버섯종균 산업의 새로운 획을 긋게 되었다. 그러나 기 개발된 액체종균 배양기술이 체계적으로 보급되지 못하고 농가마다 필요에 따라 개별 적으 로 이용함에 따라 기술개발 당시의 시행착오를 제각기 거 듭함으로써 국가적인 낭비는 물론 개별농가의 손실도 많 은 실정이었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는 본 기술의 효율적 인 보급을 위하여 2002년부터 5년간에 걸쳐 100농가를 대상으로 신기술시범사업을 통하여 액체종균 배양기술의 일반화에 기여하였다. 현재는 병재배 대규모 농가를 중심 으로 전량 액체종균을활용함으로서 생력화 및 생산비 절 감에 기여하고 있다. 병재배버섯의 액체종균 제조기술개 발 과정에서 밝혀진 통기식 액체종균 배양병의 살균전 배 지 pH수준에 따른 버섯종류별 균사생장 특성이 일반적인 생리적 특성을 구명하기 위하여 실시한 최적 pH와 다른 경우도 있었던 바, 그 결과를 정리하여 보고하고자 한다. 팽이버섯, 버들송이버섯, 만가닥버섯은 삼각플라스크 정치 배양시와 통기식 액체배양시 액체배지의 균사생장 최적 pH가 5.5~6.5 범위로 같았으나, 느타리버섯과 큰느타리 버섯의 경우는 삼각플라스크 정치배양시 액체배지의 균사 생장 최적 pH가 6.0이었으나, 통기식 액체배양에서는 pH 4.0으로 배양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버섯 종류에 따른 고유의 생리적 특성으로 생각되며 이에 관련한 연구가 필요하고 본다.
        1540.
        200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 독립영화 분야는 한국 영화역사가 시작된 이래 상업영화와 함께 공존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독립영화인들은 상업영화의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과 화려한 스케일에 못 미치는 퀄러티로 대중들에게 소외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사회와 정치계를 향한 날카로운 잣대와 굽힐 줄 모르는 장인정신으로 세계 여러 예술영화 제를 통해 늘 그들의 존재를 알려왔다. 본 논문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밥상”은 로카르노, 선댄스, 로테르담, 부산 등 세계 유수 예술영화제에 초청되어 그 실험적인 형식과 독특한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좋은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계에서는 처음으로 프 랑스 파리에서 2008년 3월 최초 개봉 후 한국에서 같은 해 4월 개봉절차를 밟고 있 는 유일한 사례이다. 본 논문은 “마지막 밥상” 제작의 모든 절차 - 캐릭터 생성, 시나리오 개발, 예산 확 보, 장소 헌팅, 스텝과 배우 캐스팅, 촬영, 후반작업 - 를 상세히 기술하고, 제작과정 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실험정신이 강한 독립, 예술영 화계에 새로운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본 논문은 제작과정 동안 발생된 다양한 문제점, 즉 적은 예산, 짦은 촬영 회 차, 비 전문 배우의 연기력, 필드 경험적은 스텝들, 촬영과 조명팀의 기술적 미학적 갈등, 슈퍼16미리 카메라촬영의 내제적 문제점, 노출/섹스씬, 날씨와의 싸움 등에 대 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는 계속 생산되어야 하고, 그들만이 가 지고 있는 날카로운 시각과 미학적 실험은 다양한 자리에서 회자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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